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인터레그넘(Interregnum, 궐위 기간)"이라고 명명했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따라서 온갖 병리적 증상들이 출몰하는 기묘한 황혼기이다. 본 보고서는 "우리의 사회 체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에 대한 귀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특정 국가(한국)의 특수성을 넘어 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의 근원적 변이와 그 최종 종착지를 분석한다.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적 합의는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역사의 종언"을 고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제 내부의 모순—불평등의 심화, 생태적 한계, 기술적 실업, 민주주의의 위기—에 의해 붕괴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단선적인 발전 경로가 아닌, 복합적인 위기가 중첩되는 "다중적 종말(multiple endings)"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단순히 경기 순환적 위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 생산 양식과 가치 창출의 메커니즘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스템적 변태(Systemic Metamorphosis)" 과정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 변태의 끝이 어디일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기술의 발전(자동화와 AI)과 생태적 한계(기후 위기)라는 두 가지 거대한 변수,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치적 분배 구조(평등 대 위계)의 상호작용에 따라 갈릴 것이다.
우리는 이 분석을 위해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 코헤이 사이토의 "탈성장 공산주의(Degrowth Communism)", 그리고 피터 프레이즈의 "네 가지 미래(Four Futures)" 모델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가 렌트(Rent)에 기반한 새로운 봉건제일지, 생태적 파국을 동반한 절멸주의일지, 아니면 기술적 풍요를 공유하는 해방적 사회일지를 규명한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죽어가고 있는 체제, 즉 신자유주의의 사망 진단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197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과 낙수 효과를 약속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한 "저성장 자본주의"와 극단적인 부의 집중이었다.
자본주의의 고전적 정의는 "이윤(Profit)"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기업가는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에서 판매하여 비용을 제하고 이윤을 남긴다. 그러나 21세기 후반, 특히 2008년 이후의 자본주의는 생산적 이윤보다 "지대(Rent)"가 경제의 중심 동력이 되는 기형적 구조로 변모했다.
지대란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소유권(토지, 지적재산권, 플랫폼 접근권 등)을 통해 추출하는 불로소득을 의미한다. 현대 경제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들(빅테크)은 물리적 상품을 생산하기보다, 타인이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클라우드, 플랫폼)를 소유하고 그에 대한 통행세를 걷는다. 이는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잃고 봉건적 구조로 회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교 항목 | 고전적 자본주의 (Industrial Capitalism) | 후기/플랫폼 자본주의 (Techno-Feudalism) |
|---|---|---|
핵심 가치 | 이윤 (Profit) | 지대 (Rent) |
주요 자산 | 공장, 기계, 노동력 | 데이터, 알고리즘, 클라우드 인프라 |
시장 형태 | 자유 경쟁 시장 (이상적으로) | 사유화된 디지털 영지 (Fiefdoms) |
인간의 지위 | 노동자 (Proletariat) / 소비자 | 클라우드 농노 (Cloud Serfs) / 데이터 생성자 |
통제 방식 | 임금 노동 계약 | 알고리즘적 행동 수정 및 의존성 |
신자유주의의 몰락은 경제적 지표뿐만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의 상실에서도 드러난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적 제도는 신뢰를 잃고 있으며, 선거는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기보다 분열을 가속화하는 장이 되었다.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목격된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는 단순한 일시적 반동이 아니라, 기존 질서가 더 이상 대중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근원적 불신의 발로이다.
더욱이, 과거 신자유주의가 약속했던 "국경 없는 세계"는 "장벽의 시대"로 대체되었다. 2차 대전 직후 전 세계에 5개 미만이었던 국경 장벽은 냉전 종식 후 급증하여 이제는 세계가 다시 닫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확장을 통해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내부의 자원을 둘러싼 약탈적 경쟁(Protectionism)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을 가속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를 구하려던 중앙은행의 화폐 정책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양적완화(QE)는 실물 경제의 투자를 촉진하기보다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막대한 유동성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수익성 없이도 거대한 디지털 인프라(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시장을 독점할 수 있게 한 "독이 든 연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혁신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금융과 기술 독점에 기생하는 좀비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우리의 사회 체재가 나아가는 첫 번째이자 가장 유력한 종착점 시나리오는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명명한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이다. 이 개념은 자본주의가 끝났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아니라, 더 나쁜 무언가로의 퇴행이다.
자본주의의 핵심 기제는 "시장"이다. 그러나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메타(Meta)와 같은 거대 플랫폼은 시장이 아니다. 그곳은 특정 기업이 소유한 "디지털 영지(Digital Fiefdom)"이다. 시장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익명으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알고리즘이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를 결정한다. 이 알고리즘은 공공의 이익이나 시장의 효율성이 아니라, 플랫폼 소유주(Cloudalist)의 지대 극대화를 위해 작동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에서 전통적인 자본가들(제조업체, 중소기업)은 플랫폼 소유주에게 "클라우드 지대(Cloud Rent)"를 납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봉신(Vassal)"으로 전락한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자가 지불하는 수수료는 시장 거래 비용이 아니라, 영주에게 바치는 공물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기술 봉건주의 하에서 일반 대중의 지위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나 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켜고,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고, 위치 정보를 제공할 때마다 플랫폼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농노(Cloud Serf)"**가 된다.
물론 이러한 진단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일부 비판적 정치경제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독점적 경향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극대화된 형태, 즉 **"플랫폼 자본주의(Platform Capitalism)"**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재의 거대 기술 기업들이 여전히 자본주의적 논리(경쟁, 효율성, 이윤 추구)에 따라 작동하며, 사용자들이 법적으로 토지에 예속된 중세 농노와 달리 형식적인 이동의 자유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조차도 현재의 시스템이 과거의 산업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극도로 집중되고 통제적인 형태의 착취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기술 봉건주의론이 제시하는 핵심 통찰은 **"경제적 강제"가 아닌 "구조적 의존성"**이 지배의 핵심 기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술 봉건주의가 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설명한다면,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와 한병철의 **심리정치(Psychopolitics)**는 이 새로운 체제가 인간 주체를 어떻게 통제하고 재구성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종착점이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인간 존재 양식의 근본적 변형을 예고함을 보여준다.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의 경험을 공짜 원재료로 일방적으로 강탈하여 행동 데이터로 변환한다. 이 시스템의 목표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나아가 개입하여 수정하는 것이다. 이를 **"행동 수정의 수단(Means of Behavioral Modification)"**이라 부른다.
이 권력은 과거의 전체주의와 다르다. 전체주의가 고문과 공포를 통해 영혼을 개조하려 했다면, 감시 자본주의는 넛지(nudge), 유도, 알고리즘적 추천을 통해 "행동"만을 통제하려 한다. 이것은 **"도구적 권력(Instrumentarian Power)"**으로, 인간을 자율적인 도덕적 주체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유기체로 격하시킨다. 2024년과 2025년의 선거 개입, 가짜 뉴스의 확산, 사회적 양극화는 이러한 도구적 권력이 사회 전체를 어떻게 불안정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적 통제가 외부의 규율(Discipline)에서 내부의 심리적 강제(Psychopolitics)로 이동했다고 분석한다. 현대인은 "해야 한다(Should)"는 규율 사회의 의무 대신, "할 수 있다(Can)"는 성과 사회의 긍정성에 포획되어 있다.
이러한 심리정치적 통제는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억압자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종착점은 거대한 수용소가 아니라, 모두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전시하고 착취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의 형태를 띠게 된다.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과 국가 권력이 결합하는 **"융합 시나리오(The Fusion Scenario)"**를 경고한다. 국가는 기업의 감시 능력을 통해 사회 통제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은 국가로부터 규제 면제와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는 2024년 미국 대선과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이미 목격된 바와 같이, 민주주의 제도를 공동화(hollowing out)시키고, 선출되지 않은 "정보 과두세력(Information Oligarchs)"이 실질적인 통치 권력을 행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에 대한 분석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에 의한 노동의 종말(The End of Labor) 가능성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근간인 '임금 노동을 통한 가치 창출과 소비'라는 순환 고리를 끊어버릴 위협을 내포한다.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설에 따르면, 새로운 가치는 오직 인간의 노동(가변 자본)에 의해서만 창출된다. 기계(불변 자본)는 자신의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할 뿐이다. 그러나 생성형 AI와 로봇 공학의 발전은 기계가 인지적, 창의적 노동까지 대체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은 "모든 것의 무어의 법칙(Moore's Law for Everything)"을 통해 기술 발전이 노동 비용을 0으로 만들고, 엄청난 부를 창출하여 모두에게 분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토지세와 같은 세금을 통해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 이는 **"부르주아적 판타지"**에 불과하다. 생산수단(AI와 데이터 센터)의 사적 소유가 유지되는 한, 기술적 풍요는 소유주에게만 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트만의 비전은 기술적 가능성(풍요)과 정치적 현실(불평등한 소유) 사이의 모순을 간과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0이 되면, 노동자는 소비자가 될 수 없으며, 이는 자본주의의 실현 위기(Realization Crisis)로 이어진다.
이 딜레마의 해결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논의된다. 그러나 UBI는 두 가지 상반된 미래를 내포한다:
연구 결과들은 UBI가 빈곤 완화와 건강 증진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지만 , 그것이 기존의 복지 국가를 해체하고 시장 의존성을 심화시킬 위험성도 경고한다.
자본주의의 종착점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절대적 한계는 **생태 위기(Ecological Crisis)**이다. 자본의 무한한 축적 욕망은 유한한 지구의 물리적 한계와 충돌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자 코헤이 사이토는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 대사를 교란시켜 "대사적 균열"을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공짜 자원으로 취급하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용함으로써 토양을 고갈시키고 기후를 파괴한다. 사이토는 말년의 마르크스가 이러한 모순을 깨닫고 "탈성장 공산주의(Degrowth Communism)"로 사상적 전환을 했다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가지 노선으로 갈린다.
만약 시스템이 성장을 멈추지 않고, 기술적 해결책도 실패한다면, 우리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로 나아가게 된다. 부유한 엘리트와 국가는 벙커, 사설 소방대, 고지대 요새로 대피하여 기후 재난을 피하는 반면, 대다수 빈곤층은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시나리오다. 이는 이미 국경의 군사화와 기후 난민에 대한 배제 정책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단일한 글로벌 시스템이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분절된 블록들의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의 세계는 "지경학적 파편화(Geo-economic Fragmentation)" 단계에 진입했다.
이러한 블록화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Friend-shoring)과 기술 냉전(반도체, AI)을 가속화하며,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상의 논의—자동화, 생태 위기, 기술 봉건화—를 종합하여, 우리는 피터 프레이즈가 제시한 "네 가지 미래" 모델을 통해 자본주의 이후의 가능한 종착점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두 가지 축, 즉 자원의 풍요/희소성과 사회의 평등/위계에 따라 결정된다.
구분 | 풍요 (Abundance) (기술적 해결 / 탈희소성) | 희소성 (Scarcity) (생태적 한계 / 자원 고갈) |
|---|---|---|
평등 (Equality) | 1. 공산주의 (Communism) (완전 자동화된 럭셔리 공산주의) | 2. 사회주의 (Socialism) (생태 사회주의 / 계획 경제) |
위계 (Hierarchy) | 3. 렌트주의 (Rentism) (기술 봉건주의 / 지대 자본주의) | 4. 절멸주의 (Exterminism)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 네오 봉건제) |
### 8.3. 시나리오 C: 사회주의 (Socialism) - 생태 사회주의와 계획 경제
우리의 사회 체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에 대한 분석은 결정론적이지 않다. 현재의 데이터와 추세는 **렌트주의(기술 봉건주의)**와 **절멸주의(기후 파국)**를 향한 강력한 관성을 가리키고 있다. 자본의 축적 논리, 빅테크의 독점, 그리고 지정학적 갈등은 이 "낮은 길(Low Road)"로의 이행을 가속화한다.
그러나 이 궤적은 필연이 아니다. 기술 봉건주의와 감시 자본주의는 자연 법칙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법적 설계의 결과물이다. 2025년 현재 목격되는 위기—불평등에 대한 분노, 기후 행동, 빅테크 규제 움직임—는 다른 미래를 향한 가능성이 아직 닫히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결국 종착점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과 자원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투쟁에 달려 있다.
우리의 종착점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민주주의와 시장 자유가 모두 사라진,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새로운 중세(New Middle Ages)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며 나아가고 있는 역설적인 미래의 모습이다.
I. 사회주의 계산 논쟁의 현대적 부활 (AI와 계획 경제)
과거 20세기 초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하이에크와 미제스는 중앙 계획이 수백만 가지 상품의 가격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계산할 수 없으므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의 AI와 빅데이터 기술은 이 계산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알리바바나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은 이미 내부적으로 고도의 계획 경제를 실행하고 있다. 이는 21세기의 사회주의가 과거의 관료적 소련 모델이 아니라, 실시간 피드백 루프를 갖춘 "사이버네틱 계획 경제"의 형태를 띨 수 있음을 시사한다.
II. 탈노동 시대의 인간성 (호모 파베르의 종말)
노동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한나 아렌트가 말한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피터 프레이즈와 다른 사상가들은 노동 윤리(Work Ethic)를 대체할 **"생활 윤리(Life Ethic)"**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위키피디아나 오픈소스 커뮤니티처럼 금전적 보상 없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커먼즈 기반 동료 생산(Commons-based Peer Production)"**이 주류 활동 양식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III. 구체적인 이행 전략: 대항 권력의 구축
보고서에서 언급된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된다:
이 분석은 한국 사회라는 지엽적 범위를 넘어, 전 지구적 자본주의 문명이 직면한 실존적 위기와 그 너머의 지평을 조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