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화 전향 19봉
장소화는 당연히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둘러댔다.
“그냥 관둡시다. 어차피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 예전부터 손에 익은 것일 뿐이니까요.”
“에이, 이모부. 이모부의 분부를 제가 어찌 모른 척하겠습니까? 한번 보세요. 주변에 저 녀석들이 다 이모부를 지켜보고 있다고요. 이모부가 한마디만 하시면 저보다 더 빨리 달려갈걸요.”
장소화는 빙긋 웃었다. 과연 그랬다. 전향교에 함께 온 다른 여덟 명의 십 대 아이들은 모두 기민한 녀석들이었다. 처음에는 장소화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나, 회춘곡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아가씨와 그토록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회춘곡의 중요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인물이 전향교에 왔으니 분명 각별한 대우를 받을 것이 뻔했다. 그와 함께 온 이상, 그에게 잘 보이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야 나중에 이득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길을 오는 내내 이 동자들은 어떻게든 장소화에게 접근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장소화가 사불상의 등에 올라타 있거나 마차 안에서 눈을 감고 운공에 전념하며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기에, 그의 성미를 모르는 아이들은 누구 하나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장소화는 자신을 훔쳐보는 몇몇 시선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고 곧장 양 관사를 찾아갔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상관인 관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이 동아줄을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더욱 확신했다.
장소화가 다가오자 양 관사는 주위를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어딜 갔다 온 게냐? 여기는 전향교다. 네가 문제를 일으키면 회춘곡의 면면을 봐서라도 노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게다!”
장소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르신,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오는 길에 제가 무슨 사고라도 친 적이 있습니까? 그저 아침에 일찍 잠이 깨서 숲속에서 권법 수련을 좀 했을 뿐입니다.”
그제야 양 관사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수련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법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만, 때를 가려야 한다. 아직 우리 탁단당에 도착한 것이 아니니 다른 제자들이 트집을 잡을 수도 있어. 정말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나조차 너를 보호해 주기 어렵단다. 에휴, 됐다. 곧 출발할 테니 백악봉에 도착해서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백악봉요?”
장소화는 멍하니 백악봉이 어디인지 물으려 했으나 양 관사는 이미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부르고 있었다.
‘백악봉이 전향교가 있는 산봉우리인가 보군.’
장소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차 행렬은 곧 정돈되어 다시 일렬로 늘어섰고, 순서에 따라 어느 산골짜기를 향해 나아갔다. 탁단당의 행렬은 이번에 특별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는데, 공작 대인이 이미 행렬을 떠나 먼저 앞서갔기 때문인 듯했다.
골짜기를 벗어나자 장소화의 눈앞에 환한 풍경이 펼쳐졌다. 온통 초록빛이 가득한 곳이었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정상에는 짙은 흰 안개가 감돌아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산자락은 온통 푸른 숲이었다. 가까운 산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수풀이 무성했으며, 이름 모를 들풀들이 미풍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기후는 이상하리만치 온화하여 전치의 봄 경치도 이곳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장소화는 문득 생각이 나 신식을 몰래 한 줄기 내보냈다. 그러자 이곳의 천지 원기가 전치 근처보다 몇 배는 더 농후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회춘곡의 내곡보다도 훨씬 진한 정도였다. 장소화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천지 원기가 농후하면 영초들이 많이 자랄 테니 나중에 단약을 제련할 걱정은 없겠지만, 이 백악봉이 전치의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나무배를 타고 그리 오래 오지 않았는데 원기의 변화가 어찌 이리도 극명하단 말인가?
‘아, 아마 전향교를 드나드는 진법 때문이겠지.’
장소화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행렬이 밥 두 끼 먹을 시간 동안 나아가자 정면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행렬 앞쪽의 마차 수십 대는 제자들의 몰이 아래 넓은 산길을 따라 산으로 향했지만, 나머지 마차들은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장소화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백악봉이 아닌가?’
하지만 장소화는 여전히 행렬의 맨 끝에 있었고 양 관사는 맨 앞에 있었기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후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 세 곳을 더 지나쳤다. 탁단당 행렬의 앞뒤에 있던 마차 수십 대가 대열에서 이탈해 산으로 올라갔다. 정오의 햇살이 머리 위를 비출 즈음, 양 관사의 인도 아래 탁단당의 행렬도 대열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의 앞에는 다른 탁단당 마차들이 먼저 가고 있었다.
그제야 장소화는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전향교는 산봉우리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당마다 산봉우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앞의 이 산이 바로 탁단당이 머무는 백악봉일 터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양 관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형제들이여, 조금만 힘을 내게! 이미 백악봉에 들어섰으니 조금만 더 가면 탁단당이라네. 서두르면 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걸세!”
사람들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당의 음식은 수십 년 동안 먹어서 지긋지긋합니다. 바깥 음식이 훨씬 맛있는데 누가 당의 점심을 그리워하겠습니까?”
양 관사도 크게 웃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았나. 나중에 밥이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놈은 이틀 동안 굶겨볼 테니 그리 알게.”
말을 마친 양 관사는 걸음을 멈추고 마차들을 보낸 뒤 행렬의 맨 뒤로 와서 웃으며 말했다.
“임소요, 마차에만 앉아 있으려니 답답하지 않으냐?”
장소화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대답했다.
“진작 내려서 걷고 싶었습니다만, 어르신께서 분부하지 않으셔서 감히 나오지 못했습니다.”
양 관사가 말했다.
“이미 백악봉에 도착했으니 우리 탁단당의 세상이다. 여기는 규율이 그리 엄하지 않으니 내려와도 상관없다.”
장소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양 관사님, 아까 백악봉이라고 하시기에 저는 전향교 전체가 백악봉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차들이 각기 다른 산으로 가는 걸 보니 당마다 산봉우리가 따로 있나 봅니다?”
양 관사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 전향교에 오기 전에는 전향교가 어떤 모습일 거라 생각했느냐?”
장소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표묘파의 모습을 묘사했다.
양 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일반적인 강호 문파는 대개 그런 모습이지. 하지만 우리 전향교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수천 년 전부터 이 동천복지를 차지했다. 산봉우리 하나에 우리 전향교 전체를 어찌 다 담겠느냐?”
장소화가 포권하며 청했다.
“양 관사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간단히 말해주마. 우리 전향교에는 유향봉, 시신봉, 백악봉, 광려봉, 구화봉, 부구봉, 용수봉, 궁륭봉, 현묘봉, 동정봉, 삼모봉, 천목봉, 경산봉, 서릉봉, 완위봉, 천태봉, 안탕봉, 나부봉, 회옥봉 등 19개의 주요 산봉우리가 있다. 그중 정중앙에 위치한 유향봉이 으뜸이지.”
양 관사는 부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
“유향봉은 우리 전향교 수뇌부들이 머무는 곳이다. 교주 대인과 장로님들, 수많은 공봉, 그리고 내문 제자들이 그곳에서 거주하며 수련한단다.”
장소화가 웃으며 말했다.
“공작 대인과 진 대인 일행도 그곳으로 갔겠군요.”
“그렇단다. 공작 대인은 어젯밤 정해호에 도착하자마자 설진 사태 일행을 따라 곧장 유향봉으로 돌아가셨고, 우리만 기슭에서 쉬었던 게지. 아, 참. 아까 그 호수가 정해호다. 평소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순산 제자들만 지키는 곳이니, 나중에 긴요한 일이 없으면 그곳에 가지 마라.”
장소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안 가고 싶어도 가야만 해요. 안 그러면 제가 어떻게 나가는 길을 찾겠습니까?’
장소화는 신식을 내보내 몰래 양 관사를 살폈다. 의심하는 기색 없이 그저 일상적인 당부를 하는 듯 보였다. 장소화는 안심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백악봉은 우리 탁단당의 주둔지겠군요. 다른 산봉우리들은 어떤가요?”
양 관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백악봉은 당연히 우리 탁단당의 주둔지다. 당주 어르신과 탁단당의 주요 기관들이 이 백악봉에 있지. 하지만 우리 탁단당은 약초를 주로 다루기에 영초를 재배할 넓은 땅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다른 당보다 산봉우리를 몇 개 더 차지하고 있지. 천목봉, 경산봉, 그리고 삼모봉도 우리 탁단당의 소유란다. 다만 그 산봉우리들은 영초 재배 전용이라 거리는 조금씩 다르지.”
이 말을 듣자 장소화의 머릿속에 대략적인 지도가 그려졌다. 물론 그는 표묘파에 관한 소식이 더 궁금했기에 슬쩍 떠보듯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다른 당들은 어느 산봉우리에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비밀도 아니니 여기 오래 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게다. 조금만 말해주자면, 방금 지나온 산들 중 가장 가까운 광려봉은 연기당의 영역이다. 그곳은 우리 백악봉처럼 지화가 끌어 올려져 있어 기물을 제련할 수 있지. 좀 더 멀리 있는 현묘봉과 용수봉은 무명당의 소유란다. 음, 그곳은 우리 전향교 외문 제자들이 수련하는 곳이지. 소요야, 네가 만약 전향교를 나가고 싶다면 첫 번째 단계로 무명당에 들어가 무공을 닦아 시련 고사를 통과해야 한단다.”
장소화가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양 관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겠군요.”
양 관사는 구름 속으로 높이 솟은 백악봉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와 섭수 사이가 수십 년 지기이니 그 정도는 당연히 도와야지. 다만…… 에휴, 탁단당에 가보면 알겠지만 노부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아 말을 보탤 기회가 많지 않단다. 그래도 조카님, 걱정 말게. 힘닿는 데까지는 꼭 도와줄 테니.”
여정 내내 부르지 않던 ‘조카님’이라는 호칭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장소화는 잠시 멍해졌으나 곧바로 웃으며 대답했다.
“양 숙부님, 겸손하십니다. 어찌 됐든 숙부님의 은혜는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허허, 그래야지. 네 연단 실력도 뛰어나고 무공도 괜찮으니 앞의 저 어린 약동들과는 다르지 않느냐. 어쩌면 나중에 노부가 네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장소화는 서둘러 겸손하게 말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제 무공이야 보잘것없는 솜씨인데 어디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어서 장소화가 물었다.
“외문 제자들은 우리 전향교에서 지위가 꽤 높을 텐데, 어젯밤에 보니 많은 제자가 텐트를 치고 험한 일을 하던데 어찌 된 건가요?”
제526화 탄로 난 사실
양 관사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
“외문 제자들의 무공이 고강하여 우리보다 훨씬 체면이 서 보이지만, 내문 제자들 눈에는 그들이나 우리나 별 차이가 없단다. 그러니 외문 제자라는 신분에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너도 머지않아 외문 제자가 될 날이 올 게다.”
이어서 그는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일꾼들은 무명당의 외문 제자들이 아니라 건곤당의 제자들이란다.”
“건곤당요?”
“허허, 건곤당이라는 이름이 꽤 그럴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우리 전향교의 온갖 잡무를 담당하는 곳이란다. 맡은 일이 워낙 방대하고 거의 모든 사무를 아우르다 보니 건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
“아, 그렇군요. 그럼 그들은 어느 산봉우리에 있나요?”
양 관사가 왼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앞으로 수십 리 정도 가면 보이는 저 나지막한 봉우리가 그들의 처소인 궁륭봉이란다.”
그 후 양 관사는 전향교 내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몇 가지 더 일러주었다. 장소화는 몇 번이나 표묘당이 어느 산봉우리에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말을 삼켰다. 너무 성급하게 물었다가 양 관사의 의심을 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향교에 들어왔으니 이변이 없는 한 최소 2년 뒤에나 나갈 기회가 생길 것이고, 탐색할 시간은 충분하니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차는 계속 위로 향했다. 백악봉의 산도는 매우 넓었으며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산등성이 하나를 돌자 눈앞에 광활한 평지가 나타났다. 그 평지는 백악봉 중턱 아래 산맥과 이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 위로 끝없이 이어진 건축물들이 보였다. 건물들은 평탄한 곳뿐만 아니라 백악봉과 인근 산맥 위에도 수없이 세워져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장소화는 넋을 잃고 말았다. 건물이 어찌나 많은지, 꽃과 풀은 또 어찌나 선명한지, 누각은 또 어찌나 화려한지…….
장소화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맑은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산등성이 어딘가에서 십여 마리의 선학이 튀어나왔다. 학들은 공중을 몇 바퀴 선회하더니 산꼭대기의 짙은 안개 사이로 곧장 솟구쳐 올라갔다.
시골 소년이 처음 성안에 들어온 듯한 장소화의 표정을 보고 양 관사가 웃으며 말했다.
“너뿐만이 아니란다. 모든 약동이 처음 이런 기세를 보면 겁을 먹기 마련이지. 우리 탁단당이 이곳에서 수천 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겠느냐? 아직 유향봉의 위용은 보지도 못했지?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시골이나 다름없단다!”
양 관사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전향교 밖에는 전치라는 천연의 요새가 있어 일반 강호인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전향교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 만 년 동안 선도의 전승을 이어오며 발전해왔으니, 일반 문파와 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장소화는 자연스럽게 표묘파를 떠올렸다. 똑같이 선도의 전승을 잇는 대문파인데 표묘파는 어찌 그리 초라하단 말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오직 구팽만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윽고 마차가 멈춰 섰다. 탁단당의 제자들은 모두 마차와 말에서 내렸고, 양 관사도 회춘곡의 약동들을 불러 내리게 했다. 동자들은 장소화처럼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 건축물들은 산 중턱에 있어 산 정상처럼 안개가 자욱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흰 안개까지 감돌았다면 그야말로 선경 같았을 것이다.
탁단당에 도착하자 줄을 지어 오던 마차 행렬이 흩어졌다. 함께 오던 다른 마차들도 각자의 관사들의 인도에 따라 탁단당 안으로 향했다.
탁단당의 정문은 매우 웅장한 패루였는데, 표묘파의 그것보다 훨씬 높고 컸다. 다만 그 위에 쓰인 ‘탁단’이라는 두 글자는 ‘표묘’라는 글자에 비해 기운이 한참 떨어졌는데, 장소화의 눈에도 그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패루를 지나자 거대한 문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수많은 제자가 드나들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 행렬이 들어오자 걸음을 멈추고 웃는 낯으로 손가락질하며 무언가 신기한 것을 보는 듯 수군거렸다. 행렬을 따르던 어린 동자들은 수많은 시선이 꽂히자 쑥스러워하며 저희끼리 소곤거렸다. 특히 사불상을 끌고 맨 뒤에서 양 관사와 함께 걸어오는 장소화는 가장 많은 눈길을 받았다.
어느 문루 앞에 다다르자 탁단당 제자들은 익숙한 듯 각자의 마차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행렬들도 저마다 다른 문루로 들어갔다. 이때 마침 제자 한 명이 안에서 급히 나오자 양 관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주흠, 어디 가는 길인가?”
주흠은 양 관사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양 형님, 돌아오셨습니까? 한 번 나가시면 몇 달씩 걸리시니 밖은 좀 어떠셨습니까?”
양 관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밖이 좋은지 나쁜지는 자네가 가보면 알 것 아닌가? 이번에 내가 임무를 마쳤으니 다음은 자네 차례일세.”
주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양 형님도 참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야 가고 싶지만 당주 어르신께서 보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좌우를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형님이 몇 달간 자리를 비우셔서 모르시겠지만, 당주님과 서 부당주님의 사이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제가 당주님께 직접 청한다 해도 서 부당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때 주흠의 시선이 장소화에게 머물렀다.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양 형님, 이 소제는 낯이 무척 설군요. 어느 당의 형제입니까?”
양 관사는 약동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 장소화의 키를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친구는 우리 전향교 제자가 아니네…….”
“오? 그렇다면 설마 회춘곡의……?”
주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 관사가 말을 가로막았다.
“나중에 자세히 말해주겠네. 어차피 자네도 나중에 회춘곡으로 공무를 보러 가야 하니 알게 될 일일세.”
그러고는 장소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임소요, 이리 와서 주 관사님께 인사드려라. 이분이 내후년에 회춘곡으로 갈 수도 있는 분이니, 섭 곡주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주 관사님과 미리 안면을 터두는 게 좋을 게다.”
장소화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가 나중에 회춘곡으로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과 잘 지내서 뭐 하겠어?’ 하지만 섭천우를 생각해서라도 인상은 좋게 남겨두는 편이 나았다.
장소화는 즉시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주 관사님을 뵙습니다.”
“이거 참…….” 주 관사는 장소화의 정확한 신분을 몰라 정중히 답례하며 말했다. “양 형님의 농담은 듣지 말게. 아직 정해진 것도 아니고 내후년 일은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니.”
양 관사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주 아우는 어서 볼일을 보게나. 이번에 올 때 회춘곡의 백화양을 좀 챙겨왔으니, 저녁에 꼭 내 처소로 와서 한잔하세. 아, 참. 당주 어르신께서는 백초청에 계시겠지?”
주흠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요. 형님을 뵌 지도 수개월이 지났으니 저녁엔 꼭 가겠습니다.”
그러더니 곤란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당주 어르신께서는 오늘 아침 일찍 유향봉으로 가셨습니다. 긴요한 상의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백초청에는 서 부당주님이 계십니다.”
“아이쿠, 당주님께서 이 시각에 왜 유향봉으로 가셨을까? 평소에는 늘 백악봉에만 계시지 않았나?”
주흠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알겠습니까. 문파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지요. 그럼 양 형님, 소제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녁 준비 잘 해두십시오!”
양 관사가 포권하며 대답했다.
“문제없네. 어서 가보게나.”
두 사람이 작별한 뒤, 양 관사는 이미 멀리 앞서간 일행을 보며 장소화를 재촉했다.
“어서 가자. 서 부당주님은 그리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니 지체해서는 안 된다.”
일행을 쫓아 널찍한 대청 몇 개를 지나 거대한 마당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마당 가운데에 서 있자 양 관사는 의복을 정돈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전각 위에는 ‘백초청’이라는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대청 안에는 마르고 키가 큰, 정정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짧은 수염을 기른 채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양 관사가 서둘러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찻잔을 든 채 천천히 차를 마셨다.
양 관사가 전각 앞으로 나아가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제자 양요가 서 부당주님을 뵙습니다.”
서 부당주님은 못 들은 척 여전히 찻물을 들이켜며 곁눈질로 양요를 살폈다. 양요는 허리를 굽힌 채 감히 흐트러진 기색을 보이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서 부당주님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일어나게. 이번에도 수개월이나 밖에서 고생이 많았군.”
양요는 허리를 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치 않으십니다. 모두 당을 위한 일인데 어찌 고생이라 하겠습니까.”
“음, 그래야지. 어쨌든 이제 갈 일은 없을 테니 당 안에서 편히 지내게나.”
“부족한 놈이지만 탁단당을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서 부당주가 손을 휘둘렀다.
“내가 당주도 아닌데 내 앞에서 무슨 충성 맹세인가? 그건 그렇고, 자네가 회춘곡에 안 가게 되면 누구를 후임으로 보낼 생각인가?”
양요는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그건 당주님들께서 결정하실 일이지요.”
“흥.” 서 부당주가 다시 한번 콧방귀를 뀌더니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예년에는 당주님께서 직접 약동들을 살피셨는데, 오늘은 유향봉에 가셔서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이 일을 마냥 미룰 수는 없겠군. 내가 대신 좀 봐주지.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 아니겠나.”
서 부당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양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급히 다가가 말했다.
“서 부당주님, 실은 보고드릴 내정이 좀 있습니다.”
서 부당주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무슨 내정? 약동들을 먼저 보고 나서 듣겠다.”
말을 마친 그는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양요는 급히 그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장소화와 강세 등 일행이 전각 앞에 일렬로 서 있었다. 자세히 살필 것도 없이,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장소화의 키는 서 부당주의 눈에 즉시 띄었다.
서 부당주는 흠칫 놀라더니 다시 동자들의 인원수를 세어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양요, 이것이 자네가 선발해 온 약동들인가?”
마지막 ‘약동’이라는 두 글자에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양요는 속으로 큰일 났음을 직감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실은 제가…….”
“이것이 자네가 말하려던 내정인가?”
서 부당주가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부디 제 설명을 들어주십시오.”
서 부당주가 크게 노호했다.
“양요, 네놈이 아주 간이 부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