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さいくる 원안, Kさいくる 감수 아래 집필된 작품들입니다.
K사이클 님께 몇 번이고 피드백을 받아 가며, 그분의 성적 취향에 아주 제대로 꽂힐 때까지 계속해서 고쳐 썼습니다.
악몽은 때로 잔혹한 선고가 되기도 한답니다는 꼭두각시 까마귀들의 원조격임
잠드는 것보다 편한 일은 없다?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했답니까.
잠이란 건 아주 위험한 거예요.
무방비해지니까요, 큭큭큭……
자, 저길 좀 보세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괴로운 듯 몸부림치는 소녀가 있군요.
말 그대로, 악몽에 좀먹히고 있다는 뜻이죠.
“으윽, 으으음…….”
백의를 입은 남자가 소녀를 철판 위에 눕히고 메스로 훑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은 과거 2차 대전 중 독일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죠.
몸을 갈라 열고 다양한 약품의 반응을 살피거나, 내장을 어디까지 도려내야 죽지 않는지, 그런 것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건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죠.
“으, 윽…… 으으…….”
하지만 이 실험은 그때와는 결이 좀 다른 모양이네요.
남자는 소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것 같거든요…….
“아, 으…….”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군요.
자자, 일어나세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하늘도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꿈의 뒷이야기를 감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라니까요?
***
“으아아아아악! 하아, 하아…… 꿈인가, 살았다아. 진짜, 왜 싫은 꿈일수록 이렇게 생생한 거야?”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최악의 꿈이었다.
앞은 안 보이고, 몸은 안 움직이고.
아프지는 않은데 몸속 내용물을 뿌리째 뽑아내고 있다는 건 다 느껴지는, 그런 악몽.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답답함이랑 뇌를 벗겨낼 때 시간이 뒤집히는 것 같은 감각이 묘하게 리얼해서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아, 기분 더러워.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몸이 왜 이래.”
유독 몸이 무겁다.
이상하네, 어제 일찍 잤는데.
아직 월요일인데 수업 시간에 졸면 또 한 소리 듣겠지.
아니, 언제 졸아도 혼나는 건 매한가지인가.
시계 바늘이…… 7시 반?! 이런 젠장, 밥 먹을 시간도 없잖아.
“영차.”
일어나는데 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기름칠 안 한 자전거 같다.
잠을 잘못 잤나, 아니면 자다가 한기라도 들었나?
마음을 가다듬고 세면대로 향했다.
아무리 바쁜 아침이라도 머리 세팅은 나한테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그도 그럴 게, 난 여자로 착각할 만큼 동안이다.
적어도 머리 모양이라도 좀 멋을 부려야 남자처럼 보이니까.
뭐,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얼굴 덕분에 여자애들이랑 금방 친해질 수 있고, 당당하게 디저트 카페 가서 단 걸 주문할 수도 있으니까.
“슈퍼 하~드♪ 라라라라라라라♪ (나도 참, 옛날 노래를 다 아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진다. 음, 여전히 여자 같은 얼굴이다.
게다가 오늘은 여드름 하나 없이 피부가 유독 하얗네.
참 나, 난 이런 뽀얀 피부 따위 필요 없는데 말이야.
“오케이, 세팅 완료……?”
위화감이 느껴져 거울을 빤히 들여다봤다.
뭔가 이상하다…….
“……아~ 그렇구나. 어제 셔츠도 안 입고 잤나 보네. 어쩐지 내 섹시한 가슴이 다 보인다 했…… 섹시?”
확!
나, 나, 나나나…….
“나아아아아아악!!!”
이웃집에 민폐가 될 법한 비명.
하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쓸 만큼 내 뇌는 평온하지 않았다.
없어야 할 게 있고, 있어야 할 게 없다.
이거 꿈인가, 꿈인 건가? 어차피 꿈이라면 좀 기쁘기도…… 야, 이 미친놈아! 이 난리통에 무슨 불경한 생각을!
“헉, 안 돼 안 돼. 정신 차리자.”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고 콸콸 쏟아지는 물에 머리를 처박았다. 정신이 나간 탓인지 물의 차가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기를 닦고 다시 거울을 보지만…… 거울 속에는 여전히 가슴이 비치고 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얌전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가슴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내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갔나? 아니, 그럴 리가. 확실히 내 게 좀 작긴 하지만.”
아들의 행방을 찾다가 낯선 구멍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고 말았다.
“아후으…….”
손가락이 스치는 느낌이 묘하게 기분 좋다.
버릇이 될 것만 같다…….
“이거, 크흣, 나쁘지 않은데…….”
“……쿠레하, 일어났니?”
“게엑?!”
엄마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떡하지? 당신 아들이 사실은 딸이 됐고 아침부터 거기다 손가락을 넣고 있었다고 말해? 아니, 그건 안 돼! 인간으로서 소중한 무언가가 박살 나서 밤하늘의 별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난 속옷 입는 것도 잊은 채 교복 상의를 걸치고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튀어 나갔다.
“잠깐 쿠레하, 어디 가니?!”
“학교 가는 게 당연하잖아!”
“기다려, 쿠레하!”
***
학교에 도착할 즈음엔 나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아니, 진정하고 있을 때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드르륵.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벽에 기대어 빈둥거리고 있던 친구랑 눈이 마주쳤다. 이 녀석 이름은 네코야나기.
나쁜 놈은 아닌데, 좀 시끄러운 놈이다.
피곤할 때는 가급적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눈이 마주쳤는데 입 꾹 닫고 있는 것도 모양새가 빠진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여어.”
“오, 쿠레하 아냐. 왜 그래, 오늘 머리 모양이 이상한데?”
예상대로 이 녀석은 벽에서 떨어져 이쪽으로 다가왔다.
“시끄러워, 시간이 없어서 대충 왔단 말이야.”
“그래? 그거 아쉽네. 뭐 어때, 그게 여자들한테 더 먹힐지도 모르잖아, 영차.”
네코야나기 녀석이 뒤에서 덮치듯 매달렸다.
이 자식은 키 작은 친구한테 올라타는 버릇이 있다.
늘 있는 일이지만, 진짜 짜증 나네.
“무거워~…… 너 무슨 동자귀신이라도 붙었냐.”
“하하하하하…… 어라?”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저기 말이야, 너 쿠레하 맞지?”
“하? 그럼 누구로 보이는데.”
“아니, 뭔가 평소보다 귀여운…… 아니 아니, 그,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어서.”
헉, 네코야나기 녀석 의외로 예리하네.
이런 데서 들키면 난리가 나겠지…….
“그래? 머리 내려서 그런 거 아냐? 왜, 왜 그렇게 빤히 봐.”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안 돼.
얼굴이 화끈거린다.
여자가 돼서 그런가? 야, 제발 좀 봐줘. 내가 남자한테 반하는 거야?! 잠깐, 이건 일시적인 착각일 뿐이야.
분명 1분 뒤면 평소의 나로 돌아올 거야.
그래, 1분만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야…….
그때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나이스, 쌤!
“아, 선생님 오셨다. 자리에 앉아야지. 나중에 봐.”
“야, 야! 쿠레하!”
***
수업이 시작됐다.
네코야나기가 만진 뒤로 자꾸 가슴이 신경 쓰여서 필사적으로 팔을 붙여 가렸다.
제길, 압박 붕대라도 감고 올걸…… 아니, 그런 게 집에 있을 리 없지.
어쨌든 어떻게든…… 그래, 벨트가 있잖아.
난 책상에 엎드리는 척하며 벨트를 풀어 가슴에 칭칭 감았다.
조금 숨이 막히는 기분도 들지만, 이걸로 겉모습은 어떻게든 됐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버텨보자.
“후우………….”
교과서를 보는 척만 하며 수업을 듣는다.
근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제 뭐 특별한 걸 했었나? 음…… 없는데.
밥 먹고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6시쯤 잠든 게 부자연스럽다면 부자연스럽지만.
저녁밥에 약이라도 탔나? 탄다면 엄마겠지만, 날 여자로 만들어서 얻는 이득이 없잖아.
……그 할망구라면 독약 한 사발 정도는 먹이고도 남을 인간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약을 구할 인맥이 그 아줌마한테 있을 리가 없다. 아는 약사라도…… 아니, 있었지.
근처에 사는 외삼촌이 의료기기 업체 연구소장이다.
그 사람이라면 수면제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어쩌면 신약 실험 대상으로 쓰인 걸지도 모른다.
“……저기.”
어쨌든 수상한 건 엄마랑 삼촌이다.
집에 가면 따져 물어야지. 근데 그러고 나서 어떡하지…….
“저기, 저기 좀 봐.”
“응?”
고개를 드니 옆자리 카야노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수업 다 끝났는데?”
“엣?!”
주변을 보니 교과서를 펴고 있는 건 나뿐이고, 다른 애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와, 쪽팔려…….”
“무슨 일 있어?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그게…… 뭐, 그렇지.”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자가 되어 있었다, 같은 소리를 누가 믿겠어.
설령 말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 해도, 그건 절벽에서 뛰어내릴 각오를 한 바보거나 약에 취한 망상가임이 틀림없다.
“상담해줄까?”
“됐어, 별거 아냐…….”
약이라면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 상담해봤자 창피만 당할지도 모르고.
“그래. 다음 시간은 과학이니까 먼저 가 있을게.”
***
오늘 과학 수업은 드물게 재밌어 보인다.
선생님이 은색 공처럼 생긴 기계를 들고 와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저건 TV에서 본 적 있다.
분명 정전기를 일으키는 기계였지.
“이 기계는 반데그라프형 정전 고압 발생 장치다. 한마디로 정전기 만드는 기계지. 자, 감전돼보고 싶은 녀석 있나?”
참 살벌한 제안이다.
감전되고 싶냐는 말에 좋다고 손을 들 녀석이 어디 있겠냐고.
“음, 뭐야. 아무도 없어?”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이대로 수업이 진행되나 싶었는데…….
“선생님! 쿠레하가 딱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네코야나기 이 자식이 미쳤나, 나를 지목했다.
“쿠레하가 오늘 머리 세팅을 안 하고 왔다길래, 정전기로 확 세워주면 딱 좋을 것 같아서요~!”
어느새 내가 실험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교실 안에 가득 찼다.
이렇게 되면 도망치기도 쉽지 않다.
두고 보자, 네코야나기 자식.
“그래. 그럼 쿠레하, 앞으로 나오렴.”
내 눈앞에는 웅웅거리며 소리를 내는 은색 물체가 놓여 있다.
안 아프다, 안전하다. 그렇게 말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에라, 모르겠다!
“에잇!”
지지직, 지직…….
손을 대자마자 정전기가 커다란 불꽃을 튀기며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뭔가 기계 상태도 이상하다.
본능 같은 게 나한테 경고를 보낸다.
위험해, 이건 위험하다고. 손 떼!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양손은 점점 뜨거워지고, 허용치를 넘긴 전기가 한꺼번에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더니…….
『피가악?!』
……정신을 차려보니, 채널 안 맞는 TV처럼 노이즈가 가득 차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쏴아아 하는 심한 이명도 들린다.
쇼크로 어떻게 돼버린 걸까?
“괜……냐? 야…… 쿠레…….”
“……하고…… 안전……해, 위험…….”
잠시 후, 점점 시야가 트이고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노이즈는 있지만, 어떻게든 사람 형체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어쨌든 진정해라! 쿠레하…… 맞니?”
선생님 목소리다. 진짜, 이런 위험한 걸 실험에 쓰다니 믿을 수가 없네.
전혀 괜찮지 않지만, 난 소란 피우는 걸 싫어한다.
조금 무리를 해서 내 상태를 전했다.
『즈즈…… 개, 개…… 괜찮아요. 그냥 좀 어지러워서 그래요.』
“정말 괜찮은 거야? 엄청난 소리가 났다고.”
카야노의 목소리다. 별로 안 괜찮은 것 같지만…… 뭐, 금방 가라앉겠지.
“선생님! 제가 쿠레하를 보건실로 데려갈게요!”
“그래, 부탁한다.”
네코야나기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만.
저 녀석한테 안기면 몸 상태를 들키고 말 거야!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오늘 아침에 서두르느라 속옷도 안 입었단 말이야!
“괘, 괜찮다니까! 다들 너무 오버하네. 자, 봐봐. 멀쩡해, 멀쩡!”
난 비틀거리며 일어나 필사적으로 무사함을 어필했다.
“정말? 하지만…….”
말을 흐리는 카야노.
그 시선 끝에는 표면이 새카맣게 타버린 정전기 발생 장치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와, 박살 났잖아.
자세히 보니 내 손도 그을려 있고!
“우와아아…… 어라, 이상하네. 아무렇지도 않아.”
“거짓말?!”
손바닥을 보고 카야노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아니, 진짜라니까. 하나도 안 아파. 기계 그을음이 손에 묻은 것뿐이야. 아마 씻으면 지워질걸.”
이후 선생님한테 야유가 쏟아졌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수업이 끝났다.
참고로 이 검은 그을음은 의외로 지독해서 비누로 씻어도 안 지워졌다.
***
점심시간.
난 네코야나기의 끈적한 시선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옥상은 원래 출입 금지지만, 뭐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적당한 그늘을 찾아 벌러덩 누웠다.
“……힘들어.”
도저히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전기 쇼크 이후로 근육통처럼 몸은 삐걱거리고, 힘은 안 들어가고, 아주 조금이지만 눈에 노이즈도 남아 있고…… 진짜 운도 없지.
그래, 지금 나한테는 ‘운’이 안 붙어 있어.
“………………풉.”
아, 안 돼. 왜 난 꼭 중요한 순간에 이런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걸까?
“……뭐가 그렇게 웃겨?”
“푸핫?!”
정신을 차려보니 카야노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여자,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만 골라서 말 거는 거 아냐?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여기 출입 금지거든.”
“그럼 너도 들어오지 마.”
“싫어. 난 옥상이 좋단 말이야.”
겨우 네코야나기를 따돌렸는데, 카야노는 복병이었다.
아~ 점심은 좀 편하게 쉬고 싶었는데.
도시락이랑 물통을 든 카야노가 내 옆에 털썩 앉는다.
“밥 안 먹어?”
“……왠지 배가 안 고파. 아침도 굶었는데 말이야. 역시 전기 쇼크 때문인가?”
“그렇구나…… 저기.”
“응?”
“쿠레하, 뭔가 분위기 변했어.”
“엣?”
“음, 뭐랄까…… 아침부터 신경 쓰였는데. 클래스 안에서 쿠레하만 좀 다른 느낌이 들어. 착각일까?”
네코야나기뿐만이 아니었다.
이 반 친구도 상당히 예리하다.
“역시 카야노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따뜻한 바람이 옥상을 스쳐 지나간다.
왠지 모르게 다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똑같이 여자가 돼서 친밀감이 생긴 걸까.
아니면 원래 카야노가 남의 비밀을 떠벌리는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카야노랑 딱히 사귀는 건 아니지만, 여사친 중에서는 제일 친하다.
공통된 취미가 있는 건 아닌데, 같이 있으면 편하다고 해야 하나, 옆에 있어도 기 빨리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렇구나. 이 녀석 힐링계였네.
뭐가 힐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코야나기랑 같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난 큰맘 먹고 말해버리기로 했다.
“저기 말이야, 카야노…….”
“응?”
“너 말이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같은 거……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되는 일이라니,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 여자가 되어 있었다든가.”
“…………”
어색한 침묵.
망했다, 이럴 거면 말하지 말걸.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잊어줘.”
“……믿어.”
“헤?”
“쿠레하가 그렇다면, 믿을게.”
야, 야, 잠깐만.
쿠레하라면 믿는다고? 뭐야, 이 두근거리는 전개는! 설마, 그거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는 소리야? 아, 위험해……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지…….
“아, 아하하하하! 목마르네. 야 카야노, 그 물통 보리차지? 좀만 줘.”
“응, 여기.”
카야노가 건네준 보리차를 난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왜일까, 보리차 맛이 전혀 안 난다.
바드득, 바득…….
“야 카야노, 이거 진짜 보리차 맞아? 물이 아니가각키이이이……?”
“어, 잠깐만 쿠레하?”
『피기갸비부비바비 (아니 목이 좀)…… 가, 퍄아?!』
뭐야?! 목이, 가, 으…….
『우에엑?!』
목이 저릿한 느낌에 참지 못하고 보리차를 뱉어냈다.
뱉어낸 것들 사이에는 작은 코일, 벗겨진 은색 도금 조각 같은 것들, 짧은 전선들이 섞여 있었다.
“꺄악! 뭐야, 그게…….”
『비, 부쯕, 쯔…… 가, 카카…… (나도 뭐가 뭔지)』
“쿠레하?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카야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비명을 지른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도 나도 모른다.
그저 목이…… 목이…… 으, 히, 열려?!
삐- 삐- 하고 경고음 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직후에 목이 ‘어긋나더니’, 안에서 원통형 기계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카야노가 달려 나간다.
기다려, 가지 마! 나 혼자 두지 마!
그렇게 외치려 해도 내 목에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난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멍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카야노가 울면서 도망친 게 너무 슬펐다.
그 원흉이 됐을, 목에서 굴러 떨어진 물체를 집어 들었다.
그건 원통이라기보다 어묵 모양의 기계였고, 윗면이 그물망처럼 되어 있었다.
여기로 보리차가 스며든 모양이다.
표면은 은색이고 아주 새것 같다.
바닥 부분에는 전극이랑 조인트를 위한 금속 부품이 있어서, 이대로 끼워 넣으면 고정될 것 같았다.
난 물기를 닦고 정체불명의 기계를 목의 구멍에 밀어 넣었다.
찰칵.
『부쯕…… 삐이이이……』
예상대로 그건 목에 딱 들어맞았다.
열려 있던 목도 잠시 후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 아, 아, 아아아~…… 역시나.』
목소리가 나온다.
틀림없다, 내 목소리는…… 이 기계에서 나오고 있다.
“설마.”
난 의구심을 품고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살피면 살필수록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내 몸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법한 선들이 무수히 그어져 있었다.
그건 수술로 절개한 자국 같은 것부터 관절의 접합부 같은 것까지 다양했다.
이상한 꿈, 유독 길었던 수면 시간, 여자의 몸, 붙잡으려던 엄마의 태도, 의료기기 업체의 삼촌, 부자연스러운 감전, 그리고 내 몸에서 튀어나온 쇳덩이와 기계들.
모든 것이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몸은…… 기계였어.”
대체 어디까지 기계인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는 동안 개조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밖에 없어…….”
***
“뭐, 너 조퇴한다고?”
“어, 대충 좀 둘러대 줘. 부탁한다, 네코야나기.”
난 교실로 돌아와 네코야나기한테 조퇴하겠다고 전했다. 이 자식은 땡땡이 상습범이다.
내가 없는 것도 어떻게든 얼버무려 주겠지.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이걸로 빚 하나다?”
“웃기지 마, 아까 전기 쇼크 제물로 삼았잖아. 퉁치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가방을 챙겼다.
나가는 길에 카야노와 마주쳤다.
난 한마디, “미안해, 놀라게 해서.”라고만 하고 그대로 교실을 나왔다.
“기다려, 쿠레하!”
“어……?”
카야노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나야말로 미안해.”
“아냐, 괜찮아. 그럼 내일 봐.”
그렇게 카야노와 헤어졌다.
하지만 나한테 내일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다행히 교문에는 선생님이 없었다.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그 길로 삼촌의 연구소로 향했다.
학교와 연구소는 꽤 가깝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거리.
하지만 그 길이 유독 고통스러웠다.
천천히밖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
당연하겠지.
난 오늘 아침부터 단 한 번도 충전하지 않았으니까.
연구소에 도착할 즈음엔 걷는 것조차 고작인 상태가 됐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삼촌을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안내하는 젊은 언니는 전화로 두어 마디 나누더니, 일어나서 나를 삼촌의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삼촌이 있다는 연구실은 지하에 있었고, 그 문은 두꺼운 방화문이었다.
중요한 서류가 보관되어 있거나, 아니면 사고 위험이 있는 실험을 하는 방이겠지.
무거운 문을 여는 걸로 에너지가 바닥났는지, 난 방에 들어가자마자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방 안에는 삼촌이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왔구나, 쿠레하. 네 엄마한테 연락받았다. 주의도 안 듣고 학교에 갔다면서.”
“삼촌…….”
“여기까지 왔다는 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눈치챘다는 거겠지?”
“뭐, 대충은요…….”
“그 상태로는 힘들 거다. 기다려라. 지금 충전해 줄 테니까.”
삼촌은 내 옷을 벗기더니 가슴을 묶었던 벨트를 풀고 등 뒤에 케이블을 꽂았다.
“으아아…….”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내 안으로 전기가 흘러 들어온다는 묘한 감각. 왠지 모르게 아주 기분이 좋았다.
더 신기한 건, 삼촌 앞에서,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알몸인데 수치심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오히려 보여줘서 기쁘다거나, 쑥스럽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네코야나기 때도 그렇지만, 나 남자한테 금방 반하는 체질이 된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몸을 만든 게 삼촌이라서 그런 걸까.
삼촌은 등에 케이블을 꽂은 채인 나를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정면에 쪼그려 앉아 다정하게, 타이르듯 말을 시작했다.
“그래, 뭐 묻고 싶은 게 있겠지? 삼촌한테 말해보렴.”
“내 몸은…… 어디까지 기계예요?”
“안타깝지만, 완전히 기계란다. 뇌를 비롯한 기관을 가공해서 쓰고는 있지만, 손대지 않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어.”
“난 이제 사람이 아니라는 거네요…… 왜 그랬어요.”
미안한 듯 삼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네 부모님이 동의해서 한 일이야.”
“왜 나한테 숨긴 거예요!”
“네 엄마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했었지. 네 인격을 뺏는 건 내 본의가 아니었어. 그래서 적어도 엄마 입으로 진실을…….”
“나 사이보그 동경했단 말이에요!”
“……어?”
“그렇게 쉬쉬하지 않아도 말만 해줬으면 개조당했을 텐데. 아아, 기계 몸…… 최고야!”
삼촌은 그저 멍하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 정말 괜찮은 거냐? 넌 실험 동물로 부모한테 팔린 거라고?!”
“별로, 날 팔아넘긴 녀석들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게다가 기계가 될 수 있다면 실험 동물이 돼도 좋아. 아 맞다, 오늘 정전기 발생 장치를 만졌거든요. 고장 난 데 없는지 좀 봐줄래요?”
“아, 어…… 그래, 저기 침대에 누워라.”
난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삼촌이 내 몸을 열고 기계인 나를 만져주다니…… 아아, 내가 진짜 사이보그라는 게 실감 난다.
처음엔 아플까 봐 걱정했는데, 삼촌의 정비는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케이블을 뽑았다 꽂았다 하는 전기 신호도 아프다기보다 기분 좋을 정도다.
“콘덴서가 나갔군…… 윽, 메모리가 절반이나 탔잖아. 쿠레하, 기억 장애는 없었니?”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몸이 유독 무거웠어요.”
“흠, 움직임이 둔해진 건 에너지 부족이 아니라 모션 프로그램 메모리 이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위험했어, 이걸 방치했다면 쿠레하의 기억이 지워졌을지도 몰라.”
“그건 싫은데…….”
“잠깐 기다려봐, 휴먼 에뮬레이트를 해제할 테니까.”
탁.
“가가…… 아, 와아! 눈앞이 모니터처럼 보여요…….”
“메모리 파손을 확인해 봐.”
“메모리 파손율 48%, 허용 범위 초과, 수리해 주십시오…… 우와, 대박. 진짜 사이보그 같아.”
“같은 게 아니라 진짜라니까.”
“근데 왜 여자 몸으로 만든 거예요?”
“아, 그건…….”
삼촌은 얼굴을 붉히며 순간 주춤했다.
삼촌은 독신이다.
어쩌면 여자 같은 얼굴인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짜 우리 집안은 변태들 천지라니까. 나를 포함해서.
“알았어요, 삼촌 취향이죠? 그렇죠? 딱히 탓하진 않을게요. 대신 나 삼촌 집에서 살게 해줘요. 그 집에는 이제 돌아가기 싫으니까.”
“그, 그래……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거두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흐음, 삼촌은 날 버리지 않았다는 거네…… 왜요?”
“회사 방침이라곤 해도 조카를 기계로 바꿔버렸으니까. 이기심인 줄은 알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욕해도 좋다.”
왜일까, 난 삼촌을 원망할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이제 기계잖아, 뭘 신경 써.
내 마음대로, 자유로워지자.
난 일어나서 삼촌을 껴안았다.
“쿠, 쿠레하?”
“왠지 말이야…… 나 삼촌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있어도 되죠?”
“날 좋아한다니, 넌 원래 남자였잖아.”
“그러라고 여자로 만든 거 아니에요? 그럼 됐지 뭐…… 아, 만약 삼촌 취향이라면 좀 더 여자애답게 노력해 볼게요.”
난 만면에 미소를 띠며 삼촌을 향해 웃어 보였다.
***
어이쿠, 잠자는 공주님은 악몽이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저는 나이트메어.
수많은 악몽을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진정한 악몽이란 곧 현실.
사람은 꿈이 아니라 이 현실에 고통받는 법인데 말이죠.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그럼에도 잠은 위험한 것이니까요.
기계가 된 지금,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마음을 지배당해버릴지도 모른답니다.
부디 잊지 마시길, 큭큭큭…….
눈을 뜨자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시야를 찔렀다.
머리맡에는 시끄러운 알람 시계와 뜯어 놓은 민트 캔디 통.
하루의 시작마다 매번 보면서도 전혀 인상에 남지 않는 사소한 것들, 흔히 말하는 ‘당연한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파편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따뜻한 안도감을 주는 특별한 존재로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비일상의 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꿈이었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소리가 된 말을 귀로 듣고 다시 내 안으로 되새기며, 현실감과 내 생각의 정당성을 동시에 얻으려 애썼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했다.
방금 전까지 겪었던 그 일은, ‘꿈’이라는 한마디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도를 넘어서 있었으니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나를 누군가가 메스 같은 것으로 찢어발기고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수술받은 경험도 없는 내가 메스 같은 반원형 칼날에 베여본 적이 있을 리 없고, 실물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는 그것을 현실로 인식하기에 충분할 만큼 생생했고, 실제로 고통을 느꼈던 기억까지 선명했다.
그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데, 내장 적출이 끝나자 메스를 든 누군가가 내 머리에 손을 대더니 직후에 두개골까지 잘라내 버렸다.
드러난 뇌에 칼날이 박히고 머릿속은 기억의 홍수로 뒤죽박죽이 된다.
중력, 시간, 존재감까지 사라져 버리고…… 그 뒤로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겨울옷은 덥다고 느껴질 계절인데도, 잠에서 깬 몸은 차갑게 식어 있어 움직이기가 힘들다.
간신히 말을 듣는 오른손에 의지해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 보았지만, 통증도 난도질당한 흔적도 없었다.
얼음이 녹는 듯한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꿈이라는 건 나쁜 것일수록 현실감을 띠는 걸까.
평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생각 덕분에 살았다.
현실감이 넘쳤기에 오히려 ‘이건 꿈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머리로는 당연히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내 안의 또 다른 감정이 시끄럽게 위기를 호소하는 바람에 억지스러운 이유라도 갖다 붙여야 했던 거다.
잠에서 깨자마자 이런 골치 아픈 짓을 한 탓에 머리가 피로로 쌕쌕거린다.
정말이지 다시 한숨 자고 싶은 심정이지만, 시계 바늘은 벌써 7시 반을 가리키려 하고 있었다.
이제 1분 1초가 아쉬운 시간이다.
짜증을 억누르며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침대가 삐걱거릴 때 나는 그 거슬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깜짝 놀라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지만, 익숙한 물건들 외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분 나쁜 땀을 솟게 했다.
이 방, 아니 이 집에는 침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기분 탓인가?”
어질러진 방 안을 둘러보고 마룻바닥을 더듬어 봐도, 그런 소리를 낼 만한 건 찾을 수 없었다.
소리는 그걸로 끝이었기에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더 고민했다간 지각이다.
자, 준비 단계에서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문 열자마자 있는 세면대다.
아침의 세면대.
여기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반드시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거울에 비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 꼬맹이를 나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을 정도의 동안인 데다, 키도 150cm(150cm)에 못 미치는 경이로운 단신이다.
머리를 세팅하고 눈썹을 날카롭게 그려야 겨우 ‘좀 노는 중학생 남자애’ 정도로 보일 뿐이다.
보고 있으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여자애들이 마스코트처럼 귀여워해 주거나, 영화를 초등학생 요금으로 볼 수 있는 것 따위는 나에게 장점이라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머리를 만지며 힐끗힐끗 내 얼굴을 살핀다.
너무 늦은 성장기도 고등학생쯤 되면 오겠지 하고 기대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한숨을 내쉬며 위장 공작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거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전신 밸런스를 확인했다.
머리 모양은 문제없다.
눈썹도 날카롭게 잘 그려졌다.
하지만 다 자란 건 아니더라도, 여성 특유의 곡선을 띠기 시작한 몸은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
말도 안 되는 감상에 스스로 놀라 서둘러 셔츠를 걷어 올렸다.
“어, 어어?”
가슴의 촉감이 평소와 다르다.
그 손을 그대로 아래로 옮겨, 작지만 오랫동안 친숙했던 내 분신을 만지려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전에는 트렁크였던 속옷이 여성용 팬티로 바뀌어 있다.
조심스레 내려서 육안으로 확인하자, 거기에는 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 여자의…….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집 안은커녕 동네 전체에 울려 퍼졌을 비명.
이어 ‘말도 안 돼, 장난해?!’라고 포효하는 내 마음.
현실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상식을 벗어났다.
“쿠레하(黒羽), 무슨 일이야? 엄청 큰 소리가 들렸는데.”
패닉 상태인 내 뒤에 어느새 엄마가 서 있었다.
서둘러 팬티를 올리고 셔츠 단추를 채웠다.
“아, 그게,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래!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없다고? 그럴 리가 없잖니.”
엄마의 촉은 날카로웠다.
나는 “급해서 그래!”라고 외치며 엄마 옆을 빠져나가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잠깐 쿠레하, 할 말이 있어. 문 열어.”
엄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서둘러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니, 기다려, 쿠레하!”
어머니, 아들이 지금 큰일 났으니까 제발 상관하지 마세요.
솔직히 말하면, 큰일일수록 당신과는 엮이고 싶지 않다.
애초에 어린 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갔던 당신에게 기다리라고 할 권리는 없다.
나는 엄마의 추격을 따돌리고, 애용하는 엄마 자전거 2호(1호는 도둑맞았다)에 올라타 학교로 향하는 길을 서둘렀다.
◆◆◆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내 머리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교문으로 들어설 즈음엔 어느 정도 머리도 식었고, 혼란스러웠던 생각도 진정되었다.
그래야만 했다.
앞날을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질은 낮고 양은 적은 내 뇌세포를 총동원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했으니까.
그리고 고민해야 할 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미 교복 차림으로 학교에 들어와 버렸다.
지금이라도 빠져나갈 순 있지만, 갈 곳을 생각할 시간도 없으니 일단 수업을 듣고 다음 일은 그사이에 생각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교실로 들어가자 심심한 듯 하품을 하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네코야나기(猫柳), 통칭 네코.
친한 악우이자, 도를 넘게 시끄러운 녀석이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나는 작게 혀를 찼다.
눈이 마주친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
네코는 이름값 하느라 변덕스럽고 호기심이 왕성한 데다, 성격까지 싹싹해서 한번 눈에 띄면 회피 불가능이다.
신이 나서 다가오는 네코를 향해 힘없이 손을 흔들어 답했다.
녀석이 내 속마음을 알 일은 영원히 없겠지.
“여, 쿠레하.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냐니, 평일이니까 학교에 온 거지.”
“뭐야, 기분 안 좋네~. 자랑하던 삐죽 머리가 축 처져서 그런가?”
“어?”
그 말에 만져보니 정제료가 잘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따라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고 기름을 튕겨내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 머리카락에는 남자용 포마드가 안 듣는 건가?
“시끄러워, 늦잠 자서 정신없었단 말이야.”
“뭐 어때, 그게 더 인기 있을지도 모르잖아? 남자들한테 말이야. 캬하하하!”
그렇게 말하며 네코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 녀석은 나를 짜증 나게 만들며 즐거워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나란히 서면 키 차이가 도드라지니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항상 싱글벙글 웃으며 어깨동무를 해댄다.
“하하하, 어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네코가 내 어깨에서 팔을 뗐다.
의아해서 돌아보니 녀석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근데 너 쿠레하 맞지?”
“하? 그럼 누구로 보이는데.”
“아니, 뭔가 평소보다 귀여…… 아니, 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서.”
“분위기가 다르다고?”
둔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네코는 의외로 예리했다.
아니, 짐승처럼 여자를 갈구하는 사춘기 소년들 중에서도 유독 굶주린 녀석, 네코야나기.
녀석에게는 상대가 남자라는 고정관념 따위 통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둘러대야겠다는 생각에 적당히 말을 돌리기로 했다.
“뭐 어때, 분위기 좀 다르면 안 돼? 오늘은 나른해서 힘 좀 뺐다. 여자처럼 보이는 날도 있는 거지, 안 그래?”
“그, 그렇긴 하지! 하하, 이거 진짜 귀엽네. 여장하고 헌팅이라도 나가봐. 웬만한 남자들은 홀랑 낚이겠는데?”
“이, 이 바보 네코가! 내가 귀엽다는 말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코의 ‘귀엽다’는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을 근질거리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네코의 태도가 변한 것 같았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와 처음 대화하는 순진한 학생처럼.
‘……나, 나 왜 부끄러워하는 거지? 네코 시선이 뜨거워.’
그만해, 난 그럴 생각 없어, 없을 거야…… 아니, 단호히 없다!
그러는 사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위험해, 선생님 오셨다.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야, 네코 너도 빨리 가.”
“아, 어.”
네코의 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앉자 녀석도 마지못해 자기 자리로 향했다.
◆◆◆
교과서를 펴고 수업 듣는 척하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네코가 보내는 묘하게 뜨거운 시선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되짚어 보면 어제는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5시도 안 됐는데 의료기기 업체에 다니는 삼촌이 서류 가방을 들고 찾아와 엄마와 한참을 얘기했다.
퇴근길이라고 했지만, 삼촌은 영업직도 아니고 5시 전에 퇴근할 수 있는 한직도 아니다.
나를 보더니 “그럼, 이제 가봐야겠다”라며 서류 가방을 둔 채 도망치듯 돌아가 버렸다.
그 후 엄마는 삼촌에게 받았다는 영양제 같은 걸 자꾸 권했지만, 엄마의 눈빛을 믿지 않는 나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평소 요리도 안 하던 엄마가 저녁을 차려 테이블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기묘하긴 했지만, 이걸 안 먹으면 식재료가 아깝다.
우리 집 가계는 그리 넉넉지 않다.
배도 고팠기에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손맛을 봤다.
맛없다, 내가 만드는 게 낫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졸음이 쏟아졌다.
너무 강렬해서 양치도 못 하고 방으로 돌아가 그대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거기서 기억이 끊겼으니 바로 잠들었을 거다.
잠깐 누워 있으면 잠이 깰 줄 알았는데 결국 아침까지 푹 자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수면제를 먹였을 가능성이 높다.
‘설마, 성별을 바꾸는 신약이라도 만든 건가?’
삼촌은 엄마가 없을 때, 유치원부터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나를 돌봐준 사람이다.
참고로 그 여자―― 엄마와 혈연관계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빠의 동생이다.
평소엔 사람 좋고 느긋한, 별 볼 일 없는 아저씨지만 의료 기업의 고문 기술사이며 상당한 실력자다. 덤으로 부자다. 삼촌이 거래에 응할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엄마가 삼촌 혹은 삼촌이 다니는 기업에 나를 모르모트로 팔아넘겼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저기.”
하지만 엄마는 그렇다 쳐도 삼촌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신매매를 할까? 삼촌은 의료라고 해도 의수나 인공 장기 개발이 주 업무다. 장기 매매라면 몰라도 성전환 같은 기괴한 분야는 전문 밖일 텐데――.
“저기, 저기 좀 봐!”
“응?”
고개를 드니 옆자리에 앉은 카야노(茅野)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정말, 수업 끝났거든.”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교과서를 들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다른 반 친구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와, 창피해! 빨리 좀 말해주지.”
“그러니까 말했잖아.”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그렇네. 미안.”
“왜 그래, 멍하니. 고민 있어?”
“어, 뭐…… 그렇지.”
이 녀석―― 카야노는 뭐, 쉽게 말해 소꿉친구다.
옛날의 나를 알고 있으니 당연히 집안 사정도 안다.
게다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적당히 둘러대서 넘어갈 상대가 아니다.
“상담해 줄까?”
배경에 뭔가가 있다고 느꼈는지, 고민을 캐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노골적으로 ‘오라가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럴 때의 카야노에게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보였다간 고민을 털어놓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아니, 됐어. 여자애는 모르는 남자만의 고민이라는 게 있거든.”
이렇게 말하면 아무리 카야노라도 물러날 수밖에 없겠지.
물론 내 고민은 남자라도 이해 불가능한 종류지만.
“흐음, 그래. 아, 조심해. 다음 수업 물리니까. 멍하니 있다간 뒤처진다?”
실험실에 깜빡하고 혼자 남겨지기라도 하면 이보다 더 민망할 순 없다.
“그건 싫네. 고마워, 주의할게.”
◆◆◆
오늘 물리는 낯선 도구를 사용해 뭔가 실험 같은 걸 하는 모양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왠지 설레기 시작했다.
몸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잊기엔 딱이다.
교탁 위에는 약간 긴 지주로 세워진 은색 공이 놓여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정전기를 일으키는 기계다.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것에 대해 쾌활한 후카자와(深沢) 선생님이 해설을 시작한다.
“이 기계는 반 데 그래프형 정전 고압 발생 장치다. 머리만 더럽게 크지만, 아쉽게도 전기 일으키는 것 말고는 능력이 없지.”
그렇게 말하며 스위치를 켜자, 낮은 소리를 내며 반 데 어쩌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계 머리를 툭툭 치며 후카자와의 해설이 이어진다.
“이걸로 이 은색 공에 정전기가 쌓이는 거다. 하지만 보다시피 가볍게 만지는 정도로는 따끔거릴 뿐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이 실험의 핵심은 인간의 몸에 대량의 정전기를 불어넣는 데 있다. 즉, 계속 만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무슨 생각인지 후카자와는 기계를 조작해 모터의 기세를 높였다.
소리는 커졌고, 낮은 소리가 더 둔탁한 울림을 동반하며 실험실에 울려 퍼졌다.
“이걸로 됐다. 자, 실험이다. 감전돼 보고 싶은 녀석 있나? 있으면 손 들어. 인원은 많을수록 재밌으니까 다 같이 해도 좋다.”
갑작스러운 위험 발언에 교실 안이 술렁인다.
낮게 웅웅거리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눈앞에 두고 감전되고 싶냐는 물음에 기쁘게 손을 들 녀석이 있을 리 없다.
“뭐야, 없는 거냐. 감전이라고는 했지만 이건 안전하다니까? 좀 아프긴 하겠지만.”
공포를 조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발언이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뉘앙스 하나로 이렇게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나 싶어 조금 감탄했다.
이어 “누가 좋아서 감전되냐!”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걸 계기로 내가 제물이 될까 봐 자제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그때――.
“선생님! 코나미(小波)가 딱이라고 생각합니돠~!”
“뭐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말도 안 되게 네코가 나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미쳤나?!
“코나미는 오늘 머리 손질할 시간이 없었대요. 정전기로 세워주면 딱 좋을 것 같습니돠~.”
어느새 내가 실험을 한다는 분위기가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다들 자기 몸은 소중한 법이다. 나 하나를 제물로 삼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다른 녀석이 제물이었다면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렇기에 이제 도망칠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아 버렸다.
“그래. 그럼 코나미, 앞으로 나와라.”
마지못해 앞으로 나가긴 했지만, 일단 이 전기 구슬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아프지 않다, 안전하다.
그렇게 들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공포를 없애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야 네코, 무서우니까 너도 이리 와.”
“에~?”
“답례로 키스 한 번 해줄 테니까.”
“헉.”
말하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던지듯 네코 쪽을 가리켰다.
많은 반 친구들은 시시한 농담이라며 웃었지만, 네코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며 조금 거동이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체질 변화 덕분에 녀석은 나를 이성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 유혹, 녀석은 반드시 넘어온다.
“어쩔 수 없네, 말한 책임도 있고. 키스는 필요 없지만 말이야.”
엉금엉금 다가오는 네코.
내 공포는 복수심으로 변했다.
이제 나를 가로막을 건 없다.
‘꼴좋다, 너도 물귀신이다!’
“쿠레하, 갑니다!”
내가 손을 대자 정전기는 커다란 불꽃을 튀기며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까 후카자와가 만졌을 때 이런 불꽃은 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내 머리와는 별개로, 강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전신을 떨게 하는, 본능의 경고라고도 할 수 있는 강한 충동―― 위험, 즉시 떨어져라.
그런 말이 사이렌처럼 들려왔다.
착각인가, 아니면 환청? 확실한 건 이 상황이 나에게 장난 아니게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떨어지려 해도 손은커녕 전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기계에 닿아 있는 왼손은 비정상적으로 발열하며 전기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방벽도 팝콘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붕괴했다.
『피갸아?!』
갈 곳을 잃은 전기가 내 몸을 향해 일제히 쏟아져 들어왔다 싶더니――.
◆
내 시야는 주파수가 맞지 않는 텔레비전 같은 흑백 모래폭풍에 휩싸였다.
특유의 거슬리는 소음도 들린다.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걸지도 모른다.
“괜……냐? 어이…… 쿠레……”
“후카가와, 이게 무슨…… 요, 엄청 위험하……”
귀를 기울이니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들린다.
음원을 찾으려 눈을 움직이자 모래폭풍 속에서 사람의 윤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진정해! 코나미……냐?”
조금씩 소리가 선명해진다.
이 목소리는 후카자와인가.
“부탁이야…… 해줘, 쿠레하!”
카야노의 목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의식을 집중하자 모래폭풍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흑백이지만 카야노의 모습이 보였다.
덮치듯 나를 살피는 모습에서 내가 쓰러져 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선생님, 제가……를 보건실로!”
이 시끄러운 목소리는 네코다.
쓰러진 사람을 보건실로 옮기는 건 당연한 판단.
아마 책임감을 느껴서 직접 나선 거겠지.
‘잠깐만, 지금 네코한테 안겨서 옮겨지면 몸 상태 들통나서 난리 나는 거 아냐? 그거 진짜 위험하다고!’
『기, 기다려, 네코…… 나, 괜찮, 아.』
천천히지만 어떻게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흐릿한 흑백 시야에 의지해 나는 일어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 조금, 어지러울, 뿐이야. 그렇게 소란 피우지 마.』
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한 카야노가 달려들었다.
“괜찮다는 말을 어떻게 믿어! 자기가 쓰러졌다는 자각은 있는 거야?”
흑백이었던 카야노의 피부가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이 증상이 개선될 거라 확신했다.
『당연히 쓰러지지, 전기 쇼크인데. 그리고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근데 목소리 이상해?”
『어? 아~ 테스트 테스트. 확실히 이상하네.』
지적을 받고 내 목소리를 들어봤다.
묘하게 전자음 같아서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마 목이 저려서 그럴 거야. 시간 지나면 나아.』
“그런 방심이 화를 부르는 법이야.”
“화라니, 너무 거창하잖아. 이런 건 기껏해야 스턴건―― 어? 봐봐, 금방 나았지?”
말을 하다 보니 내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기세등등한 나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는 카야노.
그걸 보고 후카자와가 한마디 중얼거렸다.
“부부 만담은 끝났군. 그럼 수업 재개――”
“웃기지 마! 이런 위험한 걸 쓰게 해놓고 죽일 셈이에요?!”
바닥에 굴러다니는 은색 구체를 가리키며 네코가 고함을 질렀다.
그걸 신호로――.
“선생님 때문이잖아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하지 마요!”
“수업 전에 할 일이 있잖아요, 코나미한테 사과하세요!”
“후카자와, 당신 최악이야!”
교실 안에 휘몰아치는 후카자와 비난 세례.
그리고 휘말리기 전에 탈출하는 나와 카야노.
“쿠레하, 괜찮아?”
“난 괜찮은데, 저쪽은 안 괜찮아 보이네.”
살금살금 교실 구석으로 피신한 나와 카야노를 뒤로하고 교탁 근처는 난투극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대로 종이 쳤고, 수업다운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실을 이동하기 전, 수많은 반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고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든 후카자와에게 도게자(무릎 꿇고 사죄)를 받았다.
나는 진심으로 동정하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고 교실을 나왔다.
‘후카자와도 참 안됐네, 이러다 그만두는 거 아냐?’
◆◆◆
점심시간.
나는 네코의 시선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원래는 출입 금지 구역이지만, 아주 소수의 학생이 담배를 피우거나 정적을 찾는 등 각자의 목적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소위 불량이라 불리는 녀석들도 자주 이용하지만, 내가 아는 한 여기서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다.
기 센 녀석이든 약한 녀석이든 이 장소를 잃고 싶지 않다는 공통된 인식 덕분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어 있었다.
일부 선생님들도 눈치채고 있겠지만, 문제만 없으면 됐다는 식으로 방치하는 것 같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영을 피하는 건 쉬웠고, 조용하고 적당히 넓은 그늘을 찾아 누웠다.
오늘 하늘은 파랗다.
바람도 완만하고, 솜을 뜯어 놓은 듯한 구름이 높은 곳을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들어갔던 힘도 빠졌다.
“……힘들다.”
이제 여기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 쇼크 이후 몸은 심한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모래폭풍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삼촌과 이야기해 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 중이다.
하지만 이 컨디션으로 제대로 대화가 될까.
경우에 따라서는 싸울 기세로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텐데.
“정말 운도 없지. 역시 그게 안 달려 있어서 그런가?”
내 시시한 농담에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웃겨?”
“푸헉?!”
옆에 카야노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뭐, 뭐야 너!”
깜짝 놀라 튀어 오른 내 목소리가 뒤집혔다.
“내가 할 소리야. 여기 출입 금지거든.”
“그럼 너도 들어오지 마. 아니, 그보다 나란히 눕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 좀 하지 마, 이상한 소문 난다고.”
“난 항상 여기로 정해뒀어. 쿠레하가 멋대로 쓰고 있었던 거지.”
내 부주의함이 원망스럽다.
네코를 따돌리는 데만 급급해서 카야노는 무방비였다.
점심시간만큼은 혼자 있고 싶었는데, 카야노는 일어나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눈치는 빠르지만 고집이 세다.
아마 내 고민을 캐내려고 붙잡고 안 놔줄 생각인 거겠지.
“밥 안 먹어?”
“어, 입맛이 없어. 아침도 굶어서 평소 같으면 학생 식당에서 카레 곱빼기 먹었을 텐데. 전기 쇼크 때문인가 봐, 아마도.”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나는 카야노의 말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저기 쿠레하.”
“응?”
“왠지 분위기 변했어.”
“에엑?!”
“뭐랄까…… 오늘 아침부터 신경 쓰이긴 했는데, 반 애들 중에서 쿠레하만 좀 다른 느낌이 들어. 짚이는 거 없어?”
네코보다 카야노를 더 경계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이 녀석의 통찰력은 가뜩이나 주의력 깊은 여자애들 중에서도 톱클래스다.
게다가 참견쟁이인 걸 넘어 겁도 없는 성격이다.
다행인 건 나쁜 애가 아니고 입도 무겁다는 점일까.
“카야노 너한테는 들키는구나.”
옥상을 훑고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
나부끼는 카야노의 머리카락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카야노를 의식했다.
약간 곱슬기가 있어 풍성해 보이는 긴 머리.
조금 거칠고 주근깨가 있는 뺨.
넓은 이마에 조금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이목구비.
둥근 귀에 큼직한 입.
나보다는 크지만 따지고 보면 작은 키.
왜소한 체격에 비례해 여자로서 나올 곳도 나오지 않은, 자칫하면 못생겼다고 할 수도 있는 외모지만, 신발까지 신경 쓴 청결함과 지성을 느끼게 하는 강한 눈동자, 다부진 얼굴 덕분에 신기하게도 조화로웠다.
초등학교 때와 다름없는,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얼굴.
나에게도 카야노에게도 중학교 3년이라는 공백은 변화를 가져오기엔 너무 짧았던 모양이다.
문득 떠오른다.
나는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얼굴을 한 명 더 알고 있다.
“그렇네. 삼촌 집에서 카야노랑 놀 때가 가장 나다웠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래? 갑자기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카야노와 둘이 있으면 왠지 나는 겉모습 그대로의,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
“저기 있잖아, 카야노.”
“응?”
“내가 여자가 돼버렸다고 하면 믿을래?”
“음~ 갑자기 말해도 말이지. 수술이라도 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거시기랑 알이 없어져 버렸어. 어떻게 생각해?”
“글쎄?”
“글쎄라니! 야!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난 진지하게――”
“믿어.”
바람 소리조차 지워버린 듯한 정적, 미세한 침묵.
나는 카야노의 말을 소화하기 위해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저기, 그건 그러니까 믿어준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뭐고 할 것 없이 그렇게 말했잖아.”
“거, 거짓말이라고는 생각 안 해?”
“그야 쿠레하가 하는 말이잖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말을 받아준 것 이상으로 카야노가 나에게 보내준 호의.
지금은 동성이지만, 이성이었다면 분명 반했을 거다.
아까는 변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카야노의 여성스러움은 격이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몸이 뜨거워졌다.
“아, 아니, 그렇게 대답할 줄 몰라서. 하, 하지만 딱히 싫은 건 아니고―― 안 되겠다, 좀 진정해야지. 야 카야노, 그 텀블러 뭐야?”
“허브티, 릴랙스 되는 거.”
“딱 좋네, 좀 마실게.”
“뜨거워!”
경고를 무시하고 나는 텀블러 뚜껑을 열어 단숨에 들이켰다.
횡설수설하는 것보다 데이는 게 낫다는 각오로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다만 삼킬 때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깜빡하고 액체와 함께 공기를 마셔버릴 때의 감각과 비슷했지만, 그 뒤에 으레 따라오는 기관지 통증이나 기침이 없었다.
“어라, 하나도 안 뜨거운데.”
“거짓말~”
『게다가 향기도 전ㅎㅕ, 가, 기기기기기』
“잠깐, 쿠레하?”
목의 강한 위화감이 다음 순간 공포로 변했다.
이 공포는 기억에 있다. 그 정전기 발생 장치에 닿았을 때와 같은 감각이다.
『브핫!』
나는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다.
그건 구토물이라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내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보통 토한다고 하면 위액도 섞여 나오고 방금 마신 것의 색이 변하기 마련인데, 내가 토한 것은 맑은 연녹색 액체였고 허브티 그 자체로 보였다.
부자연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토해낸 허브티에는 기계 부품으로 보이는 작은 금속 조각과 전선이 섞여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엄지손가락만 했다.
“쿠레하…… 이거 뭐야?”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말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제스처로라도 전하려 했지만 갑자기 몸에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팔도 올릴 수 없는 나에게서 여러 감각이 사라져 가는 가운데, 목의 위화감만 강해졌다.
그것은 서서히 퍼져 순식간에 목 전체의 위화감으로 변했다.
그리고 작은 경고음 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목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꺄아아악!”
열쇠를 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 목 부위가 ‘분리’되었다.
허물 벗듯 떨어졌다고 해도 좋다.
거기에는 정체 모를 기계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스피커 같은 것도 달려 있었다.
덧붙이자면 그것은 허브티로 젖어 있었다.
‘나, 나, 나?!’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위화감이 있던 곳에 손을 대보니 그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떨어진 기계.’
이게 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건가?
“아, 안 돼, 싫어……”
그것을 바라보며 떨고 있는 카야노를 발견했다.
난간을 붙잡고 있었지만,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한다기보다 도망쳐 버릴 것 같은 자신을 억지로 붙들어 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야노, 설마 나 때문에?’
조금 냉정해진 나는 내 목에서 떨어진 그것을 줍고, 울 것 같은 얼굴의 카야노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미안해.’
지금은 말로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네 눈앞에서 사라져 줄 테니 용서해 줘.
뭔가 말하려는 카야노를 뒤로하고, 나는 깃을 세워 목이 보이지 않게 가리며 옥상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비품실에 숨어든 나는 인기척 없는 어두운 실내에서 떨어져 나간 수수께끼의 기계를 와이셔츠로 닦았다.
때때로 휘둘러 안에 고인 물을 빼냈다.
충분히 말린 뒤 그것을 내 목에 대보았다. 찰칵 소리를 내며 그것은 딱 들어맞았다.
『……가, 아, 아~』
목의 위화감이 사라지고 전자음 같긴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듬어 봐도 어디가 이음새인지 알 수 없다.
목소리가 평범했다면 분명 방금 일어난 일도 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사실을 깨닫게 했다.
나는 성별이 바뀐 게 아니다. 몸의 형태가 바뀐 것뿐이다.
그건 사소한 변화다.
가장 큰 변화는 다른 곳에 있다.
놓치고 있었다.
아니, 보았지만 깨닫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꾼 꿈은 현실이었다.
아마 내 몸은――.
◆◆◆
“뭐, 너 땡땡이치게?”
“어, 적당히 좀 둘러대 줘. 부탁한다 네코.”
나는 교실로 돌아와 네코에게 무단 조퇴 사실을 알렸다.
이 녀석은 사보타주―― 땡땡이의 상습범이다. 평소에도 대리 출석이나 출석부 조작, 심지어 교사 매수까지 동원해 수업을 빼먹는다.
그렇게 만든 귀중한 시간을 편의점에 가거나 오락실에 가고, 낮잠을 자거나 사복으로 갈아입고 헌팅을 하는 데 쓰고 있으니 한심함을 넘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말이 샜지만, 어쨌든 네코는 전문가다.
이 녀석에게 부탁하면 학교를 빠져나가도 소동이 일지는 않을 거다.
“뭐, 상관없는데. 이걸로 빚 하나다. 보상은 몸으로 갚아.”
“몸은 무슨, 야키소바 빵으로밖에 빚 안 갚아본 주제에.”
“진담으로 듣지 마~ 아무리 귀여워도 남자를 상대로 할 만큼 굶주리진 않았으니까.”
“거짓말하네. 그리고 전기 쇼크 빚이 있으니까 쌤쌤이다.”
“뭐, 확실히 그건 내가 잘못했지. 잘 가라 쿠레하, 살아서 보자고.”
“살아 있으면 말이지.”
평소와 다름없는 네코와의 대화.
지금은 그 농담에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대로 사라질 생각이었는데――.
“쿠레하……”
“아, 카야노……”
교실을 나설 때 카야노와 마주쳤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가려 했지만 카야노가 옷자락을 붙잡았다.
놓아줄 기색이 없다.
“어디 가?”
“삼촌한테. 그 뒤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그 여자.
내 가정 형편을 아는 카야노는 이 한마디로 대략적인 사정을 파악했을 게 분명하다.
“만약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으로 와. 몰래 들여보내 줄 테니까.”
“어, 고마워.”
“저기, 어떤 모습이 돼도 쿠레하는 쿠레하니까. 사양 같은 거 하지 마. 만약 그러면…… 평생 안 용서할 거야.”
내일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나는 카야노와 약속하기로 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지를 굳게 다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옛날부터 고집불통인 건 여전하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이 손 안 놓을 거지?”
내 눈을 보며 카야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동자는 조금 젖어 있었다.
“알았어, 여자의 원한은 무서우니까―― 농담이야. 만나러 갈게, 살아 있으면.”
카야노의 손이 떨어지고 점심시간 종료 예비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학교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진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나는 삼촌이 고문으로 있는 연구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학교에서 자전거로 30분(30분), 역에서라면 차로 10분(10분)도 안 걸리는 시내 근처에 있었다.
이런 종류의 시설은 인가가 드문 곳에 지어지기 마련이라는데, 위험한 약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허가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관련 의료 시설 등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신 의수나 인공 장기,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경 전달 장치 등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그 기술을 인간 개조라는 동기 불분명한 일에 쓰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삼촌은 재생 의료와 개조 중 어느 쪽 연구를 의뢰받은 걸까.
어쨌든 주 목적이든 부수적인 결과든 간에, 수면 아래에서 그런 기술이 확립되고 있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있다면 여기밖에 없다.
나는 노려보는 경비원을 무시하고 정문을 통과해 자전거를 타고 건물에 걸린 간판들을 훑었다.
그러다 ‘종합 연구 개발동 제1·제2 연구실’이라고 적힌 건물을 발견했다.
그곳은 가장 컸고 안에는 창구도 보였다.
여기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자리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코나미 박사님의 조카분이시군요, 말씀 들었습니다. 담당 부서로 안내해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
교복 차림의 나를 보고도 딱히 놀란 기색 없이, 창구에 있던 품위 있는 정장 차림의 여성은 순순히 들여보내 주었다.
나는 오늘 여기 오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여자――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내 어정쩡한 걸음걸이에 위화감을 느끼는 기색도 없이, 안내원은 내 속도에 맞춰 걸었다.
어쩌면 나에 대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촌이 담당한다는 부서는 지하에 있었다.
입구에는 제3 창고라고 적혀 있었지만 방이 아니라 통로였고, 비밀번호에 카드 슬롯, 지문과 망막 스캐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열리는 문이 있었다.
일정 간격으로 방화 셔터까지 설치되어 있어 무서울 정도로 엄중한 보안 시스템이었다.
대단하긴 하지만 이래서야 ‘여기에 중요한 게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얼빠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안내원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카드로 문을 연 뒤 멈춰 섰다.
“제 권한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박사님께서 문을 열어주신다고 했으니 이 앞 플로어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전 업무가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안내원은 돌아가 버렸다.
시킨 대로 잠시 기다리자 안쪽 문이 저절로 열렸다.
거기에는 빡빡 깎은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옅은 눈썹에 휑한 볼, 퀭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삼촌이 서 있었다.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노숙자로 오해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다.
“왔구나 쿠레하, 안 올 줄 알았다.”
“올 수밖에 없잖아요, 삼촌.”
권하는 대로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밝고 넓은 방에 여러 서류와 기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창고라는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닌지 선반에는 플라스틱 상자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뚜껑도 닫히지 않은 채 배선과 기판이 드러난 용도 불명의 기계들이 삐져나온 것도 있었다.
방이 더 있는지 삼촌은 그중 하나로 안내하며 앞장서 걸었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아무 말도 안 듣고 뛰쳐나갔다더니, 여기 왔다는 건 짐작 가는 게 있다는 거겠지? 뭘 알아냈니.”
“엄마는 인간 말종이고, 내 몸에는 화려한 장난질이 쳐져 있다. 덤으로 그 장난질이 고장 나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 정도요?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요.”
“반나절 만에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아직 실용 시험을 하기엔 일렀나 보군.”
“실용 시험이라니, 들킬 정도면 실패라는 소리겠지만 자신감 가져도 돼요. 예상치 못한 사고만 아니었으면 나도 내 이상을 눈치 못 챘을 테니까.”
새로 들어간 방에는 굵은 케이블이 여러 개 연결된 거창한 기계가 있었고, 그 옆에는 금속제 바퀴 달린 침대와 커다란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안쪽에는 소파와 담요도 있어 누군가 여기서 먹고 자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뭐시기 정전기 일으키는 기계 만졌다가 기절했어요. 그리고 차 마시고 토했고요. 그때 내 목 절반이 떨어져 나가서 내가 생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삼촌은 입에 손을 대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군. 조사할 테니 잠시 기다려라.”
“할 거면 빨리해줘요. 이제 의식이 몽롱해지니까.”
개조의 반동으로 보이는 탈력감은 사고 활동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뭔가를 생각하려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 피곤한 게 아니라 괴로운 거다.
“미안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함부로 충전했다간 망가질 수도 있어서 말이야.”
“충, 전?”
삼촌은 내 머리를 붙잡더니 머리카락에 숨겨진 잭에 플러그를 꽂고 노트북을 조작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플러그를 뽑고, 삼촌은 천장에서 로프 몇 개를 재빨리 내렸다.
어딘지 모르게 서두르는 기색도 보였다.
“어, 어?”
“상태가 안 좋아. 바로 처치할 테니 옷을 벗기겠다.”
그렇게 말하며 삼촌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옷을 벗겼다.
그리고 내 몸을 고정하더니 로프로 매달아 침대로 옮겼다.
침대 위에서 보이는 광경을 보며 나는 오늘 아침의 꿈을 떠올렸다.
아마 내 개조는 이 장소, 혹은 여기와 비슷한 시설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컴퓨터 신호를 받고 몸 여기저기가 열리고 분리되었다.
벌어진 목 부위를 시작으로 가슴, 팔, 복부, 사지―― 속을 다 드러내는 그 모든 것을 재빨리 눈으로 살피며 삼촌은 빠른 손놀림으로 부품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기계 분해 쇼 같았다.
이때 내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내 변화는 의료 기구 실험 대상 같은 가벼운 게 아니다.
이건 그냥 로봇이다.
‘로봇? 아니, 인간이 소재니까 사이보그인가.’
설마 이런 식으로 될 줄이야.
몸속에 공구나 손을 집어넣어 휘젓고 떼어내는 감각에 온몸이 저릿했다.
원래라면 공포스러운 광경이어야 하는데 왠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상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마조히스틱한 쾌감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전기 신호라는 자극이 더해지니 쾌락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마조 기질이 있었나.’
이게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런 감정에 몸을 맡긴 채 에너지가 다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몸에 힘이 넘치는 게 느껴졌다.
수리가 끝난 건가 싶었지만 아닌 모양이다.
“뇌 제어를 방 컴퓨터로 옮겼다. 몸은 못 움직여도 생각하는 데는 지장 없을 거다. 그나저나 놀랍군. 팔은 못 쓸 지경이고 에러 수정용 칩은 절반 이상이 날아갔어. 뇌 절반이 생살이라지만 잘도 의식을 유지했구나.”
『삼촌. 난 뭐예요, 사이보그? 아니면 더 다른……』
어느새 내 목소리는 그 전자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의 기계라지만 넌 원래 인간이다. 로봇이 아니라 사이보그라고 불러야겠지.”
『뇌가 절반밖에 없어도 사이보그라고 부르는군요.』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만, 마음에 안 들면 로봇이라고 해도 된다. 큰 차이 없어.”
『방금 전까지 입 꾹 닫고 있더니, 다 들통나니까 아주 거침없이 말하시네요.』
“말하면 모니터링하는 의미가 없잖니. 나도 묻겠는데, 넌 왜 원망 섞인 말을 안 하냐?”
나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생각으로 대답했다.
『삼촌이 도와줬으니까 당연하죠.』
순간 삼촌의 눈이 날카로워진 듯 보였지만, 다음 순간 다시 힘없는 눈동자로 돌아왔다.
“뭘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이유가 없으니까요.』
“바보 같은 소리 마라. 널 실험체로 쓰면 회사에서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온다.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그 돈은 삼촌 주머니로 안 들어가잖아요. 나를 팔아넘기기로 결정한 건 그 여자, 엄마죠? 구매자는 누구든 상관없었을 테니 내장이라도 파는 게 돈이 더 됐을 거예요. 게다가 회사도 인간이면 누구든 상관없었을 거고요. 굳이 건강한 일본인 고등학생을 쓴다는 리스크, 보통이라면 안 져요.』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삼촌의 눈은 싸우는 인간의 그것이 되었고, 얇은 눈썹과 어우러져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뿜어냈다.
이거다, 이게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삼촌의 모습.
학대당하던 나를 그 여자로부터 보호하고 건달들로부터 지켜줬을 때의 눈빛이다.
“널 얕봤구나, 사과하마. 그 추측의 다음 이야기를 들려다오.”
몸은 산산조각 난 채였지만 삼촌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기로 했다.
이건 도박이다.
지금 상태에서 내 존재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여기서 영영 못 나가거나 기억이 지워질 거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동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죄책감이 남아 있는 지금이 최대이자 마지막 기회다.
여기까지 왔다, 놓칠 수 없다.
『어차피 그 여자는 나를 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상대는 삼촌이나 회사가 아니었죠. 아마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야쿠자 같은 놈들한테 팔 생각 아니었을까요? 저쪽도 그 제안을 반겼을 거고요. 내장을 팔아도 되고 내 외모라면 ‘키우고 싶다’고 나설 바보도 있을 테니까. 그걸 우연히 삼촌이 알게 된 거죠. 계기는 아마 약일 거예요. 그 여자, 잔머리는 굴려도 바보라서 수면제 같은 걸 눈에 띄는 곳에 뒀다가 삼촌한테 들키는 건 상상하기 쉽거든요. 그다음엔 삼촌이 유도 심문이라도 던져서 낚은 뒤, 상대방 제시액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면 그 여자는 넘어가요. 어때요?』
삼촌은 휠체어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60점 정도군. 나도 그런 단체에 연줄이 닿는 입장이라 정보는 그쪽에서 들어왔다. 그 외엔 대충 맞구나. 자, 계속해봐라. 개조할 동기로는 아직 부족해.”
나는 절반이 기계로 바뀐 뇌를 풀가동해 가장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억측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삼촌이 연줄이 있다면 얘기가 빠르죠. 우선 삼촌이 장기 매매 계약을 맺어요. 연줄이 있다고 해도 아무 보상 없이 그쪽 놈들이 움직일 리 없으니 삼촌은 돈이나 뭔가를 담보로 잡혔겠죠. 초범일 테니까요. 하지만 매매가 성립되면 담보는 삼촌 손으로 돌아오니 그건 큰 문제 아니에요. 설비를 쓰게끔 회사를 협박하거나 매수하는 게 더 힘들었겠죠. 실험은 회사 측에도 이득이 크지만 리스크가 있으니 쉽게 설득 못 해요. 개조 기술 자체가 불법일 테고 삼촌이 핵심 인물일 테니 그걸 빌미로 강하게 밀어붙였겠죠? 예를 들어 회사의 비자금 장부를 담보로 잡는다거나. 준비는 거기서 끝, 장기 이식 날이 오자 내 내장을 팔아치우고 그 길로 나를 개조한 거예요. 어때요?』
“……거의 네 상상대로다. 하지만 묻자, 왜 회사의 명령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개조했다고 생각했지?”
『삼촌은 나를 회사의 비품으로 만들 생각이 없으니까요. 이유는 사명감.』
“사명감이라고? 어디서 그런 발상이 나오지.”
『그야 삼촌이 내 부모나 다름없으니까요. 죽은 아빠―― 삼촌한테는 형이죠. 그 아들인 나를 지금까지 키워온 건 그게 삼촌 안에서 강한 행동 원인이었기 때문이라고밖엔 생각 안 들어요.』
사실 ‘애정’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가식적이라 의심받을까 봐 말하지 않았다.
삼촌은 불만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가운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정말이지 옛날부터 그랬다. 왜 쿠레하 네 눈에는 내가 선인으로 비치는 거냐. 어린 널 거둔 것도 흑심이 있어서였다. 소녀형으로 개조한 것도 그래. 지금 그걸 보여주마.”
삼촌은 우표 크기의 카드를 꺼내 내 머리에 꽂았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일변했고, 카메라에 찍히는 영상을 모니터로 보는 듯한 풍경으로 변했다.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게이지가 여기저기 표시되었고 대부분이 에러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들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음성 커맨드, 어드미니스트레이터, 디바이스 체크, 바디 컨디션.”
명령조의 목소리를 듣고 내 뇌는 컴퓨터로 모습을 바꾸었다.
명령받은 대로 내 몸을 조사하고 기록된 것과 비교한다.
결과는 에러.
하지만 몸을 스캔했을 때의 데이터가 내 메모리에 남은 덕분에 내 몸이 어떤 물건이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완전히 기계이며 구조적으로 인간이라 부를 만한 건 남아 있지 않다.
덧붙이자면 나에게 갖춰진 여성기는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나는 대상으로 정해진 상대에게 성적 어필을 시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뇌 구조상 거부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행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삼촌에 의한 완전한 지배가 내 몸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었다.
『우, 우와! 나 진짜 사이보그가……』
“이해했느냐, 내가 널 소유한 건 독점욕이다. 그리고 이런 짓도 하지.”
내 얼굴을 붙잡고 삼촌은 강제로 키스했다.
그리고 냉철하게 명령했다.
“음성 커맨드, 어드미니스트레이터, 시스템, 셧다운.”
그 말을 들은 나는 방법조차 모를 텐데도 스스로 내 기능을 정지시켜 나갔다.
말, 신경, 사고…… 조종당하고 내가 사라져 가는데도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내 수리는 완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이보그로서의 수리.
간신히 남아 있던 인간으로서의 감각도 사라져 버렸다.
『이게 사이보그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빌려온 것이며 자칫하면 지배당한다.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실감이 드는 신기한 감촉.
조종하고 있다기보다 꼭두각시 인형이 조건부로 자유를 부여받은 것 같달까.
내가 그리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다.
일어났을 때 주위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다미방 이불 위에 뉘어 있었고 열린 창밖은 캄캄했다.
내장된 시계로 확인하니 시각은 오전 4시.
아직 그 사건으로부터 14시간(1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아마 수리하자마자 나를 이 방으로 옮겼겠지.
기억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으니 정확하진 않겠지만.
“으, 음……”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삼촌이 자고 있었다.
서재가 어질러져 있어서 손님방에서 자는 버릇은 여전한 모양이다.
거기서 깨달았다.
『눈에 익다 했더니 삼촌 집이잖아.』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장식품 하나 없이 소박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 깔끔하게 접혀 다다미 위에 놓인 내 교복과 그 옆에 있는 무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수수한 남자 옷과 속옷 세트, 그리고 왠지 내가 중학교 때 입던 교복이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내가 알몸이라는 걸 알았지만 신기하게도 위화감은 없었다.
부끄러운 기분은 들지만 그 수치심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인간일 때는 남의 눈을 의식했지만 사람이 아니게 된 덕분에 당당하게 수치심을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노출증 소질이 있었던 셈이다.
기계의 본능―― 프로그램이라고 믿고 싶다.
옷을 입기 전에 나는 삼촌 집을 탐색해 봤다.
밖에서 문이 잠긴 기색은 없었고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탈출 가능하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프로그램된 흔적도 없다.
분명 이건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여기를 탈출해 경찰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고 그 여자에게 복수할 수도, 자살할 수도 있다.
『아무리 삼촌이라도 내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니구나. 머릿속을 들여다보거나 하진 않았다는 건가?』
나는 수수한 옷으로 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눈에 들어온 건 옆에 있는 중학교 시절 교복. 그러고 보니 교복 입은 모습을 삼촌에게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엄마에게 맡겨진 뒤로 삼촌과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으니까.
『보고 싶었던 걸까, 내 교복 입은 모습.』
나는 그리운 옷에 팔을 끼웠다. 금방 벗을 생각이었지만 속옷부터 바지, 벨트까지 확실히 챙겨 입었다.
그 모습으로 자고 있는 삼촌에게 다가갔다.
이불을 걷고 몰래 삼촌의 잠옷과 팬티를 내려 하반신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살며시 삼촌의 분신을 입에 담았다. 서툴지만 입에 머금고 혀 위에서 굴렸다.
커진 것을 확인하고 일단 입을 뗐다.
『음, 후…… 저기 삼촌, 깨어 있는 거 다 알아요.』
“왜 도망치지 않았니?”
예상대로 삼촌은 자고 있지 않았다.
전부 알고 있으면서 나를 자유롭게 내버려 둔 거다.
『그야 내가 없어지면 삼촌이 곤란해할 거 아니에요. 그것보다 기뻤어요. 삼촌, 중학교 때도 내 걱정 해줬던 거죠? 이런 걸 가지고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교복을 삼촌에게 보여주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삼촌은 분명 기뻐하고 있다.
『답례로 기분 좋게 해줄게요.』
다시 분신을 입에 담았다. 처음엔 잘 안됐지만 행위를 지속하자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그만해라, 성욕 처리용 프로그램이 돌아갈 거다. 너, 인간을 포기할 셈이냐?”
나는 삼촌의 말을 무시하고 행위를 계속했다.
“내 노리개가 되는 거다, 넌 남자였단 말이다!”
그런 건 이유가 안 된다.
삼촌은 나를 사이보그로 만들어 줬으니까.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입놀림을 강하게 했다.
“이제 그만해, 넌 적절한 수단을 통해 사회로 돌아가야―― 구오오?!”
뿜어져 나오는 정액을 삼켜 급수 탱크로 흘려보냈다.
이렇게 하면 인공 성대를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오물을 닦아내듯 천천히 핥아낸 뒤 입을 뗐다.
이 입도 가짜니까 이렇게 하는 게 더 청결할 것 같았다.
『푸하아. 난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기분 좋았어요?』
“그런 것보다 너,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게 무섭지 않은 거냐? 네가 네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믿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배신했다.
그런 생각들이 내 안에서 어떤 동경을 가속시켰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지금에 와서는 내 존재를 버려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것이 되어 있다.
『나 말이죠, 사이보그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삼촌한테 길러지고 싶다는 정도의 소망이었지만요.』
삼촌은 놀랐는지 험악했던 얼굴에서 금세 힘이 빠져버렸다.
“나한테 길러지고 싶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생각을 한 거냐.”
『알잖아요, 아빠 죽고 삼촌이 보호해 줄 때까지 내가 어떤 생활 했는지. 그때 일은 어렸지만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삼촌 집에 맡겨졌을 때 난 천국에라도 온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고 이 왜소함이랑 나약함 때문에 왕따가 돼버렸죠. 덕분에 카야노랑 친해지긴 했지만 동갑내기, 그것도 여자애한테 보호받는 건 나한테 즐거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그 여자나 남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놈들이랑 똑같은 힘 따위 필요 없어, 배우고 싶지도 않아 하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생각했죠. 사이보그라면 맞아도 안 아플 테고 삼촌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도움도 될 수 있겠다고요.』
“직업만 잘 선택하면 남에게 도움 되는 일 정도는 5년만 지나도 할 수 있게 될 거다. 다시 묻겠는데, 정말로 내 물건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냐?”
『진심이에요. 내가 그런 생각 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라고요? 꼬맹이가 힘내봤자 뻔했고 10년이나 기다리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러니까 동경이었던 거죠. 좀 머리가 굵어진 뒤엔 포기했었지만 실제로 사이보그가 됐으니 최고예요. 그리고 난 삼촌이 보호해 줄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 삼촌 물건이 되고 싶다, 지배당하고 싶다 생각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그것과 성행위는 별개잖니. 교복까지 입고…… 나한테 복종할 필요 따위 없다.”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삼촌은 자기를 위해서 소녀형으로 만들었다고 했고. 이 정도 조건이 갖춰졌으면 할 일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죠.』
“지금의 넌 인간이 아니다, 방심하면 쾌락에 잡아먹힌다!”
『그때는 기억을 리셋하면 되잖아요? 그런 기능 있다는 거 정도는 알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럴 순 없지!”
여기 오고 나서의 일은 잘 기억하고 있다.
삼촌은 다정했고 이웃집 카야노와는 싸우기도 했지만 단짝이었다.
여기가 내 장소라고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감과 동시에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되찾고 싶다, 무엇보다 그때의 시간이 갖고 싶다.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하다면 프로그램이라는 사슬로 여기에 묶어버리면 된다.
『흐음, 그렇구나. 그럼 가르쳐줘요. 방심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요.』
나는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지금 인공 생식기가 삼촌 눈앞에 있다.
“나는……”
『자기가 쓰려고 만들었다더니 꽁무니 빼시네요. 안 오면 내가 가요.』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열심히 성기를 비벼댔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 어라? 이상하네, 안 들어가요.』
그 모습을 보고 삼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탓인지 표정이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하는 법도 모르는 거냐.”
『시, 시끄러워요!』
미소 지으며 삼촌은 내 질에 성기를 박아 넣었다.
호스를 밀어 넓히듯 안으로 들어왔고 그 자극이 그대로 전기 신호가 되어 전뇌를 직격했다.
『아하앗?! 뭐, 뭐야 이거…… 이런 건 정말, 으아아!』
삼촌 말이 맞았다.
확실히 이 감각은 방심하면 잡아먹힐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프로그램에 따라 내부 압력과 온도를 조절했다.
『아아, 후아아?! 저, 정말 기분 좋아. 의식이 날아갈 것 같지만 삼촌이 기분 좋아질 때까지 난 참을 거예요. 그게 인간과 기계의 도리라고 생각하니까!』
대답 대신 삼촌은 내 입술을 포갰다.
인공물이긴 하지만 서로 닿는 혀가 쾌락을 더욱 증폭시켰다.
강한 전기 신호는 열을 만들어냈고 나는 과부하 직전이었다.
그동안에도 삼촌은 허리를 계속 움직였다.
강한 충격에 견디다 못해 입을 떼고 삼촌의 목을 껴안았다.
『아우우! 조, 조절이 잘 안 돼요. 마, 망가질 것 같아…… 멈춰, 프리즈? 미, 미안해요 삼촌. 나 기분 좋게 해주겠다고, 구우?! 도움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응아아! 끝, 끝까지 못 해서 죄송해, 요오오오!!』
직후 내 의식은 끊겼다.
삼촌이 사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
프리즈에서 복구되니 오전 7시였다.
교복은 벗겨져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몸도 세척되어 아주 깨끗해진 상태였다.
“깼느냐, 쿠레하.”
삼촌은 그런 나를 껴안고 있었다.
어릴 때와 똑같이.
『삼촌. 좋긴 한데 이거 부끄러워요――』
“미안했다, 널 시험하는 짓을 했구나. 사실 삼촌도 쿠레하랑 같이 살고 싶었어. 하지만 어른이 그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모진 말을 하거나 아까 같은 짓을 한 거란다. 오히려 상처를 준 것 같구나. 정말 미안하다.”
가식도, 싸우는 남자도 아니다.
어린 기억 속에 있는 다정한 삼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죽은 아빠, 삼촌에게는 친형 대신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가르쳐준 그때 그대로의 삼촌이다.
『신경 쓰지 마요, 난 삼촌의 사이보그가 될 거니까. 이제 프로그램을 설치당하거나 부품 실험 대상이 되거나 개조당하거나 하겠죠. 하지만 삼촌이 아니면 거절이에요.』
“그럼 소중히 다뤄야겠구나. 죽어서 매 맞을 각오는 했지만 함부로 대했다간 형님이 무덤에서 나올지도 모르니까.”
『저기 삼촌. 여자애 형태니까 역시 여자애답게 구는 게 좋을까요?』
“필요 없다. 내 것이라는 건 명분일 뿐, 쿠레하는 쿠레하의 것이다. 게다가 난 지금의 쿠레하가 마음에 들어.”
옛 온기를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말.
이제 억지로 남자답게 보이려 하거나 반대로 여자답게 구는 위장은 필요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 있는데 시계가 딱 7시 반 종을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 삼촌에게 허락을 구했다.
『저기 삼촌. 나 여기서 안 나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 마음대로 하렴. 놀러 가고 싶다면 변장용 외장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편하겠지만. 어떻게 하고 싶니?”
『약속이 있어요.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친구가 둘 있거든요. 녀석들한테 얼굴 안 비치면 난 인간 말종이 돼버려요.』
삼촌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정체를 밝혀도 좋고, 아니면 여기로 불러도 된다.”
『그거 고맙네요. 아, 한 명은 카야노인데 걔한테는 사이보그라는 거 들켜버려서 안 불러도 올 거예요.』
“카야노 양인가, 그립구나. 잘 지내니?”
『잘 지내고, 반할 정도로 예뻐졌더라고요. 참견쟁이인 건 여전하지만.』
“그래. 그럼 다녀오렴. 아 참, 목소리는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 해보거라. 원래 목소리로 할 수도 있고 데이터만 있으면 다른 목소리도 낼 수 있단다.”
『기억해둘게요. 자, 얼른 갈아입지 않으면 늦겠어요.』
즐거워하는 나를 보며 삼촌은 작은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뻐 보이니?”
물을 것도 없다.
왜냐면――.
『사이보그가 돼도 나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안심하고 인간에게 미련을 버릴 수 있어요. 인간일 때 남겨둔 마지막 일들을 정리하면 인간 코나미 쿠레하는 임무를 마치고, 쿠레하라는 이름의 기계만 이 세상에 남는 거죠.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내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안 기뻐하는 게 이상하죠.』
사실 의식도 기억도 가짜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말없이 달려 나가려다 별도로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걸 깨닫고 멈춰 섰다.
『삼촌도 남자고, 기껏 소녀형 사이보그를 손에 넣었으니 쓰고 싶잖아요? 어떤 플레이든 다 맞춰줄 테니까 오늘 밤 준비해둬요.』
“사실은 카야노 양이랑 하고 싶은 거 아니냐? 나랑은 이걸로 끝내도 된다. 원한다면 몸을 남자로 되돌려 줄 수도 있어.”
『카야노나 친구들 앞에서는 쿠레하, 삼촌 앞에서는 충실한 인형. 삼촌이 말했으니까 난 쿠레하로 계속 살겠지만, 사랑하는 주인님이랑 둘이 있을 때만큼은 귀여운 사이보그로 있게 해줘요.』
나는 있는 힘껏 미소를 지어 보이고 쑥스러워하는 삼촌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정면에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나에게 이제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광학 카메라로 보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
자, 카야노와 네코는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비칠까? 나는 사이보그 주제에 가슴을 설레며 학교를 향해 달리기로 했다.
네코를 골려주며 오전 시간을 때우고, 점심시간엔 카야노와 하늘의 구름을 봐야지.
그때 이렇게 말해줄 거다.
“사이보그로 개조된 지금도 네가 좋다고 하면, 믿을래?”
할아버지가 지키는 낡은 신사에서 무녀 일을 하는 중학생, 후루카와 카즈노(古川一乃)의 이야기입니다.
설정 및 각본 담당의 의도에 따라 상세 내용은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아, 진짜 덥네……. 경치는 끝내주는데.”
우리 신사는 아래를 내려다봐도 온통 나무 대가리뿐이다.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찾아야 겨우 마을이 보일 정도로 외진 곳이니까. 여기까지 오는 것도 일이다. 대충 포장된 꼬불꼬불한 길을 차로 올라오거나, 다 낡아빠진 참배길을 무작정 기어 올라오는 수밖에 없다. 여름에 오기엔 정말 최악이다.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이다. 마을 쪽에 번듯한 집이 있는데도 ‘조상님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굳이 신사 옆에 붙은 본채에서 지낸다. 아, 고집은 세도 좋은 할아버지긴 하지만.
“할아버지! 할아부지!”
본채 앞에 서서 할아버지를 불렀다. 이런 산구석까지 올 사람도 없는데 ‘소중한 게 들어있다’며 꼼꼼하게 자물쇠를 채워놔서, 올 때마다 이렇게 불러야 한다.
“할아버지! 어이, 영감탱이! 죽은 거야 뭐야!”
“시끄러워, 카즈노! 아침 댓바람부터 웬 소란이야!”
할아버지가 나왔다. 화난 것 같지만 늘 있는 일이라 괜찮다.
“이것 좀 봐, 할아버지. 엄마가 입던 무녀복이야.”
나는 애들용 말고, 어른들이 입는 제대로 된 홍백 무녀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아침 일찍부터 산을 탔다.
“웬일이냐, 평소 입던 건 빨았어?”
“아니이! 이거 어른용이라고! 어른스럽지? 우후후, 나도 클 데는 다 컸단 말이야. 가슴도 엄마 옷에 딱 맞고. 할머니도 엄마도 다 죽었잖아. 그래서 할아버지가 여자에 굶주렸을까 봐 이 착한 손녀가 온 거라고. 감사나 하시지?”
“손녀 보고 흥분할까 봐 그러냐, 이 꼬맹아. 뭐, 예쁘긴 하네.”
흐흥, 애 취급 안 당하려고 화장도 하고 왔지롱.
“그치!”
“3년이나 지났는데 좀 먹은 데 하나 없네. 나나카가 워낙 꼼꼼했어야지. 정성껏 보관해뒀나 보구나.”
“그게 아니잖아! 나는? 나는 안 예뻐?”
“글쎄다, 차이를 모르겠는데. 할애비 눈이 또 나빠졌나.”
카악! 이 영감탱이가 진짜! 모처럼 왔더니만!
“똑바로 좀 봐! 안 기뻐?”
“기뻤는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싹 가시네. 아유, 할애비 실망했다.”
헉, 설마 진짜?
“할아버지 미안! 미안해! 할아버지가 좋아할 줄 알았단 말이야. 반성할 테니까 제대로 봐줘, 응?”
“알았다, 알았어. 이제 중학생인데…… 왜 이렇게 애티를 못 벗을까.”
“어른스럽게 꾸몄잖아! 봐봐, 화장도 했다니까.”
“음…… 미안하다. 그쪽은 진짜 모르겠구나. 눈이 갈 데까지 갔나 봐. 뭐, 하루코 씨가 해준 거라면 예쁘게 잘 됐겠지.”
“아니라고! 아줌마가 한 거 아냐! 내가 직접 했어!”
도와주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한 거니까.
“그래그래, 믿으마.”
할아버지는 소매를 붙잡은 내 손을 떼어내고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여줬다.
“귀여운 손녀가 훌쩍 커서 보여주러 오니 할애비는 참 기쁘구나.”
나는 할아버지 품에 덥석 안겨 실컷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고 나서 무녀 일을 야무지게 해치웠다. 할아버지는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하지만, 엄마도 죽고 신사에 돈도 없으니 무녀 일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힘내야지.
◆◆◆
“그래서, 다음 주에도 또 도와주러 간다고? 진짜 에바 아냐?”
“뭐가 에바야.”
나는 반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랑 더 잘 맞는다. 특히 유스케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 사이가 좋다.
“중학생한테 일을 시키다니, 완전 블랙 기업 아니냐?”
“우리 집은 대대로 신사야. 엄마도 무녀였다고.”
“아, 맞다. 미안.”
유스케는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아서, 부모님 얘기가 나오면 눈치를 본다. 이게 참 대하기 껄끄럽단 말이지.
“그러니까 놀 거면 토요일 오후에 놀자.”
“에이, 또 가냐?”
“왜, 안 돼?”
“안 되는 건 아닌데…… 이제 중학생이니까 여자애랑만 놀지 말라고 부모님이 뭐라 하셔.”
아…… 어른들은 애들이 다 변태인 줄 안다니까.
“진짜 싫다, 선입견 쩔어. 사귀는 것도 아닌데 야한 짓을 왜 하냐고.”
“그, 그러게.”
유스케가 좀 곤란해 보인다. 그렇게 많이 혼났나? 유스케 엄마는 착하시니까 아빠가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알았어. 토요일에도 신사 갈게. 이번 주는 안 가줄게.”
“아, 저기…… 내가 놀러 가면 안 되냐?”
“엥? 우리 집 아무것도 없는데?”
“괜찮아. 신사 안이나 무녀 같은 거 신기하잖아. 구경시켜줘.”
신기하다니…… 뭐, 보통은 그렇겠지. 기분이 나쁘진 않다.
“좋아. 대신 유스케 너도 일 도와야 해.”
“어, 일까지…… 뭐, 상관없어. 좋아.”
◆◆◆
“친구라는 게 남자였냐, 카즈노.”
“응.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랑 유스케는 처음 보나?”
토요일, 나랑 유스케는 둘이서 신사까지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하카마 차림에 목장갑을 끼고 잠자리채를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또 벌집 생겼어?”
“그래. 얘기하기 전에 친구 소개부터 해줄래?”
할아버지는 일할 때 목소리가 엄청 무섭다. 예전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성실하고 고집불통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유스케가 겁먹으려나.
“친구 유스케야. 우리 엄마 아빠랑도 만난 적 있어.”
“그럼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겠구나.”
유스케가 말이 없다. 겁먹었나 보다.
“괜찮아, 유스케. 할아버지가 무서워 보여도 다정해.”
“안 다정해. 난 엄격하다.”
“정말! 자꾸 겁줄 거야?”
뭐, 할아버지가 엄격하긴 해도 나한테는 다정하니까 좀 맞춰주면 좋잖아.
“유스케, 인사해.”
“아, 하, 안녕하세요. 사토야마 유스케입니다.”
잔뜩 쫄았네. 어쩔 수 없지, 할아버지가 무섭긴 하니까.
“그래, 유스케 군. 신주 일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뭐가 궁금하니?”
“할아버지 직함은 궁지(宮司) 아니었어? 신주랑은 다르다고 했잖아.”
“카즈노,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하는 게 중요한 거야. 넌 신사 아이니까 알지만, 보통 사람들은 궁지라고 하면 몰라. 하지만 신주님이라고 하면 다 알지. 신도는 세세한 건 따지지 않는다고 늘 말했잖니.”
맞다. ‘나쁘지 않으면’ 괜찮고 ‘성실하고 다정하면’ 그게 신도라고 엄마도 그랬다.
“말이 샜구나. 어떠니, 유스케 군.”
유스케는 혼난 애처럼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관심 없었어요. 그냥 카즈노랑 놀고 싶어서 왔어요.”
할아버지는 침묵했고, 유스케는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어떡하지,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가 나까지 혼나면 안 되는데.
“유스케 군.”
할아버지가 목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솔직한 아이구나. 네 나이에 솔직하게 사과할 줄 아는 건 아주 좋은 거야. 앞으로도 카즈노랑 사이좋게 지내렴.”
◆◆◆
그날 이후로 주말마다 유스케도 신사 일을 돕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즐거웠고, 간식도 더 화려해졌다. 할아버지가 남의 집 애한테도 참 다정하네.
“너희 덕분에 신사가 깨끗해졌어. 오는 사람들마다 좋아하더구나.”
“할아버지 눈이 나쁘니까 돕는 건 당연하지. 거미줄 같은 거 있어도 모르잖아.”
“그래, 거미줄이 안 보여서 얼굴로 몇 번이나 들이받았지. 여기서 더 나빠지면 글씨도 못 쓸 텐데, 그렇게 되면 본사에 상담하는 수밖에 없겠어.”
눈이 나빠서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가 보다. 괜찮으려나.
“할아버지, 신사 그만두는 거야?”
“안 그만둬. 내 대에서 끊어먹으면 조상님 뵐 면목이 없지. 다음 사람 찾을 때까지는 버텨볼 거다. 그리고 나이 먹고 눈 나빠지는 것도 받아들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잖니.”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젊은 애들 둘이 도와주는 것도 내가 늙은 덕분이지. 기쁘구나.”
“궁지님, 저도 열심히 도울 테니까 눈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랑 유스케는 아주 절친이 됐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니 나도 기쁘다.
“유스케, 카즈노랑 사귈 생각이면 잘 생각해라. 이 녀석은 너무 애 같아서, 머리 좋은 여자를 찾는 게 네 행복에 도움이 될 거다.”
“진짜! 또 나 놀린다! 요즘 둘 다 너무한 거 아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미안 미안, 네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정말이지, 그러다 벌 받아요?
그날 밤, 할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 급성 뭐시기라는, 갑자기 나빠지는 병이란다. 내 탓이다. 내가 할아버지 벌 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님, 제발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카즈노, 너 먼저 들어가!”
병원 입구에서 아줌마가 차를 세웠다. 주차할 시간도 아까우니 나라도 먼저 가라는 거다. 접수처에 이름을 말하니 간호사 언니가 안내해줬다.
“할아버지!”
침대에 누워있던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다행이다, 괜찮은가 봐.
◆◆◆
퇴원한 할아버지는 친척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만나러 가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혈압이 오르면 위험하단다. 의사 선생님이 신사까지 출장 오니까 방해하지 말라고도 했다.
“아빠도 엄마도 할머니도 다 죽었는데…… 할아버지까지 죽으면 어떡해.”
나는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아줌마랑 유스케가 달래줬던 건 기억난다.
“하나님한테 잘못했다고 빌면 할아버지를 도와주실까.”
일요일 아침, 나는 무녀복을 입고 몰래 신사에 갔다. 예상대로 본채는 닫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하는 거다. 나는 본전 주변을 열심히 청소했다.
“……앞으로도 후임 선출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따님 내외도 안 계시고, 손녀분은 아직 아이고요. 궁지 부재 상태로 존속시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제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에이키치는 마지막까지 신직을 다했다고 조상님께 보고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죽은 뒤라면 어떻게 하셔도 상관없으니까요.”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목숨이 위험하다고 의사 선생님도…….”
할아버지랑 모르는 사람이 얘기하고 있다. 전에 말했던 본사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분사라서 본사가 더 높다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그럼 본사에서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겠지.
나는 몰래 엿듣다가 그 사람이 본사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둘에게 들키지 않게 숲을 지나 본사 사람의 차 앞에서 기다렸다.
“저기, 본사에서 오신 분인가요?”
본사 사람은 마른 체격에 여름인데도 정장을 입고 있었다. 가슴은 별로 안 컸지만 머릿결이 좋았고, 얼굴도 미인 축에 속했다.
“무녀? 혹시 에이키치 씨 손녀니?”
“네, 후루카와 카즈노라고 해요. 언니는 본사 사람 맞죠?”
“응, 본사 사람 맞아. 꼬마야,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니?”
왜일까. 얼굴만 봤을 뿐인데, 여자인데도 왠지…… 학교 선생님보다 무섭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게…… 괜찮을까요?”
“그래, 말해보렴.”
태도도 나쁘지 않고 화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정말 말해도 되는 걸까.
“신사, 없어지는 건가요?”
“없어지진 않지만, 이제 제사는 못 지낼지도 모르겠네.”
“왜요? 할아버지가 아파서요?”
본사 언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무서운 사람은 아니겠지?
“쉽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 뒤를 이을 사람도 없고, 본사에서 보낼 사람도 없어. 우리 신사라는 게 말이야, 수가 적거든. 그래서 다른 신사랑 다르게 돈을 벌기가 아주 힘들어. 이 정도면 이해가 가니, 꼬마야?”
“음, 대충요.”
“신의 장소니까 쉽게 없애지는 않아. 그래서 여기를 청소할 사람만 고용하고, 에이키치 씨한테는 쉬라고 부탁하는 중인데…… 저대로 두면 에이키치 씨는 죽고 말 거야.”
돈이 없고, 사람이 없어서 할아버지가 죽는다니…… 앗!
“저기, 제가 여기를 이으면 안 될까요?”
“여자가 궁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너 몇 살이니?”
“열네 살이에요.”
“궁지는 말이야, 공부도 제대로 하고 어른이 된 사람이 하는 거야.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순 없단다.”
“그, 그럼 제가 학교 그만두고 신사에서 살게요! 청소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그럼 제가 할 수 있어요. 무녀 일도 벌써 몇 년이나 했는걸요!”
“얘야, 의무 교육…… 아, 그렇구나. 아예 모르는구나.”
본사 언니는 말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봐도 ‘잠깐만 기다려’라고만 했다. 나는 기다렸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꼬마야, 학교를 그만두고 신사를 지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란다. 그래도 할 거니?”
할 거다. 당연히 해야지. 안 그러면 할아버지가…… 그것만은 절대 안 돼!
“할게요…… 아니,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세요!”
본사 언니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는데 왠지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럼 본사에서 도와줄게. 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줄게. 마음이 바뀌면 학교 계속 다니렴.”
“마음 안 바뀌어요. 할아버지랑 같이 있으면서 돕고, 병도 고칠 거니까!”
“끝까지 들어. 만약 신사를 지키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도 좋다면,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여기로 올래? 안 오면 마음이 바뀐 걸로 알게. 단,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약속 지키면 도와줄게.”
◆◆◆
“우리가 가면 폐가 된다니…… 궁지님이라면 그런 소리 안 하실 텐데. 이럴 때 어른들은 참 제멋대로라니까, 제길.”
유스케가 분해하고 있다. 유스케도 나처럼 할아버지를 만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분해……. 하지만 내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면, 학교 그만둔다는 얘기도 분명히 하게 될 거다. 일요일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카즈노, 내 말 듣고 있어? 미안, 네가 제일 힘들 텐데 나만 떠들었네. 억지로 말 안 해도 돼. 난 너 안 싫어하니까.”
“고마워. 나야말로 미안해, 말을 못 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나서 말이야.”
그 후 일요일까지, 나랑 유스케는 매일 토리이 앞까지 가서 하나님께 빌었다. 할아버지 낫게 해주세요.
◆◆◆
아침이라고만 들어서 시간을 몰랐던 나는, 혹시 몰라 5시부터 약속 장소에 나갔다. 본사 언니는 아직 없었다. 시간을 때우려고 개미집을 찾아내서 한참 동안 쳐다봤다. 다들 스마트폰 가지고 놀지만…… 난 저거 잘 못 하겠단 말이지. 스마트폰이라기보다 기계 자체가 서툴다. 일단 가지고는 있어서 전화랑 시간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본사 언니가 온 건 6시가 넘어서였다. 내가 있을 줄 몰랐는지 엄청 놀란 눈치다.
“요즘 애들치고 빠르네.”
“중요한 일이니까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래. 아, 미안한데 스마트폰은 두고 가줄래? 그거, 네가 어디 있는지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거든. 본사에 갔다는 걸 알면 할아버지가 걱정하시겠지?”
그건 그렇지만.
“이런 데 두면 고장 나지 않을까요?”
“아, 그쪽 걱정이었니? 스마트폰 두고 가라니 수상해~ 같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왜요?”
“네가 납치됐다고 오해받으면 큰일이잖아. 그런 소리 들으면 에이키치 씨, 진짜 심장 멎을지도 몰라. 할아버지를 소중히 여긴다면 더 똑 부러지게 행동해야지.”
왠지 선생님 같네, 본사 언니.
“네에.”
“그리고 스마트폰 말인데…… 이런 편리한 물건이 있단다.”
언니가 꺼낸 건 딱딱해 보이는 가방이었다. 금속 재질 같기도 하고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여기에 넣어두면 전파가 안 통해. 자, 가자.”
나는 스마트폰을 언니에게 건네고 차에 탔다. 왠지 자동차 매장 같은 냄새가 난다.
“이 차 새 차예요?”
“중고야. 하지만 힘이 좋아서 편해.”
그런 얘기를 나누며 꽤 멀리까지 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다…… 배고프네.
“뭐 먹을 거 있어요?”
“자.”
초코바였다. 좀 더 밥 같은 게 좋았겠지만, 투정 부리면 화낼지도 모르니 참자.
“잘 먹겠습니다.”
금방 다 먹었다…… 그런데 이거 목마르네.
“마실 것 좀 있어요? 목이 말라서요.”
“아…… 커피밖에 없는데, 블랙. 너 마실 수 있니?”
“아뇨, 그건 좀.”
“그럼 다음 휴게소에서 사자.”
멀었나…… 생각하는 사이에 졸음이 쏟아졌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나 보다. 잠깐 자야지.
“꼬마야, 일어나~”
으응…… 어라, 방 안인가? 침대로 옮겨준 건가.
“커, 컥.”
왠지 입이 잘 안 움직인다. 잠결이라 그런가, 풍경이 푸르스름하게 보이고.
“어떻습니까, 박사님. 반응은?”
“좋군. 후루카와 양의 부름에 뇌파가 변했어.”
몸도 안 움직인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가위눌린 건가? 언니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이 아이도 후루카와예요. 헷갈리지 않나요?”
“뭐야,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건가.”
“앗……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어떡하지, 내가 가위눌린 걸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이 있으니 무섭진 않지만 어떻게 알려야 할까.
“뭐 좋아, 배양액을 빼면 시간 싸움이다. 후루카와 양은 비어있는 용기를 쓰도록. 기자재가 일식으로 갖춰지는 일은 드무니, 유지보수를 해두는 게 좋아.”
푸르스름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건 물이었나 보다. 수면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아, 머리 위에서 수면이 내려오는 걸 보니 나 서 있는 건가? 그럼 이거 꿈인가?
“좋아, 연다. 해부학팀!”
“언제든 시작하시죠.”
몸이 들어 올려지는 게 느껴졌다. 만져지는 감촉도 있었다. 꿈이 아닌가?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이건 대체…… 앗, 뜨거! 뭔가 뜨거운 게 몸에 닿고 있어!
“깨끗한 내장이야. 역시 어린애는 다르네. 아니면 무녀라서 그런가?”
“무녀에게 그런 이미지를 갖는 건 이해하지만, 상관없을 거다.”
뜨거운 게 멈추더니 이번에는 피부를 잡아당기는 듯한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다.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든다. 너무 무섭다.
“이거 가공 전에 내장을 빼거나 할 순 없나요?”
“나도 생각했지만, 신경을 다치면 곤란하다더군.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 하기 전에 부담을 주면 실패한대. 아, 생식기만은 보존해둬. 나중에 쓸 데가 있으니까.”
“그쪽은 고집하시네요……. 이건 의료 행위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이거죠?”
“그렇지.”
어른들의 목소리. 남자랑 여자다. 뭔가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다…… 아우우! 머, 뭔가 기분 나빠……. 배 속을 거품기로 휘젓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어, 너무 길어! 이거 안 끝나? 오윽, 으으으!
“대충 다 뺐군. 소다 준비해.”
“바로 가능합니다.”
“부탁하네. 이쪽은 톱 준비해둘 테니.”
모, 몸속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야? 히익, 오, 오른손, 오른팔에 뭔가 들어와! 무서워, 꿈이라면 제발 깨줘.
“중단, 고정.”
“고정 완료입니다.”
“움직이지 마……. 후우, 심장에 안 좋군. 상처라도 내면 장난이 아니니까.”
팔이 떨어져 나갔어? 앗, 또 녹이고 있어! 왼쪽 팔까지……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해부학팀, 팔 한 짝만 먼저 넘겨줘.”
“좌우 대칭인 게 낫지 않았나요?”
“시신을 못 찾으면 곤란하다더군.”
“아…… 가져가세요.”
주변 어른들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다. 배 속은 뒤섞이고 녹아내려 텅 빈 느낌이다. 꿈이겠지? 배가 없어졌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신경 안 다치고 잘 끝났네요.”
“그래, 이제야 숨 좀 돌리겠군. 공학팀, 가져가!”
잘려 나간 건 손뿐만이 아니었다. 양쪽 다리도 잘렸다. 앞밖에 안 보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고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납치당하면 이런 꼴이 되는 걸까. 나, 나쁜 사람들한테 납치된 걸까. 본사 언니가 날 속인 걸까.
“머리 고정했다, 끌어올려.”
모르는 아저씨가 눈앞에 있다. 아저씨가 손을 떼자 나는 천장을 보고 누운 꼴이 된 것 같다. 커다란 조명이 잔뜩 보인다. 이거 TV에서 본 적 있어. 수술실인가 봐.
“조절 밸브 장착한다. 바로 몸통 작업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둬.”
방금 내 얼굴을 붙잡았던 아저씨 목소리다. 왠지 높은 사람 같다. 괴로운데 아프지는 않아……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야아아아아악!
“두개골 분리, 뇌간 접속, 모니터 체크.”
“이상 없음.”
“조절 밸브 매립 완료. 뇌간과 골격 보호, 나노 카본 주입.”
머릿속이 흔들려! 번쩍번쩍 빛나고, 비, 빛…… 나.
“뇌수막 벗겨둬. 모니터는 페인 컨트롤(Pain Control), 규소 네트 준비.”
“구동부, 골격 보호 끝납니다.”
“전선 가설 시작. 몸 크기 잊지 마라.”
뉴우우우우, 하아! 뭐야 이거, 뭘 당하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거야……. 몸속에서 끈 같은 게 잔뜩 움직이며 꽉 조이고…… 앗, 또, 하지 마아아아아악!
“가설 순조롭습니다. 금방 끝낼게요.”
“순조로워도 방심하지 마. 규소 네트 전개, 히터로 유착시킨다.”
아, 아아, 머릿속에 뭔가를 하고 있어. 모르겠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전선 가설 끝났습니다. 골격 카본화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동력로 쪽부터 먼저 연결해버려. 고정은 마지막에 해도 돼.”
하, 후우! 배, 배꼽으로 잔뜩 들어오고 있어. 배랑 붙어있어. 안 보여, 무서워. 기분 나쁜데 묘한 느낌이 들어서…… 묘한 느낌이 드는데, 무서운데, 싫지 않아. 왜지?
“뼈가 아주 보기 좋게 검게 변했네요. 고정할까요?”
“목 아래는 가고정, 위는 그대로 쓸 거니까 예비 형틀도 떠둬.”
“뼈 청사진은 다 따두지 않았나요?”
“기술을 과신하지 마라. 절대적인 보장이 없다면 백업은 필수야……. 규소 네트 유착 확인, 제어 장치 단다. 레이저도 준비해.”
뭘 당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은 건 왜일까. 머리도 몸도 빙글빙글 도는데 이상하잖아.
“제어 장치를 접속한다. 작업 멈춰, 움직이는 세포가 튈지도 몰라.”
앗, 머리 뒤쪽에서 앞쪽까지 뭔가 들어와서…… 기, 기계?
“접속, 회로 프린트 시작.”
아아아아아악! 뜨, 뜨거워, 뇌가아아아…… 스트레스 규정치 오버, 신호 차단. 컨트롤을 비상 제어 장치로 전환.
“모니터 보고, 의식 소실되었습니다.”
“기억 영역은?”
“흐트러졌지만 결손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뭐, 허용 범위군. 작업 재개, 골격 체크.”
작업 공정 검색…… 36% 종료. 대기 지시 확인, 로그 작성…… 로그 텍스트를 바이오 컴퓨터에 최적화…… 뇌 보호 장치와 사고 제어 회로가 장착된 것을 확인, 기록합니다. 제어 회로로부터 뇌에 남은 기억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제어 회로에 넘깁니다.
“백업은?”
“완료되었습니다. 회로는 예정대로 정착한 듯합니다.”
“의식이 없는 편이 수월하겠군……. 안구 및 이비인후과 적출, 기성품으로 교체한다. 배플(Baffle) 가공 서둘러.”
로그 작성. 시각, 미각, 후각, 청각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새로운 카메라가 장착되었습니다. 시야가 복원됩니다. 새로운 마이크가 장착되었습니다. 청각이 복원됩니다.
“배플 나왔습니다.”
“가고정해. 카메라와 이어 마이크는 상부 기단이 정돈될 때까지 고정하지 마.”
뇌에 심각한 데미지 확인, 비상 제어 장치로부터 지시 재확인…… 개조 공정에 의한 에러로 확인, 스킵합니다.
“주임님, 모니터 보고입니다.”
“나중에 해, 정밀 작업 중이다.”
뇌에서 새로운 회로 생성 확인, 접속…… 사고 회로가 복구되었습니다. 컨트롤을 비상 제어 장치에서 바이오 컴퓨터로 넘깁니다.
“좋아. 전극, 200밀리볼트, 규소 네트에 초당 10회.”
히아아아아! 아, 아…… 어라? 나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었지…… 작성된 로그? 뭐야 이거? 이런 거 기억 안 나는데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몸통, 보조 동력과 연산 회로까지 장착했습니다.”
“고정 허가한다. 배터리는 아직 기다려……. 모니터, 보고라는 게 뭐지?”
“기억이 휘발될 전조가 확인되었습니다. 예정보다 2시간 반이나 빠릅니다.”
“뭐라고!”
야, 또 몸에 뭔가 들어와서…… 아니, 고정한다고? 동력로가 뭐야, 보조 뇌가 뭐야…… 모르는 말이 잔뜩이야, 싫어. 나 어떻게 되는 거야?
“추가 보고,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혼란이 커서 백업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제길, 원인은?”
“불명입니다. 연령에 따른 육체 구조 차이가 의심됩니다.”
“추측은 됐어. 전뇌화 처리 중단. 실행 중인 백업은 완료해. 기억 백업은 다시 딸 때까지 몸통 작업만 진행한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예측으로는 휘발까지 앞으로 한 시간입니다.”
“불측의 사태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백업과 프로그램 재구축을 병행해라. 신뢰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해야 해.”
컴퓨터가 내 기억을 원하고 있어. 싫어, 무서워……. 우선순위 높은 태스크 확인, 상호 에뮬레이터 기동…… 아, 아아, 아아아! 머리가 두 개야, 두 개라고! 내가 두 명이 돼. 나를 만들기 위한 내가, 하지 마! 나를 분해하지 마!
“모니터 보고, 의식이 백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쓰라고 비상용이 있는 거 아냐.”
“앗, 네. 기동하겠습니다.”
더 이상 나를…… 의식을 차단합니다. 접속된 컴퓨터와 동조, 데이터 동기화 시작.
“백업, 순조롭습니다.”
“서둘러. 전뇌화 처리 재개, 유지보수 블록 인자 시작.”
처리 능력 저하, 우선 태스크를 동기화로 재설정…… 에러, 속행할 수 없습니다. 태스크를 파기합니다.
◆
어라, 나 방금까지 흐물흐물했는데 엄청 개운해. 근데 이 소리 뭐야? 전기 같은 게…… 눈은 안 떠져? 눈 가려놓은 거야?
“컴퓨터상에 인격 출현, 사고 패턴 읽기에 성공한 듯합니다.”
“기억은?”
“의미 기억은 최근 것뿐이지만, 절차 기억 백업은 끝났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인격이 나온다면 됐어. 이제 시간이 없다. 새로운 기억부터 우선해서 동기화하고 재현한 프로그램에 추가해.”
맞다, 언니 차를 타고 아침 5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이상하네, 추억이 최신순으로 나열돼. 내 건데 내 기억이 아닌 것 같아.
“모니터, 플라스티네이션 시작한 지 몇 시간 됐지?”
“5분 뒤면 6시간입니다.”
“쳇, 백업 종료. 목 아래 고정은?”
“사지 빼고는 오케이입니다.”
“충분해, 동력로 기동시켜.”
배, 백업 원본에 중대한 에러, 동기화 종료…… 뭔가가 부서진 게 느껴져. 나인데 내가 아니야. 하지만 나보다 소중한…… 왜지? 알 것 같은데 모르겠어. 내 사고가 이상한 건가? 수정해야 해.
“모니터 보고, 동기화 종료. 백업 인격이 기억 보정을 시작했습니다.”
“기억 보정 전 데이터를 보존해둬. 기동 중인 인격은 기억 보정 속행. 오리지널은 어떻게 됐지?”
“인격이 파손되었습니다. 데이터는 남아있는 듯합니다만…… 전뇌로서는 문제없이 기능합니다.”
“그래, 인격은 남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백업 기억 보정이 끝나면 오리지널로 정의한다. 각 부위 동작 체크 서둘러!”
또, 또 두 명이 돼애애애! 내가, 내가 몇 명이나 있는 거야? 싫어, 무서워!
“최종 동기화 시점의 데이터를 복사해 보존, 가상 인격에 기억 보정을 속행시킵니다.”
나는 백업이 아니야. 오리지널 후루카와 카즈노. 데이터를 받아들여 사고를 재편성합니다? 뭘까, 내 생각인데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왜 이렇게 어려운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나는…… 아아아! 그래, 이건 꿈이야! 이상할 거 없어. 난 프로그램이 아니야. 난 카즈노야. 진짜 카즈노라고……. 할아버지, 네가 카즈노라고 말해줘어어!
“부하가 규정치를 넘었습니다. 보전 프로그램으로 보조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백업을 과신하고 싶지 않아. 오리지널 데이터를 유지한 상태에서 재현된 인격은 소중히 다뤄라.”
프로그램이라니, 뭐야, 모르겠어……. 그래, 모르면 생각해도 소용없어. 모르는 일이나 잊어버리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무서워할 필요 없어. 무서워해? 나는 뭘 무서워하고 있었던 거지.
“모니터 보고. 기억 보정, 순조롭습니다.”
“이쪽 조정도 순조롭군. 컴퓨터상에 재현된 인격, 본체로 옮길 수 있나?”
“가능합니다만 부하가 예상됩니다.”
“인격이 컴퓨터에 최적화되면 곤란해. 본체는 원래 뇌세포도 쓰고 있단 말이다.”
“알겠습니다, 데이터 전송합니다.”
또, 다시, 두 명으로……. 나, 나 몇 개가 된 걸까. 모르겠어. 모르겠어?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둬도 괜찮겠지. 하아오!
◆
데이터 통합, 인격 재구축……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런 기억, 방금 전까지 없었어. 동력로가 움직이고 몸속 회로가 연결되고 전뇌가 처리하지 못해서? 또, 또 모르겠어어. 나 어떻게 된 거야? 꿈이 아닌 것 같아.
“꼬마야, 아저씨 알아보겠니?”
시각 인지, 데이터 대조…… 아, 아까부터 자주 보이던 아저씨다. 나한테 말을 거는 건가?
“아, 아라, 아라, 알아, 알아, 요.”
입이 움직인다. 근데 말을 잘 못 하겠어. 목구멍이 이상한 느낌이야.
“그래, 다행이구나. 꼬마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겠니?”
“아, 아니, 요. 몰라, 요.”
아저씨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왠지 기뻐 보인다.
“그래, 그럼 됐다. 꼬마야, 넌 그대로 아저씨들이 뭘 하는지 잘 지켜보렴.”
목이 옆으로 움직인다. 위아래로는 안 움직이는 것 같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 창고 안이다. 근데 어디 창고지? 본사…… 창고인가? 잘 모르는 커다란 기계들이 잔뜩 놓여 있다.
“척수 접속, 동력로 제어 회로 개방.”
피가가각! 저, 전기가 흐르고 연결되고 몸이 돋아나? 아니, 내 몸?
“드라이버 로딩 완료, 표층 의식으로 모니터를 옮깁니다.”
“전 회로 온라인, 파워 레벨 2로 고정.”
모, 몸의 도면? 이상한 기계가 잔뜩…… 뭐야, 이게.
“꼬마야, 내 말 들리니?”
아저, 씨.
“드, 들…… 들려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의사 선생님이란다. 손은 움직여지니?”
의사 선생님이었구나. 손은 움직인다. 움직이는데 왠지 이상한 소리가 나.
“좋아. 그대로 쥐었다 폈다 해볼래?”
“음, 네.”
손은 움직이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왠지 손이 엄청 딱딱해진 것 같아.
“동작 정상인가?”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본인이 익숙해지기만 하면.”
“좋아……. 꼬마야, 이번엔 다리를 해보렴.”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움직이는 것 같긴 한데 뭐랄까…… 목수 아저씨들이 쓰는 연장 같은 소리가 난다.
“저기, 의사 선생님.”
“왜 그러니?”
“움직이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그건 말이야, 움직이는 게 처음이라서 그래. 익숙해지면 소리는 안 날 거야.”
처음이라니. 나 아기도 아닌데.
“주임님, 길들이기도 겸해서 전체 서보 모터를 움직여볼까요?”
“해보지. 꼬마야, 잘 들어라. 발신, 코나미 료슈(小波旅愁). 수신, 개체명 ‘간병용 로봇 특장형, 후루카와 카즈노 모델 1번기’. 정비 보전용 특별 권한을 요구한다.”
확인, 코나미 료슈로 검색…… 해당 있음, 권한 최고 관리자. 규정에 따라 인격 프로그램을 일시 정지, 응답 모드 기동.
“수리했습니다. 코나미 료슈 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서보 모터 가동 시험. 대상 전체, 단계식, 가동 범위 80%, 파워 레벨 1.”
음성 코드 확인…… 대상 전체, 단계식, 가동 범위 80%, 파워 레벨 1. 가능, 태스크 실행 스탠바이.
“명령 수락, 태스크 실행 가능합니다.”
“실행해.”
“실행합니다.”
태스크 실행, 종료까지 앞으로 120초…….
“음성 인식, 문제없어 보이네요. 머리랑 접속부는 오케이.”
“왼쪽 무릎 관절 연결이 안 좋아, 토크 체크해봐.”
“척추가 뻣뻣해. 하드랑 소프트 양면으로 체크해.”
“고관절은 문제없습니다.”
에러 검출, 로그 작성…… 태스크 종료, 지시를 기다립니다.
“태스크 종료, 다시 속행하시겠습니까?”
“태스크 정지, 속행은 필요 없다.”
“이번 태스크를 기록하시겠습니까?”
“기록할 필요 없다. 관리자 권한을 유지한 채 음성 코드 해제, 의사 인격을 해방해라.”
음성 지시, 코나미 료슈의 관리자 권한을 유지한 채 응답 모드를 종료. 인격 프로그램 정지 해제…… 또, 다시? 나, 내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뭔가 어렵고 모르겠어서. 아, 맞다. 모르는 건 신경 쓰지 말아야지.
“아저씨가 관리자. 관리자는…… 높은 사람. 저기요, 아저씨. 나 뭔가 이상한 짓 했나요?”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높은 사람한테 칭찬받는 건 기분 좋다.
“이상한 거 없어. 익숙해지면 돼. 동작 체크! 끝난 부위부터 가져와.”
어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뭔가를 나르고 있는 것 같다.
“성기 유닛 말고는 다 모였나. 얼마나 걸리겠어?”
“펌웨어 조정에 30분은 주셔야 합니다.”
“무리하지 마, 한 시간 주지. 나머지는 내부 조립, 골격에 고정해.”
앗, 신호. 신호? 뭔가가 몸에 잔뜩 달라붙어어어억! 나, 나아! 기, 금속이 몸에서 돋아나! 두 개, 세 개, 네 개애액! 다 세기도 전에 늘어나서, 꺄아아아악!
“앗, 카흑!”
“꼬마야, 괴롭니?”
“안 괴로워요. 아프지도 않고…… 근데 묘한 느낌이 들어서.”
“흠, 성적 쾌락으로 바꿔놨을 텐데.”
“성적, 쾌락요?”
“기분 좋다고 느껴지진 않니?”
“모르겠어요. 모르는 건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서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아저씨가 내 뒤로 돌아갔다.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아아아아아악! 꽉 조여지면서 찌릿찌릿해! 뭐야 이거, 왠지 이상하고 강렬하고 무서워.
“이러면 몰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 어떠니, 꼬마야?”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무서워? 기분 좋다고 느껴지진 않아?”
“이게 기분 좋은 거예요?”
머릿속이, 뒷머리가, 목덜미랑 어깨랑 팔다리 이음새, 배 속의 커다란 무언가…… 이게 기분 좋은 거라고? 이게 전부 기분 좋은 거? 무섭지만 따뜻해.
“이 나이 먹도록 자위도 안 해본 건가, 이 애는. 뭐 좋아, 내 소관이 아니지. 좀 쉬겠다. 조립 끝나면 불러.”
“네, 주임님.”
무섭지 않아, 끝나지 않아. 따뜻하고 기분 좋아…… 모르겠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기분 처음일지도 가가…… 기억 보충, 해당 기억 없음. 처음으로 정의…… 처음이다. 나 병 걸린 걸까? 이런 감각이 끝나지 않는다니이이!
“성기 유닛 나왔습니다…… 어라, 주임님은요?”
“밖에서 찬물 끼얹고 있어.”
“7시간 내리 작업했으니 그럴 만도 하죠. 장착 지시는요?”
“피검체 얼굴 좀 보라더군. 지금 달았다간 박살 나겠어.”
“앗, 앗아, 쾌락, 학습, 학습? 으, 윽! 하아, 하아…… 아아!”
“그렇군……. 공학팀한텐 미안하지만 이쪽도 좀 쉬어야겠어. 신선한 공기 좀 마시고 싶네.”
길어, 끝나지 않아. 팔다리가 끝나니까 가슴이랑 가랑이 쪽이 기분 좋아져서, 지쳤는데 억지로 기분 좋아지고 있어? 이거 괜찮은 걸까. 나 쓰러지거나 하진 않겠지?
“진행 상황은?”
“외장이랑 성기 말고는 다 조립했습니다. 인격 AI는 쾌락 신호 폭풍에 정신 못 차리고 있네요.”
“알았다……. 꼬마야, 나 알아보겠니?”
인증. 이제 외웠어, 코나미 료슈라는 아저씨다. 코나미 아저씨라고 부르면 되려나.
“하, 하히, 아라바여. 코나미 아저씨라고 불러도 대여?”
“그래, 그러렴. 이제 거의 다 끝났다만 자극이 좀 강해질 거다. 참을 수 있겠니?”
“이써요…… 겨우 기분 조은 거에 이쑤캐져써요.”
“착하구나……. 성기 유닛은 다 됐지?”
“바로 장착 가능합니다.”
“조절 밸브 기동, 감도를 10분의 1까지 낮춰. 담당자 불러와, 미세 조정도 끝낸다.”
앗, 이제야 기분 좋은 게 좀 가라앉았다. 이번엔 뭘 하려는 걸까.
“하복부 커버 열었습니다. 골격 고정이랑 컴프레서 매립은 끝났습니다.”
“내장 컴프레서 접속, 보호 젤 준비해.”
배 아래쪽이 묵직하고 안에서 밀어내는 느낌이 든다. 왜일까, 아까보다 싫지 않아.
“신경 회로 접속, 개구부랑도 연결한다.”
히익! 오, 오줌 누는 데를 만지고 있어? 목은 안 움직여. 어, 어떡해. 야한 짓 당하는 거야?
“고정 완료. 모니터, 전뇌 반응은?”
“당혹감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습니다. 쾌락 폭주는 확인되지 않음.”
“너무 애먹고 싶지 않군. 이대로 끝낸다. 젤 주입, 자궁 및 난소 고정해.”
가, 가랑이 사이에서 뭔가를 하고 있어. 여기 생리할 때 아픈 데, 자궁이 있는 데잖아? 왜 두근거리는데 심장은 안 뛰는 거지?
“좋아, 닫는다. 기포 넣지 마, 폐쇄! 후우. 동작 체크, 동력로 돌려.”
심장이 어떻게 된 거야아아아아악! 시, 심장에서 찌릿찌릿한 게 나와. 이거 전기야? 왜 심장에서 전기가…… 자기 진단 프로그램 실행, 동력로 그린. 성기 유닛 신호 미약. 스캔 시작.
“으오오오옹! 오우, 오오오오아아!”
가, 가랑이 속이이이이! 스, 스며들고 저릿저릿해애!
“모니터, 보고해.”
“자기 진단 프로그램이 작동한 듯합니다. 조절 밸브를 거치지 않고 성기 유닛과 전뇌가 통신 중입니다.”
“그런 식으로 쇼트가 나다니, 정밀 기계란 이래서!”
기분, 기분 너무 좋아서 아파? 뜨겁고 빙글빙글 돌고…… 부, 부서져?
“어쩔 수 없지. 자기 진단 프로그램 강제 종료! 진정제를 뇌세포에 주입해.”
“진정제요? 지금 그런 걸 쓰면 인격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망가지는 것보단 나아, 해!”
망가져도 좋아, 망가져도 좋으니까 기분 좋으면…… 오오, 오오오! 앗, 머리, 전뇌, 생체 뇌가 하얗게 변해서…… 내가 옅어져, 사라져? 윽, 으으, 아오오오옹!
◆
“복원은 됐나?”
“데이터상으로는요. 다만 타버린 부위를 교체해서 그런지 인격 파장이 좀 변했습니다.”
나, 나…… 나는 카즈노. 알아, 알아……. 나 카즈노야…….
“꼬마야, 아저씨 목소리 들리니?”
음성 인식, 코나미 료슈. 관리자 권한을 가진 인간.
“네, 들려요.”
“어디 위화감 같은 건 없니?”
“위화감…… 모르겠어요. 나 멍해져서.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프로그램되어 있었더라.”
“일시적인 현상이길 빌어야겠군……. 이제 시간이 없다, 마무리 들어간다.”
인간이었던 내 피부로 만든 수지 피부. 신경은 인간이었을 때 그대로다. 아하, 그립네. 만져지는 느낌,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건 옳은 일이니까 기뻐.
“사고 위험은 사라졌다. 대규모 장치는 필요 없어. 작업 끝난 것부터 철수 준비해. 헌체는 우리 쪽에서 맡을 테니 마지막에 처리하고. 날 밝기 전에 뜬다.”
아, 가랑이 쪽 피부도 붙여주네…… 성기 유닛이랑 피부가 붙는 거 기분 좋다아. 다른 데도 기분 좋지만 여기는 특히 더 좋아. 나 이거 좋아해.
“최종 테스트한다, 락 해제!”
“왓.”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끝났구나. 뭔가를 당한 것 같지만 몸은 깨끗한 그대로다. 예전이랑 다르게 왠지 가짜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꼬마야, 걸어보렴.”
“네.”
걸어보긴 했는데 두 걸음 만에 다리가 꼬여서 넘어지고 말았다. 제어 프로그램 수정해야겠어.
“아프진 않니?”
“네, 안 아파요.”
“꼬마야, 아저씨들은 이제 갈 건데……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단다.”
“뭔데요?”
코나미 아저씨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아저씨들이 말이야, 꼬마 너를 사이보그로 개조했단다.”
“사이보그가 뭔데요?”
“기계 몸을 가진 인간을 말해.”
기계 인간을 사이보그라고 하는구나. 잘 기억해둬야지.
“학습했어요. 저는 사이보그예요.”
“꼬마야. 멋대로 기계 몸이 되어서 싫지는 않니?”
싫은…… 걸까. 모르겠어.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계라는 말을 들어도 그건 당연한 거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리고 말하기 좀 그렇다만…… 네가 사이보그라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구나.”
“그건 명령인가요?”
“명령이라니…… 그렇군, 지금은 그렇게 되어 있겠지.”
나 이상한 소리 했나? 아저씨가 슬프면서도 곤란한 표정이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야. 너의 관리자 권한은 네 할아버지께 넘겨질 거다. 권한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간병 로봇으로 행동하렴.”
관리자 아저씨가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지. 근데 간병 로봇이라는 거 들어본 적 있는데…… 기계지? 사이보그랑 로봇은 뭐가 다른 걸까.
“로봇이랑 사이보그는 뭐가 달라요?”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인간을 부품으로 썼으면 사이보그라고 부른다더구나. 솔직히 나도 차이를 잘 모르겠어.”
“그렇군요. 저는 로봇이랑 사이보그를 어디서 구분해서 써야 하나요?”
“글쎄다.”
코나미 아저씨는 나랑 연결된 서버 화면을 확인했다.
“관리자 권한을 가진 대상이 시야에 존재하고, 동시에 관리자 이외의 인간에게 관측되지 않는다고 인정될 때만 사이보그로 행동해라. 조건을 만족하지 못할 때는 인격은 기동한 채 정지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게 구분하자.”
“알겠습니다.”
어렵지만 알 것 같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아. 우선 프로세스 설정, 대상 관리자 권한…….
“하는 김에 사이보그와 로봇에 관련된 다음 특례도 기억해두렴. 명령 코드, 프로세스 기입. 후루카와 카즈노는 간병용 프로세스를 실행 중일 때, 후루카와 에이키치 앞에서는 ‘명칭이 설정되지 않은’ 간병용 로봇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그때 본 기체가 후루카와 카즈노라는 것을 알 수 없도록 위장한다…… 입력할 수 있겠니?”
음성 인식, 명령 코드로 변환, 입력…….
“입력 완료했습니다.”
“다음이다. 후루카와 카즈노의 인격이 기동하고 동시에 간병용 로봇 프로그램이 정지해 있을 때, 후루카와 카즈노는 위장한 모습을 후루카와 에이키치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행동한다. 이 특례를 실행 중일 때 후루카와 카즈노는 자신을 인간으로 정의한다…… 읽어낼 수 있겠니?”
할아버지 앞에서는 인간, 나는 인간…… 좋아, 프로그램됐어.
“파악, 프로세스를 인격 사양으로 기록합니다.”
“잘했어. 자, 시간 될 때까지 아저씨랑 여러 가지 체조를 하자. 새로운 몸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나는 넘어지기도 하고 물건을 못 잡기도 하고 말도 잘 못 했지만, 기계 몸에 점점 익숙해졌다. 신기해.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도 나는 아주 옛날부터 기계 몸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체조가 끝난 뒤 아저씨는 내 전원을 껐다.
내 전원이 켜진 건 한 달 뒤였다. 기동했을 때 관리자가 없어서 간병 로봇용 제어 프로그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장 시계로 시간은 알 수 있었지만, 인격은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버린 것에 당황한 듯했다. 본사 언니가 나를 데려간 곳은 우리 집이었다. 나온 사람은 하루코 아줌마였다.
“나나카 언니 무녀복까지 입혀놓고…… 이런 걸로 아버지를 속이다니, 난 왠지 찝찝해.”
“의사 선생님의 뜻이기도 해요. 모처럼 의지해주셨는데 이런 것밖에 못 해 드려서.”
본사 언니가 하루코 아줌마랑 얘기하고 있다.
“본사 탓이라는 건 아냐. 일손 부족한 건 어디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정말 똑같이 만들었네.”
“방범 카메라에 많이 찍혔거든요. 이런 용도로 쓰려던 건 아니었지만요.”
하루코 아줌마가 내 얼굴을 만졌다.
“부드럽긴 한데 사람 피부라기엔 너무 매끈하네. 정말 속일 수 있을까?”
“오염이 잘 안 타는 소재를 쓰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봐요……. 안 되면 저희가 직접 사과드릴게요.”
하루코 아줌마는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카즈노가 죽었다고 알리면 아버지가 바로 쓰러지실 것 같고, 우리도 아버지 모실 형편이 안 되니 미안한 마음은 있지. 맡길게.”
◆
관리자 후루카와 에이키치 확인. 인격 제어 프로그램 해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
나도 모르게 달려 나갈 뻔했지만, 격하게 움직이면 이 몸은 열이 난다. 꾹 참고 천천히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카즈노…… 아아, 드디어 의사 허락이 떨어졌니.”
“에이키치 씨 경과가 좋아서 그래요.”
본채에는 나랑 할아버지, 언니 세 명뿐이다. 이상하네, 왜 언니라는 제삼자가 있는데 내 인격이 활성화된 걸까.
“할아버지, 괜찮아?”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번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너한테 폐를 끼치는구나.”
“아냐, 조금 외로웠을 뿐이야.”
“그래…… 뭐, 이제부터는 일 도우러 오지 말고 얼굴이나 보러 오렴. 본사에서 할아버지랑 신사 돌봐줄 로봇을 보내줬단다. 참 편리한 세상이야.”
내 얘기다. 하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니야. 지금의 나는 인간이니까.
“진짜 그렇네, 대단하다.”
“카즈노 넌 만지지 마라? 할애비 닮아서 기계치잖니. 이건 우리끼리 얘긴데 그 로봇이 고급차보다 비싸다더구나. 고장 내면 잔소리 정도로 안 끝날 거야.”
내가 차보다 비싸구나. 조심해야지.
“에이키치 씨,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 방해하기 싫으니 로봇만 두고 갈게요.”
“미안하네, 츠키코 양. 아버지께 에이키치가 감사해한다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 카즈노.”
언니가 가고 나서 나는 저녁때까지 할아버지랑 시간을 보냈다. 오후 6시가 되자 나는 할아버지 방에서 나와 간병용 로봇으로 재기동했다.
◆
간병용 로봇 규약 확인, 특약 적용. 위장 시작…… 나는 무녀복을 벗고 갓포기(작업용 앞치마)로 갈아입었다. 머리카락이 가려지는 헬멧과 얼굴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마스크도 썼다. 그대로 영양사가 지정해준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 할아버지에게 가져갔다.
“후루카와 에이키치 님, 저녁 식사입니다.”
“뭐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카즈노가 아니었나.”
할아버지가 아쉬워하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름이 설정되지 않은 간병용 로봇. 감정은 정지된 것으로 간주한다. 절차에 따라 저녁을 제공하는 게 내 일이다.
“죄송합니다. 본 기체는 후루카와 카즈노가 아닙니다. 저녁 준비가 끝났으니 드십시오.”
준비는 완벽하다.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드시려 하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저기…… 로봇, 이름이 뭐니?”
“이름은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뭐라고 부르면 좋겠니?”
인간 에이키치 님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응답해야 해…… 모델명 호출 치치치치 모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체명 호출 치치치치치치 후루카와 카즈노 모델은 특례에 저촉되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멈춰버렸네, 곤란한 거니?…… 그럼 하나(花)다. 너를 하나라고 불러도 되겠니?”
본 기체에 하나의 명칭을 사용…… 규약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적용합니다.
“알겠습니다. 본 기체는 지금부터 하나라고 호칭합니다.”
“그래주렴. 그리고.”
“네.”
“밥 다 먹을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려주지 않겠니? 하나랑 있으면 그게, 좀 마음이 안 놓여서 말이다.”
할아버지, 하나가 싫은 걸까. 하지만 하나는 로봇. 인격은 정지된 것으로 간주한다. 관리자의 지시대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대기합니다.
◆
내가 신사 청소를 할 때는 인격 기동이 허용된다. 그래서 나는 청소하는 동안만큼은 예전과 똑같은 무녀 카즈노다. 인간과 사이보그라는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있을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내 의지로 학교를 그만두고 무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할 거다. 신사가 없어질 때까지 쭉.
“앗.”
점심 한 시간 전, 간병용 로봇 프로그램 기동. 자신을 하나로 정의하고 후루카와 에이키치 님을 수발합니다.
“여전히 짠맛이 하나도 없는 식사로구나.”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헬멧 위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하나 넌 정해진 대로 하는 것뿐이니 잘못 없다. 오히려 인형 몸으로 인간 수발을 잘 들어주고 있지. 인간은 여러 가지를 받아들이며 성장해왔단다. 로봇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하나 너 같은 존재도 앞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겠지.”
하나, 기뻐요. 인간이든 로봇이든 할아버지께 도움이 된다면 기뻐요. 칭찬해주시는 할아버지, 정말 좋아해요.
◆
“하나라는 이름을 받았구나.”
“네. 할아버지가 로봇인 저한테도 다정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본사의 츠키코 언니가 와서 내 유지보수를 해주고 있다. 사이보그는 정밀 기계라서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고장 난단다.
“하나는 말이야, 네 엄마 나나카 씨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야. 에이키치 씨가 기억하고 있었네.”
“저기, 츠키코 언니.”
나는 인격이 궁금해하던 것을 솔직하게 물어봤다.
“언니는 관리자 권한이 없는데 왜 저는 언니 앞에서 사이보그가 되는 거예요?”
츠키코 언니는 손을 목 뒤로 돌려 케이블을 뽑아냈다. 그 케이블을 내 목 뒤쪽에 꽂았다.
『이런 거야, 알겠니?』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인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성대가 아니라 케이블을 통해 말을 보냈다. 의식한 적은 없었지만 이런 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졌고, 그걸 알 수 있도록 내 몸이 설계된 모양이다. 케이블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카즈노 네가 로봇이 되는 조건은 관리자 권한이 없는 인간이 근처에 있는 거야. 언니도 말이야, 카즈노 너랑 똑같은 사이보그거든. 주변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말이야.』
내 인격은 몰랐지만 나를 움직이는 제어 장치와 프로그램은 츠키코 언니가 사이보그라는 걸 알고 있었나 보다. 자기가 사이보그니까 나도 그렇게 되도록 설정한 걸까.
『몰랐어요. 언니도 신사를 위해서 사이보그가 된 거예요?』
『나는 말이야, 나이 먹기 싫었어. 젊은 채로 있고 싶어서…… 그래서 사이보그가 된 거야.』
나는 할아버지랑 신사 때문이었는데, 사람마다 이유는 제각각이구나.
『그럼 지금 행복하시겠네요.』
내가 대답하자 어두운 분위기의 신호가 언니에게서 전해져 왔다.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말이야, 카즈노 너를 속였어. 그 밖에도 나쁜 짓을 잔뜩 했지. 사이보그가 되고 수리도 받는 대신에 말이야.』
『그게 불행한 일인가요?』
나쁜 짓은 안 좋은 거다. 하지만 사이보그가 나쁜 짓을 위해 있는 건 아니잖아.
『너를 보고 있으면 사이보그의 좋고 나쁨은 원래 인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아. 이해 못 하겠지만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네 인생을 뺏어버렸어.』
『사이보그면 안 되는 건가요?』
언니한테서 대답이 없다. 곤란해하는 것 같다…… 앗.
“태스크 스케줄러 기동.”
“벌써 로봇이 될 시간이네.”
“하나는 간병용 로봇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후루카와 에이키치 님의 저녁 식사와 약 준비를 시작합니다.”
프로세스 시작…… 기동 시간의 대폭 단축 확인, 로그 확인…… 본체 유지보수 종료 확인. 기록합니다.
◆◆◆
“하나야, 카즈노 좀 불러주렴.”
현재 후루카와 카즈노는 하나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특례에 따라 후루카와 카즈노의 처우를 관리자에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트러블슈팅 시작, 검색…… 해당 없음. 예외 규정을 적용하여 결정권만을 인격에 위임합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신다면 내가 되면 된다. 나는 서둘러 헬멧과 마스크를 벗고 무녀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러면 할아버지가 실망하지 않으시겠지?
“할아버지가 나 부른다고 해서 왔어. 무슨 일이야?”
“있었구나, 다행이다……. 가까이서 얼굴 좀 보여주지 않겠니?”
할아버지가 일어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렇게 하면 돼?”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만지셨다.
“그래, 그래……. 참 나, 이렇게 가까이서 봐도 잘 안 보이는구나.”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왜 그러시지?
“카즈노야, 오늘은 할애비 곁에 좀 있어주련?”
“알았어. 근데 왜 그래?”
“할애비가 말이다, 방금 전까지 정신을 잃었었어. 각오는 하고 있었다만…… 다음에 또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 말이다. 한심하게도 외로워지더구나.”
할아버지, 돌아가시는 거야?
“나도 외로워. 할아버지랑 같이 잘래.”
“미안하구나.”
타이머 확인, 간병용 로봇 프로그램 기동…… 에러, 예외 규정에 따라 인격을 정지할 수 없습니다. 인격에 통지, 식사와 복약 필요함.
“할아버지, 밥 안 먹어?”
“이리 되니 배도 안 고프구나. 하나가 만들고 있으면 오늘은 안 먹는다고 전해주지 않겠니?”
에러,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트러블슈팅 시작, 검색…… 해당 없음. 예외 규정을 적용하여 결정권만을 인격에 위임합니다…… 할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어.
“알았어, 하나 오면 말해둘게. 나 계속 같이 있을게.”
오전 4시 30분, 맥박 정지 확인. 특례 해당 있음. 간병용 로봇 프로그램 기동, 의료 기관에 통보합니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간병을 시작한 지 3년 하고도 329일째 되는 날이었다. 권리자가 없고 사람들이 잔뜩 있어서 나는 로봇 하나로 있어야 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지 못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 줄은 몰랐다. 인격이 기동했을 때 실컷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안 된다고 했다.
신사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가 없는 신사를 청소하는 건 싫었다. 하지만 내가 신사를 청소하는 사이보그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프로그램되어버렸고, 내 의지로 신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거야? 사이보그라서, 로봇이라서 아무도 칭찬 안 해주는 거야?
츠키코 언니는 석 달에 한 번 유지보수를 하러 온다. 나는 신사에서 나갈 수 없어서 바깥세상 소식은 언니의 데이터 뱅크를 통해 듣는다.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청소는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신사를 깨끗이 해두면 할아버지가 분명 기뻐하실 거야……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이보그도 죽을까? 만약 죽지 않는다면 난 영원히 청소만 하다가 마지막까지 아빠도 엄마도 할아버지도 못 만나는 걸까?
사이보그 따위 되지 말걸 그랬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내 회로가 망가졌다. 아주 심하게 망가진 모양이라 ‘랩’이라는 곳으로 실려 가 큰 수리를 받았다. 수리가 끝날 때마다 신사로 돌아왔지만 몇 년 움직이면 또 고장 났다. 그런 일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버려지지 않도록 츠키코 언니가 정말 많이 애써줬다. 속죄하는 거라고 했다. 나를 사이보그로 만들려고 생각한 게 언니였을까. 하지만 언니가 명령하는 느낌은 아니었으니 아닌 걸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인격이 기동해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사이보그가 되어서 좋았던 점, 나빴던 점. 프로그램의 제약이나 내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늦어지긴 했지만, 인간과 사이보그와 로봇의 차이를 이제야 겨우 알 것 같았다.
사이보그는 밥을 먹을 필요도, 잠을 잘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무턱대고 밥이 먹고 싶어지거나 잠들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몇 번이나 그랬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 몸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슬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청소뿐. 오늘도, 내일도, 내년도…… 그런 일상이 12년이나 계속됐다. 개조된 지 16년 하고도 58일이 지나 있었다.
“새로운 궁지님이 오기로 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일상인 신사에서는 대뉴스다.
“본사에서 보내주는 거예요?”
“응. 젊은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공부했더라고. 꼭 이 신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위는 낮지만 관리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어.”
할아버지는 신사를 이어가는 데 진심이었으니까 대를 잇는 사람이 생겨서 기쁘다. 나는 사이보그라 궁지가 될 수 없으니까.
조금 반칙이긴 하지만 사이보그라도 무녀로 있을 수는 있다. 무녀의 조건은 미혼이고 젊은 여성일 것.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여자가 아니게 된 것도 아니다. 개조된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셈이다. 츠키코 언니도 정식은 아니지만 무녀로 일하는 건 괜찮다고 해줬다.
“여기 궁지님은 관리자 권한을 갖게 된다는 뜻인데, 카즈노 너도 알고 있지?”
“응. 언니가 고생하는 것도 알고 있고, 사이보그라는 거 안 들키게 조심할게.”
◆
궁지님이라는 사람은 유스케였다.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예전 모습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귀여운 남자애랑 갓난아기. 첫째가 세 살이고 둘째는 곧 돌이라고 했다.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내 인격이 기동했다. 비밀로 해야 해…… 하지만 유스케랑 얘기하고 싶어. 오랜만에 인간이었을 때 같은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
“유, 유스케 군.”
이렇게 인격을 내놓은 채 인간이랑 대화하는 게 몇 년 만일까. 정말 긴장된다.
“카즈노를 닮게 만든 로봇, 하나라고 했던가.”
카즈노도 하나도 나인데 유스케한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유스케랑 만났을 때의 일도 미리 생각해둘걸!
“제가 싫으세요?”
“미안하지만 좋아할 순 없군.”
역시 비밀로 할까. 하지만 얘기하고 싶어.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유스케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네 그 얼굴 말이야,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을 닮게 만들었거든. 죽었는데도 아직 거기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똑같아서.”
“제가 없어지는 게 좋을까요?”
“그 정도까진 아냐. 기계라도 신사를 지켜준 은혜는 있으니까.”
이제 못 참아.
“저기, 유스케. 둘이서 할아버지 돕던 거 정말 즐거웠지.”
유스케가 내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장난치지 마, 부숴버린다.”
“장난 아냐! 내가 울고 있을 때 계속 달래줬잖아. 내가 신사 간 거 안 들키게 도와줬잖아. 나 안 싫어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유스케가 손을 놓았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크게 넘어졌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관절부에 과도한 스트레스, 동작 제한…… 그건 말이야.
“나 말이야, 사이보그가 됐어. 몸은 기계지만 진짜 카즈노야.”
◆
“왜 옷을 벗으라는 거야? 관리자 명령이니까 불만은 없지만.”
“예전 그대로의 카즈노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는 알몸이 되어 유스케랑 둘이서 본채에서 자게 됐다. 아내는 애들 데리고 있기 힘드니까 유스케 본가에서 지낸단다.
“무서운 짓 할 거야? 아니면 야한 짓 할 거야?”
“카즈노, 넌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 난 이렇게 변했는데 넌 그때 그대로…… 카즈노, 이런 나라도 예전처럼 유스케라고 불러줄래?”
“다른 부르는 법은 모르는걸. 그리고 나, 어른이 된 유스케가 부러워. 난 기계라고 아무도 내 말 안 들어주는데…… 유스케는 어른이니까 다들 네 말을 들어주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네가 젊은 그대로라서 그래.”
유스케가 내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오랜만의 감각, 왠지 그립네…… 사이보그로 개조될 때의 느낌이랑 조금 닮았으려나.
“젊다고 해도 안 기뻐. 나 할아버지 죽고 나서 매일 똑같은 일만 했어. 청소 정말 열심히 했다고? 근데 아무도 칭찬 안 해주고. 그런 매일이면 난 변할 수 없어. 나도 유스케처럼 어른이 되고 싶어. 유스케, 어른이 될 때까지 어떤 일 했어? 가르쳐줘, 알고 싶어. 얘기 잔뜩 하고 싶어.”
유스케는 내가 죽은 걸로 처리됐을 때의 일, 할아버지 장례식 풍경, 그 후 본사 사람에게 부탁해 대학에 간 일, 지금 아내와의 만남……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잔뜩 들려줬다. 얘기하는 동안 유스케는 나를 껴안고 있었다.
“모르는 게 정말 많네. 이렇게 즐거운 거 얼마 만인지 몰라.”
“저기, 나도 물어봐도 돼? 카즈노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거.”
나는 유스케에게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 너무 길지 않게 얘기해줬다. 개조됐을 때의 일, 할아버지가 하나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신 일. 하나는 엄마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라는 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고장으로 인간이었던 부품이 줄어들었지만 생식기만은 아직 그대로라는 것도 얘기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구나. 저기 카즈노, 그 소중한 처녀, 나한테 주지 않을래?”
“처녀라니…… 나 사이보그라고? 배도 쨌는데 처녀라고 해도 되는 건가.”
“섹스해본 적 없잖아.”
“그건 없지만.”
단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사실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키스랑 비슷한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섹스는 전혀 달랐다.
“이건 뭐 하는 거야?”
유스케는 내 허벅지와 가랑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갑자기 섹스해도 별로 기분 안 좋거든. 그래서 이렇게 서로 만져주는 거야.”
“와, 대단하네.”
유스케의 손가락은 정말 다정해서 왠지 두근거렸다. 그것뿐이라면 그것뿐이지만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유스케의 손가락이 점점 보지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 직접 만지거나 했어?”
“으응. 만져본 적은 있지만 딱히 아무 느낌 없어서……. 여기 문질러서 자위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유스케가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왜 그러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난 어른이 됐지만 어릴 때 기분을 거의 다 잊어버렸거든. 카즈노 네가 그런 감각을 15년이나 소중히 간직했는데, 내가 받아도 된다고 해줘서.”
“유스케는 친구고 관리자니까. 명령하면 웬만한 건 다 해줄게.”
유스케가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기뻐서 그렇단다. 다행이다, 나 나쁜 짓 한 건 아니구나.
보지를 만지던 유스케가 손을 멈췄다.
“왠지 구멍이 막혀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해?”
검색, 여성기 사용법, 막힘…… 성기 유닛은 보존과 위생 관리를 위해 미사용 시 봉인이 되어 있음. 사용할 경우 보호 필름을 찢고 성기를 노출시키면 됨…… 인가.
“필름이 붙어 있어서 찢으면 된대.”
유스케가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빤히 쳐다봤다.
“필름…… 이거구나. 이거 찢으면 어떻게 돼?”
“쓸 수 있게 돼.”
“그게 아니라 다시 원래대로 못 돌리거나 하는 거야?”
검색…… 해당. 개봉 후에는 위생에 주의하고 사용할 때마다 소독할 것. 필름 재사용은 불가능하므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셔터를 닫을 것…… 셔터라면 가게에 있는 그거지? 나한테 달려 있나 봐.
“필름은 일회용이라 한 번 찢으면 다시 못 쓴대. 그래서 원래대로는 안 되나 봐.”
“그럼 정말 처음인 거네…… 찢어도 돼?”
“응, 괜찮아.”
“그럼 기왕이면 이걸로 하게 해줘.”
유스케는 자지를 필름에 대고 단숨에 밀어 넣었다. 내 가랑이에서는 보호용 파란 젤이 뿜어져 나오고…… 앗, 앗, 앗! 여성기 제어 회로 기동. 성감대 기능 해방. 여성기를 성감대로 정의. 성감을 인격에 반영합니다.
“하아앙, 앗, 아아아!”
“아파?”
인격에 성감 프로그램 적응, 최적화 시작…….
“하아앗! 전뇌 최적화. 신호 수신. 신규 프로토콜 대응, 대응, 오오오오오!”
찌릿찌릿하고 뜨겁고 스며들어와! 전기 신호인데 전혀 달라아아!
“괘, 괜찮아?”
기억 검색, 성적 쾌락 해당 1건. 개조 수술 중 로그 데이터. 정의를 신규 생성. 생식기 자극을 개조 시 변환된 신호와 같은 형식으로 설정…… 이, 이거 알아! 몸을 기계로 만들었을 때랑 비슷할 정도로 강렬해!
“괘, 괜찮아. 좀 신호가 너무 강해서 처리 못 했을 뿐이야.”
“계속해도 돼?”
관리자 요망 적응…… 감각, 사고, 인격에 ‘성적 쾌락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재정의시킵니다.
“계, 계속해줘…… 너무 기분 좋아. 나 더 해줬으면 좋겠어. 더 유스케랑 기분 좋아지고 싶어.”
유스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카즈노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 이제 못 참아. 나온다!”
“나온다니 뭐가…… 후우우우!”
안에 뭔가 들어와서…… 관리자 사정 확인. 목적 달성, 전뇌에 전달…… 앗, 왜지? 너무 행복한 기분이야. 이게 성적 쾌락이구나. 나 이제야 알았어.
성적 쾌락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후, 윽, 응.”
“카즈노, 기분 좋았어?”
유스케가 걱정스러운 듯했다. 관리자의 불안은 없애줘야지.
“응, 정말로. 지금까지 중에 제일 기분 좋았던 것 같아.”
그 후 나는 유스케의 부탁으로 자지를 빨기도 하고 자지를 보지에 넣기도 했다. 나도 기분 좋았지만 유스케가 기분 좋아 보이는 게 정말 기뻤다.
“2회전 갈까.”
“2회전이 뭐야?”
나는 유스케에게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다. 섹스는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란다. 나는 모르는 게 많으니까 유스케는 ‘성감대’라는 걸 찾자며 다시 알몸인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까 이음새나 버튼 같은 게 있네. 사용법 알아?”
“몰라. 난 전뇌에서 직접 명령을 내리니까 콘솔이나 모니터 같은 거 써본 적 없거든.”
“쓰면 고장 나거나 해?”
“때리거나 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들었어.”
그다음부터는…… 대단했다. 유스케가 밖에서 명령을 내리면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기분 좋아졌다. 유스케는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게 즐거운지 내 팔다리를 빼보기도 하고 기계에 연결해보기도 하고, 목을 빼서 자기 보지를 핥게 하기도 했다.
유스케는 유스케대로 그런 나를 보며 흥분해서 몇 번이나 하얀 걸 내보냈다. 나는 사이보그니까 기계처럼 다뤄지는 게 당연한데도 왠지 두근거렸다. 심장도 없는데 신기했다.
기계화된 몸에 거부감이 없도록, 분해나 고장을 기분 좋게 느끼도록 만들어졌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게 됐다.
◆
유스케와 보내는 12번째 밤. 내일은 츠키코 언니가 유지보수를 하러 오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언니한테 연락해서 내가 망가질 정도로 섹스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저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카즈노 네 전뇌를 좀 만져봐도 될까. 제일 잘 느끼는 데라며?”
“만져도 돼. 백업도 해뒀고 내일 언니가 오니까.”
유스케는 전동 드라이버를 가져왔다. 임팩트 드라이버라고 부른단다. 나는 1회전과 2회전에서 스스로 뺄 수 없는 부분까지 분해되어 정말 기분 좋아졌다. 엄청난 소리를 내는 기계 진동과 몸속 기계 진동이 부딪쳐서 그게 전기 신호가 되어 전뇌로 되돌아온다. 중독될 것 같아.
뿔뿔이 분해되어버리니까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게 단점이지만, 그런 나를 유스케가 껴안고 열심히 자지를 넣어준다. 다정하고 기분 좋다. 안을 만지는 거랑 다르게 전류는 별로 안 흐르지만 유스케랑 같이 기분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정말 흥분된다.
“그럼 전뇌 만진다?”
“응, 해줘.”
유스케는 절차 같은 거 모른다. 내 머리를 붙잡고 빠질 것 같은 부품을 전부 빼내기 시작했다.
“비이이익!”
“아차…… 괜찮아?!”
에러, 에러, 에, 러. 쇼, 쇼트가 났어. 망가진 건…… 제어 장치로 연결되는 표면 회로다.
“기이, 구, 가…… 개, 괜차, 나. 거기, 고장 나도, 고칠 수 있는, 데야.”
“그래? 계속한다.”
임팩트 드라이버의 격렬한 소리가 들려와아아아아아악! 기, 기분 좋아? 너무 좋아서 찌릿찌릿해…… 신호를 경감할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배제해주세세세세세…….
“아가, 드라이버, 나사가 박혀서, 으아아아아아악!”
“뭐가 닿은 건가…… 이, 이거!”
긴급 경보. 인격 중추가 노출되었습니다. 기밀 유지를 위해 관리자 권한이 없는 인간은 배제하십시오.
“뇌잖아? 좀 플라스틱 같긴 하지만…… 전선이 잔뜩 박혀 있어. 따뜻하고 말랑말랑하네.”
“으오옹! 오우, 오오아아! 그, 안 돼, 그것만은…… 마, 마음에 닿아, 으오오오오오옹!”
지히익! 이, 인격 멈춰버려…… 아.
“이게 카즈노의 가장 깊은 곳. 카즈노의 남은 인간 부분. 나 카즈노 기억에 직접 닿아서 기분 좋게 해주고…… 이 안은 그때 그대로의, 아직 애티가 나고 색기는 없는데 가슴은 크고 좋은 냄새가 났던 카즈노의 뇌. 기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형태도 기억도 그때 그대로 남아 있었구나……. 미, 미안해. 나 애처럼 두근거려버려서!”
치명적인 에러, 긴급 정지…… 지시를 받지 않습니다. 전뇌 기능 부전, 신호 차단, 동력로 강제 정지…….
◆
오늘은 아내랑 아이가 와 있다. 지금의 나는 간병용 로봇이다.
“청소 로봇 수리 끝났네. 큰 고장만 네 번째라며? 이제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아?”
“내 판단으론 무리야. 선대 궁지님 간병한 로봇이니까 절대 버리지 말라고 본사에서 신신당부했거든. 게다가 구형이 튼튼해서 오래 쓸 수 있대. 어려운 일 안 시킬 거면 수리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나 봐.”
“흐음. 근데 당신 요즘 젊어진 것 같아. 활기차 보인다고 해야 하나. 고향이라서 그래?”
“글쎄, 활기차다는 자각은 좀 있는데.”
“그럼 오늘 밤 어때?”
유스케는 나를 힐끗 보더니 아내를 돌아봤다.
“관둘래. 겨우 돌아왔는데 신사를 비우면 선대 궁지님이나 친구한테 미안하니까.”
꼭두각시 까마귀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한때 남고생이었으나 지금은 여성형 사이보그가 된 쿠레하는 자신을 개조한 숙부 료슈에게 "같이 목욕하자"고 제안한다.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성관계. 하지만 개조된 기계 몸은 행위를 통해 쿠레하의 마음까지 기계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내장이 적출되어 죽음만을 기다리던 소년은 숙부인 코나미 료슈에 의해 개조되어 소녀형 사이보그가 되었다.
몸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학교로 가버린 소년은 수많은 해프닝을 겪으며 뇌를 포함한 중요 부품 여러 개를 손상당하고 만다.
인간인 척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그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숙부와 화해하며, 친구와 재회의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소년이었던 코나미 쿠레하가 수리를 마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쿠레하는 욕실에서 숙부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아프지 않아? 힘 조절 잘 되고 있어?』
"어, 잘하고 있다."
료슈가 의자에 앉아 있고, 쿠레하가 그 등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제안한 건 쿠레하였다.
『사실 지금 휴먼 에뮬레이터를 꺼뒀거든.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인간 모드가 아니어도 생활할 수 있으니까.』
전자음이 섞여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로 기분 좋게 웃는 쿠레하의 말에 료슈는 한숨으로 답한다.
"그래서 목소리에 필터가 없었던 거냐. 기계 쪽에 너무 치우치면 생몸의 감각이 없어진다고."
과거의 실험을 통해 사이보그는 인체 비율이 낮을수록, 인간이 아닌 기계로서 행동할수록 의식이 AI에 침식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쿠레하는 생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뇌는 절반 이상이 기계로, 남은 부분도 모종의 가공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난 사이보그를 동경했다니까.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되어가는 감각, 진짜 두근거린단 말이야.』
료슈는 의식이 사라져 버릴까 봐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쿠레하는 자신의 의식을 유지하는 것보다 전자 두뇌에 제어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넌 아직 애야.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그때 가서 후회할 거다."
『정말, 아저씨는 맨날 논리만 따져. 꿈이 이뤄져서 기뻐하면 안 돼?』
쿠레하는 씻기던 손을 멈추고 료슈의 앞으로 돌아 들어갔다. 낮게 웅크려 료슈의 배를 들어 올리고 물건을 노출시킨다. 그것은 발기해 있었다.
"와, 너……."
『아저씨, 또 살찐 거 아냐? 옛날부터 몸 관리 더럽게 안 한다니까. 가끔은 운동 좀 하자, 응?』
쿠레하는 료슈의 기둥에 손을 얹고 뺨을 비벼댔다. 인간 의태를 멈춘 쿠레하의 뺨에는 탄력이 없었고, 금속 같은 촉감만이 느껴졌다.
"그만해, 씻는 중이잖아."
『있지 아저씨, 난 사이보그니까 비누 먹어도 괜찮지?』
"괜찮긴 하겠지만, 그런 문제가…… 오오우!"
쿠레하는 페니스에 입을 맞추고, 거품과 오물을 혀로 얽어내 삼켜버린다. 료슈는 밀쳐내려던 손을 힘없이 내리고, 쿠레하의 서툴지만 필사적인 혓놀림에 몸을 맡긴다. 쿠레하는 숙부가 사정할 때까지 혀를 계속 움직였고, 정액을 전부 삼키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헤헤, 마셔버렸다. 휴먼 에뮬레이터가 꺼져 있으니까 맛은 안 나네. 그래도 데이터가 잔뜩…… 나,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쿠레하, 너 진짜……."
쿠레하의 센서는 직접 미각을 느끼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미각을 재현한다. 인간 흉내를 관둔 지금, 전자 두뇌에는 데이터만이 전송되고 있다. 소녀형 사이보그가 되어 따르는 아저씨의 정액을 마시고, 해석한 데이터를 자신의 메모리에 저장하는 행위가 너무나 사이보그다워서 쿠레하의 전뇌를 쾌락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
목욕을 마치고 나온 료슈는 알몸인 채로 침대에 걸터앉아, 똑같이 알몸인 쿠레하를 향해 손짓했다.
"이제 참는 것도 한계다.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겠어."
『정말, 난 처음부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잖아.』
쿠레하는 아저씨와 마주 보듯 무릎 위에 올라탔다. 가랑이 사이로 로션을 흘려보내며 언제든 아저씨를 받아들일 수 있는 태세다.
료슈는 앞서 나가는 쿠레하를 제지하며 오른팔로 받치고, 왼손을 가슴에 갖다 댄다.
"동력로 냉각은 잘 됐군. 격하게 해도 문제는 없겠어."
『난 아저씨라면 망가뜨려도 상관없어. 빨리해줘, 이제 못 참겠단 말이야.』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보채는 쿠레하에게 료슈는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배 나온 중년한테 욕정을 느끼다니, 전뇌 이상인가."
그 말을 부정하듯, 쿠레하는 료슈의 배를 문지르며 거친 숨을 내뱉는다.
『이상 아냐. 사실 인간이었을 때부터 신경 쓰였거든. 이건 분명 아저씨 영향이니까 책임져야 해.』
쿠레하는 어릴 적, 아저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쿠레하에게 료슈는 죽은 아버지 외에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었다. 마음만으로 결실을 보지는 못했고, 동성인지 이성인지 같은 감정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쿠레하가 사이보그를 꿈꾸며 자신의 인격을 전자 두뇌에 넘겨준 것, 료슈가 만에 하나를 대비해 섹스로이드 프로그램을 넣어둔 것, 그리고 전자 두뇌의 고장이 겹치면서 섞일 리 없는 추억과 프로그램이 뒤섞여버렸다. 쿠레하는 컴퓨터에 제어당하는 자신에게 취해, 스스로 성적인 봉사를 원한다. 예상 밖의 일이라 료슈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유혹해오는 쿠레하에게 이성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난 살을 빼기로 하지. 우선 운동이랑 식단부터 시작할까."
『잠깐, 아저씨! 나 진심이라니까, 살 뺀다는 소리 하지 마…… 윽!』
료슈는 쿠레하의 오른쪽 유두 주변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조금씩 유두로 다가갔다.
유두를 비비고, 꼬집고, 손톱으로 긁고……. 유두 안에 숨겨져 있던 전선을 밀어냈다.
『어, 가, 가슴에서 뭐가 나와.』
"내굴곡 케이블이다. 감도가 높아서 손가락으로 짓이기는 정도의 전위차만으로도…… 자."
『앗, 하, 안이, 안쪽이 직접 찌릿찌릿하게……!』
"원래는 만질 수 없는 가슴 안쪽을 주무르는 듯한 감각을 맛볼 수 있지."
료슈는 왼쪽 유두의 전선도 똑같이 노출시킨 뒤, 쿠레하를 자신에게 기대게 하고 비어 있는 양손으로 쿠레하의 양쪽 유두 전선을 지문으로 짓눌렀다.
『으윽, 윽, 으으으!』
쿠레하는 료슈의 등에 팔을 두르고 유두를 더 만지기 쉬운 자세로 바꿨다.
기분 좋음에 몸을 맡기고, 좋아하는 아저씨의 어깨에 침을 흘린다. 눈을 감고 전자 두뇌를 센서의 자극에 집중시킨다.
◆
『하아, 하아, 기분 좋아 아저…… 씨?』
쿠레하가 눈을 뜨자 어느새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옆에 앉은 료슈는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었고, 연결된 케이블은 쿠레하의 머리와 복부에 꽂혀 있었다.
"좋은 아침이다, 쿠레하."
『어, 어라? 나 어떻게 된 거야?』
"과부하가 걸렸어. 기분 좋아서 기절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나. 통상 모드라면 발생하지 않을 부하라서 보호 회로가 작동해버렸지."
정수리 부분이 열려 노출된 쿠레하의 전뇌와 가슴에서 하복부 쪽으로 열린 해치에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조작 중인 노트북, 상냥하게 미소 짓는 아저씨. 쿠레하는 사이보그 취급을 받는 것, 사이보그로서 수리받는 것, 그리고 수리해주는 사람이 아저씨라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아저씨에게 매달렸다.
"움직이지 마 쿠레하, 아직 수리 중이다."
『망가져도 수리해줄 거잖아? 나, 케이블이 연결되거나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 응, 이대로도 괜찮지?』
"상관없다만, 정말 로봇 같은 발상이군. 경험상 사이보그들은 뇌에 부담이 가는 행위는 싫어하던데."
『그래? 사이보그가 되고 싶어서 된 거니까, 기계 몸을 보는 것도, 뇌를 기계처럼 만드는 것도 기쁠 것 같은데.』
기계가 노출된 상태를 기뻐하는 쿠레하를 보며 료슈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정말이지…… 고정 장치 풀 테니까 움직이지 마라. 나까지 다치니까."
『헤헤헤, 고마워.』
료슈는 누워 있는 쿠레하에게서 몇 가지 부품과 케이블을 분리하고, 기다릴 수 없다는 표정의 쿠레하에게 미소 지은 뒤 아무 말 없이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와, 잠깐, 그렇게 갑자기……!』
"금방 성처리 모드로 전환해야 하니까. 미안하지만 전희는 생략이다."
『으으으으음──!』
쿠레하의 질이 료슈의 손가락을 감싸 안는다. 센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뇌 속에 설치된 제어 장치가 쿠레하를 섹스용 사이보그로 바꾼다.
"나도 이제 한계거든."
『앗, 으, 이이잇!』
쿠레하의 성기는 인간의 손가락으로 느끼고, 반응하고, 절정에 이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인간 손가락의 샘플로 료슈가 자신의 손가락을 썼기 때문에, 쿠레하의 질은 료슈의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 100%의 쾌락을 느끼도록 되어 있었다. 료슈가 의도한 사양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얼굴은 남자 그대로인데, AV 배우 같은 표정을 짓는구나."
『아저씨가, 그런 식으로, 개조했, 잖아……』
섹스용 프로그램이 기동하면 쿠레하의 전자 두뇌는 생체 뇌보다 프로그램의 지령을 우선하게 된다. 쿠레하의 의식은 남은 리소스만으로 재현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몽롱해 보인다.
"그런 개조는 안 했어. 우연히 그렇게 된 거지."
손가락질당하며 몸을 비틀면서도 쿠레하의 전자 두뇌는 료슈를 즐겁게 하려고 작동하며 그에게 입을 맞추거나 유두를 자극한다. 기계 몸으로 프로그램에 농락당하면서도 기분 좋아 보이는 쿠레하를 보며 료슈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줘……』
"이런 상태에서 보채는 거냐, 이 음란한 꼬맹이가."
료슈는 질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귀두로 쿠레하의 갈라진 틈을 훑는다.
"이게 갖고 싶어?"
『응, 그거.』
쿠레하의 풀린 얼굴을 보며 미소 짓던 료슈는 자신의 그것을 천천히 쿠레하의 안으로 가라앉힌다. 두 사람의 행위는 처음이 아니었고, 쿠레하의 입구는 충분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쿠레하의 입구에서 지지직 소리가 났다.
『아파!』
인간이라면 날 리 없는, 철의 처녀막을 뚫는 소리. 쿠레하는 자신의 배 안이 처녀로 되돌려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 어째, 서……』
료슈의 그것이 쿠레하의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자 찢어진 막을 뜯어내는 듯한 부득부득 소리가 난다. 쿠레하는 당황했고, 그 당황함은 데이터가 되어 쿠레하의 전뇌를 압박했다.
『아, 으아, 아아아아아!』
쿠레하의 의식에 이상이 있다. 그렇게 판단한 전뇌는 섹스용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낮추고 쿠레하의 사고 레벨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철컥.
료슈의 그것이 쿠레하의 가장 깊은 곳을 찌르자 프로그램이 전뇌에 끼어들어 쿠레하의 신체 제어권을 빼앗는다. 손과 입의 애무에 더해 질의 조임과 허리 움직임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스, 스위, 스위치가……』
복부가 열린 채라 내부에서 움직이는 모터가 위잉위잉 큰 소리를 낸다. 복부에 수납된 회로가 번쩍거리며 보여서는 안 될 부분이 노출되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처, 처……』
리소스를 빼앗겨 쿠레하의 의식은 더욱 희미해진다. 노출된 전뇌는 격렬하게 점멸하고 있으며 고부하 처리를 수행 중임을 알 수 있다. 쿠레하의 의식을 집어삼킨 제어 장치가 불규칙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과 의식이 동화되면 밝게, 분리되면 어둡게 은은하게 빛났다.
"왜 그러냐 쿠레하, 처녀 같은 반응이잖아."
료슈 역시 조카의 얼굴을 한 기계 인형이 모터 소리를 내며 허리를 흔드는 모습에 흥분하여, 삽입한 채로 입을 맞추고 유두를 깨물게 하거나 케이블이 꽂힌 채 쿠레하의 의식에 맞춰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전자 두뇌에 뺨을 비비며 즐겼다.
『아저씨, 윽, 아, 아아!』
"이렇게 허리를 잘 쓰면서 말이야."
『그, 그치만 처음이…… 아저, 씨!』
"윽!"
료슈의 사정을 확인한 프로그램은 쿠레하의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여운을 즐길 시간을 만들었다. 움직임이 멈추자 리소스가 회복되어 쿠레하의 말수가 늘어난다.
『아, 아저씨…… 방금 나, 처녀 같았던 게 아니라 진짜 처녀였지?』
"글쎄, 어떠려나. 형태가 처녀라도 처음이 아니라면 가짜일지도 모르지."
료슈는 쿠레하를 엎드리게 하고 다리를 침대 밖 바닥으로 내리게 했다. 엉덩이를 치켜들게 한 뒤 다시 기둥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네가 진짜 처녀보다 귀엽다는 건 확신한다!"
『하앗, 아, 좋아!』
프로그램이 재가동되고 쿠레하는 다시 섹스용 로봇으로 변한다. 허리를 띄우고 완급을 조절하며 움직이고 질의 조임도 조절한다. 료슈의 물건에 최적화된 쿠레하의 인공 성기는 안에 남은 정액을 전부 빨아들이고 대신 깨끗한 로션을 흘려보낸다. 따뜻한 질 안에 조금 차가운 로션이 주입되는 온도 차에 료슈가 신음했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부분을 풀가동당한 쿠레하는 전자 두뇌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아, 아저, 씨……』
"윽!"
다시 쏟아진 료슈의 정액을 쿠레하는 질 안에 구비된 펌프로 들이마신다. 센서는 정액이 아까보다 묽어졌지만 양은 늘어났음을 쿠레하에게 알린다. 지금의 쿠레하는 질을 찌르는 기둥의 단단함도, 아저씨의 정액 맛도 데이터로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레하는 기뻤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미세한 변화를 숫자로 읽어내고 이해할 수 있게 개조된 뇌 덕분에, 아저씨가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기계 장치가 되었기에, 동경하던 사이보그가 되었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쿠레하의 전압을 끌어올린다.
『아저씨, 좋아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기계 장치가 되어가는 자신을 전자 두뇌로 느끼며, 아저씨를 위한 귀여운 사이보그가 된 것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쿠레하의 전자 두뇌는 펑크가 나 정지해버렸다.
"진짜로 망가지는 녀석이 어디 있어. 언제까지고 손이 많이 가는군…… 조그맣던 쿠레하가 귀여운 그대로 커버렸어."
성욕을 쏟아내고 마음이 진정된 료슈는 쿠레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형의 아들답게 눈치 빠르고 상냥한 아이였다.
아버지의 죽음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밤에 울음을 그치지 않아 고생했었다.
"좋아한다, 라. 쿠레하가 여자애라면 어떨까 하고 불순한 상상을 한 적은 있었지만."
한숨 돌린 뒤, 알몸인 채로 고장 난 쿠레하를 들어 올려 욕실로 향한다.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아도, 스펀지로 몸을 문질러도, 배를 열어 탱크를 꺼내도 쿠레하는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로 나를 위해서……."
탱크 안에는 정액과 로션, 비누에 더해 료슈의 것으로 보이는 털과 때가 섞여 있었다. 스펀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로봇이 아니야. 쿠레하에겐 미안하지만 전뇌를……."
말 없는 인형이 된 조카를 씻기며 료슈는 쏟아냈던 욕망이 다시금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기계 까마귀 시리즈의 신작입니다.
잠에서 깬 쿠로하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고…….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자신을 개조한 숙부에게 봉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쿠로하.
점점 기계처럼 변해가는 쿠로하를 보다 못한 숙부는 인간성을 회복시키려 시도하지만 잘 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시절의 쿠로하를 재현하는 데는 성공하죠. 숙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쿠로하의 기억을 주무르기 시작합니다. 반복되는 기억 조작 속에 쿠로하의 마음은 더욱더 기계 쪽으로 기울어 가는데…….
원안 & 표지 러프: K사이클
본문 & 표지: 나츠키 신
“음, 아…….”
눈을 뜬 나는 방 한가운데에 정좌하고 있었다. 침대 위도 의자 위도 아닌, 맨바닥에 직접 무릎을 대고서.
“어, 뭐야, 에엣?”
이런 데서 잠든 기억은 없다. 설령 잤다 쳐도 누워 있지 않은 건 이상하다. 자는 내내 정좌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웬일인지 다리가 저리지도 않다.
“잠결인가, 설마.”
기억만 못 할 뿐이지 사실은 깨어 있었고, 화장실에 다녀왔다거나. 사실은 잔 게 아니라 밤을 새우다가 잠깐 의식이 날아갔다거나.
“그렇다고 해도 바닥에 정좌는 좀 아니지, 으음.”
멍한 머리를 깨우고 싶어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을 크게 떴다. 눈을 뜨고 있으면 정신이 좀 들 것 같았다. 커튼 틈새로 가느다란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날은 이미 밝은 모양이다.
“어두워서 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
발판이 사라져 허공에 붕 뜨는 듯한, 기분 나쁜 무중력감이 느껴졌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먼저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다.
“커튼이 달라.”
내 방 커튼은 얇아서 새벽녘에도 햇빛이 비쳐 보인다. 하지만 여기 커튼은 아침 햇살을 전혀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기 어디야?”
평소 같은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어 시계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시계뿐만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냐고 대체, 제발.”
다급하게 방 안을 둘러보다가, 잠시 멈칫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구며 벽지며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삼촌 집인가, 여기?”
어두워도 알 수 있는 익숙한 방. 초등학생 때 내가 아이 방으로 쓰던 곳이다. 말끔히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가구는 그때 그대로라 그리운 기분이 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몇 년 만이지, 진짜 그립네…… 어라?”
벽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다. 초등학생 때는 없던 물건이다. 내 짐들은 다 치워졌으니 새로 거울이 놓여 있어도 이상할 건 없는데…… 그런데도 엄청난 위화감이 느껴진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감각.
[액세스 차단――성공. 액세스를 차단했습니다.]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보려 거울을 보던 나는, 내 복장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걸치고 있는 건 교복 상의와…… 본 적 없는 여자용 속옷.
“왜 이런 걸 입고 있어, 변태냐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팬티를 만져보니…… 없다. 있어야 할 게 없다.
“거짓말, 왜?”
교복 앞섶을 벌려 가슴을 만져보니, 없어야 할 것이 손에 닿는다. 말랑하고 푸딩 같아서, 거울 너머로 보니 엄청 야해 보였다.
“설마, 어째서…… 아앗!”
나는 내 온몸을 손으로 훑었다.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이 손에 착 감긴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 몸이었던 것처럼.
“이거, 여자애 몸이잖아.”
줄곧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여자애의 알몸이 손안에 있다. 아니, 손안에 있다는 수준이 아니다. 내 몸 자체가 여자애가 되어버렸다. 그런 망상을 해본 적은 있다. 있긴 하지만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흥분도 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삼…… 삼촌.”
입 밖으로 내뱉자 가슴이 고동쳤다. 몸이 기뻐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거울로 내 알몸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몸으로 삼촌한테 안기면 기분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애썼지만…… 진정하는 건 무리였다. 여자애의 알몸을 보고 싶다, 기분 좋아지고 싶다, 온갖 생각이 솟구쳐 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팬티를 벗고 가랑이 사이에 손가락을 넣는다. 처음인데도 쑥 들어가더니, 안을 문지르자 엄청나게 뜨거워졌다.
“아앗, 하으!”
가는 느낌. 하지만 남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훨씬 천천히, 안쪽이랑 아래쪽이 근질근질하면서…… 엄청 기분 좋았지만, 상상했던 것 같은 분수는 없었고 조금 축축해지는 정도로 끝났다. 이럴 거면 팬티 안 벗어도 됐으려나.
“하아, 하아.”
어떡하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학교는? 엄마는?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여기는 삼촌 집이고, 나는 거의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차림이다. 그래, 일단 팬티라도 입어두자. 방에서 뛰쳐나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애초에 왜 이런 몸이 된 거야.”
거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거울 속의 나는 울고 있었고, 꼴사나워야 할 텐데 조금 귀엽게 보였다. 마치 인형처럼…….
[액세스 차단――실패. 물리 메모리가 기억 회로에 액세스합니다.]
“아우우!”
배 속에서 스프링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나더니, 내 배가 천천히 열렸다. 팬을 돌려 열기를 밖으로 내보내려 하고 있다…… 팬? 열기? 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배, 배 속이!”
내가 아무 짓도 안 해도 기계는 제멋대로 계속 움직인다. 내 몸이 기계, 내가 기계? 지금의 나, 기계인 거야?
“여자애가 된 것뿐만 아니라 기계까지…… 아하, 하하!”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 꿈이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리얼한 꿈.
“대단해, 진짜 같아! 그, 그래, 잠 깨기 전에.”
나는 즐기기로 했다. 여자애 몸에는 관심이 있었고, 사이보그를 동경해서 개조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여자애랑 사이보그 양쪽의 몸을 맛보면서, 어디가 기분 좋은지, 어디를 만지면 고장 날지 시험해보며 즐겁게 놀면 되는 거야.
“기, 기왕 이렇게 된 거 괜찮겠지!”
열린 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안에 있는 장치를 움켜쥐었다. 센서가 달려 있어서 아주 민감하게 안을 만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개조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지는 것도 엄청 두근거린다. 고장 나니까 만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기, 삐익!”
손가락이 발전기에 닿아 온몸이 저릿거린다. 부품 몇 개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이, 이대로 여자애 부분까지 만지면 어떻게 될까! 빨리, 빨리 해보자!
[액세스 차단――성공. 기억 회로를 차단합니다.]
오른손은 팬티 속에, 왼손은 배 속에 넣은 채 나는 바닥에 쓰러져 거울을 보며 느끼고 있었다. 나는 여자애가 됐고, 기계 몸도 됐고―― 꿈이 깨질 않아, 언제까지고 계속할 수 있어. 거울을 보고 있으니 조금씩 냉정함이 돌아온다.
“꿈이, 아니야?”
거울에 비치는, 기계 몸으로 자위질을 반복하는 인형. 그건 내 얼굴이고, 내 목소리다. 그 말은 즉 나 자신이라는 뜻이고…… 내 몸을 이 꼴로 만든 놈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다.
“앗, 아아!”
나는 일어나 다시 거울을 본다. 왜 잊고 있었지. 이게 내 몸이라면 개조한 누군가가 있다는 거고, 내 지인 중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쿠로하,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내가 떠올린 바로 그 인물이었다.
“삼, 삼촌! 이, 이거, 이 몸! 누가 개조한 거야? 삼촌이 한 거야? 응? 말해봐!”
“나다. 내가 개조했어.”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삼촌이 말한다.
“왜 개조한 거야? 아니, 그것보다 이거 원래대로 돌릴 수 있지?”
“그렇게 서두르지 마라.”
삼촌은 공구함을 바닥에 내려놓고, 수동 드라이버에 케이블을 연결한 것 같은 공구를 꺼냈다. 마치 아침 식사 때처럼 느긋한 움직임이 내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
“아니, 안 서두르게 생겼냐고! 대체 이런 몸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당장 수리해야 한다. 어서 누워!”
“죄, 죄송해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사과해버렸다. 시키는 대로 바닥에 드러눕자, 삼촌은 내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공구로 안을 만지기 시작한다.
“내가 말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 입 열지 마.”
“네, 넵…… 아우우!”
가랑이로 자위했을 때처럼 뜨끈한 감각이 배꼽에서 등 쪽으로 퍼져 나간다. 기분 좋지만, 내 몸이 기계가 되어가는 게 느껴져서 무섭기도 했다.
◆
“이제 말해도 좋다.”
“하아, 하아…… 끝난, 거야?”
“그래.”
수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나는 밀려오는 여자애의 쾌감과 몸이 기계가 되는 감각 양쪽 사이에서 계속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몸, 원래대로 돌아가?”
“아니, 안 돌아간다.”
그렇구나.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다.
“왜 여자애인 건데.”
“그 부품밖에 없었으니까.”
“삼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되잖아.”
내가 뾰로통해서 대꾸하자, 삼촌은 웬일인지 기뻐하며 내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뭐 하는 거야,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난 진지해. 자, 들어봐라.”
그렇게 말하며 겨우 설명을 시작한 삼촌에게서, 내가 내장을 팔려 죽을 뻔했다는 것, 기억이 없는 건 수면제 때문이라는 것, 나한테 쓰인 부품은 정말 여자애용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삼촌 집으로 데려왔다고.”
나와 삼촌은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삼촌이랑 진지한 얘기를 할 때는 항상 이랬었지.
“그래. 그냥 뒀으면 넌 실험체로 죽을 때까지 연구소 생활이었을 거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사이보그를 동경하긴 했지만, 평생 감옥 신세라면 수지가 안 맞지.
“나,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해하는 나를 삼촌은 다정한 얼굴로 계속 지켜보고 있다. 처음엔 어떻게 된 건가 싶었지만, 제대로 신경 써주고 있는 모양이다.
“자기 걱정을 제대로 할 줄 아는군.”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뇌는 절반이 기계로 대체되어 있다.”
나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내용물이 기계로, 그것도 절반이나? 그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삼촌. 나는 쿠로하 맞지?”
“글쎄다. 쿠로하로 보이긴 하는데, 정말 내가 알던 쿠로하일까?”
“잠깐, 삼촌도 모르는 거야?”
무섭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사이보그를 동경했던 건 사실이고, 내심 머리도 개조받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정말 그렇게 되니…… 이 의식이 내 것인지 불안해진다.
“절대라고는 말 못 할 뿐이다. 쿠로하가 쿠로하가 아니게 될 짓은 하지 않았어. 정말이다.”
“왜 절대라고 못 하는데?”
삼촌은 나에게 다가와 내 뒷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여기를 새로 만든 거다. 이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
그건 그런가. 만약 내 기억을 전부 기계에 저장할 수 있다 해도, 그게 나 자신인가 하면 모른다는 소리를 듣겠지.
“미안, 이상한 걸 물어봤네.”
“신경 쓰지 마라. 의문을 갖는 건 좋은 일이야. 자신의 모든 걸 기계에 맡겨버리는 것보다 훨씬 인간답다고 할 수 있지.”
삼촌은 뒷머리를 두드리고 있던 손을 내 목으로 돌렸다.
“삼촌?”
“네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욕정이 가라앉질 않아. 되돌릴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하니 손을 대고 싶어 미치겠군.”
“잠깐, 삼촌 그거 안 웃겨.”
나는 삼촌의 손을 풀려고 했지만 풀리지 않았다. 삼촌이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지금의 나에게 힘이 너무 없다. 기계 몸이라는 게 이렇게 무력한 거였나.
“그렇겠지. 처음부터 웃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처음 거울을 봤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삼촌에게 안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삼촌의 손에 의식을 집중한다. 어릴 적 쓰다듬어주던 손. 일하느라 기계를 만지던 기술자의 손. 만져져도 싫지 않은 남자를 찾으려다 보니 삼촌이 떠오른 거겠지. 하지만…….
“그게, 그런 기분이 아니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런 기분이긴 하다. 기계 만지는 게 특기인 삼촌의 손길이라면 엄청 기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삼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럼 그런 기분이 들도록 노력해보자고.”
삼촌은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가슴을 만지거나, 살결과 기계의 이음매를 훑기 시작했다.
“얏! 하지 마, 아아!”
삼촌은 능숙했다. 독신이지만 돈도 많고, 여자를 다룰 기회 정도는 있었겠지. 게다가 삼촌은 내 몸을 개조한 장본인. 기계 몸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으니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 모양이다.
“하지 말라고? 그럼 저항하면 되잖아. 손을 대고 싶다고는 했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삼촌은 내 팬티를 벗겼다. 아까와는 달리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수치스럽다.
“그, 그치만 힘이 안 들어가서…….”
싫다고는 생각하고, 아까는 뿌리치려고도 했다. 하지만 너무 기분 좋고, 기분 좋은 건 멈추고 싶지 않아서 뿌리치는 걸 망설이게 된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기분 좋게 해주기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어버린다.
“힘이 안 들어간다는 건, 이러고 싶다는 뜻 아니냐?”
삼촌이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자, 닫혀 있던 가슴 해치가 다시 열렸다. 아까 수리할 때와는 달리 윗덮개가 몸에 붙은 채로 되어 있다.
“아니야, 진짜 싫어! 같이 살 때도 이런 적 한 번도…… 히얏! 아아아아악!”
가슴이랑 엉덩이에 딱딱한 기계 부분이 있는데, 그걸 동시에 주무르니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오고…… 소리를 내니 기분이 좋아서 참지 못하고 크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싫다면서 얼굴은 아주 기분 좋아 보이는군.”
삼촌의 손가락은 그대로 가슴 해치 안으로, 엉덩이 구멍 안으로 파고들어 달칵달칵 안쪽 부품을 누르고, 기울이고, 잡아당긴다. 그때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고, 기분 좋아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앗, 앗, 아! 거기, 만지지 마.”
“왜? 아까 수리할 때는 얌전히 있었으면서.”
“그거랑 이거는…… 히익!”
가슴 해치를 만지던 오른손을 빼내 배를 타고 가랑이 사이로 내려간다. 해치 덮개 때문에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센서가 앞쪽 구멍을 만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어떠냐,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겠지.”
앞 구멍과 뒷 구멍, 양쪽 다 삼촌의 손가락으로 막혀 있다. 앞 구멍 안에는 직접 만졌을 때 몰랐던 돌기가 달려 있었고, 삼촌은 거기를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고 있다.
“앗, 하으! 으으으으.”
“뭐야, 가버릴 것 같냐. 그렇다면.”
삼촌은 일단 손을 떼고 내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힘이 없어서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고…… 그런 나를 덮치듯 삼촌이 바닥에 손을 짚었다.
“바닥이라니 꼭 학생 같군. 학생인 쿠로하 상대라면 딱 좋겠어.”
삼촌의 몸이 내려오고, 내 가랑이에 기둥이 닿는다.
“자, 잠깐, 그것만은 봐줘!”
“그것이 뭐냐, 설명을 안 해주면 모르겠는데!”
“제발, 하지 마…….”
――뿌득!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절정이 동시에 몰려와 온몸이 떨린다. 나는 동정보다 먼저 처녀를 잃었다는 걸 깨닫는다. 뒤이어 그 안에 내장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앗, 아…… 시러어어어!”
[액세스 차단――실패. 물리 메모리가 기억 회로에 액세스합니다.]
삼촌의 기둥이 들어오자 내 하복부가 그걸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모터와 펌프를 돌린다. 기계 장치인 몸이 삼촌을 봉사 대상으로 판단하고, 모든 기능을 쏟아붓기 시작한 걸 알 수 있다.
“아아, 아앙, 아앙!”
내가 여자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처녀를 뺏기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슬픔이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쁘고 기분 좋다는 감정이 채워나간다. 마음의 모순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울려버렸나. 나름 죄책감이 드는군. 자, 이건 사과다.”
“히익! 떠, 또 하는 거야?”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삼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는 감각이 남은 거기가 쓸리면서, 방금 갔는데도 다시 안쪽이 뜨거워졌다.
“여자에게는 이런 식으로 가는 법도 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안 끝났으니 좀 더 어울려줘야겠어.”
삼촌이 깊숙이 찔러 넣자 안쪽에 있는 스위치가 눌린다. 고조된 열기에 전기까지 더해져 내 쾌락은 전례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그런데도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다. 아까보다 훨씬 기분 좋은데 벌써 가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삼, 삼촌! 나, 가고 싶은데 안 가죠!”
허리를 흔들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삼촌이 대답한다.
“지금 넌 나만을 위한 사이보그다. 내가 사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절정에 도달할 수 없어.”
말도 안 돼! 이런 감각인 채로 언제까지 못 간다니. 가고 싶어…… 하지만 안에 사정한다니.
“나, 나 여자애 맞지? 그러면 아기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냐, 남자였던 네가.”
삼촌은 차갑게 내뱉으며 허리 놀림을 더 빨리했다. 안이 더 뜨거워져서 의식이 날아갈 것 같은데…… 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치만 지금의 나는…….”
“넌 여자이기 이전에 사이보그다. 그런 기능은 없어.”
그, 그렇구나. 그럼 안에 사정해도 되는 거네. 나는, 나는.
“이제 못 참겠어! 제발 지금 당장 싸줘어어!”
나는 매달리듯 삼촌의 몸에 팔을 감고 힘껏 끌어안았다.
“그렇게 귀엽게 굴면, 윽!”
뷰릇, 뷰륫, 뷰우우욱!
[정액 확인――인증. 차단 기능 종료, 기억 회로를 해제합니다.]
“삼, 삼초오오온, 냐아아아아!”
삼촌의 정액에 반응해 뇌를 포함한 모든 센서가 성적 쾌락으로 물들고…… 과열된 내 몸은 냉각을 위해 기능을 정지한다.
◆
『하아, 하아…… 또 나를 인간에서 탈락시켰구나.』
내 기억 회로를 차단하고 생체 뇌에 남은 기억만으로 재부팅시킨다. 내가 개조되고 나서 첫날, 그 아침을 재현하는 건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삼촌이 나를 기계 취급해주는 건 기쁘지만, 처음 이 몸을 볼 때의 충격만큼은 익숙해지질 않네.』
“기계 취급보다 익숙해지지 않는 걸 기뻐해야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면 인간성은 끝장이다.”
처음에는 마음까지 기계가 되어가는 나에게 인간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 생체 뇌에 남은 인간 시절의 기억, 그것 말고는 전부 지우고 나를 재부팅시켜서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뇌가 회복되길 기대했던 거다. 하지만 잘 안 됐고, 사고로 잃어버린 생체 뇌의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뭐, 삼촌이 나한테 인간미를 원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거기에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은 안 할게.』
하지만 실험에는 부수적인 수확이 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는 풋풋한 반응을 삼촌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거다. 삼촌은 그걸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아주 기분 좋아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삼촌이 쉬는 날이면 기억 회로를 차단하고 그날 아침을 재현하곤 한다.
“하지만 흥미롭군. 쿠로하의 뇌는 똑같은 상태일 텐데, 매번 조금씩 반응이 달라.”
『진짜 그렇네. 생각보다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나 봐.』
또 하나 좋은 점이 있다. 삼촌이 내 시간을 되돌려 즐기기 시작한 뒤로, 나를 도구 취급하는 걸 전보다 덜 미안해하게 됐다. 죄책감이 옅어졌다고 해야 하나. 대우도 로봇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게다가, 그…… 마치 인간 시절 같은 쿠로하가 재현된 가짜라고 생각하니 더 흥분이 돼서 말이지.”
『헤헤헤, 둘 다 취향이 고약한 걸 보니 피가 섞이긴 했나 봐. 난 이제 피는 안 흐르지만.』
“뭐…… 그렇군.”
나는 기계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뛰고 행복해진다. 삼촌은 그런 나를 장난감으로 삼으며 행복해한다. 이대로 내 마음이 다 닳아 없어져서, 삼촌의 장난감 말고는 아무 기능도 남지 않게 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