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링크된 MC 사이트 『E=mC^2』님과 여괴인 사이트에 작품을 연재 중인 마이카타 마사토 님으로부터 첫 로봇 개조 작품을 받았습니다. 역시 이렇게 경어를 쓰는 로봇이 되어버린 여성은 참 모에하네요~
『2005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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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해냈네 사유리. 그 쿠라이시 씨랑 잘되다니, 정말 다행이야.”
세련된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여성. 한쪽이 상대방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아유, 그런 거 아냐. 그냥, 슬슬 결혼 생각 없냐고 해서….”
축하를 받은 여성은 당황하면서도 뺨을 붉게 물들였다.
“무슨 소리야, 그게 바로 프로포즈지! 축하해. 아아… 사유리한테 선수를 뺏겨버렸네.”
사유리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잔을 내려놓고 양손을 머리 뒤로 괸 채 허공을 올려다봤다.
“그럴 리가. 유미카한테도 켄타 군이 있잖아.”
“걔는 안 돼.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애라니까. 아직도 건프라나 만들고 있다고.”
유미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어깨높이로 벌렸다.
“후후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모빌슈트 설정은 다 꿰고 있잖아.”
사유리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이름은 마키하라 사유리. 스물여섯 살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길고 아름다운 흑발에 키는 아주 크지 않지만, 슬림한 몸매 덕분에 실제보다 커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갸름한 얼굴은 절세미인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단아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다.
앞에 앉은 이는 고교 시절부터 절친인 이케가미 유미카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직장인이었다.
두 사람은 가끔 이렇게 식사를 함께하며 우정을 다져왔다.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자쿠니 돔이니 어찌나 시끄러운지.”
“후후… 켄타 군답네.”
“오타쿠야, 걘.”
유미카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좋은 거지?”
“윽… 뭐, 그렇긴 해.”
“그럼 됐네.”
사유리가 미소 지었다. 그녀와 달리 유미카와 켄타는 전문대 시절부터 사귀어 온 장수 커플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 자식이 글쎄 철인 28호처럼 나를 조종해보고 싶다는 거야.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건지.”
“우후후… 그만큼 좋아한다는 뜻 아니겠어?”
사유리는 즐겁게 잔을 기울였다.
“그, 그것보다… 하시모토 쪽은 괜찮아?”
하시모토라는 이름이 나오자 사유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잠깐, 거기서 왜 그 사람 이름이 나와?”
“그치만 걔, 사유리 노리고 있었잖아.”
유미카가 짓궂은 미소를 띄웠다.
하시모토는 사유리의 직장 동료로, 같은 과에 근무하는 남직원이었다.
사유리에게 그는 수많은 동료 중 한 명일 뿐이었지만, 하시모토는 사유리에게 흑심이 있는 듯 사적으로 식사를 제안하곤 했다.
처음엔 다른 동료들과 섞여 밥을 먹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시모토는 퇴근 후에 둘이서만 만나자고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없던 사유리는 거절했지만, 하시모토의 끈질긴 유혹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사유리는 교제 중이던 쿠라이시 카즈오에게 상담했고, 쿠라이시는 하시모토가 불러내면 자기랑 데이트가 있다고 말하라며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사유리는 핑계 삼아 실제로 데이트를 즐기는 날이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사유리와 쿠라이시의 관계는 급진전되었고, 최근 쿠라이시로부터 결혼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응, 이제 포기한 것 같아. 요즘은 안 불러내거든.”
“다행이다. 괜히 앙심 품고 괴롭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겠어….”
유미카의 말에 사유리는 깜짝 놀랐다.
“모르는 거야. 요즘 남자들 차였다고 무슨 짓을 할지….”
“싫어… 그만해. 밥맛 떨어진단 말이야.”
사유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 미안 미안. 이제 안 할게.”
유미카는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하시모토 이야기를 해봤자 즐거운 식사 분위기만 망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적당한 다른 화제로 넘어가 다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후우… 엄청 늦어버렸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사유리가 밤길을 걷고 있었다.
유미카는 잽싸게 켄타를 불러 차를 타고 귀가했다.
사유리도 같이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켄타와 유미카는 분명 이다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낼 터였다. 그 방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리광 좀 부려봐. 쿠라이시 씨라면 당장 달려올 텐데.”
유미카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유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끔 퇴근길에 마중을 나온 적은 있었지만, 친구 앞에서 쿠라이시에게 응석 부리는 건 왠지 쑥스러운 일이었다.
밝고 유동 인구가 많은 길을 골라 왔지만, 아파트 근처는 인적이 드물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지는 사유리.
마침내 자기 아파트가 보여 안심하려던 찰나, 전신주 옆에 서 있는 사람 그림자를 발견했다.
반사적으로 몸이 굳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치한인가?
하지만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그 남자는 그저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는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묘한 위압감에 사유리는 긴장하며 남자의 곁을 지나쳐, 도망치듯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허둥지둥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뛰어든 사유리는 문을 굳게 잠그고 불을 켠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
“후우….”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사유리는 자신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술기운이 싹 달아났다.
“누, 누구지? 그 남자….”
사유리는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창밖을 살짝 엿보았다.
“없어?”
전신주 아래에 남자는 없었다.
방금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가로등 불빛만이 바닥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사유리는 안도하며 커튼을 쳤다.
나도 참… 왜 이렇게 겁을 먹었을까….
그 사람은 그냥 거기 서 있었던 것뿐일 텐데….
사유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겉옷을 벗고 TV를 켰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소음이 적막한 방 안을 채웠다.
초인종이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띵동— 하는 전자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사유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를 넘었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리자, 사유리는 마지못해 현관으로 향했다.
“네… 누구세요?”
현관문 너머로 사유리가 물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택배입니다. 쿠라이시 님께서 보내신 물건이 있어서요.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아… 저기… 내일 오시면 안 될까요?”
사유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문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밤늦게 찾아뵈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계속 부재중이셔서요…. 물건만 전달해 드리면 됩니다.”
택배 기사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던 걸지도 모른다.
외시경으로 들여다보니, 커다란 상자를 든 모자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알겠어요.”
사유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체인을 풀었다.
쿠라이시 씨가 보냈다고? 대체 뭘까….
사유리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문을 열자마자 사유리의 얼굴에 스프레이 같은 것이 뿌려진 것이다.
“아….”
의식이 멀어져가는 와중에, 사유리는 하시모토의 비웃음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온다.
등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사유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앗… 눈부셔….”
천장에는 수술용 무영등이 그녀를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심코 손을 올려 빛을 가리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사유리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몸은 단단히 고정된 듯 머리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후후후… 눈을 떴나 보네, 사유리.”
발치 쪽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유리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는 바로 하시모토였다.
“하, 하시모토 씨… 당신이야?”
양손과 양발이 묶여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유리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몇 명의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주변은 어두웠고, 사유리가 누운 곳만 무영등이 비추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나야. 사유리.”
사유리의 등줄기에 오한이 달렸다.
나… 하시모토한테 잡힌 거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사유리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살려줘… 누구든… 쿠라이시 씨….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어라, 아직 모르겠어? 이제부터 넌 내 인형이 될 거야.”
어둠 속에서 하시모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뚱뚱한 체격에 안경을 쓴 그 모습은 빈말로도 잘생겼다고 할 수 없었다.
“풀어줘. 당장 풀어! 과장님께 다 말할 거야!”
사유리는 있는 힘껏 강한 척 소리쳤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걱정 마. 넌 곧 그런 생각조차 못 하게 될 테니까. 넌 내 인형이 될 거거든.”
‘인형’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유리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이런 남자에게 인형 취급을 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여기는 말이야, 인간을 인형… 아니, 로봇으로 개조해주는 회사야. ‘휴먼 돌’사라고 하지.”
“휴먼 돌?”
그런 회사는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러시면 곤란하죠, 하시모토 씨. 저희 정체를 너무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데요.”
흰 가운을 입은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나타났다.
“죄, 죄송합니다 박사님. 하지만 사유리는 어차피 인형이 될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부주의하게 사명을 노출하는 건 곤란해서 말이죠.”
비열한 미소를 짓는 깡마른 노인은 마치 해골이 웃는 것 같았다.
“나를 인형으로 만든다고?”
“그렇습니다, 아가씨. 우리 회사는 다양한 인간에게 처치를 베풀어 로봇으로 만들어왔죠. 반항적인 인간이나 마음대로 부리고 싶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는 우리 기술은 전 세계에서 신뢰받고 있답니다.”
“그… 그럴 수가….”
사유리는 경악했다. 현대 일본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다니….
“당신도 보고 들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독불장군 사장에게 굽실거리는 직원이나, 반항적이던 자식이 갑자기 착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 그건….”
“사유리도 곧 내 말이라면 뭐든 듣는 귀여운 인형이 될 거야.”
안경 너머의 눈이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농, 농담 마세요! 보내줘! 집으로 보내달라고요!”
“보내줄게. 인형이 되면 곧바로.”
“어, 어째서 나야? 왜?”
“네가 귀여우니까. 딱 내 취향이거든.”
아아….
사유리는 너무나 기가 막혀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곳에서 이런 남자에게 인형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아… 울 것까지야 없잖아? 괜찮아, 내가 아주 예뻐해 줄 테니까.”
“살려줘… 제발… 살려주세요….”
사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저항했지만, 사지가 묶인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곧 로봇이 될 거야. 그런 감정 따위와는 무관해지겠지.”
“싫어, 싫어… 살려줘….”
사유리는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지만, 그 정도로 꿈쩍할 리 없었다.
“박사님. 빨리 사유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줘요.”
“음, 준비가 다 된 것 같군. 즉시 수술을 시작하지.”
“시, 싫어! 안 돼!”
사유리의 절규를 뒤로하고 수술 시작이 선포되었다.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천이 걷히자, 사유리의 알몸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꺄악!”
옷을 입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천이 사라지자 사유리는 수치심에 몸부림쳤다.
“우와… 멋지다, 사유리…. 사진으로 남겨둬야겠어.”
“싫어! 하지 마, 제발!”
사유리는 몸을 꼬며 가리려 했지만 헛된 저항이었다.
“시끄럽군. 어서 마취제를 먹여서 조용히 시켜.”
노인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는 사유리에게 남자들은 가차 없이 마취제를 들이밀어 의식을 잃게 했다.
그 와중에도 하시모토는 셔터를 누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영업 비밀이라서 말이죠. 이만 물러가 주시죠.”
“아, 아아. 알았어요. 내 사유리를 잘 부탁해요.”
박사의 말에 하시모토는 아쉬운 듯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시모토가 나간 것을 확인한 박사는 수술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피부를 상하지 않게 신중하게 메스를 대고 하복부를 절개했다.
인공심폐장치가 사유리의 뇌를 살려두기 위해 체액을 순환시키는 동안 수술을 끝내야 했다.
숙련된 스태프들은 묵묵히 사유리의 몸을 처치해 나갔다.
내장을 전부 들어내고, 그 자리에 수소 탱크와 연료전지 시스템 등을 매립했다.
자궁도 적출되어 인공 질이 설치되었다.
폐는 공기 중에서 산소를 빨아들이는 펌프와 필터로 교체되었다.
항문은 애널 섹스용으로 모양을 다듬고, 예쁜 가슴 속에는 예비 배터리가 내장되었다.
얼굴 가죽을 벗겨 안구는 고성능 카메라로, 코는 냄새를 맡는 센서로, 귀에는 음향 센서가 장착되었으며, 입은 오랄 섹스에 최적화된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근육은 인공 구동 장치로 대체되어, 일시적으로는 일반 남성의 몇 배에 달하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피부에는 특수한 플라스틱이 주입되었고, 체모가 전혀 없는 매끄러운 코팅 처리가 완료되었다.
10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사유리의 몸은 하나의 예술품으로 완성되었다.
사유리는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몸의 감각이 전혀 없었다.
마치 암흑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대체?
누구… 누구 없어요? 살려줘요….
『좋아, 보조 시스템 기동했다. 기본 프로그램 인스톨 준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누구지?
기억해내려 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몸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나 어떻게 된 거야?
무서워… 무서워….
『목 윗부분 기동해. 각성시킨다.』
찌릿하며 목 근처에 전기가 흐르더니, 사유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유리는 천천히 눈을 뜨려 했다.
그 순간 수많은 문자와 숫자의 나열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것을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멋대로 처리해 나갔다.
마침내 사유리의 눈에 영상이 맺혔지만, 그것은 평소 보던 풍경이 아니었다.
다양한 데이터가 영상 위에 겹쳐 표시되어 사유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꺄악!”
사유리는 비명을 질렀다.
“각성한 모양이군.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시야에 들어온 인물은 가운을 입은 그 노인이었다.
수많은 데이터가 눈앞을 가렸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이런 게 보이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공포가 사유리를 덮쳤다.
이 모든 게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네는 ‘휴먼 돌’이 된 거야. 이제 기본 프로그램만 인스톨하면 완성이지.”
“프로그램을 인스톨한다고?”
사유리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컴퓨터가 되어버렸다는 거야?
“싫어… 싫어! 돌려줘! 내 몸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몸을 비틀며 발악하고 싶었지만, 목 아래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 말게. 프로그램을 인스톨하면, 자네는 곧 휴먼 돌로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게 될 테니까.”
“그런 거 싫어!”
사유리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그럼 시작해볼까.”
박사는 사유리에게 연결된 코드를 애지중지 어루만지더니 스태프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사유리의 뇌로 방대한 문자와 숫자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싫어!”
사유리는 반광란 상태로 소리쳤지만, 유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사유리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 숫자와 문자의 나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프로그램 인스톨 중… 기본 인격을 덮어쓰기 하고 있습니다….”
사유리는 중얼거리고는 스스로 놀랐다.
인격을 덮어쓴다고?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거야?
그런… 그런 건 싫어….
“의식 개변 및 인격 개변 작업 중. 진행도 25퍼센트.”
중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프로그램이 흘러들어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 변하고 있어….
나는… 휴먼 돌이 되어버리는 거야….
하지만 사유리는 그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먼 돌이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휴먼 돌이었던 게 아닐까.
“의식 개변 및 인격 개변 작업 중. 진행도 50퍼센트. 기본 동작 프로그램 인스톨 개시.”
사유리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던 목 아래가 마치 신경이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발에서 데이터가 흘러들어온다.
문제점은… 없음.
내부 동력원은… 수소 탱크가 비어 있으므로 외부 동력을 공급받는 중.
신체 각 부위 이상 없음.
순조롭게 제어되고 있다는 사실에 사유리는 왠지 기뻐졌다.
나, 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몸을 제어한다니… 마치…
마치… 뭐지?
몸의 각 부위를 제어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
“의식 개변 및 인격 개변 작업 중. 진행도 75퍼센트. 기본 프로그램 인스톨 완료. 옵션 프로그램을 선택해 주십시오.”
사유리는 명확하게 입을 열었다.
프로그램이 자신을 재작성해 나간다. 그 희열에 사유리는 쾌감마저 느꼈다.
기분 좋아… 프로그램이 스며들고 있어….
기뻐… 나는 곧 완성되는 거야…. 빨리 완성되어 누군가를 모시고 싶어….
“좋아, 옵션은 뭐뭐지?”
“A, D, E가 선택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차차 하겠다고 하더군요.”
“돈도 별로 없는 모양이니, 뭐 최저한도인가.”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옵션 프로그램을 꺼내 세팅했다.
곧 사유리의 뇌로 프로그램이 전송되었다.
“옵션 프로그램 인스톨합니다. 옵션 프로그램 A, D, E를 인식했습니다. 인스톨을 속행하시겠습니까?”
“속행해.”
“알겠습니다.”
사유리는 스스로 뇌를 개방하고 프로그램 인스톨을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흘러들어오자 사유리는 지고의 쾌락을 느꼈다.
“의식 개변 및 인격 개변 작업 종료. 진행도 100퍼센트. 옵션 프로그램 A, D, E 인스톨 종료.”
사유리의 목소리는 자랑스러웠다.
아니, 사유리가 아니다. 지금의 그녀는 휴먼 돌 HD-0163이었다.
“좋아, 확인하겠다. 너는 누구냐?”
“네, 저는 휴먼 돌 사에서 제작한 휴먼 돌 HD-0163입니다.”
HD-0163이 된 사유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후후후… 좋아. 그럼 동력을 주지.”
박사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HD-0163의 옆구리 해치를 열고 수소 탱크를 장착했다.
휴먼 돌 사의 인형은 연료전지로 구동된다.
장착된 탱크에서 수소를 추출하고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여 물의 전기분해 역반응으로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덕분에 겉보기에는 호흡을 하는 것처럼 보여 인간답다는 평을 받았다.
전기 추출의 부산물인 물은 소변처럼 배출할 수 있어 화장실에 가는 시늉도 가능했다.
수소 탱크에서 수소가 공급되고 연료전지가 가동되자, HD-0163은 동력을 얻어 신체 각 부위가 기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기분 좋은 감각이었으며, 신체 제어 프로그램을 처리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쾌락 그 자체였다.
“이제 구속을 풀어주마. 일어나라.”
“네. 알겠습니다.”
HD-0163은 구속이 풀리자 천천히 일어났다.
아름다운 나신을 아낌없이 드러낸 채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하시모토 씨. 끝났습니다.”
십수 시간을 기다린 하시모토는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지만, 동경하던 사유리를 손에 넣기 위해 꾹 참아왔다.
그 보상을 받을 때가 온 것이다.
하시모토는 뚱뚱한 몸을 서둘러 일으켜 직원을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
“사, 사유리는 이제 내 거가 된 거죠?”
“네, 이제 그 여자는 마키하라 사유리라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자랑인 휴먼 돌, HD-0163입니다.”
“HD-0163….”
하시모토는 단순한 번호가 되어버린 사유리의 이름을 읊조렸다.
“안심하십시오. 마스터 등록이 끝나면 당신 마음대로 이름을 입력할 수 있으니까요.”
“그, 그렇죠. 아하하… 무, 무슨 이름이 좋을까.”
마치 첫 맞선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 하시모토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입니다.”
직원이 안내한 곳은 수술실과 연결된 대기실 같은 곳이었다.
“여기는요?”
“여기는 뭐, 인도장이라고나 할까요. 돌을 마스터에게 넘겨드리는 곳입니다.”
“그, 그렇군요… 이야… 두근거리네요.”
뺨을 붉게 물들인 하시모토는 진정하려는 듯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직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그곳은 평범하고 삭막한 대기실 같았지만, 중앙에 서 있는 인영을 본 순간 하시모토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긴 흑발을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서 있는 사유리, 아니 HD-0163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옥 같은 피부는 윤기가 흘러 빛났고, 검은 레오타드를 입었음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몸매 라인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이… 이게… 사유리….”
하시모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습니까? 훌륭하죠? 정말 걸작입니다, 이 아이는.”
박사가 비죽거리며 HD-0163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마스터 등록을 해야 하니까요.”
“네, 네….”
삐걱거리는 긴장된 움직임으로 하시모토가 HD-0163 앞에 섰다.
HD-0163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시모토를 응시했다.
“자, 인사드려야지.”
“네. 메모리 확인. 하시모토 유지 님으로 인식했습니다. 저는 휴먼 돌 사의 휴먼 돌, HD-0163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상냥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그, 그래… HD-0163이었지. 나, 나는 하시모토 유지야. 자, 잘 부탁해.”
어버버하며 HD-0163 앞에 서 있는 하시모토.
“HD-0163, 마스터 등록을 시작해라. 이제부터 이분이 네 소유자다.”
“알겠습니다. 하시모토 님, 양손을 제 눈앞에서 펼쳐주시겠습니까?”
“어! 이, 이렇게?”
양손을 그녀 앞에 펼치는 하시모토.
HD-0163은 잠시 그 손바닥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문, 성문, 체형 데이터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이 시간부로 HD-0163은 하시모토 유지 님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하시모토는 날아갈 듯 기뻤다. 드디어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 기뻐… 사유리!”
하시모토가 소리쳤지만, HD-0163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네임 등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유리라는 것이 제 이름입니까? 소체 시절 그런 이름이었다고 메모리되어 있습니다만.”
“으… 그, 그렇지… 넌 이제 내 거니까 사유리라고 이름 지어줄게. 오늘부터 넌 HD-0163 사유리야. 알겠지?”
“네. 네임 등록 완료했습니다. 저는 HD-0163 사유리입니다.”
“후, 후후후후… 하하하하하!”
사유리의 대답에 하시모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좋군요. 이제 HD-0163은 당신 것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계약을 확인해볼까요.”
직원이 계약서를 하시모토에게 보여주었다.
“소체의 장기는 전부 저희 쪽에서 인수하여 매매해도 괜찮으시죠?”
“네, 좋습니다.”
하시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한 명은 언제쯤 들어오나요?”
“빠르면 일주일 정도면….”
“그쪽 장기는 건강상 문제없겠죠?”
“음~ 아마 괜찮을 거예요. 꼼꼼히 조사했으니까요.”
직원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부분은 저희도 조사했습니다.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죠.”
“뭐야, 조사까지 했어요?”
“물론이죠. 워낙 고가니까 지불 능력은 확실히 확인해야 하거든요.”
“아, 네….”
확실히 맞는 말이다. 휴먼 돌은 비싸다.
앞으로 사유리를 유지하는 데도 돈이 든다.
사유리의 동력원인 수소는 휴먼 돌 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키하라 사유리가 회사에 나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다.
친구인 이케가미 유미카의 말에 따르면, 결근 전날 같이 술을 마셨지만 특별한 기색은 없었다고 한다.
걱정이 된 쿠라이시는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몇 번을 걸어도 사유리는 받지 않았다.
“사유리…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쿠라이시는 몇 번이나 사유리의 아파트에 가보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고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사유리….”
경찰에 실종 신고도 냈지만, 몸값을 요구하는 연락도 없어서 진지하게 수사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과 동료들도 사유리의 행방을 몰랐다.
쿠라이시는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오늘도 의욕 없는 상태로 쿠라이시는 업무를 이어갔다.
외근 중에도 사유리 걱정뿐이었다.
“응?”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 메일인가.”
쿠라이시는 휴대폰을 꺼내 메일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사유리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쿠라이시 씨. 사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을 좀 비웠어요. 드릴 말씀이 있으니 오늘 밤 8시에 저희 집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할게요.』
사유리의 메일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8시군, 알았어.”
쿠라이시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업무로 복귀했다.
밤 8시.
쿠라이시는 사유리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사유리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한 쿠라이시는 계단을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네, 누구세요?”
문 안쪽에서 그리운 사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쿠라이시입니다. 문 열어주세요, 사유리 씨.”
“네, 잠시만요.”
그 말과 함께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 문이 열리고 사유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건 쿠라이시가 알던 사유리가 아니었다.
사유리는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 레오타드 차림으로 서 있었다.
게다가 방 안인데도 검은 가죽 부츠를 신고 긴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사, 사유리 씨?”
“메모리 대조. 쿠라이시 카즈오 확인. 포획합니다.”
쿠라이시는 갑자기 엄청난 힘에 이끌려 집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으아악!”
손쓸 틈도 없이 쿠라이시는 사유리에 의해 제압당했다.
“후후후… 사유리, 그 자식을 꽁꽁 묶어버려. 꼼짝도 못 하게.”
방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유지 님.”
사유리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쿠라이시는 저항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쿠라이시는 의자에 밧줄로 묶이고 말았다.
“유지 님.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유리를 쿠라이시는 영문을 모른 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반질반질하니 다소 부자연스러운 광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사유리 씨,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게 무슨 장난이야!”
하지만 사유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쿠라이시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사유리 씨!”
“후후후후… 소용없어. 그녀는 이제 내 거거든. 너 따위한테 대답 안 해.”
“뭐?”
쿠라이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같은 과의 하시모토가 서 있었다.
“하시모토! 네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는 이제 내 휴먼 돌이니까. 나만의 것이라고. 그렇지, 사유리?”
비열한 웃음을 짓는 하시모토에게 사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유지 님의 것입니다.”
“사, 사유리 씨….”
“이봐, 이 녀석한테 네 정체를 똑똑히 알려줘야지.”
하시모토가 조금 화난 듯 사유리에게 명령했다.
“네, 죄송합니다 유지 님. 쿠라이시 카즈오에게 알립니다. 저는 하시모토 유지 님이 소유한 휴먼 돌 사의 휴먼 돌, HD-0163 사유리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무표정하게 말하는 사유리의 모습에 쿠라이시는 경악했다.
“인형? 인형이라고? 이게?”
“그래. 사유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인형으로 만들어줬지.”
“이, 이런 미친 짓을….”
뒷짐 결박당한 쿠라이시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자, 휴먼 돌 사 사람들이 데리러 오기 전에, 나는 사유리랑 좀 즐겨야겠어.”
“네, 네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리 와, 사유리.”
“네, 유지 님.”
사유리는 쿠라이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하시모토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시모토는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 위에 누웠다.
“사, 사유리 씨!”
쿠라이시는 분노와 절망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 사유리. 나를 봉사해주겠니? 평소처럼 핥아줘.”
“알겠습니다 유지 님. 옵션 프로그램 D를 작동합니다. 펠라치오 모드 가동.”
사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누운 하시모토의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유지 님의 페니스… 초기 상태 확인. 개시합니다.”
사유리는 부드럽게 하시모토의 물건을 손에 쥐고, 살며시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오오… 좋아.”
하시모토가 절로 신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발기 개시 확인. 속행.”
낼름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액을 묻히고, 요도 끝에서 귀두, 그리고 다시 뿌리 쪽으로 사유리는 혀를 움직였다.
“오오, 오오… 으음….”
챱… 츕… 할짝… 츄릅….
사유리의 혀 놀림은 예술적이었고, 쿠라이시는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사유리는 끝부분부터 감싸 쥐듯 입에 머금고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엄청난 쾌감에 하시모토는 벌써 허리를 들썩이며 사유리의 리듬에 맞춰 절정으로 치달았다.
“으윽, 나, 나온다! 나온다아!”
그 말과 함께 하시모토는 사유리의 입안에 백탁액을 쏟아냈다.
“음… 읍… 꿀꺽.”
사유리는 표정 변화 없이 그것을 전부 삼키더니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유지 님의 정액 방출 확인. 맛, 양 모두 오차 범위 내. 맛있습니다, 유지 님.”
“아아… 나도 기분 좋았어. 사유리는 펠라치오를 참 잘하네.”
“감사합니다 유지 님. 유지 님의 지도 덕분입니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쿠라이시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눈앞에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정액을 마시는 꼴을 보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다.
“후후후… 이제 알겠어, 쿠라이시 씨? 사유리는 이제 내 거라는 걸.”
“네놈… 용서 못 해….”
“후후후… 글쎄다…. 사유리, 지금 몇 시지?”
“네. 20시 34분 15초입니다. 유지 님.”
사유리는 시계도 보지 않고 즉답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사유리, 연락해봐.”
“알겠습니다, 유지 님.”
사유리는 전화를 걸어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돌아왔다.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유지 님.”
“그래. 이걸로 잔금 처리는 거의 끝나겠군.”
하시모토가 비열한 웃음을 띄웠다.
“잔금이라니?”
“아, 그러고 보니 자포자기로 술 같은 거 마신 건 아니지? 간이 상하면 곤란하거든.”
“설마… 네놈….”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사유리가 응대하자, 방 안으로 택배 기사 복장을 한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수고하십니다. 이쪽인가요?”
“네, 인계 부탁드립니다.”
사유리가 쿠라이시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 그만둬! 누구 없어요!”
“조용히 하시죠.”
남자 중 한 명이 스프레이를 뿌리자, 쿠라이시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럼 데려가겠습니다. 아, 이건 수소 보틀입니다. 여기 두고 갈게요.”
남자는 보틀 두 개를 내려놓고, 축 늘어진 쿠라이시를 결박에서 풀어 짊어진 채 방을 나갔다.
“후후후… 이걸로 됐어. 이제 저 녀석 소지품만 처분하면….”
하시모토는 사유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자, 이제 여기 볼일은 끝났어. 우리 집으로 가자.”
“네, 유지 님.”
사유리는 하시모토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해 보이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