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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포칼립스SF, 액션, 판타지, 폐허 도시, 생존 경쟁, 초능력, 바이러스, 파벌 투쟁, 문명 재건
황무지 국경 검사관
저자: 근근근
감염체가 날뛰고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는 황무지로 빙의한 정야. 그는 행복시의 접경지 검사관이 되었다.
행복시에 입주하려는 생존자들은 감염체의 잠입을 막기 위해 누구나 정밀한 심문과 검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곧 정야는 이 감염체들이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 집념으로 살아가게 하는 망어 촉수.
순식간에 반경 2km를 뒤덮어 광범위하게 감염시키는 죽음의 민들레.
생물 해체 광선을 뿜어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뜨거운 해바라기.
그리고 생물을 웃게 만드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웃는 얼굴의 만다라까지…….
뭐라고, 나보고 이런 괴물들을 검사하라고?
다행히 정야에게는 특별한 '문명 수집기'가 있었다.
생물의 협조도만 충분히 높다면, 탐색을 통해 그가 보유한 정보, 물품, 기술, 속성, 능력, 시설 등을 복제할 수 있다.
탐색에 실패하더라도 행동 포인트를 쌓아 재료를 제공받고 도구, 장비, 피난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잠깐, 여기서 배우자까지 탐색이 된다고?
눈앞에 나타난 성주 부인을 보며 정야는 멍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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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행복시, 당신의 황무지 피난 최우선 선택지!**
7월, 한여름의 태양은 타오를 듯 뜨거웠다.
아스팔트 도로는 고온에 비늘처럼 뒤틀렸고, 갈라진 틈새마다 굵고 기괴한 덩굴들이 박혀 있었다.
남자는 단도를 손에 든 채 앞길을 가로막는 덩굴을 힘들게 베어내며 도로변 표지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행복시, 당신의 황무지 피난 최우선 선택지!]
[행복시, 다음 인류 기원의 희망!]
[행복시, 우리는 끝없는 식량과 무한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행복시, 모두가 존중받는 곳!]
앞으로 나아갈수록 도로변 표지판의 문구는 더욱 빽빽해졌다. 비뚤어진 전신주에 못 박혀 있거나, 무너진 은행 외벽에 스프레이로 칠해져 있었고, 심지어 풍화된 가게 간판 표면에 새겨져 있기도 했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주문 같았다. 남자는 분명 몹시 지쳐 있었음에도 갑자기 몸 안에서 끊임없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덜덜 떨리던 다리마저 가벼워진 듯했다.
표지판을 따라 몇 개의 굽이길을 돌자, 도시의 그림자가 썰물처럼 물러나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경계선이 뒤편의 건물 폐허를 격리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행복시에 대한 묘사가 아무리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어도, 막상 눈앞의 광경을 마주하자 남자는 입을 벌린 채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설적인 ‘행복의 거벽’이었다!
라디오 설명에 따르면 이 거벽은 높이 약 30미터, 길이 10여 킬로미터에 달하며, 10제곱킬로미터 규모의 거대한 생활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다. 거벽의 형태가 불규칙한 타원형이었기 때문이다.
황무지 유민 거주지의 인구 밀도로 따지면, 내부에는 최소 백만 명 이상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벽 앞에는 모든 쉘터 시티가 설치하는 격리 완충 구역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행복시의 격리 구역은 저 거벽처럼 길이 십수 킬로미터, 너비 약 5킬로미터에 달할 만큼 정갈하고 방대하다는 점이었다.
내부에는 구시대의 낡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었고, 파손된 보행자 거리가 군데군데 보였지만, 격리 구역 최전방의 검사소는 보는 이의 심장을 조이는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돈된 철망으로 나뉜 검사소는 전방, 중방, 후방의 세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각 1차 선별, 격리 관찰, 주민 절차 이행을 담당했다.
선별 구역에서는 최전방의 금속 대문을 통과한 후 컨베이어 벨트 위의 격리 철장에 들어간다. 벨트를 타고 각 창구의 검사관 앞으로 이동해 역병 검사를 받는 식이었다.
검사를 마친 후 감염되지 않았음이 확인된 생존자는 곧장 후방 구역으로 이동해 주민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의심 증상이 있는 생존자는 중부 관찰 구역으로 이동해 천막 안에서 사흘간 대기해야 했다.
[행복시 경계 구역에 진입하셨습니다]
[황색 표시선을 따라 전방에서 검역을 받으십시오]
[무단 침입자는 즉시 사살합니다]
격리 구역에 가까워지자 도로변 표지판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남자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배낭을 고쳐 메고 전진했다. 곧 그는 줄을 서 있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었다.
“질서를 지켜 줄을 서주십시오. 밀지 마십시오. 가족 단위로 격리 철장에 입장해 검사를 받으십시오!”
쇳소리 섞인 전자 합성음이 선별 구역 상공에 울려 퍼졌다. 거대한 괴수처럼 버티고 선 8개의 보초탑 스피커에서 명령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생존자들은 고개를 떨군 채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중기관총의 총구 아래에서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만 격리 철장에 오를 때, 생존자에게는 검사관을 선택할 기회가 한 번 주어졌다.
1번부터 8번까지, 녹슨 8개의 컨베이어 벨트가 나란히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연령과 성별이 제각각인 8명의 검사관이 앉아 있었다.
남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각 창구를 훑어보더니 이내 8번 검사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렸다.
모든 검사관이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목덜미의 피부를 보니 8번 검사관의 나이가 가장 어려 보였다. 당연히 그의 검사를 통과하는 것이 가장 쉬울 터였다.
“성함은?”
“에드먼드 레이크입니다.”
“어디서 오셨죠?”
“사크 연방 시티에서 왔습니다.”
남자가 보는 앞에서 8번 검사관은 지도를 펼치더니 한참을 찾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오? 거기서 행복시까지는 거의 3,000킬로미터나 되는데, 어떻게 오신 겁니까?”
“화물 열차와 자동차를 탔고, 배도 잠깐 탔습니다. 그리고 300킬로미터를 걸어서 겨우 행복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긴 여정이었겠네요. 눈앞의 탁자 위에 있는 첫 번째 체온계가 보이십니까? 그걸 집어서 이마에 대고 버튼을 누른 뒤, 화면에 뜨는 숫자를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격리 철장 안에는 고정된 작은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세 종류의 테스트 기기가 놓여 있었다.
검사관의 말에 따라 에드먼드가 체온계를 들자 액정 화면에 숫자 두 개가 나타났다.
‘47.02’
“나으리, 이 체온계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제 체온이 어떻게 47도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8번 검사관이 의아한 듯 고개를 내밀어 숫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바로 질의응답 단계로 넘어가죠. 이 테스트만 통과하면 뒤로 가서 주민 등록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말씀하십시오, 나으리.”
“사크 연방 시티와 행복시 사이, 어느 구간에서 배를 타셨죠?”
“아마 임강 지류였을 겁니다.” 에드먼드는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운시에 대규모 감염자 사태가 터져서 그 구간을 우회하려면 수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정확한 날짜는요?”
“6월 15일입니다.”
“그렇게 정확히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죠. 그날은 행복시의 창립 기념일이었습니다. 라디오 옆에 붙어 앉아 세 시간 동안이나 축제 중계를 들었거든요.”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들려오던 엄숙한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을 떠올리는지, 에드먼드의 얼굴에는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이 긴 여정 동안 행복시의 방송이 그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던 모양이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창립 기념일 방송이 끝난 뒤에 이어진 주변 지역 천재지변 예보도 기억하시겠군요?”
“그런 순서가 있었나요?”
에드먼드의 미소가 굳었다. 그림자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격하게 수축했다.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늦게 방송된 게 아닐까요?”
“기억할 리가 없죠.”
금속 책상면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8번 검사관이 서랍을 열어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사진 속의 강물은 탁한 거대 뱀처럼 물길을 벗어나 황야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6월 14일 새벽, 임강 지류에 갑작스러운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해 수위가 7미터나 폭등했습니다. 수로를 이용하던 모든 이들의 시신은 운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끊어진 다리 아래에 박혀 있죠.”
“당신의 수로 일정은 사신(死神)보다 딱 24시간 늦었습니다.”
“뭐라고요?”
마치 특수 버튼이라도 눌린 듯 에드먼드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시더니, 이목구비가 눈 깜짝할 새 며칠 동안 물에 불린 목이버섯처럼 잿빛 주름으로 뒤틀렸다.
“홍수…… 끊어진 다리…… 나는…….”
에드먼드의 눈동자가 풀리며 턱이 빠진 듯 가슴팍으로 툭 떨어졌다. 이어 목구멍에서 흡반이 가득 달린 보랏빛 촉수 세 개가 튀어나왔다.
가장 앞쪽의 촉수가 철장 틈새로 빠져나가기도 전, 그의 이마에 작은 붉은 점이 찍혔다.
콰앙!
7.62mm 전위력 탄환의 ‘구마’ 효과는 탁월했다. 촉수를 찢어발기는 동시에 머리 절반을 날려버렸다.
에드먼드의 상체가 뒤로 튕겨 나갔다. 목덜미에서는 꿈틀거리는 육종 조직이 드러났다. 기괴하게도 남은 반쪽 얼굴은 여전히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고, 파괴된 기관지에서는 끊임없이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짜야…… 행복…… 가짜…….”
“코드명—망어 촉수. 감염 단계 2기. 견습 검사관 ‘정야’의 유도로 보초탑에서 확인 사살 완료.”
고개를 들어 보초탑 창가에서 보내는 OK 수표를 확인한 정야는 한숨을 내쉬며 통신기를 눌러 보고했다.
곧 통신기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확인했다. 처리반이 3분 내로 도착할 예정이니, 검사관은 현장 안정을 유지하라!”
현장 안정?
통신기를 끈 정야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일곱 개의 컨베이어 벨트에 서 있던 생존자들은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했다. 총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 에드먼드의 처참한 죽음이나 촉수를 보고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나머지 일곱 명의 검사관들 또한 소름 끼칠 정도로 담담했다. 총소리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안정이 필요한 사람은, 어쩌면 이제 막 빙의한 지 두 달 된 이 견습 검사관뿐인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