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ma 님한테 『메카니컬 레이디』 최종화랑 같이 받은 따끈따끈한 신작, 『머신 튜닝』입니다.
자신을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진 누나를 찾아 낡은 양옥집에 발을 들인 주인공.
거기서 팔다리도 없고 머리조차 없는, 오직 몸통뿐인 여성형 로봇의 튜닝을 의뢰받게 되는데…
***
아이자와 슈지는 숲에 둘러싸인 낡은 양관 앞에 서 있었다. 문패에는 히카와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가르쳐준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연구소라고 해서 왔더니 분위기가 영 딴판이네.”
슈지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찾아냈어. 오늘이야말로 누나를 만날 거야.”
슈지는 3개월 전 자취를 감춘 누나 쿄코를 찾아 여기까지 흘러왔다.
24년이나 함께 산 누나가 갑자기 사라진 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슈지는 누나에게 그럴 만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누나를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 해.”
슈지는 커다란 철창문 옆의 초인종을 누르며, 누나를 실종하게 만든 자신의 잘못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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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지의 집은 마을의 작은 로봇 공장이었다. 아버지는 장인 기질이 다분해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꼼꼼한 일 처리로 평판이 좋아 그럭저럭 사업을 유지해 왔다.
대학에 가지 못한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쿄코와 슈지는 공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쿄코는 대형 로봇 메이커인 히카와 코퍼레이션에 입사했다.
슈지도 대기업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슈지가 공장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공장을 물려받게 된 슈지.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했으나, 슈지는 금세 우쭐해져 일을 팽개치고 놀러 다니기 바빴다.
장인들은 정이 떨어져 하나둘 떠나갔고, 제품 질은 뚝 떨어졌으며 주문도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불황까지 덮쳐 정신을 차렸을 땐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슈지는 돈을 구하러 뛰어다녔지만 은행마저 등을 돌렸고, 막다른 길에 몰린 그는 사채에 손을 댔다. 말도 안 되는 고금리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집 앞에는 딱 봐도 그쪽 계통인 험악한 놈들이 서성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주문이 들어올 리 만무했고, 공장 경영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슈지는 빚쟁이들이 무서워 집을 나간 채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져 한밤중에 돈을 챙기러 돌아갔다가 빚쟁이들에게 들켰고, 그대로 어느 창고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눈빛이 날카로운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니마루 금융의 오니마루라고 합니다. 이제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군요.”
“미, 미안합니다. 갚는 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이미 충분히 기다렸어요. 게다가 당신 공장 꼬락서니를 보니 아무리 기다려도 갚는 건 무리겠던데.”
“아, 알았어요. 공장을 넘길게요.”
“아이자와 씨, 그쪽 공장 팔아봤자 껌값도 안 나와요. 이래선 끝이 안 나겠네. 어쩔 수 없지. 당신한테 돈 받는 건 포기하도록 하죠.”
너무 쉽게 물러나는 오니마루의 모습에 슈지는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대신, 당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줘야겠습니다.”
“히익! 살, 살려줘요!”
“우리 오니마루 금융 돈을 떼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세상에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거든요. 당신 몸으로 직접 말이죠.”
“그, 그런 짓을 하면 겨, 경찰이 가만 안 있을 거요!”
“걱정 마세요. 증거 남기는 멍청한 짓은 안 하니까.”
그때 슈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갑자기 끊기면 의심받겠지. 어쩔 수 없군. 마지막 통화는 하게 해주마. 하지만 허튼소리 하면 상대방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아, 알았어.”
휴대전화에 뜬 번호를 보니 누나 쿄코였다.
“누나, 무슨 일이야?”
“슈지, 지금 공장 아저씨들한테 들었는데, 너 위험한 데서 엄청난 빚을 졌다며!”
“아, 누나 걱정 끼쳤네. 근데 그 일은 이제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주문도 거의 없다며. 갚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누나한테 폐 안 끼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쿄코가 나지막이 물었다.
“슈지, 지금 위험한 상황이야?”
누나는 예전부터 눈치가 빨랐다.
“그, 그럴 리가 있나.”
다시 정적이 흐르더니,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숨이 달린 일이야?”
“무, 무슨 소리야. 과민반응이라니까.”
“대답은 예스, 노로만 해. 1억이면 돼?”
“1억?!”
오니마루가 벌떡 일어나 슈지의 휴대전화를 뺏어 들었다.
“약속했을 텐데요. 허튼소리 하면 상대방도 가만 안 두겠다고.”
“잠깐, 잠깐만요! 누나가 1억을 준비할 수 있대요!”
오니마루가 전화를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니마루 금융의 오니마루라고 합니다. 동생 대신 갚아주시는 겁니까?”
“1억이라면 준비할 수 있어요. 그걸로 동생을 돌려보내 주시겠어요?”
“그렇습니까. 사실 조금 부족하긴 한데 말이죠.”
“1억 이상은 무리에요. 이걸로 안 된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동생 목숨을 뺏어봤자 당신들한테 1원 한 푼 이득 될 거 없잖아요. 1억을 챙기는 게 훨씬 비즈니스답지 않나요?”
“하하하! 좋군요. 누님께서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을 봐서 1억에 합의하죠. 1억 가져오면 동생은 돌려보내겠습니다. 단, 현금이어야 합니다. 누님 혼자 오세요. 장소는 ○○부두 3번 창고입니다.”
“알았어요. 3시에 가죠.”
“기다리겠습니다.”
이윽고 시계 바늘이 3시를 가리키자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니마루가 부하에게 시켜 셔터를 올리자 그곳에 쿄코가 서 있었다.
오니마루는 10m쯤 떨어진 곳에 차 한 대와 남자 두 명을 발견했다. 남자들은 쿄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혼자 오라고 했을 텐데요.”
“저 사람들은 저기서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오는 길에 남자친구가 데려다주면 안 된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아주 든든한 남자친구를 두셨군요.”
“보디가드예요. 여자가 밤길을 혼자 걷는 건 위험하니까. 저 사람들은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아무 짓도 안 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1억, 확인해 보죠.”
쿄코는 두랄루민 가방을 오니마루에게 건넸다. 오니마루는 부하에게 시켜 돈다발을 확인했다.
“확실히 받았습니다. 동생분은 이제 필요 없겠군요.”
슈지는 창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누나, 미안해!”
슈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쿄코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쿄코는 슈지에게 등을 돌린 채 보디가드들이 있는 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슈지가 쿄코의 뒤를 쫓으려 하자,
“따라오지 마!”
“누나?”
“슈지, 너 도와주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 너 같은 못난 동생 뒷바라지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돈은 안 갚아도 돼. 인연 끊는 돈이라고 생각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렇게 내뱉고는 쿄코는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누나!”
홀로 남겨진 슈지는 깊은 밤길을 혼자 걸어 공장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슈지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미친 듯이 일하기 시작했다.
한번 잃은 신용을 되찾기는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며 지켜봤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게 전해지자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드디어 100만 엔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슈지는 그 돈을 들고 히카와 코퍼레이션으로 향했다.
빌린 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쿄코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쿄코가 있던 개발부에는 그녀가 없었다.
“저기, 아이자와 쿄코 씨는 한 달 전에 인사 이동이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셨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개발부에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슈지는 인사부로 가서 수소문했다.
“쿄코 씨는 어느 부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네요.”
“퇴사했나요?”
“아뇨, 재직 중인 걸로 나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잠시만요. 확인해 볼게요.”
잠시 후 직원이 프린트물 한 장을 들고 돌아왔다.
“쿄코 씨는 회장님 전속 스태프로 되어 있네요.”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죠?”
“회장님 개인 연구소입니다.”
“거긴 어떤 곳인가요?”
“회장님이랑 스태프 몇 명만 있는 곳인데, 극비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장소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회장님이 워낙 까다로우신 데다 극비 연구소라 가셔도 못 들어갈 텐데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슈지는 알려준 장소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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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헛수고라 생각하면서도 묵직한 대문을 밀어보았다. 그러자 문이 스르르 안쪽으로 열렸다.
“어? 열려 있네.”
슈지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저택 현관문을 열고 홀을 들여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방 안쪽 디스플레이에 무언가 표시되는 게 보였다.
“누구 있나?”
슈지는 열린 문을 밀며, 지금까지 수십 번도 더 반복했던 말을 내뱉었다.
“계십니까?”
역시 대답은 없었다.
다음 순간, 슈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그곳에는 머리도 팔다리도 없는, 몸통뿐인 여성의 나체가 마치 예술 작품처럼 대좌 위에 놓여 있었다.
살아있는 여자의 육체라고 착각할 만큼 리얼했지만, 목으로 이어진 수많은 케이블과 복강 사이로 보이는 내부 기계들이 그것이 로봇의 몸통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워. 어쩜 이렇게 완벽한 몸매지?”
슈지는 마치 홀린 듯 로봇의 몸체로 다가갔다.
제1화 끝
슈지는 여성형 로봇의 몸통에 자석처럼 이끌려 다가갔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아름다운 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슈지는 조심스럽게 로봇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진짜 사람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순간, 컴퓨터에서 삐- 하는 비프음이 울렸다. 깜짝 놀라 손을 떼고 디스플레이를 보니 특정 부위에 수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가슴을 꽉 쥐자 또 비프음이 나며 수치가 떴다. 쥐는 힘을 세게 할수록 수치도 커졌다.
“가슴의 센서가 자네의 힘을 감지해서 디스플레이에 값을 띄우는 거라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슈지는 자지러지게 놀랐다.
“히익! 누, 누구세요?!”
뒤를 돌아보니 흰 가운을 입은 백발백중의 노인이 서 있었다.
“난 이 연구소의 주인이자 히카와 겐쥬로라고 하네. 그런 한심한 소리를 내며 놀라다니, 자네 어느 기업 스파인가?”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들어온 건 제 잘못이지만, 스파는 아닙니다.”
“스파가 제 입으로 스파라고 할 리 없지.”
“저는 마을에서 작은 로봇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히카와 코퍼레이션에 비빌 수준도 안 돼요.”
“설마 내 연구를 훔쳐서 단숨에 메이저로 올라서려던 건 아니겠지?”
“그건 무리죠. 예를 들어 이 가슴의 감촉은 점성 액체를 함침시킨 특수 탄성 재료 같고, 피부 감촉은 진짜 사람 피부를 배양해서 특수 코팅한 거잖아요.”
슈지는 로봇 몸체가 놓인 대좌를 천천히 돌리며 피부의 이음새를 확인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복잡한 여성의 몸에 맞춰 이음새 하나 없이 만들다니. 이건 동네 공장에서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허, 제법이군. 역시 스파답구먼.”
“그러니까 스파 아니라니까요!”
“스파가 아니라면 왜 이런 외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온 건가?”
“사실 누나를 찾으러 왔습니다. 여기 있다고 들어서요.”
“누나라고?”
“네, 아이자와 쿄코라고 합니다.”
“잠깐. 아까 동네 공장이라고 했나? 그럼 자네가 거액의 빚을 지고 회사를 말아먹을 뻔했다는 그 쿄코 군의 동생인가? 아차, 이건 실례였군.”
“괜찮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슈지는 명함을 꺼내 히카와에게 건넸다.
“아이자와 슈지라고 하는군. 여길 어떻게 알아냈나?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인사부 분한테 사정사정해서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뭐 하러 왔나? 또 돈 빌리러 왔어?”
“천만에요. 적지만 이익이 나서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누나 행방을 찾은 겁니다.”
“기특한 마음씨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자와 쿄코 군은 지금 해외 장기 출장 중이라네.”
“네?! 그럴 수가. 겨우 찾아냈는데. 연락처라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네. 극비 출장이거든.”
슈지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아, 그렇군요. 그럼 누나한테 안부나 전해 주세요.”
“음, 알겠네.”
슈지는 돌아가려다 히카와에게 한마디 던졌다.
“저기, 그 로봇 내부 기기 배치는 바꾸는 게 좋을 거예요. 무게 중심이 살짝 오른쪽으로 쏠려 있거든요.”
“뭐? 잠깐 기다려 봐.”
히카와는 키보드를 두드려 로봇의 내부 구조도를 띄웠다.
“이걸로 무게 중심을 계산해 보면... 오, 진짜로 살짝 오른쪽이네. 어떻게 알았나?”
“아까 돌려볼 때 느꼈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리게.”
“또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자네, 비밀 지킬 수 있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맡아주겠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이 로봇 바디의 동작 확인과 튜닝을 맡기고 싶군.”
“상관없긴 한데, 왜 저한테 맡기시는 거죠?”
“자네, 이 몸통뿐인 로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
“음, 아주 아름다운 몸매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나도 이 로봇의 프로포션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네. 최고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게다가 이 로봇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야.”
말을 마치자마자 히카와는 가슴을 움켜쥐더니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비틀어 올렸다. 그러자 디스플레이의 숫자들이 어지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로봇 몸체는 허리를 비틀며 떨기 시작했다. 머리도 사지도 없는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쾌감을 표현하는 듯했다.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쾌감에 떨고 있군.”
활처럼 휘어지며 떨고 있는 로봇의 유두를 히카와가 집요하게 괴롭히자, 가랑이 사이로 액체가 배어 나와 고이기 시작했다.
로봇의 반응에 슈지는 경악했다.
“왜죠? 두뇌도 없는데 어떻게 반응하는 겁니까?”
“내가 개발한 에뮬레이터가 이 로봇이 받은 자극을 감지해서 반응하도록 제어하고 있거든.”
히카와는 책상 위의 컴퓨터를 가리켰다.
“사실 이 녀석의 두뇌 개발이 한참 늦어지고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두뇌 없이도 바디 동작 확인과 튜닝을 할 수 있게 이 에뮬레이터를 만든 거지.”
히카와가 키보드를 치자 로봇 몸체는 허리를 좌우로 돌리거나 앞으로 숙이고 뒤로 젖히는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두뇌 개발에 다들 매달려 있어서 튜닝에 쏟을 인력이 부족해 고민하던 참이었네.”
“잠깐만요. 그럼 두뇌도 없이 이 로봇을 튜닝하라는 건가요?”
“그렇네.”
“그건 말도 안 돼요.”
“말이 왜 안 되나. 방금 이 에뮬레이터를 봤지 않나.”
“동작 확인 정도라면 이 에뮬레이터로 충분하겠죠. 하지만 튜닝까지 하려면 일이 너무 커요. 이 로봇의 인터페이스 사양서랑 내부 설계서 보여주세요. 그리고 에뮬레이터 설계서랑 소스도요.”
슈지는 돌아갈 생각도 잊은 채 설계 도면을 읽기 시작했다.
“대충 훑어만 봐도 이건 300THz CPU에 메모리 300TB급 컴퓨터가 필요하겠는데요. 에뮬레이터 프로그램도 손 좀 봐야겠고요.”
“그럼 자네 공장으로 그 컴퓨터랑 에뮬레이터 프로그램, 로봇 바디를 내일 같이 보내주도록 하지. 컴퓨터 상세 사양은 오늘 중으로 연락하게.”
“아직 수락한 것도 아닌데...”
“난 이 로봇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고 싶네.”
히카와의 기세에 슈지는 절로 말문이 막혔다.
히카와는 로봇의 몸통을 애틋하게 쓰다듬었다.
“얼마면 맡아주겠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슈지는 당황했다. 거절할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렀다.
“글쎄요... 1억 엔. 컴퓨터 지급 비용은 별도고요. 그리고 에뮬레이터 양도는 필수 조건입니다.”
“1억 엔이라. 부대 조건도 수락하지.”
히카와는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2화 끝
다음 날 아침, 대형 트럭이 아이자와 로봇 제작소에 도착해 커다란 짐들을 내려놓았다.
슈지는 공장 정비실을 당분간 점거하기로 했다.
방을 치우고 짐을 들여놓았다. 직원들에게는 극비 업무라며 출입 금지 팻말을 걸어두고 정비실에 틀어박혀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로봇의 몸통과 팔다리를 포장재에서 꺼내 내용물 리스트와 대조했다.
“이 로봇 ID가 AK001인가. 역시 머리는 없네.”
슈지는 로봇을 조립한 뒤 그 몸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시 봐도 기가 막힌 몸매네.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스름한 정비실에 서 있는 머리 없는 여성의 균형 잡힌 아름다운 나체상은 그 자체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슈지는 홀릴 것 같은 자신을 다잡으며 컴퓨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AK001 두뇌의 외부 사양서를 보며 히카와에게 받은 프로그램을 베이스로 에뮬레이터를 짰다.
꼬박 하루를 매달려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디버깅을 반복했다. 작업이 끝날 즈음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슈지는 침대에 쓰러져 폭면했고, 눈을 뜨니 이미 저녁이었다.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뒤, 컴퓨터 뒷면의 집합 단자에 케이블 밴드를 연결하고 하나하나 확인하며 AK001의 목 부분에 접속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컴퓨터를 켜자 디스플레이에 로봇의 3D 모델이 떴다.
원통과 구를 조합한 단순한 모델이었지만 실물처럼 머리가 없었다.
슈지가 디스플레이 하단의 기동 버튼을 클릭하자 AK001의 몸체에서 가벼운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3D 모델 옆으로 수많은 숫자가 나열됐다.
“좋아, 성공이다!”
슈지는 펄쩍 뛰며 기뻐했다.
원래 이 몸을 움직여야 할 AK001의 두뇌 대신, 자신이 이 아름다운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우선 팔 상하 운동.”
마우스로 3D 모델의 오른팔을 위아래로 드래그하자 AK001의 오른팔도 따라 움직였다. 왼팔도 마찬가지였다.
“정지 밸런스.”
한 발 서기, Y자 밸런스, 폐각 물구나무, 개각 물구나무를 반복시키며 슈지는 AK001의 상태를 사방에서 살피며 밸런스를 검토했다.
AK001을 분해해 내부 기기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다음은 보행 밸런스.”
슈지가 보행 버튼을 누르자 3D 모델이 걷기 시작했고, 동시에 AK001도 발을 뗐다.
케이블 길이는 넉넉했지만 한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니 한계가 왔고, 케이블에 잡아당겨진 AK001은 중심을 잃고 뒤로 쿵 넘어졌다.
하지만 AK001은 누운 채로 계속 걷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어, 큰일 날 뻔했네.”
슈지는 서둘러 에뮬레이터를 조작해 AK001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케이블을 다시 연결했다.
“원형으로 걷게 해야겠어.”
에뮬레이터를 수정한 뒤 다시 보행을 시작했다.
원형을 뱅글뱅글 도는 AK001의 흔들림을 확인하고, 관절을 분해해 서보 모터의 출력과 응답 속도, 충격 흡수성을 조정하고 다시 걷게 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걷기가 끝나자 조깅, 러닝으로 속도를 높여 다시 밸런스를 잡았다.
다음은 중량 테스트. AK001의 손에 5kg, 10kg, 20kg 아령을 들려주고 팔을 움직이게 했다.
“좋아, 밸런스 조정은 대충 끝났군. 다음은 감각 기능인가.”
슈지는 탐침봉으로 AK001의 몸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눌러보았다.
에뮬레이터는 3D 모델 위에 빨간 점으로 위치를 표시했고, 촉각 센서가 감지한 힘의 수치를 서브 윈도우에 띄웠다.
슈지는 탐침봉에 표시된 값과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음, 오차 범위 내군.”
발끝까지 테스트를 마치고 센서 감도를 검토했다.
“역시 유두나 그쪽은 감도를 좀 더 높이는 게 좋겠어.”
에뮬레이터에서 피부 센서 감도를 조정한 뒤 슈지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자, 드디어 성감 테스트인가. 우선 가슴부터.”
로봇이라지만 여자의 몸을 만지는 건 쑥스러운 일이었다.
가슴을 주무르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랑이 사이가 자연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일이야, 일.”
슈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AK001의 외관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디스플레이에는 성감 서브 윈도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BNCV라는 글자가 붙은 인디케이터가 나타나 감지된 자극 데이터를 오디오 볼륨바처럼 표시했다.
“제대로 느끼고 있네.”
이어 유두를 꼬집자 N 인디케이터의 바 길이가 가해진 힘에 따라 변했다.
계속 자극을 주자 파란색이던 바가 초록, 노랑, 주황으로 변해갔다. “슬슬 오겠는데.”
바가 빨갛게 변하자 AK001의 유두가 딱딱하게 발기하기 시작했다.
“유두 반응 OK. 다음은 성기 테스트.”
C와 V 인디케이터는 이미 노란색까지 올라와 있었다. 가랑이 사이 비순은 이미 젖어 있었고 진주 같은 돌기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돌기를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비공에 손가락을 넣어 자극하자 C와 V 인디케이터가 각각의 자극을 표시했다.
V 인디케이터가 빨간색으로 변하자 에뮬레이터는 윤활액 분비 신호를 보냈다.
윤활액이 슈지의 손가락을 적시고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됐나.”
슈지는 원통형 기구를 꺼내 AK001의 성기에 삽입했다. V 윈도우의 수치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슈지가 에뮬레이터를 조작하자 AK001의 가랑이가 꽉 조여졌다. 기구에 달린 게이지 바늘이 휙 돌아갔다.
“너무 센데. 이 정도면 기절하겠어.”
복부 해치를 열어 조정을 마친 뒤 다시 테스트했다.
“좋아, 성적 반응도 OK.”
모든 튜닝을 마친 슈지는 잠시 쉴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다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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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젊은 공원 두 명이 정비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죄송한데 서류에 도장 좀 찍어주세요.”
불러도 대답이 없자 공원들은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잠그는 걸 깜빡했는지 문은 쉽게 열렸다.
“사장님, 계세요?”
대답 대신 슈지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장님 자나 본데.”
“야, 이것 좀 봐.”
“대박! 머리 없는 리얼돌인가?”
“와, 가슴 끝내준다. 한입 베어 물고 싶네.”
공원 한 명이 AK001의 가슴을 꽉 움켜쥐자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 이 자식 제법 느끼는데?”
“야, 나도 좀 만져보자.”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에서 깬 슈지 눈에 젊은 공원들이 AK001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이 들어왔다.
한 놈은 다리를 붙잡아 자기 허리에 두르고 있고, 다른 놈은 뒤에서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가슴은 거칠게 짓이겨졌고 유두는 발기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가랑이 사이에서는 욕망의 백탁액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와, 진짜 좁다! 진짜 여자보다 기분 좋은데?”
“가슴도 말랑말랑한 게 손맛 죽이네.”
“허벅지 탄력 좀 봐.”
“젠장, 사장 놈 출입 금지 시켜놓고 혼자 이런 거 가지고 놀고 있었던 거야?”
AK001은 두 다리를 발끝까지 꼿꼿이 펴고 몸을 활처럼 휜 채 공원의 허리 놀림에 맞춰 움찔거리고 있었다.
에뮬레이터 디스플레이의 모든 인디케이터는 빨간색으로 변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실제 성행위에 대응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은 에뮬레이터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화면 가득 경고창을 띄웠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AK001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슈지는 그 광경에 눈이 뒤집혔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악, 사장님! 사장님 찾으러 왔다가 너무 야한 로봇이 있길래 그만... 이 로봇 몸매 진짜 죽이네요. 몇 번을 해도 안 질리겠어요.”
“사장님, 한 번만 봐주세요. 직원 복지라고 생각하시고.”
“이 멍청한 놈들아! 이거 귀한 손님이 맡긴 거야!”
“네? 그랬어요? 전 사장님 노리개인 줄 알고...”
젊은 공원들은 로봇을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도망치려 했다.
“거기 안 서! 니들이 싸지른 거 다 치우고 가!”
공원들은 꾸중을 들으며 쭈구려 앉아 AK001의 몸을 전용 천으로 닦아내고, 비공을 기구로 벌려 세정 노즐로 잔여물을 씻어냈다.
“에뮬레이터에 물 안 닿게 조심해! 정밀 기계니까.”
공원들이 떠난 뒤에도 슈지는 직접 AK001의 몸을 닦고 비공을 꼼꼼히 세척했다.
“진짜 저놈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네. 발가벗겨 둔 게 잘못이지. 옷이라도 입혀둬야겠어. 아마 누나 옷이 남아 있을 텐데.”
집에서 쿄코의 옷을 가져와 AK001에게 입혀보았다.
“목으로 넣는 옷은 안 되겠네.”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히고 하이힐을 신기자 사이즈가 딱 맞았다. 슈지는 문득 생각이 났다.
“패션쇼처럼 모델 워킹이나 시켜볼까.”
슈지는 모델 워킹 버튼을 만들고 명령어를 입력했다.
버튼을 누르자 AK001은 패션 모델처럼 걷기 시작했고, 케이블이 다 펴지기 직전에 멈춰 포즈를 취한 뒤 턴해서 다시 걸어왔다.
슈지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
또 다른 생각이 스쳤다.
“란제리 쇼는 어떨까.”
본래 목적은 까맣게 잊은 채 AK001을 다시 벗기고 옷더미 속에서 브래지어를 찾아 채워보니 가슴에 빈틈없이 밀착됐다.
“누나 브래지어가 딱 맞네. 사이즈가 몇이지?”
브래지어를 벗겨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쿄코의 맞춤형 제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는 옷에 까다로워서 거의 다 맞춤이었지.”
확인해 보니 아까 입혔던 수트와 블라우스도 전부 맞춤이었다.
“그 말은... 이 AK001이 누나 몸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건가.”
그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쿄코는 남동생인 자신이 봐도 몸매가 아주 좋았으니까.
“왜 히카와 회장은 나한테 말을 안 했지?”
슈지는 AK001의 피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피부 배양으로 이렇게 복잡한 형태를 통째로 만드는 건 어려워.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 피부를 그대로 썼다면 간단하지.”
슈지는 AK001의 얼굴을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3화 끝
슈지는 AK001을 분해해 정성스럽게 나무 상자에 담아 히카와 저택을 찾았다.
“히카와 씨, 여기 시험 성적서랑 조치 대책 리스트입니다.”
히카와는 슈지가 제출한 서류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확인했다.
“음, 수고했네.”
“그럼 검수서에 사인해 주세요. 이건 청구서입니다.”
“돈은 다음 달에 계좌로 넣어주지.”
“감사합니다.”
그 후 슈지는 돌아가는 척하다가 차를 근처 숲에 세워두고 차 안에서 쪽잠을 잤다.
타이머 알람 소리에 깨어나 주위가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히카와 저택으로 향했다.
대문을 확인하니 이번엔 잠겨 있었다. 슈지는 계산기에 열쇠 끝이 달린 것 같은 물건을 꺼냈다.
슈지가 직접 만든 만능 열쇠였다. 열쇠 구멍에 꽂고 버튼을 몇 번 누르자 삐빅 소리가 났고, 돌리자 잠금이 풀렸다.
현관문도 같은 방식으로 열고 들어간 슈지는 홀 계단 밑 공간에 몸을 숨겼다.
낮에 왔을 때 그곳이 홀에서 사각지대라는 걸 확인해 두었다.
잠시 동태를 살피고 있자니 엘리베이터 작동 소리가 들렸다. 홀 어디에도 엘리베이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소리가 멈추자 홀 정면에 있는 은색 여성형 로봇이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옆으로 슬라이드 됐다.
연구원 두 명이 AK001이 담긴 나무 상자를 밖으로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가 엘리베이터였군.”
연구원들이 사라지자 슈지는 계단 밑에서 기어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지하 버튼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 문이 열리자 어스름한 조명 아래 온갖 장치들이 보였다. 일종의 연구실 같았다.
방 안쪽에서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치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다가가니 커다란 테이블 위에 머리 없는 여자의 나체가 누워 있었다. AK001이었다.
AK001은 가슴을 로봇 팔에 붙잡힌 채 유두는 흡입 노즐에 빨리고 있었다. 가랑이 사이에는 또 다른 로봇 팔이 바이브레이터를 삽입하고 있었다.
“아윽... 아아...”
신음 소리는 AK001의 목 위쪽에 매달린 머리뿐인 여자에게서 나고 있었다.
목 아래로 수많은 케이블과 튜브가 뻗어 나와 AK001의 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게 AK001의 머리인가. 어두워서 얼굴이 안 보이네.”
그 광경을 보며 연구원이 기록을 하고 있었다.
“와, 역시 몸통을 괴롭히는 게 훨씬 손맛이 좋단 말이야. 야, AK001, 느껴지냐?”
“아윽... 네, 아주 잘 느껴집니다. 쾌감 강도 때문에 생체 뇌의 의식 활동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벌써 가버리는 거냐? 겨우 30분 지났는데. 넌 이제부터 매일 우리 모두를 상대할 섹스 로봇이라고. 이 정도로 가버리면 곤란하지. 내가 네 연약한 생체 뇌를 단련시켜 주마.”
연구원이 패널을 조작하자 로봇 팔이 예쁜 가슴을 기계 힘으로 조약돌처럼 짓이길 정도로 꽉 움켜쥐었고, 흡입 노즐은 유륜까지 빨아들였다. 바이브레이터의 진동도 배로 커졌다.
“아히익! 생체 뇌의 의식 활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아악! 두뇌가 긴급 정지합니다. 삐-!”
AK001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심한 로봇이군.”
연구원은 리모컨을 꺼내 스위치를 눌렀다.
“삑. AK001 기동합니다. 생체 뇌 활동 정지 중. 미세 전류로 강제 기동합니다.”
그러자 AK001이 눈을 번쩍 떴다.
“생체 뇌 활동 시작했습니다. 명령 대기 중.”
“좋아, 계속한다.”
“알겠습니다.”
슈지는 근처에 있던 장비를 집어 들고 연구원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그리고 AK001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얼굴은 틀림없는 누나, 쿄코였다.
“누나!”
슈지는 머리만 남은 쿄코에게 다가갔다.
“...너는... 슈지?”
“역시 누나 맞구나. 지금 구해줄게.”
슈지는 바이브레이터를 뽑아내고 흡입 튜브를 유두에서 떼어냈으며 천장에서 내려온 로봇 팔을 뽑아버렸다.
쿄코의 머리를 가까이서 보니 두개골이 제거된 채 전자 소자가 박힌 뇌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위험해.”
“어?”
그 순간 슈지는 뒷덜미에 충격을 느끼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슈지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의자에 손발이 묶여 있었다.
“아이자와 군, 정신이 드나?”
“히카와! 이 자식,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쿄코 군은 우리 회사의 신제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라네. 내 꿈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었지. 수없이 좌절했지만 이제야 실현할 수 있게 됐어.”
쿄코의 머리는 직립한 AK001 바디의 목 윗부분에 고정되어 있었고, 연구원들이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었다.
“인간과 똑같은 로봇 같은 소리 하네! 사람을 로봇으로 만든 거잖아! 이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당신들 인간도 아니야!”
“역발상이지. 인간 같은 로봇을 못 만든다면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면 되는 거니까.”
케이블 연결을 마친 쿄코의 머리가 목에 완전히 고정됐다. 연구원 한 명이 정중하게 히카와에게 리모컨을 건넸다.
“회장님, 완성됐습니다. 기동해 주십시오.”
“음.”
히카와가 스위치를 누르자 AK001이 천천히 눈을 떴다.
“삑. AK001 기동했습니다.”
“누나!”
슈지의 외침에도 AK001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AK001, 오른팔 들어. 왼팔 들어.”
“AK001, 전진. 우회전. 유턴.”
AK001은 히카와의 명령에만 반응하며 그대로 움직였다.
“음, 잘 만들어졌군. 슈지 군, 자네 덕분이야.”
“닥쳐! 누나 돌려내!”
“자네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린 억지로 쿄코 군을 로봇으로 만든 게 아니야. 본인이 자원한 거지.”
“말도 안 돼!”
“자네는 그 1억 엔을 쿄코 군이 어떻게 구했다고 생각하나?”
“서, 설마 누나가 나 때문에...?”
“그렇다네.”
히카와가 밝힌 진실에 슈지는 망연자실하며 고개를 떨궜다.
“으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해, 누나...”
“자, 이제 문제는 비밀을 알아버린 자네를 어떻게 하느냐인데. 우리 마음대로 정해도 되지만 자네 실력을 봐서 선택권을 주지.”
“나를 어쩔 셈이지?”
“첫째, 여기서 죽는다. 둘째, 자네를 로봇으로 만든다. 남자를 로봇으로 만드는 건 취미가 아니지만 자네 기술은 아까우니까. 셋째, 자발적으로 우리 동료가 된다. 자, 어떤 걸 고르겠나?”
“누가 당신들 동료가 될 줄 알아! 로봇이 되는 것도 사양이다. 죽여라!”
“음, 첫 번째 선택인가. 아무래도 자네는 자기 진짜 마음을 모르는 모양이군.”
“무슨 소리야?”
“난 알고 있네. 자네가 머리 없는 쿄코 군의 바디를 봤을 때,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홀려 있었다는 걸.”
“그, 그건 누나인 줄 몰랐을 때니까!”
“과연 그럴까? 그럼 누나라는 걸 아는 지금은 어떨까. AK001, 이 녀석이랑 섹스해라.”
“알겠습니다.”
“그만둬!”
AK001은 슈지에게 다가와 바지 벨트를 풀었다. 속옷까지 무릎 아래로 내리더니 슈지의 물건을 입에 물었다.
“으으... 제발 그만해!”
입안에서 굵기와 단단함이 충분해지자 AK001은 입을 떼고 무릎 위에 올라타 손가락으로 자신의 비소에 조준했다.
그곳은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고, AK001은 천천히 안으로 유도했다.
“하지 마, 누나! 이러면 안 돼!”
AK001은 뿌리까지 삼켜버린 뒤 슈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상하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크윽...”
슈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AK001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으오오옷! 안 돼! 젠장!”
슈지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국 AK001의 안으로 욕망의 덩어리를 쏟아내고 말았다. AK001의 비순에서 끈적한 점액이 흘러내렸다.
“젊구먼. 벌써 가버린 건가.”
로봇이 되었다지만 친누나와 관계를 맺었다는 충격에 슈지는 히카와의 비웃음에도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있었다.
“어떤가? 만약 우리 동료가 된다면 매일 AK001을 쓰게 해주지.”
“으으... 이건 미친 짓이야. 당신들 동료 따위 안 돼! 빨리 죽여!”
“난 자네 실력이 꼭 필요하단 말이지.”
“그럼 로봇으로 만들든 마음대로 해!”
히카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이게 마지막 양보다. 동료가 되어 협력한다면 AK001을 자네에게 주지.”
히카와의 폭탄 발언에 연구원들이 술렁였다.
“회장님! 그건 약속이랑 다르지 않습니까!”
“자네들은 입 다물고 있게.”
히카와는 일갈하며 연구원들을 조용히 시키고 슈지를 향해 돌아섰다.
“어떤가? 이걸로 안 된다면 우리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네.”
“누나가 내 것이 된다고...?”
슈지는 그 말에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제4화 끝
오랜만에 대학 친구의 부름을 받은 하세가와 유리는 정류장에서 내려 친구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여름의 강렬한 햇살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걷다 보니, 흰 긴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대문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녀 옆에는 ‘아이자와 로봇 제작소’라고 적힌 간판이 서 있었다.
유리는 활짝 웃으며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쿄코! 오랜만이야!”
“유리, 잘 지냈어?”
“응, 완전 잘 지냈지. 웬일이야? 갑자기 부르고.”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옛날 친구들이 보고 싶더라고.”
“나도 쿄코 봐서 너무 좋아. 근데 들었어? 사이토 카나코라고, 작지만 몸매 좋았던 애 기억나지? 걔 일주일 전부터 행방불명됐대.”
“응, 나도 들었어. 그래서 유리 걱정돼서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고마워. 이 근처도 흉흉해졌네.”
땀을 닦던 유리는 쿄코가 전혀 땀을 흘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쿄코, 오늘 이렇게 더운데 땀 한 방울 안 나네?”
“들켰어? 계속 기다렸다는 건 거짓말이야. 사실 방금 전까지 공장 안에서 시원하게 있었거든.”
“뭐야, 고맙다고 한 게 아깝네! 그래서 그런 긴팔 셔츠를 입고도 멀쩡하구나. 초커까지 하고.”
“자외선 차단용이야. 유리는 민소매에 미니스커트라 시원해 보이네.”
“괜찮아, 자외선 차단제 꼼꼼히 발랐거든. 팔다리 시원하게 내놓는 건 여름밖에 못 하잖아.”
“유리답네. 그럼 집으로 안내할게. 공장 안을 가로질러 가자. 그게 더 시원하니까.”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와, 진짜 시원하다!”
공장 안에는 제작 중인 로봇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우와, 로봇 종류가 진짜 많네.”
“이건 토목 공사용 파워 로봇, 저건 건설용 고소 용접 로봇.”
“다 투박한 로봇들뿐이네. 어, 저기 프릴 달린 옷 입은 여자애 있다! 귀여워!”
“저건 특주 메이드 로봇이야.”
“회장님이나 부자들이 주문한 건가?”
“아니, 아키하바라 매장 홍보용 로봇이야.”
“아, 그렇구나.”
쿄코가 유리에게 로봇들을 설명하며 걷다 보니 공장 뒷마당 쪽으로 나왔다.
“공장에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네?”
“오늘은 토요일이라 휴무거든.”
“응? 그럼 에어컨은 왜 켜져 있어?”
“남동생이 일하고 있어. 이 방이야.”
공장 뒷모습 구석에 ‘정비실’ 간판이 걸린 방을 가리켰다. 그 방 앞에는 머리 없는 여성의 나체가 서 있었다.
“꺄악! 머리 없는 시체잖아!”
“유리, 소리 지르지 마. 로봇 몸체야.”
“아, 그렇구나. 너무 리얼해서 그만...”
정비실에서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누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놀라게 해서 미안. 유리가 저걸 보고 놀랐나 봐.”
“그렇구나. 처음 보는 사람은 충격받을 만하죠.”
“유리, 소개할게. 내 동생 슈지야. 슈지, 내 친구 유리야.”
“처음 뵙겠습니다. 유리에요.”
“슈지 군, 대단한 로봇을 만들고 있네. 너무 진짜 같아서 시체인 줄 알았어.”
“히카와 코퍼레이션 회장님이 의뢰한 특수 로봇이에요.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라 제작도 힘들고, 부드럽게 움직이게 밸런스 튜닝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럼 이제 이 로봇을 움직이는 거야? 머리는 어디 있어?”
“로봇 두뇌는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바디만 먼저 테스트하고 튜닝하는 중이에요.”
“와, 그런 것도 가능해?”
“네. 그래서 로봇 두뇌 에뮬레이터를 개발했거든요. 잠시만요.”
슈지가 정비실에 들어가 케이블 뭉치를 들고 나왔다. 케이블을 하나하나 목 부분에 연결했다.
그리고 리모컨을 조작하자 로봇이 걷기 시작했다.
“대박! 이게 그 에뮬레이터로 움직이는 거야?”
“네. 잘 만들었다고 히카와 회장님도 칭찬해 주셨어요.”
로봇은 계속 걷다가 공장 벽에 부딪혔고, 거기서 제자리걸음만 반복했다.
“어이쿠, 이런.”
슈지는 로봇을 멈추고 턴시킨 뒤 다시 걷게 했다. 이번에는 로봇이 슈지 일행을 향해 걸어왔다.
“이 로봇, 아담한데 몸매가 진짜 좋다. 이런 몸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유리, 이제 집으로 가자. 슈지, 난 유리 데리고 들어갈게.”
“응, 일단락되면 나도 나중에 갈게.”
유리와 쿄코가 공장을 빠져나와 살림집에 도착하니 곳곳이 공사용 비닐 시트로 덮여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는 테이블과 의자만 있는 좁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잠시 후 쿄코가 차가운 주스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왔다.
“주스 마실래?”
“고마워. 마침 목말랐어.”
땀을 흘린 유리는 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미안해, 방이 좀 좁지?”
“아냐, 괜찮아. 근데 집이 왜 이래?”
“동생이 집에 작업실을 만들고 있거든.”
“작업실? 공장이 있는데 왜 굳이 집에?”
“아까 슈지가 말했듯이 히카와 회장님한테 받은 일 중에 극비 기술이 몇 개 있거든. 공장은 외부인 출입이 잦아서 보안 문제가 있나 봐.”
“슈지 군,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맡은 거야? 대단하다. 히카와 회장님한테 인정받다니.”
“응. 슈지가 바빠질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나도 회사 그만두고 내려온 거야.”
“동생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네. 야, 너도 이제 결혼해서 정착하는 건 어때?”
“상대가 있어야 하지.”
“에이, 대학 때 같은 과였던 히가시야마 군은 어때?”
“어떻긴, 아무 사이도 아냐.”
“시치미 떼지 마! 나 다 봤거든. 대학 때 너랑 히가시야마 군 호텔 들어가는 거. 솔직히 말해봐, 사귀었지?”
갑자기 쿄코가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허공으로 향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삐-! 에러. 일치하는 대화 패턴이 없습니다.”
“쿄코?! 왜, 왜 그래?”
갑작스러운 쿄코의 이상 행동에 유리는 당황했다. 쿄코는 계속해서 묘한 말을 내뱉었다.
“삐-! 에러. 대화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유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슈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슈지 군! 쿄, 쿄코가 이상해!”
유리는 슈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쿄코는 여전히 헛소리를 반복 중이었다.
“삐-! 에러. 대화 지속 불가.”
“유리 씨, 누나랑 무슨 얘기 했어요?”
“대학 때 남자친구 얘기...”
“그렇군. 나름 신경 써서 프로그래밍해서 일상 대화는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누나 연애 관계까지는 몰랐으니까.”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리의 말을 무시한 채 슈지는 쿄코 옆으로 다가가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잠깐! 아무리 누나라도 갑자기 옷을 벗기면 어떡해!”
“AK001, 복부 해치 오픈!”
쿄코의 배 부분이 덜컥 열리며 내부 기계 장치가 드러났다.
“어? 이거 로봇이었어?”
자세히 보니 관절 부분 피부에 미세한 이음새가 보였다.
이상해진 게 로봇이라는 걸 알자 유리는 안심했다. 슈지가 장난을 친 거라고 생각했다.
“슈지 군! 나 가지고 실험한 거야? 진짜 잘 만들긴 했다. 나 완전히 속았잖아. 그래도 이건 좀 심했어.”
“유리 씨한테는 미안하지만 누나가 사람처럼 보이는지 실험해 본 거예요.”
“슈지 군, 말투가 왜 그래? 마치 쿄코가 로봇이 된 것처럼 들리잖아.”
“누나는 나 때문에 로봇이 된 거예요. 이제 인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인간처럼 행동하게 만들고 싶거든요.”
슈지가 해치 안쪽 버튼을 몇 개 조작하자 머리카락 부분이 뒤로 젖혀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그곳에는 전자 부품들 사이로 인간의 뇌가 보였다.
“서, 설마... 저 뇌, 진짜 사람 뇌야?”
“누나 뇌에요.”
“꺄아아악!”
공포에 질린 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슈지는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쿄코의 뇌에 박힌 단자에 연결했다.
“흠, 그렇군. 누나가 대학 때 히가시야마라는 놈이랑 사귀었구나. 육체관계까지 있었네. 누나도 제법인데? 대학 시절 연애 대화 패턴은 나중에 넣기로 하고 일단 복구부터 하죠.”
슈지가 버튼을 누르자 열렸던 부위들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AK001 기동합니다. 생체 뇌 정상. 생체 뇌 유지 장치 정상. 바디 구동 장치 정상...”
유리는 이 끔찍한 광경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네발로 기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 빨리 도, 도망쳐야 해...”
“유리 씨, 도망쳐봤자 소용없어요. 아까 마신 주스에 약을 탔거든요.”
“어, 어째서... 나한테 왜 이런 짓을...?”
“곧 알게 될 거예요.”
제5화 끝
“AK001, 유리 씨를 작업실로 옮겨.”
“알겠습니다.”
쿄코는 유리에게 다가가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거 놔, 쿄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소리 질러봤자 소용없어. 이 방부터 작업실까지는 완벽하게 방음 처리되어 있거든.”
무력하게 버둥거리는 유리를 쿄코가 안고 슈지가 연 작업실 문을 통과하자, 그곳에는 목에 수많은 케이블과 튜브가 연결된 여성의 머리가 있었다.
“꺄악! 카나코!”
카나코의 머리는 두개골이 열린 채 노출된 뇌에 로봇 팔이 전자 부품을 심고 있었다.
“몸통은 어제 완성됐어. 아까 공장에서 봤지? 머리는 뇌 개조가 필요해서 시간이 좀 걸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끝난 것 같네. 카나코 씨 끝나면 다음은 유리 씨 차례야.”
“싫어! 제발 보내줘! 부탁이야!”
“유리 씨, 너무 원망하지 마요. 히카와 회장님한테 누나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새로운 로봇 두 대를 바쳐야 하거든요. 소체는 직접 구해야 하고.”
슈지가 말하는 동안 AK001은 유리의 옷을 찢어 발기고 수술대에 고정했다.
“히카와 회장은 인체 조직 변환이나 기계 매립을 전부 수작업으로 해서 완성까지 한 달이나 걸렸대요. 내가 이 자동 개조 장치를 만들어 보여주니까 회장님도 깜짝 놀라더라고.”
슈지가 기동 버튼을 누르자 여러 개의 로봇 팔이 다가와 유리의 몸 곳곳에 약물을 주입했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유리의 몸이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모, 몸이 안 움직여...”
유리는 온몸의 감각이 희미해지며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피부나 근육 조직을 고분자 재료로 변환하는 약이에요. 히카와 회장의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특제 약품이죠.”
의식이 몽롱해지고 감각이 사라졌다. 로봇 팔이 다가와 몸을 절개하기 시작했지만 유리는 이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유리가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시야가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액체 너머로 세상을 보는 듯했다. 자신이 어떤 액체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괴롭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목 아래로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앞을 보니 복강이 훤히 열린, 머리도 사지도 없는 여성의 몸통이 액체가 담긴 캡슐 안에 잠겨 있었다.
목과 사지 절단면에는 수많은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팔과 다리가 따로 캡슐에 들어 있었다.
“저건 내 몸이야... 갈기갈기 찢겨버렸어...”
유리는 몽롱한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의 일렁임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에 봤던 캡슐 속 몸통과 팔다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목 아래 감각은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아 눈동자만 굴려보니 시야 끝에 여성형 로봇이 보였다.
복강 사이로 기계 장치가 드러나고 수많은 케이블이 연결된 그 로봇은 사이토 카나코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알몸의 여자가 묵묵히 패널을 조작하고 있었다. 아이자와 쿄코, 아니 AK001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슈지가 작업실로 들어왔다. 슈지는 케이블이 달린 어떤 장치를 들고 있었다.
슈지가 장치를 조작하자 문 너머에서 머리 없는 여성의 몸이 삐걱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목 절단면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 끝은 슈지가 든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HY001 머리 개조 상황은?”
슈지가 묻자 AK001이 대답했다.
“현재 뇌 개조 중입니다. 뇌 개조 외에는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SK001 테스트는 끝났어?”
“네. 모든 기능 정상입니다.”
“알았어.”
슈지는 SK001의 복부 케이블을 뽑고 해치를 닫았다.
“HY001 바디가 완성됐으니 에뮬레이터에 연결해.”
“알겠습니다.”
AK001은 HY001의 목에 에뮬레이터 케이블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슈지는 머리만 남은 유리를 들여다봤다.
유리 자신은 볼 수 없었지만, 두개골이 열린 뇌에는 수많은 전극과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튜브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유리 씨, 들려요?”
“나 어떻게 된 거야? 몸이 안 움직여.”
목소리는 나왔지만 목 안쪽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당연하죠. 유리 씨 몸은 떼어냈으니까. 지금은 머리뿐이에요.”
“떼, 떼어냈다고?! 어디? 내 몸 어디 있어?!”
“저기 보이는 머리 없는 HY001 로봇 바디가 그거예요. 유리 씨 몸으로 만든 거니까.”
AK001이 케이블 연결을 마친 참이었다.
“이제 동작 테스트할 거니까 보여줄게요.”
슈지가 에뮬레이터를 조작하자 HY001의 바디가 가벼운 기계음을 내며 걷기 시작했다.
“내 몸이...”
“이런 것도 가능해요.”
다시 조작하자 로봇이 멈춰 서더니 오른손으로 오른쪽 유두를 비틀고 왼손으로 가랑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랑이 사이에서 질척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 내 몸 가지고 장난치지 마!”
에뮬레이터 디스플레이의 인디케이터가 크게 요동쳤다.
“튜닝 전인데 이 정도로 반응하다니, 유리 씨 바디는 제법 잘 느끼나 보네.”
“으으... 내 몸 돌려줘! 원래대로 해놔!”
“걱정 마요. 유리 씨 머리는 나중에 바디에 제대로 붙여줄 테니까. 근데 장난감이 되는 건 변함없을걸요?”
“그게 무슨 소리야?”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네. SK001, 네 사명을 말해봐.”
“제 사명은 제 마스터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네 마스터는 누구지?”
“슈지 님입니다.”
“그럼 명령한다. SK001, 오른손으로 오른쪽 유두를 꼬집고 왼손으로 거길 만져라.”
“알겠습니다.”
SK001은 HY001이 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보이죠? 하나도 안 변해요.”
“그만해, 카나코! 정신 차려!”
“어때, SK001, 느껴지나?”
“네, 아주 큰 쾌감을 느낍니다.”
“그럼 HY001 바디한테도 똑같이 해줘.”
SK001은 HY001 바디 뒤로 돌아가 가슴과 비순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유리 씨 뇌도 마스터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개조할 거니까요. 누나처럼.”
“안 돼! 싫어!”
“AK001, HY001 뇌 개조 시작해.”
AK001이 키를 두드리자 디스플레이에 뇌의 3D 모델이 떴다.
“뇌 내에 인공 뉴런액을 주입합니다.”
가느다란 튜브를 통해 유리의 뇌 속으로 약물이 들어갔다.
“뇌 내 인공 뉴런 회로 형성을 시작합니다.”
뇌에 삽입된 전극들 사이로 미세 전류가 흐르자 전류가 지나는 길을 따라 인공 뉴런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3D 모델 내부에 기하학적인 그물망 패턴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아아... 이상해. 머릿속이 이상해. 나 어떻게 되는 거야...”
“전자 소자 접속용 단자를 형성합니다.”
케이블 주변 뇌 표면에 전자 기판 같은 무늬가 떠올랐다. 로봇 팔이 전자 소자를 가져와 유리의 뇌에 연결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나는 로봇... 나는 마스터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싫어, 이런 거!”
유리는 엉엉 울며 소리쳤다. 이윽고 울음이 잦아들더니 무표정해졌고, 잠꼬대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로봇... 나는 HY001... 나는 마스터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순조롭군. 이제 다 됐어. 이걸로 회장님한테 누나를 돌려받을 수 있어.”
슈지는 작업이 잘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뒤, 무표정하게 HY001 바디를 애무하던 SK001에게 지시했다.
“SK001, AK001이랑 교대해.”
“알겠습니다.”
AK001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슈지는 옷을 벗어 던지고 AK001 앞에 섰다.
“AK001, 늘 하던 거 부탁해.”
“알겠습니다.”
AK001은 슈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물건을 입에 담았다.
“아아, 누나... 너무 기분 좋아.”
AK001의 입안에서 슈지의 것이 충분히 단단해졌다.
“으으... AK001, 슬슬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그러자 AK001의 가랑이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일어나!”
슈지는 일어난 AK001을 껴안고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슈지는 바로 시작하지 않고 AK001 위에서 몸을 일으킨 채 가만히 그녀의 몸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AK001, 쿄코 모드 기동.”
무표정하던 AK001이 슈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왜 그래, 슈지?”
“누나의 이 바디, 내가 전부 튜닝한 거야. 정지 밸런스, 동적 밸런스, 관절 모터 속도랑 응답 시간까지 전부.”
“이 바디 아주 편해. 살아있을 때보다 컨디션이 더 좋은걸.”
“누나 몸에 대해선 내가 다 알아.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느끼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
슈지는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다른 손가락을 비공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러자 AK001이 환희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아아... 너무 잘 느껴져.”
“나 튜닝하는 동안 이게 누나 몸이라는 생각 전혀 안 했어. 누나는 그동안 저렇게 머리만 남은 채로 있었던 거네.”
“응. 며칠 동안 머리만 남아서 지냈어.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히고 섹스 로봇으로 개조됐지.”
AK001의 얼굴에 잠시 쓸쓸함이 스쳤다.
“하지만 로봇이 된 걸 후회하진 않아. 슈지를 돕기 위해서였으니까.”
“누나, 미안해. 나 때문에 로봇이 되게 해서.”
“괜찮아. 이렇게 슈지 곁으로 돌아왔잖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누나 친구들까지 희생시켜야 하는데.”
“난 로봇이야. 이제 나한테 선악 같은 건 없어. 슈지의 명령이 나의 전부야.”
“누나, 이제 절대 안 놓칠 거야.”
“슈지가 원하는 한, 난 슈지만의 로봇이야.”
한 남자와 한 대의 여성 로봇은 침대 위에서 뒤엉켰고, 작업실에는 거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종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