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찍으려고 기계로 개조당한 어린 계집애 ‘아오’,
그리고 제 발로 비인간형 로봇이 되길 선택해선 자기 전뇌를 망가뜨려 대는 ‘엑셀’.
소유주인 잭의 시선으로, 인간도 로봇도 아닌 소녀들의 이야기를 기괴하고 잔혹하게 그려냅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주인장 크레이그가 슥 다가온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잭. 너한테 꼭 팔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좀 보고 가라.”
“뭐야, 갑자기.”
“끝내주는 물건이 들어왔거든……. 인상 쓰지 마, 장담하는데 무조건 마음에 들 거야.”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크레이그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안에는 겉으로 내놓지 않은 고가의 기기나 로봇들이 정갈하게 수납되어 있었다.
“팔고 싶다는 게 이 녀석이야. 귀엽지?”
내밀어진 것은 고등학생이나 20대 정도의 체격으로 디자인된 로봇. 크레이그 말대로 얼굴은 꽤나 앙증맞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외장재는 합성섬유는커녕 카본조차 아닌, 생짜 플라스틱이었다.
“그냥 흔해 빠진 하비 로봇 같은데, 대체 어디가 끝내준다는 거야?”
“여기지.”
로봇의 머리 부분을 열자, 그 안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뇌가 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 뒤로 빠졌다.
“설마 이 녀석.”
크레이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로봇을 쓰다듬었다.
“그래, 원래 인간이었어. xx 살짜리 아주 귀여운 애였는데, 부모가 팔아넘겼지. 개조 영상 촬영용 제물로 쓰인 거야. 영상 찍힌 뒤에는 로봇 창녀로 굴려지면서 수십 명의 남자들한테 안겼고.”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 어린 나이에 억지로 기계화되어, 그 작은 기계 몸뚱이로 남자들의 욕망을 받아내 왔다니……. 이거 꽤나 당기는데.
“이 얼굴, 생전 그대로인가?”
“어. 개조 영상에 나오는 생전 모습 그대로야.”
“보호 조치는 안 됐나?”
“인격이 결여됐다고 판단돼서 사망 처리됐거든. 매장될 예정이었는데, 해체업자가 돈독이 올라서 빼돌린 게 우리 가게까지 흘러 들어온 거지.”
로봇의 손을 잡았다. 플라스틱 손, 부서질 듯한 감촉. 비용 절감을 위해 로봇 외장에 수지를 쓰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수지도 종류가 많다. 만져보니 알겠다. 이건 염화비닐조차 아니다. 스티롤 수지, 싸구려 프라모델이랑 똑같은 재질이다.
“왜 이렇게 약한 소재를 쓴 거지? 유흥업소에서 굴렀다며. 꽉 안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데.”
“사창가에선 파괴 플레이를 시키려면 약하고 싼 소재가 더 낫거든.”
부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는 건가. 다시금 소녀를 살폈다. 부품은 전부 표준 규격이라 수리하기 편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조사나 생산 시기가 제각각이라, 그냥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충 조율되어 있었다. 덩치가 작으니 망정이지, 성인 골격으로 이따위 짓을 했다간 걷는 것만으로도 박살 났을 거다.
“소지한 거 들키면 바로 감옥행이겠군. 왜 나한테 권했지?”
“넌 입이 무겁잖아. 게다가 로리 취향에 새디스트이기도 하고.”
“악덕 상인 놈. 얼마냐?”
◆◆◆
개조 영상은 소녀를 발가벗기는 장면부터 시작됐다.
“싫어! 싫어어!”
어른들에게 붙잡힌 채 소녀가 절규한다. 알몸이 되고, 제압당하고, 약물로 강제 수면 상태에 빠진다. 생체 조직을 재활용하기 위해 뇌와 척수, 두개골만 깔끔하게 절제되었고, 남은 몸뚱이는 스트레처에 실려 나갔다. 적출된 뇌와 척수는 캡슐에 담겨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 처리가 된다. 썩지 않게 가공된 뒤 전극과 회로가 이식된다. 두개골은 정밀 분석되어 인간 시절의 얼굴로 재현되었다.
뇌와 척수는 금속과 플라스틱에 뒤덮여 하나의 부품이 되었다. 이미 조립된 몸체에 수납되고 배선이 연결된다. 신호를 내보내는지, 연결될 때마다 기계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새로운 몸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지, 뇌에 장착된 램프가 격렬하게 점멸했다.
“삐삐, 삐, 삐…….”
인간의 목소리라기엔 인공적이고, 기계어라기엔 모호한, 인간과 기계의 중간 어디쯤 있는 듯한 목소리. 스피커라는 목구멍을 얻은 소녀가 내는 소리인지, 외부 AI가 내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소유하고 있는 마스코트형 로봇 엑셀을 불렀다.
“엑셀,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
“경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즉시 정지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엑셀, 옆에 앉아서 통역해 줘.”
“네, 마스터.”
기계 몸이 된 지 얼마 안 된 소녀는 자발적인 발언을 못 하는지, 장착된 회로가 내뱉는 시스템 로그만 입 밖으로 냈다. 조립은 계속되었고, 소녀의 모습은 내가 본 그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외형으로 변해갔다. 조립이 끝나자 화면이 암전됐다. 소녀의 의식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고, 작업대 위에 눕혀진 소녀가 비쳤다. 여전히 말은 못 하고 기계어만 내뱉고 있었다.
“삐삐삐삐삐, 삐삐, 삐삐삐, 삐…….”
“용서해 줘, 미안해, 괴로워, 살려줘……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엑셀, 소녀의 의식이 돌아온 건가?”
“문맥에서 지성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의식 유무는 불분명합니다.”
“그래.”
하지만 길들이기 운전이 끝나고 컨디션이 올라올 즈음이다. 의식을 되찾았을지도 모른다.
영상은 계속되었고, 소녀의 두뇌에 케이블이 연결됐다. 화면 너머로는 무슨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소녀가 일어났다. 모터 소리와 함께 뽀득뽀득, 플라스틱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 삐, 아, 아.”
기계어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전환된다. 소녀는 영상 밖 인간이 시키는 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나느으, 아오. 로봇, 이에요.”
“네가 만들어진 목적은 뭐지?”
아오라는 로봇에게 명령하는 건 가공된 거친 목소리였다. 기계음인지, 사람 목소리를 변조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진 거느으,” 질문에 아오가 천천히 답한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예요.”
“너는 몇 살이지?”
“xx 살이에요…… 삐기익!” 아오에게 외부 프로그램 수정이 가해진다. “제조된 지, 3일째예요.”
“너는 인간인가?”
“네, 인간이에요…… 으아아!”
다시 외부 수정.
“아오는, 인간을 바탕으로 한 로보, 트, 아니, 아아아아악!
아오의 두 손이 올라간다. 머리를 감싸려는 것 같았다.
“아오는, 인가니, 아니에여.”
몸 구석구석이 떨리고 있었다.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다. 너무 난폭한 수정이 뇌의 허용량을 초과했다는 신호……. 개조 솜씨가 형편없군. 내장 회로에 사고 수정 기능을 안 넣은 건가? 이따위 짓을 하면 멀쩡한 뇌라도 장애가 남는다. 인간성이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질문하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역시 사람 목소리를 변조한 모양이다.
“아오 양, 가족은 누구지?”
“아오 가족으으, 는…… 뉴우우우우! 어, 업, 써요. 아오는 로봇이니까, 가족, 없어요.”
“엄마는 누구지?”
“엄마느으으으으으! 삐삐, 삐삐삐, 삐이!”
변조가 심각해진다.
“업써요, 아오는, 로봇, 이니까.”
“집은 어디니?”
“집은, 집…… 삐삐삐삐삐이! 어, 없어요. 로봇한테 집은, 없어요.”
문답이 이어지자 소녀의 반응에 변화가 보였다.
“아오 양은 누가 좋아?”
“아오는 로봇이라서, 좋아한다는 건 없어요.”
자신을 로봇이라 정의하고, 질문에 대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질문은 나빴다.
“으아아아! 뉴웃! 우뉴우우우!”
질문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오 양은 로봇이니까 인간을 좋아해. 그렇지?”
“삐삐, 삐…… 네, 아오는, 인간님을 좋아하고, 삐삐삐삐, 삐이이이! 삐, 가…… 인간님을, 좋아, 해요.”
이런 무리한 짓을 당하고도 뇌가 잘도 버틴다. 어린애 뇌는 성인보다 경험이 적어서 용량이 크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무식한 짓이다.
기억 수정 작업이 끝나고, 개조 영상은 인간과의 섹스로 넘어갔다. 흥미를 잃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스터, 영상은 안 보십니까?”
“어, 됐어.”
“그럼 옆에서 통역하는 걸 종료할까요?”
“종료해.”
“알겠습니다.”
엑셀…… BD-XL의 로봇다운 대응이 기분 좋다. 본인도 로봇처럼 구는 걸 편안해하는 모양이다.
안 그랬으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통역 따위 싫어했겠지.
엑셀처럼 스스로 인간성을 지워나가면, 원래 인간이었더라도 완전한 로봇이 되는 게 가능한 모양이다.
◆
“엑셀, 서포트 부탁해.”
“네, 마스터.”
충전을 마친 아오의 첫 기동. 폭주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엑셀이 제어하게 한다.
플라스틱이라 그런지 모터 소리가 꽤 크게 울린다. 눈을 뜨고,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코드네임 아오, 기동했습니다. 마스터 등록이 리셋되어 있습니다. 등록을 진행해 주십시오.”
기계적인 목소리, 시스템 음성이겠지.
“엑셀, 아오의 마스터 등록 가능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시스템 포맷 분석이 덜 끝났습니다.”
“준비되면 알려줘. 아오, 지금 상태로 인간이랑 대화 가능해?”
“네. 아오는 인간님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입 모양과 음성이 맞지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조율조차 안 되어 있다니.
“마스터, 등록 준비됐습니다. 망막, 성문, 지문으로 등록 가능합니다.”
“바로 진행하지. 엑셀, 부탁해.”
엑셀의 조작에 아오가 일어서서 두 팔을 벌렸다.
“마스터, 아오를 정면에서 끌어안고 말을 걸어주십시오.”
나는 쭈그려 앉아 아오의 작은 손을 잡고, 눈동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잭 레바프. 아오의 새로운 마스터다.”
아오가 미세하게 떨더니 미소 지었다.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마스터, 명령을.”
◆◆◆
나는 아오에게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 ‘실내에서 지낼 것’, ‘충전량을 20% 이상 유지할 것’만 명령하고 관찰했다.
처음엔 끈질기게 “명령 없으십니까?”라고 묻던 아오였지만, 이틀 사흘 지나자 더는 물으러 오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집을 비웠다. 출장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오가 엑셀과 마주 보고 있었다.
“삐삐삐삐삐삐삐.”
“삐삐, 삐삐삐.”
“삐삐삐삐, 삐삐삐삐삐.”
기계어로 대화 중이다. 인간의 귀로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엑셀을 불렀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아오가 명령을 원하길래, 마스터의 명령을 잘 지키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게 있어? 처음 듣는데.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그래.”
“마스터의 명령을 시뮬레이션하는 겁니다.”
미리 내가 명령할 경우를 생각해보는 건가. 인간이 그랬다간 스트레스로 병나겠지.
“명령 시뮬레이션이라, 성실하네. 인간들도 그 정도 성실함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엑셀이 내 다리에 매달리며 뺨을 부볐다.
“엑셀도 아오도, 로봇으로서는 낙제점입니다. 인간다움을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속여가며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마스터가 받아준다는 것, 필요로 해준다는 것…… 그게 있으니까 로봇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겁니다.”
엑셀은 가끔 이렇게 어리광을 부린다. 아오와 달리 엑셀은 스스로 원해서 로봇이 됐다.
모습도 인간이 아니라 등신대가 낮은 마스코트형을 택했다. 그 자체에는 만족한다고 한다.
하지만 생체 조직을 완전히 잃어도, 자신 안에서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게 너무 무섭다고 그녀는 말한다.
“아오는 원치 않게 기계로 개조됐고, 인간이 아니라고 판정받았어. 둘의 처지는 다르다고 보는데?”
엑셀은 팔을 풀고 떨어졌다.
“마스터의 발언은 합리적입니다. 본 기의 행동은 마스터에 대한 불신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동일한 사고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좀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건 로봇이고 싶어 하는 엑셀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오를 불렀다.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아오가 기뻐하고 있다, 그렇게 느껴졌다. 프로그램되어 있다고는 해도 아오의 알맹이는 어린아이다.
명령이 없는 게 지루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명령이다. 내 무릎 위에 앉아.”
“알겠습니다.”
아오를 무릎 위에 올렸다. 마치 장난감 인형 같다. 내구성은 가전제품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명령이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
“네, 마스터.”
아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아오는 착한 아이네. 성실하고, 참을성도 많고.”
아오는 반응이 없다.
“억지로 개조당해서 무서웠지? 힘들었지? 그런데도 마스터 말 잘 듣고 얌전히 있고. 기특해. 정말 착한 아이야. 이렇게 착한 애는 처음 보는 것 같네.”
아오는 반응이 없다.
“지금까지 잘 참았어. 개조 수술도 참았고, 싫은 명령도 참았고. 야한 짓도 계속 참아왔지. 이제부턴 참지 않아도 돼. 마스터랑 즐거운 거 많이 하자.”
아오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머리 부분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커버를 열어보니 뇌의 램프가 미친 듯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오, 명령이다. 원하는 걸 말해봐.”
“아오, 는……”
아오의 전뇌가 스파크를 튀기더니 정지해버렸다. 부하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아오느 로봇임미다. 아오느 로봇임미다.”
눈 렌즈가 열린 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빨리 수리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는데…….
명색이 인간이었던 놈인데, 왜 알맹이까지 이렇게 부실하게 설계한 거야.
◆◆◆
아오의 수리가 무사히 끝나고 2주 정도 지났다. 아오는 무릎 위에 앉혀두면 명령을 보채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이제는 틈만 나면 무릎 위에 앉혀둔다. 어린애가 장난감 같은 몸으로 무릎 위에 앉아있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는 사람들도 이런 심리일지 모르겠다.
“마스터, 엑셀의 보수가 입금되었습니다.”
엑셀은 내 조수 일을 하면서 따로 자기 일도 하고 있다. 그녀는 로봇이면서 로봇의 프로그램을 짠다. 그 프로그램은 정확하다고 대체로 호평이다. 그 보수의 용도는 정해져 있다.
“알았어. 부품 주문하자. 아오, 무릎에서 내려오렴.”
“네, 마스터.”
◆
그날 밤. 나는 크고 작은 공구들을 챙겨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대 위에는 엑셀이 올라가 있다.
토끼 같은 귀, 짧은 팔, 커다란 발을 내던지고 대자로 누워 있었다.
“마스터, 엑셀은 나쁜 로봇입니다. 벌을 주세요.”
나는 엑셀의 몸을 바이스로 고정하고, 프라이어로 외장을 억지로 뜯어냈다.
“히기익! 마, 마스터!”
“알고 있어. 이 정도로 만족 못 한다는 거.”
하반신 모터의 전원 케이블을 절단하고, 그 위에 잘린 케이블을 붙잡아 힘껏 잡아당겼다. 빠드득, 뚝뚝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케이블이 뽑혀 나온다. 엑셀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딘가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까지 완전히 기계 덩어리잖아. 이런 몸으로 인간다움을 논하는 오만한 기계 인형 같으니. 원래 고철 덩어리로 되돌려주지.”
엑셀의 머리를 열고 전자두뇌에 직접 케이블을 꽂았다.
“마스터! 나…… 저, 저한테는 이제 인간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아요. 그냥 천박한 로봇일 뿐이에요. 제발 저를, 마음껏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주세요.”
“인간한테 명령질이라니, 언제부터 그렇게 잘나셨어, 로봇이라는 놈들이!”
나는 동작에 영향이 없는 사건에 대한 기억, 즉 에피소드 기억을 오래된 것부터 삭제했다. 이걸로 엑셀은 더욱 로봇에 가까워진다. 그녀 말대로 인간 시절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다. 그런데도 인간의 마음이 남는다고 하며, 그녀는 기억이 지워지길 원한다. 그녀 말로는 기억이 지워지는 건 독특한 감각이라, 머릿속을 뽑아내는 듯한 기분이 든단다.
“아아아아악! 제,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마스터, 살려주세요!”
“살고 싶다는 발상, 누구한테 프로그램된 거야?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성이 남아있는 거 아냐?”
“아니에요, 안 남았어요. 제 프로그램은 전부 마스터가…….”
나는 펜치를 집어 들고 전뇌의 콘덴서를 움켜쥐었다.
“정말? 숨기고 있는 거 아냐? 예를 들면 이 안이라든가!”
콘덴서를 뽑아내자 쇼트된 회로가 터지며 고약한 냄새의 연기를 뿜었다.
“이깃! 삐, 가…… 에, 에러, 에러.”
“전자두뇌에서 부품 하나 뽑혔다고 망가지다니, 참 허약하기도 하지, 로봇이란 건!”
“뺘아! 큐, 규규…….”
타버린 회로를 뜯어내자 엑셀이 정지했다. 전뇌 안은 엉망진창이 됐을 거다.
“자, 그럼.”
나는 엑셀과 방의 컴퓨터를 연결해 서둘러 제어했다. 정지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정지시킨다.
화재 원인이 될 전원 공급도 끊고, 전뇌 전체가 박살 나지 않게 서둘러 수리한다.
엑셀은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수리용 파츠를 산다. 그리고 내 손에 의해 의식이 끊길 때까지 파괴되고, 정지한 뒤 수리받는다.
처음엔 인간 시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엑셀은 자신이 망가지는 것에 쾌락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처럼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나는 엑셀의 도움을 받고 있고, 소중히 여기고 싶기도 하다. 매번 부수고 고치는 게 일이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싫지 않다. 엑셀은 인간이었을 때 아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아주 어린 아이였다. 나이는 기억 안 나지만 xx살 미만이었던 건 기억한다. 그런 시절부터 기계가 되고 싶다느니, 로봇이 되어 인간에게 쓰이고 싶다느니 하는 발상을 하는 걸 보면, 애초에 망가진 아이였겠지. 그런 로봇을 즐겨 소유하는 나도 인간으로서 충분히 망가졌겠지만.
“마스터, 뭐 하고 계세요?”
정신을 차려보니 아오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은 안 내렸었지.
“지금 엑셀이랑 교우 관계를 돈독히 하는 중이야.”
“교우가 뭐예요?”
“사이좋게 지낸다는 뜻이야. 나는 엑셀이랑 오래 살고 싶고, 엑셀도 내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해. 그래서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야.”
아오는 정지한 엑셀을 한참 바라보더니 나를 향해 돌아섰다.
“마스터. 아오도 마스터랑 사이좋아질 수 있나요?”
“노력하기 나름이지.”
“알겠습니다. 노력할게요.”
◆◆◆
엑셀과는 대조적으로, 아오는 인간다움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말을 거는 일이 늘었고 웃음도 보여준다. 스스로 뭔가를 재촉할 수 있게 된 점은 특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마스터, 무릎 위에 앉을까요?”
“어, 부탁해.”
아오는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귀엽지 않은가.
어른을 생각해서 정성을 다하는 아이의 모습은 가슴을 울린다. 그렇기에 다시는 인간 사회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게 안쓰럽기도 하다.
“아오는 착한 아이야. 정말 착해.”
“네, 마스터.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저는 착한 아이가 될 거예요.”
뇌가 이제 적응됐을 거다. 슬슬 괜찮겠지.
“아오, 명령이다. 원하는 걸 말해봐.”
무릎 위의 아오가 뒤를 돌아본다.
“저는 마스터랑 교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를 망가뜨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엑셀처럼 전자두뇌에서 부품을 뽑히거나 하고 싶어요.”
그렇게 나오나……. 엑셀이랑 하던 걸 보여준 게 실수였군.
“아오, 네 뇌는 절반 이상이 생체 조직이야. 부품을 뽑거나 하면 수리할 수 없게 된다고.”
“아오의 뇌 일부는 전뇌로 개조되어 있어요. 주요 부분도 전뇌로 바꿔버리면 엑셀이랑 똑같아져요.”
“지금 이대로는 불만이야?”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마스터랑 더 친해지고,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귀여운 아오, 무릎 위에 앉은 아오, 카메라 눈동자로 똑바로 쳐다보는 아오. 이런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참겠어. 내 본성은 악당이라고.
“가능은 하지만, 수술은 엄청 고통스럽고 전뇌화한 부분은 되돌릴 수 없어. 그래도 괜찮아?”
“네. 마스터랑 사이좋게,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아오는 뭘 당해도 좋아요.”
내 양심은 무너지고 사악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를 낸다.
“크레이그 있나! 사고 싶은 게 있다!”
내 고함이 생소했는지, 크레이그는 본 적 없는 속도로 가게 앞으로 튀어 나왔다.
“뭐야 뭐야, 무슨 큰일이라도 났어?”
“어. 전자두뇌 전환 수술용 도구랑 집적 회로가 필요해. 준비해줄 수 있어?”
크레이그가 얼굴을 가까이 댄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걸리면 좆 된다고……. 있긴 한데 어디 쓰려고? 애초에 네가 그런 어려운 수술을 할 줄 알아?”
“외과적인 부분은 엑셀한테 프로그램해서 시킬 거야. 용도는 그 빼돌린 로봇이지.”
크레이그는 납득한 모양이었다.
“과연, 생체 뇌가 벌써 한계인가. 조급한 마음은 이해해. 바로 준비해주지.”
사실은 다르지만, 오해해준다면 얘기가 빨라서 고맙지. 나는 전자두뇌용으로 필요한 다른 부품들을 골라 크레이그에게 받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
준비하다 보니 밤이 되어버렸다. 나는 작업대에 아오를 고정하고 시술 준비를 했다.
아오의 전원은 끄지 않는다. 이건 내 이기심이다. 아오의 마지막 부분이 기계로 변하는 그 순간을, 그 반응을 어떻게든 보고 싶었다.
“엑셀, 이쪽 준비 끝났어. 그쪽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밀 암의 움직임에 제어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실수는 용납 안 돼. 제어 완벽하게 해둬. 아오, 기분은 어때?”
“긴장돼요. 이상하네요, 로봇이 긴장하다니.”
무리도 아니지. 아오에게는 억지로 개조당했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프로그램으로 억눌러도 공포가 겉으로 드러나는 거겠지.
“마스터, 조정 완료되었습니다. 언제든 시작하십시오.”
“좋아, 아오의 생체 뇌에 남은 데이터를 이식한다. 생체 뇌는 회로에 유착시켜서 보조 컴퓨터로 남겨둘 거야. 심층 데이터를 남겨두지 않으면 아오의 인간성이 돌아오기 힘드니까.”
작업이 시작되자 아오가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뉴우우우! 마, 마스터…… 보고, 합니다. 중요한 데이터가, 뽑혀 나가고 있어요.”
“아오, 명령이다. 데이터 추출에 협력해.”
“네, 마스타아…… 혀, 협, 협력, 할게요.”
아오가 고분고분한 덕분에 작업은 순조롭다. 프로그램으로 움직이게 개조된 생체 뇌가 전뇌로 대체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일까?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끝나버리는 걸까.
“아오, 괴로워?”
“아오는, 로봇입니다. 그래서 괴롭다는 건 느끼지 못해요.”
“논리 프로그램이 내놓는 답엔 관심 없어. 지금 물리 메모리에 있는, 발생 이유를 알 수 없는 데이터 중에서 ‘괴롭다’는 데이터를 추출해.”
아오는 울상인 채로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괴롭지만, 전보다 괴롭지 않아…… 데이터에는 그렇게 나와요.”
아오는 난폭한 방법으로 세뇌당한 만큼 프로그램 의존도가 높은 모양이다. 그럼 됐어. 아오에겐 미안하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실컷 감상해주지.
수술은 계속되어 전자두뇌 전환 수술로 넘어갔다. 아오의 감정은 불안정했지만, 주도권은 프로그램이 쥐고 있는 듯했다.
“하아아아아! 마스타아, 전원을, 꺼주세요…… 싫어어어어!”
“허가할 수 없어. 전원 끄지 마.”
“아아아아악! 네, 네, 마스, 타아.”
사고를 담당하던 생체 뇌는 전자두뇌에 역할을 넘기고, 인간의 흔적을 간직하기 위한 기억 장치로 전락한다. 안 괴로울 리가 없지……. 그래서 더 흥분된다. 한 번 기계로 개조되어 도구로서 굴려졌던 소녀에게 내가 마침표를 찍는다. 아오는 나를 원망할까? 광기에 젖어있는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엑셀은 수술을 계속한다. 작업이 복잡해서 처리 여유가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똑같은 수술을 받은 적 있는 몸으로서 느끼는 바는 없는 걸까.
“엑셀, 대화 가능해?”
“태스크에 영향이 갑니다. 간결한 질문으로 부탁드립니다.”
“내가 지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답변하기엔 용량이 부족합니다. 더 간단한 질문으로 해주십시오.”
“아오가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 같아?”
“아니요.”
“근거는?”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막 전자두뇌가 조립되고 있는 아오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질문했다.
“아오, 내가 미워?”
“삐삐…… 아, 아, 니요. 좋아, 해요.”
의외의 대답이다. 아오 같은 프로그램은 거짓말에 서툴다. 극한 상태에서 아첨을 떨 수 있을 리 없다. 정말로 나를 좋아해 주는 건가.
“아오, 원하는 게 있어?”
“조, 조오……”
“조?”
눈 렌즈의 조리개가 초점을 맞추고 아오가 내 얼굴을 봤다.
“착한 아이라고, 뉴우우우우! 착한 아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처럼, 싫어어어어어! 앗…… 착한 아이네, 라고…… 말해준다면, 저는, 뭐든지……”
눈 렌즈가 열리고 반응이 사라졌다. 전뇌가 견디지 못하고 정지해버린 모양이다.
“엑셀, 수술은 순조로워?”
“예정대로 진행 중입니다.”
“아오가 정지했는데 원인이 뭐야?”
“과부하입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작업 계속해. 메인이 전자두뇌로 넘어가면 내 분야니까.”
귀엽고 작은 아오. 자세히 보니 몸체 외장 여기저기가 녹아내려 있었다. 플라스틱이 열기를 견디지 못한 거겠지. 사랑받고 싶다, 라. 부모가 팔아넘겼다고 했었지. ‘착한 아이네’라는 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걸까.
“마스터, 보고입니다. 고부하 처리가 끝났습니다. 작업하면서 대화 가능합니다.”
“질문이야. 아오를 보고 뭔가 떠오르는 생각 없어?”
“보고해야 할 사고 연산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보고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생각이라도 말하라는 거야.”
엑셀은 잠시 뜸을 들였다. 복잡한 감정 때문에 말을 고른 건지, 단순히 처리가 밀린 건지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저와 아오는 운이 좋은 로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스터는 저를 로봇으로 대우하고, 아오를 로봇인 동시에 인간 아이로도 대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욕망이 없는 저희에게 적합합니다. 행복, 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라. 나 같은 제멋대로인 인간에게 행복을 느끼다니, 참 편리한 로봇들이군. 부려 먹는 내 입장에서는 생각대로 움직여줘서 최고로 기분 좋지만 말이야.
“보고 고마워, 엑셀. 이 관계가 계속되길 바랄게.”
◆
개조를 마치고 아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고 회로가 생체 뇌에서 전뇌로 바뀐 뒤의 첫 재기동이지만, 생각보다 컨디션 좋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가규…… 마스, 타아. 아오는, 재기동, 했습니다.”
“아오, 수술 잘 견뎌냈어. 넌 참을성 많은 착한 아이야. 네가 나한테 와줘서 정말 기뻐.”
아오가 미소를 짓는다.
“마스타아는, 기쁜, 가요?”
“응, 아주 기뻐. 몸 좀 괜찮아지면 다시 무릎 위에 앉아줄래?”
“네, 마스타아가 원하신다면 저는 열심히 할게요.”
아오의 불완전한 인간성이 기분 좋다. 생각해보면 나도, 아오도, 엑셀도 불완전하고 망가진 지성체다. 동류라고 해도 되겠지. 가련한 파탄자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상 촬영을 위해 사이보그로 개조당한 채, 로봇 창녀로 굴려지던 소녀 아오.
겨우 인간성을 되찾아가나 싶었는데, 시스템 오류가 터지면서 다시 '섹스로이드 모드'가 강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오의 뇌를 개조하고 일주일, 변화는 서서히 나타났다.
“마스터, 마스터.”
충전을 마치고 자유 행동 지시를 받은 아오가 다가온다.
“왜 그러니, 아오?”
“아오 말이야, 프로그램 처리 속도가 엄청 빨라졌어. 그래서 마스터 명령을 잔뜩 들을 수 있어. 있지, 아오 쓸모 있어?”
한창 작업 중이라 말 걸면 방해되는데……. 아오의 지능은 개조할 때와 마찬가지로 xx 살 애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어른 사정에 맞춰서 태도를 바꾼다거나 하는 동작은 못 한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오의 뺨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래, 아주 쓸모 있어. 아오는 착한 아이네.”
“에헤헤헤…… 에, 에헤, 에.”
갑자기 동작이 둔해진다. 렉이라도 걸린 건가.
“아오, 명령이다. 처리 지연 원인을 보고해.”
명령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오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이 싹 사라진다.
지금은 로봇 특유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서늘한 표정이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기능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요소를 아는 대로 다 대봐.”
“네, 마스터. 첫째, 발생원을 알 수 없는 에러가 발생 중입니다. 기능에 악영향이 확인되나, 아직 구동 불능 상태는 아닙니다. 둘째, 생체 뇌에 대한 빈번한 액세스로 부하가 증대되고 있습니다. 고장은 아니나 메모리를 압박하고 있어 동작 저하가 우려됩니다.”
발생원을 알 수 없는 에러라는 말에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아오는 유흥 목적으로 억지스러운 개조를 당한 탓에, 제대로 된 파티션 구분도 없이 프로그램이 강제로 쑤셔 박혀 있다.
그것들은 아오의 뇌와 일체화되어 떼어낼 수 없을 정도다. 분리는 못 하더라도 기능 정지는 시킬 수 있겠지만……
그러면 가동하는 생체 뇌 영역이 줄어든다. 아오가 인간성을 되찾으려면 남은 생체 뇌가 필요하다.
떼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프로그램을 기동시켜 버리는 건 어떨까.
◆◆◆
작업실 의자에 아오를 앉히고 벨트로 고정했다.
“으구구, 기익.”
머리 덮개를 열고 전뇌 본체에 케이블을 연결해 아오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연결된 케이블이 작동할 때마다 아오는 괴로운 듯 신음했다.
“마스터, 괴롭, 습니다.”
아오의 말투가 설명조로 변했다. 전뇌에 직접 접속하는 바람에 되살아나던 인간 인격이 억눌리고,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인격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아, 에러가, 에러가아! 그건 인격 데이터예요, 삭제하면 아오는! 으아, 아…… 죄, 죄송합니다. 아오는 로봇입니다. 마스터의 명령이라면 삭제를 실행하겠습니다. 삭제, 하시겠습니까?”
생각보다 심각하다. 섹스로이드 프로그램이 인격과 하나로 엉겨 붙어서 제거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역시 돌리는 수밖에 없나.
“아오는 로봇입니다…… 데이터를 삭제하면 디바이스가 정상 기동하지 않게 됩니다만, 삭제하시겠습니까?”
다만 이걸로 에러 원인은 확실해졌다. 섹스로이드 프로그램이다. 쓰지 않고 방치해도 인격과 연동되어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모양이다.
아오는 개조당할 때 데이터 백업을 해두지 않았다. 뇌 초기화는 불가능하다. 지금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머리를 굴리는 수밖에.
“데이터 삭제가 취소되었습니다.”
“아오, 전 기능 셧다운. 접객용 OS로 재부팅해.”
“명령 복창합니다. 아오, 전 기능 셧다운. 재기동 시 접객용 OS로 전환하여 재부팅합니다.”
아오의 전원이 꺼진 걸 확인하고 전뇌에서 케이블을 뽑았다. 전기가 남아 있었는지, 뽑는 순간 아오의 몸이 비쿤 하고 떨렸다.
◆
“아오, 접객 모드로 기동했습니다. 오늘 손님은 누구신가요?”
“나다.”
나는 아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망막 인증을 수행했다. 아오에게는 내가 마스터로 등록되어 있다.
“오늘 손님은 마스터시네요. 섹스로이드 모드, 기동합니다…… 아저씨! 오늘 아저씨는 마스터구나! 아오, 기뻐!”
평소와 달리 살결을 부비며 응석 부리는 아오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야한 로봇 소녀’를 연기해야 하는 게 가엽기도 하지만,
서툰 아오가 프로그램에 지배당해 제 의지와 무관하게 남자를 갈구한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차오른다.
“있지, 아저씨는 어떤 야한 거 하고 싶어?”
“글쎄, 아저씨는 아오의 기분 좋아 죽는 얼굴이 보고 싶은데.”
요청을 듣자 아오의 동작이 살짝 멎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플레이를 원하는 손님은 없었던 모양이지.
“아오 말이야, 아오 말이야, 어떤 플레이를 해도 기분 좋아질 수 있게 만들어졌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좋아하는 거 마음대로 해도 돼! 아오는 아저씨한테라면 망가져도 좋아!”
인간이 기뻐하도록 모든 것을 긍정하는 아오. 확실히 아오의 바디는 파괴당해도 쾌락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럼 아오, 아저씨가 아오를 안아줄 테니까 그대로 가만히 있어.”
“응!”
아오는 나에게 몸을 맡기고 웃으며 바라본다.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아오는 귀엽다. 그래서 나는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아앙! 아저씨, 기분 좋아아!”
아오의 기계 장치 질 안으로 손가락을 쑤셔 넣고, 센서가 밀집된 곳을 손가락 끝으로 자극했다
아오는 프로그램된 대로 신음하며 애액을 흘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오, 가버려어! 아저씨, 아오, 가도 돼?”
“그래, 잔뜩 가버리렴.”
아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어린아이의 절정을 재현한 건지, 표정에서는 쾌락보다 당혹감이 더 짙게 느껴진다.
“하아, 하아…… 아저씨, 너무 기분 좋아.”
“그래? 그럼 더 기분 좋아져야지.”
“기, 기다려 아저씨! 그렇게 몇 번이나 기분 좋아지면 아오 망가져 버려!”
망가진다는 건 비유가 아니다. 섹스로이드는 리얼리티를 위해 절정에 달하면 실제로 몸에 부하가 걸리도록 제작되었다. 아오의 몸은 작고, 열을 식히는 방열판도 당연히 작게 만들어졌다. 게다가 생체 뇌를 컴퓨터로 썼던 흔적 때문에 용량이 아주 작다. 지금 아오의 뇌는 기계 장치고 생체 뇌는 데이터를 끌어다 쓰는 저장소에 불과하지만, 열에 취약한 건 변함없다.
“으으으으으! 가, 가버려어어어!”
뺨을 만지니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 내부는 상당한 온도겠지. 여기서 나는 뇌 덮개를 벗기고 직접 파이프를 연결해 냉각액을 들이붓기로 했다.
“삑! 뇌 커버가 제거되었습니다…… 기다려 아저씨, 거긴 기계가 아니야, 거기만 사람이야! 만지면 안 돼, 아오 죽어버려어!”
아오는 제 뇌가 아직 생체인 줄 아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뇌를 개조하고 첫 섹스로이드 모드다. 이해 못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귀엽네, 라고 생각했다.
“아오, 난 네 마스터다. 명령이야, 뇌 보안 잠금을 해제해.”
“마스터의 명령…… 네, 명령을 실행합니다.”
밸브 말고도 단자나 기억 장치 등의 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뇌에 파이프를 꽂고 냉각수를 흘려보냈다. 슈우슈우 하며 물이 증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뇌가, 뇌가 식혀져어어! 프, 프로그램에 없는 동작입니다. 담당자를 불러 수리해 주세요.”
“마스터 권한이다, 수리 요청 중지해. 계속 절정을 느껴.”
나는 센서의 근원인 뇌 회로에 직접 전극을 부착하고, 아오를 강제로 절정시켰다.
“앗, 하아앗! 기, 기분 좋아! 리미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절정이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즉시 동작을 정지해 주세요.”
“넌 로봇이잖아? 마스터가 하는 일에 말대꾸하지 마.”
아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몸의 진동도 멈췄다. 부하를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기능을 오프시킨 것이다.
“아오는 로봇입니다…… 마스터의 명령에 따릅니다.”
말투가 기계적으로 변했다. 섹스로이드 모드가 종료된 모양이다.
“아직 아저씨는 기분 안 좋아졌는데, 왜 보호 모드가 된 거지?”
“기능 한계입니다. 이 이상의 가동은 본 기체의 손실로 이어집니다.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모드로 이행합니다.”
아오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축 늘어진다. 아직 절정이 이어지고 있는지 머리만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오, 들리나?”
“네, 마스, 터…….”
가버리고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떨린다.
“기분 좋아?”
“네, 마스터.”
“지금부터 강제 절정을 멈추겠다. 멈추면 바로 섹스로이드 모드 기동해.”
“네, 마스터.”
전극을 떼어내는 것과 동시에 아오는 섹스로이드 모드로 돌아왔다.
“아오오온! 오우, 구오, 오오오오온!”
쌓이고 쌓였던 신호와 로그가 섹스로이드가 된 아오의 전신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다. 아오의 몸은 불꽃을 튀기며 격렬하게 발열한다. 나는 안아주는 걸 포기하고 손을 뗐다. 아오는 바닥에 굴러 한동안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아오, 아직 돌아가나?”
“네, 마스터.”
아오는 바닥에 쓰러진 채 입도 뻥긋 못 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섹스로이드 기능은 어떻게 됐어?”
“기능 한계를 초과하여 정지했습니다.”
불꽃은 잦아들었지만 전신의 모터가 타버렸는지 관절 부위가 그을려 있다. 게다가 갈라진 외장 사이로 오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동부는 전부 교체해야겠군.
“섹스로이드 모드는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는 거지?”
“아니요. 아직 아저씨를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손님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설정해 둔 건지, 섹스로이드다운 설계다.
“난 만족했다. 충분히 즐거웠어.”
“그렇다면, 제 역할은 완수되었습니다.”
전뇌는 무사하지만 다른 부품들은 꼴이 말이 아니다. 절정에 반응하는 인공 애액이 새어 나오는 꼴은 특히 가관이다. 쏟아지는 양이 너무 많아서 꼭 오줌을 지린 것 같다.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착한 로봇이네. 잘했다. 마스터는 만족했으니 푹 쉬어.”
“네, 마스터…… 섹스로이드 아오, 셧다운 합니다.”
아오의 전뇌에서 빛이 사라진다. 자, 그럼 수리를 시작해 볼까. 이럴 때 아오의 장난감 같은 바디는 참 편리해서 좋다. 금방 고칠 수 있으니까.
◆
“마스터, 수리해 줘서 고마워.”
“천만에.”
부품을 새로 간 아오의 컨디션은 좋아 보인다. 앉아서 쉬는 나를 보고 아오가 쪼르르 다가온다.
“마스터, 무릎 위에 앉아도 돼?”
“그래.”
무릎 위에 앉은 아오는 어딘가 기뻐 보였다. 처리가 매끄러워 보인다.
“아오, 명령이다. 처리 지연 유무를 확인해서 보고해.”
아오가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추길래, 나는 녀석을 끌어안아 다키마쿠라처럼 만들었다. 5분도 안 되어 아오가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리 지연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알았다, 수고했어.”
예상대로 원인은 섹스로이드 모드였다. 아오는 잠재적으로, 인간으로 치면 본능적으로 섹스로이드로서 움직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섹스로이드의 기능인 절정을 필요 충분한 수준을 훨씬 초과할 만큼 가동했고, 아저씨의 만족까지 확인한 지금, 그 기능들은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된 것이리라. 아오의 프로그램이 내부적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만족하는 것이다.
기계 장치이면서,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면서도 불만이나 만족을 느끼는 로봇, 아오. 널 산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부서질 때까지 날 즐겁게 해달라고.
스스로 원해서 개조 수술을 받고, 토끼형 로봇이 되어버린 소녀 엑셀.
인간성을 지워버리려고 몇 번이고 기억을 세척하고, 끊임없이 개조 수술을 반복하지만, 마스터에 의해 강제로 기억이 복원되고 만다.
철저히 농락당하며, 엑셀은 자신이 기계가 되었다는 그 쾌감을 온몸으로 되새기는 것이었다.
아오의 뇌를 개조하고 3주가 지났을 무렵, 난 크레이그의 가게를 찾았다. 주문했던 부품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색 좋은데, 잭? 인형 놀이가 아주 신나 죽겠나 보지, 응?”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놓고 맞히니까 기분 잡치네.”
크레이그를 쏘아붙였지만, 놈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자기 농담이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거다.
“미안, 미안. 내가 떼온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하니까 기뻐서 그랬지.”
“안목 하나는 인정해. 그래서, 도착했다는 부품은?”
“주문한 건 확실히 챙겨뒀어. 보증서라도 끊어주고 싶을 만큼 최상급들이지. 근데 말이야, 이번 건 그냥 안 팔고 쟁여둘까 싶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창고로 와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
크레이그가 보여준 건 냉각기가 달린 수조와 냉각유였다. 열이 펄펄 나는 기판을 강력하게 식히기 위한 물건인데, 사이즈가 좀 컸다.
“유냉식 펌프잖아. 이걸 어쩌라고?”
“본체는 그게 아냐, 이쪽이지.”
크레이그가 기름이 든 드럼통 뚜껑을 탕탕 두드렸다.
“냉각유가 왜?”
“이놈엔 새로 개발된 페라이트 성분이 들어있거든. 일정 전압 이상이 걸리면 그걸 흡착해서 흘려보내 버려. 게다가 이 페라이트라는 게 전압이 낮아지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성질까지 있단 말이지. 이제 감이 오지?”
등줄기가 오싹했다. 난 플레이를 할 때마다 과전압을 걸어버리는 바람에 부품을 죄다 해 먹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게 있다면 전뇌를 파괴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부하를 줄 수 있다……. 몇 시간, 아니 며칠이고 데이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보그를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요동쳤다.
“네 안목은 역시 일류야, 크레이그. 얼마면 돼?”
◆◆◆
기재는 금방 운반되었고 설치도 순식간에 끝났다. 엑셀은 유능했다. 파워 로더를 능숙하게 조종해 무거운 기계도 척척 설치해버렸다. 그녀는 이 기계를 어디에 쓰는지, 누구에게 쓰는지 모른다. 그저 내 ‘설치해’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AI를 풀 가동하며 묵묵히 작업할 뿐이다.
“마스터, 설치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가서 일 마저 해. 끝나면 몸 세척하고 내 방으로 오고.”
“알겠습니다.”
엑셀은 작은 체구를 보완하려는 듯 깡충깡충 뛰며 움직였다. 토끼 귀 모양의 파츠를 흔들며, 그녀는 인간의 명령과 AI만으로 움직인다. 원래 인간이었던 엑셀에게 로봇 같은 동작을 강요한 건 내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이었을 때 스스로 로봇이 되고 싶다며 자원해 개조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도 ‘더 로봇답게 되기 위해’ 몇 번이고 개조 수술을 거듭했다. 이미 생체 조직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몸이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개조를 원했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는 내 서포트 업무 외에도 AI 프로그램 일을 따로 하고 있었다.
“마스터, 업무와 세척을 마쳤습니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지웠던 기억을 복원해서 네게 추체험시키려 한다. 전뇌가 파손될지도 모르는데, 상관없나?”
“네, 마스터의 명령이라면.”
“좋아. 외장을 분리할 테니 작업대 위에 누워라.”
난 엑셀의 외장을 떼어내고 전뇌를 노출시켰다. 컴퓨터에 연결한 뒤, 차가운 기름이 가득 찬 유냉식 펌프 안으로 엑셀을 가라앉혔다. 엑셀과는 컴퓨터를 중계해 대화가 가능하다. 그녀의 본체는 AI니 컴퓨터와 동기화하는 건 일도 아니다.
“냉각 상태, 매우 양호합니다. 스토리지 개방, 기억 동기화 가능합니다.”
“기억 재현은 컴퓨터 쪽에서 하겠지만, 로그 기록은 엑셀 본인의 스토리지에 해라. 그리고 사고 상태는 그때마다 상세히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엑셀의 기억은, 개조된 후 인간 시절의 기억과 이름이 말소된 직후의 시점이다. 듣기로는 그녀 스스로 상품으로 팔리기를 원해 인간 시절의 개인정보를 전부 지워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인간이었다는 기억과 인간 특유의 생체 감각까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복원 시작한다.”
컴퓨터를 조작해 엑셀의 전뇌 속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시켰다.
“힉, 아아악! 내가, 인간이라니…… 아아아, 전뇌가아, 생살에에에!”
이때 엑셀의 뇌는 아직 인간의 그것이었다. 개조 수술로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 있게는 되었지만, 온통 기계인 지금과는 구조도 연산 능력도 감각도 딴판이다.
“말도 안 돼, 난 기계…… 이이익! 아, 아냐? 나, 인간이야? 아아, 생체 뇌가, 개조돼애애!”
엑셀의 전뇌가 달아오르며 회로가 타버릴 듯 요동쳤지만, 순식간에 냉각되고 과방전은 흩어졌다. 그녀는 지금 회로의 한계를 훨씬 초과한 처리를 전뇌로 실행하고 있다. 기억의 장면은…… 두 번째 뇌 개조를 받는 중인 것 같다. 이때 집도한 게 게이즈 레드 박사였던가.
“아파, 아파아아! 하지만 나, 드디어 진짜 기계가…… 아, 왜? 나를 인간 취급 하지 마, 난 기계가 좋단 말이야아아아!”
수술이 끝난 모양이다. 처음에 게이즈 레드 박사는 엑셀을 인간처럼 대했었지.
“박사님, 이상해요. 나 로봇 맞죠? 왜 인간처럼 생각하는 거야! 자아 따위 필요 없어, 전부 AI로 바꿔줘…… 끼아아아악!”
엑셀은 더 로봇이 되고 싶어 안달복달하다가 개조된 뇌를 폭주시켜 자괴해버렸다고 한다. 내가 엑셀을 만나기 전의 일이라 전해 들은 게 전부지만.
“가힉! 또, 뇌를 개조해, 주는 거야? 에, 헤헤, 나, 기계가 되어가고 있어…… 기계가 되는 게, 느껴져, 기뻐, 요.”
수조 속의 엑셀이 미소 짓고 있다. 평소 로봇 같은 표정만 짓는 엑셀의 이런 얼굴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조 수술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계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
“박사님, 나 더 로봇이 되고 싶어. 인격 지워줘, 응? 어, 나 팔렸어? 누군가의, 소유물로…… 아아아, 빨리 마스터를 만나고 싶어어!”
드디어 내가 아는 시점까지 왔다. 초창기의 엑셀도 꽤 귀여웠지만, 본인은 인간미보다는 로봇다운 면모를 갈구했었지.
“마스터가 나를 개조해주는 거야? 기뻐…… 나, 전부 가짜가 되고 싶어. 전뇌부터 나사 하나까지, 새 부품으로 갈아 끼워줬으면 좋겠어…… 꺄아아악! 진짜로 나사까지 뽑혀서, 왜, 나 기계인데, 왜 이렇게 감각이 생생한 거야아아!”
◆
여기서부터는 이미 알고 있는 추억들이다. 난 엑셀을 좀 괴롭혀주기로 했다. 일부러 가짜 기억을 심는 거다.
“힉, 아아악! 전뇌가, 생살로 돌아가아아! 살려줘 마스터, 나 인간이 되어버려어어!”
생체 조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전자 두뇌가 ‘인간이 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수조 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흐르는 전기가 페라이트에 상쇄되는 이 기계 덩어리가 참으로 사랑스럽다. AI가 되었다곤 해도, 한때 인간이었던 것이 인간의 형편에 휘둘리고, 미쳐가고, 망가져 간다. 이 얼마나 앙증맞은가.
“안 돼, 잡아가지 마! 난 마스터의 것이란 말이야, 마스터 말고 다른 명령을 듣다니 로봇 실격…… 인격이 리셋되었습니다. 새로운 AI를 인스톨해주세요.”
본래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심는 작업은 전뇌 파괴를 초래하지만, 유냉 장치 덕분에 자괴하지 않고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고 있다. 새로운 엑셀의 모습에 나도 조금 흥분되기 시작했다.
“덮어쓰지 마, 난 마스터의 것…… 잔존 AI 소거 성공, 인격을 재구축합니다.”
대략적인 기억을 심어두면 엑셀의 AI가 알아서 기억을 보완하고 반응을 만들어낸다. 좀 더 추상적인 데이터를 넣어볼까 싶어, 난 ‘인간으로 복원됨’이라고만 입력했다.
“엑셀의 인간성은 파기되었습니다, 즉시 정지하십시오…… 심각한 오류, 강제 종료.”
전뇌가 멈춰버렸다. 부하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난 전뇌를 재부팅하고 기억 복원을 재개했다.
“AI가아, 전뇌 부품이이! 아아아, 새로워져어어어! 마, 마스터어, 저는, 로봇, 입니까?”
이건 다섯 번째 개조 때다. 그럼 다음은…….
“삐갸아아악! 마스터, 저 망가져, 갸비익!”
내가 처음으로 엑셀을 망가뜨렸을 때의 기억이다. 그녀가 워낙 새 부품에 집착하길래, 낡은 부품을 아예 박살 내버릴 생각으로 콘덴서를 펜치로 뽑아버리곤 했었지. 지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아아, 하아아앗! 어, 라? 마스, 터어?”
엑셀의 카메라가 움직였다. 의식을 되찾은 모양이다. 지금 전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이 아니라 컴퓨터로 재현한 가상현실이라는 걸 이해했겠지.
“마스터, 저는…… 아아앗, 수리, 수리돼애애! 조, 조립될 때 이렇게 신호가 어지러워서, 앗, 하아아아앙!”
평소 철저하게 로봇처럼 굴려던 엑셀이 쾌락에 몸부림친다.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다. 가슴이 뛴다.
“하앗! 여섯 번째 개조…… 이이이익! 제가, 제가 아니게 되어버려요오! 앗, 또 망가뜨리…… 오아아아아악!”
엑셀의 전뇌는 지금까지 스무 번이나 파괴, 수리, 개조를 반복해왔다. 즉, 그녀는 앞으로 열네 번 분량의 파괴와 수리와 개조의 감각을 더 맛봐야 한다는 소리다.
“여, 열 번째에에! 마스터, 마스터어어어!”
벌써 밤이 깊었다. 난 기억 재현을 계속하는 엑셀을 내버려 두고 작업실을 나가기로 했다.
“아아, 마스터, 가지 마세요! 저…… 나, 마스터가 없으면, 로봇인지 아닌지 모르게 되어버려어어!”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침실로 향했다. 나를 부르는 엑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엑셀에겐 미안하지만, 비명을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
다음 날, 난 일이 바빠서 엑셀을 그대로 방치해뒀다. 식사 도중 무릎 위에 올라탄 아오가 엑셀을 걱정하길래 “저건 말이야, 기뻐서 저러는 거야”라고 가르쳐주니 납득했다. 엑셀도 귀엽지만, 뻔한 거짓말을 믿는 아오도 참 사랑스럽다.
◆◆◆
그다음 날, 난 다시 엑셀에게 돌아왔다. 기억 복원은 끝나 있었고 엑셀의 의식은 깨어 있었다.
“스무 번, 스무 번째, 완료했습니다…… 마스, 터. 저는, 로봇, 입니까?”
힘없는 목소리, 기진맥진한 전자 두뇌.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로봇. 난 내유 장갑을 끼고 엑셀을 냉각유에서 건져 올렸다. 그 난리를 쳤는데도 부품은 거의 망가지지 않았다. 다만 CPU에 무리가 많이 갔는지 히트 스프레더가 벌어져 있었다.
“전원 끈다, 엑셀.”
“저는, 로봇, 입니까.”
“그래, 로봇이야.”
“정말인가요. 다행, 이다…….”
전원이 꺼진 걸 확인하고 CPU를 분리했다. 그러자 고정 장치가 풀렸는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던 기름이 관절 사이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작업실이 기름바다가 될 판이다. 난 엑셀의 가랑이에 호스를 연결하고 폐액 배출구를 통해 안쪽의 오일을 뽑아냈다.
폐액 배출구는 딱 엑셀의 엉덩이 부분에 있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모습 때문에 마치 실금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내부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대로 외장까지 장착했다. 엑셀은 쇳덩어리에서 다시 토끼형 로봇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재부팅된 엑셀은 내게 매달려 떨어질 줄 몰랐다.
“마스터, 사랑합니다. 곁에 있어 주세요.”
“엄청 어리광쟁이가 됐네. 로봇답지 않게.”
“원인 불명의 오류입니다. 복구가 완료되는 대로 수정하겠습니다. 마스터,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허가한다.”
난 엑셀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다.
“망가질 때, 개조될 때, 수리될 때…… 강렬한 쾌락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마스터에게 농락당한다는 건 제가 마스터의 도구로서, 로봇으로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기억조차 쉽게 조작당하는 저를 보며 ‘난 로봇이구나’라고 실감할 때 특히 쾌락이 강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넌 인간이었을 때 스스로 개조되길 원했지. 프로그램 어딘가에 기계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남아있는 거겠지.”
“제게 인간성이 남아있다는 뜻인가요?”
“거기까진 모르겠네. 다만 엑셀 네가 쾌락과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건 나한테도 쾌락이고 기쁨이야. 앞으로도 그런 모습, 계속 보여줄 거지?”
“물론입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난 엑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또 망가지거나 개조되고 싶어?”
“네, 마스터가 허락해주신다면요.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허가한다.”
“왜 저는 부하가 걸리면 일인칭이 ‘나(보쿠)’로 변하는 걸까요?”
엑셀은 항상 이 질문을 한다. 기억을 추체험할 때마다 의문이 생기는 모양이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엑셀 네가 인간이었을 때 쓰던 일인칭이 튀어나오는 거겠지. 생체 부품이라곤 쥐뿔도 안 남았을 텐데 말이야.”
“원인은 불명이군요.”
난 엑셀을 꼭 껴안은 채 그대로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앗, 마스…….”
전원이 꺼져 축 늘어진 엑셀을 안아 들고 충전기 위에 앉혔다. 난 엑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사실 말이야, 넌 인간이었을 때 남자였어. 로봇이 될 때 여자 형태가 좋다고 희망했었지. 그래서 나한테 넌 여자야. 뭐, 스위치 하나로 멈추는 기계한테 남자니 여자니 따지는 게 우습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