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능력으로 돈을 쓸어 담는 로쿠조. 그는 자신의 뒤틀린 성욕을 채우려고 사이보그 연구의 스폰서가 됐다.
소녀가 기계로 개조당하는 그 끔찍하고도 황홀한 광경을, 특등석에 앉아 느긋하게 감상하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실현 가능한 일이라면 대체로 저지르고 마는 법이라 생각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동시에, 나의 병적인 성벽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유연한 가능성도 품고 있었다.
잊지도 못할 5년 전 7월 6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나는 어느 정도의 예지 능력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로또 당첨 번호가 선명하게 보이는 식이었다. 어딘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숫자와 당첨 후의 절차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사봤더니 일주일 뒤 1등 60억 원에 당첨됐다. 한 번 더 시도했더니 이번엔 80억 원이 터졌다. 아무래도 의심을 살 것 같아 연속해서 사는 건 그만뒀지만, 그 일을 계기로 로또 같은 '완전한 운'에 맡기는 상금은 세금 대상이 아니고, 경마처럼 '예상이 가능한 등 운 이외의 요소가 개입하는' 복권에는 세금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지 능력이 진짜 도움이 된 건 그 이후다. 돈이 생기자 수많은 위험이 내게 닥쳐왔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회피해야 할지 미리 알 수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만 사태가 생각만큼 호전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예지는 만능이 아니었던 거다.
나의 예지는 오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그것도 굵직한 사건들만 내다볼 수 있다. 그래서 사소한 부상이나 감기 같은 건 피할 수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위험한 인간은 피할 수 있어도,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위험한 인간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보낸 5년. 나라는 인간을 완전히 바꿔놓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로쿠죠, 준비 끝났다."
"수고했어."
친구인 코나미 료슈는 나를 위험한 길로 끌어들인 인물 중 하나다. 독자적인 커넥션을 가지고 있으며, 돈만 처바르면 나의 특수한 성벽을 만족시켜 준다. 저쪽도 내 자금을 노리고 있으니 서로 돕고 돕는 관계라고나 할까.
"누구, 계세요...?"
청결하고 넓은 수술실에는 전라 상태로 눈이 가려진 소녀와, 그녀를 묶어둔 수술대를 둘러싼 코나미를 포함한 수술복 차림의 남녀 8명이 늘어서 있다.
나는 조금 높은 곳,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서 느긋하게 구경 중이다.
코나미가 안대를 벗기자, 소녀는 광경의 기괴함에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뭐야, 이, 꺄아아아악!"
비명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코나미가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얌전히 있어. 소란 피워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
"자, 잘리고, 죽고, 싫어어어어!"
떫은 표정 그대로 코나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나미는 소녀에게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아, 윽..."
진정제는 순식간에 효과를 발휘해 소녀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
수술대에 묶어두는 것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 소녀의 몸은 단백질 단위로 뿔뿔이 분해되었고, 내장도 피부도 그저 탄소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뼈는 원래의 체격을 재현하기 위해, 뇌는 인격을 추출하기 위해 그대로 이용된다.
"이런 게 의미가 있다고 보나?"
탄소로 가공된 소녀의 신체 일부를 손에 쥐고 코나미가 투덜거린다. 그는 물질에 혼이 깃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의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일단 시도해 보는 게 과학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그저 감상적인 헛소리 아닌가."
나는 예지라는 비상식적인 능력을 얻은 이래로 신비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끊이지 않는다. 코나미에게 저건 그저 물질일 뿐이겠지만, 나에게 저것은 '소녀의 영혼'을 붙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희귀품이다. 저걸 기체의 소재로 쓰느냐 마느냐에 따라 사이보그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살아있는 부품을 거의 남기지 않은, 로봇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할 법한 물질일지라도.
◆◆◆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소녀에게서 얻은 탄소는 주요 부품에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가공을 마친 뇌는 컴퓨터와 동기화를 시작했다.
"아, 하... 처음 뵙겠습니다! 바, 방은 이쪽이에요 안은 히이이익! 에헤헤... 예쁘죠, 저기, 저 착한 아이거든요."
스피커에 연결된 소녀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뇌는 지금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된다. 나는 그런, 곤란한 성벽을 가지고 있다.
"기쁘죠? 아하, 파티라면 지지 않으니까... 안 돼, 불이 번져어어억! 아하, 아헤헤, 에, 에러-?"
표정은 아직 움직일 수 없지만, 사고의 움직임은 오실로스코프로 가시화할 수 있게 장치해 두었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파형과 소녀의 가련한 신음 소리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아직 에러 셧다운 안 해, 같이 놀자아아아앙! 코, 콘센트으으으!"
소녀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상으로 띄울 수 있는 기술이 빨리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
컴퓨터와 동기화를 마친 뇌는 주요 데이터를 기계로 옮기고, 남은 뇌는 보조 연산 장치 부품으로 남겨둔다. 생체 뇌는 영혼을 남길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유지가 어렵기에 가공은 하지만, 파기할 수는 없다.
지금은 데이터 이행의 최종 단계. 심층부 정보까지 복사하기 위해 뇌 기능은 거의 정지시킨 상태다. 소녀의 뇌는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로 잠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몸 쪽은 순조롭게 완성되어 갔다. 소녀의 몸으로 만든 부품을 조립한 전신의 각 부위가 갖춰졌고, 조립만을 기다리는 상태다.
여기서 처음에 사용했던 수술대가 등장한다. 조립을 뒤로 미루고 각 부위를 수술대 위에 늘어놓아, 조립 직전의 상태까지 세팅을 마친다. 뇌 데이터 이행이 끝나고 머리 부분에 컴퓨터가 안착하면 머리, 몸통과 전원 케이블을 연결해 불을 지핀다.
"음... 어라, 나, 왜?"
그러면 수술대 위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에서 멈춰있던 소녀가 눈을 뜬다, 라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렇게 하는 데 기술적인 의미는 없다. 순전히 내 주문이다.
"정신이 드나, 아가씨?"
"에, 아, 네..."
코나미가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내키지 않는지 목소리 톤이 낮다. 반면 소녀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지 멍청하게도 진지하게 대답한다.
"방금 전 일은 기억 안 나나?"
"무척 무서웠는데... 이상해요, 지금은 마음이 차분해서."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하지?"
코나미는 수술대 위의 거울을 소녀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이제 분해된 자신의 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피부의 질감부터 가슴 크기, 팔다리의 굵기까지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그 틈새로 엿보이는 것은 투박한 골조와 모터, 그것들을 잇는 배선들이다.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로봇 부품... 인가요?"
"정확히는 사이보그다. 인간을 베이스로 했으니까."
"하아... 히익!?"
소녀의 맥 빠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코나미는 소녀의 목과 상체 케이블을 연결했다. 본래 전원을 켠 상태에서 할 작업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 리퀘스트로 실현됐다. 전원을 켠 채로도 큰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는 건, 막상 만들어보니 의외로 편리한 기능이었다고 한다.
"아, 아아, 새로운 디바이스가 연결되었습니다... 기지 정보와 일치, 순정 부품으로 판단. 결합 개시... 이, 이게 지금의 나?"
"이해가 빠르군. 역시 기계야."
"기계라니, 그게 무슨..."
소녀의 말 따위 듣지도 않고 코나미는 오른팔 배선을 연결했다. 모터가 회전하며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소리가 들린다.
"우아! 새, 새로운..."
몸이 연결될 때마다 소녀는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녀는 점점 눈치를 채 가지만,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견딜 수 없이 즐겁고 사랑스럽다.
"결합 종료, 셀프 체크 개시..."
모든 파츠가 배선으로 연결됐다. 소녀는 이제 수술대 위에 있는 모든 부품을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을 터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줘!"
"이 몸은 생전의 너를 충실히 재현해서 만든 거다."
코나미는 말하며 소녀의 몸 위로 손가락을 훑었다. 이미 신경 전달 회로가 작동 중인지, 손길이 닿자 소녀는 몸을 떨었다.
"기계라도 느끼는 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말끔하게 제모된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며 코나미가 콧방귀를 뀌었다.
"희귀한 위치에 점이 있군. 이런 게 로봇에게 우연히 붙어있을 것 같나?"
"당신들이, 나를 보고 붙인 거잖아!"
코나미는 거침없이 소녀의 가랑이를 움켜쥐었다. 갈라진 틈을 벌리자, 본래 있어야 할 구멍이 없다.
"그래, 너를 보고 붙였지. 하지만 있어야 할 게 없는 가랑이를 애무당하면서, 만져지는 부분에서 느끼고 있는 너는 대체 뭐지? 못 믿겠으면 네 손으로 직접 확인해 봐도 좋아."
소녀의 제지를 무시하고 그녀의 손이 비부에 갖다 대어졌다. 미완성인 그곳을 손가락이 훑으며 형태를 확인한다. 소녀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것이 분명했다.
"왜...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소녀의 물음에 코나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기계 몸이 되어서라도 죽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 있으니까. 게다가 돈이 되거든."
코나미가 컴퓨터를 조작하자 소녀의 눈동자 색이 변했다.
"앗, 아..."
"진작 이랬으면 빨랐을 텐데 말이야."
오실로스코프가 툭 끊겼다가 잠시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 정말로, 기계가..."
"이해시키는 건 간단하지만, 스스로 납득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스폰서의 의향이 있어서 말이지."
조립되는 와중에 소녀는 '나는 기계, 나는 기계'라며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다. 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런 기능을 의도적으로 뺐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가 기계임을 더 강하게 자각시킨다.
"나는 왜, 개조된 건가요?"
"몰라, 의뢰받았을 뿐이다. 높으신 분들한테 물어보라고."
쥐어짜듯 내뱉은 질문도 코나미에 의해 단칼에 잘려 나간다. 그때 소녀의 절망에 찬 표정을 보았을 때, 나는 절정에 달했다.
◆◆◆
악취미적인 구경거리지만, 나에게는 억 단위의 돈을 처바를 가치가 충분한 성과다. 자, 갓 완성된 소녀가 밤시중을 들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줄까. 도중에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도 재밌겠네. 배의 해치를 열면 깜짝 놀라려나?
소녀는 침실에 전라 상태로 서 있었다. 무척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이음새가 보이지만, 언뜻 봐서는 또래 소녀와 다를 바 없다. 저 안을 나는 전부 알고 있다. 무기질적인 기계가 그녀의 본질... 가슴이 고동친다.
자, 디저트를 즐겨볼까.
끝
졸작 『여자애를 기계화하는 게 좋습니다』의 속편 같은 겁니다. 전작 주인공이었던 로쿠조 키요아키의 딸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돼요.
내용은 뭐, 대충 제목 그대로입니다.
참고로 이 세계관은 몇 년 전에 썼던 『카라쿠리 카라스』랑 같은 세계관이에요.
재밌는 걸 찾아냈다. 엄청난 게 적혀 있다. 이게 진짜라면 그 멍청한 년이 특대생인 것도 납득이 간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빠 방인데도 소리를 지르며 춤이라도 출 것만 같았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파일의 글자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나가츠키, 점심 같이 안 먹을래?”
다음 날 학교, 점심시간.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나서 나가츠키 코요미에게 말을 걸었다.
“어, 나랑?”
코요미는 중학교 올라올 때 들어온 특대생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눈치 없고 품위 없는 년이라고 미움받고 있다. 나도 싫어한다. 선생들한테 특별 대우받는 것도, 나보다 키가 큰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안 돼?”
“아니, 괜찮긴 한데.”
대답은 하지만 본심은 같이 먹기 싫은 모양이다. 태도도 애매하고 동작도 굼뜨다.
“동급생끼리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자, 일어나.”
나는 코요미의 팔을 붙잡고 교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중학생은 교문 밖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어디서 점심을 먹든 자유다. 학교가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라 밖에서 먹으려는 애들은 별로 없다. 운동장 쪽에서는 아직 초딩 티를 못 벗은 남자애들이 밥 빨리 먹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다 먹자마자 바로 뛰어놀 생각인가 보다.
“자, 앉아.”
내가 고른 곳은 간격이 넓고 교사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벤치였다. 운동장에서는 잘 보이는 곳이라 남의 눈을 피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코요미는 나를 경계하는지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저기, 로쿠죠. 왜 나랑 밥 먹자는 거야?”
“그냥 그러고 싶어서.”
코요미 옆에 걸터앉았다. 오늘 내 도시락은 바게트 샌드위치, 코요미는 매점에서 산 빵인 것 같다. 내가 말없이 먹기 시작하자 그녀도 따라 봉지에서 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를 다 비우고 나서 코요미에게 말을 건넸다.
“있잖아 나가츠키, 요즘 뭐 변한 거 없어?”
“어, 왜?”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 빨리 대답해,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코요미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변한 건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몸은 어디 이상 없어?”
“멀쩡한데.”
짐작 가는 게 없는 모양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고 있는 나조차도 코요미에게서 이상한 점은 전혀 찾을 수 없으니까.
“그래. 그럼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뭔데?”
나는 아빠 방에서 베껴온 메모를 꺼냈다.
“어디 보자…… 긴급 처치 1호, 수신 SS508, 음성 인증 R9RE028869, 특별 거동 JIO778.”
메모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코요미에게 변화는 없었다. 그저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끝까지 다 읽자 몸을 움찔 떨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새는 사막을 건너는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이 이상한지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려 한다. 하지만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메모의 뒷부분을 읽었다.
“건너지 않는다, 새는 사막에 장미를 두고 바다로 돌아간다.”
“코드 확인, 위장을 해제합니다. 기밀 유지에 유의하십시오.”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코요미의 피부에 변화가 생겼다. 얼룩이나 햇볕에 탄 자국이 사라지고, 허여멀건 하니 전신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살색으로 변했다. 믿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나는 그녀의 정체를 확신했다. 반면 코요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 팔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몸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어, 어?”
당황하는 그녀를 구경하는 건 꽤나 즐거웠다. 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소매를 걷어붙이거나 몸을 만져보고, 중얼거리며 꼼지락거린다. 지금 코요미의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코요미의 몸은 뇌를 포함해 거의 대부분이 기계로 바뀌어 있다…… 어제 아빠 방에서 찾아낸 건, 기계로 개조해서 본인은 모르게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리스트였다. 적혀 있는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코요미의 얼굴을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리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말하면 코요미가 인간 흉내를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암호를 찾아냈을 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인간인 부분이 남아있긴 하다지만 머리까지 거의 기계라는 코요미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나는 그녀의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뭐지, 병인가…… 아니면 독?”
자신의 몸이 기계가 됐다는 발상까지는 못 가는 모양이다. 눈치가 없는 건지,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어쨌든 자기가 실험을 위해 중학생 흉내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기억 안 나, 나가츠키?”
이름이 불리자 코요미가 나를 의식한다. 피부색은 단조롭지만 표정에서 의구심이 느껴진다. 더는 말하지 않고 코요미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대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기억이라니, 뭘?”
“개조당한 거 말이야.”
“개조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몸이 다 바뀌었는데.”
“바, 바뀌다니 그럴 리가. 뭘로 바꿨다는 거야?”
“태엽 달린 인형이지. 이제 네 몸에 인간이었던 부분은 거의 안 남았어.”
코요미는 제 옷깃을 붙잡고 억지로 벌렸다. 가슴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은 모양이다.
“빛나고 있어.”
일어서서 바들바들 떨며 굳어 있는 코요미의 뒤로 돌아갔다. 가슴 중앙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뭘까, 한번 만져보자.”
“싫어!”
두 팔로 가슴을 가리고 등을 돌린 채 웅크린다. 억지로 뿌리쳐도 됐지만, 나는 코요미가 무방비하게 드러낸 뒷머리와 목덜미를 발견했다. 초록색 빛으로 버튼을 나타내는 기호 같은 게 떠오른 것이 보였다.
“흐응, 이거구나.”
나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파일 커버에 꽂혀 있던 것이다. 개조된 인간은 머리 뒤쪽으로 이 카드를 삽입할 수 있다고 적힌 걸 보고 몰래 가져왔다. 사용법은 잘 몰랐지만 이렇게 대놓고 드러나 있다니. 아마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코요미의 목덜미, 빛나는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댔다. 모터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머리카락에 가려진 곳에 카드 삽입구 같은 게 열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위치에 있는 걸 보니 꽤 잘 만들어졌다. 머리를 만지는 나를 수상하게 여겼는지 코요미가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카드 좀 꽂으려고. 고장 날 걱정은 마.”
당황하는 코요미를 내버려 두고 카드를 그녀의 머릿속으로 밀어 넣었다.
“앗, 아, 윽.”
리스트에 적혀 있었다. 이걸 꽂으면 기계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억지로 명령을 듣게 할 수 있다고. 다만 절대복종과는 좀 다른 모양인데, 본인이 스스로 수리할 수 없게 됐을 때를 위한 긴급 조치? 가 목적이라 코요미의 몸에는 명령할 수 있어도 마음이나 기억은 바꿀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자, 나가츠키. 가슴 커버 열어.”
다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코요미의 가슴이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옷 안에서 기계가 노출됐을 것이다. 위화감을 느낀 코요미가 직접 가슴을 들여다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울어버리면 곤란하니까 나는 ‘소리 내지 마’라고 명령해서 코요미의 입을 막았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코요미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벌린 채 가슴을 계속 움켜쥐었다. 유쾌했다. 이년의 인생은 이미 파탄 난 거나 다름없지만, 그걸 깨닫고 눈물 흘리는 얼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잘됐네, 나가츠키는 이제 나이 먹을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나는 코요미의 가슴 안쪽을 들여다보며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있을 리 없는 기계 장치 장기들을 구경했다. 두근거렸다. 이 애는 내가 아무 짓도 안 했으면 자기 정체도 모른 채 학교생활을 마쳤을 텐데, 내가 망가뜨렸다. 바로 내가!
천천히 즐기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운동장에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들킨다. 나는 코요미에게 인간인 척하고 정체를 들키지 말 것, 학교 끝나면 우리 집으로 찾아올 것을 명령하고 카드를 뽑은 뒤 자리를 떴다. 바게트 샌드위치가 남았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충만감에 휩싸인 기분이었다.
◆◆◆
현관문을 열자 억울한 듯 부들부들 떨고 있는 코요미가 보였다. 얼굴은 엉망진창이고 옷에는 진흙이 묻어 있다. 오는 길에 넘어진 모양이다.
“왔어, 약속대로.”
코요미는 벌써 울먹이는 목소리다. 너무 즐거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와줘서 고마워, 착한 인형아.”
나는 코요미를 집 안으로 들여 방으로 데려갔다. 아빠는 아직 퇴근 전이다. 평소라면 내가 올 시간엔 집에 계셨는데…… 이번엔 운이 좋았다.
그 명령을 사용해 코요미를 내 마음대로 부렸다. 일단 진흙 묻은 옷을 벗기고 속옷 차림으로 만든 뒤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몸 여기저기를 만지니 가슴과 등이 팍 하고 열리며 안쪽의 기계들을 볼 수 있었다. 투박하고 복잡해 보이는 기계 덩어리들이 코요미 안에 꽉 들어차 있었다. 기분이 최고였다.
끈적하게 만져지는 게 싫은지 코요미는 계속 울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못 내게 해둬서 시끄럽지는 않았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크고 희귀한 인형, 나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즐거운 인형 놀이.
“목소리도 못 내고 말이야, 태엽 인형 주제에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나 보네?”
코요미는 계속 울었지만 소리도 내지 않고 기척도 죽이고 있었다. 당연하다, 내가 그렇게 명령했으니까.
“맞다, 인형아. 거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여줄래?”
슬픈 표정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변한다. 아, 즐거워. 어쩜 이렇게 즐거울까!
“자, 브래지어랑 팬티도 벗자~”
팬티 아래는 매끈했다. 중학생이나 돼서 털 하나 없다니…… 나보다 키도 크면서. 아니면 기계 인형한테는 필요 없어서 없애버린 걸까.
“자자, 안쪽은 어떻게 생겼을까나.”
나는 코요미의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인간의 그것을 꽤 잘 재현해 놓았다. 따뜻하고 축축했다.
“음, 이건 뭘까?”
안쪽을 더듬어보려는데 처녀막이 방해를 했다. 기계 주제에 제법 그럴싸한 걸 달고 있네. 내가 고개를 들어 코요미의 얼굴을 보자,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듯 코요미가 필사적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미안해, 난 인형을 망가뜨리며 노는 걸 좋아하거든!”
찢어지는 감각과 동시에 코요미의 날카로운 비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제 싫어!”
다음 순간, 내 시야가 엉망이 됐다. 바닥에 쓰러져 눈앞이 핑핑 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코요미에게 걷어차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코요미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뭔가를 망가뜨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코요미의 움직임을 멈추는 장치나 프로그램이 고장 난 거겠지.
“아, 아……”
눈앞은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겁에 질린 코요미의 얼굴은 보였다. 흥,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줄 알았나 보지.
“로쿠죠…… 그 눈, 뭐야?”
눈이 어쨌다는 거지? 확실히 앞이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닌데. 어디 다쳤나?
나는 방에 있는 거울 쪽을 봤다. 내가 비치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건 뭐지? 이건 마치……
“너도 로봇이야?”
코요미의 목소리에 나는 처음으로 오한을 느꼈다. 내 오른쪽 눈은 처참하게 으깨져 있었다. 그 틈새로 무슨 기계 부품 같은 게 보였다. 카메라 렌즈 같은 것도…… 오른쪽 눈 앞에 손을 갖다 대니 시야의 절반이 가려졌다. 설마, 거짓말.
“싫어, 거짓말이야아아!”
내가 비명을 지르며 굳어 있는데 방 문이 열렸다. 아빠였다.
“코유키.”
“아, 아빠. 이거 뭐야, 이게 대체 뭐냐고!”
“코유키라면 그 정도는 스스로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아빠 딸이잖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아빠는 나를 등지고 코요미를 향해 뭔가를 조작하는 듯했다.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지? 스스로 알라니…… 설마 나도 코요미랑 똑같은 몸인 거야?
아빠가 뒤를 돌아봤다. 코유키는 멍하니 서 있었다. 뭐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침묵했다. 나도 말이 나오지 않아 멍하니 아빠와 마주 보았다. 잠시 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로쿠죠, 왔네.”
“미안하군, 평일에 불러내서.”
“일인데 뭐, 신경 쓰지 마.”
들어온 사람은 아빠랑 비슷한 나이대의, 처음 보는 남자였다. 인사만 나누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코요미를 안아 들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기, 아빠.”
“왜 그러니.”
나는 겨우 말을 뱉을 수 있었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야?”
“동료란다.”
“왜 코요미를 데려간 거야?”
“저렇게 자각해버리면 실험을 계속할 수 없거든. 분해해서 데이터를 추출해야지.”
“추출한다니…… 그 뒤엔 어떻게 되는데?”
“고쳐서 쓸지 버릴지는 나중에 결정할 거야.”
아빠는 평소와 다름없는 아빠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빠는 사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니까.
“나는 안 버릴 거지?”
“후후, 코유키 하기 나름이지.”
인자한 얼굴로 아빠가 말한다. 싫어, 그러지 마, 무서워.
“왜, 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나까지 개조한 거야?”
아빠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깍지를 끼고 천천히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바라봤다.
“아빠는 말이야, 개조된 여자한테만 매력을 느끼는 구제 불능인 성벽을 가지고 있거든. 코유키 너도 느꼈지? 그 나가츠키 코요미라는 동급생을 가지고 놀 때 느꼈던 그 짜릿한 흥분을.”
“그렇다고 나까지 개조할 필요는 없잖아!”
불안했다. 아빠는 정말 무섭지만 나한테는 다정했다. 나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이밍 문제였어. 코유키 넌 태어날 때부터 개조하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네 엄마도 개조됐었단다. 지금만큼 기술이 좋지 않아서 너를 낳을 때 망가져 버렸지만.”
“어, 엄마는 사고로 죽었다고……”
“그래, 사고지. 망가질 줄은 몰랐고, 못 고칠 줄도 몰랐으니까.”
아까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묻는 게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엄마를 개조한 게 정말이라면.
“저기, 나를 개조한 건 아빠야?”
“정확히는 다르지만 비슷한 거지. 아빠가 부탁해서 코유키 너를 개조한 거야. 왜,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엄청난 고열로 앓아누웠었지? 그때란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그렇게 오래전에?”
“그렇게라니, 겨우 반년밖에 안 지났어.”
왜, 왜왜왜왜왜……
“왜!”
“말했잖니, 아빠는 그쪽이 더 좋으니까.”
아빠를 따라 커다란 요정 같은 식당에 왔다. 가게 사람은 내 붕대와 아빠 얼굴을 보더니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말씀 들었습니다, 로쿠죠 씨.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격식을 차려? 평소처럼 키요아키라고 부르면 될 텐데.”
가게 아저씨는 얼굴을 경련하며 아빠에게 손을 내저었다.
“무서운 소리 마. 일행이 있잖아. 너랑 허물없이 지내는 거 들켰다간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주변이 좀 예민해져 있긴 하지. 그래도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그럼 부탁해.”
“알았어.”
안쪽으로 안내받으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타고 나서 아빠가 다정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창이란다, 오래된 사이야. 내 입지가 더 높아지는 바람에 저렇게 경계하는 거지.”
“저 사람도 개조됐어?”
“설마. 개조는 들키면 큰일 나거든. 아무한테나 막 하는 게 아니야.”
“그럼 코요미는? 왜 그 애는 개조된 거야?”
“네가 훔쳐본 파일에 적힌 그대로야. 인간들 틈에 섞여 있어도 들키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지.”
“나도 그런 거야?”
아빠는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넌 특별해.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귀여운 모습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말이야. 다만 내 동료가 코유키 너한테서 나올 데이터를 기대하고 있었거든. 그 사람은 친구이기도 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 나가츠키 코요미를 사서 개조한 거야.”
“나한테서 뽑는 데이터라는 게 뭔데?”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정도의 아이를 개조해서 사람들 속에 던져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데이터지.”
그럼 내가 먼저 개조됐던 거네…… 싫어, 내가 더 인형 같잖아. 왜 나는 내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조금은 인간인 걸까.
“내가 특별하다니, 뭐가 특별한 건데?”
“너한테는 실험이 아니라 성장을 기대했거든. 데이터 수집 같은 걸로 용량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 그건 성공적이야. 이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밖으로 나가니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통로가 나왔다. 조명이 적어 어둑어둑했다. 아마 지하인 것 같다. 아빠가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는 서둘러 뒤를 따랐다.
안쪽 방에는 기계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코요미를 데려갔던 남자도 있었다. 아까는 정장이었는데 지금은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빠르네 로쿠죠. 부녀지간에 할 얘기가 많지 않았나?”
“필요 없어. 이 녀석은 나랑 동류거든. 웬만큼 굴려도 안 꺾여.”
“절반은 엄마 피잖아. 좀 살살 다뤄줘도 될 텐데.”
사이가 좋아 보인다. 아까 아빠가 말했던 친구인가 보다.
“그럴 거였으면 그런 개조는 부탁하지도 않았어. 그나저나 몇 그램 남았지?”
“150그램(150g)이다. 대략 8분의 1이군. 대단해, 취미를 위해 딸내미 뇌를 통째로 깎아내다니.”
8, 8분의 1? 거짓말. 코요미도 뇌가 절반은 남았다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더 기계라는 거야?
“취미가 아니야. 코유키를 생각해서 그런 거지. 실험을 계속 지켜봤는데, 기계 몸에는 생체 뇌가 노이즈가 되는 것처럼 보였거든. 인간다움보다는 마음과 몸이 맞물리는 게 더 중요해. 머리와 몸이 따로 놀면 사는 게 괴롭지 않겠어?”
“난 모르겠군. 육체니 영혼이니 따지는 것치고는 뇌에는 참 무관심하단 말이야.”
“뇌에 영혼이 깃드는지는 알 수 없어. 만약 몸의 내용물이 부위에 상관없이 같은 가치라면…… 원래 몸을 소재로 쓰면 영혼은 떠나지 않게 되는 거지.”
“예상이 빗나가면 어쩔 셈이야? 딸은 대체품이 없다고.”
“나도 처음엔 뇌 기능이 멈출 정도로 줄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자네한테 부탁할 때 나쁜 예감이 들지 않았거든. 이 번뜩임은 분명 맞을 거야. 내 감은 틀리지 않으니까 걱정 마.”
내가 당황하는 사이 대화가 끝났는지 아빠가 나를 돌아봤다.
“자, 옷 벗으렴.”
“저, 저기 아빠.”
“왜 그러니.”
“나는 얼마나 인간이야?”
“음, 글쎄다.”
턱에 손을 괴고 아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구조만 따지면 인간이라기보다 로봇이지. 뇌는 장식 수준이고 시스템은 완전히 기계란다.”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 오른쪽 눈은 기계가 훤히 드러나 있다. 남들 눈에 띄면 어떻게 될지…… 게다가 붙잡히면 분명 아빠는 나를 부숴버릴 것이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되고 붕대까지 풀자, 아빠가 가운 입은 아저씨를 가리켰다.
“침대 쪽으로 가서 저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지, 코유키?”
가운 입은 아저씨에게 다가가자 금속 침대에 눕혀졌다. 침대에 눕자 내 몸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아저씨는 머리에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 같은 걸 쓰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점검 안 했잖아. 하는 김에 같이 해둘까?”
아빠랑 연결된 걸까. 헤드셋에서 대답이 왔는지 아저씨가 플라스틱 안경과 장갑을 끼고 나한테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몸에 그런 걸 꽂을 곳이 있었구나.
“그래, 그쪽으로 모니터 보낼게.”
끝났는지 아저씨는 근처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하면서도 간지럽고, 그러면서도 몸이 잘려 나가는 듯한 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어느샌가 머리만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 팔다리는…… 분리되어 있었다.
“뭐야, 부서진 건 외장뿐이잖아.”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망가진 쪽 눈을 직접 만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무서웠다. 이렇게 간단히 고쳐지다니, 이상해.
“고쳤다…… 아, 그렇지. 오늘을 위해 준비해뒀었지.”
마이크 너머로 누군가와 대화하더니 아저씨가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내 가슴이 갑자기 좌우로 열렸다. 본 적이 있다. 코요미의 가슴도 이랬다. 설마 나랑 코요미는.
“아저씨. 나랑 코요미는 속이 똑같은 거예요?”
“아니, 달라. 아가씨가 그 차이를 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뜻일까…… 하지만 다르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아빠는 내가 특별하다고 했으니까. 이런 꼴을 당하면서도 나는 아직 아빠를 믿고 싶었다.
“앗.”
두근, 하고 심장이 크게 움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몸에 심장 같은 게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내 가슴 안으로 가느다란 로봇 팔 같은 게 들어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 아……”
무섭고 괴롭다. 그런 상태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마지막으로 크게 심장 소리가 울리더니…… 로봇 팔이 뭔가를 움켜쥐고 나왔다. 뭔가 크고 소중해 보이는 부품. 그게 뽑히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방금 그 부품과는 모양이 다른, 하지만 비슷한 크기의 부품을 가져와 내 가슴에 넣었다.
잠시 후 낡은 전자레인지 같은 지지직거리는 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아까 심장 소리라고 생각했던 소리다. 새로운 부품이 진짜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진짜 나는 피도 흐르지 않고 심장도 없다. 그저 있다고 착각했을 뿐인 기계. 부품이 교체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본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꼬마야, 정신이 드니?”
“드, 들어요……”
“뭐가 좀 달라진 것 같아?”
나는 방금 느낀 것들을 설명했다. 아저씨는 질문을 바꿨다.
“기억이 안 난다거나, 무서움이 사라졌다거나 하진 않고?”
기억은 있다. 무서움도 있다. 그렇게 대답하자 아저씨는 다시 컴퓨터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슨 의미일까.
“대단해 로쿠죠, 자네 말대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듣고 보니 고개를 들어 내 기계 몸을 봐도, 내가 사이보그라는 걸 자각해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왜일까.
(코유키…… 코유키……)
아, 기, 기억나…… 메모리 안에 있는 이거, 몰라. 나랑 아빠가 벌거벗고 껴안고 있어? 몇 번이나 안고 계속해왔는데 왜 잊고 있었지? 아, 내 뇌가 멈춰 있었다고 적혀 있네. 그럼 이 야한 영상은…… 그렇구나, 컴퓨터가 기록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건 생체 뇌가 움직일 때의 일들뿐이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엄마 대신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엄마도 개조됐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아빠는 외롭겠지. 야한 짓 하고 싶겠지. 나는 특별하니까, 아빠의 특별한 상대. 나만이 특별한 사이보그.
“이봐, 딸내미 질이 망가져 있잖아.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진짜로 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저씨는 나를 더 분해해서 소모된 부품을 갈아 끼우거나 오일을 쳐주었다. 가랑이 쪽도 분리되어 새것으로 교체됐다. 기분 좋았다. 작업이 끝나고 다시 조립되자 나는 혼자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놀라고 있었지만 이유는 모르겠다.
“코유키, 기분은 어떠니.”
“아, 아빠.”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됐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아빠한테 버려지는 게 아니라 질리는 것이었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아빠를, 아빠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있지, 아까보다 기계 몸이 싫지 않게 됐어. 나 이상한 걸까?”
“이상한 게 아니야.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돼. 보통 피험자라면 휴먼 에뮬레이트를 끄는 순간 그냥 로봇처럼 되어버리는데, 코유키 넌 의식이 있잖니.”
“휴먼…… 의식?”
“사람을 끝까지 기계로 개조하려고 하면 처음부터 만든 로봇이랑 차이가 없어진단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있으니까, 개조됐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순에 짓눌려 망가지거나 스스로 자아를 버리는 사고가 일어나지. 하지만 코유키 넌 멀쩡하잖니?”
“멀쩡하긴 한데, 그래도 내가 개조된 건 고등학생 때라면서. 왜 지금까지 멀쩡했던 거야?”
“방금 전까지는 코유키 네가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도록 컴퓨터가 몸의 감각을 속이는 장치가 들어있었어. 그걸 다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여겨졌지. 하지만 코유키 너라면 기계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사이보그는 자신의 의지로 기능을 100퍼센트 끌어낼 수 있게 되는 거지. 넌 그걸 성공한 거야.”
“그렇구나.”
확실히 지금은 내 뇌가 컴퓨터이기도 하고 몸이 기계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싶다. 나는 아빠의 특별한 존재라면 상관없다. 아, 그래도 역시 인간이었을 때 좋아했던 것들도 하고 싶을지도.
“저기 아빠, 나 아빠의 특별한 존재가 된 거야?”
“전부터 특별했단다. 지금은 훨씬 더 특별해졌지만.”
다행이다, 질리지 않았어. 안심하고 나니 냉정해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기억난다. 나는 이 방에서 개조됐다. 아하하, 어쩌면 학교 안 가도 되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기뻐지기 시작했다.
다만 아빠와 나를 쳐다보는 가운 입은 아저씨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둘이 화해했는데 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여자애를 몰래 개조하는 게 좋습니다』……의 작가, 로쿠조 키요아키가 어린아이를 사이보그로 개조해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내용입니다.
기계화물은 맨날 가슴 큰 여자들만 소재로 쓰이길래, 어린애가 기계가 되는 작품도 좀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전작, 전전작과 마찬가지로 『가라쿠리 카라스』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모니터에 비치는 건 작업복 차림으로 공구를 든 코나미 료슈, 그리고 그놈한테 피부가 벗겨져 내부 기계가 훤히 드러난 코미야마 카즈코다. 카메라가 움직이자 코나미를 돕는 조수들과 의자에 묶인 여자애의 모습도 들어온다. 소녀는 코미야마 카즈코의 딸인 치아키. 제 엄마가 해체되는 꼴을 보여주려고 이 자리에 끌고 왔다.
기계 덩어리가 된 카즈코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치아키를 낳을 때만 해도 그녀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임신 중에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젊은 엄마는 내 눈에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다. 동정하는 척하며 병원비를 대주고 집을 마련해 준 뒤, 산후 조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본인도 모르게 기계로 개조해 버렸다.
몸이 개조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몇 년이나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고 살아온 기계는 어떤 생활을 할까. 갑자기 기계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부품이 뽑혀 나갈 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전뇌를 타고 흐르는 노이즈를 느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난 그걸 알고 싶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을 기계로 개조해 왔다. 인식표가 붙은 채 뿔뿔이 흩어진 부품들을 보고 있으면 즐거운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저 부품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분해된 기계 인형들의 말로다. 카즈코도, 그리고 딸인 치아키도 결국 저 속에 합류하게 될 운명이다.
카즈코의 전뇌가 멈추지 않도록 외부 기기에 연결해 전력을 계속 공급하고 있다. 마지막을 천천히 즐기기 위해 내가 손을 써둔 것이다. 울고 있는 딸에게 뭐라고 말을 걸려는 것 같지만, 정작 딸내미는 울기만 하느라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다…… 여기서 영상이 끊기고 오른쪽 모니터가 밝아졌다. 더 계속했다간 스트레스 때문에 기능에 지장이 생길 거라는 신호다.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며 내가 나타나 "사실 딸인 치아키도 기계로 개조됐다"고 둘에게 알려주고, 증거를 보여주며 반응을 한껏 즐긴 뒤 카즈코의 전뇌를 태워버리는 즐거운 장면을 촬영 중이었는데, AI가 거부해 버렸다.
내 눈앞에 있는 모니터는 코미야마 카즈코의 딸, 코미야마 치아키의 전뇌와 생체 뇌의 움직임을 이미지 영상으로 바꿔 보여준다. 왼쪽에는 뇌가 그린 영상이, 오른쪽에는 그녀의 시야가 비친다. 기록 영상에서 해방된 소녀는 뇌 속이 멍한 채로 아침 해를 바라보며 방금 본 영상이 꿈이었다고 착각한다.
나는 헤드셋을 통해 코나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어젯밤부터 치아키의 아빠 역할로 코미야마의 집에 머물고 있다.
"아가씨가 깨어나셨다. 학교 잘 보내드려야지, 아빠?"
"흥."
코나미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그가 이런 일에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건 알지만, 난 직접 관여하는 것보다 구경하는 쪽이 더 좋다. 푼돈 좀 쥐여주고 그에게 아빠 역할을 맡겼다. 모니터에 코나미가 비친다.
"치아키, 일어났니?"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코미야마 치아키는 아빠와 사별하고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지만…… 꿈속에서 엄마를 분해하던 코나미를 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그렇게 기억을 주무르고 아빠를 아주 좋아하게끔 인격을 조정해 뒀으니까. 억지로 기억을 조작하고 인스톨을 해도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을 만큼 인격 유지 장치는 진보해 있었다.
"치아키 말이야, 무서운 꿈 꿨어."
기록 영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억으로서 뇌 속에 남은 모양이다.
"치아키한테 엄마가 있는데, 근데 엄마가 로봇이라서 막 뿔뿔이 흩어지고, 그래서 치아키 막 울었어."
아빠라고 굳게 믿고 있는 코나미에게 치아키가 열심히 설명한다. 일곱 살 소녀가 말하는 건 꿈이라고 믿게 만든 현실이다. 본인 눈으로 본 기록도 있지만, 쓸데없는 걸 기억해 내면 귀찮아지니까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소녀의 뇌 속에서 재생시켰다.
억지스러운 기억 조작으로 소녀의 기억이 얼마나 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몸에 일어난 일을 알았을 때의 반응은 꼭 보고 싶다.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 꾸민 일이다. 코미야마 일가는 6년 전부터 오로지 내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만 존재해 왔다.
그녀들을 고른 건 엄마인 카즈코가 미인이었고, 귀찮은 인간관계가 없었으며, 남편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루기 쉬웠으니까.
처음 엄마를 개조했을 때 난 만족했다. 그래서 남은 6년 동안은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는 '딸을 키우기만 하는 기계'로 관리되는 카즈코를 즐겼다. 치아키를 개조한 건 1년 전, 그 후로는 모녀가 나란히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기계'인 채로 일상생활을 보내게 했다.
난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기계가 좋다. 사이보그를 인간으로 생활하게 하는 건 리스크가 크지만, 그래도 난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그녀들을 보는 게 좋았다.
엄마를 부품 단위로 분해해 처분한 건 흔적을 지울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계기로 내 존재가, 내 능력이 알려진다면? 그걸 안 누군가가 나보다 강한 힘을 가졌고 나를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뻔하다, 내게 내일은 없다.
신기한 얘기지만 내게는 예지 능력이 있다. 자발적으로 예지할 수는 없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예지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에게 큰 이득이 되거나 큰 손해가 되는 일, 이 두 가지뿐이다. 살짝 베이거나 감기에 걸리는 정도의 일은 예지할 수 없다.
사이보그의 존재가 세상에 들통날 뻔하는 건 큰 손해니까 예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최근에 그게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작년 12월에 친딸을 개조했는데…… 딸애는 같은 반에 섞어둔 사이보그를 발견하고 스스로가 기계라는 걸 알아차렸다. 개조한 인간은 전부 감시하고 있었기에 대처는 쉬웠고 피해도 미미했다. 문제는 피해가 미미한 건 설령 미래의 위험으로 이어질지라도 내가 예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방치해 두면 작은 요소들이 쌓여 나를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인간 사회에 섞어둔 사이보그들을 회수하고 해체하고 있다.
그럼에도 치아키를 살려두는 건 내 즐거움을 위해서다. 리스크는 있지만 그만큼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거 참 무서웠겠구나. 자, 학교 갈 준비 하렴."
"네에—"
치아키의 개조는 예정에 없었지만, 당장 개조할 수 있는 소녀를 찾다 보니 그녀가 1순위 후보로 올라와서 기계화했다. 예전의 나라면 어린애한테는 관심 없다며 신경도 안 썼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조한 딸과 놀아주면서 개조된 아이가 보여주는 반응에 흥미가 생겼다.
데이터를 뽑고 싶다는 코나미를 위해 아이나 남자의 개조를 허가한 적도 있지만, 즐거움을 위해 쓰는 건 딸을 제외하면 치아키가 처음이다. 미인은 질릴 정도로 안아봤으니 좀 색다른 게 먹고 싶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가거라."
화면에서는 코나미가 소녀를 배웅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자기가 기계인 줄도 모르고, 사라진 엄마나 갑자기 나타난 생판 남인 남자에게 의문도 품지 않은 채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소녀를 보고 있자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 아이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 나한테는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소녀는 알지도 못하고 눈치채지도 못한다.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발상이 너무 어려서 이해를 못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신선하겠지.
◆◆◆
치아키의 시야에 초등학교 건물이 비친다. 그녀는 2학년. 교실 안의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옷차림을 보지 않으면 성별조차 알 수 없다. 그래도 1학년에 비하면 제법 의젓해 보이는 게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조금 더 자라면 건방져지겠지만……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다. 건방진 상대일수록 굴복시키는 맛이 있으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생각해 봐야지.
"안녕!"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치아키는 친구 치사쨩을 찾더니, 발견하자마자 책가방도 안 내려놓고 달려갔다. 난 치아키의 교우 관계는 조사하지 않았고 자료도 보지 않았다. 통성명도 하기 전에 이름을 아는 건 치아키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모니터에 '치사쨩, 어디'라고 표시됐기 때문이다.
"치아키쨩 안녕!"
소녀들은 어제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을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나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치아키의 뇌에 '아키라군'이라고 입력해 소녀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치사쨩, 책가방 사물함에 넣고 올게."
치아키는 치사쨩과 헤어져 아키라 소년을 찾기 시작했다. 본명은 야무기 아키라, 이번 타깃이기도 하다. 동네 농가의 셋째 아들로 공부는 별로지만 운동을 잘해서 반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다행히 치아키는 아키라와 안면이 있었고 호감도 품고 있었다.
"아키라군, 안녕."
"응, 안녕!"
그가 물망에 오른 건 기억을 지우기 전의 치아키에게 "너는 사이보그다"라고 가르쳐줬을 때다. 자신이 사이보그라는 걸 알고 소녀는 야무기 아키라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모니터에 뜬 아키라의 이름을 본 나는 흥미 위주로 소녀의 기억을 검색했다.
소녀는 동경하는 '아키라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TV에서 본 사이보그 히어로나 히로인을 동경한다는 것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는 것도 말이다. 제 몸이 기계라면 그에게 다가가기 꺼려질 거라 생각했을 테지.
아키라를 연상시키자 소녀의 생체 뇌는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눈으로 보는 아키라는 나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이 느껴지는, 어른들이 좋아할 법한 아이였다. 이목구비도 반듯하고 인사성도 밝다.
아이들은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어서인지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동급생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쉽다. 서로 시기하게 될 때까지 아키라에 대한 평가는 흔들리지 않겠지. 게다가 운동까지 잘하니 동성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거다. 아이들은 공명심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운동회 같은 행사에서 자기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될 만한 애를 끌어들이려 하니까. 그런 식으로 사람이 모이는 아키라를 치아키가 동경하는 것도 납득이 가는 얘기다.
치아키와 아키라가 마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치아키의 전뇌에 '내 몸은 기계로 되어 있어, 아키라군한테 보여주면 분명 엄청 좋아할 거야'라고 때려 박았다. 치아키는 갑자기 전송된 데이터에 당황하며 무표정해진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니터 속에서는 생체 뇌가 프로그램에 간섭받아 굴절되고 다른 형태로 변해간다. 언제 봐도 짜릿한 영상이다.
"치아키쨩, 왜 그래?"
아키라가 걱정하며 소녀의 얼굴을 살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치아키의 전뇌는 새로 주입된 의식을 제 것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모니터의 노이즈도 사라졌다.
"저, 저기 말이야. 비밀 얘기 해도 돼?"
"응, 좋아!"
아키라는 치아키의 제안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금세 걱정을 잊고 얼굴을 밝혔다. 소녀가 이끄는 대로 동급생이 없는 교실 구석으로 이동한다.
"뭔데? 뭔데?"
비밀 얘기에 잔뜩 흥미가 생긴 아키라가 치아키를 재촉했다. 치아키 역시 그가 관심을 가져주는 게 기쁜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모니터 속에서는 아키라라는 추상적인 인영을 따뜻한 색깔이 감싸고 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지?"
"응."
"치아키 몸 말이야, 사실 기계야."
소녀는 소년의 손목을 잡아 제 배에 갖다 댔다. 치아키의 복부는 지금 기계가 훤히 드러난 상태다. 열 배출과 유지 보수를 겸해서 그녀들의 피부는 복부나 관절 등에 덮개가 달려 있어 쉽게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와, 이거…… 진짜야?"
아키라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옷 위로 치아키의 내부를 이리저리 만져댄다.
"진짜야. 여기서 보여주면 들키니까 만져보기만 하는 거야, 알았지?"
나는 재빨리 '아키라군을 집으로 초대해서 기계 몸을 보여주고 싶다'고 입력했다.
"아키라군,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놀래? 전부 다 보여줄게."
"정말! 보고 싶어, 갈래!"
소년은 눈을 반짝이다가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더 이상 둘이서만 얘기하다간 누구한테 들킬지도 모른다고 느낀 모양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오늘 꼭 갈게, 약속이야."
"응, 약속."
둘은 서로 거리를 둔다. 비밀 얘기를 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만족한 나는 코나미에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준비에 들어가게 했다.
아키라의 손을 잡고 치아키가 코나미가 기다리는 코미야마 저택으로 돌아왔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치아키의 목소리를 듣고 대기하던 코나미가 얼굴을 내민다.
"치아키, 친구니?"
코나미를 아빠라고 믿고 있을 텐데, 치아키는 코나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어, 아빠…… 어라?"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다. 어려도 촉은 좀 있는 모양이지. 필요한 것 외에는 떠올리지 못하게 프로그램해 뒀을 텐데, 방벽을 뚫고 이전 기억을 엿본 모양이다.
반면 코나미는 침착하게 연기를 이어갔다. 다정하게, 인공지능에 기억 수정을 촉구하듯 말을 건다.
"왜 그러니, 오늘 아침 꿈이라도 생각난 거야? 아니면 아빠가 곤란해할 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치아키는 표정이 굳어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내면을 비추는 모니터는 노이즈로 거칠게 일렁인다. 생체 뇌가 프로그램의 강제 수정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노이즈가 가라앉고 마음은 다시 아키라에 대한 생각과 제 기계 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 친구 이름이…… 그러니까, 이름이 뭐니?"
아키라 소년은 익숙한 듯 씩씩하게 대답했다.
"야무기 아키라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치아키쨩네 아저씨."
"그래, 반갑구나. 역시 2학년이라 그런지 인사를 참 잘하네. 편히 쉬다 가렴."
"네!"
"치아키, 방에 가기 전에 손부터 씻어야지."
"네에—"
치아키는 아키라의 손을 끌고 세면대로 향했다. 나는 코나미에게 대기하라고 지시하고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손을 씻은 둘은 치아키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아키라를 침대에 앉힌다. 여자애 방이라 조금 긴장했는지 아키라는 두리번거렸지만, 치아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윗옷을 벗어 복부의 기계를 노출시켰다. 아키라의 눈이 기계 내장에 못 박혔다.
"우와, 진짜 기계네."
"에헤헤—"
기계 몸을 보여주고 싶다는 명령이 입력된 탓인지 치아키는 내장을 보여주는 게 즐거워 보인다. 나는 '커버를 벗기면 팔다리 관절도 보여줄 수 있다'고 입력한다.
"더 있어!"
치아키는 치마와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됐다. 아키라 소년은 아직 이성보다 호기심이 앞서는지 동갑내기 여자애의 나체를 흥미진진하게 쳐다본다.
동급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아키는 위장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위장은 가동 부위의 유지 보수와 열 배출을 고려해 관절과 복부는 쉽게 해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바람 빠지는 소리, 모터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녀의 어깨와 가랑이 사이의 기계가 드러난다. 손목과 발목은 기계가 직접 보이진 않지만 이음새를 가리던 피부가 벗겨져 데생 인형처럼 마디가 도드라진 형태가 드러났다.
"로봇 같아."
"그치?"
"수술할 때 안 무서웠어?"
"수술?"
모니터에 격렬한 노이즈가 달렸다. 사회에 녹아드는 데 방해되는 기억이라 개조 수술 기억은 백업만 해두고 지워버렸다. 있어야 할 기억이 없다, 떠오르지 않는다. 제 몸이 기계로 변했다는 걸 자각시킨 상태에서 언제 기계가 됐는지, 왜 기계가 됐는지 모르게 만들면 이렇게 된다. 생체 뇌와 전뇌가 동시에 혼란에 빠져 에러를 뿜어낸다. 흔한 오작동이지만 난 제 에러에 당황하는 기계를 보는 걸 좋아해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이럴 때는 간단한 가짜 기억을 주입하면 생체 뇌는 착각하고 전뇌는 주입된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수정한다. 나는 치아키에게 '잘 기억 안 나, 무서웠어, 근데 기분 좋았어'라고 입력했다. 프로그램이 기억 수정을 시작하고 무표정한 채 온몸을 떠는 소녀를 보며 아키라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소년은 치아키의 오작동이 제 질문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키라가 당황하는 사이 치아키의 노이즈가 멎고 몸의 떨림도 멈췄다.
"저기 말이야, 기분 좋았던 건 기억나는데…… 다른 건 다 잊어버렸어."
감정을 표시하는 모니터에는 혼란스러운 사고를 바로잡으려는 프로그램의 개입이 비쳤다. 꽤나 강압적인 처리다. 부하가 커진 탓에 치아키의 목소리도 움직임도 느려졌다. 딱 내가 좋아하는 광경이다. 아키라 소년은 치아키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평소처럼 대하려 애쓴다.
"그렇구나. 저기, 치아키쨩은 힘세?"
"히, 힘?"
쐐기를 박는 질문에 소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정지했다. 모니터에는 질문에 의문을 품은 소녀의 사고를 프로그램의 사슬이 꽁꽁 묶어 봉인하는 모습이 비친다.
이번 질문은 아까와 달리 지운 기억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다. 기계 장치 몸이 힘이 센지 약한지 따위 가르쳐준 적도 없고 프로그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뇌도 전뇌도 그걸 모르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걸 깨닫고 앞뒤를 맞추려 필사적으로 정보를 긁어모은다.
나는 '강하지만 지금은 억제되어 있다'고 입력했다. 실마리를 잡은 프로그램은 그걸 기초로 정보를 수정해 뇌가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코나미를 아빠로 설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수정은 생체 뇌에 강한 부담을 주며 반복하면 망가져 버린다.
"음, 힘은 센데 말이야, 평소에는 쓰면 안 된다고 들었어."
"그렇구나, 비밀이었네."
아키라 소년은 치아키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납득했는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어지는 질문들에 나는 치아키의 전뇌에 답변을 입력하며 대응했다. 그 사이에서 농락당하는 치아키는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생체 뇌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생체 뇌의 부하가 한계치를 넘지는 않았다.
난 생생한 부품이 망가지는 꼴을 보는 게 좋다. 그래서 일부러 반복해서 수정을 가하고 있다. 이미 인간성에 지장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지만, 어린애는 제 모순을 깨달을 만큼 머리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사고 레벨을 낮추면 프로그램 수정에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재미있는 발견이다.
"울퉁불퉁해, 강해 보여."
대충 궁금증이 풀린 아키라에게 치아키의 노출된 기계를 만져보라고 부추겼다. 치아키에게는 미리 '기계 부품을 생생한 인간이 만졌을 때 성적 쾌락을 느끼도록' 프로그램해 뒀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
"그만둘까?"
기계라고는 해도 이성의 몸, 그것도 알몸이다. 아키라는 주저하며 손을 떼려 했지만 그 바람에 치아키의 관절과 피부 틈새로 새끼손가락이 쑥 들어갔다.
"으응!"
소녀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지만 성적 쾌락은 전뇌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치아키의 생체 뇌와 전뇌는 융합되어 있어 신호를 받는 즉시 쾌락으로 변환할 수 있다. 전뇌가 미지의 쾌락을 안전하고 환영해야 할 것이라고 속삭이면 제 진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만두지 마…… 저기, 있잖아, 정말, 기분 좋아."
소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숨은 거칠어지며 몸이 떨린다. 그런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뒀으니까.
"그, 그럼."
아이이긴 해도 아키라 역시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모양이다. 치아키의 상태를 보고 아직 만지지 않은 고관절 노출 부위로 손을 뻗어 만진다.
"아윽! 거기, 뭔가 뜨거워."
"기분 좋구나, 좋겠다."
소년의 손은 사양을 잊고 소녀의 기계 부품에 수많은 지문을 남긴다. 호기심이 채워질수록 소년의 관심은 기계 몸에서 쾌락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강압적인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소년이 기계 몸을 원하게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코나미를 호출한다.
"코나미, 모니터링하고 있나?"
"연산 장치 가동률부터 촬영 현장까지 전부 다."
"저기 말이야, 테크닉 좋은 처녀한테 관심 없나?"
"없어."
"난 있어. 코나미, 치아키를 원격 조종해서 창녀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나?"
코나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생체 뇌 대미지를 무시한다면 가능해."
나는 수중에 있는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AI'를 기동시켜 치아키를 원격 조종하게 했다.
"하윽, 아…… 아, 키라군. 더 기분 좋은 거, 알고 있어."
세세한 부분은 코나미에게 조작하게 해서 아이들끼리의 풋풋한 접촉을 음란한 행위로 발전시켰다. 다행히 아키라 소년은 그걸 받아들였다.
나는 어린 치아키가 동갑내기 아키라에게 다정하게 속삭이거나 격려하고, 성기를 자극하는 모습을 즐겼다. 소녀는 소년과의 행위에 황홀한 표정을 짓지만 본인의 의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모니터 위에는 격렬한 노이즈가 달리고 프로그램이 사고를 수정하고 덮어쓸 때마다 생체 뇌가 절규한다.
둘의 행위는 본 게임에 이르렀고 소년은 시키는 대로 환희 섞인 비명을 내질렀으며, 치아키는 생체 뇌의 과도한 부하 탓에 발열이 일어나 온몸의 배기구를 열고 김을 내뿜고 있다. 큰 부하가 AI에게 고통을 감지하게 했는지 치아키는 정밀 기계가 드러난 제 배를 왼손으로 움켜쥐며 손톱을 세웠다.
억지로 밀어 넣은 부품들이 열 배출을 방해해 열폭주를 일으키고 몇몇 칩과 콘덴서가 터져 나간다. 고장 난 곳이 식사나 호흡, 심장 소리를 재현하는 부분이었던 건 다행이었다. 성행위를 시키는 데는 지장 없는 부분이니까. 자기가 기계라는 의심을 품지 않도록 치아키가 제 고장을 눈치채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만, 아키라 소년이 행위에 정신이 팔려 고장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형편이 좋았다. 코나미는 싫어하겠지만 난 고장 난 몸으로 이성을 갈구하는 모습에 흥분한다.
성기 모양으로만 여성성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소녀가 망가지면서도 이성을 원하고, 동갑내기 소년이 그에 응하는 모습은 고장으로 인해 더 격렬해진 생체 뇌의 혼란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했다. 어린아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적은 없지만 배덕감이 뒤를 받쳐준 덕분인지 지금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가피, 아, 아. 아키라, 군…… 기분, 좋았어?"
알몸으로 쓰러진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행위를 계속하게 한 탓인지 소녀는 고장 났고 소년은 완전히 녹초가 됐다. 본 게임이 남았다는 것도 잊고 너무 즐겨버렸네.
"기, 기뻐 삐익…… 저기, 아키라군도 기계 몸이 되자."
"응."
작게 대답하고 아키라는 눈을 감아버렸다. 잠든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치아키를 정지시키고 코나미에게 둘을 옮기라고 지시한다.
모니터 전원을 끄고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간다. 어두운 방에 너무 오래 처박혀 있었다. 몸 좀 좀 펴야지. 돌아올 때쯤이면 코나미의 조수들이 필요한 준비를 끝내놨을 거다.
"파우, 뉴우우우우우우!"
수술대 위에서 아키라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친다. 괴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어린 소년의 뇌에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전극을 꽂아 쾌락과 행복감을 계속 주입하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치아키를 개조했을 때도 그랬지만 쾌락의 의미도 행복의 의미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걸 쓰면 혼란스러워할 뿐 별로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래도 마취제로서는 충분히 쓸만하다는 걸 알고 있다.
흔히 오해하곤 하지만 마취는 고통을 없애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무디게 만들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뿐이다.
뇌를 훤히 드러내도, 살아있는 팔다리와 내장을 도려내 뺏어가도, 기계에 연결되어 '뇌 그 자체를 사고 패턴째로 분석'당해도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뇌를 손상시키지 않고 개조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실험으로 얻어낸 성과다.
본래 인간이 느끼지 못할 감각에 뇌가 농락당하고 몸이 반응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괴로워 보이는 게 단점이지만…… 내가 이렇게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장점이라고 해도 좋겠지.
이번에는 소년을 '로봇처럼 보이는' 사이보그로 개조하고 있다. 평소라면 인간성 유지를 돕기 위해 전신을 사이보그용 소재로 재활용하겠지만 이번에는 뇌나 뼈, 신경, 피, 장기 같은 인간의 인격 형성에 영향이 있을 법한 부분 외에는 다 버리고 있다.
인간이었을 때의 세포를 살아있는 동안 탄소와 미세 금속으로 분해해 재활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인간 유래 성분을 전신에 쓰는 기존 사이보그와 달리 기계 몸은 미리 준비한 것을 쓴다. 개조는 머리 부분에만 행하고 소년의 몸이었던 소재는 블랙박스로 밀폐할 연산 장치 부품으로 가공해 뇌와 몸의 제어 장치에 조립해 넣는다.
미리 준비한 몸은 여성형이다. 내가 남자 개조를 꺼린 탓에 생산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사정도 있지만 이번에는 소년도 장난감으로 쓸 예정이다. 내 상대가 될 가능성을 고려해 여성형으로 만들었다. 치아키와 아키라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뒀다.
필요한 부분을 다 떼어낸 소년은 비명을 지를 수도, 얼굴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뇌 상태를 표시하는 계측기의 격렬한 움직임만 없다면 시체와 다를 바 없을 거다. 하지만 취급은 신중하게 한다. 뇌 개조에 실패하면 진짜 그냥 시체가 되어버리니까.
뇌의 표면적인 인간성에 관련된 부분은 남기고 감각이나 몸의 기능에 관계된 부분은 전부 제거해 기계로 바꾼다. 남은 뇌도 구조는 그대로 두되 세포 자체는 제거하기 위해 나노머신으로 대체시킨다. 이만큼이나 해놓고도 개조 후에 기억을 이어받아 이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게 컴퓨터로 쉽게 재현될 만큼 표면적인 건지, 아니면 인격을 만들어내는 인간성이라는 게 상상 이상으로 견고한 건지. 견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정답은 모른다.
"다, 다 끝난 거야?"
개조된 뇌와 기계 몸의 연결이 끝나고 아키라가 의식을 되찾았다. 집도한 코나미가 소년의 질문에 대답한다.
"그래. 잘 참았구나, 착한 아이다."
"성공한 거야?"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지. 걱정 마라,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실패할 리가 없잖니."
다정하게 말하는 코나미의 지시에 따라 소년이었던 것은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혀 나간다. 새 몸은 소년 시절의 모습과 닮게 만들었지만 알맹이는 딴판이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다.
코나미는 조정 중인 아키라를 아주 다정하고 정중하게 대했다. 데이터를 뽑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본심은 다른 것 같다. 그놈한테는 형 부부에게서 맡아 기르는 조카가 있는데 나이가 아키라 정도였을 거다. 기술을 위해서라면 정도 버릴 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인간미가 있네.
난 아키라가 인간이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운동 능력을 갖췄다는 보고를 받고 내 개인실로 불러들였다. 같이 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의 포석을 깔아두기 위해서다.
"왜 고추가 없어?"
전직 소년은 사령관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에게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던진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부품을 준비 못 했단다. 시간을 좀 주면 마련해 주마, 어떠니?"
"응, 고추 없으면 여자애 같잖아."
아키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아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삼엄하고 기계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어 아키라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키라군, 나랑 똑같아졌다!"
"저기, 치아키쨩. 우리 싸우는 거지? 고추가 있어야 더 센 거 아닐까?"
"그 점 말인데."
나는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분간 싸울 일은 없단다. 너희 둘에게는 신병기 테스트를 맡기기로 했거든. 밖으로 나갈 일 없는 지루한 임무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어떠니, 남자의 몸으로 되돌릴지는 테스트가 끝난 다음에 생각하는 게."
"그렇구나, 나중에 해도 되는 거네."
아키라는 납득한 듯 제 팔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그래, 그리고…… 기계 몸은 아주 기분 좋아질 수 있단다. 지루함을 달래기엔 딱이지. 자, 치아키와 아키라에게 첫 임무다. 새 몸의 테스트도 겸해서 기분 좋아지는 기능을 시험해 보고 오렴. 치아키는 아키라에게 방법을 가르쳐주도록."
"네에—!"
"네에—!"
아키라와 치아키는 서로 껴안으며 좋아했다. 치아키는 그렇게 개조했으니 당연하지만 아키라 소년이 쾌락에 거부감이 없는 건 반가운 일이다.
"자, 그렇게 정했으면 방으로 가거라. 사령관은 다른 업무로 바쁘니까 부를 때까지 사령실에는 오지 말고."
지시를 덧붙여 둘을 퇴실시켰다. 모니터에는 곧바로 서로의 기계 몸을 탐하듯 훑어보고, 만지고, 케이블로 서로를 연결해 쾌락에 빠져드는 어린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치아키가 커버를 벗겨 유혹하고 아키라는 소녀의 내부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손가락 끝 전극에서 조금 강한 전류를 흘려보낸다. 장소를 바꾸고 입장을 바꿔가며 둘은 서로의 몸에 전류를 흘리거나 케이블로 연결해 감각을 공유하며 환희 섞인 신음을 흘린다. 그들은 유사 성기뿐만 아니라 특정 상대에게 받는 전기 자극을 전부 성적 쾌락으로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쾌락에 취했는지 둘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진다. 너무 강한 쾌락에 생체 뇌의 의식이 끊기고 전뇌로 전환된 모양이다. 그런데도 둘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전극 출력이 강해지며 서로의 내부 구조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이 튀어도 애무는 멈추지 않는다. AI로 재현된 본능이 더 강한 쾌락을 갈구하는 것이리라.
쾌락의 의미조차 모르는 유아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금속 부품을 부딪치고 있다. 어른은 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무의미한 성관계. 참 보기 좋은 광경이다.
어린 두 아이가 제 몸이 로봇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기계화됐는데도 슬퍼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내게는 매력적이다.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없고, 몸은 변하지 않으며,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기억을 지워버린다. 그런 처지라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자기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의문조차 품지 않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행동은 신선해서 나를 흥분시켰다.
그렇긴 해도 모처럼의 즐거움은 천천히 맛보고 싶다. 코나미가 대폭 소형화된 바디 데이터를 탐내고 있었으니 둘은 당분간 코나미에게 맡겨두자. 요전번 치아키의 재개조로 내 성욕은 충분히 채워졌다. 코나미에게도 먹잇감을 좀 던져주는 게 좋겠지.
"싫어, 싫어어!"
인간의 흔적을 강하게 남긴 채 사이보그가 된 치아키는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두 번째 개조가 필요해졌다. 난 문득 생각난 김에 코나미에게 치아키의 전뇌를 꺼내지 않은 채로 개조하라고 지시했다. 난 치아키의 정면에 서서 소녀의 부드러운 뺨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개조됐을 때의 일, 생각났나 보네. 후후후, 표정 참 좋다."
"엄마, 엄마는?"
"네 눈앞에서 분해됐잖니? 네 엄마도 기계로 개조됐었단다. 하지만 전부 기계인 건 아니었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남아 있었지. 물론 너도 그렇고."
코나미는 치아키의 몸을 인간 유래 소재를 쓰지 않는 로봇용으로 교체하기 위해 어린 소녀의 목 윗부분을 떼어냈다. 고정된 소녀의 얼굴에 난 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새로운 몸, 새로운 전뇌. 두근거리지 않니?"
"싫어, 돌려줘어!"
머리 커버가 벗겨지고 생체 뇌와 전뇌가 노출됐다.
"왜 그러니? 네 엄마도 똑같은 몸이었잖니."
"똑, 똑같다고?"
"그래. 분해할 수 있고, 교체할 수 있고, 전기로 움직이지. 프로그램을 준비하면 모르는 것도 할 수 있게 된단다. 엄마랑 똑같은데 왜 딸인 네가 이상하게 여기는 거니?"
생체 뇌에 수많은 기계가 연결되고 세포가 나노머신으로 대체되어 간다.
"나, 나…… 엄마랑? 모, 몰라, 그런 거 안 가르쳐줬어!"
"어쩔 수 없네. 그럼 지금부터 계속 내 눈을 보렴, 얼굴이라도 좋아. 만약 그렇게 하면 도와줄게."
"정말?"
"그래, 정말이다."
목만 남은 소녀는 내 눈을 보았다. 공포로 탁해진 눈, 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노머신화가 끝나고 인간의 흔적이 될 수 있는 기억 소거가 시작됐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지만 눈은 떼지 않는다.
생체 뇌에서 기억을 꺼내는 구조로 된 전뇌를 뜯어고쳐 컴퓨터만으로 기억과 감정을 재현할 수 있게 바꾼다. 소녀는 표정을 잃었지만 눈은 떼지 않는다.
전뇌에서 부품이 빠지고 소녀의 눈이 초점을 잃는다. 그래도 소녀는 눈을 떼지 않는다.
새 부품에 대응하도록 새로운 회로를 형성한다. 전기가 흐르는 채로 전뇌 부품을 끼웠다 뺐다 하는데도 소녀는 눈을 떼지 않는다.
사랑스러워진 나는 소녀와 입을 맞췄다. 보습액 공급을 끊었기에 인간과 구별되지 않던 피부는 탄력을 잃고 플라스틱 질감이 느껴진다. 혓바닥 감촉은 인형 그 자체지만 미세하게 움직이는 혀의 놀림에는 인간미가 느껴졌다.
새 부품들이 계속해서 추가된다. 심한 에러 탓인지 눈 속의 렌즈 조리개가 격렬하게 움직인다. 그런데도 소녀의 눈은 내 얼굴을 쫓고 있었다.
조립이 끝나고 동작 테스트가 진행된다. 결함이 발견되어 부품을 교체하고 다시 테스트하는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전뇌는 사고 내용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지만 눈은 내 얼굴을 향해 있다.
겨우 안정되어 프로그램 인스톨에 들어간다. 소녀의 눈 속에서 전기가 번쩍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은 움직이지 않지만 난 얼굴을 맞댄 채 그대로 있었다.
제어 프로그램이 맞물리지 않아 몇 번이나 불꽃이 튀었다. 위험하다며 코나미가 나를 떼어놓았다. 놀랍게도 소녀의 눈만은 나를 쫓고 있었다.
드디어 안정되어 새로운 몸과의 매칭 작업에 들어간다. 처리 지연이 보이지만 소녀의 눈은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약속대로 작업이 끝날 때까지 소녀는 내 얼굴을 계속 지켜봤다. 정말 해낼 줄은 몰랐다. 재기동을 마친 소녀에게 내가 말을 건다.
"눈을 떼지 않았구나."
"네."
"그럼 널 도와주마. 뭘 원하니?"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라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움받고 싶지 않다면 왜 눈을 떼지 않았니?"
"당신의 눈을 보고 있는 동안에만 기억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끊기지 않았다고?"
"저는 두 번째 개조를 받았을 때 불필요한 기억을 삭제당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마주 보고 있던 동안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저는 개조 전의 저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흥미롭네. 코나미도 동감인지 소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헤에, 그런 일도 일어나는군. 그럼 넌 자기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네?"
"아니요, 저는 기계입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고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알려고 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군. 내 감각으로는 모순된 것 같지만 네 안에서 납득하고 있다면 상관없어. 그게 더 인간다워서 좋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투가 상당히 어른스럽네. 왜 그럴까?"
"재현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인간이었을 때의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제 사고를 언어 회로가 수신해 말로 변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넌 의지를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프로그램되지 않는 한 기계가 자신을 주관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
"의지를 가진다는 말의 의미는 모르겠습니다. 제 사고 회로는 개조 전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부 디지털 데이터로 대체되었습니다. 지워졌어야 할 개조 중의 기억 때문에 거동이 어지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후후후,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만들어졌어…… 너한테 보답을 하고 싶네. 뭐 바라는 거라도 있니?"
"저는 아키라군과 함께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이기를 원합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결론보다 인간의 명령을 우선하고 싶다고 합니다. 또한 지워지지 않고 남은 기억이 아키라군과 함께 있고 싶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 소망의 전, 부……"
말을 마치자 소녀는 재기동했고 내가 알던 일곱 살의 치아키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