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이신 ‘지나가던 MC 마니아’ 님께 첫 로봇화 작품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링크된 MC 사이트 『E=mC^2』에서 마인드 컨트롤 계열 작품을 써오셨는데,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나노머신을 이용한 개조와 세뇌라는 기계화 장르를 집필해 주셨네요.
앞으로 미소녀들을 거침없이 개조해 나갈 예정이라고 하시니, 향후 전개가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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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끊긴 깊은 산속.
야생동물의 울음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그곳에, 한 소녀가 숨을 죽인 채 어느 한 점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 끝에 걸린 것은 숲의 풍경과는 지독하게도 어울리지 않는 인공 구조물.
높다란 담벼락과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그곳은 창문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기엔 영 부적합해 보이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녀는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수라장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실험체가 탈주했다!』
『아직 연구소 내부에 있을 거다! 각 구역 폐쇄해!』
『출구에도 비상 경계선 쳐! 경비원까지 총동원해!』
고함에 가까운 지시들이 연구소 내부를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당황해서 허둥대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녀는 어둠 속에서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실험체 하나 놓쳤다고 아주 난리가 났네. 감시 시스템이 해킹당한 줄도 모르고.──
──이 정도면 당분간 들킬 일은 없겠지?──
──자,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얼른 산을 내려가야겠어.──
소녀는 어둠 속으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지식으로만 접했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메탈 유토피아 ~Metal Utopia~
제1화 ~아야네(Ayane)~
유카와 아야네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본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 얼른 가야 해……. 제시간에 못 들어가면 새어머니랑 언니한테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으며 공원 앞을 지나던 아야네는 잠시 망설이다 발길을 공원 안으로 돌렸다.
공원을 밝히는 건 수명이 다해 깜빡거리는 가로등뿐. 여자가 밤늦게 혼자 지나가기엔 으스스한 분위기였지만, 아야네에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빠른 걸음이 어느새 가벼운 달리기로 바뀌어 공원 한복판에 다다랐을 때…….
“……어?”
아야네의 눈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초봄 날씨엔 어울리지 않는 얇은 흰색 티셔츠와 트레이닝팬츠 차림의 소녀. 그녀는 제 팔로 몸을 감싸 안은 채, 가뜩이나 작은 몸을 더 웅크리고 파들파들 떨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저…… 괜찮니?”
아야네가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으음…… 으으으읍!!”
갑자기 소녀가 아야네에게 달려들어 매달리더니, 그대로 입술을 훔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야네는 상황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소녀를 떼어내려 팔을 움직이려던 찰나…… 이상을 느꼈다.
(모, 몸이…… 안 움직여?!)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리도, 고개조차 까딱할 수 없었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본능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흐음, 유카와 아야네라고 하는구나, 언니는.──
공포에 쐐기를 박듯,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뭐냐니…… 지금 언니 정보를 읽어 들이는 중이야.──
목소리와 함께 소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겨우 진정한 아야네가 소녀에게 말을 걸려 했지만, 입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사립 고료 학원 재학 중, 기숙사 생활. 지금은 봄방학이라 본가로 돌아가는 길이고.──
소녀의 입술 역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눈앞에 둔 아야네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서, 설마…… 흡혈귀 같은 거야?)
──그런 비과학적인 존재 아니야.──
──난 나노머신에 의해 개조된, ‘나노머신 생명체’라고 불러야 할 존재지.──
(나, 나노머신……? 확실히 흡혈귀보다는 과학적인 것 같긴 한데…….)
상대가 무엇이든 아야네에게는 상식을 벗어난 괴물일 뿐이었다.
(그, 그런 나노머신 생명체님이 왜 이런 짓을……?)
──알고 싶어?──
아야네는 무의식중에 긍정했다. 원래대로라면 고개를 끄덕여야 했지만,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야네의 의지를 읽어낸 소녀가 답을 내놓았다.
──그건 말이야, 언니가 돼서 숨어 지내기 위해서야.──
(내, 내가 된다고……?)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야네가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소녀는 태연하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연구 시설에서 실험 쥐 노릇을 하다가 질려서 도망쳐 나왔거든.──
──시설 놈들한테 안 들키게 숨어야 하는데,──
──이 차림으로는 금방 잡히는 건 시간문제잖아.──
──그렇다고 사람 눈 피해서 숨어만 있으면 탈출한 의미가 없으니까.──
(그, 그래서…… 나로 변장해서 도망치겠다는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을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죽임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하지만 소녀의 대답은 아야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변장이라기보다, 아예 언니를 통째로 차지해 버릴까 해서.──
(차지해?)
──응, 언니 머릿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지.──
“히익…….”
극심한 공포 탓인지, 순간적으로 소녀의 제어를 뚫고 아야네의 입에서 밭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걱정 마, 언니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냥 나랑 하나가 되는 것뿐이야.──
──언니가 바라는 것도 다 들어줄게.──
(내…… 내가 바라는 것?)
──예를 들면, 언니 새어머니랑 언니를 네 마음대로 조종한다든가.──
(……어?!)
──언니 기억도 다 읽었어.──
──언니, 그 두 사람한테 엄청 괴롭힘당하고 살았잖아?──
──그런데 대놓고 대들지는 못하니까 마음속으로 불만만 꾹꾹 눌러 담고…….──
──마음 한구석에선 그 둘을 머슴처럼 부려 먹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하고 있었지?──
──그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처럼 말이야.──
그 말은 더 이상 소녀의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야네의 마음이 봉인했던 기억이자, 이성이 억눌러왔던 추악한 욕망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아야네의 의식은 급격히 흐릿해졌다.
──그 둘뿐만이 아니야. 언니는 학교 애들한테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전부 다 지배해서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싶다.──
──모두 내 소유물, 인형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말이야.──
(……응, 그거 좋아.)
──그치? 나라면 그 소원, 이뤄줄 수 있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어, 인간의 몸에 나노머신을 심기만 하면 돼.──
──그러면 나노머신이 체세포를 집어삼키고 증식해서, 근사한 인형이 완성되는 거지.──
──어때, 간단하지?──
소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정말로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다.
자신에게 절대복종하는 수많은 마네킹 인형들……. 상상만으로도 아야네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와아, 언니…… 그거 정말 재밌겠다.──
(그럴까?)
──응! 언니라면 분명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런 즐거운 세상을.──
(그래, 네 힘을 빌려서 만들어 줄게……. 우리의 이상향을!)
마음속에서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을 때, 소녀가 아야네를 부드럽게 밀어트렸다. 아야네는 저항 없이 쓰러져 그대로 하늘을 보고 누웠다.
더 이상 움직일 생각도 없었다. 소녀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언니, 지금부터 마스터 코어를 넘겨줄게. 그러면 나노머신은 이제 언니 거야. 언니 마음대로 써.”
처음으로 들은 소녀의 육성. 하지만 아야네에게 그런 건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아야네에게 가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하나…… 소녀가 가진 마스터 코어뿐이었다.
소녀가 아야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아야네의 몸이 한 번 크게 튀어 올랐다. 이어 아야네의 의식 속으로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기억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 들어왔다.
하얀 바닥, 하얀 벽, 하얀 천장, 그리고 하얀 침대……. 온통 하얗게 질린 방에서 보내는 무미건조한 나날들.
반복되는 인체 실험. 철저히 물건 취급당하는 일상. 그 틈바구니에서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능욕.
소녀는 그저 그것들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저 그런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주 조금씩 접할 수 있었던 ‘바깥 세계’의 정보들.
그것이 소녀에게 지금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세계’의 정보를 탐욕스럽게 수집하며 급속도로 구축되는 ‘자아’.
그것을 들키지 않게 숨기며 진짜 ‘세계’로 뛰쳐나갈 기회만을 엿보던 나날들.
그렇게 자유를 쟁취한 소녀. 추격자들의 존재를 의식하며 며칠을 방황하던 끝에, 시설 밖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소녀’…… 아야네와의 만남.
밀려드는 소녀의 기억과 뒤섞이며, 아야네의 의식은 하얗게 점멸하다 이내 사라져 갔다…….
눈을 뜬다. 이어 몸을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양손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손가락 끝을 동시에, 혹은 번갈아 가며 쥐었다 폈다 해본다.
그러다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고, 그것을 응시하며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자 손가락이 가느다란 바늘 형태로 변했다.
길이는 수십 센티미터……. 보통 인간이라면 결코 불가능한 광경을 목격한 순간, 아야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후후, 이제 나도 나노머신 생명체인가…….”
문득 시선을 아래로 던졌다. 그곳에는 이름 없는 실험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래, 소녀에게는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었다. 마스터 코어를 잃은 그것은 나노머신으로 구성된 정교한 인형에 불과했다.
마스터 코어와 소녀의 기억을 계승한 아야네에게, 그것은 ‘소녀’조차 아닌 그저 ‘물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물건’에게도 아직 마지막 임무가 남아 있었다.
“일어나.”
아야네의 명령에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야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스터 코어가 있을 때와는 달리, 그 눈동자에는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소악마 같은 표정을 짓던 얼굴도 무기질적인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누구라도 이것을 보고 인형이라 말한다면 백이면 백 다 믿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런 인형을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아야네는 자제하며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지금 돈을 줄 테니까, 가능한 한 멀리 가. 수단은 상관없지만 눈에 띄는 짓은 하지 말고.”
아야네는 가방 속 지갑에서 가지고 있던 지폐를 전부 꺼내 소녀에게 건넸다. 동시에 지폐를 건네는 손을 통해 대중교통 이용법을 전송했다.
“그리고 슬레이브 코어를 기동해. 놈들한테 잡히면 최대한 ‘나’인 척 연기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 목소리와 함께 소녀의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나노머신 생명체의 자율 행동을 가능케 하는 ‘슬레이브 코어 시스템’이 가동된 증거였다.
“그럼, 가봐.”
명령을 받은 소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제 저 소녀와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아야네는 생각했다.
소녀에게 주어진 역할…… 그것은 희생양(Scapegoat)이었다.
소녀는 이대로 낯선 땅을 떠돌다 결국 연구소 추격자들에게 붙잡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걸로 좋고, 설령 가짜 인형이라는 걸 들킨다 해도 그때쯤이면 마스터 코어…… 즉, 아야네는 이미 사회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을 터였다. 겉모습부터 전혀 딴판이 된 아야네를 찾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뭐, 추격자 놈들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내 편부터 늘려볼까.”
아야네의 당면 과제는 아군을 만드는 것. 아군이 늘어나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다. 정 안 되면 고기 방패로 써먹어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아군…… 아니, 인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야네가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들을 잔뜩 만들어서, 인형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뭐, 이런 느낌일까?”
아야네는 혼자 픽 웃으며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을 유토피아 건설의 첫 번째 거점으로 삼기 위해…….
제1화 ~아야네(Ayane)~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