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 스카우트라고요?”
학교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웬 새빨간 코트 차림의 노인이 말을 걸어오자, 야마시나 유키코는 대놓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 그렇다니까. 너, 옛날부터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어 했잖니. 매년 소원 빌 때마다 그렇게 적어냈던 것도 다 알고 있지.”
“어, 어떻게 그걸…!”
유키코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할애비가 진짜 산타니까 아는 게지. 벌써 300년이나 이 일을 해왔단다. 그러다 가끔 이렇게 싹수가 보이는 애들을 스카우트하곤 하지.”
“300년요?”
“암, 그렇고말고. 산타클로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영원히 늙지 않거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할아버지 같은데요?”
“허허허, 그건 내가 정식 산타가 되기까지 젊을 때부터 수련을 아주 오래 거쳤기 때문이란다. 다 늙어서야 겨우 산타가 됐거든.”
“그럼 저도 수련하다가 할머니가 돼서야 산타가 되는 거예요?”
“에이, 그러면 누가 산타를 하겠니. 요즘은 하이테크 기술 덕분에 단기간에 산타가 될 수 있단다. 요컨대, 지금 산타가 되면 그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지.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느냐?”
“그치만……”
“산타가 되는 게 꿈이었다며. 뭐, 당장 믿기 힘들 테니 일단 견학부터 한번 해보련?”
“음, 견학 정도라면 뭐….”
“좋아, 결정됐구나! 자, 이 초공간 썰매에 타렴. 옛날 루돌프랑은 차원이 다르단다. 산타 기지까지 눈 깜짝할 새에 날아갈 테니.”
눈앞의 공기가 일렁이더니, 투명한 돔이 달린 유선형 탈것이 스르르 나타났다.
“제가 생각하던 이미지랑은 좀 다르네요.”
“허허허, 아까 말했잖니. 우리 산타들도 다 하이테크화됐다고.”
두 사람을 태운 초공간 썰매는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북쪽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불빛들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고, 구름 위를 한참 날던 썰매는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숲 위에서 멈춰 섰다.
썰매는 천천히 하강해 숲속 낡은 저택의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자, 다 왔다.”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빨간 코트에 모자까지 산타 복장을 갖춰 입은 금발의 젊은 여성이 마중을 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마스터. 손님이신가요?”
여성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다음 산타 후보생이란다. 안내 좀 해주련.”
“알겠습니다. 저는 산타로이드 F04, 에리카라고 합니다.”
“산타…… 로이드요?”
“아아, 여기 직함 같은 거란다. 나는 산타 마스터, 얘는 산타로이드. 아가씨도 얘랑 같은 산타로이드가 될 텐데, 세세한 건 신경 쓰지 말거라.”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설명해 드릴게요. 마스터께 들으셨겠지만, 산타클로스가 되면 모습이 영원히 변하지 않아요. 전 30년 전, 19살 때 스카우트됐죠. 그 뒤로 계속 이 모습 그대로예요.”
“정말요?”
“못 믿는 것도 당연하죠. 이게 그 증거예요.”
에리카가 낡은 수첩 같은 걸 꺼내 보여주었다. 옛 서독에서 발행된 여권이었다. 사진 속 얼굴은 지금과 판박이인데, 생년월일을 보니 무려 50년 전이었다.
“독일 분이셨구나. 근데 일본어를 엄청 잘하시네요?”
“산타클로스는 전 세계를 누벼야 하니까 수많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해요. 예전엔 수련해서 익혔지만, 지금은 하이테크 기술로 순식간에 마스터할 수 있답니다.”
에리카는 그렇게 말하며 유키코를 저택 지하로 안내했다.
나무로 지어진 겉모습과는 딴판인 현대적인 지하실이 나타났다. 벽면 가득 디스플레이와 콘솔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기계 장치들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에는 투명한 캡슐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푹신한 소재의 침대가 깔려 있었다.
“그럼 저희 업무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자, 여기 들어가 보세요.”
“이건 뭐예요?”
“당신을 산타로이드로 만드는 장치예요. 인간의 몸으로는 산타클로스의 격무를 견딜 수 없거든요. 마스터께서 설명하셨을 텐데요.”
“알겠어요.”
유키코는 캡슐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캡슐 덮개가 닫히고 주변이 어둠에 잠기자, 낮은 기계음이 웅웅거리며 울려 퍼졌다.
기분 좋은 진동에 유키코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시오.”
유키코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동하시오.”
반복되는 목소리에 의식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산타로이드 F13. 기동하시오.”
유키코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라도 말하려고 입을 뗐다.
“아…… 산타로이드 F13 유키코. 기동했습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말에 유키코는 당황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자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를 숙여 몸을 확인하니, 캡슐에 들어갈 때 입었던 교복은 온데간데없고 에리카와 똑같은 새빨간 코트에 부츠 차림의 산타 복장이었다.
“기분은 좀 어때요? 제가 누군지 알아보겠나요?”
에리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본어가 아니라 독일어였는데도 완벽히 이해가 갔다.
“에리카 씨…… 산타로이드 F04 에리카로 인식.”
또다시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말에 유키코는 얼른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사이에 이름이나 경칭은 필요 없어요. F13.”
“이름이 필요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에리…… 네, F04.”
“도구에게 이름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요.”
“……도구?”
유키코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제 됐구나. F04, 기능 정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F04, 기능 정지합니다.”
에리카는 그 말을 끝으로 꼿꼿이 선 채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네, 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 애 손이나 얼굴을 한번 만져보렴.”
노인의 말에 유키코는 겁에 질린 채 조심스레 에리카의 피부에 손을 댔다.
피부는 플라스틱이나 도자기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마치 마네킹 인형 같았다.
“에리카 씨가 인형이 됐어…….”
유키코가 놀라 에리카의 몸을 밀치자, 에리카는 그 자세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유키코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자기 뺨을 감싸 쥐었다. 다행히 부드러운 감촉과 체온이 느껴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군.”
노인이 곁에서 무언가를 조작했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이 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유키코는 몸을 까딱할 수도 없게 되었다.
“자, 오른손만은 움직일 수 있게 해두마. 그걸로 네 얼굴이랑 왼손을 한번 만져보거라.”
유키코는 시키는 대로 오른손을 움직였다.
손가락 끝에 닿는 얼굴과 왼손은 에리카와 마찬가지로 차갑고 딱딱했다.
“이제 이해가 가느냐?”
노인이 다시 장치를 조작하자 유키코의 몸에 자유가 돌아왔다.
“말도 안 돼, 나도 인형이 된 거야……?”
유키코는 노인에게서 도망치듯 한 걸음, 또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꿈의 상징이었던 산타복이 갑자기 소름 끼치는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유키코는 코트를 벗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옷의 이음새는 빈틈없이 봉해져 있었고 단추는 그저 장식일 뿐 앞섶조차 열리지 않았다. 빨간 모자도 머리에 착 달라붙어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옷은 못 벗는다. 에리카가 말했잖니. 영원히 그 모습이라고. 그리고 너도 그걸 승낙했지. 안 그러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허허허. 산타클로스는 오랜 수련 대신 몸을 기계화해서 강력한 신체 능력을 얻고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단다. 그게 바로 너희 산타로이드지.”
“내 몸을 기계로 만들었다고요?! 그런 말은 한마디도 안 했잖아요!”
“물어본 질문에는 다 대답해줬단다. 넌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일 게야. 기계는 늙지 않으니까 말이다. 자, 그럼 그 몸에 대해 설명을 해주마. 우선 동력은…….”
“싫어, 싫어! 싫다고요!”
유키코는 노인의 말을 가로막고 무작정 뛰쳐나갔다.
저택 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눈이 깊게 쌓인 숲 입구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지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늙은 산타가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네 동력은 이 저택의 제너레이터에서 공급받고 있단다. 저택에서 멀어지면 서서히 움직일 수 없게 되니 주의하렴.”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유키코를 번쩍 들어 올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선물을 배달할 때는 썰매에서 동력이 공급되니 걱정 말거라.”
유키코는 넋이 나간 채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산타클로스가 이렇게 끔찍한 거였다니…….”
“난 나름대로 널 생각해서 개조해준 거란다. 산타 일을 잘 이해하는 너라면 납득해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실패인가.”
“에리카 씨는 자기를 도구라고 했어요. 나도 그냥 편리한 도구로 부려 먹으려는 거죠?”
유키코가 자포자기한 듯 내뱉었다.
“그건 아니란다. 그 애는 스스로 감정을 지우고 도구가 되는 길을 택한 거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발견했거든. 나름 사연이 많았겠지.”
“그랬군요……. 하지만 날 속여서 이런 몸으로 만들고…… 다신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다니…….”
유키코는 조금 진정이 되자 늙은 산타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돌아갈 수 있단다.”
“네?”
“말했잖니. 산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영원히 그 모습이라고. 산타를 그만두면 언제든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게 설계돼 있어. 내가 그런 비인도적인 짓을 할 리가 없잖니.”
“그, 그럼 당장 되돌려주세요!”
“그건 어렵지 않다만, 인간으로 돌아가면 두 번 다시 산타로이드는 될 수 없단다. 잘 생각해보렴.”
“그…… 그렇다면, 뭐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유키코의 얼굴에 희망 섞인 미소가 번졌다.
“그럼 협상 성립이구나. 지금부터 산타로이드 확장 OS를 로드하겠다. 이제부터 넌 야마시나 유키코가 아니라 산타로이드 F13 유키코다. 잘 부탁하마.”
늙은 산타는 그렇게 말하며 장치를 조작했다.
“네. 확장 OS 로드를 완료했습니다. 저는 산타로이드 F13 유키코입니다. 마스터 및 상위 기체 F04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저의 사명은 산타클로스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방금 설명한 내용은 납득했느냐?”
“네. 언제든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현시점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지우지 않았는데 괜찮겠느냐?”
“네. 감정은 존재하지만 확장 OS가 우선합니다. 산타클로스 업무 수행에 지장은 없습니다. 말투가 변한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일은 내일부터다. 오늘은 푹 쉬거라.”
“네, 마스터. F13, 휴식 모드에 진입합니다.”
유키코는 꼿꼿이 선 채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