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갸루 연구실(기계화 숙녀)에서 연재 중인 나이트비단 님으로부터,
본인의 작품 「춤추는 인형」의 세계관을 계승한 작품을 받았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솟구치네요!!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야사키 히토미는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짧고 단정하게 자른, 윤기 흐르는 흑발이 찰랑거린다. 가볍게 기지개를 켠 그녀는 피곤한 기색으로 안경을 벗어 던졌다.
피로가 한계치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연구 논문을 쓰느라 며칠째 밤샘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미야사키 교수님,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커피를 내밀며 말을 건네는 아르바이트생 미즈사와 카나에게 히토미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응. 조금 그러네.”
카나는 히토미와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한 활기 넘치는 미소녀로, 올해 이 아마미 의대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그리 짧지 않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과외 선생과 제자 사이였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히토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카나에게 그녀는 동경 그 이상의 대상이었다.
카나가 이 대학에 응시한 것도 조금이라도 히토미 곁에 있고 싶어서였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렇게 염원을 이룬 카나는 지금 히토미의 연구실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일을 돕고 있었다.
“그나저나 교수님, 판저 박사님이랑은 잘 안 풀리시나요?”
히토미의 입술이 비틀렸다.
“글쎄, 요즘 부쩍 공동 연구 제안을 해오긴 하는데…… 난 그 사람 왠지 무섭단 말이지.”
“알아요, 알다마다요! 진짜 그렇다니까요. 뭔가 음침하고 기분 나쁘달까, 인체 실험 같은 것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저지를 것 같고…….”
“카나, 말이 좀 심하네.”
히토미의 표정에 쓴웃음이 번졌다.
판저 박사는 미국에서 건너온 인공 장기 분야의 권위자다.
하지만 카나의 말대로 어딘가 기괴한 인상을 주는 인물인 건 사실이었다.
나이는 아직 마흔도 안 됐을 텐데 벌써 머리는 백발이었고,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면 초면인 사람은 누구나 노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아리사, 그런 박사 밑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아리사라면, 카나랑 동기인 연구 보조 걔 말이지? 혼조 아리사 양?”
“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거든요. 여기서 같이 하자고 꼬셨는데도…….”
“그랬어? 근데 왜 굳이 판저 박사 밑으로 갔대?”
그 말에 카나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저쪽이 월급을 더 많이 준다나 봐요. 아하하.”
“세상에…….”
히토미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하, 하하하. 뭐, 아리사가 모녀 가정이라 학비 대기도 벅차다고 하니까요…….”
“그래.”
카나는 혹시 히토미가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했지만, 별다른 기색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기 선생님이 그런 사소한 일에 연연할 리 없지 않나 싶어 스스로 납득했다.
“확실히 저쪽은 외부 연구비 지원도 빵빵하고, 대학 차원의 백업도 완벽하니까. 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걸까?”
공동 연구는 거절하고 있지만, 과학자로서 그 내용에는 흥미가 동하는 히토미였다.
“글쎄요, 아리사는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당연하지. 카나 너도 내 연구 내용을 다른 연구자한테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거 아냐?”
“그, 그럼요!! ……라고는 해도 제 머리로는 교수님 연구 내용을 이해하는 것조차 무리지만요.”
“참 나, 못 말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던 와중에 카나가 문득 책상 위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교수님 논문…… 진척이 없나요?”
갑자기 카나의 얼굴이 히토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히토미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와, 대단하다. 마치 SF 소설이나 만화 같아요.”
카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디스플레이에 띄워진 기계 팔다리, 그리고 인체 각 부위를 대체할 기계 부품들의 이미지였다.
“후후. 기계 몸을 개발하는 게 어디 쉽겠니. 하지만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네. 하지만…… 이거라면 정말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뭐를?”
“있잖아요,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 같은 거. 영화에 나오는 엄청난 녀석들요.”
히토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딱 잘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해외 학회에 참석하면 최근 그런 소문으로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모국의 정보기관에서 비밀리에 개발, 즉 인체 실험을 자행해 실용 단계에까지 도달했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일 뿐이지만.
솔직히 히토미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별로 믿지 않았다. 신뢰할 만한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보다는 하루빨리 고성능 의수나 의족을 개발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인공 장기로 병을 치료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교수님, 저도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까…… 뭐든 말씀하세요!!”
카나가 두 눈을 반짝이며 히토미를 바라보았다. 그녀 곁에서 연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고마워, 카나. 그러네, 그럼 사이보그 수술 실험체가 좀 되어줄래?”
“엑, 실험체요?”
순간 얼굴이 굳어지는 카나를 보며 히토미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카나는 자기가 놀림당했다는 걸 깨닫고 히토미의 어깨를 퍽퍽 때렸다.
“정말, 교수님! 놀리지 마세요!! 순간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아하하, 미안 미안. 카나가 너무 진지한 얼굴로 말하니까 그렇지.”
“정말이지…… 옛날부터 그런 쪽으론 심술궂다니까.”
그렇게 말하던 카나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카나의 얼굴이 히토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걸 자각한 순간, 카나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교수님…… 저, 교수님이 정말 원하신다면…… 사이보그 실험체든 뭐든 될게요.”
“카나?”
히토미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며, 붉은 루주가 발린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발그레해진 카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교…… 교, 수님…….”
히토미는 카나의 앳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혀와 혀가 야릇하게 얽힌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무심코 입술을 뗀 사이로 타액이 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단둘뿐인 밤의 연구실에 후끈한 여자의 체취가 감돈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울리기 시작했다.
“아, 아으…… 교수님, 히익…… 안 돼요…… 아아…… 그만…….”
“왜? 그만했으면 좋겠어, 카나?”
히토미의 눈빛은 조금 전의 다정함과는 딴판이었다.
암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카나의 얇은 셔츠 너머 살짝 비치는 가슴팍에 꽂으며, 오른손을 그녀의 미니스커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히, 히야아악!!”
카나가 비명을 지르며 히토미에게 맡긴 몸을 경련했다.
“어머, 카나…… 벌써 축축하게 젖었네…… 우후훗.”
“어, 언니…… 더, 기분 좋게 해주세요…… 아아.”
“착하지, 카나…….”
히토미가 카나의 은밀한 곳에 손가락 두 개를 더 밀어 넣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카나의 주머니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흥이 깨져버린 히토미는 카나의 가슴팍에 묻고 있던 얼굴을 떼어냈다.
황홀경에 빠진 카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히토미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손가락을 천천히 뽑아냈다. 오른손은 음란한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카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히토미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렇구나, 데이트구나.”
전화를 끊은 카나는 흐트러진 실크 셔츠의 가슴팍을 여미며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곤란해하는 표정이 히토미의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카나, 신경 쓰지 마. 알았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봐.”
“교수님…… 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저기, 남자친구 아니에요. 동아리 선배인데 그게…… 전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서, 그게…….”
“알았어, 알았어. 조심해서 가. 그리고 속옷 갈아입고 가고.”
히토미의 평소 같은 짓궂은 농담에 안심했는지 카나는 다시 활기찬 얼굴로 돌아왔다.
그녀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숏부츠의 굽 소리를 또각거리며 연구실을 나갔다.
히토미와 카나의 육체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나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히토미는 축하한다는 핑계로 처음 카나를 안았다.
그 이후로 이 관계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남자친구라…….”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으며 히토미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덧 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아…… 서른 줄 앞둔 젊은 여자가 있을 곳은 아니네…….”
벗어두었던 안경을 고쳐 쓰며 히토미는 중얼거렸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누가 봐도 미인이라 불리기에 손색없는 여자였다.
연구실에만 박혀 있다 보니 화장은 옅었지만, 오히려 그게 그녀 본연의 여성스러운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미야사키 히토미는 사이버네틱 바디 연구 개발 분야에서 신진기예로 손꼽히는 여성 과학자다.
자연히 주변에서는 연구밖에 모르는 여자라며 거리를 두는 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접근해오는 남자라고는 그 판저 박사뿐이니, 욕구불만이 쌓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또한 인간의 육체를 기계화한다는 컨셉은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제대로 된 실험조차 할 수 없었고, 그녀의 연구 자체도 요즘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카나의 말에 히토미는 무심코 가학적인 감정이 솟구치고 말았다.
방금 전의 짧은 정사는 그 때문이었다.
“난 남자친구도 없고…… 연구가 애인인가……. 흥.”
히토미는 자신이 주변에서 어떤 눈으로 비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 역시 그런 시선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연구에 몰두하고 싶었고, 성적 욕구불만은 카나가 해소해주기도 하니까.
“에휴. 집에나 갈까…….”
히토미가 중얼거린 순간, 스커트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뭐야, 이번엔 나야? 후우. ……여보세요, 미야사키입니다.”
대답이 없다.
“저기…… 여보세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린 히토미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
“히, 히토미! 나야, 에미코!”
중학교 시절 친구인 카타기리 에미코였다.
에미코는 히토미와는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로, 남자 문제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전형적인 불량 OL이다. 어제도 남자랑 데이트한다고 연락이 왔었다.
“뭐야, 에미코. 취했어?”
“으, 응. 아니, 그게, 지금 좀 만날 수 있을까?”
“하아?”
히토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 그러니까…… 윽, 흑, 흑…… 부탁이야, 히토미. 제발…….”
전화 너머로 울음을 터뜨린 에미코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히토미는 직감했다.
성격은 정반대여도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으니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 알았어. 울지 마. 지금 어디야?”
울먹이며 말하는 에미코의 말을 받아적고 히토미는 전화를 끊었다.
“보아하니 점찍어둔 남자한테 차였나 보네……. 오늘 밤은 카나도 데이트라더니, 정말 요즘 젊은 애들은 대체 뭘 하는 건지! ……하아, 밤샘 작업 뒤에 홧술 상대를 해줘야 한다니…… 괴롭다, 괴로워.”
그렇게 투덜대며 히토미는 가운을 벗고 로커 안의 코트를 걸쳤다. 샌들을 벗고 무릎 아래까지 오는 롱부츠로 갈아신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난처하네.”
히토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렸다.
헤드라이트를 켠 경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야사키 교수님!”
차창 너머로 얼굴을 내민 소녀를 히토미는 알고 있었다.
“혼조 아리사 양?”
히토미와는 결이 다른, 긴 흑발의 일본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였다.
“혹시 곤란하신가요? 괜찮으시면 타세요.”
그녀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안에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안을 보니 운전석의 아리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히토미는 판저 박사가 동승하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안도한 듯했다.
“미안해. 좀 부탁해도 될까?”
“네, 어서 타세요!”
아리사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사정을 들은 아리사는 히토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사양하던 히토미였지만, 평소 교류가 없던 그녀인 데다 무엇보다 그녀가 쥐고 있을 판저 박사의 연구 정보에 흥미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히토미는 아리사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리사 양, 판저 박사님은…… 어때?”
애매한 질문이었다. 아리사는 순간 입을 다물더니 대답했다.
“훌, 훌륭한 분이세요. 주변에선 이상한 눈으로 보지만요. ……네, 그래요.”
히토미는 아리사의 얼굴이 찰나의 순간 인형처럼 보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찰나였을 뿐, 지금 보면 카나와 동갑인 여대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고생이었을 텐데.
“왜 그런 걸 물으시나요?”
“어? 아, 아니 그게…… 그래, 우리 카나, 미즈사와 양이 자주 네 걱정을 하길래. 그게…….”
“그렇……군요. 카나가…….”
히토미의 눈에는 왠지 그때 아리사의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다.
아리사가 운전하는 차는 빌딩 숲 사이 미로 같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히토미는 도쿄 중심가에 이런 어둡고 기괴한 길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평소와 달랐던 에미코의 상태가 묘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끼이익!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뭐, 뭐야!?”
보니 아리사가 핸들에 이마를 파묻고 웅크리고 있지 않은가.
“왜, 왜 그래 혼조 양!? 어디 아파!?”
히토미가 당황해서 아리사를 일으켜 세우려던 찰나였다.
내민 히토미의 오른팔을 아리사가 덥석 낚아챘다.
“꺄악!”
아리사는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으으윽, 삑…… 네, 확인했습니다. ……WSD-2 프로토 1, 지금부터 임무를 개시…… 하겠습니다.”
기묘한 전자음이 히토미의 귀를 찔렀다.
그 소리는 아리사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리사는 계속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아리사 양!! 왜 그래, 아파! 이거 놔!!”
히토미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녀의 완력은 여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 미야사키 교수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큐이이잉! 치치치…….
기묘한 전자음이 다시 아리사의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으, 으아아…… 네, 네! 명령에 즉시 따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용서해주세요, 주인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던 아리사가 고개를 확 쳐들었다.
“히익! 아, 아리사 양!! 너, 너 대체 뭐야!?”
자신을 노려보는 아리사의 양쪽 눈동자가 기괴하게 붉은빛으로 점멸하는 것을 보고 히토미는 비명을 질렀다. 그 눈은 명백히 기계 부품으로 만들어진 의안이었다.
“혼, 혼조 양!? 그 눈은 대체 뭐야!? 으, 으악!”
“삑. 미야사키 히토미 박사, 마테리얼 컴퍼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WSD-2 프로토 1'. 지금부터 당신을 우리의 위대한 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혼조 아리사 아니야!? 싫어, 이거 놔!!”
“혼조…… 아, 리사……? 나, 나는…… 크윽…….”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아리사가 히토미를 덮쳤다.
“나는, 이제…… 이제, 나는 아니에요!!”
발버둥 치는 히토미를 짓누르는 아리사의 오른쪽 검지 끝에서 가느다란 주사 바늘이 튀어나왔다.
“히, 히익!?”
그 순간 히토미는 확신했다. 눈앞의 아리사는 인간이 아니다.
“안 돼, 싫어어어…….”
“부탁이에요, 교수님…… 움직이지 마세요. 금방 편해질 테니까.”
아리사는 무표정인지 울상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얼굴로 검지를 히토미의 목덜미에 찔러 넣었다.
“윽, 하으으으으…….”
약물이 주입되는 감각을 목덜미로 느끼며, 히토미의 의식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두 눈에서 생명의 광채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몸은 천천히 시트 속으로 가라앉았다.
“미, 미야사키 교수님…… 죄송해요…… 전 이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 ……구우우윽!”
의식을 잃은 히토미에게 말을 건네던 아리사가 다시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렸다.
전신을 격렬하게 떨며 극심한 통증인지 고뇌인지를 견뎌내던 아리사는, 이윽고 기계가 멈추듯 움직임을 멈췄다.
스윽 고개를 든 아리사의 눈동자는 이번엔 푸른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여기는 WSD-2 프로토 1. 방금 명령대로 임무 완료했습니다. ……네. 지금 즉시 귀환하겠습니다.”
마치 인형처럼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린 아리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차를 출발시켰다.
쏴아아아아…….
밤의 어둠, 그리고 빗소리에 묻혀 히토미를 태운 차는 자취를 감췄다.
제1화 / 끝
심야의 빌딩 숲 위로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인적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는 어두운 뒷골목을 경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차 안에는 두 여자가 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건 긴 흑발에 청초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소녀, 혼조 아리사.
그리고 조수석에서 깊게 잠든 이는 천해 의대의 고야사키 히토미 박사다.
경차는 유독 거대한 빌딩 뒤편에 다다르더니,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우웅-.
가볍게 엔진을 분사한 차가 주차장 안쪽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그곳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작은 게이트가 있었고, 경차는 그 문을 통과하자마자 멈춰 섰다.
철컥, 게이트가 조용히 닫혔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아리사가 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주위를 훑는다.
괴로운 듯 이마에 손을 얹고 있던 그녀는, 이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보, 보고드립니다! WSD-2 프로토 1, 지금 임무를 완료하고 귀환했습니다!”
가콘-!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방 전체가 기괴한 진동에 휩싸였다.
말할 것도 없다. 방 자체가 엘리베이터가 되어 지하로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깊이 내려가는 걸까. 2분이 넘는 하강 시간 동안, 흑발의 미소녀는 마치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정면만을 응시했다.
마침내 진동이 멈추고, 닫혀 있던 게이트가 다시 천천히 열렸다.
그곳엔 남녀 여섯 명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을 식별할 순 없었지만, 그중 둘은 여자 같았고, 리더로 보이는 백발의 남자는 뒷짐을 진 채 안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백발 남자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아리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차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조수석에 잠들어 있던 고야사키 히토미를 거칠게 끌어냈다.
가운을 입은 여자가 히토미의 몸을 옷 위로 더듬으며 상태를 체크한다.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체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백발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을 마친 네 사람은 곧이어 운반되어 온 차가운 금속제 원통 캡슐에 의식을 잃은 히토미를 눕히고는, 그대로 밖으로 실어 날랐다.
아리사는 그 뒷모습을 애처롭게 지켜보았다.
“고, 고야사키 선생님… 죄송해요… 저는… 저는…”
아리사의 이 중얼거림을 백발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구두 소리를 울리며 백발 남자가 천천히 아리사에게 다가왔다.
아리사의 표정이 공포와 긴장으로 아이처럼 굳어버렸다.
“WSD-2 프로토 1. 왜 그러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판저 박사님!”
“호오, 그치만 표정은 꽤 괴로워 보이는데…. 넌 모든 감정을 버린 사이보그가 됐을 텐데 말이야. 그래, 오직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 인형… 아니었나?”
“네,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앗!?”
그 순간, 아리사는 판저의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왜 지시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지! 왜 타겟 따위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거냐고!?”
“요, 용서해 주세요! 저는,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종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판저의 눈에 묘한 불꽃이 일렁였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라.”
“에!?”
아리사의 고운 얼굴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그때 그녀의 뇌 속에서 짧은 전자음이 울리더니, 눈동자가 황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시, 싫어… 아윽! …삐빅… 네… WSD-2 프로토 1은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녀의 의지로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사는 그 지시에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그리고 가죽 스커트까지 벗어 던졌다.
검은 실크 속옷과 숏부츠만 걸친 아리사의 눈동자는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드러난 아리사의 몸매는 그야말로 예술품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완벽한 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판저는 직립해 있는 아리사에게 다가가,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무심하게 움켜쥐었다.
“히긋!”
“이렇게 누구나 숨을 죽일 만큼 아름다운 몸으로 개조해 준 게 대체 누구지?”
“주인님… 입니다.”
“작았던 가슴을 이렇게 손바닥에서 넘쳐흐를 만큼 크게 만들어 준 건 누구냐고?”
“주, 주인님입니다!”
판저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사를 끌어안고는, 그 육체를 양손으로 거칠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하앗, 하아… 아아… 히야우….”
전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아리사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판저의 애무에 달콤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후후. 어때, 이렇게 음란하고 느끼기 쉬운 몸으로 개조해 준 게 대체 누구냐? 말해봐.”
판저는 아리사의 목덜미에 혀를 놀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히아… 아앗… 저를 충실한 사이보그로 개조해 주신 분은… 판저 박사님… 주인님… 당신입니다!”
그 순간, 음란한 충성의 맹세를 내뱉는 아리사의 허벅지 안쪽에서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우아아아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액체에 가랑이를 흠뻑 적시며 아리사는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인공 애액 분비 밸브가 헐거워진 모양이군? 흐흐흐.”
“아앗! 그럴 수가… 이 조정은 주인님이… 아앗! 주, 주인님 멈추지 않아요! 이제 전… 주인님 아아앗!!”
아리사가 절정에 다다르려던 찰나, 판저는 갑자기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아아앗! 싫어어!”
바닥에 주저앉은 아리사는 어정쩡한 절정감에 온몸을 떨며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웅크렸다.
어깨가 격하게 떨린다. 바닥에는 그녀의 가랑이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커다란 얼룩을 만들며 번져나갔다.
“으윽, 으으… 으윽….”
어느새 아리사의 입에선 오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런 꼴이….”
그 중얼거림에 판저는 냉소로 답했다.
“전부 네가 우수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넌 선택받은 거야. 감사는 못 할망정 원망할 건 없지. 뭐, 조만간 재개조에 들어갈 거다. 이번엔 아주 깔끔하게 감정을 지워줄 테니 안심해라. 그러면 그렇게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니까.”
아리사는 판저의 말에 경악하며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 그럴 수가!? 애초에 감정을 지운다는 소린 못 들었어요! 저를 이런 몸으로 만들어 놓고, 그런… 너무해요!!”
“…누구한테 입을 놀리는 거냐. 혼조 아리사… 아니, WSD-2 프로토 1!!”
“히익!? …삐비비빅!”
판저의 일갈에 다시 아리사의 머릿속에서 전자음이 요동쳤다.
“아앗! 머,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아아!! 으으…….”
뇌를 관통하는 격통에 주저앉아 있던 아리사였지만, 이내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삐빅! 죄송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종입니다. 마음대로 이 몸을 사용해 주십시오.”
“그래야지.”
차가운 미소를 짓는 아리사를 보며 판저는 만족스러운 듯 몸을 돌렸다.
“이제 됐나요?”
그렇게 물어온 건 대기하고 있던 여자였다.
판저는 그녀의 가볍게 웨이브 진 금발을 쓰다듬으며 그 금발 미녀에게 입을 맞췄다.
“로즈, 쟤는 아직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자기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걸, 몸속에 차가운 기계가 가득 들어찬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그 몸에 아주 뼈저리게 새겨줘라.”
로즈라고 불린 금발 미녀는 피처럼 붉은 루즈가 칠해진 입술을 낼름 핥았다.
“예스, 마스터.”
로즈는 걸치고 있던 트렌치코트를 무심하게 벗어 던졌다.
그 아래로 드러난 것은 선정적인 새빨간 에나멜 드레스와 하이힐 차림이었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뷔스티에 타입의 드레스는 허리까지 깊게 파인 슬릿과 어우러져, 웬만한 남자라면 순식간에 포로가 될 게 뻔했다.
로즈의 눈동자가 기괴한 진홍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더니, 그곳에서 채찍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채찍을 양손으로 움켜쥔 로즈는 발치에 웅크린 아리사를 내려다보았다.
“아리사, 전자기 채찍으로 벌을 줄게. 우후후후….”
눈동자의 점멸이 사라지고 다시 자아를 되찾은 아리사는 눈앞의 여자를 보고 공포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시, 싫어! 살려줘….”
바시익! 바리릿, 바리릿!!
다음 순간, 아리사는 강렬한 일격과 전격에 튕겨 나갔다.
바닥에 처박힌 아리사는 다급히 얻어맞은 오른팔을 확인했다.
“히, 히익!?”
아리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팔의 피부가 찢겨 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인 건 붉은 선혈이 아니었다.
치직, 치직- 작은 불꽃을 튀기는 기계 부품들이 그녀의 피부 아래에서 흉측하게 드러나 있었다.
“싫어어어! 난! 난! 인간이야아아!! 아니야! 이런 건 아니라고!!”
절규하며 바닥에 둥글게 몸을 만 아리사에게 로즈의 채찍이 가차 없이 쏟아졌다.
비시익!
바시익!
바리바릿!
“우아아아악!!”
로즈의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아리사의 아름다운 피부는 처참하게 찢겨 나갔고, 기계 부품들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팔뿐만 아니라 어깨, 배, 다리, 그리고 가슴까지.
전격으로 인한 대미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네 몸을 똑똑히 봐!! 네 몸에선 이제 피 한 방울도 안 나와! 나오는 건 인공 체액이랑 기계 부품용 윤활유뿐이라고! 알겠어?! 아하하하!!!”
그때 차가운 금속 골격과 채찍이 마찰하며 유독 거센 불꽃이 튀었다.
“꺄아아아악!! …삐비빅… 제발… 용서해 주세요… 으으….”
온몸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아리사는 널브러졌다.
보통 인간이라면 진작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취급이었다.
“…우후후. 네가 나쁜 거야. 넌 이제 인간이 아니야. 전신이 기계인 사이보그라고. 그걸 똑똑히 머릿속에 박아넣어.”
“네… 알겠습니다….”
“안 들려!!”
사냥감을 낚는 희열에 찬 로즈의 일갈이 채찍 소리와 함께 다시 아리사의 등을 덮쳤다.
바치치직!!
“기야아아악!!”
아리사의 등 가죽이 찢겨 날아갔다. 그 아래의 금속 척추가 처참하게 노출됐다.
그곳에 고압 전류가 때려 박혔다.
아리사의 생체 뇌로 쏟아진 격통은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삐-!! 내부 척추 장갑 손상!!! 삐빅!! ……!? 나, 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히, 히이이익!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저는 전신 기계 사이보그입니다!! 충실한 사이보그입니다!! 그러니까… 삐비비비빅! 생체 뇌 위험!!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아리사를 로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려다보았다.
“…그래, 아주 좋은 자세야. 이 마테리얼 컴퍼니의 일원이 된 이상, 명령은 절대적이야. 알겠니?”
“…삐… 삐빅… 알… 겠습니다… 으으….”
“섹사보그로 개조돼서 팔려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가는 계집애들이 어떤 개조를 당해서 출하되는지 너도 알잖아?”
로즈의 말에 아리사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온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멈추질 않는다.
“네, 네….”
“박사님 곁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알겠… 습니다….”
그대로 아리사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전신의 60% 가까운 피부가 찢겨 나갔고, 그 틈으로 드러난 기계 부품들이 쇼트를 일으키고 있었다.
바직! 바지직!!
“엄… 마… 삐… 인공 척추 회로 손상… 생체 뇌… 위험… 전 기능 긴급 정지… 어두워… 어두워… 추워… 추워요….”
모든 기능이 정지된 아리사의 눈동자에서 급격히 빛이 사라졌다.
빛을 잃은 눈동자는 그저 단순한 의안 렌즈에 불과했다.
“어머… 너무 심하게 했나 보네. 뭐, 부품 갈아 끼우고 피부만 다시 붙이면 되니까… 별문제 없겠지. 우린 이제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로즈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을 부르는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
그것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혼조 아리사는 염원하던 의사의 길을 향해 첫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난 고야사키 선생님 연구실에 아르바이트 조수로 가기로 했어. 어때? 아리사 너도 같이 안 갈래?”
대학 근처 찻집에서 아리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미즈사와 카나와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카나는 아리사에게 같이 연구실 알바를 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었다.
늘 활기찬 카나에 비해 아리사는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녔지만, 리드하는 건 언제나 카나였고, 그 카나의 폭주를 제어하는 건 아리사였다.
그렇기에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리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연구실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엣? 그 판저 박사님 연구실에 간다고!? 왜애!?”
카나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이 쏠리자, 아리사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카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관둬!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단 말이야!”
“에이, 카나. 너무 앞서나가는 거야. 박사님이 내 입시 성적을 좋게 봐주셨대. 그리고… 보수가 좋거든….”
그 한마디에 카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아리사의 가정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편모 가정이었고, 홀로 그녀를 키워준 어머니도 얼마 전부터 병으로 입원 중인 상황이었다.
아리사 스스로 장학금과 알바비로 학비를 벌고 있다는 걸 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구나… 알았어. 그래도 힘든 일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해.”
밝게 웃는 카나를 보며 아리사는 언제나 기운을 얻곤 했다.
카나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문득 아리사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안 되겠다. 카나, 미안. 나 지금부터 박사님 출장 수행하러 가야 해.”
“어, 아… 그렇구나, 그래서 짐이 그렇게 많았네.”
카나는 테이블 밑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큼지막한 여행 가방이 놓여 있었다.
“에헤.”
카나가 밑을 보며 웃었다.
“응? 왜?”
“우리 정말 취향 비슷하다니까. 봐봐, 지금 신고 있는 숏부츠 똑같아.”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들어 올리는 카나에게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 아하하… 그러… 네.”
아리사는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천해 의대 연구동 안은 어둡고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경쾌한 힐 소리를 울리며 아리사는 판저 박사의 연구실까지 찾아왔다.
이미 저녁때라 창문으로 스며드는 붉은 노을도 서서히 어둠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고야사키 히토미 같은 일반 연구원들이 있는 구역과는 격리된 듯한 장소.
낮에도 인적이 거의 없는 연구동 가장 깊숙한 곳에 판저 박사의 연구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아리사는 조심스럽게 연구실 문을 열었다.
안은 불도 켜져 있지 않았고 기척조차 없었다.
“아직… 아무도 안 온 건가?”
아리사는 가방을 일단 문옆에 내려놓고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박사의 개인실이 있었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기묘한 숨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누가… 있어. 두 명?”
아리사는 천천히 안쪽 방 문으로 다가갔다.
“아아… 박사님… 너무… 좋아요… 아아앗!”
그것은 틀림없는 여자의 신음이었다.
아리사는 방 안에서 지금 어떤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자, 잠깐만… 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아리사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학업 성적은 우수했지만, 남녀 간의 일에 관해서 아리사는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철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앗!?”
그대로 아리사는 중심을 잃고 방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에엣! 아니, 저기, 그게? 저, 저는… 그게…!”
명백히 당황한 기색의 아리사를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새로운 마테리얼이군요, 박사님.”
열린 문을 다시 닫으며 그렇게 말한 건, 놀랍게도 대담한 란제리 차림의 금발 미녀였다.
차가운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가 바닥에 넘어진 아리사를 훑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방문을 잠갔다.
아리사는 당황하면서도 가죽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백발의 과학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파, 판저 박사님!? 저는, 그게, 출장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혼조 아리사 양.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지.”
“네? 하, 하지만 다른 조수분들은….”
“모두 제5 수술실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수, 수술실… 이라뇨!?”
아리사는 판저 박사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려 한다는 것만은 직감했다.
“저, 저, 돌아갈게요! 죄송합니다!!”
다급히 일어나 문으로 달려가는 아리사를 금발 미녀가 제지했다.
“노, 놓아주세요!? 으윽!”
아리사의 양 어깨를 붙잡는 금발 미녀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가녀린 아리사의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로즈, 살살 다뤄라. 아직 생몸이니까 말이야.”
“명심하고 있어요.”
로즈라고 불린 미녀는 다짜고짜 아리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읍, 으읍!?”
발버둥 치는 아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즈는 아리사의 입술을 탐했다.
“우후후, 맛있네….”
이윽고 그 손은 아리사의 어깨에서 가슴과 하복부로 뻗어 내려갔다.
아담한 아리사의 가슴을 로즈의 손가락이 거칠게 주무르기 시작하자, 결국 아리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 기분 좋아서 우는 거니?”
로즈는 요염하게 웃으며 아리사의 가죽 스커트 밑단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싫어어어어!”
수치심과 처음 맛보는 감각에 뺨을 붉게 물들이며 아리사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껏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한 적 없는 곳으로 로즈의 손가락이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싫어! 싫어! 아파!”
그 모습에 로즈는 약간 놀란 듯 일단 손가락을 뺐다.
보니 그곳엔 붉은 선혈의 흔적이 있었다.
“세상에… 박사님. 이 마테리얼은 남자를 모르는데요?”
판저는 즐겁다는 듯 말하는 로즈에게 미소로 답했다.
“그것까지 고려해서 선정한 거다. 이 마테리얼은 상품으로 만들지 말라는 ‘회장님’의 명령도 있었고 말이야.”
“어머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로즈는 울먹이는 아리사의 턱을 잡아 끌어당겼다.
“잘됐네, 너 상당히 우수한 마테리얼로 뽑힌 모양이야. 이제부턴 동료야. 아니, 동료가 될 거지. 우후후, 사이좋게 지내자고.”
“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저, 저는 뭐가 뭔지….”
그때 갑자기 로즈가 아리사의 목덜미를 이빨로 확 깨물었다.
“후아아앗!”
아리사는 눈을 크게 떴다.
목덜미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무언가 이물질이 체내로 주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온몸에 힘이 빠지며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다.
털썩 주저앉는 아리사를 부축하며 로즈는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았다.
동시에 그곳에 삐죽 나와 있던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근육 이완제 주입 완료했습니다.”
“음.”
확인을 마친 판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술실로 갈까. 다들 기다리다 지치겠어. 우리 마테리얼 컴퍼니의 새로운 일원을 탄생시키는 거다. 크크크.”
아리사는 수술용 침대에 눕혀졌고, 전신에 시트가 덮였다.
당연히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
-뭐, 뭐야!? 나 어디로 끌려가는 거야!? 누가 좀 도와줘!!!
“파, 판저 박사님?”
갑자기 아리사의 귀에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그녀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그 목소리는 고야사키 히토미 박사의 목소리였다.
-고야사키 선생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수술인가요…?”
아리사의 마음속 비명을 알 리 없는 히토미는 시트로 덮인 수술대에 시선을 던졌다.
“아니, 방금 사고로 돌아가신 아가씨라서요. 이제 병리 해부로 넘기려던 참입니다.”
히죽거리며 웃는 판저에게 오한을 느꼈는지 히토미는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다 아리사의 발이 우연히 시트 밖으로 삐져나온 부츠에 머물렀다.
“카나랑 똑같은 부츠네… 그럼 젊은 아가씨겠구나. 가엾어라….”
-고, 고야사키 선생님! 알아봐 줘요!! 제발-!!
“그럼, 이만.”
히토미는 가볍게 목례하고 천천히 자리를 떴다.
-기다려요! 기다려요! 고야사키 선생님!! 가지 마세요!!
구두 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수술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시트 아래 아리사의 눈에서 절망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
아리사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깨어났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수술실의 거대한 조명등뿐이다.
이곳이 수술실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은 이 수술실로 끌려와 전라가 된 것, 그리고 마취 마스크가 씌워진 대목에서 끊겨 있었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전신의 감각이란 감각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시각과 청각만이 깨어 있을 뿐이었다.
“인공 심장 이식 완료했습니다. 인공 혈액 순환 시작합니다.”
“금속 골격 B에서 F까지 장착 들어갑니다.”
“인공 척추 신경 펄스 회로 접속률 25%.”
“뇌파 패턴 각성 레벨 20% 도달했습니다.”
카찰카찰.
아리사는 주변의 흰 가운 입은 그림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경악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수술하고 있었다.
그녀의 육체를 절개하고, 그것도 들어본 적도 없는 용어들이 오가는 기괴한 수술을 지금, 자신의 몸에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 아우우….”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아리사를 마스크를 쓴 남자 하나가 알아채고, 피 묻은 메스를 든 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판저 박사였다.
“오호, 의식이 돌아온 모양이군. 이것 좀 보게나.”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눈앞에 들이민 것은 투명한 캡슐에 담긴 장기였다.
아리사의 눈동자가 공포와 경악으로 커졌다.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장기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래, 이건 자네의 생식기… 자궁이야. 앞으로의 자네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라 제거했지. 걱정 말게. 섹스는 할 수 있도록 인공 성기를 확실히 심어줄 테니까.”
아리사는 너무나 큰 충격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야아… 야아아….”
“싫다고 해도 이미 자네 몸의 장기는 전부 적출해 버렸어. 음? 자네 장기는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식용으로 우리 회사가 책임지고 매각해 줄 테니까.”
죄책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판저가 내뱉었다.
“듣자 하니 자네 돈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마테리얼 컴퍼니의 일원이 되면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어. 자네 장기 매각 수익의 일부를 자네에게 환원하라는 회장님의 말씀도 있었거든. 잘됐지?”
아리사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리사는 분명 울고 있었다.
“으, 으으… 히극… 히극….”
“어라, 기뻐서 우는 건가? 아하하… 우는 건 그만두게. 인공 폐 접합이 아직 진행 중이라서 말이야. 회로에 에러가 생겨.”
그렇게 말하며 판저는 건네받은 회로를 아리사의 체내에 매립했다.
“아리사 양, 우리 회장님이 자네의 우수한 성적을 눈여겨보시고는… 꼭 우리 마테리얼 컴퍼니로 영입하고 싶다고 하셨네. 이건 대단한 영광이야. 영광으로 알라고.”
“아, 아우! 으으… 히극… 히극.”
아리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갑자기 납치된 것도 모자라 인체 실험의 모르모트처럼 젊고 깨끗한 육체를 난도질당하고, 전자 기계라는 이물질까지 박히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아리사의 눈물을 간호사 한 명이 거즈로 닦아주었다.
그 간호사는 다정하게 아리사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간호사는 바로 로즈였다.
“아리사, 넌 전신이 기계화 개조돼서 사이보그가 되는 거야. 우후후, 만화나 SF 같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아니야. 넌 진짜 기계 인간이 되는 거야. 이제 평범한 생활은 못 해. 그래… 나랑 똑같이 되는 거야!”
“그만하지 로즈, 아리사를 겁주면 안 되지.”
아리사의 체내에 묵묵히 전자 회로를 박아넣으며 판저가 나무랐다.
하지만 그 눈은 분명 아리사가 비탄에 잠긴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자, 이제 머리 수술로 넘어간다. 각성 레벨을 일단 제로로 돌려.”
그 말을 듣고 아리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부하려고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그조차 되지 않았다.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기계 인형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야아아… 야아아아… 우아아아아……!!”
가느다란 비명을 쥐어짜는 아리사의 머리를 로즈가 억눌렀다.
그리고 갑자기 로즈가 아리사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포기해. 네 예전 몸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까. 자, 봐봐. 후후후….”
“익!? 싫어어! 야아아아아악!!!”
놀랍게도 아리사의 목은 이미 잘려 나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 아래에는 붉게 물든 수술대 위에 가로누운 처참하게 절개된 육체가 있었고, 그곳에 원래 있던 장기들 대신 박힌 미세한 기계 부품들과 앞으로 아리사의 여성스러운 체형을 형성할 금속 골격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순간, 아리사의 눈동자에서 급격히 빛이 사라졌다.
탁하게 흐려진 눈을 뜬 채 아리사는 실신했다.
아니, 강제로 잠들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안구를 적출한다. 고감도 센서와 인공 각막 렌즈 준비해. …메스!”
*
“개조 수술 후 조정은 무사히 끝난 모양이군. 자네는 이제부터 우리 마테리얼 컴퍼니의 일원이다. 형식 번호 WSD-2 프로토 1, 알겠나.”
그녀가 눈을 뜨고 끌려온 곳은 도쿄 도심의 초고층 빌딩 최상층이었다.
철저한 보안이 깔린 그 방에 판저 박사와 함께 들어온 그녀는, 안쪽의 화려한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를 마주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아리사는 판저의 지시로 속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아름다운 꽃 자수가 놓인 광택이 선명한 펄 화이트 차이나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와 같은 색의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을 낀 손을 양옆에 붙이고, 발에는 진홍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언뜻 보면 고급 창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리사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자 긴 흑발이 뺨을 덮는다.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아리사의 하얀 피부 위로 쏟아지는 흑발 역시 전부 새로 심어진 인공 모발이었다.
하지만 그 하얀 피부와 흑발의 조화는 요염함과 예전의 청초함을 동시에 자아냈다.
“우리 마테리얼 컴퍼니에 온 걸 환영한다. 새로 태어난 자네를 환영하지. …후후후, 그 차이나드레스가 꽤 잘 어울리는군.”
남자의 얼굴은 등 뒤의 거대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역광이 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계화된 눈동자는 그 남자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남자는 손에 든 그녀의 데이터를 훑었다.
“소체명 혼조 아리사… 18세. 젊군….”
남자의 말에 ‘WSD-2 프로토 1’이라는 물건의 이름을 부여받은 아리사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기억을 지워지진 않았지만, 뇌의 일부가 기계화되어 버렸다.
그 부분에 마테리얼 컴퍼니에 대한 절대 복종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판저.”
“네, 회장님.”
늘 오만불손하던 판저 박사도 이 ‘회장’이라 불리는 인간 앞에서만큼은 꼼짝 못 하는 기색이었다.
“고야사키 히토미 박사 확보 건, 알고 있겠지.”
“네. 당초 회장님의 계획대로 이 새로 개조한 WSD-2 프로토 1을 사용하겠습니다. 곧 낭보를 전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남자는 선글라스 너머로 부동자세의 아리사를 빤히 쳐다봤다.
“WSD-2 프로토 1…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그 말에 반응하듯 아리사의 눈동자가 황색으로 빛났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전자음이 울렸다.
“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사이보그로 개조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저, WSD-2 프로토 1은 마테리얼 컴퍼니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아리사는 차가운 인형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전의 아리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갑고 무기질적인 웃음이었다.
“후, 후후후. 그 인형 같은 미소… 그래야 우리 일원이 된 사이보그답지. 귀여운 녀석… 판저, 자네의 개조 수술은 언제 봐도 훌륭하군….”
“과찬이십니다. 오늘 밤은 이 신형을 마음껏 맛보시지요. 남자를 모르는 채로 사이보그로 개조했으니 어떤 반응을 보일지… 향후 섹사보그 개발에 좋은 데이터가 될 겁니다.”
“후후, 자네답군. 즐겨보도록 하지….”
고개를 숙인 판저는 아리사를 남겨두고 퇴실했다.
홀로 남겨진 아리사는 프로그램에서 자아를 되찾았다.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내리깐 눈으로 입을 열었다.
눈동자는 원래의 칠흑색으로 돌아왔지만 의안 렌즈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회, 회장님… 한 가지만 확인해도 될까요.”
“뭐지?”
“어머니의 치료비 건은….”
“걱정 마라. 앞으로의 학비, 생활비, 어머니의 치료비 기타 등등… 충분한 보수를 약속하지. 단, 네가 우리를 위해 충실히 일한다는 조건하에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계 몸을 유지하려면….”
“판저에게 잘 들은 모양이군. 그래, 어차피 너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단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의자를 돌려 창밖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첫 번째 임무를 주지. 이리로 와서 나를 받들어라. 네가 얼마나 정밀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개조됐는지 오늘 밤새도록 꼼꼼히 검사해 주마.”
그때 아리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거부하는 사고는 애초에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의 기계화된 전자 두뇌가 강제 명령 프로그램을 발동시켰다.
“아앗! 삐빅! 알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기뻐요, 회장님….”
표정을 싹 바꾸고 눈동자를 요염하게 빛내며, 아리사는 창녀처럼 입가에 미소를 띠고 회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아….”
속옷을 입지 않은 아리사의 가랑이 사이로 은빛 이슬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기계 몸은 무조건 발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었다.
“실례… 하겠습니다. 마음껏 저의 새로 태어난 몸을 맛봐 주세요. …아아아.”
-이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난 이제…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아리사는 프로그램에 강제된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요염한 얼굴로, 회장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제2화 / 끝
히토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좁고 어두운 공간 속에 갇혀 있었다.
주변은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어,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자신이 눕혀져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양손과 양발은 단단히 구속된 건지, 아니면 약 기운 때문인지 움직이기는커녕 감각조차 없는 상태였다.
입에는 재갈 같은 구형 볼 개그(Ball Gag)가 물려 있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읍, 으으으으읍!!!”
히토미는 필사적으로 신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끔찍한 공포를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자신을 납치했던 혼조 아리사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사라졌다.
그 비정상적인 힘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보아, 혼조 아리사는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전자음을 울려대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모습은 마치 기계 인형 같지 않았던가.
—사이보그?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연구실에서 카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이보그의 존재는 공표되지 않았을 뿐,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리사는 누군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당했다는 말인가.
삐이이인—.
갑자기 이명이 들렸다.
그 이명은 히토미의 머릿속에 수천 개의 바늘을 찔러넣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몰고 왔다.
“으브으으으으으으윽!!”
너무나 큰 고통에 히토미의 의식은 급격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때까지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게 되었다.
깊은 어둠 너머로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녀 시절의 히토미 본인이었다.
기억났다.
히토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미 예전에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
어둡고 지저분한 창고 안에서 교복 차림의 히토미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윽!”
뒤로 묶인 밧줄이 손목을 파고들어 아려왔다.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잡으려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온몸에 남은 마비 기운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애쓰는 히토미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공간에 새어 나갔을 때, 갑자기 남자의 그림자가 히토미를 덮쳤다.
“!?”
남자는 바로 곁에 있었다.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발버둥 치는 히토미의 모습을 즐겁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뭐야, 약효가 다 떨어진 모양이네?”
—약!?
히토미는 이 몸의 마비 원인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 남자들에게 약물을 주입당해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다.
“조금 더 자고 있었으면 무서운 꼴 안 당하고 좋았을 텐데 말이야.”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의식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히토미는 입에 물린 개그 틈새로 침을 흘리며, 내려다보는 남자를 치켜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남자는 히토미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허리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으, 으읍!?”
히토미의 경악을 즐기듯 남자는 수첩을 펼쳤다.
그것은 히토미의 가방 안에 들어있어야 할 학생수첩이었다.
“흐음, 미야사키... 히토미 양이네. 오, 중학교 3학년인가... 세일러복이라, 좋네.”
조롱 섞인 남자의 말에 히토미는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히토미는 후회했다.
고교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중학교 3학년 겨울, 히토미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친구 두 명과 함께 기분 전환 삼아 시내로 나갔다가 남자들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모델 한번 해보지 않을래?”
평소의 히토미라면 분명 수상쩍은 그들의 제안을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친구들도 함께였기에 히토미의 경계심도 느슨해져 있었다.
남자들의 유도에 따라 무심코 건물 뒤편으로 들어갔을 때, 히토미의 의식은 암전되었다.
“어...?”
온몸의 힘이 빠지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도 못한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든 히토미가 본 것은, 자신 앞에서 똑같이 쓰러져 있는 친구 두 명의 모습이었다.
히토미 일행을 붙잡은 남자들은 곧바로 건물 뒤편에 대기시켜 둔 승합차에 세 소녀를 던져 넣었다.
“아... 아... 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온몸이 저리고 의식이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 뒷좌석에 굴려진 히토미의 귀에 희미하게 남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수고했어. 이번엔 세 구인가. 이걸로 어떻게든 수주 기한은 맞추겠군.”
“얘네들, 바로... 되는 건가?”
“그래. 준비는 다 끝났어. 오늘 밤에라도 바로 작업 들어갈 예정이다.”
의식이 몽롱한 히토미로서는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끔찍한 음모에 휘말렸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세계로.
여기까지가 이 어스름한 창고로 끌려오기 전까지 히토미의 기억이다.
그리고 문득 히토미는 깨달았다.
함께 있던 친구들, 레이코와 메구미는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로 끌려갔는지.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응? 친구들을 찾고 있는 건가?”
남자의 말에 히토미는 몸을 움찔 떨었다.
“글쎄, 첫 번째 애는 벌써 수술이 끝났을 시간이고. 두 번째 애는 딱 한창 진행 중이겠네.”
“!?”
히토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레이코와 메구미가 수술을 받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애초에 어떤 수술을 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확실한 것은,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사실이었다.
철컥!
무거운 철제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 안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눈앞의 남자와 똑같이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약간 왜소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었다.
“어때, 상태는?”
“눈을 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한 번 더 재워둘까요?”
중년 남성은 창백해진 채 누워있는 히토미를 보더니 비열하게 입술을 핥았다.
“아니, 곧 두 번째 수술이 끝난다. 그 뒤에 바로 세 번째... 이 계집애 개조 수술을 시작할 거니까 지금 수술실까지 옮겨.”
히토미는 중년 남자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개조 수술’이라고 중년 남자는 분명히 말했다. 게다가 자신은 세 번째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레이코와 메구미는 이미 그 개조 수술을 받았다는 말인가.
“으으으읍!!”
무아지경으로 히토미는 몸을 움직였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도망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히토미는 손목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이런 이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라니까요.”
“미안, 미안. 입이 미끄러졌네.”
남자들은 발버둥 치는 히토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묶여 있는 소녀 곁으로 다가왔다.
퍽!
“윽, 으헉!?”
히토미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자의 구둣발 끝이 가차 없이 누워있는 히토미의 하복부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어이, 내장에 상처 내지 마. 귀한 상품이니까.”
“알고 있다니까요.”
남자들의 낮은 비웃음이 들렸다.
히토미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애썼다.
“자, 일어나시지. 공주님.”
남자는 나이프로 히토미의 다리를 묶고 있던 밧줄만 끊어내고, 히토미를 끌어올리듯 일으켜 세웠다.
“응?”
중년 남성은 히토미가 일어난 자리 바닥에 커다란 얼룩이 생긴 것을 보고 저질스러운 목소리로 웃었다.
“너무 무서워서 지려버렸나? 뭐,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리 현상이지. ...뭐, 이게 마지막이 되겠지만 말이야.”
중년 남자의 말은 히토미의 귀에 거의 닿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가 자신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는 말을 내뱉고 있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 걷는 거야.”
축축한 가랑이에 교복 치마가 달라붙어 불쾌감이 히토미를 덮쳤다.
창고를 나선 앞에는 어둡고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건물 안인 것은 확실했고, 약간 규모가 큰 동네 병원 같은 느낌의 건물이었다.
이윽고 비틀거리며 걷던 히토미와 남자들이 T자 통로에 다다랐을 때, 한 무리가 지나갔다.
그 흰 가운 차림의 무리는 하얀 시트가 덮인 카트를 에워싸듯 히토미 일행 앞을 지나가려 했다.
“어이, 그게 첫 번째인가? 이제 포장하러 가는 건가?”
중년 남자의 물음에 무리는 발을 멈췄고, 책임자로 보이는 마스크를 쓴 남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구속된 히토미에게 향했다.
“허허, 이번엔 정말 좋은 소재를 조달한 모양이군.”
기쁘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남자는 시트 끝자락을 쥐었다.
“한번 볼 텐가? 아주 잠깐만.”
남자가 천천히 시트를 걷어 올렸을 때, 히토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시트 아래로 보인 것은 머리부터 온몸을 감싸고 얼굴 부분만 노출시킨 메탈릭 슈트를 입은 소녀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레, 레이코!?
“어때, 훌륭한 완성도지?”
“아아, 겉모습만 봐서는 생사람이나 다름없군.”
히토미는 너무나 큰 충격에 쓰러질 뻔했지만, 남자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왜 쓰러지고 난리야. 가자고.”
흰 가운의 남자는 시트를 원래대로 덮고는 히토미와 반대 방향 통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방금 본 레이코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하얬다.
하지만 그 하얀색은 도자기처럼 인공적인 하얀색이었다고 히토미는 생각했다. 가짜 피부.
멍하니 끌려가던 히토미는 마침내 커다란 철제 문 앞에 도착했다.
공포에 떨던 히토미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양옆의 남자들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소용없었다.
히토미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문 위에는 ‘수술 중’이라는 붉은 전광판이 켜져 있었다.
덜컥.
문이 열렸다. 히토미가 짧은 비명을 내지른 그 앞에는 수술복 차림의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애가 세 번째군요.”
“그래, 맞아.”
“안으로 들어오세요. 곧 두 번째 수술이 끝납니다. 그 직후에 바로...”
간호사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히토미가 거의 울기 직전인 상태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약효가 다 떨어진 건가요?”
“아, 곤란한가요? 원하신다면 여기서...”
“아니요, 안쪽 상황을 보면 알아서 기절하겠죠.”
간호사가 마스크 아래로 미소를 지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히토미는 어두운 수술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치이이이잉—.
지지직...
카슝, 카슝.
삐삐삐삐—!
히토미의 정면 수술대 위로 자신과 비슷한 또래 소녀의 나체가 흰 가운을 입은 남자들 사이로 언뜻 보였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도저히 일반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수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공장에서 기계를 조립하는 듯한 소리였다.
게다가 그녀의 코를 찌른 것은 오일인지 기름인지 모를 기분 나쁜 냄새였다.
“으, 으으읍!!”
수술대 위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친구인 메구미다. 메구미가 지금 눈앞에서 몸이 절개된 채 수술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히토미가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그곳에 있었다.
수술대 위의 메구미는 얼굴만 남기고 뒷머리부터 온몸이 기계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그 기계에는 천장에서 내려온 수십 개의 전자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게다가 육체는 세로로 길게 절개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본 적도 없는 기괴한 인형 기계가 매립되어 있었다.
보니 흰 가운의 남자들이 메구미의 양다리와 양팔을 연결하는 한창이었다.
히토미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건 꿈이다, 꿈이 분명해.
간호사는 히토미가 실신하지 않은 것에 약간 감탄 섞인 소리를 냈다.
하지만 멍하니 기계 몸으로 개조되어 가는 친구의 모습을 목격하며, 히토미의 마음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메구미의 개조 수술을 히토미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지켜보았다.
수술 자체는 거의 끝난 모양인지, 기계체의 연결이 완료된 메구미의 피부 위로 인공 피부가 능숙하게 입혀지는 광경을 바라보던 히토미의 뺨이 왠지 모르게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을 눈치챈 것은 히토미 곁에서 다음 수술 준비를 시작하던 그 간호사였다.
“어머... 너...”
히토미는 상기된 뺨과 몽롱한 눈빛을 간호사에게 향했다.
그녀의 어깨는 가늘게 계속 들썩이고 있었다.
“별난 애네. 친구가 개조되는 걸 보고 흥분하다니...”
“!?”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부정하는 히토미를 무시하듯 간호사는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수술대 위에서는 인공 피부가 씌워진 메구미에게 아까 레이코와 똑같은 메탈릭 슈트가 입혀지고 있었다.
“개조 수술 완료!”
흰 가운의 남자들이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동시에 수술대에서 메구미는 카트로 옮겨져 밖으로 실려 나갔다.
카트가 히토미 앞을 지나가려 했다.
“앗!?”
재갈 아래로 부르려던 히토미의 목소리에 카트 위의 메구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떠 있는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는 아무 말 없이 천장을 향해 있었다.
“어이, 눈꺼풀 닫아 둬. 의안 렌즈에 흠집 나겠어.”
메구미에게 하얀 시트가 덮였고, 수술실 밖으로 운반되었다.
히토미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공백의 시간이 그녀의 의식을 감싸 안았다.
“자, 이제 한 고비 남았군. 이 계집애 개조를 계속 진행한다.”
“!?”
히토미는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혀 수술대로 끌려갔다.
“으읍! 으으으읍!!”
남자 여러 명에게 들려 올려진 히토미는 수술대에 결박당했다.
수술대 위는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먼저 수술받은 레이코와 메구미의 피와 체액의 잔해였다.
“이제 됐겠지. 재갈을 풀어줘.”
흰 가운의 남자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백발의 남자가 히토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시를 내렸다.
재갈은 풀렸지만 사지가 구속된 히토미에게 더는 살아날 길은 없었고, 비명은커녕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준비는 그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세일러복이 벗겨진 히토미의 나체에 수많은 코드가 부착되어 갔다.
게다가 주사기로 정체 모를 약물 주입도 시작되었다.
“아아... 아아...”
공포로 부들부들 떠는 히토미의 입에 간호사가 마취 마스크를 가져다 댔다.
—살려줘! 누가 좀 살려줘!! 엄마!!
“으브으으으읍!!”
마취 마스크가 씌워짐과 동시에 히토미의 의식이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저 기계 인형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으윽! 으으으윽!”
히토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것은 덧없는 저항이었지만.
그때였다.
콰광!!
그 철제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무리가 수술실로 들이닥치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까지다! 전원 체포한다!!”
그 말을 수술대 위의 히토미는 끝까지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의식은 거기서 다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이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히토미는 알 길이 없었다.
*
소녀 시절에 맛보았던 공포를 이때 미야사키 히토미는 떠올렸다.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었기에 그녀는 구출된 뒤, 이 일련의 사건에 관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되살아났다.
급격히 주변의 어둠이 하얗게 변해갔다.
“......”
백색광의 세계에서 히토미는 현실 세계로 다시 끌려온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감각이 현실의 공기에 닿아 있음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절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히익!?”
히토미는 자신의 시선 끝에 있는 조명이 수술용 거대 조명이며,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수술용 침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보았던 소녀 시절 공포의 기억의 재현이자, 그 연장선일 뿐이었다.
챙강챙강...
삐—, 삐—!
치이이이이잉!
파지직, 파직파직!!
히토미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보려 했다.
“아, 안 돼애애애애애액!!!”
그것은 절규였다.
히토미의 양팔과 양다리는 어깨와 사타구니에서 절단되어 사라져 있었고, 그곳에는 무수한 튜브와 코드가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복부도 크게 절개되어 있었으며, 그 안에 흰 가운의 남자들이 기계 부품을 매립하고 있었다.
기계 부품을 연결하기 위한 불꽃이 튀고, 생살이 타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 뭐야?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아아!! 그만둬어어!!”
순간, 히토미의 가슴에 격통이 달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극심한 통증에 머리를 뒤로 젖히는 히토미를 아랑곳하지 않고, 흰 가운의 남자들은 히토미의 절개된 가슴에서 격렬하게 고동치는 장기를 꺼냈다.
“인공 심장으로 교체한다. 심장 절제.”
“그, 그만... 그만...”
히토미의 신음은 무시당했다.
그녀의 심장은 순식간에 절제되었고, 대신 전자 기기 덩어리인 인공 심장이 체내에 매립되었다.
차례차례 장기가 적출되는 감각에 몸부림치던 히토미는 이윽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지금, 시작된 것이다.
*
“...히토미 군, 미야사키 히토미 군...”
누군가 귓가에 속삭여 왔다.
각성해 가던 히토미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 다, 당신은!? 판저!!”
“어서 오십시오, 우리 조직 머티리얼 컴퍼니(Material Company)에. 당신을 이렇게 개조할 수 있게 되어 이 판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 아앗!!”
카슝, 치이이잉.
히토미의 두 눈에서 기이한 구동음이 들렸다.
동시에 시야 구석에 마치 모니터 같은 정보가 투영되고 있었다.
“이, 이건!?”
“어떻습니까? 최신식 인공 안구의 상태는. 앞으로 당신의 업무에는 이 정도 기능은 필수적이니까요.”
“시, 싫어! 이런 건 내 눈이 아니야!!”
“익숙해지면 기계 몸도 마음에 들 겁니다. 게다가 당신의 육체는 뇌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계화 개조를 마쳤으니까요. 익숙해지지 않으면 방법이 없겠죠.”
“!?”
히토미는 침대에서 튀어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체내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구동음에 말을 잃었다.
규이이이잉. 카샤, 카샤.
그 소리는 어깨에서 팔꿈치, 손가락 하나하나를 움직이려 할 때마다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 그럴 리가... 거짓말... 거짓말이야...”
몸을 일으킨 히토미는 이미 구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전라 상태였다.
“아, 안 돼!”
자신의 육체를 확인하듯 히토미는 양어깨를 스스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표면은 사람 피부에 가깝지만 분명히 지금까지의 피부와는 달랐다.
관절 부위에는 희미하게나마 이음새 선 같은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체내 골격 곳곳에서도 그 미묘한 구동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심장 소리도 맥박도 전부 의사(擬似)적인 것이리라.
그것은 이제 이전의 인간 몸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아, 아아......”
“이해하셨습니까? 당신의 육체는 완전히 기계 장치로 된, 말하자면 인형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그래요, 생살로 남은 건 당신의 총명한... 여기뿐이라는 거죠.”
판저가 즐겁다는 듯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댔다.
히토미의 두 눈에서 절망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악몽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히토미는 그저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싫어! 내 몸... 원래의 생사람 몸으로 돌려줘!! 제발!!”
“불가능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도 과학자 말단이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당신의 뇌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건 회장님의 명령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울 수 있는 것도 회장님 덕분이라는 겁니다. 감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히죽거리며 그렇게 고하는 판저의 말에 히토미는 증오 섞인 눈빛을 보냈다.
“나를 이런... 기계 괴물로 만들어버리다니... 당신들은 악마예요!!”
“그 악마를 위해 일하는 사이보그로 당신은 다시 태어난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 조직을 위해 일하는 겁니다.”
“거절하겠어요!! ...이런...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판저는 울부짖는 히토미를 관찰하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뭐, 나머지는 회장님께 맡기도록 하죠.”
그렇게 말한 판저는 방을 나가려 했다.
“기, 기다려!”
“뭡니까?”
“당신들은... 혼조 아리사 씨를... 대체 당신들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아아... WSD-2 프로토 1(Proto-1) 말입니까.”
“다, WSD...? 설마, 말도 안 돼...”
판저는 히토미에게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녀도 우리 조직의 사이보그로 개조했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조직의 일원이죠.”
“세상에... 너무해...”
판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을 나갔다.
그 방에서는 절망에 잠겨 흐느끼는 히토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회장님, 미야사키 히토미의 개조 수술이...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회장실에서 그렇게 고한 것은 화이트 펄 색상의 차이나드레스 차림을 한 혼조 아리사였다.
회장은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 너머로 도발적인 아리사의 모습을 관찰했다.
처음 아리사가 회장을 알현했을 때와 같은 의상이다.
그때 이후로 아리사가 회장에게 불려 올 때는 이 드레스를 입을 것을 명받았다.
“그런가... 개조 수술이 끝났나.”
“네. 이걸로... 미야사키 히토미...도, 우리 머티리얼 컴퍼니의 일원이 된 셈이군요.”
약간 말을 고르며 대답하는 아리사의 모습을 회장은 즐겁다는 듯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양심이라도 가책을 느끼나?”
아리사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히토미를 납치했을 때의 행동을 문책당해, 판저 박사의 부하인 여성 사이보그 로즈(Rose)에게 처참하게 기계 몸을 유린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리라.
“아, 아니요. 저는 머티리얼 컴퍼니에 충성을 맹세한 사이보그입니다... 명령만 내리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따르겠습니다...”
회장은 아리사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아무리 망가져도 부품만 갈아 끼우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사이보그로 개조되어서 행복하겠구나, 너는.”
이 회장의 말은 명백히 아리사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아리사에게 자신이 더는 인간이 아니라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사이보그임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네, 네. 사이보그로 개조해 주셔서 저는... 행복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겨우 중얼거린 아리사의 말에 회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야사키 히토미... 그녀의 연구와 두뇌는 앞으로 우리의 자산이 될 거다. 섣불리 세뇌나 뇌 개조를 명하지 않은 건 그것이 손실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네...”
“그녀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협력을 받아내야 한다.”
“네, 네. 하지만 회장님...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아는 한 미야사키 히토미...가 조직에 협력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음.”
회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의자를 돌려, 등 뒤 창문 너머로 펼쳐진 고층 빌딩 숲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저 미야사키 히토미는 정의로운 척하는 과학자 따위가 아니야. 그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건 우리와 같은 종류지.”
아리사는 그 말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그녀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에 아리사는 그 의안을 가볍게 깜빡였다.
아리사도 모르는 히토미를 회장이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WSD... 아니, 아리사.”
“!!”
이름으로 불리자 아리사는 표정을 굳혔다.
“회, 회장님... 저는... WSD-2 프로토 1...입니다. 조직의 소유물인 저를 형식 번호로 불러 주십시오...”
회장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녀를 이름으로 부른 것도 일부러였다.
아리사가 얼마나 조직의 사이보그임을 자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이기도 했다.
“좋다, 너는 이제 훌륭한 머티리얼 컴퍼니의 충실한 사이보그가 되었군.”
“영광입니다, 회장님.”
삐삐삣!
아리사의 표정이 갑자기 이전과는 다른 요염한 미소를 띠었다.
이미 회장으로부터 다음에 내려질 명령을 예측하고 프로그램이 기동했다는 증거였다.
그전까지의 아리사와는 전혀 딴판인 요염한 광채가 그 가짜 두 눈에 감돌았다.
“그럼, 늘 하던 대로 봉사해 주실까. 그 후에 미야사키 히토미를 만나러 가자. ...너도 같이 말이야.”
“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회장님...”
아리사는 붉은 루주가 칠해진 입술에 미소를 띠며 회장의 의자로 다가가 그 몸을 회장에게 맡겼다.
드레스 위로 가슴을 주무르는 회장의 손길에 맞춰 아리사는 뜨거운 숨결을 회장의 얼굴에 내뿜었다.
—미야사키 선생님, 당신도 저와 같은 기계 인형이 되어버렸군요...
카나... 미안해...
그 순간, 아리사는 가랑이 사이의 인공 성기에 회장이 침입을 시작한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생체 뇌로 전류와도 같은 쾌락 펄스가 흘러 들어왔고, 아리사는 관능적인 교성을 회장실에 격렬하게 울려 퍼뜨렸다.
제3화/끝
아마미 의대 미요사키 히토미 연구실의 조수, 미즈사와 카나는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험악한 표정으로 대학 사무실 창구를 거칠게 두드렸다.
“잠깐만요! 장기 해외 출장이라니, 전 들은 적 없다고요!”
벌써 일주일 가까이 히토미와 연락이 닿지 않는 카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접수처의 여직원에게 달려들었다.
“전 미요사키 교수님 조수예요! 그런 저한테 아무 말도 없이 교수님이 장기 해외 출장을 가셨을 리가 없잖아요!”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전형적인 여직원은 두꺼운 안경을 중지로 밀어 올리며,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를 지르는 카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본인이 직접 정식 출장 신청 서류를 제출하셨습니다. 저희는 절차대로 처리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 서류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못 알아듣겠어요? 아·줌·마!!”
카나의 도발에 평정심을 유지하던 여직원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학생… 조수라고 자꾸 그러는데, 그냥 아르바이트생 아니야? 교수님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건… 뭐, 뻔하네. 잘린 거 아니야? 가끔 있거든, 쓸모없는 조수한테 직접 말하기 껄끄러우니까 그렇게 은근슬쩍 정리하시는 분들이….”
송곳 같은 비아냥에 카나는 할 말을 잃고 굳어버렸다.
“이, 이 아줌마가 진짜! 말 다 했어?!”
참다못한 카나가 고함을 버럭 질렀지만, 그 순간 접수 창구의 유리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퍽!!
창구 옆 벽을 주먹으로 내리친 카나는 씩씩거리며 대학 건물을 빠져나왔다.
“진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님이… 교수님이 나한테 말도 없이 해외 출장을 갈 리가 없는데….”
분노로 가득 찼던 혼잣말은 어느새 짙은 슬픔으로 변해 있었다.
미요사키 히토미는 카나에게 전 과외 선생님이자 은사였고, 지금은 동경하는 여성 연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로서의 기쁨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특별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교수님 곁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연구실에서 히토미를 마지막으로 본 그 비 내리는 밤, 남자 친구들과 놀러 나갔던 것을 카나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절대 이상해. 교수님한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까 창구에서 확인한 서류상으로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의심스러운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지금 단계에선 미요사키 히토미가 실종됐다고 단정 지을 근거가 하나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연락이 전혀 안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절친인 혼조 아리사와도 한 달 넘게 얼굴을 못 봤다. 집 PC로 가끔 오는 메일에는 조수로 있는 판저 박사를 따라 해외 학회에 참석 중이라고 했지만, 거의 소식 끊긴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빨리 돌아와, 아리사… 나 혼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잠시 약한 소리를 내뱉던 카나의 눈빛이 금세 다시 매섭게 돌아왔다.
“혼자 징징대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수님 행방을 찾아내고 말겠어!!”
카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주먹을 꽉 쥐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그 무렵, 조직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된 혼조 아리사는 머티리얼 컴퍼니 회장의 남다른 총애를 받는 몸이 되어 있었다.
낮에는 유능한 회장 비서로, 밤에는 성처리용 인형으로. 기계로 개조된 몸을 바쳐야 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리사는 비서로 임명되면서 회장실 바로 옆에 딸린 개인실을 배정받았다. 인간이었을 때 아리사는 밝은색 옷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검은 슈트와 타이트스커트, 스타킹과 하이힐까지 온통 검은색뿐인 옷을 입고 있다. 머티리얼 컴퍼니의 조직원들도 모두 이런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리사는 알지 못했다. 그저 회장의 취향이라는 것뿐.
아리사는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쓸어 넘겼다. 눈처럼 하얀 인공 피부 위로 늘어진 길고 아름다운 흑발 역시 개조될 때 심어진 인공 모발이었다.
“카나….”
디스플레이를 응시하던 아리사의 붉은 입술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면에는 카나가 아리사에게 보낸 이메일이 띄워져 있었다.
“카나, 이제 제발 그만해. 미요사키 교수님을 찾는 건 멈춰… 안 그러면 너까지 위험해져….”
아리사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궜다.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삐빅! 삐비빅!
“하윽?!”
그 순간 아리사의 눈동자가 푸르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손목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누군가 그녀의 전자 두뇌에 직접 접속해 온 것이다.
“네… 여기는 WSD-2 프로토 1입니다.”
접속지는 바로 옆 회장실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통신이 끊기자 눈동자의 점멸도 멈췄다. 아리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옥션이 열리는 날이었지….”
아리사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옥션.
조직이 석 달에 한 번, 이 빌딩 지하 강당에서 개최하는 어둠의 상품 발표회다. 조직이 준비한 사이보그 소체를 비롯해 각종 ‘머티리얼’의 매매가 이루어지고, 계약이 성사된 소체는 즉시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맞춰 수술과 조정이 가해진다. 전 세계 정·재계의 거물들이 주요 고객인 이 옥션은 조직의 핵심 수입원 중 하나였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회장실은 빌딩 최상층에 있었다. 방 안쪽 거대한 책상 뒤에 머티리얼 컴퍼니의 회장이 앉아 있었다.
“첩보부에서 재미있는 보고가 들어왔더군.”
“네?”
아리사는 미소를 띠며 다가갔다. 그 미소가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프로그램의 산물인지 아리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미요사키 히토미의 행방을 쫓는 계집애가 있는 모양이야.”
화면을 확인하던 회장이 책상 위에서 팔짱을 끼더니, 정면에 선 아리사를 향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리사?”
그 말에 아리사는 들고 있던 옥션 자료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얀 인공 피부가 더욱 창백해질 정도로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애 이름이… ‘미즈사와 카나’라고 하더군. 그래, 네 절친이었지?”
“아, 아앗, 그, 그게….”
“이대로 놔두면 미요사키 히토미뿐만 아니라 네 정체까지 의심하게 될 게 뻔해.”
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리사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카, 카나에게는… 제가 판저 박사님과 해외 학회에 가 있다고 말해뒀습니다… 거,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정하지? 후후… 차라리 그 계집애도 조직으로 끌어들일까? 그게 너나 미요사키 히토미에게도 기쁜 일 아니겠나?”
“그, 그럴 수가?!”
아리사가 초조함과 경악이 뒤섞인 눈으로 회장을 바라보았다.
“제발 부탁입니다! 카나에게는, 카나에게만은 손대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순간 아리사는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턱을 괴고 앉은 회장이 정면에서 아리사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었지만, 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안광은 사이보그인 아리사조차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 아아….”
극심한 공포에 아리사는 눈을 부릅뜬 채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WSD-2 프로토 1, 대답해라. 네놈은 나의 무엇이지?”
“저, 저, 저는… 조직의… 충, 충실한 사이보그…입니다. 회장님께… 절대복종을 맹세한, 노, 노예입니다….”
아리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하얀 치아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노예가 감히 나에게 의견을 내다니… 역시 인간의 감정을 좀 더 지워버리는 게 좋겠군.”
“그, 그것만은, 그것만은 제발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 요….”
아리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눈에서 눈물이 아닌 갈색 윤활유를 뚝뚝 흘렸다.
“아주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회장님.”
그때 아리사를 구한 건 역설적이게도 회장실로 들어온 판저 박사였다. 판저는 뼈만 남은 뺨을 일그러뜨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다가왔다.
“판저, 자네에게 받은 이 사이보그가… 좀 반항적이라서 말이야.”
“원하신다면 언제든 이 녀석에게 남은 생체 뇌를 전부 기계화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허, 그러면 그냥 인형이랑 다를 게 없지 않나.”
판저와 담소를 나누는 회장에게서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아리사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생체 뇌를 전부 기계화한다는 건, 더 이상 인간도 사이보그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기계 인형―― 로봇이 되는 것이다. 로봇에게 자아 따위는 필요 없다. 사이보그가 된 인간에게 감정을 말살당한다는 건 유일한 생체 조직인 ‘뇌’를 기계로 갈아치운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이 WSD-2 프로토 1을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어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판저의 말에 회장은 입가만 비릿하게 뒤틀었다.
“그러고 보니… 어딘지 분위기가 닮았군요. ‘그분’과….”
“에?”
아리사는 자신을 향한 판저의 시선을 느끼며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판저. 그 이야기는 하지 마라.”
날카로운 제지에 판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리사, 너는 물러가라. 아까 그 건은 나중에 지시하겠다. 우선 오늘 밤 준비나 철저히 해둬.”
“아, 알겠습니다.”
아리사는 상황 파악이 안 된 채로 서둘러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판저. 방금 그 일… 발설하면 아무리 자네라도 용서치 않겠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판저는 딱히 미안한 기색도 없이 사과했다.
“후, 뭐 됐네…. 자네가 확립한 생체 개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야. 그 기술 덕분에 우리 조직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지. 난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네.”
“…저는 과거에 인체 실험이 폭로되어 ‘광기 어린 과학자’, ‘악마의 사도’라 불리며 학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런 저를 거두어 주신 분이 회장님입니다. 시설과 풍부한 연구 자금, 그리고 실험 재료까지 주셨으니 감사의 말로도 부족하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낄낄거렸다.
“오늘 밤은 석 달 만의 옥션이다. 판저, 자네가 또 수고해줘야겠어.”
“그 건 말입니다만, 오늘 밤 머티리얼 중 하나를 그 미요사키 히토미에게 개조시키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그때 비서실로 물러나 있던 아리사의 귀에도 미요사키 히토미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녀는 들키지 않게 벽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호오, 하지만 미요사키 히토미는 사이보그로 개조된 지 일주일도 안 됐어. 세뇌 처리도 아직인데, 고분고분 우리를 위해 일할까?”
“회장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여자는 우리와 동류라고요. 이미 밑작업은 다 끝내 놨습니다. 크크크….”
판저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엿들은 아리사는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
미요사키 히토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몽사몽 속에 비친 광경은 끔찍한 자신의 개조 수술 기억이었다.
하얗고 아름다운 몸이 절개되고, 피에 젖은 장기들이 아무렇게나 적출된다. 그리고 텅 빈 공간에 차가운 기계로 만들어진 인공 장기들이 하나둘 박혀 들어간다.
“그만둬! 나를 인간으로 돌려놔! 기계가 되는 건 싫어어어억!!”
히토미는 반광란 상태가 되어 울부짖었지만, 주변을 둘러싼 백의의 기술자들과 간호사들은 묵묵히 수술을 계속했다.
“살려줘, 이런 거 싫어, 거짓말이야아아….”
히토미의 발치에 놓여 있는 것은 복잡하고 정밀한 금속 부품과 전자 회로로 조립된 그녀의 새로운 기계 몸이었다.
“보렴, 아주 예쁘게 완성됐어.”
그때 히토미는 기술자 여자가 요염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여자의 입술을 물들인 보랏빛 루주가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무해… 너무하다고… 왜 내가 이런 꼴을… 이 악마 같은 년!!”
눈물을 흘리며 히토미가 욕설을 퍼부었지만, 여자는 그 말을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네가 원한 결과잖아.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져 봐, 히토미….”
“무, 무슨 헛소리를……?!”
히토미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 그럴 수가… 당신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경악한 표정으로 히토미는 기술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여자가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림자에 가려졌던 민낯이 드러나자 히토미의 목구멍에서 공포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기술자는 다름 아닌 미요사키 히토미 자신이었다. 보랏빛 루주와 아이섀도로 화장한, 요염한 타인 같은 미요사키 히토미가 거기 있었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나는 네가 마음속 깊이 원하던 모습으로 바꿔준 것뿐이야… 넌 새로 태어난 거야, 히토미….”
“아니야! 아니야! 틀려! 난… 난 당신 같은 게 아니야!! 이런 기계 몸 따위 원한 적 없어!”
히토미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새 육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두 명의 간호사가 다가와 히토미의 몸을 애무하듯 쓰다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신들 대체 누구야?!”
“히토미, 너… 내가 개조당하는 걸 보면서 흥분했었지? 난 다 알고 있어… 우후훗.”
“아, 아앗, 메구미?! 너 메구미니?!”
“나도 있어, 히토미… 나야, 레이코. 내가 우리 셋 중에 제일 먼저 개조됐던 거 기억나? 무서웠어, 정말 무서웠어…. 하지만 지금은 이 기계 몸이 마음에 들어.”
“레, 레이코… 어째서 너희가….”
메구미와 레이코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유리구슬 같은 눈을 부릅뜨고 히토미에게 얼굴을 밀착했다.
“히토미, 너도 우리처럼 되고 싶다고, 개조해 달라고 생각했잖아?”
“그리고 너도 누군가를 개조해 보고 싶다고… 우리가 당했던 그 수술을 너도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기억 저편에 봉인해 두었던 절친들, 메구미와 레이코의 달콤한 속삭임을 히토미는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세상이 섬광에 휩싸이며 하얗게 물들었다. 미요사키 히토미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것, 그리고 누워 있는 곳이 부드러운 침대가 아니라 차가운 금속 캡슐 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암울한 기분에 가슴이 조여왔다. 방금 본 꿈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여기는… 조정 캡슐….”
판저 박사에게 개조 수술을 받은 뒤, 이 어두운 연구실에 설치된 사이보그 전용 조정 캡슐에 갇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구… 없어요?”
캡슐은 투명한 강화 유리로 덮여 있어 안에서는 밖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히토미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목과 허리, 양 손발이 단단한 금속 벨트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손발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구동계 제어 정지 중’이라는 에러 코드가 전송되어 왔다.
고개를 살짝 들어 몸을 살펴보니, 전신에 크고 작은 코드와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히토미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따뜻한 생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나, 정말 사이보그가 되어버렸구나….
그때였다.
“깨어나셨나요? …미요사키 선생님.”
캡슐 밖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곧이어 캡슐이 열렸다. 히토미를 들여다보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아야코 양… 너였구나….”
히토미는 아주 조금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이름은 ‘우사미 아야코’. 스무 살이라고 했다. 개조 수술 후 정신 안정을 위해 판저 박사의 명령으로 히토미의 수발을 들게 된 여자애였다. 정체 모를 조직원들과는 달리, 조심스럽지만 잘 웃는 명랑한 아이였다.
기계로 개조된 직후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히토미는 정성껏 자신을 돌봐주는 아야코에게만큼은 경계심을 풀고 있었다. 아야코에게서는 다른 조직원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히토미는 무의식중에 이 잘 웃는 아야코에게서 미즈사와 카나의 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야코는 조직원들과는 다르게 전신에 밀착되는 검은색 민소매 레오타드와 팔꿈치 위까지 오는 글러브, 그리고 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솔직히 밖에서 보면 코스프레라고 오해받을 법한 차림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야코는 다정하게 말하며 주사기를 히토미의 목덜미 단자에 꽂았다. 투여된 약물이 생체 뇌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종류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탁하게 흐려졌던 히토미의 의안이 카슝, 카슝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떠세요? 금방 개운해지실 거예요.”
“응, 고마워. 말도…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아야코가 미소 짓자 히토미도 화답했다.
“선생님 몸은 거의 다 기계화됐지만, 생체 뇌만큼은 손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생체 조직 유지를 위해 이런 약에 의존해야 한다고….”
“그만해!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아!!”
갑작스러운 고함에 아야코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죄, 죄송해요… 선생님은 스스로 원해서 사이보그가 된 게 아니었죠….”
“당연하잖아… 누가 좋아서 이런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되고 싶겠어… 난 억지로… 으윽….”
아야코는 묵묵히 캡슐 안으로 손을 뻗어 히토미를 묶고 있던 금속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아야코 양, 너는 어때?! 너도 나를 여기로 데려온 아리사 씨 같은 사이보그인 거니?!”
“저, 저는….”
매섭게 추궁하는 히토미의 시선을 아야코는 슬그머니 피했다.
“저는… 아직… 인간이에요.”
의외의 대답에 이번엔 히토미가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인간? …하, 하지만 그 옷은….”
“네, 이건 사이보그로 개조될 소체들이 입는 옷이에요. 개조 수술 때 육체적 부담을 줄여주는 기능이 있다나 봐요. 원리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세상에, 개조 수술이라니… 설마 너, 스스로 나 같은 기계 몸이 되겠다는 거야?!”
“네….”
아야코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목에 감긴 검은 가죽 벨트를 움켜쥐었다. 거기엔 세 자리 숫자가 새겨진 플레이트가 달려 있었다.
“저는 이제 사이보그가 되는 길밖에는… 없거든요….”
“왜?! 아야코 양, 너 사이보그가 된다는 게 뭔지 정말 알고나 있는 거야?!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도 못 하게 된단 말이야!”
히토미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아직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뻗어 아야코의 어깨를 붙잡았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야코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쓸쓸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 공장이 망해서 엄청난 빚을 졌거든요.”
“뭐?”
“그래서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가족끼리 다 같이 죽으려고 했었는데… 그때 빚을 다 갚아주고 도와준 게 이 조직이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선생님? ‘섹사보그’…라고 들어보셨어요? 살아있는 인간을 소체로 개조한 성처리용 사이보그요. 지금 전 세계 부자들 사이에서 수요가 엄청나대요…. 저희는 그 소체로 조직에 이 몸을 판 거예요. 덕분에… 아빠, 엄마는 목을 매지 않아도 됐죠. 에헤헤.”
“아야코 양, 너란 애는 정말….”
아야코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눈에선 눈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이상하네, 선생님….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전부 저랑 제 동생이 결정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동생 유키에는 벌써….”
아야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울면서 짓는 그 미소가 너무나 애처로웠다.
“동생이라니… 설마….”
“네. 지난번 옥션에서 미국 대부호한테 팔려 갔어요. …원래는 제가 그때 나갈 예정이었는데, 그게… 그날이 겹치는 바람에…. 그랬더니 유키에가 ‘언니, 마지막으로 여자의 고통이니까 마음껏 느껴둬’라면서… 건방지죠? 저 몰래… 지 마음대로 순서를 바꿔버리고….”
“착한… 동생이었구나.”
“네, 세계 최고의 동생이에요. 그리고 저,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의 유키에랑 약속했거든요. 나도 금방 따라갈게… 라고요. 에헤헤, 이, 이상하다… 눈물이 안 멈추네. 개조되면 이제 울 수도 없게 된다니까… 이걸로 마지막 울음 잔치를 벌여야겠어요.”
검지로 눈물을 닦아내며 아야코는 계속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히토미를 위로하려는 건지, 스스로를 다독이려는 건지, 아니면 대신 개조된 동생을 향한 마음인지 그 미소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 사실 오늘이 선생님이랑도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오늘 밤 옥션에 나가거든요. 누구한테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이 성사되면 바로 섹사보그 개조 수술을 받게 돼요. …그러니까 선생님 수발을 드는 것도, 뵙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요.”
“아, 아야코 양….”
너무나 갑작스러운 고백 앞에 히토미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뇌가 울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이보그가 된 지금의 히토미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히토미는 두 팔을 뻗어 아야코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아야코 양… 지금의 난 이런 차가운 기계 몸으로 널 안아주는 것밖에 못 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요사키… 선생님?”
코드가 연결된 히토미의 인공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야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으, 으으… 무서워요, 무서워요, 선생님… 개조당하는 거, 저 너무 싫어요… 사이보그 같은 거… 되고 싶지 않아요… 엄마… 아빠… 유키에… 으아아아앙….”
아야코는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끊어진 듯 대성통곡했다. 히토미는 그런 아야코를 묵묵히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흐느끼며 어깨를 떨고 있는 아야코를 안은 채 히토미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때, 히토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묘한 감각이 싹트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어? 뭐야? 이 느낌은….
몇 시간 뒤면 몸이 갈가리 찢기고 차가운 기계로 개조될 소녀가 내 품 안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녀의 성감 신경이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뜨거워… 몸이 뜨거워… 이 감각… 나…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히토미의 의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 꿈속에서 메구미와 레이코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도 누군가를 개조해 보고 싶다고… 우리가 당했던 그 수술을 너도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다음 순간, 히토미의 뇌리에는 아야코의 싱그럽고 부드러운 육체가 해체되고 개조되는 광경이 무의식 속에서 마치 현실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어느덧 미요사키 히토미의 입가에 요염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구나… 이런 프로세스로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거였어. 우후후.
“힉?! 서, 선생님?”
갑자기 등을 훑어 올리는 손길에 아야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히토미를 밀쳐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아야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해했다. 하지만 당황한 건 히토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방금 자신을 지배했던 찰나의 감정에 스스로 경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기에, 히토미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수습했다.
“미, 미안해 아야코 양, 내가 좀 이상했나 봐….”
“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기, 감사했습니다. …저, 이제 가봐야 해요….”
“아야코 양….”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아야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히토미에게 미소를 보였다. 아마도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건 이게 마지막이리라. 히토미는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야코의 부츠 소리가 멀어져 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닫혔다.
“아, 아야코 양!!”
히토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야코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아야코를 포함해 오늘 밤 옥션에 출품될 소녀들이 지하의 한 방에 모였다. 아야코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인원수만 보면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머티리얼의 수는 훨씬 많았다. 이번에 ‘섹사보그’ 소체로 팔려 나가는 인원이 이 다섯 명인 것이다.
그녀들은 아야코처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이들도 있었고, 뛰어난 육체 때문에 반강제로 납치되어 온 이들도 있었다. 모두 그 검은 레오타드를 입고 있었으며, 오늘을 위해 개조 수술 전처리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여러분, 오래 기다렸지?”
일렬로 늘어선 그녀들 앞에 요염한 검은색 본디지 드레스를 입은 금발 미녀가 나타났다. 판저 박사 직속의 여전사 사이보그, 로즈였다.
“이제부터 전원, 여기 준비한 약을 마시도록 해.”
로즈가 들어 보인 것은 영양제 같은 작은 병에 든 투명한 액체였다.
“저, 저기… 그건 무슨 약인가요?”
수상쩍은 약을 마시라는 명령에 불안을 견디지 못한 한 소녀가 물었다. 로즈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약은 조직에서 개발한 최음제… ‘미약’이야. 그것도 아주 강력한 놈이지.”
“미, 미약?!”
소녀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다.
“이 약을 한 모금만 마시면 수치심 따위는 증발하고, 오로지 남자의 몸을 원해서 안달이 난 음란한 짐승… 그래, 암캐가 될 수 있지.”
“어, 어째서 저희가 그런 약을 마셔야 하는 거죠?!”
그때 로즈의 시선이 소리를 높인 소녀를 쏘아보았다. 채찍이 날아가지 않은 건 그녀들이 소중한 ‘상품’이라 상처를 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너희는 자기 처지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네?”
숨이 막힐 듯한 로즈의 위압감에 소녀들은 겁에 질려 서로의 몸을 밀착시켰다.
“이 약은 그나마 자비야. 너희가 조금이라도 클라이언트분들 마음에 들 수 있게 해주려는 거니까.”
그녀들은 로즈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들은 성처리용 사이보그 ‘섹사보그’로 개조될 운명이다. 그리고 그전에 우선 생생한 육체 상태로 구매자의 눈에 들어야만 팔릴 수 있는 것이다.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품이 어떻게 되는지는 가르쳐줬을 텐데. 기억나니?”
소녀들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새어 나왔고,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팔리지 않는다면 팔릴 만한 걸로 만들 뿐이야. 신선한 장기만 따로 팔 수도 있고, 아… 미녀의 박제를 장식품으로 원하는 마니아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우후후후.”
로즈의 말은 협박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윽고 아야코 일행에게 미약이 든 작은 병이 하나씩 건네졌고, 동시에 결혼식 때나 입을 법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들도 배부되었다.
“옥션 무대에는 그걸 입고 서는 거야. 좋은 서방님… 아니, 주인님께 팔릴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봉사해서 몸값을 높여보라고.”
조롱 섞인 말투로 내뱉은 로즈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그대로 방을 나갔다.
소녀들에게 남은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절망과 공포뿐이었다.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는 이, 절망에 잡아먹혀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은 이, 닫힌 문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비는 이까지. 소녀들은 각자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아야코만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백의 드레스를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들었다.
“아빠랑 엄마한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맞다, 유키에도 이걸 입었을까? …유키에… 언니도 이제 곧 갈게….”
중얼거리는 아야코의 표정은 신기할 정도로 평온했다.
이윽고 옥션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지금부터 머티리얼 컴퍼니 옥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두운 지하 강당에 광기의 연회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4화 / 끝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오늘 밤, 마테리얼 컴퍼니 본사 빌딩 지하에서는 조직의 핵심 수입원 중 하나인 거대 이벤트 ‘마테리얼 옥션’이 한창이다.
상품으로 팔려 나가는 미소녀들에게 내일의 태양 따위는 없다.
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들은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게 될 테니까.
*
경매에서 낙찰된 우사미 아야코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 복용한 미약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무대 뒤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출품될 때까지만 해도 입고 있던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이미 갈가리 찢겨 형체도 없었다.
그녀의 몸을 가린 건 드레스 안에 입고 있던, 마테리얼의 증표인 검은색 레오타드뿐.
실크처럼 곱고 아름다웠던 아야코의 흑발도 이제는 땀과 오물에 절어 광택을 잃고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어이, 뭘 멍하니 앉아 있어. 빨리 따라와.”
조직의 검은 양복 사내에게 팔을 붙들려 일어난 아야코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뗐다.
‘난 이제 어디로 가서 뭘 하게 되는 걸까….’
몽롱한 의식 속에서 아야코는 자문했다.
물론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단 하나, 아야코는 이제 조직의 지하 수술실에서 성처리 전용 사이보그인 ‘섹사보그’로 개조되는 수술을 받게 된다.
지금의 아야코에겐 옥션 무대에 선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어떤 자에게 팔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강제로 투여된 강력한 미약 때문에, 자신을 산 주인에게 대체 어떤 추태를 부렸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야코의 피부는 더욱 붉게 달아올랐고, 호흡은 절로 거칠어졌다.
“뭐야, 이제 기계 인형으로 개조된다니까 흥분이라도 한 거냐?”
뒤따라오던 검은 양복이 아야코의 뜨거운 숨소리를 듣고는 비열한 말을 내뱉었다.
“아… 아니… 에요….”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야, 네 허벅지 좀 봐. 질질 흘러내리는 저건 뭔데?”
“어, 아, 아앗, 이, 이건…!?”
아야코는 황급히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시선을 떨구고는 그대로 말을 잃었다.
하복부 안쪽에 남아 있는 묵직하고 불쾌한 열기의 정체를 깨닫자, 입술을 짓씹는 아야코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제야 그녀는 기억의 공백 속에서 벌어진 일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난 미약에 취해서, 이름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이 몸을 스스로 내던진 거야.
나, 나는… 정말, 정말 수치스러운 여자야!’
얼마나 음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객들의 발기한 육봉을 입에 물었을까.
그리고 어떤 저질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자신을 섹사보그 소체로 팔아치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 아야코는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자, 빨리 걸어. 수술실 다 왔으니까.”
몸을 좌우로 비틀거리며 아야코는 어두운 통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으윽….”
갑자기 아야코의 발이 멈췄다.
벽에 기댄 아야코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얼굴은 극심한 통증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으, 으게엑….”
아야코의 왼손이 임산부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 하복부를 압박했다.
툭, 투둑, 툭.
“히익!? 시, 싫어….”
쥐어짜는 듯한 비통한 신음과 함께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걸쭉한 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자궁 속에 터질 듯이 쏟아부어졌던 백탁액의 잔해였다.
“괴, 괴로워… 우욱.”
마치 배설이라도 하듯 웅크려 구토하며, 아야코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뻗었다.
가랑이를 덮은 레오타드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그 틈새로 보인 것은 하얗고 붉은 점액으로 더러워진 채 처참하게 벌어진 꽃잎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는 여전히 선혈이 섞인 백탁액이 질 깊숙한 곳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이쿠, 도대체 몇 명한테 몸을 판 거야? 배가 저 정도로 부른 걸 보니 대여섯 명 수준이 아닌데? 히히.”
“아니야, 말하지 마세요! 저도, 저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기억이 안 나요! 내가 왜 이런 짓을….”
아야코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남자의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다.
“으, 윽, 으윽….”
슬픈 오열 섞인 고통스러운 신음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이봐, 그렇게 괴로워? 히히히… 하긴, 배가 저 꼴이 될 때까지 안에다 싸질러댔으니, 임신하는 건 확정 아니겠어?”
하복부를 덮치는 격통과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에 눈물과 콧물, 그리고 입가에 침까지 흘리며 아야코는 표정을 굳혔다.
“이, 임신… 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하아? 학교 보건 시간에 다 배웠잖아? 남자의 정자가 여자 자궁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말이야.”
아야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잠시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야코는 갑자기 미친 듯이 양손으로 하복부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나가, 다 나가버려! 내 안에서 나가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배를 주먹으로 난타하는 아야코를 보고 검은 양복은 당황해서 그녀의 양팔을 붙잡아 눌렀다.
“그만해! 장난해? 넌 이미 팔린 상품이라고. 멋대로 상처 내면 어쩔 거야!!”
“싫어! 놓으란 말이야! 이거 놔!! 임신하는 건 싫어!!”
철썩!
반광란 상태가 된 아야코의 뺨에 강렬한 싸대기가 날아들었다.
아야코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함께 넘어졌던 검은 양복은 눈앞에 선 키 큰 금발 미녀를 보고 말을 잃었다.
“이런 데서 뭘 꾸물거리는 거야, 이 쓸모없는 놈이….”
차갑고 날카로운 아이스 블루 눈동자에 검은 가죽 본디지 의상을 입은 판저 박사 직속의 여자 사이보그, 로즈였다.
“죄, 죄송합니다, 로, 로즈 님… 그, 그게….”
남자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로즈의 팔에 내장된 채찍이 공기를 가른 순간, 남자의 목은 붉은 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눈앞에 굴러온 남자의 머리를 직시하며 아야코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아야코의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는 꼴이 되었다.
웅크린 채 일어나지 못하는 아야코를 보며 로즈는 불쾌한 듯 다가왔다.
“잘 들어. 넌 이번 옥션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마테리얼이야. 그래서 아주 철저하게, 커스터마이즈 개조를 받게 될 거야.”
“그, 그게 무슨 뜻이죠?”
“후후후. 전신을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다시 만드는 거지. 머리카락도, 눈도, 피부색도, 체격까지 전부 다…. 네게 생체 조직으로 남는 건 뇌수의 일부뿐이야.”
아야코는 자신이 어떤 개조 수술을 받게 될지 처음 듣고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뇌 일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기계나 인공 부품으로 교체되어 진짜 기계 인형이 된다는 절망감이 다시금 아야코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기괴한 미소를 지은 로즈는 아야코의 부푼 배와 백탁액을 흘리는 가랑이로 시선을 던졌다.
“너… 임신이니 뭐니 소리 지른 모양인데…. 방금 말했듯이 네 육체는 하나도 남김없이 기계 부품으로 교체돼. 당연히 생식기… 자궁도 예외는 아니지. 넌 남겨진 생체 뇌가 활동을 멈출 때까지 앞으로 영원히 성처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섹사보그로 살아가게 될 거야.”
로즈는 아야코의 턱을 치켜올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그리고, 애초에 아이를 낳는 기능 따위 섹사보그… 아니, 우리 사이보그가 된 여자들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기능이야! …그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다니… 그런 거…. 그런 건 생각할 일조차 없게 될 거야!!”
내뱉듯 말하는 로즈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더 험악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아야코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사이보그가 되지 않으면, 엄마 아빠는 빚을 갚기는커녕 살아갈 수도 없어…. 그래… 우리 자매는 이렇게 될 걸 각오하고 마테리얼로… 사이보그 소체로 자신을 판 거잖아….’
아야코의 입술이 스스로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을 때, 그녀의 마지막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겠습니다… 저… 얌전히… 개조 수술을… 받겠어요… 죄송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아야코는 로즈에게 그렇게 답했다.
*
마테리얼 컴퍼니에는 VIP 전용 귀빈실이 마련되어 있다.
혼조 아리사는 이날 옥션에서 섹사보그를 구입한 한 VIP의 접대를 명받았다.
그 VIP의 이름은 ‘헬샤프트’.
조직의 미국 지부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수수께끼의 자산가는 아직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으며, 금발 벽안의 미청년이기도 했다.
소문으로는 독일계 이민자의 혈통이라고 하지만 그 진위는 확실치 않다.
“아흣, 아흑, 히익.”
호화로운 소파 위에서 아리사의 하얀 피부와 흑발이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헬샤프트 위에 올라탄 채 아리사는 일심불란하게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섹사보그의 봉사 모드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붉은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리사는 인공 성기가 지금 집어삼키고 있는 육봉의 데이터를 확인하며, 전신을 사용해 헬샤프트의 몸을 애무했다.
“아하, 아하아앙….”
아리사는 아름다운 인공 흑발을 흩날리며, 백자 같은 나신으로 헬샤프트의 몸을 쾌락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다.
뇌내로 흘러 들어오는 쾌감 펄스에 아리사 자신도 취해 있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남자를 몰랐던 혼조 아리사도 조직에 의해 섹사보그로 개조되었고, 거듭된 재개조와 회장 본인의 조교를 거친 결과 이제는 섹사보그의 완성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앗! 헬샤프트 님… 제 자궁 안에… 듬뿍, 쏟… 쏟아주세요… 부탁드려요… 으윽!”
아리사는 미약이 섞인 타액을 헬샤프트의 입안으로 흘려보내며, 목에 양팔을 감고 귓가에 달콤하게 애원하듯 속삭였다.
그때 그녀의 하복부에서 작은 기동음이 울렸다.
“오, 오오옷!?”
헬샤프트를 물고 있는 아리사의 기계 장치 비순이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대, 대단해! 으아아악!!”
“헬샤프트 님, 아윽, 저도 너무, 윽, 기분 좋아요! 아앗, 싸주세요, 싸주세요, 제, 제 안에… 듬뿍, 주입해 주세요!!”
뒤로 젖혀지듯 하늘을 우러러보는 아리사는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애원했다.
입가에 침을 흩뿌리는 그 표정은 이미 쾌락에 찌든 요부처럼 유열에 젖어 있었다.
“히익! 히이익!! 가, 가버려어엇!!!”
아리사의 뇌리에 불꽃이 튀었다. 모든 회로가 순간적으로 타버린 듯 가동을 멈춘다.
이것이 섹사보그에게 최고의 쾌락이라 불리는 ‘절정 펄스’였다.
이때 그녀의 의안에 내장된 인공 망막에는 헬샤프트가 자궁 안에 쏟아낸 정액의 데이터가 상세히 투영되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나 많이… 저 같은 기계 인형의 자궁에 쏟아주시다니… 기뻐요. 헬샤프트 님의 정액으로… 벌써 인공 자궁 탱크도 가득 찼어요….”
아리사는 도취감에 전신을 맡긴 채 잠꼬대처럼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절정으로 인한 과부하로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앙, 이제 안 돼….”
아리사는 그대로 힘이 다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Mr. 헬샤프트, 즐거우셨습니까?”
그때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테이블 위의 브랜디를 집어 든 헬샤프트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마테리얼 컴퍼니의 회장 본인이었다.
“이야, 훌륭하군요. 역시 일본제 섹사보그의 완성도는 세계 제일입니다. 직업상 세계 각지의 섹사로이드나 사이보그의 접대를 받을 기회가 많지만 역시 일본제가 최고예요. 특히 여기 ‘마테리얼 컴퍼니’의 제품은 말이죠.”
“만족하셨다니 영광입니다. 제 개인 소유의 섹사보그를 테스트하게 해드린 보람이 있군요.”
“회장 전용 섹사보그? …그럼 이게?”
헬샤프트는 이번에는 개처럼 자신의 발가락을 핥으며 봉사를 재개한 아리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리사의 묘한 미소가 시선에 화답했다.
“후후후… 이건 처녀인 채로 섹사보그로 개조한 시제품입니다. 그래서 손질하는 보람이 있죠.”
“과연, 보통 인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회장님이 직접 손을 댄 섹사보그였군요. 그런 인형으로 놀게 해주셔서 이 헬샤프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격렬한 정사의 후유증인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는 헬샤프트를 바라보며 회장도 그의 맞은편 소파에 몸을 실었다.
“아리사, 이제 됐다. 물러가라.”
“…네, 주인님… 실례하겠습니다.”
아리사는 우아하게 일어나 절을 하고 방을 나갔다.
그때 그녀가 걸어간 뒤의 카펫에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얼룩을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헬샤프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무리했나 보군요.”
“저 녀석의 인공 성기는 우리 조직의 최신형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 옥션에서 섹사보그를 또 한 대 구입하셨다고요.”
“네. 지난번 옥션에서 산 섹사보그가 꽤 일품이라 오늘 밤 한 대 더 들였습니다. 슬슬 소체인 계집애의 개조 수술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겠군요.”
회장은 선글라스 너머의 눈매를 완화하는 듯 보였다.
“젊은 나이에 Mr. 헬샤프트도 지독한 취미를 들였군요.”
“후후후. 회장님이야말로 아직 젊지 않습니까. 게다가 섹사보그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건 당신들이라고요?”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회장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웃었다.
“구입하신 섹사보그에는 방금 전 아리사와 같은 인공 성기를 장착하도록 수배해 두었습니다. 물론 서비스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죠.”
“저야말로요. 미국 지부의 지원은 전부 이 헬샤프트에게 맡겨주십시오. 유럽 진출 때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
로즈에게 이끌려 아야코가 발을 들인 어두운 수술실에는 수술 장비들이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그 장비들에 둘러싸인 금속제 수술대가 거대한 조명 아래 빛나고 있었다.
“자, 어서 이 마테리얼의 수술을 시작해 줘. 손님이 기다리고 계셔.”
로즈의 가차 없는 말에 호응하듯 장비 너머에서 마스크와 가운을 입은 네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들은 아야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으려 팔을 뻗었다.
그 손에는 정체 모를 약물이 든 주사기가 쥐어져 있었다.
“만지지 마세요….”
“뭐라고?”
“제 발로 갈게요….”
아야코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레오타드를 벗어 던지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특이한 애군. 보통 마테리얼들은 공포 때문에 난동을 부리는 게 정석인데? 이 진정제는 필요 없다는 건가.”
기술자들의 어이없다는 투의 말을 무시한 채 아야코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금속제 벨트가 자동으로 아야코의 사지를 구속했다.
‘이걸로 전부 끝이야. 난 이대로 잠들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 아야코 쨩!?”
분명한 동요가 섞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수술대로 달려왔다.
검은 가죽 롱부츠와 원피스를 입은 그 여성은 아야코가 잘 아는 인물—다름 아닌 오야사키 히토미였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나더러 수술을 하라는 건….”
“오, 오야사키 선생님… 왜 당신이 여기에?”
당황해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오야사키 히토미를 보며 로즈는 비웃음을 흘렸다.
“물을 것도 없잖아? 이제부터 이 마테리얼을 네 손으로 섹사보그로 개조하는 거야.”
“뭐, 뭐라고요!?”
히토미는 너무나 큰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벽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머? 거절하는 거야? 난 별 상관없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안도감조차 착각이었다는 것을 히토미는 곧 알게 된다.
로즈가 이어서 내뱉은 말은 그야말로 악마의 선고였다.
“미즈사와 카나…라고 했던가, 그 여대생…. 후후, 너에겐 특별한 존재인 아이잖아. 그 애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거야?”
“카, 카나 쨩한테, 카나 쨩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해. 후후… 그래,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지. 네가 조직의 사이보그로서 순순히 명령을 수행한다면 그 애의 안전은 보장될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히토미는 이제 자신에게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으, 윽.”
갑자기 아야코가 신음했다.
보니 손발이 묶인 아야코가 괴로운 듯 몸을 뒤틀고 있었다.
뿌직. 뿌지직.
기괴한 분출음이 아야코의 가랑이 사이에서 들려왔다.
“아, 아야코 쨩!? 너….”
히토미는 무심코 입을 막았다.
아야코의 가랑이 사이에서 하얀 백탁액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야코의 크게 부푼 하복부와 함께 히토미는 그녀가 어떤 행위를 당했는지 순식간에 알아챘다.
“그,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오야사키 선생님…. 전 마테리얼이에요. 빨리… 수술을 시작해 주세요. 사이보그로… 개조해 주세요.”
“괜찮겠어? 아야코 쨩, 정말로 괜찮겠냐고!? 더 이상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단 말이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히토미를 보며 아야코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부탁이에요, 빨리 개조해 주세요. 이렇게 더러워진 몸… 전 이제… 필요 없어요. 으윽, 또 나와… 으기익.”
그때 아야코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악물며 가느다란 몸을 활처럼 휘어 올렸다.
푸슉!
아야코의 작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비순에서 뿜어져 나온 백탁의 점액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을 더럽혔다.
히토미는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야코 쨩을 사이보그로… 기계로 개조한다고? 안 돼, 난 인간이야! 인간으로서 이런 수술, 절대로 용납될 수 없어!!’
괴로운 듯 가랑이 사이로 정액을 흘려보내는 아야코의 육체 앞에서 오야사키 히토미의 분열된 마음 한쪽이 소리를 높였다.
‘이제 포기해, 히토미. 어쩔 수 없잖아. 아야코를 수술하지 않으면 카나 쨩까지 조직의 독니에 걸려들 거야.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또 다른 마음의 목소리가 다시 속삭여 왔다.
‘게다가 히토미… 넌 이제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시시한 윤리관 따위 버리고 기분 좋아져 버리라고….’
띠링.
히토미의 머릿속에서 작은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의 굴레가 벗겨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이때 히토미의 두 눈이 은색으로 변했다.
“수술을 시작… 합니다.”
이 말을 신호로 가운을 입은 조수들이 손에 든 전자 케이블을 히토미의 목덜미부터 척추까지 매립된 단자에 차례차례 연결하기 시작했다.
“아, 아앗, 아아아!?”
그러자 히토미와 링크된 주변 장비들이 호흡을 시작하듯 기동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잉.
히토미의 머리에서 끊임없이 전자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내, 내 머릿속으로… 드, 들어와!? 아, 아앗.”
그것은 개조 수술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였다.
“나는… 나는… 삐삐삐… 삑! 나는… 나는 ‘마테리얼 개조 오퍼레이션 사이보그 형식 번호 MOS-03’입니다. 지금부터 섹사보그 개조 프로그램을 기동합니다—”
오야사키 히토미의 은색으로 변한 두 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의 빛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계의 광채가 깃든 듯했다.
“삐삐삐… 마테리얼 확인. 소체명 우사미 아야코. 장기를 보호 처리한 후 즉시 적출합니다. 준비를 시작하세요.”
전신에 케이블이 연결된 히토미가 감정 없는 말투로 네 명의 조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조수들에 의해 아야코는 입에 마취 마스크가 씌워졌다.
“으….”
마스크를 통해 마취 가스가 아야코에게 흡입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야코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손발을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의식과 촉각만은 여전히 남은 상태였다.
“…이, 이건…?”
개조 머신으로 변모한 후 무표정했던 히토미가 이때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아야코의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왜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지 가르쳐줄까?”
아야코의 얼굴에 명백한 공포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히토미는 은색 눈을 즐거운 듯 가늘게 떴다.
“난 내가 수술받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개조됐어. 그때 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을 느꼈지. 내 몸이 개조되고 있다… 알겠니, 이 신비로운 기분. 누군가 개조되는 광경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 좋았어…. 그래서 난 결심했지. 내가 앞으로 개조할 여자아이들에게도 그 쾌락을 가르쳐주기로.”
“그… 그럴 수가…. 당신 정말 오야사키 선생님 맞아요?”
아야코는 히토미의 급격한 변모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 의식은 있어도 마취는 듣고 있으니까 수술 통증은 없을 거야. 하지만 마취 농도를 조절해 뒀으니까 개조되는 감각은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거야.”
아야코는 차갑고도 다정한 광기에 찬 그 말을 듣고 말을 잃었다.
잠에 빠져들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기계 인간이 되어 있다.
그걸로 전부 끝날 거라 생각했던 아야코에게 히토미가 자신에게 행하려는 수술은 그야말로 고문 그 자체였다.
“싫어… 그런 수술은… 싫어요….”
“빨리 수술해 달라고 한 건 너잖아. 네 희망대로 최단 프로세스로 개조해 줄게. 마취로 잠들어 있을 틈 따위 없어.”
필사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아야코에게 그렇게 말하며 히토미는 조수로부터 두 개의 투명 튜브를 건네받았다.
“자, 식사 시간이야, 아야코 쨩.”
히토미는 손에 든 튜브를 아야코의 작은 콧구멍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컥, 웁!”
튜브가 코를 통해 식도를 지나 위장 깊숙한 곳까지 밀려 들어감과 동시에 조수들도 아야코의 하반신 앞뒤 구멍으로 튜브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이, 이기익!! 아, 안 돼!”
비명을 지르는 아야코에게 주사기를 통해 다시 양팔과 양다리, 전신 곳곳에 튜브가 연결되었다.
수술대 위의 아야코 모습은 마치 튜브에 얽매인 나비 같았다.
“준비됐지… 장기 코팅제 주입을 시작해.”
조수들이 히토미의 지시를 받아 약제 탱크의 밸브를 개방했다.
푸른 반투명 약품이 튜브를 통해 그녀의 체내로 흘러 들어갔다.
“윽, 으아아악!!”
“어머, 괴로워? 하지만 참아줘, 곧 편해질 테니까.”
체내에 약품이 주입됨에 따라 전신에 찌르는 듯한 냉기가 엄습했다.
그리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가슴과 복부가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아앗, 아앗, 아앗, 몸이, 내 몸이… 부서져 버려어엇!! 꺄아악!!”
이윽고 아야코의 온몸에 있는 혈관이란 혈관이 피부 표면으로 툭툭 불거져 나와 격렬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커헉, 컥! 싫어어엇!! 이제 그만해애앳!!”
여전히 체내를 코팅제가 채워 나갔다. 이윽고 다 주입되지 못한 약품이 각각의 구멍에서 넘쳐흐를 정도였다.
불거진 혈관 때문에 아야코의 전신은 푸른 그물무늬로 뒤덮여 갔다.
“주입률 확인 80퍼센트… 85, 90퍼센트….”
“싫어, 싫어싫어싫어, 으, 으기이이이익, 죽어, 죽어버려어엇! 히이익!!”
유독 큰 신음을 내뱉은 순간, 아야코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호흡이 정지하고, 그때까지 전신을 덮쳤던 격렬한 경련도 멈췄다.
“…아야코 쨩?”
흰자위를 드러낸 채 움직이지 않는 아야코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히토미가 불렀다.
하지만 당연히 그녀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삐빅… 심장 및 호흡 정지 확인. …어머?”
뇌내로 흘러 들어오는 상황 보고를 확인하며 히토미는 입술을 핥았다.
“안 돼, 아야코 쨩. 넌 아직 죽으면 안 돼. 즐거움은 이제부터라고.”
히토미는 그대로 아야코의 심장 위치에 입을 맞췄다.
지지직!!
히토미의 입술에서 고압 전기 쇼크가 아야코의 몸에 박혔다.
“게헉, 게헉!”
“어서 와… 아야코 쨩. 우후후.”
“게헉, 시, 싫어… 이제, 싫어… 죽여줘… 죽여주세요… 제발요….”
아야코가 소생한 것을 확인한 히토미는 양손 손가락을 그녀가 볼 수 있게 내밀었다.
“안 됩니다… 마테리얼 우사미 아야코. 당신은 섹사보그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당신도 그렇게 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히토미의 말투가 기계적으로 변함과 동시에 열 개의 손가락이 은은한 빛을 내뿜는 레이저 메스로 변했다.
“히, 히익!?”
“수술 모드 기동합니다, 레이저 메스 준비 완료….”
전라의 아야코 피부는 그녀가 입고 있던 특수 소재 레오타드의 작용에 의해 마치 플라스틱처럼 경질화되어 있었다.
이것은 피부 세포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출혈을 억제하고, 장기 적출 및 인공 장기 매립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처리였다.
조직은 이 특수 레오타드를 마테리얼 소녀들에게 착용시킴으로써, 한 번의 옥션에서 대량의 섹사보그 소체를 개조 판매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슈슉!
레이저 메스가 아야코의 흉부부터 하복부까지 단숨에 갈랐다.
이에 맞춰 조수들이 아야코의 체내로 양손을 쑤셔 넣었다.
“싫어, 싫어! 내 몸에 손대지 마아앗!”
하지만 아야코의 간청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고, 절개 부위는 무자비하게 벌려져 고정되었다.
“어머, 예쁜 장기네. 분명 고가에 거래될 거야. 잘됐네, 아야코 쨩.”
아야코의 코팅된 장기는 그것을 둘러싼 혈관을 포함해 마치 플라스틱 같은 딱딱한 광택을 띠며 굳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생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장기였다.
“시, 싫어, 이런 거 싫어… 게, 게보옥!”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는 아야코의 입에서 코팅액이 뿜어져 나왔다.
마취로 인해 통증은 마비되었지만, 서서히 생명 활동이 정지해 가는 고통을 맛보게 된 아야코에게 과연 어느 쪽이 행복했을까.
조수들은 아야코의 장기를 체내에서 차례차례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하윽, 하윽, 하윽, 우게엑.”
아야코의 눈동자는 체내를 휘젓는 듯한 끔찍한 감각 앞에 이미 초점을 잃었고, 입은 산소를 찾아 몇 번이고 벙긋거렸다.
“심장이 코팅액으로 경화 정지할 때까지 앞으로 2분….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시간을 충분히 만끽해 줘, 우후후. …어라?”
그때 메스를 휘두르던 히토미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이거네… 아까부터 더러운 걸 뿜어대던 게? 뭐야, 이 정액으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자궁…. 이래선 난자 채취도 못 하고 상품 가치도 없잖아.”
아야코는 코앞에 들이밀어진 절제된 자신의 자궁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섹사보그에게 생식기는 필요 없어. 버려버리자.”
히토미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손에 든 아야코의 자궁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부츠 뒷굽으로 짓밟아 뭉개버렸다.
‘아, 아아… 내, 자궁이… 이제 아기… 못 낳아….’
아야코의 혼탁한 의식이 꺼져가고 있었다.
‘…유…키에… 언니가 개조됐을 때도… 이렇게 괴로웠어? …미안해, 미안해… 유키…에……’
그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아야코는 힘이 다했다.
인체 표본처럼 뻥 뚫린 빈속을 드러낸 ‘물건’이 된 우사미 아야코는 인간으로서의 생명 활동을 마쳤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사미 아야코 ‘였던’ 소체를 이용한 기계 인형—사이보그로서의 개조 수술이 시작된다.
생체 뇌 유지를 위해 인공 심폐가 연결되고, 골격을 금속 골격으로 교체하며, 척수 등의 신경 집적부를 전자 회로로 이행하는 작업이 경이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다.
새롭게 조형되고 조립되어 가는 나신에는 인공 장기가 차례차례 매립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확인하고 장기 연결 작업을 조수들에게 맡긴 히토미는 아야코의 생체 뇌 적출 작업에 착수했다.
“뇌파 활동 레벨 15퍼센트까지 저하. 뇌사 도달까지 1분….”
두 눈을 격렬하게 깜빡이며 정보를 분석하는 히토미는 머리가 열려 드러난 아야코의 생체 뇌에 전극을 박아 넣었다.
거기서 송출되는 고주파 펄스에 의해 아야코의 뇌파가 다시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하자, 히토미는 마치 공이라도 다루듯 생체 뇌를 꺼냈다.
“아야코 쨩, 잠시만 기다려. 우후후….”
히토미는 아야코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녀의 뇌수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그것을 배양액으로 가득 찬 캡슐에 담갔다.
이때 히토미는 아야코의 잔해에 남은 눈동자가 허망하게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생명이 없는 아야코의 시선을 받으며, 히토미는 손등을 입에 대고 계속해서 웃었다.
*
섹사보그 형식 번호 WSD-85. 소체명 ‘우사미 아야코’.
새롭게 탄생한 섹사보그는 눈처럼 하얀 인공 피부가 입혀져 조형된 새로운 얼굴에 메이크업을 받고, 칠흑 같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전용 캡슐에 수납되었다.
“출하품 최종 체크를 명받은 WSD-2 프로토 1입니다. WSD-85의 캡슐을 여세요.”
혼조 아리사는 개조 수술을 마치고 출하되는 섹사보그 소녀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해서 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아야코 씨…. 부디 다정한 주인님을 모실 수 있기를 빌게요. 동생분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분명….”
캡슐 속에서 기동 정지라는 잠에 빠져 있는 ‘우사미 아야코’라는 이름이었던 섹사보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아리사는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리사가 눈짓하자 다시 캡슐은 봉인되었고, 검은 양복 사내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그녀는 그것을 무언으로 배웅했다.
내일부터 또 새로운 마테리얼 소체들이 일본 각지에서 모여들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아리사의 아플 리 없는 가슴이 몹시 아려왔다.
크게 유방 개조된 가슴을 양팔로 껴안으며 아리사는 자신의 기계 몸에서 전해지는 감촉을 확인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방금 출하된 아야코에게 건넸던 말을 떠올리고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도해? 내가 누구에게 기도한다는 거야… 기계로 움직이고, 기계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내가 도대체 뭘 믿고 어디에 기도한다는 거지? …난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이날 밤도 아리사는 회장에게 불려가 밤시중을 명령받았다.
프로그램에 의해 발정하여 달아오른 나신 그대로 그녀는 회장실 창밖으로 밤의 빌딩 숲을 바라봤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이따금 밤하늘을 가르는 뇌광이 아리사의 나신을 하얗게 비췄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고 아리사는 고개를 숙였다.
“카나… 미안해. 나도 오야사키 선생님도, 카나를 만날 수 없게 됐어… 우린 이제 인간이 아니게 됐으니까… 조직을 위해 일하는 기계—사이보그가 되어버렸으니까….”
홀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아리사는 그때 등 뒤에서 자신을 껴안아 오는 회장의 애무를 목덜미에 느끼며 달콤한 숨을 내뱉었다.
“아리사, 오늘 밤 수고했다… 헬샤프트도 마테리얼의 완성도에 만족하더군. 물론 네 봉사에도 말이야.”
“삑! 네, 저는 주인님의 섹사보그입니다. 어떤 명령이라도 따르겠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포상이다. 오늘 밤도 듬뿍 귀여워해 주지.”
“기뻐요… 주인님….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뭐냐.”
“제 인공 성기와 자궁, 아니 내부 부품 전부를 교체해 주세요. 주인님 이외의 자의 정액을 받아들인 불결한 몸으로 앞으로 모시는 건 송구스럽습니다… 제게 재개조 수술을 명해 주세요.”
“후후후, 넌 섹사보그로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군. 컴퓨터로만 움직이는 로봇—섹사로이드와는 역시 달라.”
“감사합니다, 주인님…. 오늘 밤은… 지난번 주인님의 명령으로 더욱 크게 유방 개조한 가슴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좋다, 봉사를 허락하마.”
“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거유 봉사 모드로 이행합니다… 삐빅.”
어두운 회장실 창가에서 한 쌍의 남녀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리고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는 나신이 남자의 하반신에 얽혀들 듯 허리를 내렸다.
아리사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밖의 빗소리에 묻혀 사라져 갔다.
‘난 섹사보그… 주인님의 성처리 인형입니다… 계속 곁에서 모시게 해주세요…. 주인… 님….’
아리사는 이때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안식처란 이제 주인의 품 안밖에 없다는 것을.
제5화 / 끝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여자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미즈사와 카나는 생각했다. 과연 이 사람이 정말 살아있는 게 맞을까.
그만큼 여자의 표정에는 생기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피가 전혀 돌지 않는 듯 창백한 안색, 푹 꺼진 눈덩이 아래로 흐릿하게 탁해진 두 눈. 그건 마치 죽은 사람의 눈이었다.
“저기… 카, 카타기리 에미코 씨… 맞으시죠?”
“…당신… 누구야.”
“미요사키 히토미 선생님 일로 여쭤볼 게 있어서 왔어요.”
카나는 확신했다. 이 여자는 분명 미요사키 선생님의 행방을 알고 있다. ‘미요사키 히토미’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여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으니까.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엇에 겁을 먹은 건지, 여자는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문을 닫으려 했다. 카나는 반사적으로 오른발을 문틈 사이에 끼워 넣었다.
“잠깐만요! 꼭 여쭤볼 게 있단 말이에요!”
운 좋게도 도어 체인은 풀려 있었다. 조금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카나는 그대로 여자를 현관 안쪽으로 밀어붙이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죄, 죄송해요. 하지만 전… 에미코 씨한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어요!”
문을 닫은 카나는 곧장 고개를 숙여 무례를 사과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각오했지만, 의외로 에미코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보니, 에미코가 두 다리를 벌린 채 뒤로 벌러덩 넘어져 있었다.
그녀가 거의 전라나 다름없는 차림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챈 카나는 당황해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랐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어디 부딪힌 건 아니죠?”
에미코는 미동도 없었다.
“저, 저기요….”
“괜찮아….”
갑자기 상체를 홱 일으키는 에미코를 보고 카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몸짓이나 움직임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기괴했기 때문이다.
“저, 전 미요사키 선생님 얘기만 들으면 바로 갈게요.”
“그러니까 말했잖아… 난 히토미 같은 건 모른다고.”
바짝 마른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녀가 대답했다. 어째서인지 시선은 허공을 떠돌 뿐, 바로 앞에 선 카나를 향하지도 않았다.
카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지난 몇 달간 필사적으로 미요사키 히토미의 행방을 쫓아왔다. 절친인 혼조 아리사와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실낱같은 단서를 더듬어 겨우 이 아파트에 사는 카타기리 에미코를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모른다니… 모를 리가 없잖아요! 미요사키 선생님이 사라진 그 비 오는 밤, 당신이 선생님을 불러냈다는 거 다 알고 왔어요. 말해 주세요, 선생님을 어디로 불러낸 거죠?”
카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현관에 버티고 서서 에미코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 사람이 정말 미요사키 선생님이 말했던 카타기리 에미코가 맞나?’
언젠가 선생님에게 들었던 에미코는 일류 상사에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횡설수설하는 반라의 여자는 그 이미지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카나는 오늘 예의를 갖추기 위해 평소 입지도 않는 회색 슈트와 타이트스커트까지 챙겨 입고 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마주한 건 커리어 우먼은커녕, 나쁘게 말하면 변두리 유흥업소 여자처럼 보이는 몰골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에미코도 놀랐겠지만, 카나 역시 그 이상으로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당신… 히토미랑 무슨 사이야?”
에미코의 눈에 아주 잠깐 감정의 빛이 감도는 듯했다.
“전… 제자예요.”
“제자? …흐응, 정말 그게 다일까?”
에미코가 콧방귀를 뀌었다. 히토미와 자신의 은밀한 육체관계를 꿰뚫어 본 건 아닐까, 카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당, 당연하죠.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그 여자, 예전부터 그런 취미가 있었으니까.”
유륜이 비칠 정도로 얇은 네글리제 자락을 정리하며 일어난 에미코가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외로우면 히토미 대신 내가 위로해 줄까?”
“그, 그만하세요! 전 그런 일로 온 게 아니에요!”
카나는 다가오는 에미코의 오른손을 반사적으로 쳐냈다.
“어… 뭐야?”
카나는 손바닥에 남은 기묘한 위화감을 다시 확인했다.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미세한 감촉.
“저기… 에미코 씨, 왜 팔이 이렇게 차갑고 딱딱해요?”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에미코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기둥에 매달리듯 주저앉은 그녀는, 제 어깨를 감싸 안으며 온몸을 사들사들 떨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아,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야! 싫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난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저, 저기 에미코 씨, 왜 그러세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에미코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카나는 서둘러 구두를 벗어 던지고 웅크린 그녀에게 달려갔다.
“진정하세요, 에미코 씨. 당연히 사람이죠, 사람이 아니면 뭐겠어요?”
“나, 나는… 우, 우욱!”
에미코가 구토를 했다. 그 순간 카나는 제 눈을 의심했다. 바닥에 쏟아진 건 시커먼 액체였다. 점액질의 검은 액체에서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이거… 설마 오일인가? 윤활유 같은 거? …어떻게 사람 입에서 이런 게 나와요?”
격하게 기침을 몰아쉬는 에미코와 카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에미코의 표정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싫어, 싫어어! 보지 마, 보지 말라고!”
“자, 잠깐만요, 에미코 씨! 꺄악!”
두 팔에 밀쳐진 카나는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방 안쪽으로 도망치는 에미코를 뒤쫓았다. 움직이기 불편한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온 게 뼈저리게 후회됐다.
“앗!”
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발치에 굴러다니던 빈 깡통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대낮인데도 방 안은 어둑했다.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킨 카나는 방 안에 진동하는 악취와 어지럽게 널브러진 쓰레기들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비위생적이고 냄새나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카나는 코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에미코를 찾았다.
에미코는 방구석에서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몸이 거칠게 들썩였고, 가쁜 숨소리와 함께 무언가 작은 것을 씹어 으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 에미코 씨… 저기… 뭘 드시는 거예요?”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역시 눈앞의 여자는 정상이 아니다. 카나는 바짝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에, 에미코 씨… 저 좀 봐요.”
에미코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카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나자빠졌다.
두 눈을 붉게 번뜩이며 입안 가득 캡슐 알약을 처넣은 에미코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카나를 보며 애처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약이… 약이 안 들어… 기분 나빠… 머리가 아파… 평소라면 금방 나았을 텐데… 약이 안 듣는단 말이야아아아!”
“에, 에, 에미코 씨, 다, 당신 대체….”
“우욱!”
입안의 알약들을 토해내며 에미코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거기서 카나는 또 한 번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연기였다. 에미코가 누르고 있는 배 사이로 가느다란 흑연이 몇 줄기씩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전기 배선이 합선된 것 같은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이제 알겠냐. 그년은 사람이 아니라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카나가 뒤를 돌아봤다. 안쪽 방으로 이어지는 문턱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양쪽 귀와 코에 피어싱을 박은 남자. 면도도 안 한 턱은 껌을 씹는지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비열한 눈빛이 카나의 혐오감을 부추겼다.
“사람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당신은 대체 누구죠?”
“말한 그대로다. 그년은 사람이 아냐. 내 전용 성욕 처리 인형이지.”
“성, 성욕… 처리 인형!?”
남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죽 웃었다.
“이년은 말이야, 나한테 버림받기 싫어서 사람 노릇을 관뒀거든. 뭐, 내가 억지로 관두게 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카나는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면 에미코는 대체 뭐가 됐단 말인가. 상상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였다.
“모르겠냐? 이년 속에 들어있는 건 기계라고. 뭐, 상품 가치 있는 인공 성기 말고는 다 싸구려 인공 장기로 갈아치웠지만 말이야. 야, 에미코. 그 꼴 보니까 이제 수명 다 됐네. 포기해라.”
남자의 잔인한 말에 에미코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너무해, 너무하다고… 좋아한다고 했잖아…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수술받은 건데… 당신을 위해서 사이보그가 됐는데… 수술 끝나고 보니까 이런 결함투성이 몸으로 개조해 놓고….”
“수술비는 내가 다 내줬잖아. …뭐, 그만큼 네 새 몸으로 뽕은 뽑았지만 말이야. 게다가 장기도 비싼 값에 팔아치웠으니 얼마나 좋아. 이것도 다 사람 돕는 일이라고, 사람 돕는 일. 캬하하!”
남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웃어댔다. 그 모습에 에미코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순간, 연기를 뿜던 배가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간 그녀의 배에서는 여전히 불꽃과 폭발음이 튀어 올랐다. 카나는 괴로워하는 에미코를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달려갔다.
“히익, 이, 이건… 말도 안 돼….”
에미코의 찢어진 복부에는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체 모를 금속제 장기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불꽃을 튀기며 합선을 반복하는 장기들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시커멓게 타버린 처참한 상태였다.
“저, 저기… 에, 에미코 씨… 정신 차려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에미코가 카나의 부름에 응하듯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난 그이한테 버림받기 싫었어… 그래서 조직에 히토미를… 용서해 줘… 날 용서해 줘….”
“에미코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역시 미요사키 선생님은, 선생님은…!”
“…나, 아직, 죽기 싫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 갸악!”
유독 커다란 전류가 에미코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내부 회로를 태워버렸다. 카나의 품에서 떨어진 에미코의 눈동자에서 급격히 빛이 사라져 갔다. 엎드린 채 쓰러진 그녀가 카나의 외침에도 대답 없이 생명 활동을 멈춘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그럴 수가… 에미코 씨….”
카나는 움직이지 않는 에미코를 안아 일으켜 얼굴을 살폈다. 마치 전원이 꺼진 장난감처럼 그녀의 머리가 툭 하고 앞으로 꺾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이런, 이런 꿈같은 일이 있을 리 없어….”
목소리가 뒤집혔다. 분명 예전에 미요사키 히토미와 사이보그 개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육체를 기계화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인간 자체를 통째로 기계로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런 비인도적인 행위가 허용될 리 없지 않은가. 그렇게 믿어왔다.
“근데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지, 이게.”
남자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카나는 현관을 향해 튀어 나갔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이곳은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하지만 타이트스커트 때문에 마음처럼 달려지지 않았고 다리가 꼬였다. 뛰고 싶어도 공포 때문에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개나 고양이처럼 기어 다니며 카나는 겨우 방을 빠져나왔다. 구두를 신을 여유 따윈 없었다. 밖으로.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고리에 매달려 두 손으로 꽉 쥐고 돌렸다. 안 열린다. 잠겨 있었다. 오토락을 풀려고 손을 뻗었지만, 온몸을 덮친 떨림이 손가락 끝을 마비시켰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걸까.
“살려줘… 누구든, 제발 살려주세요….”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입 밖으로 터져 나왔을 때, 떨리는 손가락 끝이 잠금장치를 잡았다. 찰나의 안도감이 스친 미소. 하지만 그 미소가 얼어붙기도 전에 카나의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시, 싫어어어어!! 갈게요! 저 그냥 갈게요오오오!!”
카나는 두 다리를 붙잡힌 채 그대로 방 안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에미코가 망가진 책임은 네가 져야겠어.”
“에엣! 왜, 왜 제가요! 전 상관없어요!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싫어어어!!”
엎드린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킨 카나는 제 허리에 매달린 상대를 보고 다시 한번 목구멍 깊은 곳에서 쥐어짜는 듯한 절규를 내뱉었다. 에미코다. 에미코가 있다. 방금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에미코가 머리를 산발한 채, 몸에서 불꽃과 연기를 내뿜으며 유령처럼 머리를 비벼대며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에미코의, 검은 액체로 더러워진 입술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 삐빅… 님의… 명령… 입니다. 포획… 포획… 마테리얼… 포획합니… 다….”
감정 없는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뇌가 죽어버려도 일단 보조 전자두뇌 배터리로 잠시는 움직이는 모양이네. 역시 조직의 사이보그는 질이 다르단 말이야.”
남자는 에미코를 발로 걷어차 쓰러뜨리고는 대신 카나의 등 위에 올라탔다.
“마침 조직에 납품할 마테리얼 할당량이 부족해서 고민이었거든. 너처럼 젊고 건강한 소체… 게다가 남자들이 환장할 미인은 비싼 값에 팔리거든. 캬하하, 나도 운이 좋네. 이걸로 에미코 같은 싸구려 말고 고급 섹사보그를 살 수 있겠어.”
남자의 지껄임에 카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팔려간다. 그것도 에미코와 똑같은 사이보그 재료로.
“시,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어어! 놔줘요, 보내달라고요! 싫어어어!!”
남자는 도망치려고 두 팔을 내저으며 기어가는 카나의 팔을 잡아 허리 뒤로 꺾어 눌렀다.
“이게, 얌전히 있어. 이제 포기하고 인간 노릇 관두라고. 어이!”
남자는 카나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바닥에 두 번, 세 번 짓이겼다. 어느새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여기저기 번졌다.
“우윽, 우우….”
“한 번만 더 소란 피우면 코피 정도로 안 끝난다. 팔다리 한두 개 없어도 뇌만 멀쩡하면 사이보그 소체가 되거든. 무슨 뜻인지 알겠지?”
남자의 코앞으로 테이프가 내밀어졌다.
“주인님… 여기… 사용하십시오… 비비빅….”
곁에 무릎을 꿇고 대기하던 에미코였다. 아양을 떠는 듯 흐리멍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계 인형에게서 테이프를 받아 든 남자는 카나의 손목을 결박하더니,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주사기 뭉치를 꺼냈다. 캡을 입으로 벗기고 약물이 바늘 끝에서 살짝 뿜어지는 걸 확인했다.
“머, 뭐 하려는 거예요, 싫어, 약은 싫어! 이상한 약 놓지 마요, 싫어! 하지 마, 싫어어어!”
“금방 기분 좋아질 거야. 이거 맞으면 다들 너무 좋아서 오줌까지 지려버리거든. 듬뿍 맛보고 천국이나 가라고. 캬하하하!”
“히기익!”
등 뒤로 묶인 팔에 날카로운 통증이 달렸다. 한 대가 아니었다. 두 대, 세 대. 그 수는 다섯 대에 달했다. 투여가 끝나자 남자는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일어섰다. 하지만 엎드린 채 양손이 묶여 다리를 축 늘어뜨린 카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카나의 가느다란 사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벌써 약 기운이 그녀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의미 없는 신음이 카나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이긋, 이긋, 히익, 히익, 히이이이이익!”
쪼르르, 쪼르르르르….
이윽고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카나의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하얀 김을 내뿜으며 그것은 스커트를 적시고 카펫에 얼룩을 넓혀갔다. 배뇨의 쾌감에 카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고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양쪽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뒤집혔고, 입에서는 혀가 축 늘어져 나왔다. 그리고 입가에 침을 흘리며 그녀는 무의식중에 미요사키 히토미의 이름을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좋아해… 사랑… 해….”
남자는 카나의 잠꼬대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이년 레즈였어? 얌전하게 생겨가지고는, 모를 일이네. 야, 에미코. 납품하기 전에 좀 예뻐해 주는 게 어때?”
농담조로 던진 남자의 말에 주저앉아 있던 에미코는 반응하지 않았다.
“…왜 이래?”
에미코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전자두뇌 배터리까지 다 나갔나 보네. 진짜로 뒈졌구먼. 자, 이걸 그냥 대형 쓰레기로 버릴 수도 없고… 어쩐다.”
남자의 무정한 말에도, 그저 고장 난 기계 인형이 되어버린 그녀는 그저 한결같은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카나는 생각했다.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몸을 감싸는 압박감. 그렇게 견디기 힘든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압박감에서 묘한 고양감마저 느껴졌다.
‘왠지 흥분돼. 이건 왜 이럴까?’
의식을 가다듬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이 양팔과 양다리에 느껴지는 압박감과 촉감은 기억에 있다. 고등학교 축제 때 댄스파티가 있었을 때, 드레스에 맞춰 꼈던 팔꿈치 위까지 오는 실크 롱 글로브. 그리고 평소 즐겨 신는 롱부츠의 약간 끼는 듯한 감촉. 그리고 가슴부터 가랑이까지 몸통을 감싸는 이 느낌은 ‘수영복’, 아니 학생 때 입어본 적 있는 ‘레오타드’일까.
“아앗!”
카나는 뒷덜미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의식이 확 깨어났다.
“어, 뭐야, 여기 어디야?”
처음엔 뿌옇게 잘 보이지 않던 시야가 급격히 선명해졌다.
“여긴 캡슐 안? 왜 내가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거야. 게다가 이 차림… 싫어… 뭐야 이거….”
검은 광택이 흐르는 롱 글로브를 낀 양팔은 머리 위로, 역시 검은 롱부츠를 신은 양다리도 발치의 금속 부품에 의해 구속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공중에 매달린 상태였다. 언제, 누구에 의해 입혀졌는지 모를 그 검은 광택의 의상은 가죽도 에나멜도 아니었다. 질감으로는 라텍스 소재에 가까웠다. 피부에 착 달라붙어 몸매의 곡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로브와 부츠, 그리고 레오타드에서는 배덕적이고 음란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창피해, 창피하다고, 이런 차림… 머, 뭐야, 아, 앙!”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온몸을 감싸는 가벼운 압박감에 더해, 레오타드가 밀착된 부분에서 찌릿찌릿한 미약한 전류가 흘러들어와 체내 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자극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어봐도 양손과 발이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아앗, 싫어어, 이 레오타드 이상해… 찌릿거려… 피부가 아파… 근데 왠지… 싫어어… 벗겨줘… 이상해… 이상해져 버려어어….”
열 섞인 숨을 내뱉으며 카나는 요염하게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목 쪽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목걸이다. 굵은 금속제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목걸이에는 의미 모를 번호까지 각인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경매 시장에 내놓인 가축 같지 않은가.
기억났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 남자가 말했던 ‘조직’의 시설임이 틀림없다. 약 기운에 의식을 잃은 뒤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다. 카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 장난 아니야, 왜 내가 사이보그로 개조되어야 하는 건데….”
중얼거림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변했다.
“누구든 좋으니까 살려줘… 제발 살려줘요….”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카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매달린 팔 사이로 주변을 살폈다. 어둡고 차가운 공장 같은 넓은 공간에 똑같은 캡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캡슐들 내부는 하나같이 옅은 푸른색 빛에 휩싸여 있었다.
“저, 저기…!?”
빛에 덮인 캡슐 안에 젊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늘어선 캡슐들 속에는 10대에서 20대 여성들이 저마다 카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구속되어 갇혀 있었다.
“설마 여기 있는 여자애들 전부 사이보그로 개조한다는 거야? …거, 거짓말이지?”
카나는 어떻게든 손발의 구속을 풀 수 없을지 다시 시도했다.
“아, 안 풀려…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어떡해야 해.”
카나는 문득 오른쪽 캡슐을 들여다봤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가 필사적으로 무언가 외치고 있는 게 보였다. 분명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리라.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걸까. 연인일까, 아버지일까, 아니면 어머니일까. 하지만 비통하기까지 한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캡슐은 방음 처리까지 완벽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캡슐 안의 조명이 녹색에서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했다.
[마테리얼 개조 준비 프로그램. 모드 2 기동합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낸 전자 음성이 울려 퍼졌다.
“개, 개조 준비라고? 자, 잠깐만, 난 그런 거 싫어! 우, 우윽!”
다시 뒷덜미에 격통이 달렸다. 목걸이 안쪽에 바늘 같은 게 달린 게 아닐까 싶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무언가 약물이 주입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카나의 몸에 즉각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머릿속이 옅은 분홍색 안개에 휩싸인 듯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레오타드에서 느껴지던 자극이 갑자기 강해진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카나의 감각 자체가 강제로 예민해진 것이었다.
“앗, 하앗, 시, 싫어… 뭐야 이거… 싫어어어!”
척추가 뜨거운 막대기로 변한 듯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서서히 호흡이 거칠어지고, 노출된 어깨와 가슴팍에 진주 같은 땀방울이 일제히 맺혔다.
“뜨, 뜨거워어어! 안 돼, 못 참겠어! 아하아….”
가슴을 덮은 레오타드 아래로 유두가 소재를 뚫고 나올 듯 발기하는 게 느껴졌다. 허공에 뜬 부츠 끝이 몇 번이고 뒤로 젖혀지듯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기분 좋아, 이 레오타드… 몸에 착 달라붙어서… 너무 기분 좋아아! 아앗, 가, 가버려어어! 싫어어어어어!”
푸슈우우우우!
카나의 가랑이 사이에서 격렬하게 뿜어져 나온 투명한 액체가 캡슐 벽을 더럽혔다.
“아앗, 아앗, 안 멈춰, 싫어, 이런 거, 처음이야아아!”
머릿속이 생크림과 함께 휘저어지는 듯한 달콤하고 불가사의한 감촉으로 가득 찼다.
‘더 기분 좋게 해줄까?’
그때 뇌 속에 직접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까의 기계 음성과는 달리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 같았다.
“아하앙, 이, 이렇게 기분 좋은데… 더 기분 좋아질 수 있어?”
‘그럼. 인간 여자로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쾌락을 내가 너에게 줄 수 있어.’
“인간 여자로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쾌락?”
‘그래. 나에게 모든 걸 맡기렴.’
“싫어… 싫어… 무서워….”
‘나는 너희에게 새로운 생명과 육체를 줄 수 있어. 그래,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러면 더, 더, 더, 더 기분 좋아질 수 있단다.’
“…더 기분 좋아질 수 있다고? 아하, 아하하. 멋져라… 우후, 나, 사이보그로… 기계가 되어도 좋아… 기계가 되면… 계속 기분 좋은 채로 있을 수 있는 거죠….”
순간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며 이성이 소멸해 갔다.
“될래요! 사이보그가 될래요! 빨리, 빨리, 빨리! 저를 기계 몸으로 개조해 주세요! 저, 더 기분 좋아지고 싶단 말이에요! 사이보그로 개조해 주세요오오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내뱉는지 카나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뇌로 이어지는 신경이란 신경을 타고 흐르는 전류가 더욱 강해졌다.
“갸히이이이익! 또, 또, 또, 가버려엇! 앗, 앗, 아아아!”
매달린 채 구속된 사지가 뒤로 젖혀지며 경직된 바로 그때였다. 그녀를 지배하던 모든 감각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 아후, 아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강제로 제정신으로 돌아온 카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좌우의 캡슐을 살폈다. 캡슐 안에서 여전히 강제로 몸부림치며 미쳐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머, 뭐야, 이 캡슐은… 억지로 이런 짓을….”
카나는 제 가랑이가 흠뻑 젖어있는 걸 보고 수치심에 뺨을 붉혔다. 그리고 광란에서 깨어난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 너무 기분 좋아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어… 사이보그가 되고 싶다니, 개조해 달라니….”
끔찍한 추측이 떠올랐다. 아니, 추측이 아닐 것이다.
“나, 세뇌당하고 있었던 거야?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는 걸 받아들이도록 세뇌당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
쾌락에 몸을 맡기고 소리쳤던 대사들을 떠올리며 카나는 격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데 아까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 그건 미요사키 히토미의 목소리가 아니었나.
“아니야, 미요사키 선생님은 절대로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않아. 게다가 사이보그가 되라는 소릴 할 리가 없다고!”
거기까지 중얼거리던 카나는 또 다른 의문에 부딪혔다.
“그런데 왜 나만 세뇌 처리가 멈춘 거지? 주변 사람들은 아직…!?”
그건 돌연한 일이었다. 어째서인지 손발의 구속이 풀린 것이다. 캡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진 카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바깥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정면을 보니 캡슐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다, 당신은…?”
그곳에는 흑발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카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너, 너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무심코 소리를 지른 카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절친, 혼조 아리사 본인이었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재회에도 불구하고, 아리사에게서 돌아오는 건 차가운 침묵의 시선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차가운 눈빛을 하는 아리사를 본 적이 있었던가.
“아리사…?”
눈앞에 나타난 친구는 목까지 덮는 검은색 민소매 라텍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손과 발에는 카나와 똑같은 롱 글로브와 부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묘한 매력을 풍기는 모습에서는 예전의 얌전하고 소심했던 그녀를 도저히 연상할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아리사, 왜 네가 여기 있어. 게다가 그 차림… 아하하,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야.”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리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카나는 그런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억지웃음이 사라지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었다. 달랐다. 체형이 예전의 아리사와는 딴판이었다. 그녀는 이런 거유가 아니었고, 훨씬 마르고 가냘픈 체구였다. 게다가 피부도 원래 하얀 편이었지만 이렇게 눈처럼 창백하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피가 통하지 않는 인형 같지 않은가.
‘인형?’
카나의 얼굴에 공포와 경악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을 때, 비로소 아리사의 표정이 변했다. 씁쓸한 분노가 섞인 미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난 기쁨의 미소. 그리고 운명을 저주하는 듯한 슬픈 미소.
“카나… 나야, 아리사야. 오랜만이네….”
“아, 아리사…? 아니야, 넌 아리사가 아니야. 내가 아는 아리사는, 아리사는…!”
친구를 부정해야만 하는 그 말을 내뱉으며 카나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리사로 변장해서 대체 무슨 꾸밈을 하는 거야! 나한테 뭘 하려는 거냐고!”
“진정해, 카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해!!”
아리사의 두 팔이 뻗어 나와 카나의 몸을 껴안았다. 차가웠다. 아리사의 몸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귓가에 그녀가 속삭였다.
“왜, 왜 내 충고를 들어주지 않았어…. 널 지키기 위해 나랑 미요사키 선생님이 얼마나….”
입술을 깨문 아리사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단 말이야. 다들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지고… 나 혼자 남겨졌는데… 안 찾을 수가 없잖아!”
“바보, 카나 이 바보야! 얌전히 내 말만 들었으면 네 안전은 보장됐을 텐데!”
역시 그녀는 진짜 혼조 아리사다. 모습이나 분위기는 변해버렸지만 틀림없다. 카나는 확신했다.
“돌아가자, 아리사 어머니도 엄청 걱정하고 계셔. 미요사키 선생님도 여기 잡혀 있는 거지? 구출해서 다 같이 돌아가자!”
카나는 아리사가 동의해 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캡슐에서 구해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사의 반응은 달랐다.
“난 같이 갈 수 없어. 물론 미요사키 선생님도 마찬가지고.”
“어, 어째서?”
“어째서냐고? …카나, 너도 이미 눈치챘잖아.”
“머, 뭘 눈치챘다는 거야?”
카나에게서 몸을 뗀 아리사의 얼굴이 돌연 감정을 잃은 듯 보였다.
“나도, 미요사키 선생님도 이제 사람이 아니야. 우린 기계… 그래, 사이보그로 개조당했어. 여기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거야.”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아리사가 불쑥 오른손 검지를 제 왼쪽 어깨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팔꿈치 근처까지 단숨에 찢어 내렸다. 카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상처 부위에서는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노출된 것은 회색 금속 골격과 그 주위를 감싸듯 박혀있는 가느다란 케이블 뭉치, 미세한 전자 부품들이었다. 그 카타기리 에미코와 ‘똑같았다’.
“이제 알겠지, 난 기계야. 예전의 혼조 아리사는 없어… 죽었어. 카나 너라면 눈치챘을 거야, 아까 내 심장 박동이 들리지 않았다는 거…. 나한테 남은 건 머릿속의 생체 뇌뿐이야… 그것도 꽤 기계화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난 인간일 때의 기억을 남겨줬기에… 너를 이렇게 구해낼 수 있었던 거야.”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쨌든 도망쳐. 여기서부터는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여기 있으면 너도 나처럼 개조당하고 말 거야. 자, 날 따라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팔꿈치로 닦아내며 카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사는 그런 카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치치직 소리가 났다. 그것이 머릿속에 심어진 보조 전자두뇌가 보내는 경고임을 아리사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하려는 짓은 조직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었으니까.
제6화 / 끝
미즈사와 카나는 절친인 혼조 아리사가 이 끔찍한 조직 내에서 이미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난 주인님이신 회장님의 비서이자 소유물이야. 그러니까 하급 구성원 따위가 나한테 감히 참견할 순 없어.”
아리사는 붉은 루주를 칠한 입술에 서늘한 미소를 띠며, 일말의 의문이나 주저함도 없이 내뱉었다.
말투며 몸짓, 표정까지. 그곳엔 카나가 알던 예전 아리사의 모습은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이보그로 개조되면서 아리사는 이미 이 조직의 부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나는 이 슬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걱정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카나 너만큼은 여기서 도망치게 해줄 테니까.”
시설은 어둡고 좁은 통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솔직히 카나 혼자 도망치려 했다면 금세 길을 잃고 붙잡혔을 게 뻔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제 이 지하 시설을 빠져나가려면 아리사를 믿는 수밖에. 비록 육체의 대부분이 기계로 바뀌었을지언정 그녀는 혼조 아리사다. 아직 자신을 친구라 불러주는, 마음을 가진 인간이다. 카나는 그 사실을 믿고 그녀에게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머티리얼 컴퍼니?”
“그래, 머티리얼 컴퍼니. 이 조직의 이름이야.”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리사가 조직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했다.
“머티리얼 컴퍼니라면, 그 로봇 아이돌 그룹을 개발해서 단숨에 치고 올라온 대기업 아니야?”
그 순간 카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잠깐만! 로봇… 사이보그… 서, 설마, 그럴 리가…!”
카나의 의문에 아리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 15년 전, 인간과 똑같은 춤과 노랫소리로 연예계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여성형 안드로이드 아이돌 그룹 ‘DOLLS’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녀들은 ‘버전 업’이라는 명목으로 멤버 교체를 빈번히 하며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카나와 아리사도 어린 시절부터 TV 속 DOLLS를 보며 자란 세대였다.
——커서 DOLLS 멤버가 될 거야.
어린 소녀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돌아오는 단골 답변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라는 걸 아는 어른들은, 그저 철없는 동경이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란다, 기계로 만든 인형일 뿐이야’라고.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린 지금의 카나는 결코 웃으며 대답할 수 없었다.
“…설마, 그럼… DOLLS는 안드로이드 같은 게 아니라…”
아리사의 검고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그녀들은 인간이야. 아니, ‘원래’는 인간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
카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릴 적 동경하던 안드로이드 소녀들이 사실은 개조된 진짜 인간이었다니. 믿기 이전에 믿고 싶지 않았다.
“카나, 춥지 않아?”
갑작스러운 아리사의 말에 카나는 그제야 자신이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츠와 롱 글로브를 끼고는 있었지만, 몸에 걸친 건 정체불명의 합성 섬유로 만든 레오타드 한 장뿐이었다. 기온도 확연히 낮았다.
“아리사 너야말로 나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 감기 걸리겠어, 넌 항상… 앗, 미, 미안.”
좁은 공간에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괜찮아… 난 이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니까.”
다행히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서로 안도했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마음을 다잡은 아리사가 카나를 재촉하며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정면을 바라본 두 사람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곳엔 믿기지 않게도 엘리베이터를 겹겹이 에워싼 무장 흑복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 중앙의 인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검은 가죽 드레스를 입은 금발 미녀가 당혹해하는 아리사 일행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법 대담한 짓을 저질렀구나, WSD-2 프로토 1. 조직을 배신하는 게 사이보그인 네게 불가능하다는 걸 몰랐던 걸까? 네 행동은 뇌에 심어진 발신기로 전부 추적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나 보네.”
“로, 로즈 님, 제발 들어주세요. 조직을 배신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저 절친인 카나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바로 배신이야! 조직의 머티리얼을 빼돌리려 하다니, 절대 용납 못 해!”
로즈가 날카롭게 일갈하며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채찍을 아리사를 향해 휘둘렀다. 아리사는 뒤로 도약하며 그 공격을 피했다.
“카나, 뒤로 물러나! 절대 앞으로 나오면 안 돼!”
처음 보는 아리사의 무시무시한 표정.
“전투 모드 기동, 프로그램 스타트…”
아리사의 중얼거림에 호응하듯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점멸하고 머리에서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느다란 양팔에 끼워진 장갑을 찢어발기며 검게 빛나는 투박한 기관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팔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잡는 아리사를 보고 카나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놀랍네. 정말 조직을 배신할 작정인가 보지?”
“얼마 전, 회장 비서로서 호위용 무장을 장착하는 재개조를 마쳤습니다. 부탁입니다, 길을 비켜주세요!”
콰콰쾅! 격렬한 굉음과 함께 기관포가 포효했다. 물론 위협 사격이었다. 로즈의 발치에서 총탄의 불꽃이 튀었고, 주변 사내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로즈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요지부동이었다.
“…우후후, 훌륭해. 판저 박사가 널 눈여겨본 건 틀리지 않았나 보네.”
착! 로즈의 채찍이 바닥을 때렸다.
“성처리용 사이보그뿐만 아니라 전투용으로서도 재능이 꽃피다니. 여기서 재개조를 더 거치면 얼마나 우수한 사이보그가 될지… 기대되는걸.”
구역질 나는 말을 들으며 아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계 몸임에도 등줄기에 오한이 달렸다.
“비키세요… 다음엔 정말 맞히겠습니다.”
아리사의 위협은 흑복 사내들에게 충분히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 인간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카나, 나만 따라와. 떨어지면 안 돼.”
아리사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카나를 등 뒤에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로즈만이 홀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심한 놈들 같으니. 전부 나중에 처분해버릴까 보다.”
채찍 손잡이에 요염하게 혀를 놀리며, 로즈는 다가오는 아리사와 대치했다.
“비켜… 주세요…”
아리사의 기계 눈동자가 차가운 살의를 담은 빛을 뿜어냈다.
“좋아, 그 눈빛… 감정을 지우고 욕구대로 움직이는 것. 그게 인간을 버리고 사이보그가 된 자들에게 허락된 최고의 쾌락이지.”
고막을 찢는 듯한 기관포의 작렬음이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이번엔 가차 없이 로즈를 노렸다. 하지만 로즈의 움직임은 아리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비처럼 날아오른 로즈가 검은 가죽 의상에 감싸인 몸을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시켰다. 그녀의 금발이 하나의 곡선, 빛의 궤적을 그리는 듯 보였다.
슈슉!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로즈의 채찍이 칼날로 변해 아리사의 몸을 일섬했다.
비명은 없었다. 지를 틈조차 없었으니까. 경악한 표정의 아리사는 자신의 왼팔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네까짓 게 나한테 대드는 건 만 년은 일러.”
소리 없이 착지하며 몸을 돌린 로즈의 팔이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이번 채찍질은 하얀 전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걸 본 아리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개조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로즈에게 이 전기 채찍으로 얼마나 조교당했던가. 생체 뇌가 타버릴 듯한 그 처절한 격통과 고통. 그 기억이 메모리에 강렬한 공포라는 부하를 주었다.
“가서 뒈져버려!”
“갸아아아아악!”
아리사의 전신이 백열광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옷은 고열에 터져 나갔고, 희고 아름답던 인공 피부도 순식간에 구워졌다. 찢겨 나간 피부 곳곳에서 내부 기계가 노출되었고, 쇼트로 인한 불꽃이 격렬하게 튀어 올랐다.
연기를 피워 올리며 멍하게 서 있는 아리사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카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말을 잃었다.
“카나… 미안해…”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리사가 줄 끊긴 인형처럼 고꾸라졌다. 로즈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부츠 굽으로 무심하게 짓밟았다.
“히극!”
“아파? 괴로워? 어설프게 생체 뇌를 남겨두니까 힘든 거야. 이대로 으깨서 편하게 해줄까? 우후후후.”
요귀 같은 미소를 띠며 로즈가 사정없이 짓이겼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아리사가 죽는단 말이야! 더 이상 괴롭히지 마!”
그 순간 카나는 심장이 꿰뚫리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로즈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기 때문이다. 채찍이 거칠게 바닥을 쳤다.
“시끄러운 머티리얼이네. 원한다면 너도 벌을 줄까?”
천천히 다가오는 로즈를 보며 카나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제, 제발… 그런 채찍에 맞으면… 죽어버려요.”
“죽으면 되잖아?”
차갑게 내뱉으며 로즈가 채찍을 치켜든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살기를 느끼고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만신창이가 된 아리사가 일어서 있었다. 남은 오른팔의 기관포를 정면으로 겨눈 채.
“내 카나한테 손대지 마아아아!”
절규와 함께 아리사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고, 로즈의 오른 손목을 채찍과 함께 날려버렸다. 아리사는 곧장 로즈에게 조준을 고정했다. 이 지근거리라면 빗나갈 리 없다. 이미 락온을 알리는 붉은 시그널이 아리사의 망막에 투영되고 있었다.
“이, 이년이 감히… 쏠 거야? 네가 정말 날 쏠 수 있을까?”
“쏠… 수 있어… 카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럼 해봐. 조준은 여기, 이마 한가운데다. 내 생체 뇌를… 똑바로 노려.”
“쏘겠… 습니다.”
카나는 이 팽팽한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귀를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음 순간 여전사 사이보그들의 싸움이 끝났음을 알리는 총성이 울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리사의 오른팔은 불을 뿜지 않았다.
“장난이 지나치군, 로즈.”
통로 깊숙한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 카나도 아는 목소리였다. 판저 박사다.
수트 위에 백의를 걸친 기분 나쁜 판저 박사가 오른손에 작은 장치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카나는 아리사의 이상을 눈치챘다.
작은 전자음이 끊임없이 그녀의 머리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스위치가 꺼진 인형처럼 전신이 굳어버렸다.
“아, 아리사… 왜 그래, 대답 좀 해봐, 아리사… 아리사아아!”
달려간 카나가 아무리 부르고 어깨를 흔들어도 그녀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빛을 잃은 어두운 눈동자만이 허공을 향해 있었고, 그곳엔 더 이상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신들 아리사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아리사에게 매달린 채 카나가 분노를 터뜨렸다.
“생체 뇌와 기계체의 접속을 강제로 차단했지. 죽이진 않았으니 안심하게나.”
“판저 박사… 당신이, 당신이 아리사를… 미야사키 선생님을…”
“오호, 움직이지 마라. 이 리모컨 스위치를 누르면 그녀의 생체 뇌가 담긴 캡슐을 순식간에 파괴할 수도 있으니까.”
카나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게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건 그들의 행동을 보면 자명했으니까.
“그보다 자네도 참 어리석은 짓을 했군, 미즈사와 카나 군.”
온몸을 핥는 듯한 판저의 말투에 카나는 뭔가를 말하려다 삼켰다.
“혼조 아리사 군, 그리고 미야사키 히토미 박사… 둘 다 자네만큼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었지. 우리도 그걸 수용했었는데… 설마 자네 발로 직접 찾아올 줄이야. 이래서야 두 사람의 고생도 물거품이군.”
카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정말 바보 같은 계집애네. 그대로 두 사람 일은 잊고 숨어 지냈으면, 지금쯤 평범하게 즐겁게 살고 있었을 텐데… 좋아하는 남자 만들어서 결혼하고, 애 낳고 기르고… 인간 여자로서 당연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우후후, 하지만 이젠 무리야.”
“무, 무리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판저의 등에 고양이처럼 달라붙은 로즈를 향해 카나가 독기를 품고 쏘아봤다.
“자네 데이터를 보니 우수한 사이보그 소체가 될 수 있겠더군. 그래서 자네도 사이보그로 개조하기로 했네. 이제부터 자네도 조직을 위해 일해줘야겠어.”
카나가 비명을 질렀다. 감정의 파동이 목소리를 넘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공포.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공포였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경련하듯 떨리는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카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네. 자네도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기계 몸으로 다시 태어나면 우리에게 감사하게 될 거야. 개조 수술의 고통 따위는 나중에 맛볼 쾌락에 비하면 사소한 거지. 안 그래, 로즈?”
“네, 판저 박사님 말씀이 맞아요, 우후후…”
로즈는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며 판저에게 코끝을 비비더니 그대로 입을 맞췄다. 한참 동안 서로의 입안을 탐하던 판저가 흑복 사내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이 주저앉아 있는 카나에게 달려들었다.
“시, 싫어, 싫어어! 오지 마, 살려줘어어!”
아리사가 움직이지 않는 인형이 된 지금, 카나에게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양팔을 붙잡혀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지만, 도저히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문득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사내들의 비웃음을 사며 카나는 자신의 가랑이를 내려다봤다.
“이런 이런, 젊은 아가씨가 참 부끄럽게도 실례를 범했군… 하하하!”
“박사님, 웃으면 가엾잖아요. 아마 이게 인간으로서 마지막 배설이 될 텐데.”
카나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마지막이라니… 설마, 지금 당장?… 수술… 개조되는 거야…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게. 개조 수술은 자네가 아끼는 미야사키 히토미 박사가 담당할 테니까. 듬뿍 사랑받으며 사이보그가 되라고. 수술이 끝나면 다시 보지.”
“미, 미야사키 선생님이 나를… 개조?… 거짓말, 그럴 리 없어! 선생님이 그런 끔찍한 짓을, 날 개조하다니, 그럴 리 없다고!”
절규하는 카나는 사내들에게 양팔이 꽉 붙잡힌 채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놓아줘, 싫어! 인간으로 남고 싶어, 난 인간이고 싶단 말이야! 아리사, 도와줘! 제발, 아리사, 나도 개조당한단 말이야! 아리사아아! 사이보그가 되는 건 싫어어어!”
이제 도움을 청할 곳은 아리사뿐이었다. 하지만 아리사는 카나의 필사적인 부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로즈가 부츠 굽 소리를 울리며 카나에게 다가왔다. 땀과 눈물, 콧물로 더러워진 얼굴에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밀착했다.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가 반광란 상태로 저항하는 카나를 꿰뚫었다. 핏빛 입술이 비릿하게 웃었다.
“포기해.”
카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제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비명조차 되지 못한 신음뿐이었다.
“어서 수술실로 데려가.”
“싫어, 싫어! 제발 용서해줘, 살려줘, 제발!”
로즈의 명령에 사내들은 발버둥 치는 카나를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옥 탈출에 실패하고, 다시 그 지옥의 심장부로 끌려가는 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카나의 눈물 젖은 시야 끝에 걸린 것은 말없이 서 있는, 고철이나 다름없는 아리사의 뒷모습이었다.
***
미야사키 히토미에게 주어진 전용 수술실은 언제나 어두웠다. 하지만 조명이 없어도 그 방에 들어온 자는 금세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면 늘 방 중앙의 수술대 위에서 교성을 지르며 자위에 몰두하곤 했으니까. 그녀의 기계 몸이 청백색으로 발광하며 어둠 속에서 환상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이보그로 개조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던 우사미 아야코를 자신과 같은 기계로 개조한 것을 계기로 그녀는 변했다. 인간 시절의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백면 미녀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요염한 미소만이 감돌았다. 이제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는 건 아름다운 소녀를 제 입맛대로 개조해 함께 쾌락을 탐닉하고 싶다는 욕망뿐이었다.
지금, 그녀 앞에 새로운 제물이 바쳐졌다.
딱딱한 수술대 위에 전라로 눕혀진 소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히토미의 얼굴은 유례없는 유열로 일그러져 있었다. 천장의 수술용 라이트를 받아 그녀가 입은 붉은 실크 롱 드레스가 기괴한 광택을 내뿜었다.
“카나… 잘 왔어. …기뻐…”
하얀 시트에 덮여 얼굴만 내놓고 있던 카나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미야사키 히토미의 모습 앞에서 비명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날 계속 찾았다면서? 이제 안심해, 앞으론 계속 함께일 테니까…”
뺨을 어루만지는 히토미의 손길. 그 차가움에 카나는 목구멍으로 쇳소리를 냈다. 차갑다. 손바닥에 사람의 온기가 전혀 없었다. 겁에 질린 카나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히토미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왜 그래? 뭘 그렇게 무서워해,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속삭이며 입술을 가까이 대는 히토미의 두 눈이 하얗게 번뜩이는 걸 보고, 카나는 결국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미야사키 선생님이 아니야! 내가 아는 선생님은 이렇지 않아!”
히토미의 움직임이 멈췄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얼굴을 가까이 댄 채 묵묵히 카나를 응시했다.
“왜 그런 말을 하니, 카나? 넌 예전에 나한테 그랬잖아. 내 연구를 위해서라면 실험 재료가 되어도 좋다고.”
카나는 할 말을 잃었다. 히토미가 조직에 납치되기 직전, 연구실에서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눈앞의 여자가 미야사키 히토미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히토미의 입술이 기괴하게 호선을 그렸다. 흥분한 걸까. 끈적한 타액에 젖은 혀가 요염한 빛의 입술을 천천히 핥아 올렸다.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전 선생님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하지만 사이보그라니, 기계가 된다니…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 절대 싫어요!”
어느덧 카나의 호소에는 눈물이 섞였고, 굵은 눈물방울이 둑 터진 듯 쏟아졌다. 몸은 수술대에 구속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카나는 머리를 거칠게 좌우로 흔들며 거부 의사를 표시할 뿐이었다.
고개를 든 히토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카나를 쏘아봤다.
“카나, 지금의 널 만든 게 누구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대답해… 누구냐고.”
“만들었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여자의 기쁨을 모르던 아이에게 어른의 쾌락을 가르쳐준 게 누구냐고 묻잖아. 다 알고 있어. 네가 후배 소녀들에게 내가 너한테 했던 짓을 똑같이 하며 즐기고 있다는 거.”
“서, 선생님! 그건…”
“처녀를 몇 명이나 바치게 했니? …뭐, 요즘 세상에 그런 순진한 애들은 드물겠지만.”
히토미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네 그 성벽을 개발한 건 나야. 지금의 넌 내가 만든 작품이라고… 그러니까 난 널 더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 권리가 있어.”
“너무해요… 선생님, 너무해… 읍!”
반박하려던 카나의 입술을 히토미가 자신의 입술로 막아버렸다. 격렬하게 혀를 빨아올리고 얽히게 하며 잇몸을 핥았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타액을 흘려 넣었다. 물론 이 타액은 강력한 최음제가 포함된 인공 체액이었다.
“읍, 윽, 으후읍!”
괴로운 듯 코로 숨을 몰아쉬며 카나는 히토미의 키스에 유린당했다. 두 손으로 머리가 고정되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카나… 더, 더… 윽!”
갑자기 히토미가 입을 뗐다. 입술 사이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그대로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더니 뭔가를 덥석 잡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작은 불꽃을 튀기며 굴러다니는 건, 놀랍게도 히토미의 혀였다.
“이게… 네, 대답이야…?”
목의 인공 성대가 내뱉는 전자음이 카나의 공포를 극대화했다. 그때 히토미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언제부터 있었는지 네 명의 소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모두 아리사가 입었던 것과 같은 검은 가죽 원피스와 롱 글로브, 롱 부츠 차림이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녀들 역시 사이보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히토미는 긴 흑발을 뒤로 묶은 앞쪽 소녀를 손짓해 불렀다. 그리고 다가온 소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요염하게 턱을 끌어당겼다.
“히익!”
카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히토미는 소녀의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를 뽑아냈다. 아니, ‘탈착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입안에 장착했다.
“…후우, 이제 제대로 말이 나오네. 네 혀 유닛은 나중에 새 걸로 끼워줄게.”
“…네, 주인님…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소녀는 고통을 느끼는 걸까, 두 눈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입에서도 같은 액체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결코 거역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히토미에게 도움이 된 걸 기뻐하고 있었다.
“설마 카나가 내 혀를 깨물어 끊을 줄이야… 이 혀 유닛도 꽤 비싼 건데. 곤란하네, 카나. 우후후.”
네 명의 사이보그 소녀를 거느린 히토미는 카나가 겁먹은 걸 꿰뚫어 보듯 눈을 가늘게 떴다.
“궁금하니? 이 아이들은 내 펫이야. 사이보그 소재 중에서 내가 엄선해서 개조한 아이들이지. 물론 뇌 개조도 완벽해서 내 명령엔 절대복종해. 하지만 걱정 마… 카나 넌 이 아이들보다 훨씬 좋은 부품을 써서 훨씬 고성능인 사이보그로 만들어줄 테니까. 기대해…”
“미, 미야사키 선생님, 제발… 그만하세요… 이런 끔찍한 짓… 그 다정했던 선생님은 어디로 간 거예요… 이제 싫어, 으으윽.”
이제 히토미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걸까. 움직일 수 없는 그녀에겐 선택지가 너무도 없었다.
“카나… 그렇게 사이보그가 되는 게 싫어? 왜?”
“싫어요! 절대로 싫단 말이에요!”
히토미의 대답은 없었다. 침묵이 어두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그동안 히토미는 카나의 눈을 빤히 쳐다봤고, 카나 역시 그 시선을 받아냈다. 그러다 문득 히토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카나는 그 순간 히토미의 감정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이보그라 해도 몸을 관장하는 건 히토미 본래의 생체 뇌일 터. 아리사처럼 인간의 감정이 되살아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주 미세하지만 희망이라는 빛이 보이는 듯했다.
“미, 미야사키 선생님…”
“미안해, 카나… 네가 그렇게까지 거부할 줄은…”
“알아주신 거예요, 선생님!”
히토미는 고개를 깊게 숙인 채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이제 됐어요, 괜찮아요. 선생님이 알아주셨다면 그걸로 됐어요. 자, 어서 절 풀어주세요. 같이 여기서 도망쳐요!”
카나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다. 역시 히토미에겐 인간의 마음이 남아있었다. 미야사키 히토미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네?”
카나의 얼굴에 피어났던 미소가 그 순간 얼어붙었다.
“그래, 이미 늦었다고. 카나.”
고개를 든 히토미는 울고 있지 않았다. 웃고 있었다. 숨이 멎을 만큼 냉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늦, 늦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런 뜻이야.”
히토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술대 주변의 사이보그 소녀들이 카나를 덮고 있던 하얀 시트를 걷어치웠다.
카나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 그녀의 피가 흐르는 육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의 바디 라인을 형성하는 금속 골격과 그 안에 담긴 인공 장기 같은 기계 부품, 회로 뭉치들. 양팔과 다리는 없었고, 수십 개의 가느다란 케이블과 튜브가 그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카나는 눈을 부릅뜬 채 입만 벙긋거렸다. 너무 큰 충격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카나라면 날 위해 기꺼이 사이보그가 되어줄 줄 알았어. 그래서 생체 장기들은 진작에 다 적출해서 처분해버렸단다. 보렴, 이게 네 인공 심장이야. 아주 잘 뛰고 있지? 사이보그용 인공 혈액 교체도 곧 끝날 거야. …그러니까 이미 늦었어. 늦었다고, 카나. 우후후후.”
“…그, 그럴 리가, 내, 내 몸이… 내 몸이… 기계로, 기계가 됐어… 거짓말… 거짓말이야… 싫어, 싫어, 싫어어어어!”
간신히 짜낸 비명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카나의 육체는 구속된 게 아니었다. 이미 소멸한 것이었다. 차가운 기계 몸으로 재조립되어버린 것이다. 본인의 의사가 아닌, 미야사키 히토미의 뒤틀린 애정에 의해.
끝나지 않는 절규. 그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주인님, 머티리얼이 의식을 잃은 것 같습니다.”
“강제 각성시킬까요?”
사이보그 소녀들이 눈을 푸르게 점멸하며 물었다. 미야사키 히토미는 실신한 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황홀경에 빠진 채 답했다.
“이번엔 이대로 수술을 진행하자…. 카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기뻐할 얼굴이 보고 싶거든.”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럼…”
사이보그 소녀 중 한 명이 히토미의 등 뒤로 가 드레스를 벗겼다. 전라가 된 히토미의 목덜미부터 등 쪽 단자에 코드를 연결했다. 히토미의 몸이 음란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이거야, 이 감각…. 기분 좋아… 참을 수 없어…”
히토미의 아름다운 나신을 이루던 인공 피부가 은색 금속 장갑으로 변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나타난 모습은 은색 기계 인형,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삐삐삐… ‘머티리얼 개조 오퍼레이션 사이보그 형식 번호 MOS-03’. 개조 프로그램을 기동합니다——. 머티리얼 ‘미즈사와 카나’의 개조 수술을 속행한다.”
히토미의 은색으로 빛나는 두 눈이 환희와 절정으로 격렬하게 번뜩였다.
“환영해, 카나. 금방 다시 만들어줄게. 영원한 생명과 쾌락을 누리는 기계 인간으로—— 사랑해.”
***
머티리얼 컴퍼니 회장실에는 어울리지 않게 밝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호화로운 책상과 가죽 의자에 몸을 맡긴 남자—— 머티리얼 컴퍼니를 통치하는 조직의 회장이 그곳에 있었다.
“회장님, 조금 의외의 결정이었습니다.”
마흔 대의 젊은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오른 남자는 입가로 가져가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검은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백의의 과학자를 포착했다.
“그렇게 생각하나, 판저?”
“네. 그만큼 저 WSD-2… 아니, 혼조 아리사가 마음에 드셨던 겁니까?”
“우수한 비서 사이보그였지… 적어도 쓸모는 있었다. 훗, 나라고 정이 없는 줄 아나?”
그때 회장실 옆 비서실에서 검은 커리어 수트 차림의 여성이 나타났다. 타이트스커트 아래로 뻗은 긴 다리에 하이힐 소리를 또각거리며 회장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필리아’?”
짧은 금발을 정갈하게 넘긴, 이목구비가 뚜렷한 유럽계 미녀였다. 나이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보였지만, 수트 위로 드러난 육감적인 몸매는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허어, 이것 참…. 새로운 비서입니까?”
“헬샤프트가 저번 경매에서 산 섹사보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군. 감사의 표시라며 이 필리아를 보내왔어.”
“그렇다면… 이 아이도 역시. 뭐, 당연하겠군요.”
필리아가 곁눈질로 연녹색 눈동자를 판저 박사에게 향했다. 그 눈동자에는 아직 감정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라더군. 어떤 경로로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곧장 미야사키 히토미에게 시켜 전신의 3분의 2를 기계화 개조했지. 비서 사이보그로서는 손색없어. …비서로서는 말이야.”
“오호, 그럼 아직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거군요. 회장님도 참 얄궂으십니다.”
판저가 자신이 아닌 미야사키 히토미에게 필리아의 개조를 맡긴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걸 회장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훗. 판저, 자네에겐 따로 맡길 일이 있네. 그렇게 서운해하지 말게.”
“어떤 일입니까?”
회장이 쓴웃음을 짓자 필리아가 들고 있던 자료를 판저에게 건넸다.
“모 국가 원수의 직접 주문이다. 나랑 비슷하게, 참으로 고약한 성벽을 가진 인간들이 끊이지 않는군. 하지만 그게 우리 장사가 되지.”
자료를 훑어보던 판저 역시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꺼번에 이 정도 양의 섹사보그를 발주하다니… 그것도 ‘인어형’이라니. 꽤 메르헨적인 의뢰인이군요.”
“그러게 말이다.”
판저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 남자의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상급 머티리얼이 또 대량으로 필요하겠군요…”
“알고 있네. 필리아…”
“Yes, Master…. 이미 대학 여자 수영 인터컬리지 우승교인 조만 여자대학교 수영부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공작원 인선을 진행 중입니다.”
그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미야사키… 아니, ‘사이보그 마더’ 아닌가. 오늘도 한층 더 아름답군…”
“우후후… 고마워요, 판저. 당신이 개조해준 이 몸… 최고예요.”
피기 없는 하얀 얼굴이 요염한 미소를 띠었다. 미야사키 히토미는 드레스와 같은 색의 장갑을 낀 팔을 교차하며 세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회장님, 그 임무는 제게 맡겨주세요.”
“호오?”
“제 펫들에게도 슬슬 본격적인 임무를 맡겨보고 싶거든요.”
히토미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 너머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머티리얼 컴퍼니 사이보그의 제복이라 할 수 있는 검은 광택의 원피스와 롱 글로브, 부츠를 착용한 소녀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빨간색과 은색이 섞인 오브제 같은 숏컷 머리카락, 금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눈동자. 검은 옷 사이로 드러난 순백의 인공 피부. 그걸 본 판저뿐만 아니라 회장조차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참,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운 사이보그야… 완성도가 대단해.”
“회장님께 칭찬을 듣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미소녀 사이보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히토미 곁으로 다가왔다.
“…이게 그 미즈사와 카나인가. 자료에서 봤을 때랑은 완전히 딴판이군.”
회장의 중얼거림에 카나의 금색 눈동자가 기괴하게 빛났다.
“실례지만 회장님…”
“무슨 일이지, 아가씨?”
“전 이제 미즈사와 카나 같은 이름의 인간이 아닙니다. 머티리얼 컴퍼니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이보그 ‘WSD-17S’입니다. 오늘부터 조직을 위해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 무엇이든 명해주십시오.”
회장은 그 말을 듣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야사키 히토미에게 확인했다.
“이 신형 사이보그의 완성도는 잘 알겠네. …그런데 뒷처리는 끝났나?”
“네, 물론이죠. 개조 수술이 끝나자마자 이 아이의 가족들은 전부 처리하게 했습니다.”
“하게 했다고? …본인 손으로 말인가?”
“네, 당연하죠.”
히토미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말을 듣던 카나 역시 똑같은 몸짓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이제 자네들은 완전히 우리 조직의 일원이다. 그래서 말인데, WSD-17S.”
“네, 회장님.”
“제재 조치로서 인간 시절의 기억을 전부 소거하고, 생체 뇌의 90퍼센트를 기계화한 WSD-2 프로토 1을 네 서포트 사이보그로 선물하마. 이제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기계 인형에 불과하지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필요 없어지면 폐기하든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여전사 사이보그는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기계의 몸과 마음을 얻은 히토미와 카나는 지복의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더니,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을 겹쳤다.
***
“필리아!”
금발의 비서 사이보그는 주인에게 허리를 관통당하며 이름이 불리자 비명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판저 박사의 지시에 따라 지금 당장 성기 개조 수술을 받아라. 난 네 미개조 성기로는 만족이 안 돼.”
“!? …Yes, Master…”
하반신을 노출한 채인 필리아를 무심하게 내팽개치며 회장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신체의 대부분이 기계로 바뀌고, 이제 여성의 상징인 생식기까지 빼앗기게 된 필리아는 조금 슬픈 듯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세뇌 프로그램 때문에 명령 거부는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어서 가. 판저에겐 준비시켜 뒀다. 인공 성기 개조 수술이 끝나면 다시 성능을 시험해주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필리아가 퇴실하는 것을 지켜본 뒤, 회장은 넓은 방에 홀로 남았다.
“자, 이번엔 어떤 새로운 머티리얼들이 모여들려나… 그 신형 사이보그… 기대되는군. 안 그래……?”
회장이 마지막으로 부르듯 중얼거린 건 어떤 여성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머티리얼 컴퍼니 / 끝
나가오 신사쿠, 25세. 이제 막 CF 제작사에 발을 들인 신사쿠에겐 동거 중인 연인이 있다. 배우 지망생으로 매일같이 레슨에 매진하는 나이토 나츠미다.
그러던 어느 날,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오던 두 사람에게 전환점이 찾아온다.
신사쿠는 생애 첫 CF 제작 참여가 결정됐고, 나츠미 역시 어떤 CF의 백댄서로 발탁된 것이다.
“그래서? 어떤 CF인데?”
“음, 자세한 건 아직 못 들었어. 근데 댄서가 딱 네 명뿐이래. 내가 그중 한 명으로 뽑힌 거야!”
“진짜? 대박인데! 야, 나츠미 너 진짜 대단하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신사쿠를 보며, 나츠미는 의외로 낯빛을 흐렸다.
“왜 그래?”
“그게 말이야, 춤이 엄청 격하고 어렵나 봐. 건강검진까지 받아야 한다더라고. 본계약은 그다음에 하는 거래. 그렇게 힘든 춤을 내가 잘 출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한 나츠미를 보며 신사쿠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꽉 껴안았다.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심지가 곧은 나츠미의 몸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나츠미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신사쿠 몸, 따뜻하다….”
“나츠미 너도 따뜻해. …괜찮아, 너라면 분명 멋지게 해낼 거야.”
“응…. 신사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신사쿠가 천천히 팔을 풀려 했지만, 이번에는 나츠미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더 세게 끌어안았다.
“신사쿠…. 내일 본계약 하고 나면, 촬영 날까지 한 달 동안 합숙 레슨이래.”
“뭐? 한 달이나? 연락은 할 수 있는 거지?”
“응… 아마 괜찮을 거야.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서 그런 거 일절 안 된다는 소문도 있긴 하지만.”
신사쿠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건 나츠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기회일 터였다.
“그렇구나….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우리 각자 위치에서 힘내보자.”
“응…. 우후후, 혹시 알아? 네가 이번에 맡게 된 그 CF일지도 모르잖아.”
“글쎄. 아하하…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어떤 CF인지 얘기를 못 들었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두 사람은 천천히 몸을 겹쳤고 방 안의 불이 꺼졌다.
다음 날 아침, 집 앞에서 헤어진 두 사람의 연락은 그것으로 완전히 끊겼다.
“진짜 연락 한 통 안 되는 건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츠미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참다못한 신사쿠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녀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누구지?”
신사쿠는 숨을 들이켰다. 나츠미가 받을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저, 전 이 휴대폰 주인 남자친구인데요! 당신이야말로 누구신데 나츠미 전화를 받는 겁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나는 프로덕션 관계자다. 그녀는 지금 움직일 수 없어.
“전화도 못 받을 정도라는 건가요?”
- 그래.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 그녀들은 지금 ‘조정’하느라 바쁘니까.
뚝!
전화는 거칠게 끊어졌다. 그 고압적인 태도에 신사쿠는 나츠미의 신변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던 터라 일단 그녀를 믿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흘렀다.
여전히 나츠미한테선 연락 한 통 없다. 그날 이후로 전화도 아예 연결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지만, 신사쿠의 주변 상황도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CM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촬영 당일까지 사내 기밀이라며 꽁꽁 숨겨져 있던 기획서를 겨우 건네받아 훑어보던 신사쿠는, 그 자리에서 숨을 들이켰다.
“오늘 스튜디오로 들어온다는 이… ‘댄싱 돌 SDG-1’부터 ‘4’라는 건 대체 뭡니까?”
“응? 그거? 뭐, 광고에 쓸 인형… 아니, 로봇이라던데. 사람 뺨치게 춤추고 연기한다더라고. 아주 팔팔하고 예쁘장한 계집애 로봇이라나 뭐라나.”
저질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프로듀서가 자리를 떴다.
“…댄서 네 명… 신체검사… 젊은 여자… 하, 하하… 설마, 아니겠지.”
신사쿠는 필사적으로 웃어넘기려 했지만, 웬일인지 뺨이 파르르 경련했다.
촬영이 시작됐다.
스태프들이 각자 위치를 잡고, 촬영 보조인 신사쿠도 제 자리에 섰다.
이윽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메인 남자 배우가 세트장 스테이지 위에 섰다. 조명이 켜지고, 스포트라이트까지 준비를 마친다.
그걸 확인한 감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댄싱 돌 들여보내.”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자 무대 옆에서 은색 전신 슈트를 입은 미녀 네 명이 나타났다.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은 동작, 똑같은 보폭으로 남배우 주변에 달려들더니, 네 명 모두 토씨 하나 안 틀린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신사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앞의 은색 의상을 입은 네 명 중, 그토록 연락이 안 되던 나츠미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버린 신사쿠를 뒤로하고 촬영이 강행됐다.
나츠미를 포함한 네 명의 미녀는 음악에 맞춰, 마치 기계로 제어되는 듯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심지어 표정 변화까지도 소름 돋게 일치했다.
“커어어엇!! 야, 이거 끝내주는데. 역시 기계 인형이라 그런가?”
감독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그때 신사쿠가 비명을 질렀다.
참다못한 신사쿠가 무대 위에서 미동도 없이 멈춰 서 있는 나츠미에게 달려갔다.
“나츠미! 나츠미! 야! 나야! 나 모르겠어?!”
하지만 나츠미는 대답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더니, 지잉- 하는 모터 구동음이 신사쿠의 귓가를 때렸다.
나츠미의 검었던 눈동자는 유리구슬 같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안에서 렌즈 같은 장치가 초점을 맞추듯 징, 지징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저는 ‘댄싱 돌 SDG-4’입니다. 다음 댄스 데이터 입력 모드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왜?! 대체 누가! 누가 널 이 꼴로 만든 거야?!”
반쯤 미쳐버린 신사쿠는 나츠미에게서 떼어내 졌고, 다른 스태프들에게 붙잡힌 채 스튜디오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나츠미! 나츠미이이이이이!!!!”
절규하던 신사쿠는 문득 등 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과 값비싼 브랜드 수트를 빼입은 남자가 서 있다는 걸 깨닫고 뒤를 돌아봤다.
“곤란하군요. 우리 상품에 그렇게 함부로 손을 대시면.”
신사쿠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틀림없다. 나츠미의 휴대폰을 대신 받았던 그놈 목소리다.
“서, 상품이라고?! 웃기지 마! 나츠미한테… 나츠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새끼들아!!”
달려들려는 신사쿠와 수트남 사이를 검은 양복들이 순식간에 가로막았다.
“그녀들은 우리 오디션, 그리고 신체검사를 통과해 양호하다고 판정된 ‘마테리얼(재료)’입니다. CM 주연 계약을 맺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개조 수술을 받았죠. 최첨단 사이보그 기술을 이용한 고성능 ‘댄싱 돌’로서, 전신을 기계화해 새로 태어난 겁니다. 물론, 저희 회사의 상품으로서 말이죠.”
“그, 그럴 리가! 나츠미가 그런 걸 허락했을 리 없잖아!!”
“계약서에 다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이보그 개조 수술 승낙, 사이보그화에 따른 모든 인권 포기, 개조 후 소유권을 우리 프로덕션에 위임할 것. 향후 연료 및 유지비는 적출한 장기를 매각해 충당할 것 등등…. 이유야 어쨌든 일단 사인한 이상 계약 성립입니다. 뭐, 날짜를 두면 무서워져서 마음을 바꾸는 분들이 많아서 말이죠. 다들 그 자리에서 두말 못 하게 곧장 개조해 버렸습니다. 개조 후 기억 소거 처리부터 기체 조정, 댄스 프로그램 입력까지 한 달 동안 아주 빡셌죠! 아, 진짜 이번엔 힘들었습니다. 납기일 맞추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요.”
남자가 비열하게 비죽 웃었다. 신사쿠에게 내민 계약서의 그 조항들은, 방대한 서류 구석탱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녀들을 속여서… 이런 끔찍한 모습으로 개조했단 말이냐?!”
“말조심하시죠. 계약은 계약입니다. 그녀들은 인간을 포기하는 데 동의했어요. 그리고 기계 육체를 얻음으로써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거 아닙니까?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신사쿠는 털썩 주저앉았다.
스튜디오 안에서는 댄스 음악과 그녀들의 구두 굽이 만들어내는 스텝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