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공주(人形姫)의 단골이자 기계화 장르에 조예가 깊은 이치다 유타카 씨의 『메탈 리얼리티』입니다.
이 작품은 karma 씨의 「메탈 드림」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 시간축의 차이에 따른 싱크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나노머신에 의해 서서히 기계화되어 가는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
제1화
“시노사카 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경비원이 가운을 입은 젊은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연구소 경비 해제해 줘.”
“네, 네. 그나저나 오늘부터 시노사카 씨가 새 소장님이시라니.”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한 시노사카 유카는, 이 회사 연구소에 배정된 지 불과 1년, 24세라는 이례적인 나이에 소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냥 평소처럼 유카라고 불러도 돼.”
유카는 경비원에게 가볍게 답하고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이곳이 오늘부터 유카가 일할 공간. 소장실과 연구실을 겸한 방이다.
연구실에 들어선 유카는 책상 위의 컴퓨터를 부팅하고, 손에 든 리모컨 스위치를 올렸다.
위잉— 하는 미세한 구동음과 함께 벽에 고정되어 있던 여성형 로봇의 눈이 떠졌다.
“삑! 시제 37호, 식별 코드 LISA, 기동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유카 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체구가 작은 유카보다 조금 더 키가 크고, 뽀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 투명한 눈동자와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로봇이었다.
하지만 귀 부분에 헤드폰 같은 커버가 씌워져 안테나가 뻗어 있고, 말을 할 때마다 금발을 묶은 은색 헤어밴드의 일부가 점멸하는 모습이 그녀가 인간이 아닌 기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목 주위에는 은색 링이 채워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메탈릭 그레이 장갑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관절 마디마디의 이음새만 제외하면 마치 회색 웨트슈트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카는 인사과에서 받은 발령장을 꺼내 보았다.
행방불명된 전임 소장의 연구를 인계받아 이 로봇을 완성시킨 것, 그것이 유카가 소장으로 발탁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일주일 전 오후, 유카는 소장 세키구치 리사와 함께 P4 실험실에 있었다.
리사는 유카의 대학 선배로 28세였다. 같은 세미나에서 졸업 연구 데이터 정리를 도와준 인연으로 친해졌고, 같은 회사의 같은 연구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리사의 연구 테마는 나노머신을 이용한 생물 세포 시뮬레이션.
생물의 유전자를 읽어 들인 나노머신이 세포와 똑같이 동작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장애인을 위한 의수나 의족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기에, 회사 측에선 예산을 거의 무제한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P4 연구실은 위험한 세균 등을 다루기 위한 격리 시설이다.
리사가 다루는 나노머신도 세균과 동일한 위험 등급으로 지정되어 있어, 실험을 하려면 반드시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그리고 소장인 리사 외에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조수였던 유카뿐이었다.
“유카, 샘플 기동할 테니까 데이터 좀 뽑아줘.”
“네, 선배.”
리사가 스위치를 켜자 유리 케이스 안의 금속 덩어리가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작은 쥐 모양으로 변했다.
“시제 36호 기동… 자, 이번엔 좀 잘 돼야 할 텐데. 또 실패하면 전무한테 보고하러 가야 하잖아. 그 영감탱이, 말 더럽게 많단 말이지.”
“선배, 이번엔 분명 성공할 거예요.”
“외부에서 계속 명령을 주면 형태는 유지되는데 말이야. 자율적으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거든. 제발 좀….”
말을 마친 리사가 유리 케이스에 연결된 케이블을 뽑았다.
케이스 안의 금속 쥐는 잠시 주위를 배회하는 듯하더니, 이내 형체가 무너지며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한 번만 더 해보자.”
“네, 선배.”
유카가 케이블을 다시 연결하려던 찰나였다.
“앗, 유카! 그건 고압 전원…!”
바지직—!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 케이스 안에서 불꽃이 튀었다.
순식간에 케이스 내부가 뿌옇게 흐려지더니, 안에 있던 금속은 고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뭐, 어쩔 수 없지. 아, 잠깐만. 이거 혹시…?”
리사는 약숟가락으로 가루를 조심스럽게 떠서 전자현미경에 올렸다.
“대박. 방금 그 충격으로 자율 구동하는 나노머신이 만들어졌어. 이것 봐.”
“뭔가 곰팡이 같네요.”
“균류는 가장 원시적인 생물이니까. 처음부터 쥐 같은 걸로 하려니까 실패했던 거야.”
한참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리사가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더니, 갑자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카, 당장 여기서 나가.”
“네? 왜 그러세요?”
“나, 오염됐어.”
리사가 왼손을 들어 보였다. 새끼손가락 끝에 희미하게 은색 곰팡이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케이스 안의 샘플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샘플을 현미경으로 옮길 때 실수한 모양이야.”
“하지만 선배!”
“너까지 오염되면 누가 밖에 이 사실을 알려? 빨리 가!”
리사는 유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유카는 P3와 P4를 가르는 에어 커튼을 통과했다.
그걸 확인한 리사가 벽에 붙은 커다란 빨간색 비상 버튼을 누르자, 유카의 등 뒤로 강철 셔터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미립자 및 세균 체크를 거쳐 P3 구역으로 돌아온 유카는 P4로 연결되는 직통 전화를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카?』
“선배, 괜찮으세요?”
『아직까지는. 근데 이거 진짜 대단해. 이 나노머신, 금속이든 유기물이든 가리지 않고 다 먹어치우면서 증식하는 것 같아. 근데 다이아몬드는 못 먹나 봐.』
“다이아몬드요?”
『응, 내 반지. 왼손은 거의 다 먹혔어. 플래티넘 받침대도 너덜너덜해졌고. 팔꿈치 아래는 완전히 나노머신으로 대체된 것 같아. 겉보기엔 금속인데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 세포 시뮬레이션 기능은 살아있나 봐. 감각이 아예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엄청 예민한 것 같기도 하고… 기분 되게 이상해.』
『이런 위험한 게 밖으로 새 나가면 절대 안 돼. 지금부터 나노머신 활동을 멈추도록 프로그램을 다시 짜볼 건데, 만약 안 되면 이 시설째로 소각해 버려.』
“나노머신만 멈추면 선배는 살 수 있는 거죠?”
『그건 무리야. 이미 내 세포 상당수가 나노머신으로 바뀌어버려서, 활동이 멈추면 난 확실히 죽어.』
“말도 안 돼요,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글쎄… 일단 프로그램부터… 앗!』
“왜 그러세요?!”
『프로그램 짜려고 컴퓨터에 손을 댔더니 순식간에 나노머신이 침투해서 먹통이 돼버렸어. 코딩도 못 하게 하려나 봐.』
리사가 자포자기한 듯 말했다.
『어라, 나노머신 움직임이 변했어. 생체 세포 시뮬레이션을 멈추고 뭔가를 형상화하려는 것 같아. 방금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던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
“뭔가라니요? 그게 뭔데요?”
『나도 몰라. 근데 곰팡이 같던 나노머신들이 전부 내 몸으로 모여들고 있어. 방 안의 미립자 센서 수치가 떨어지네. 일단 오염 확산은 멈춘 것 같아. 몸이 완전히 안 움직여… 숨이… 가… 빠……』
“선배! 선배!!”
유카는 수화기에 대고 울부짖었지만,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따르릉—
몇 시간 뒤, 울다 지쳐 잠들었던 유카는 전화벨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유카, 들려?』
수화기 너머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무사하신 거예요? 숨이 가쁘다고 하셔서….”
『이제 괜찮아. 지금의 난 숨을 쉬지 않으니까.』
“네…?”
리사의 말에 유카는 할 말을 잃었다.
『몸은 완전히 딱딱해졌는데, 관절에 이음새가 생기더니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노머신 동작이 변한 이유를 알았어. 아까 먹어치운 컴퓨터 메모리에 있던 로봇 설계도를 읽어 들여서 구동하고 있는 거야. 근데 움직임이 너무 뻣뻣해. 구동부 쪽은 나중에 따로 손을 봐야 할 것 같아. 고경도 합금 재질이라 메인터넌스 해치(점검구)를 만들도록 프로그래밍해야겠어.』
“그거 제가 설계한 휴머노이드 도면이잖아요. 아직 미완성이라 나중에 고치려고 했던 건데….”
『머리카락이 금색 금속 섬유로 변하고 있어. 귀에선 안테나가 돋아나고…. 이거 유카 네 취향이니?』
“네, 예전에 TV에서 본 히어로 이미지예요. 이상한가요?”
『아니, 센스 있네. 근데 로봇한테 머리카락은 필요 없고, 이 안테나도 좀 더 실용적인 방… 치치직… 음성 회로 전환 완료. 아, 아. 아에이오우…. 스피커로 바뀌어도 목소리는 거의 그대로네.』
『방금 눈이 카메라로 대체됐어. 해상도가 꽤 낮네. 100만 화소 정도 되려나? 개량할 여지가 있겠어.』
“어떻게 선배는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요?”
『글쎄. 머릿속이 점점 맑아지면서 기억이 정리되고 있어. 그래, 불안에 떠는 건 불완전한 인간의 뇌가 하는 짓이지. 사고 속도가 점점 빨라져. 아주… 기분이… 좋아…….』
“정신 차리세요!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당신은 시노사카 유카. 사원 번호 4071211. 나의 부하. 대학 후배. 처음 만난 건 5년 전 5월 25일 13시 38분입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리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기괴했다.
“선배?”
『내 기억에 오류가 있습니까?』
“오류는… 없지만, 이상해요.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외부 지시에 따라 반응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설마, 선배가 선배가 아니게 된다는….”
『당신의 추측은 틀렸습니다. 내가 당신의 선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나랑 같이 놀아주지도,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 추측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세키구치 리사의 의식을 유지하기가 곤란해졌습니다. 의식이 남아있는 동안 나노머신을 제어해 리모컨을 만들었습니 다. 신뢰할 수 있는 유카… 에게 맡깁니다. 연구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기억은 유지되고 있으므로, 나를 사용함으롯서 연구가 진척될 것입니 다.』
“선배—!!”
『센서에 미립자 반응 없음. 나노머신 오염 회복되었습니 다. 지금부터 P4 연구실의 락을 해제합니 다. ……안녕… 유카… 야……』
유카는 수화기를 움켜쥐고 오열했다.
다음 날, 유카는 본사 중역실에서 나노머신 사고 내용과 리사가 기억은 남았으되 의지는 없는 로봇으로 변해버린 사실 등을 보고했다.
“전무님,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세키구치 군은 연구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네.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의 예우를 할 생각이야.”
전무는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하지만 이 사고는 비밀로 해야 하네. 이 일이 새 나가면 나노머신 취급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어. 사고는 없었던 거야. 세키구치 군은 행방불명된 것으로 처리하겠네.”
“그럴 수가!”
유카가 전무에게 따져 물었다.
“그럼 선배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건 자네가 개발한 로봇이야. 자네를 그 로봇을 개발한 공로로 소장 승진시키도록 건의해 두었네. 자네는 행방불명된 전임 소장의 뒤를 이어 나노머신 연구를 더 진행해 주게. 신입이지만 우수한 기술자가 있으니 자네 부하로 붙여주지.”
“농담 마세요! 전 이 사실을 언론에 다 터뜨릴 거예요!”
유카가 격렬하게 대들었다.
“진정하게. 이건 대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 내 생각엔 나노머신에 의해 변한 것이라면, 나노머신을 통해 다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걸 연구해 보고 싶지는 않은가?”
유카는 혼란스러워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때 책상 위의 전화기가 짧게 울렸다.
“미안하지만 이만 나가보게. 자네 처우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잘 생각해보게나. 절대로 외부로 발설하지 말고.”
유카가 방을 나가자 전무가 수화기를 들었다.
“네. 연구는 계속 시킬 겁니다. 장애인용이라는 명분도 필요 없게 됐으니, 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예, 진짜 목적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물론 사장님이나 다른 임원들에게도 극비로 진행할 겁니다.”
전무는 전화를 끊고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유카는 작업을 멈추고 로봇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선배, 제가 꼭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기다려 주세요.”
“유카 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하아— 갈 길이 머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켜는 유카의 왼손, 새끼손가락 손톱이 천장의 형광등 빛을 받아 은색으로 번뜩였다.
제1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