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28) 작성
※ 본 페이지의 창작물은 모두 픽션입니다. 실존 인물·단체와는 일절 관계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울창하고 깊은 숲.
나무들 사이를 꿰매듯, 한 줄기 관광 도로가 산정상을 향해 뻗어 있다. 그 도중, 눈에 띄지 않는 중계지에 게이트로 막힌 갈림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유지 진입 금지'라고 적힌 포장도로를, 지금 빨간 국산차 한 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젊은 여자가 컨버터블 지붕 너머로 들이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누르며 말했다.
"아, 보이네요. 저게 료코 선배가 근무한다는 '연구소'인가요?"
조금 연상으로 보이는 차분한 인상의 여자가 핸들을 가볍게 꺾으며 눈짓으로 끄덕였다.
"그래. 생각보다 멀리 오게 돼서 리사한테 폐를 끼쳤네."
"아뇨, 선배한테는 여러모로 신세 지고 있으니까요…."
리사라고 불린 여자는 쑥스러운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직업상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시원스러운 눈매와 단정한 이목구비에 오히려 잘 어울려 보기 좋았다. 한편 운전대를 잡은 여자 역시 가늘고 긴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쿨 뷰티 그 자체로, 이쪽도 지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넘쳤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쯤일까… 그 지적인 인상은 '연구소'라는 곳의 관계자다웠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천천히 크게 돌아 산정상에 도착했다. 어느새 저녁 무렵, 정면에 확 트인 시야 너머로 이미 검게 물든 숲의 실루엣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새빨간 석양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배경 속에, 일본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가로로 긴 건물이 떡하니 누워 있었다.
서행하며 다가간 정문 너머에는 모 가전 기업의 낯익은 로고 아래, 작게 빛나는 '제품개발 연구분실'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경비실에서 달려 나오는 경비원에게 운전석의 여자가 무언가 패스를 보여주었다.
"제3섹션의 타가미 료코야. 데이터 입력할 여성분을 한 명 데려왔어."
"…네… 연락받았습니다. 타카하시 리사 씨, 1명… 사립 카시와바라 학원 소속이라고."
작은 단말기로 얼굴 사진을 대조하던 경비원에게 리사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산속에서 오랫동안 이성 구경을 못한 탓인지, 무심코 넋을 잃고 바라보던 경비원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게이트 차단기를 올리러 뛰어갔다.
이윽고 차는 광활한 주차장 한구석에 멈춰 섰고, 늘씬한 실루엣이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한산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또각또각 힐 소리를 울리며 걸어갔다. 그 긴 그림자는 '연구소'를 향해 뻗어 있었다.
―――이야기는 3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대는 바뀌어, 이곳은 도내의 명문 사립, 카시와바라 학원.
이미 수업은 끝났고, 부활동 소리만 멀리서 울려 퍼지는 교사(校舍). 통용문 옆 소각로 앞으로 젊은 남녀 교사 두 명이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껴안고 걸어왔다. 남자는 체육 교사인지 가뿐한 모습이었지만, 아무래도 사람 하나는 들어갈 법한 크기의 상자라 여자는 발을 비틀거리며 명백히 힘에 부쳐 보였다.
"정말 괜찮으세요, 타카하시 선생님? 무리라면 말씀하세요."
"괘, 괜찮아요.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겨우겨우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은 타카하시 리사는 고상하게 웃었다. 그걸 본 남자 교사는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사는 며칠 뒤면 이 학교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2년 동안 교편을 잡으며 밝은 성격과 친절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그녀도, 달이 바뀔 무렵에는 더 이상 학교에 없다. 삼색 고양이 수컷보다 귀하다는 '진짜 미인 교사'의 퇴직에 교사, 학생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특히 이사장 같은 사람은 연봉을 두 배로 주겠다며 붙잡으려 안달을 냈지만, 결국 일신상의 사유가 우선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리사도 가벼운 마음으로 교직을 택한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큰아버지의 권유로 고향에 내려가 그곳에서 맞선을 보게 되어 있었다.
"다들 말해요, 타카하시 선생님이 그만두시는 거 정말 아쉽다고…. 특히 이사장님은 엄청 우울해하시던데…."
그런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문득 리사는 자신이 옮겨온 상자가 신경 쓰였다.
"그런데 이 상자 엄청 무겁던데, 뭐가 들어 있는 거예요?"
"아, 이거요? 이건 음…."
그렇게 말하며 체육 교사가 포장을 뜯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비닐에 싸인 마네킹 인형 하나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성형으로, 팔다리가 팔꿈치와 무릎 아래로는 없는 토르소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배 부분에는 뚜껑 같은 슬릿이 나 있어, 거기로 체내에 접근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허공을 헤매는 듯한 그 커다란 눈동자는 왠지 슬퍼 보였다.
젊은 체육 교사는 여자 앞에서 다소 꺼려지는 듯, 쑥스러워하며 설명했다.
"이건 보건 체육 성교육 수업에 쓰는, 아마 출산용 교재 로봇일 거예요."
"이거, 버리는 건가요?"
"당치도 않아요. 이런 비품은 외국제라 비싸서 다른 데 양도하거나 매각하지 않겠어요? 우리 학교엔 이번에 다목적 대응 최신형이 새로 도입된다나 뭐라나…."
"아, 그 얘기라면 들었어요. 문부○학성 주도로 도내 지정 학교에 '로봇 교사'를 모델 케이스로 배치한다는 그 얘기죠?"
"네, 심폐소생술 연습이나 성교육 수업에도 쓸 수 있다는 그 녀석이죠. 수업 중에 담임 보조 역할로, 장차 전 학급에 배치한다는데, 우리 이사장님 이권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라 재계 줄 타고 한 다리 걸쳤을지도 모르죠."
그때 갑자기 호출 방송이 울려 퍼지며 리사 일행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깜빡 잊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이사장님이 4시에 오라고 하셨는데…. 그럼 뒤처리는 부탁드릴게요.
…사실 저도 새로운 '로봇 교사'란 거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선생님만큼 미인이면 좋겠는데요."
남자 교사의 가벼운 농담에 미소로 화답하며 리사는 학교 안으로 뛰어갔다.
"선배! 타가미 선배 아니세요!"
이사장실 앞 복도를 걷고 있는데, 멀리서 한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리사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게 리사의 오랜 친구 타가미 료코라는 걸 알았다.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두 사람은 다소 과장되게 달려가 서로의 재회를 기뻐했다.
"오랜만이네, 리사. 대학 졸업식 이후인가? 선생님 티가 제법 나는데."
"어머, 무슨… 그때부터 4년이나 지났는걸요. 선배는 분명 대학 연구실에 남았다고…."
"스카우트돼서 최근에 민간 기업으로 옮겼어. 지금은 여기 개발부에서 일하고 있어."
료코가 건넨 명함에는 누구나 아는 대형 가전 기업 로고와 현재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료코의 비범함이 엿보였다.
가볍게 근황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그대로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리사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 내가 너랑 아는 사이라고 했더니 위에서 직접 사명이 내려와서."
"거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하죠."
대화에 불쑥 끼어든 건 카시와바라 고조, 이사장 본인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뚱뚱한 몸을 흔들며 걸어오는 초로의 남자는 먼저 료코와 악수한 뒤, 은근슬쩍 리사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리사를 소파에 앉힌 카시와바라 이사장은 나이 탓인지 서 있는 게 힘겨운 듯 맞은편에 털썩 앉더니, 방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전 직원 회의에서 잠깐 얘기했을 텐데, 이번에 우리 학교에 관청 지시로 '로봇 교사'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장차 1교실 2교사제에서 교사를 서포트할 도구, 어떤 의미에선 테스트 케이스, 이른바 포석으로서."
"인공지능 탑재로 외관은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는 로봇이야.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차세대 주력 제품."
벽가에 서 있던 료코가 팔짱을 낀 채 한 손바닥만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사장.
"그, 우리 학교에 배치될 예정인 인간형 로봇의 모델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모, 모델이요?! 모델이라니, 로봇을 저랑 똑같이 만든다는 뜻인가요?!"
리사는 당황했다.
"달걀귀신 같은 로봇에 인공 피부를 입히는 공정에서 대개는 적당한 얼굴로 만드는데, 만약 희망한다면 연예인이나 교직원 등 누군가 특정 모델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통달이 있어서… 물론 본인의 허락을 받는다면 말입니다만."
"마, 말씀은 알겠는데 왜 제가…."
"이번에 타카하시 선생님이 퇴직하시는 걸 다들 아쉬워하고 있어요. 다행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교사를 그만두시니까 지장은 적을 테고, 분명 학생들도 기뻐할 겁니다."
"하, 하지만… 서, 성교육용 인형에 제 얼굴이라니 그건 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리사에게 의외로 이사장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아아… 그 건을 알고 계시는군요. 확실히 도입되는 로봇은 몇 가지 용도별로 타입이 있습니다만, 설마 평범한 수업 중에 갑자기 전라가 돼서 이어서 자기 몸으로 성교육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료코가 쓴웃음을 짓는 걸 힐끗 보고 이사장은 말을 이었다.
"물론 선생님을 모델로 한 교사 로봇은 단순히 수업 보조 역할에만 전념시킬 겁니다. 어디까지나 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선생님과 똑같은 모습의 로봇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니까요."
"…모델이라고 해도 스캐너로 전신을 읽어들이기만 하는 거니까 시간은 그렇게 안 걸려."
료코도 드물게 거들고 나섰다. 온화한 인품의 카시와바라 이사장이 그렇게까지 간청하니 리사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리사는 며칠 뒤 자신의 3D 데이터를 따기 위해 연구소로 향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3일 뒤, 무대는 다시 처음으로―――
타가미 료코와 함께 연구소에 온 리사였지만, 역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건물의 하얀 외벽에는 수상쩍은 병원 같은 기분 나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단 료코 말대로 수영복을 안에 껴입고 오긴 했지만, 이제부터 물건처럼 전신 스캐너에 들어갈 걸 생각하니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오늘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전신 스캔 건에 료코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부서인 그녀는 단순한 보호자일 뿐이고, 오늘 스캔 실시는 오코치라는 로봇 프로젝트 책임자가 맡는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공적을 올린 제9섹션의 중심인물로, 소문으로는 상당한 괴짜라던가.
…설마 잡아먹히기야 하겠냐만, 무사히 끝나기를 비는 수밖에.
본사 빌딩 등과는 달리 연구 분실에는 애초에 내방객이 별로 없는지, 리사와 료코 외에 움직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서 있는 리사 앞으로 스르르 기계적인 움직임의 여자가 다가왔다.
순간 사람인가 싶었던 여자는 자세히 보니 로비 경비를 서는 인간형 로봇이었다. 힐을 신은 자태에 비취색 머리카락, 총과 경찰봉으로 무장한 그녀는 오토포커스 눈동자를 큐, 큐, 하고 조절하며 리사에게 상냥하게 물어왔다.
"실례지만·오늘은·어떤·용건이십니까?"
용건을 말하자 로봇은 생글생글 응대하며 보안 게이트 위치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리사는 료코에게 슬쩍 귓속말을 했다.
"왠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차림이네요. 깜짝 놀랐어요."
"여성 외관 쪽이 위압감이 적을 거란 이유로 저런 디자인이 됐다나 봐. 취향이 너무 들어갔다는 소린 자주 듣지만… 참고로 개발한 게 그 제9섹션이야."
이게 그거구나… 얼핏 봐선 인간이랑 구별이 안 가네… 하고 리사는 눈앞에서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며 감탄했다.
게스트 전용 심사를 통과한 뒤 접수처에서 ID 카드 한 장을 건네받은 리사는 먼저 기다리고 있던 료코에게 주의를 들었다.
"자, 저거 봐."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이족 보행 로봇이 서 있었다. 아까 그 여성형과는 달리 마치 경찰봉을 든 고릴라 같은 풍채였다.
"로비에서는 여성형 로봇이 상냥하게 응대했지만, 건물 안에서는 저 고릴라 로봇이 어슬렁거리고 있어. 쟤네는 융통성이 없으니까 이 ID 카드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설령 샤워할 때라도 몸에서 떼지 않도록 해.
그리고 아무리 작업용 로봇이라도 눈앞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면 침입자로 간주해서 구속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로봇 지시에는 원칙적으로 최대한 따를 것. 알겠지?"
진지한 료코의 눈빛에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리사. 그대로 두 사람은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크고 넓은 엘리베이터 홀에 도착하자 료코가 말했다.
"그럼 난 여기까지. 제일 왼쪽 엘리베이터 타고 지하 5층으로 내려가서 접수처 지시를 따라."
"어, 선배, 같이 가는 건 여기까지예요?"
"제9섹션은 관공서 관련된 극비 프로젝트를 다루니까 사내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야."
"선배도 들어간 적 없어요?"
"나뿐만 아니라 임원급 이하 사원 대부분은 그래.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무책임한 발언에 울상을 짓는 리사를 보고 료코는 황급히 둘러댔다.
"괘, 괜찮아! 가끔 관청 높으신 분이나 민간 기업 사장 같은 사람들이 VIP 대우로 견학 오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고, 의외로 오픈된 곳도 있어. 아무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바로 돌아와."
…료코의 빈말에 리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지극히 기계적인 합성음이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5층 직통입니다.
허가 유무를 확인할 테니 ID 카드를 센서 앞에 대 주십시오…."
삐삐삐… 하고 읽힌 카드에서 순식간에 판단을 내린 엘리베이터는 소리 없이 지하 5층으로 논스톱으로 내려갔다. 천천히 문이 열리자 정면에 병원 대기실 같은 창구가 보였다.
"저기… 모델 측정하러 왔는데요…."
리놀륨 바닥에 발을 내디딘 리사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대, 사람만 한 크기의, 체스에 쓰는 나이트 말과 쏙 빼닮은 접수 로봇이 스르르 바닥을 미끄러져 다가왔다.
조심스레 ID 카드를 내민 리사에게 체스 말은 유창한 발음으로 인사하고 그녀를 부서로 안내했다. 곧게 뻗은 복도는 심야 편의점만큼이나 환하게 밝혀져 있어 순간 여기가 지하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도중에 물론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고, 그저 몇 번 로봇을 보았을 뿐. 로봇은 작업용에 특화된 건지 하나같이 기능성을 추구한 심플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인간다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제9섹션은 몇 명의 직원만으로 운영된다…는 료코의 말이 떠올랐는데, 확실히 이 정도로 자동화된 부서라면 그것도 마냥 과장된 말은 아닐 터였다.
다만 이런 비인간적인 환경에 있을 수 있는 건 어쨌든 별로 제정신은 아닐 거야, 하고 리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윽고 측정 장소… 스캐닝실 앞까지 온 리사는 로봇에게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복도에는 붙박이 벤치가 있어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거기에 앉았다. 그동안 차 한 잔 안 내오는 대우에 다소 뚱해하면서도 리사는 끈기 있게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렸는지 리사도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ID 카드를 장난감 삼아 팔랑팔랑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때… 무심코 리사는 ID 카드를 의자 틈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고정된 벤치와 벽의 좁은 틈새에 빠진 카드는 도저히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 돼… 빨리 꺼내야 해…)'
벤치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리사 앞에 운 나쁘게도 로봇이 지나갔다. 게다가 입구에서 본 덩치 큰 고릴라 타입이었다.
경비 고릴라는 눈을 붉게 빛내며 말했다.
『손님 실례지만 ID 카드 제시를 부탁합니다』
"미, 미안해요. 여, 여기에 떨어뜨려서…."
『……………』
"……………"
『ID 카드·미소지·ID 카드·미소지』
갑자기 붉게 점멸하는 로봇 머리를 보며 리사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아니야, 아니라고요! 카드는 여기에, 여기에 떨어뜨려서…."
『현재·연구소·내·게스트는·2명…』
허둥대는 리사를 곁눈질하며 로봇은 묵묵히 무언가 내부 판단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의사 결정을 내렸는지 갑자기 리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로봇이 시키는 대로 리사는 그 자리에서 끌려갔다. 투박한 금속 덩어리는 무언의 압박을 뿜어내며 다소 강압적으로 그녀의 팔을 계속 잡아끌었다. 사람이라면 쉽게 해명할 수 있을 텐데, 로봇 경비원(그것도 별로 고성능 같지 않은) 상대로 겪는 부자유스러움에 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떡하면 좋지, 죽이거나 하진 않겠지만…)'
따위의 불안이 스치는 사이에 안쪽에서 다른 작업용 로봇 두 대가 나란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리사는 그 두 대에게 인계되어 또 다른 방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특수 가공실'이라고 적힌 문에 불안에 휩싸이는 리사였다.
리사가 연행된 그 방은 어둑어둑했고, 일부에만 희미하게 조명이 켜져 있어 수상쩍은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중앙에는 크고 투명한 원기둥 모양 캡슐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옛날 과학실 같았다. 설마 이 안에서 표본이 된다거나… 하진 않겠지, 하고 순간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 다리 사이를 스치는 공기도 왠지 서늘하고 차가워… 두 대의 로봇 사이에 낀 채 리사는 점점 악화되는 사태에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쿵, 하고 가볍게 떠밀려 리사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볼품없이 넘어진 바람에 말려 올라간 치마를 그녀는 황급히 원래대로 내렸다. 다친 양 팔꿈치를 문지르며 두 눈으로 힘껏 항의의 시선을 보내자, 그런 그녀에게 로봇은 냉담하게 내뱉었다.
『여기서 옷을 전부 벗으십시오』
"네? 여, 여기서요?"
『당신은 그러기 위해 여기에 온 것 아닙니까…?』
"아, 네, 그렇긴 한데…."
로봇의 지적에 얼떨결에 대답한 리사는 석연치 않은 채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정장을 벗고 치마를 툭 바닥에 떨어뜨리자, 안에서 귀여운 가슴과 엉덩이를 하얀 수영복으로 감싼 멋진 나신이 드러났다. 확실히 로봇 모델로 추천하기에 충분한, 균형 잡힌 몸매였다. 입고 있던 옷은 잘 개어서 옆에 구두를 놓아두었다.
"저기, 이걸로 됐나요…."
긴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리사에게 추가 요구를 덧붙이는 로봇.
『전·부 벗으십시오』
"네?! 수, 수영복도요…."
『전부 벗으십시오』
"그, 그런, 무리예요… 료코 선배도 수영복이면 충분하다고…."
『명령 거부… 죄수 상대로는 실력 행사가 인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두 대의 로봇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대는 등 뒤로 돌아가 리사의 양팔을 붙잡았고, 다른 한 대는 앞에서 정성스레 리사의 살결에 달라붙은 수영복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들어 있다고 의심하고 싶어질 만큼 훌륭한 연계 플레이로, 리사의 살결에 흠집 하나 내지 않고 스타킹을 벗기듯 천천히 벗겨 나갔다.
"아, 아아, 하, 하지 마요…."
탱! 하고 작지만 톡 솟아오른 예쁜 가슴이 튀어나오고, 그대로 옅은 음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령 로봇 앞이라 해도 무정하게 전라가 된 리사는 울기 직전이었다. 이럴 때는 과연 기계라고 해야 할까… 만약 살아 있는 남자였다면, 서서히 드러나는 살아 있는 조각 같은 나신과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는 그녀의 얼굴을 앞에 두고 분명 냉정할 수 없었으리라.
'(시, 싫어. 이런 꼴로, 모르는 연구원 앞에서 구경거리처럼 신체 측정을 당하다니…)'
뇌리에 그런 생각이 스친 찰나, 리사는 입안에 억지로 무언가가 처박히고 말았다.
"으, 으읍!?"
패닉에 빠진 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급히 양손을 입에 댔지만… 고무제? 공은 안쪽에서 팽창해 입안을 압박하며 도무지 꺼낼 수가 없었다. 득득 하고 이 재갈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물론 숨구멍은 뚫려 있지만, 이걸로 그녀는 침과 신음 소리밖에 낼 수 없는 물체로 변했다.
재갈이 물리고 입을 크게 세로로 벌린 그 표정은 살아 있는 더치 와이프로도 보였다. 그런 더치 와이프를 더욱 인형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두 대의 로봇은 리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슬렌더한 보디에 여물어 크게 흔들리는 두 개의 유방.
『구두를 신으십시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로봇에게 거역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리사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왜 구두만 신기는 거야… 이상한 취미네…)'
힐을 신고 키가 조금 커진 리사의 모습은 영락없는 마네킹 인형이었다. 진짜 인형과의 차이는 가랑이 사이에 난 새카만 숲뿐… 덜덜 무릎이 떨려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그녀의 양팔을 두 대의 로봇은 양옆에서 억누른다. 리사는 나신을 가리지도 못하고 조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마침내 저항을 포기하자 쉴 새 없이 로봇 발목에서 쇠고리가 튀어나와 딱 이인삼각… 아니 삼인사각 형태로 리사의 발목까지 고정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와이어 달린 목줄이 채워지고 강제로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게 된 그녀는 짓궂게 다리를 벌리는 로봇이 하는 대로 인왕처럼 떡하니 서 있게 되었다.
가엾은 여교사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모델이 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 으, 으으, 으으으으으으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실험실의 인형 표본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눈물도 마르기 시작한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대화하는 걸 보니 두 사람인 듯한데… 어쨌든 사람이 온 것이다. 지금의 너무나 심한 대우에 대해 단호히 항의함과 동시에 사정을 이야기하면 분명 도와줄 거야… 안도한 리사는 다시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인물 중 한 명은 왠지 다가오지 않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한 명, 흰 가운을 입은 인물은 리사 정면까지 또각또각 걸어왔다. 보아하니 삼사십 대의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과학자 같은 남자였다.
리사는 로봇 사이에서 책형을 당한 채 앞으로 내밀어진 유방을 부들부들 떨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으, 으으, 으으으으으으으!!!"
하지만 흰 가운의 남자는 리사의 가슴을 아무렇게나 움켜쥐고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꾹꾹 문질렀다.
'(으, 앗… 하, 하지 마…)'
"흠… 자네가 이번 교정 대상자인가. 이런 꼴이 돼서 꽤나 분개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뭐 참아 주게. 이쪽도 귀중한 연구 시간을 쪼개고 있으니까."
'(? 무슨 소릴까… 교정…?)'
흰 가운의 남자는 손에 든 파일을 팔락팔락 넘기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형식적이긴 해도 규칙에 따라 먼저 설명을 하겠네. 나는 이 제9섹션 책임자 오코치다.
그리고 자네는 임해 교도소에서 이송되어 온 카미조 시즈에, 28세."
'(…어?)'
"알고 있겠지만 자네는 살인죄로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야. 뇌에 어떤 결함이 인정되어 사회 복귀도 불가능해.
그래서 사회 갱생 프로그램으로 로봇 교정화를 받게 되었다."
'(무, 무슨 소리야!?)'
"이건 형법 추가 95x조에 의한 것으로, 사형 폐지에 따른 범죄자의 재범 억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구체적으로는 신체를 기계화, 뇌 개조를 시술받아 로봇으로서 평생 사회 봉사에 힘쓰게 된다고. 물론 이에 관한 거부는 인정되지 않아. 알겠나."
리사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ID 카드를 떨어뜨린 탓에 다른 누군가와 착각당한 모양이었다.
로봇이 자신을 대하는 게 너무 심하다 싶었다. 아마 지금 연구소에 와 있는 외부 인간이 나랑 그 '복역자'뿐이었겠지… 그녀는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그나저나… 사진이랑 많이 다르군. 이렇게 좋은 여자인 줄은 못 들었는데."
말하면서 오코치는 리사의 가슴을 쥐어짰다. 과일이라도 고르는 것처럼, 전혀 여자를 배려하지 않는 거친 손놀림. 리사는 그 애무에 확실히 반응해 아플 정도로 젖꼭지를 곤두세우면서도 고개를 저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걸 오코치에게 전하려 했다.
"으, 으으, 으으으으으으으!!!!"
하지만 그 절규도 단순한 농락에 의한 비명으로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오코치는 두 대의 작업용 로봇에게 리사의 다리를 더 벌리라고 명령하더니 꼼꼼하게 리사의 아래 입술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뛰지 마라. 네가 어떤 용도에 어울릴지 확실히 조사해야 하니까…."
'(으, 아, 아, 하, 하지 마, 난 아니야, 아니라고요…)'
"거기는 별로 안 썼군… 피부도 매끄럽고 깨끗해. 이건 그대로 피부를 플라스틱으로 코팅해서 외관을 몽땅 이용해 버리자. 분명 최고의 인형이 될 거야."
리사의 젊은 육체는 저항하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서히 끈적한 꿀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죄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정면을 향한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아흐, 아흐으… (아니야, 아니라고… 살려줘…)"
오코치의 손가락 자극에 놀아나 허리를 좌우로 대담하게 흔들며 싱싱한 육체를 민감하게 반응시키는 인형. 단 한마디, 사람 잘못 봤다고 외치지도 못한 채.
'(이, 이 재갈 좀, 빼줘, 빼줘어어어!!)'
"미안하지만 그 재갈은 빼면 안 되게 되어 있어서 말이야. 예전에 혀를 깨물어 끊은 죄수가 있어서."
오코치는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그는 이 아름다운 장난감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가지고 노는 데 열중하다가, 갑자기 퍼뜩 생각난 듯 같이 방에 들어온 다른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 맞다. 카시와바라 씨, 당신도 어떠세요? 모처럼 견학 오셨는데 이쪽으로 오시죠."
'(카시와바라…?)'
몽롱해진 리사가 눈을 뜨자 눈앞에는 놀랍게도 잘 아는 얼굴… 입가에 침을 번들거리며 이사장 카시와바라가 서 있었다. 그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VIP 카드… 아마 우연히 견학이라도 왔던 걸까.
카시와바라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뜻밖의 광경에 아연실색해, 나잇값도 못 하고 연정을 품고 있던 젊은 여교사의 꼴사나운 모습에 넋 나간 토우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어쩌면 이사장은 리사의 스캔 풍경에 운 좋으면 입회하고 싶다…는 흑심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런 건 따질 때가 아니다. 그의 입에서 리사가 죄수가 아니라 데이터 따러 온 교사라는 진실이 나오면 리사는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리사는 카시와바라를 보자마자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필사적으로 눈으로 호소했다.
'(이사장님, 저예요, 사람 잘못 본 거예요, 살려주세요…!)'
하지만 카시와바라는 상상 밖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예상 밖의 대사를 내뱉었다.
"이게 그 죄수입니까? 미인이구먼… 별로 범죄자처럼 보이진 않는데."
경악하는 리사.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카시와바라의 발언에 오코치도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던 모양이다.
"듣고 보니… 그러고 보니 카시와바라 씨 학교에서 여선생님이 데이터 따러 오신다고 들었는데, 설마 잘못해서 이분이 그 교사 본인이라든가 하는 일은 없겠죠."
만약을 위해 뒤돌아 확인하는 오코치를 향해 카시와바라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뇨, 전혀 딴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오늘 일부러 오신 건 그 여교사 스캔 견학이 목적이라고 들었는데요?"
"핫, 이거 따끔하구먼. 하지만 지금은 단연코 이쪽에 흥미가 있습니다."
조금 짓궂은 지적에도 카시와바라는 기분 좋게 대답하며 사로잡힌 여교사의 멋진 미유(美乳)로 손을 뻗었다.
'(카, 카시와바라 씨, 저예요, 모르시겠어요?!)'
기쁜 듯 유방을 주물러 대는 카시와바라를 리사는 쾌락을 참으며 노려보았지만, 그 몸짓이 오히려 가학심을 부추겨 점점 역효과가 났다. 노련한 농락에 리사는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편 오코치는 손가락 두 개를 더 리사의 가랑이에 찔러 넣고 꾹, 꾹 기분 좋게 반응하는 아래 입의 조임 상태를 즐기고 있다. 천천히 다리가 벌려져 알게 모르게 엉덩이를 내민 꼴이 된 리사는 질척질척 음란한 소리를 울리며 자신의 몸이 얼마나 고성능인지를 입증하는 꼴이 되었다.
'(큭, 크으, 크으으……)'
"이 보(삐)도 통상은 로봇화할 때 제거해 버리지만, 이건 부디 제 취향으로 남겨 두죠."
오코치의 긴 손가락이 자신의 몸 가장 깊은 곳까지 들락날락할 때마다 리사는 미칠 듯한, 애달플 정도의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젖는 거야… 아마 이렇게 사양 없는, 마치 물건 다루는 듯한 취급을 받은 건 학창 시절부터 되돌아봐도 처음 겪는 경험이라서? 평소와는 정반대로 흐트러진 모습에 곁에서 보던 카시와바라의 사타구니도 폭발 직전이다.
"미, 미안하지만 나도 부디 그쪽 구멍을…!"
그렇게 말하며 벨트를 절그럭절그럭 풀려는 카시와바라를 오코치는 황급히 제지했다.
"자, 잠깐 기다리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촉진 검사니까 체액이 남을 만한 행위는 금물입니다!"
지금 막 오랫동안 눈독 들이던 미모의 여교사에게 자신의 물건을 쑤셔 박아 주마… 하고 벼르던 학교 경영자는 뜻밖의 제지를 당하고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했는지 오코치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뭐 기다리세요. 피부 코팅부터 개조 완료까지 그렇게 시간 안 걸리니까, 완전히 인형화한 뒤에 동작 테스트 때는 반드시 부르겠습니다… 그때까지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시죠."
오코치의 제안에 카시와바라는 마치 어린애처럼 방긋 웃었다.
몸 구석구석까지 꼼꼼한 검사를 받은 리사는 양옆의 작업용 로봇에게 안겨 있지 않았으면 이미 제 발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소모되어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며 빛을 반사하는 보디는 실로 요염했다. 분명 플라스틱으로 완전 코팅된 새벽에는 이 여자는 이런 느낌으로 완성되겠지… 하고 사타구니를 뜨겁게 달구며 오코치는 냉큼 정신을 잃은 지금이 기회라며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리사는 커다란 도넛 모양 목줄로 교체되고 재갈이 풀렸다. 다음으로 겨드랑이 밑에 후크가 끼워지자 선 자세 그대로 크레인에 의해 방 중앙에 있는 캡슐로 수납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한가운데 머리 하나분 구멍이 뚫린 원형 속뚜껑이 씌워져 어깨 언저리에서 고정된 상태가 된 뒤, 마지막으로 캡슐 자체에 뚜껑이 닫히며 준비는 완료되었다.
수상쩍은 액체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액체는 속뚜껑 목 위치까지 차올랐다.
리사가 액체의 차가움에 제정신을 차리고 찰싹찰싹 캡슐에 손바닥을 대고…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오코치 일행과 눈이 마주치자 새빨개져서 몸을 양손으로 가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카시와바라는 기뻐했다.
"이제 와서 가려 봤자 소용없을 텐데…."
"…다만 손으로 가리면 코팅액 침투에 얼룩이 생깁니다. 어떻게 좀 하죠."
오코치는 그렇게 말하고 무언가 손에 든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캡슐 안에 여러 케이블이 기어 나와 리사 목의 도넛에 차례차례 연결되어 갔다. 배선이 완료된 직후 리사는 마치 로봇처럼 칵 눈을 부릅뜨고 양손은 축 아래로 내리고 다리를 살짝 벌린 직립 자세를 취했다.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보석 같은 돌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 무슨 일입니까?!"
"척수 신경 전달을 일시적으로 가로챈 겁니다. 그 사이에 뇌를 인공심폐에 연결하고 목 아래는 특수한 약품으로 천천히 플라스틱화해 나갑니다."
"그렇군. 그 뒤에 전신을 기계로 교체하는 거군요. 피부가 플라스틱이 되면 체모 같은 건 어떻게 됩니까?"
"음모부터 겨드랑이털까지 완전히 없어집니다. 보세요, 원래 털은 옅은 것 같으니까 약액으로 이미 성기가 훤히 다 보이죠. 앞으로 하루 꼬박 지나면 완전히 셀룰로이드 인형이 됩니다. 천연 조각 같은 조형은 한번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커다란 투명 캡슐 속에서 직립 자세를 취한 전라 미녀의 모습은 마치 장난감 가게 인형 코너 같은 정취다. 다만 액체에 흔들리는 모양 좋은 가슴과 톡 솟아오른 엉덩이는 인형치고는 다소 너무 자극적일지도 모른다.
오코치는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 죄수는 솔직히 말해 물건입니다. 보통 이런 훌륭한 몸을 가진 피험자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요. 미술 학교용 모델이나 의료 훈련용 로봇 등으로 개조하게 되겠죠."
"차라리 더치 와이프로 만들어 버리는 건?"
"그건 어렵습니다. 마땅한 봉사처가 없어서요. 설마 풍속점에 대여할 수도 없고… 뭐 어쨌든 생몸이 베이스니까 그까짓 시판 섹스 안드로이드랑은 차원이 다른 성능이라…."
그 얘기를 들은 카시와바라는 갑자기 눈빛이 변하더니 엄청난 기세로 오코치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 그럼 이, 이 여죄수가 로봇화되면 저한테 팔아 주실 수 없습니까!?"
너무나 엄청난 기세에 오코치는 난처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야말로 불가능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교정 프로그램이에요. 로봇화된 종신범을 멋대로 매매했다간 인권 무시로 신문에 나서 우리 회사가 휘청거립니다."
오코치는 그렇게 설명하며 미안한 듯 슬쩍 카시와바라를 보았다. 분명 아쉬운 표정이겠지… 싶었는데 의외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카시와바라의 모습이 있었다. 마치 뭔가 히든카드를 쥐고 있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으로 캡슐 속 여자를 보고 있다.
그 표정에 설마 이 여자가 그 교사는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솟아오르긴 했지만 그건 금방 사라졌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췄는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오코치.
그 또한 눈앞의 최상급 실험 재료를 두고 이 보디를 어떻게 유효 활용할지에 대해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시, 싫어어어어어!!"
벌떡, 리사는 이불을 걷어차고 뛰어 일어났다.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낯익은 자택 침실이었다.
황급히 입에 손을 넣고 그대로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떨다가…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건… 꿈? 꿈이었어??)'
리사가 손목을 보자 디지털 시계 표시는 오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천천히 이마에 손을 대자마자 식은땀이 왈칵 배어 나왔다. 어제… 그건 어제 일이야. 료코 선배 안내로 연구소에 전신 측정하러 가서… 그랬더니 카시와바라 이사장이 와 있어서 자초지종 다 보여 주고 좀 부끄러웠지… 그대로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거야….
잠자리가 불편했던 리사는 한동안 생각한 뒤 조금 이르지만 샤워를 하기로 했다. 맨발로 욕실로 향해 땀에 젖은 잠옷을 빨래 바구니에 벗어 던지고 차가운 타일 위에 발을 올렸다.
…기분 나쁜 꿈을 꾼 뒤의 찜찜한 기분을 뜨거운 물로 씻어 내는 것이다.
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리사는 한동안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얼굴로 뜨거운 물줄기를 계속 맞았다. 신경 쓰이는 건 방금 꾼 꿈… 그 꿈은 대체 뭐였을까… 그런 꿈을 꾸다니 나 욕구 불만인 걸까… 리사는 자기혐오에 빠지며 양팔의 땀을 꼼꼼히 씻어 냈다. 그때 문득 기묘한 감촉에 위화감을 느꼈다.
'(…뭐야, 이거…?)'
착 달라붙는 듯 결 고운 자신의 피부가 무언가로 코팅된 것처럼 명백히 물을 튕겨 내고 있었다. 흠칫해서 반대쪽 팔을 보니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털이… 팔의 모공이… 옅어진 것 같아… 손끝이나 손톱도 가짜라고 착각할 만큼 반질반질 빛나서 성형외과의 인공 손가락처럼 보이고 만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까부터 몸의 반응이 둔하다. 다이렉트함이 결여되어 묘하게 어색하다. 마치 '내 몸을 리모컨 조종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져… 이 손발의 저림은 대체 뭐야?
갑자기 리사는 양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쓰다듬고 아래에서 들어 올렸다… 이, 이렇게 컸었나, 게다가 유륜이… 평소 내 기억에 있는 핑크색이 아니야, 게다가 커진 것 같아.
이거, 정말 내 몸… 맞아?
리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을 천천히 가랑이로 뻗었다.
"어, 없어… 터, 털이 없어졌어…."
자신의 가랑이는 마치 영유아처럼 매끈매끈했다. 조개 닫힌 이음매 양옆은 영구 제모보다 더 완벽하게 제거되어, 그 중심에 무모(無毛)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생생한 성기와 크게 비대한 살의 싹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확실히 원래 털은 옅은 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직접 민 걸 잊어버릴 리는 없다.
불길한 상상이 스친 리사는 샤워를 멈추고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곳에는 마치 마네킹 인형 같은 나신이 비치고 있다. 만약 리사가 이대로 백화점에 가서 알몸으로 서 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그런 농담이 통할 만큼 무기질적인 보디.
천천히 자신을 위에서 아래까지 내려다보던 리사의 시선이 무언가를 깨닫고 멈췄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배를 더듬자… 자신의 가슴 아래부터 아랫배에 걸쳐… 뭔가… 슬릿 같은 선이 빙 둘러져 있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속옷 자국인가 싶었지만 손톱이 걸린다… 뭐야… 이건 뭐야… 덜덜 떨기 시작하는 리사.
그래, 난 예전에 이거랑 똑같은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건………
…생각났다. 그, 학교에서 옮긴 무거운 골판지 상자 속 교재용 로봇… 그 복부에 있던 개폐 부분이랑 닮았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리사의 사고는 정지했다.
동시에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랫배를 억누른 자세 그대로 멍하니 서 있는 리사.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는 담담하게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더니 화장대에서 몸단장을 하고 침실로 돌아갔다. 물론 잠옷은 입지 않고 전라 그대로.
꽤 샤워에 시간이 걸렸는지 벌써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이치고 있다.
리사는 바로 침대로 돌아가지 않고 알몸 그대로 새시를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십몇 층 맨션이라곤 해도 주위에는 비슷한 높이의 맨션이 몇 채 서 있어 누군가에게 보일 위험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 균형 잡힌 프로포션을 아침 햇살 속에 춤추게 했다.
베란다에 선 리사는 천천히 다리를 벌리고 만세 포즈를 취하며 온몸으로 아침 햇살을 받았다. 반짝반짝 피부가 빛나고 무표정하게 눈을 감은 그 모습은 마치 그리스 조각상 같았다.
리사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터리 충전을 개시합니다…."
그 일련의 행동은 지독히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보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