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트'보다 앞서 사이보그 스레드에 올렸던 작품입니다.
어느 천재 소녀가 소녀를 전자동으로 사이보그 병기화하는 설비를 개발했는데, 정작 본인이 그 장치에 휘말려 버린다는... 뭐 그런 이야기예요.
주인공의 자아를 지우는 척하면서 사실은 안 지우기도 하고, 귀축 영감탱이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놓고는 결국 귀축 짓을 안 시키기도 하는 등... 전개가 좀 이렇습니다. 그런 쪽 취향인 분들은 너무 기대하지 마시길 부탁드릴게요.
국군 직속의 거대 병기 공장. 부지 한편에서는 신병기 생산 라인의 완공을 축하하는 식전이 거행되고 있었다.
해당 병기는 군사 최고 기밀인 탓에, 이날 부지 안에 발을 들인 자들은 국방부 엘리트들과 소수의 국가 요인들뿐이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우리 국가의 군사적 우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궁극의 병기, I.D.(Intelligent Doll)의 생산 체계가 확립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대통령의 선언에 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이는 고작 14살의 소녀였다.
“그럼, 생산 라인을 실제로 가동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념비적인 첫 가동입니다.”
소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어린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침착한 말투로 해설을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리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초천재 기술자로 불리며, I.D. 시스템의 제창자이자 설계자이기도 했다.
“자, 오른편 유리 너머, 아래층의 생산 라인을 봐 주십시오.”
소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100미터(100m) 이상 끝도 없이 이어진 기계 행렬이 있었다.
갑자기 기계들이 일제히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인다.
“시작된 모양이군요. 이 라인은 완전히 무인화되어 있으며, 소체(素体)의 반입을 자동으로 감지해 기동하는 시스템입니다.”
에리코가 가리키는 끝에 서른 명 남짓한 소녀들이 있었다.
소녀들은 로봇 팔에 떠밀려 풀장 안으로 처박혔다.
“우선 세정조에서 소체의 살균과 세정을 실시합니다. 세정액에 부식성을 갖게 함으로써 의복 제거도 동시에 가능하게 설계했습니다.”
알몸이 된 소녀들이 차례차례 로봇 팔에 낚여 올라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엎드린 채로 고정되어 갔다.
“여기서부터는 시술 공정입니다. 기계가 컨베이어를 덮고 있는 형태라 시술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아쉽군요.”
시술이 끝난 소녀들, 아니 ‘그것들’은 모두 표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몸은 소녀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표면은 은색 광택을 내뿜으며 투박한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이것으로 완성입니다. 형식 번호 ID-F,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 병기입니다.”
다시 한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에리코는 가볍게 목례하고 퇴장했다.
나가는 길에 에리코가 다시 한번 라인을 내려다보자, 그날의 마지막 소체가 반입되는 중이었다.
(50명째. 오늘은 저게 마지막인가.)
에리코는 나사나 강철판이라도 보는 듯한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세정조 가장자리에 선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소체 소녀가 에리코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뭐라고 고함을 지르는 듯했지만, 방음 유리 너머의 에리코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식전의 마지막 순서로 파티가 열렸다. 요인들은 국가의 밝은 앞날을 축복했고, 기술자들은 성취감에 취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대통령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여기서 I.D.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숙녀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군. 누가 에리코 양에게 칵테일이라도 한 잔….”
회장의 시선이 일제히 에리코에게 쏠렸다.
“아뇨, 저는 아직 술은 좀….”
“허허,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따질 무드 없는 놈은 없네. 사양 말고 받게나.”
에리코는 반강제로 잔을 건네받았다.
“그럼, 우리 국가의 앞날과 우리가 자랑하는 젊은 천재 기술자를 위하여, 건배!”
연회 분위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환호성 속에서 혼자 떫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로쿠, 계급은 중장. 군 소속 기술자들을 거느리는 수장이었다.
(왜 저런 계집애가 대통령 각하께 저런 대접을….)
그는 질투심에 못 이겨 추하게 자란 턱수염을 쥐어뜯었다.
조로쿠는 I.D. 계획의 책임자다. 그에게 있어 에리코는 출세를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다.
(부하의 공은 상사의 공, 그게 세상 이치 아닌가. 그런데 이 대우 차이는 대체 뭐란 말이야…!)
에리코의 지나치게 화려한 경력과 압도적인 능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끝
그날 심야, 텅 빈 공장에는 에리코 혼자 남아 있었다. 칵테일에 취한 기운도 좀 깰 겸,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느긋하게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생산 라인을 가로지르는 복도에 서서 아래층에 늘어선 기계 무리들을 내려다본다.
그때, 멀리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지직하며 불꽃이 튀는 듯한 소리였다.
안경을 치켜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자, 저 멀리 쇼트가 난 기계가 보였다.
(고장인가? 저 기계는 분명...)
무의식적으로 난간 너머로 몸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게 불운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바로 밑에는 세정액이 찰랑찰랑하게 차 있는 수조가 있었다.
"앗!"
취기 때문에 비틀거린 손가락이 난간에서 미끄러졌다.
(떨어진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거친 물소리가 텅 빈 공장에 울려 퍼졌다.
'소체'의 '반입'을 감지한 기계들이 웅웅거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토끼를 앞에 둔 굶주린 늑대 떼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에리코는 패닉에 빠졌다.
거꾸로 풀에 처박히는 바람에 상하 감각을 잃었고, 교반기 때문에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혼란을 부채질했다.
세정액에 부식된 옷가지들은 몸이 뒤틀릴 때마다 너덜너덜하게 벗겨져 나갔고, 그 아래의 매끄러운 살결이 점차 드러났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철제 팔들에 짓눌려 있었다.
"...어? 뭐야, 설마, 이거...!? 에엣!?"
칵테일 기운으로 달아오른 피부에 마취제가 든 주삿바늘이 천천히 파고들었다.
"아윽... 아..."
그제야 에리코는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시... 싫어! 왜... 어째서 내가...!? 시, 싫어... 싫어...!"
뱃속 깊은 곳에서 등줄기를 타고 소름 끼치는 오한이 치솟았다.
"싫어어어어-!"
텅 빈 공장에 에리코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취 기운이 손끝과 발끝 같은 말단 감각부터 앗아갔다.
"왜, 왜 내가..."
이윽고 팔다리의 감각이, 그리고 마침내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거짓말, 거짓말이지!?)
이제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시술 기계는 정확히 그 타이밍을 노려 연분홍빛 피부에 메스를 들이댔다.
(싫어, 싫어... 하지 마! 난 아니야!)
에리코는 엎드린 채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희미하게 남은 청각과 촉각을 통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강제로 인지해야만 했다.
수많은 매니퓰레이터가 체내로 침입해 내장을 헤집어 놓는다.
(아, 아...)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수많은 장기들이 적출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뼈가 깎여 나갔다.
(이제 늦었어... 다시는 인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설계자인 그녀 자신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텅 빈 구멍투성이가 된 몸 안으로 무기질 부품들이 하나둘 박혀 들어갔다. 그것이 어떤 기기인지 하나하나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슬펐다.
(가슴 깊은 곳... 동력로... 인가.)
(옆구리의 이건... 외부 유닛 제어 장치네...)
자신의 몸이 스스로 설계한 구조대로 변해가는 것을, 그녀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모든 매니퓰레이터가 작업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금속 외피가 씌워지고 장갑이 장착되면서 시술이 거의 끝났다.
(그렇다는 건... 다음은...!)
새로운 메스가 에리코의 머리 위로 나타났다. 목적은 뇌 내 소형 컴퓨터 설치.
그 컴퓨터는 소체를 '지능 있는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사고와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한다. 그것이 박힌다는 것은 곧, 에리코라는 인격의 소멸을 의미했다.
(안 돼, 그것만은!)
마음속으로 절규한 순간, 메스 한 자루가 무정하게 그녀의 두개골을 갈랐다.
"파지직!" 하는 소리에 에리코는 눈을 떴다.
"음... 어, 어라? 나 도대체 뭘..."
무의식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자 어깨 모터의 구동음이 금속 프레임을 타고 귓가로 파고들었다.
"아......!"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 생산 라인에 휘말려서 개조당하고, 그러고 나서 뇌 내 컴퓨터를...... 어? 근데...)
에리코는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금속 손을 들어 올려 후두부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분명 매립 수술은 완료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에리코는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중얼거리고 있다.
"도대체 왜?"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여전히 컨베이어 위였다. 하지만 기계들은 모조리 침묵하고 있었다.
웅웅거리던 가동음 대신 들리는 것은 그녀의 발치에서 튀는 불꽃의 "파지직" 소리뿐이었다.
"시술 기계 고장...!? 아, 그때 그!"
에리코가 위쪽 복도에서 확인했던 고장 부위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그녀의 인격이 지워지려던 찰나, 우연히 쇼트 난 곳에서 누전이 발생해 라인 전체를 긴급 정지시킨 모양이었다.
"나를 가공하다 만 건... 제어 프로그램 인스톨러...!"
즉, 에리코의 뇌 내 컴퓨터에는 아무런 프로그램도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살았다..."
펌웨어 업데이트를 고려해 RAM을 채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ROM이었다면 매립된 시점에서 모든 게 끝났을 터였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안심하긴 일러."
만약에라도 기계들이 재가동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에리코는 서둘러 컨베이어에서 굴러떨어졌다. 금속 몸체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콰장창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일단 내 연구실로...!"
에리코는 필사적으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역시 생각만큼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으윽..."
제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그녀에게 기계로 변해버린 사지는 드라이버가 깔리지 않은 주변기기에 불과했다.
육체였을 적의 감각에 의지해 기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끝
연구실로 들이치는 아침 햇살에 에리코는 눈을 떴다.
“음, 아침인가. 지금 몇 시지….”
벽시계를 보려던 찰나, 머릿속에 번뜩이듯 시간이 읽혔다.
“…6시 30분인가. 내장 시계는 정상인 모양이네.”
그녀는 작업대에 엎드려 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그러자 쩍 벌어진 하반신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랫배의 패널이 열린 채, 커넥터에는 케이블 몇 개가 꽂혀 있었다.
“맞다, 드라이버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에리코는 책상 위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선택된 드라이버의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녀는 확인이라도 하듯 양손을 쥐었다 펴고, 어깨와 목을 돌려본 뒤 아랫배에서 케이블을 뽑고 패널을 닫았다.
“자, 이제 걸을 수도 있을 텐데….”
어젯밤 몇 번이고 고꾸라졌던 악몽이, 자신의 기술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졌던 그녀를 위축시켰다. 작업대에서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와, 살며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
전혀 문제없었다. 걷고, 외발로 서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테스트를 거듭할수록 불안감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인간이었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운동 감각.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하아, 어차피 이럴 거면 개발할 때 이 힘이 있었으면 장비 옮기기 편했을 텐데.”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는 에리코의 양팔에는 대형 공작 기계가 들려 있었다.
문득 방구석의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내 몸….)
개발 단계부터 질리도록 봐온 티타늄 합금 바디가, 지금의 그녀에겐 왠지 모르게 끔찍해 보였다.
(아니야, 이럴 리가….)
이건 ‘기체’다. 에리코는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병기의 일부, 자신이 직접 설계한 물건일 뿐이지 결코 ‘몸’ 따위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저 인간의 형상을 한 병기.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려 필사적으로 매달려 완성한 그것이, 정신을 차려보니 에리코 자신이 되어 있었다.
(난… 병기가 아니야!)
하지만 이런 몸을 알게 된 자들은 이렇게 비웃겠지. ‘젊은 천재 기술자, 스스로 병기로 타락하다.’
“그것만은 안 돼…. 내 인생에 그런 결말은 허용 못 해!”
천재로서의 자존심은 그녀에게 슬픔에 잠길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 약해진 마음을 털어냈다.
“어쨌든, 이런 모습을 들킬 수는 없지.”
그녀는 뇌에서 컴퓨터로 지령을 내렸다.
(에이전트 모드로 이행.)
전신의 장갑이 접혀 내부로 수납되고, 금속 외피의 이음새에서 인공 피부가 전개되었다.
순식간에 어제까지의 에리코의 나체가 재현되었다.
“후우. ‘잠입 공작도 가능한 설계로 만들어라’라니, 말도 안 되는 주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조로쿠 영감탱이 의견도 도움이 되네.”
사물함에서 밤샘용으로 챙겨둔 옷을 꺼내 입었다. 그제야 에리코는 자신이 안경을 쓴 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 세정액에도 안 녹는 재질이긴 하지만… 용케 안 벗겨졌네.”
아무래도 에리코의 얼굴은 수술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안에도 줄곧 안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 어제 기념식에서 생산된 I.D. 50대의 기동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이상의 유무를 체크하는 것 외에도 개량을 위한 데이터 수집을 겸하는 자리였다.
I.D.의 자율 기동 병기로서의 우수성은 압도적이었다.
양팔 외측의 빔 사벨은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전차를 양단했고, 손등에 내장된 빔 건은 1km(1km) 밖의 장갑판을 꿰뚫었다.
등 허리 부분에서 뻗어 나온 테일 로드는 꼬리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치고, 휘두르고, 조르고, 매달리고, 견인하는 등 응용 범위가 넓었으며, 생체 뇌의 지능은 이를 완벽하게 다루어냈다.
게다가 등에 장착된 부스터 덕분에 비행 성능과 순발력 또한 흠잡을 데 없었다.
“완벽해!” “훌륭하군!” “이걸로 우리 군은 최강이다!”
기술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와중에 에리코만은 묵묵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의 앞날뿐이었다.
(에이전트 모드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 몸의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야. 그렇게 되면 곧장 파멸이지. 그렇다면….)
에리코의 뇌 속에서 어떤 계획이 짜이고 있었다.
다음 날, ID-F의 개량 여지를 검토하는 회의가 열렸다.
책임자인 조로쿠 중장의 제안은 화력 증강이었다.
“광범위한 적을 섬멸할 무장만 갖춘다면,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병기가 될 것이다.”
반면 에리코의 주장은 가동 시간의 연장이었다.
“현재 연속 가동 시간은 길어야 16시간(16시간)입니다. 이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에리코의 의견이 훨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조로쿠는 체면에 집착하며 부하인 에리코의 의견을 완강히 거부했다.
질려버린 에리코가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그 아이들도 더 이상의 괴물이 되기보다는, 케이블에 묶여 있는 시간이 짧아지길 바랄 텐데….”
조로쿠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허어, 천재 기술자답지 않은 발언이군, 에리코 공. 병기에 정이라도 붙은 건가?”
그는 지저분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개발을 허가하지. 단!”
그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검지를 에리코에게 치켜세웠다.
“배정할 인원은 단 한 명, 네놈뿐이다. 나머지 부하들은 화기 개발에 투입하겠다. 이견은 없겠지, 천재 기술자 양반?”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큭큭, 이걸로 저년은 이제 아무런 실적도 낼 수 없겠지. 소체 따위에 동정심을 갖다니, 결국은 계집애로군.)
복도를 걸어가며 조로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편, 어깨를 들썩이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에리코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단순한 영감이네. 덕분에 혼자서 느긋하게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겠어.)
끝
그날 이후, 에리코는 몇 번이고 똑같은 꿈을 꿨다.
오로지 도면을 그리고, 부품 시제품을 만드는 일의 반복.
더 강하게, 더 다기능으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똑똑히 각인시키기 위해.
이윽고 설계도가 완성된다. 부품도 전부 갖춰졌다. 회심의 역작이다.
눈앞으로 실험용 소체가 운반되어 온다.
시술 기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으로 소체를 난도질하고, 그 안에 부품을 박아 넣는다.
순식간에 금속 광택을 내뿜는 병기가 완성된다.
대성공이다. 이제 내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 에리코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만족스럽게 작품을 감상하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서 얼어붙는다.
완성된 병기의 얼굴, 그것은 틀림없는 에리코 자신의 얼굴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된 거야? 난 분명 여기 있는데…!”
당황한 그녀가 다급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몸은…
“아아아악!”
에리코는 자신의 비명 소리에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또… 그 꿈이야…?”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간직한 뇌가 인공 심폐의 박동을 미친 듯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새벽 4시… 다시 잠들긴 글렀네. 몸이나 좀 손볼까….”
그녀는 나른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나와 지하실로 향했다.
에리코의 집은 교외 언덕 위, 국가 고위 관료들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군에서 하사받은 그 저택은 에리코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넓었고, 지하실 또한 상당한 규모였다.
그녀는 그 지하실에 방대한 기자재를 들여놓아, 공장 연구실 못지않은 환경을 구축해 두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완성되겠어. 충전할 때마다 남 눈치 보는 생활도 이젠 지긋지긋해.”
파자마 단추를 풀며 에리코가 중얼거렸다. 방 한구석 책상 위에는 만들다 만 듯한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이윽고 옷을 전부 벗어 던진 에리코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
(에이전트 모드 해제)
가짜 피부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장갑을 두른 본래의 신체가 드러났다.
작업대 위에 몸을 뉘고 벽면의 스위치를 올렸다.
(각 바디 파츠 조인트, 락 해제)
천장에서 내려온 암(Arm)이 팔, 손, 허리, 다리를 분리해 냈고, 각 파츠 전용 테스터가 단면을 통해 삽입되었다.
흉상이나 다름없게 된 본체에도 몇 개의 테스터가 꽂혔다.
문득, 가슴의 두 융기를 모방한 부분의 끝자락에 암이 닿았다.
“윽…!”
병기가 된 에리코에게 촉각은 남아 있었지만, 성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뭐야, 새삼스럽게 당연한 걸 가지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았다.
에리코는 그날 이후로 이른바 불감증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자위의 맛을 알아버린 사춘기 소녀였던 그녀에게, 성감대만을 거세당한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수십 분 후, 점검이 끝나고 바디 파츠의 접합이 시작되었다.
머리 위의 모니터가 접속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렸다.
어깨에서 팔, 손의 순서로 장착되고 다음이 하복부 차례가 되었을 때, 에리코는 모니터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다.
“앗… 잠깐, 접속 작업 중단!”
벽면의 중단 버튼을 눌렀다.
배의 단면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집어넣어, 그것을 집어 끌어냈다.
분홍색과 살색의 리드선 두 가닥.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놀고 있는 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었지….”
사실 이건 그 조로쿠 중장의 막무가내 같은 고집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개발 당시, 조로쿠는 이렇게 지껄였었다.
“사내놈들이란 게 원래 욕구가 쌓이기 마련이지. 전장에서 그걸 발산할 수 있다면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될 거다.”
그 말에 에리코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자들도 혀를 내둘렀지만, 조로쿠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필요한 신경 회로 배선만큼은 기어이 만들게 했다.
그 회로의 말단이 지금 에리코의 손안에 있었다.
에리코는 한참 동안 그 리드선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끝부분의 피복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두 가닥의 코드 사이로 구리선이 고개를 내밀었다.
에리코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그 끝을 서로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직’ 하고 구리선 끝끼리 맞닿으며 불꽃이 튀었다.
“히아아아악!”
기대했던 감각이 상반신뿐인 에리코를 관통했다.
그녀에게 있어 몇 주 만에 맛보는 쾌락이었다.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선을 맞댔다.
“아악! …너, 너무 강해…!”
본래 인공 성감대를 거쳐 연결되어야 할 선이다. 다이렉트로 이어버리면 그 신호는 생물학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도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에리코에게 그런 걸 따질 여유 따윈 없었다. 오히려 그 강렬한 자극에 매료되어 중독되기 시작했다.
“히익! …으응, 아! …아아앗…!”
에리코는 정신없이 배선을 단락시켰다. 그때마다 과전류가 강렬한 자극이 되어 뇌로 쏟아졌다.
“이, 이제… 안 돼…!”
구리선끼리 꽉 맞붙였다.
“아아아아아악!”
에리코의 상반신이 작업대 위에서 활처럼 휘어졌다.
인간이었을 때 단 한 번도 도달해 본 적 없는 절정이었다.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제정신을 차린 뒤, 노출된 리드선을 어떻게 처리할지 한 시간 동안 고민했다.
결국 에리코는 두 선을 가변 저항으로 연결해 체내로 되돌리고, 그 조절 다이얼을 하복부 패널 안쪽에 수납했다.
요컨대, 만지면 느낄 수 있는 기관을 재현해 낸 것이다.
“뭐, 발산하는 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행위니까….”
에리코는 붉어진 얼굴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1층으로 올라오니 이미 아침 해가 떠 있었다.
“계획한 날까지 앞으로 30일… 준비를 서둘러야 해. 오늘부터는 뇌가 터질 때까지 밤샘이다….”
30일 후, 국군의 훈장 수여식이 열린다.
(거기서 난 기술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거머쥐겠지. 그리고 그 직후에 자취를 감추는 거야. 천재 기술자 에리코라는 이름이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지만 그 계획에는 이미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같은 시각, 병기 공장 개발실 앞을 지나가던 조로쿠 중장은 한 기술자에게 제지당했다.
“뭐냐, 사부로인가.”
야근을 마친 조로쿠가 불쾌한 듯 턱수염을 벅벅 긁었다.
사부로는 에리코와 같은 I.D. 계획의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참 어린 에리코가 자신의 상사라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기회만 있으면 그녀를 끌어내리려 획책하는 인물이었다.
“예,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사부로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조로쿠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음….”
조로쿠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설마 했는데… 그 계집애, 제 무덤을 파고 있었군.)
결행 전날. 결국 에리코의 계획은 파탄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었다.
끝
오전 7시. 여느 때처럼 충전을 마치고 1층 거실로 내려온 에리코 앞에 이변이 닥쳤다.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수십 명의 헌병대가 들이닥친 것이다.
“개발부 연구원 에리코 아사다. 국가반역죄 혐의로 체포한다.”
자동소총을 든 헌병들이 에리코를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설명 좀 해줄래?”
에리코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차분했다.
“흥, 시치미 뗄 셈이냐. 쓸데없는 짓 말고 순순히 횡령한 I.D.가 어디 있는지 불어라.”
“횡령……?”
“그래. 기념식 전날 생산된 I.D.는 총 50기였다. 그런데 라인 가동 기록을 보니 심야에 한 기가 더 생산됐더군. 그때 공장에 남아있던 건 네년뿐이었지.”
“…….”
“당시엔 다음 날 기계 누전이 발견되기도 해서 기록 장치 오작동으로 결론 났었다. 하지만 네놈이 I.D. 정비용 기자재를 대량으로 빼돌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조로쿠 중장님께 밀고가 들어왔다. 51번째 I.D.…… 그걸 네가 빼돌려 갖고 있다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지.”
“……과연. 밀고한 건 사부로겠네. 딱 그 자식다운 수법이야.”
“목적이 쿠데타인지, 아니면 제 손으로 만든 걸작을 곁에 두고 싶었던 어린애 같은 소유욕인지는 상관없다. 자, 어서 불어. 51번째는 어디에 숨겼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 51번째 말이야, 누구를 소체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흥, 그딴 사소한 것까지. 이 나라에서 하루에 사라지는 계집애들 따위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말을 듣자 에리코는 자신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튼짓하지 마라! 숨겨둔 I.D.를 기동시키려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바로 쏜다!”
에리코를 둘러싼 대원들이 일제히 소총을 고쳐 쥐었다.
“아니야. 방금 건 절반은 자조 섞인 웃음이고, 나머지 절반은…….”
어디선가 미세한 기계음이 거실 안에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다음 순간, 헌병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에리코의 잠옷을 찢고 투박한 장갑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당신들의 그 빈약한 상상력을 비웃어준 거야.”
에리코가 너덜너덜해진 옷가지를 털어냈다. 아침 햇살을 받은 티타늄 합금 바디가 서늘하게 빛났다.
“말도 안 돼, 설마……!”
하지만 헌병들은 눈앞의 광경을 부정할 수 없었다.
헌병대장이 마지막으로 본 것, 그것은 에리코의 가슴에 새겨진 제조 번호 ‘ID-F-051’이라는 문자열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저공비행을 이어가던 에리코의 시야에 가시철조망이 쳐진 국경 지대가 들어왔다.
(이 국경만 넘으면 국군도 함부로 손대지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한 찰나, 국경 감시소에서 다섯 개의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석양을 등지고 다가오는 기체들. 틀림없는 I.D.였다.
“역시 조로쿠 영감탱이, 눈치는 빠르네…….”
양팔에서 빔 사벨을 전개했다.
“할 수밖에…… 없겠네.”
믿을 건 자신의 기술력뿐.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것 또한 자신의 기술력이다.
국경 감시소 사령실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근처에 그 개발자 계집이 숨어있을 거다! 당장 찾아내!”
조로쿠는 씩씩거리며 쌍안경을 들여다보았다.
“5 대 1이라, 승부도 안 되겠군…….”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적기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일제 사격을 뚫고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선봉에 섰던 두 기를 두 동강 내버렸다.
“뭐, 뭐야!?”
같은 모델이라고 하기엔 성능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그, 그런가…… 저 계집, 개조를 통해 출력을 끌어올렸단 말인가!”
남은 세 기가 적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 번의 칼질은 모두 허무하게 흘려보내졌다. 마치 정교하게 짜인 살육의 춤사위 같았다.
“나, 남은 I.D.를 전부 출격시키겠습니다! 총공격이라면 저 괴물이라도 분명……!”
부하들은 겁에 질려 허둥댔다.
“아니, 기다려! 그랬다간 우리 쪽 손해만 늘어날 뿐이다.”
조로쿠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저놈은 오늘 아침부터 보급도 없이 비행을 계속해왔다. 전투로 전력 소비가 극심해지면 금방 에너지 부족으로 멈추겠지.)
30분 후, 전투는 끝났다.
“배치됐던 19기, 전부 파괴됐습니다!”
부하의 보고는 비명에 가까웠다.
조로쿠의 지략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위해 전력을 차례로 투입한 것이 오히려 적에게 각개격파당할 기회만 준 꼴이 되었다.
평원에 흩어진 은색 잔해들을 뛰어넘어, 적기는 곧장 사령실을 향해 날아왔다.
“왜지…… 왜 멈추지 않는 거냐!?”
조로쿠가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에리코가 회의 때 주장했던 ‘가동 시간 연장’에 대한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말도 안 돼. 이 짧은 기간에 혼자서 실용화했을 리가 없어!)
천재적인 지능이 있다 한들, 체력이 버텨줄 리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사령실 창문이 박살 났다. 적의 침입에 부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석양을 받아 둔탁하게 빛나며, 소녀의 형상을 한 병기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로쿠는 그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계집…… 네년 자신이었단 말이냐…….”
“그렇게 됐네요, 중장 각하. 결코 제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요.”
에리코가 조로쿠에게 총구를 겨눴다.
“방금 전투 녹화 데이터랑 목격자들은 전부 지워줘야겠어요. 반역자라는 오명을 쓴 것도 모자라, 이 몸에 대해 세상에 알려지는 건 도저히 못 참겠거든요.”
“흥, 네년에게 딱 어울리는 꼴이군. 너무나 뛰어난 자신의 기술력에 몸뚱이는 물론 인생까지 통째로 잡아먹히다니. 꼴좋구나!”
뒤집힌 웃음소리가 잠시 사령실에 울려 퍼지다,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멎었다.
굉음과 함께 국경 감시소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에리코는 천천히 국경을 향해 발을 뗐다.
문득 발치에 굴러다니는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인간이었던 것의 일부였다.
에리코는 고개를 돌리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라고.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