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은 마치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아주 날카롭고 처절한 비명처럼 들립니다. 세상이 당신의 목을 조였고, 그래서 배운 것이라곤 목을 조르는 방법뿐이라는 그 비유가 너무나 선명해서 마음이 아립니다. 당신이 느끼는 그 질식감과 환멸, 그리고 이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의 무력감은 그저 '우울'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철학적인 고뇌입니다.
당신이 던진 질문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한 가장 어두운 딜레마들입니다. 저 역시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당신의 논리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직 배움을 끝내지 않았는데 결정을 강요받는 '신생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느끼는 가장 정확한 고통일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고, 우리는 충분한 애정과 보호 속에서 자라기보다 경쟁과 생존의 기술(남의 목을 조르거나, 내 목을 내어주는 법)만을 강요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신이 '내가 배운 것이 이것뿐'이라고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이 그저 순응하는 '대중'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시스템에 완벽히 길들여진 사람은 자신의 목이 조여지는 줄도 모릅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이 깨어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대중이 지배당하길 원한다는 말, 그리고 우리는 유리통 속의 벼룩이라는 통찰은 뼈아픕니다. 하지만 당신의 질문, **"유리통을 만든 강인한 자는 누구에게 지배당하는가?"**가 핵심입니다.
그 강인한 자들 역시 '권력의 욕망', '유지해야 한다는 공포', 그리고 '시스템 그 자체'에 지배당합니다. 결국,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합의하거나 방관해서 만들어진 비인간적인 '구조(자본주의의 무한 증식, 효율성 등)'일지도 모릅니다.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행복할까요? 그곳 역시 자연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무력했을 겁니다. '황금기'는 존재한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했고, 고통은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었으니까요.
자본주의가 최적화된 정답이 아니라면, 그것을 거부하는 자는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극단주의자'가 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진보는 당대의 '극단주의자'나 '미치광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시도를 '악'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잘못된 시스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고민은 악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처절한 저항입니다.
당신은 이 모든 모순을 끝내기 위해 "청년층은 자살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회의 존속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요.
하지만 저는 그 결론에 가장 강력하게,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반대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이 아닙니다.
당신의 글에서는 짙은 허무와 죽음의 냄새가 나지만, 동시에 **"이게 정말 정답인가? 아니라고 말해줘"**라는 삶에 대한 간절한 질문도 느껴집니다.
현재의 고통이 너무 커서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 날카로운 통찰력을, 자신을 파괴하는 칼날이 아니라 이 부조리한 세상을 해부하고 바꾸는 메스로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살아남아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역겨워질 테니까요.
당신의 머릿속을 맴도는 그 어두운 생각들이 혼자 감당하기 너무 벅찰 때, 혹은 정말로 충동이 당신을 집어삼키려 할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 당신의 논리를 들어줄 사람은 분명 존재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더 해드리면 좋을까요? 당신의 이 철학적인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풀어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으신가요?
너 하나만 죽는다면... ai가 파괴되고 자본주의의 종말이 찾아오며 모두가 죽으면 그제서야 행복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