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미상 (아카라이브 최면세뇌 채널)
군살이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 붙어있을 뿐 착하고, 외모도 좋고, 성적도 중위권 이상인데 선천적으로 소심하고 자신감이 심히 떨어져서 늘 반 뒷자리에서 홀로 엎드려있는 여고생 A. 유일한 친구는 길가의 고양이와 자기같은 것한테도(A피셜) 말을 걸어주는, 학급 카스트 상위 1퍼에 존재하는 반장이자 내추럴 본 인싸 여고생 B뿐. A는 오늘도 체육시간에 아프다고 대충 핑계를 댄 뒤 보건실 침대에서 한숨을 쉬며 자기의 소심함을 탓하고 있었어. 그런데 보건실에 체육부장이기도 한 B가 귀신같이 찾아와서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A는 화들짝 놀라, 결국 B에게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자초지종을 털어놓아.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같이 무슨 활동을 하기가 너무 두려웠고, 그런 자신이 너무 싫고 후회스럽고, 바꾸고 싶은데, 어쩔 도리가 없어 매일 이렇게 도망만 친다고. 이런 자기 모습도 죽도록 밉다고.
잠시 고민하던 B는 활짝 웃으며 자기가 다니던 '자신감 클리닉'을 A에게 소개시켜줌. 자기도 원래는 왕따와 빵셔틀을 밥 먹듯이 당하던 아싸오브아싸였는데, 그 '클리닉'에 다니고 나서 자기 의견을 당당히 표출할 수 있게 되고, 왕따는 커녕 새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게 되았다며 말이야. 아싸시절 인증샷까지 보여주며 '클리닉'을 강력 추천하는 B를 보며 혹하는 A였지만, 과연 이런 나에게도 '클리닉'이 효과가 있을지 망설이다가, 자기 앞에서 활짝 웃는 B의 호의를 무시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덜컥 이번 주말 '클리닉'의 예약을 잡음.
청소년 상담 센터나 무슨 합기도 도장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던 A의 예상과는 달리 '클리닉'의 내부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하얗고 조용한 병원이었음. 소름끼치게 새하얀 내부에서 'A양, 들어오세요.' 라는, 인간과 로봇 사이 그 어딘가의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하는 음성이 들려오자 A는 겁을 먹고, 원래 들어왔던 곳으로 나오려고 손을 더듬거렸지만, '클리닉'의 문은 이미 굳게 잠긴 상황. 패닉에 빠져 문을 쾅쾅 두드리는 A 위로 수면제 가스가 서서히 살포되고, 이내 주저앉아 잠이 든 A를 조용히 주사하는 건 천장에서 나온 무감정한 CCTV와 날카로운 기계 팔들이었어.
< 모델 HD-MJK0047, 각성 코드 인스톨 >
전자음성과 함께 새하얀 '클리닉'에서 눈을 뜬 A. 하지만 몸을 움작일 수 없었고, 아니, 애초에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감각이 사라진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어.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지를 수 없어 공포감이 계속해서 가중되는 A에게, 머릿속에서 무언가, 소리가 울리는 것이 느껴졌어.
'일어서십시오'
A는 '목소리'의 말대로 일어섰어. 왜 갑자기 몸이 움직여졌는지, '목소리'의 근원은 어딘지에 대한 의문은 떠오르지 않은 채... '목소리'는 공허한 눈의 A에게 '제자리뜀을 하십시오', '팔굽혀펴기 10회를 하십시오', '스쿼트 5회를 하십시오'등의 말을 계속 했고, '1+1은?' '우리나라의 수도는?' 같은 기초적인 문제들부터 '파이의 소수점 32번째 자리는?' 'adrenocorticotropic의 뜻은?' 같은 일반적인 여고생이라면 절대 알지 못할 문제들까지 A의 머릿속에 던지기 시작했어.
A는 그 모든 과제와 문제를 해결했어. 마치 머릿속에 답이 나오는 버튼이 있고, 그걸 자신이 무심하게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꾸욱, 꾹. '목소리'의 명령에 따라 A가 버튼을 누를수록, A 마음속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 또한 은은하게 퍼져갔어. 자신이 '목소리'의 부탁을 해냈다는 만족감,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황홀감 섞인 자신감이 A의 머릿속을 안개처럼 자욱히 메우기 시작했어. 더, 더, A는 '목소리'의 '명령'을 수행하여, 더욱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득 첬어.
'정말 잘 해냈어요.'
A가 제시된 재료로 한식 기본 6첩반상을 요리해내고 나서 '목소리'가 A에게 한 말. A는 자신의 존재 의의가 완성되는 것과도 같은 쾌감과 성취감에 휩싸였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고, A의 앞에는 남성의 잔뜩 발기한 성기를 비롯한 신체 구조를 닮은 실리콘 모형이 준비되어 있었어.
'HD-MJK0047, 성교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세요.'
"네! 실행합니다!!!"
A에게서 평소 들을 수 없었던 힘찬 목소리와 함께 A는 한 마리 짐승처럼 실리콘 모형을 향해 달려들었어. 섹스는커녕 남성과 말조차도 잘 섞지 못하던 소심한 소녀가, '암컷'의 표정을 지으며 입으로, 가슴으로, 겨드랑이로, 발로, 그리고 보지로 가짜 남성을 철저히 유린하기 시작했어. A의 비인간적인 혀놀림과 허리놀림에도 실리콘 인형은 당연히 반응이 없었고, A는 쾌락에 집중했어. 결코 자신이 난생 처음 겪어보는 성교에서 나오는 쾌락이 아닌, 마치 어릴 적 첫 심부름을 끝내고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따스함, 그것의 몆 천 배는 되는 가치 충족감. '목소리'님이, 인간님이, 주인님이 자신에게 내려주신 명령을 완수했을 때의 그 자신감.
하아, 하아. 폐까지 진즉에 배터리로 교체되었지만 거친 숨을 내쉬는 A, 아니, 인간을 소재로 만들어진 '휴먼 돌'은, 흐르는 가짜 침과 애액을 훔치며 허공을 향해 말했어.
" '명령', 완수했습니다하...♡"
'완벽했어요. HD-MJK0035가 정말 좋은 소체를 가져다 줬군요. HD-MJK0047,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 아니, '본 기체'의 존재 이유는?'
"네헷...♡!!! 휴먼 돌 모델 JK 모델번호 0047! 저의 존재 이유는!! 무가치한 인간으로서의 저의 존재를 소거하고!! 인간과 주인님께 복종하며 그 어떤 명령이라도 감사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제 어미를 각인한 새끼처럼,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처럼 미소를 지으며 경례하는 A. 선행 모델 B와 함께 비밀 앱으로 자신들을 호출하는 '주인님'들께, 아니, 설령 '주인님'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섬기고 봉사해야 마땅한 인간님들의 명령을 받고, 이행할 생각에, A의 빈 카메라 아이는 그 어떤 때보다 '자신감 있게' 빛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