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국가라는 무기를 손에 쥐어서는 안됩니다.
자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는 모두 이기적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그런 이기적인 인간들이 국가의 관료가 되고 군대의 지휘관이 된다면 어떤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무리 국가로 그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못하게 감시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감시 수단도 결국은 부패하고 변질될것입니다.
그리고 선사시대의 남성중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의 15%가 폭력으로 죽었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2016년도 스페인 건조지대 실험 연구소(Estación Experimental de Zonas Áridas)를 포함한 연구팀이 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600여 개 인류 집단의 데이터와, 고고학 발굴에서 발견된 인류 유해를 증거로 활용해 네이쳐 저널에 투고한 논문에 의하면 선사시대(원시 수렵채집 사회)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2%로 발표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 왕립 학회의 학술지인 생물학 편지(Biology Letters)의 12권 제3호의 실린 내용인 일본 선사시대의 폭력: 조몬시대 폭력의 유골 증거의 시공간적 양상(원문 : Violence in the prehistoric period of Japan: the spatio-temporal pattern of skeletal evidence for violence in the Jomon period)에는 선사시대 일본(조몬 시대)의 유골 자료를 이용해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사망률의 평균값을 1.81%라고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또 우리는 폭력을 양이 아니라 질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폭력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의 조직적 폭력은 그저 단순히 저 사람이 싫기에 죽인다, 먹을것을 뺏기 위해 죽인다 같은 1차원적인 폭력보다 인종 청소, 대량 학살등 더욱 고도화된 폭력으로 나타났습니다.
2. 전원합의
합의는 효율의 포기가 아니라 오답을 강요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아나키즘은 5000만 명의 동시 합의가 아닌 독립된 자치 코뮌들의 수평적 연합을 말하죠.
CNT-FAI의 아라곤-카탈루냐의 계급 부활과 혁명의 후퇴는 내부 결함이 아니라 외부의 물리적 침공에 의한 전시 상황의 예외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시 상황의 예외의 결과가 파국(바르셀로나 5월 사건)이였다는 사실은 인정할수밖에 없겠지만요.
또 정치질, 친목질, 카리스마등은 국가 시스템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며 오히려 국가 권력이 이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정치질, 친목질등 은밀한 권력이라는것은 국가 시스템속에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더 은폐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나키즘이 주장하는것은 이러한 권력을 제도로 고착화하지 않고, 상호 감시를 통해 끊임없이 해체하나가자는 겁니다.
3. 매몰비용
국가는 가장 거대한 무임승차(관료제의 낭비 등) 시스탬입니다.
당장 탈세와 정경유착이라는 형태로 거대하게 나타나죠.
치안이 공공재인 것은 인정하나 연대는 부족 단위의 감정이 아니라 이를 국가에 외주 주는 방식은 시민을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스페인 바스크의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같은 현대의 협동조합들이 보여주듯
강제력 없이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상호부조할 때 공공재는 훨씬 더 지속 가능하게 보존됩니다.
연대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돕지 않으면 나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존의 필연성에 근거한 사회 설계입니다.
4. 사유재산 폐지
사용하지 않는 소유가 아닌 실제적 사용이 문명을 지탱합니다.
누가 집을 수리하냐는 질문에 답해보자면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수리합니다.
자본가가 월세를 받기위해 최소한으로 수리하는 집과
그 집에 실제로 거주하며 사는 거주자가 삶의 질을 위해 가꾸는 집중 어느쪽이 더 관리 상태가 좋겠습니까?
또 카탈로니아 찬가속 경제적 어려움은 아나키즘 자체의 결함이라기 보단 전시 상황에 의한 외부 봉쇄 및 지역 상황의 한계의 의한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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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겨울이 시작될 때까지 카탈루냐의 민간인들은 식량 부족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집단화가 시작되면서 초기에는 식량 공급이 증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즉, 식량을 다른 지역에서 들여와야 했는데, 그 지역들 상당수가 이미 반군의 통제 하에 있거나 카탈루냐와의 연결이 끊겼거나, 전쟁의 압박으로 인해 식량 거래를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 발레스 오리엔탈 지역 기록 보관소에 보관된 스페인 내전시기 식량-물자 공급 총국의 영수증에 대한 가상 스페인 내전 박물관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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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집시 배제 등 당시의 사례는 아나키즘의 오류가 아니라 그 시대의 한계 때문이였습니다.
당장 프루동도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며(프루동 평전 중), 바쿠닌은 한때 슬라브 민족주의를 조건부로 옹호(슬라브 민족에게 보내는 호소)하기도 했었죠.
한국에도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당까지 만들었던 유림 선생님(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독립노농당)과 같은분들이 계셨듯이 아나키즘도 여타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현대의 아나키즘 및 아나키스트들은 집시를 포함한 모든 소수자의 해방을 지향하며 이는 현대 아나키즘 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5. 인간과 시스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 부분에서의 부족함은 인정합니다.
읽어야할 책 리스트에 사피엔스를 넣어둬야겠군요.
자 이제 일부다처제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구아야키족 추장은 다른 남성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아내를 가질 수 있다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본처와 첩의 관계를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다처제는 부족이 추장에게 부여한 권리입니다.
추장은 많은 아내들의 노동력을 통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죠
하지만 나머지가 있습니다. 바로 의무입니다.
즉 추장은 일부다처제를 할 권리를 부여 받은 대신 추장이 아내의 수만큼의 수많은 처가를 부양할 의무와 그러한 의무를 통해 부족민 전부에게 다양한 사회적 혜택을 돌려줄 의무를 지고 있었다는겁니다.
이로인해 추장은 부족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부족민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죠. 설령 그것이 자기의 능력을 초과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현상들로 인해 클라스트르는 추장이 여성을 매개로 한 집단의 포로와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아야키족의 일부다처제는 지배와 착취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잠재적 위험을 통제하고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려는 독특한 제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식의 몇몇의 근거만으로 원주민 사회를 일반화하는것이 무리라고 생각하신것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나키즘이 굳이 이런 사례까지 가져와 인용하는 이유는 지배받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6. 소련이 망하고 아나키즘은 더 빨리 망하고
공산주의를 따른 소련은 그래도 있기라도 했고 중국, 북한등 살아있는 공산 국가도 있다.
우선 중국,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는것은 넘어갑시다.
공산주의중에서도 성공한 소련과 중국의 사례를 들어 아나키즘의 무력함을 지적하셨는데, 국가라는 형태의 집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이라면 아나키즘은 당연히 실패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목적은 권력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이름의 감옥을 해체하고 시민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타락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 아니라 타락의 근원을 거부한 것입니다.
중국과 북한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들의 정당성을 증명합니까?
오히려 그들은 국가라는 권력 도구를 쥐었기에 인민을 억압하며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아나키즘이 집도 못 만들고 망했다는 비판은 역설적으로 아나키즘이 권력을 쥐고 타락하기보다 원칙을 지키며 해체되기를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해체보다는 외부의 억압(적백내전 마흐노우슈치나, 스페인 내전 CNT-FAI등)으로 강제 해산 당해서 끝났던게 다수지만요.
또 국가를 밀어내면 사적 권력이 지배할것이라 우려하시는데 국가는 그 사적 권력들을 하나로 모아 공적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압도적인 무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폭력을 분산 시키고 상호 견제 네트워크를 확립해야합니다.
물론 19~20세기 그리고 현대에 가깝게도 아나키즘에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는것은 부정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폭력과 테러만이 아나키즘 실천의 전부는 아닙니다.
노동조합(생디칼리슴), 협동조합, 성평등운동등 아나키스트들은 여러 사회문제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국가의 등에 역할을 넘어 국가가 강요하는 노예의 삶에서 인간을 깨우는 각성제의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7. 새로움
아나키즘이 과거의 실패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중앙화 혁명의 본질을 간과한 것입니다.
현대의 아나키스트들은 더 이상 총과 폭탄을 들지 않습니다.
대신 네트워크와 같은 수단을 통해 그 대안을 실천하려 합니다.
과거의 아나키즘이 고립으로 무너졌다면 현대에는 SNS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해서 전 세계에 있는 동지들과 소통합니다.
옛날에는 힘들었던 일들도 이제는 손가락 몇번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쓰고있는글도 옛날이였다면 고생에 고생을 하면서 썼겠죠.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자유롭게 논쟁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아나키즘의 분파가 탄생하기도 하고(예시 : 형용사 없는 아나키즘의 현대적 발전, 포스트 좌파 아나키즘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것이 아나키즘에 추가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완벽한 정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시스템도 고착화되면 부패하기에 아나키즘은 끊임없이 그것을 흔들고 분산시키려합니다.
실패했다는 여러 역사가들의 평가속에서도 왜 현재까지 아나키즘이 살아있겠습니까?
인간으로써 자유를 추구하는것은 당연한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사람이 자유를 추구하는 한 아나키즘은 계속될것입니다.
8.마치며
저는 서로의 입장이 매우 다르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논쟁은 더 이상 동일한 질문을 두고 답하는 토론이라기보다는,
서로 전혀 다른 기준과 목적을 가진 체계를 각자의 언어로 설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귀하께서는 효율성, 규모, 지속성, 국가의 존속 여부를 중심으로 사상을 평가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반박을 계속해서 쓰고 있고요.
이 기준 차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나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점과 목적 자체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누가 더 많은 사례를 드느냐의 문제가 아닌 서로가 전제하지 않는 질문에 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상으로 제 입장은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하며, 지금 단계에서는 추가적인 공방이 서로에게 큰 생산성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토론으로 저에 대해서 부족한 점을 많이 알았고, 배워 갈 지점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깨서도 이 토론으로 배워갈것이 많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