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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격무를 마친 나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온수가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으음, 샴푸가..."
"선생님, 여기."
"고마워, 아즈사... 아즈사?!"
샴푸를 건네받고 옆을 보자 왜인지 아즈사가 있었다. 나는 급히 벽에 걸린 수건을 꺼내 허리에 감았다.
"그렇게 놀랄 정도로 방심하고 있던 거야? 역시 선생님은 위기 의식이 너무 부족해."
그런 내 모습에 아즈사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반사적으로 그녀 쪽을 쳐다봤는데 그래도 수영복은 입은 듯 해서 안심했다.
"아즈사... 왜 여기 있어?"
"왜냐니, 그야 당연히 선생님과 함께 씻기 위해 왔지!"
콧소리를 내며 자신만만하게 아즈사가 말했다.
"서로 친밀감을 더욱 쌓기 위해서는 함께 씻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 코하루와도 그렇게 친해졌거든."
그러고 보니 아츠코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아리우스에서는 함께 샤워할 때 제일 즐거웠다고 했다.
어른 때문에 모든 것에 제약을 받았던 그녀에겐 이것이 타인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혹시 안되... 는 건가?"
불안한 표정으로 아즈사가 나를 올려다봤다.
언제나 군인다운 그녀가 이렇게 나이에 걸맞는 여린 모습을 보여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안되는 건 아니야, 아즈사만 괜찮다면."
"응...!"
그녀 나름대로 용기를 낸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내 허락을 받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나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즈사, 그 수영복을 입고 왔네?"
아즈사는 이전 바다에 갔을 때 입었던 프릴이 잔뜩 달린 귀여운 오프숄더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효율성과 활동성을 중시하는 그녀라면 트리니티의 지정 수영복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으음... 역시 아무것도 안 입는 게 나았을까? 선생님과 샤워할 거라면 적어도 수영복만이라도 입으라고 히후미가 그랬는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즈사라면 좀 더 움직이기 편한 트리니티 지정 수영복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 그게..."
내 물음에 아즈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확실히 이 수영복은 움직이기 불편할지도 몰라... 그치만 귀엽고... 선생님이 어울린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아즈사는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했다.
"그, 그런 것보다 거기 앉아! 지금부터 선생님의 등을 씻겨줄 테니까!"
재촉받은 대로 의자에 앉자 아즈사가 등을 씻겨주기 위해 내 뒤에 섰다.
"그럼 부탁할게?"
"응! 맡겨 줘!"
쓱쓱, 싹싹...
바디워시로 거품을 낸 타올로 아즈사가 내 등을 씻겨주고 있다.
"아아~ 좋네... 능숙하네? 아즈사?"
"후훗, 당연하지. 아리우스의 모두와 함께 훈련했으니까!"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절한 힘으로 아즈사가 등을 밀어주고 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나올 정도였다.
"그럼 다음은 앞쪽을..."
등을 마무리한 아즈사가 다음은 앞쪽을 씻겨주려고 한다. 하지만 손을 돌려도 아즈사의 몸집이 작아 조금 힘들어 보인다.
"아즈사, 무리해서 앞쪽까지 안 밀어줘도 괜찮아?"
"아니, 오늘은 내가 선생님을 씻겨주기로 했으니까."
아즈사가 억지로라도 앞쪽을 씻겨주려고 하다 보니 나에게 안기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등 뒤에서 은근히 부드러운 무언가가 눌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최대한 의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좋아, 그럼 다음은 하체를..."
"아, 아무리 그래도 거긴 내가 할게!"
"그래? 그럼 다음엔 날 씻겨줄 수 있을까?"
하체를 씻기려는 아즈사를 급히 만류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몸을 돌려 내게 등을 보였다.
"어... 나도 아즈사를 씻겨줘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야 서로 씻겨주는 거잖아?"
아즈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백발을 앞쪽으로 쓸어올리고 등을 드러냈다.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등은 조각품처럼 아름다워서 왠지 만지기 꺼려졌다.
"무슨 일 있어...?"
망설이는 나를 아즈사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애타게 기다리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결심한 뒤 수건을 그녀의 늘씬한 등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녀가 아프지 않도록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후훗... 기분 좋네."
학생의 등을 씻기는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아즈사의 표정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잘하고 있는 듯 했다.
"히얏?!"
"아... 미안! 아팠어?"
신이 난 나의 손끝이 아즈사의 날개 밑부분에 닿자마자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니,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것보다 계속해 줘."
"괜찮아?"
"응, 날개는 예민한 부분이라 소중한 사람만 만질 수 있지만... 선생님이라면 맡길 수 있어. 그러니까 부탁할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하얀 날개에 손을 뻗었다.
평소와 달리 꽃장식이 하나도 없는 본연 그대로의 날개...
관리도 잘 되어 있고 푹신푹신해서 촉감도 극상이다. 날개 아래 피부에 손톱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거품을 내며 씻겨줬다.
"으응..."
아즈사가 조금 간지럽다는 듯 말했지만 조용히 내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됐다. 이제 어때, 아즈사?"
"응, 엄청 기분 좋았어. 역시 사람이 씻겨주는 건 기분이 좋네."
거품으로 뒤덮인 날개를 아즈사가 기쁜 듯 조금 펄럭인다.
"선생님, 다음을 앞쪽을..."
"미안, 앞은 스스로 하면 안 될까..."
"우으, 역시 안 되나... 코하루와는 서로 구석구석 씻겨줬는데 선생님은 왜 안 되는 거지?"
아즈사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실망하며 말했다.
순수한 아즈사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서로 씻겨주기 위해 그녀의 몸을 만지는 것은 더더욱 안 될 것 같았다.
"이대로는 뭔가 부족한데... 그렇지."
거품을 씻어낸 뒤 아즈사의 제안으로 함께 욕조에 몸을 담구고 있었다.
둘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좁은 욕조 안에서 맞은편에는 아즈사가 무릎을 모아 세우고 앉아 있었다.
"..."
아즈사는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역시 내가 너무 거절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 선생님, 역시 오늘 내가 귀찮게 한 건가?"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길 즈음 아즈사가 넌지시 물었다.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혹시 선생님에게 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그치만 참을 수 없었어... 조인식이 끝나고 보충수업부가 다시 모인 뒤 선생님은 자주 와주지 않게 되었잖아?"
아즈사가 무릎을 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도 그녀의 어깨가 떨리는 듯 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즐겁지만... 선생님과 예전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외로웠어..."
몸을 움츠리고 불안해하는 아즈사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나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내가 미안해... 내 입장만 생각하느라 아즈사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어."
"선생님..."
"오늘은 조금 놀랐지만 나도 아즈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너의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고..."
아즈사를 끌어안은 채 귓가에 지금 내 모습처럼 아무 꾸밈없는 솔직한 진심을 전했다.
"그럼 내가 선생님과 더 많이 같이 있어도 괜찮아? 또 이런 짓을 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응, 물론이지."
"기뻐... 선생님, 정말 고마워..."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든 아즈사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냉정한 모습이 아닌 그 나이대의 소녀가 할 법한 표정이었다.
"그럼 슬슬..."
"안 돼!"
"우왓...!"
아즈사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자 이번에는 반대로 그녀가 안겨 왔다.
"모처럼 선생님과 이렇게 맞닿을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 말과 함께 아즈사는 팔에 힘을 더욱 강하게 하고 나와 몸을 밀착시켰다.
샤워한 직후여서인지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얇은 수영복 천 너머의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가슴을 누른다.
"선생님, 들려? 아까부터 심장이 빨리 뛰고 전혀 느려지지 않아. 그치만 나쁜 기분은 전혀 아니야."
아즈사의 가늘고 가냘픈 손가락이 내 거친 손가락과 얽히고 깍지를 꼈다.
"오히려 좋은 기분이 들 정도야... 선생님."
그리고 예쁜 얼굴을 조금 붉히며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응시했다.
나의 고동도 맞닿은 아즈사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고동처럼 빨라졌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따뜻한 물의 탓 만은 아닐 것이다.
"... 샬레에서 자고 가도 될까? 오늘은 선생님과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내 고개는 세로로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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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번역
작가 아즈사편 다음 시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