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로봇화. 니콜라스와 이노가 아주 어릴 적만 해도 그건 그저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황당한 상상은 곧 현실이 됐다. 친구들 사이의 사적인 잡담부터 정부 차원의 회담까지, 이 기술을 허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혀 항의와 논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머리가 굵어졌을 때쯤, 그 뜨거웠던 논쟁은 비록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지언정 어느 정도 잦아든 상태였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당대 최고의 천재, 일레인 다이슨(Elaine Dyson)이 이끄는 여성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의 이야기뿐이었다. 대형 기술 기업의 공동 소유주인 부유한 친구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그들은 이 경이로운 기술을 개발해 낸 뒤 곧바로 자신들의 몸에 직접 적용했다.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결과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개발팀 전원은 이미 스스로 원해서 로봇이 된 상태였다.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인간이 자신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쟁취해 낸 장엄한 서사였다. 유기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합성체가 될 것인가. 그것은 오직 개인의 선택이었다.
최초의 여성 로봇들이 인간과 동등하게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체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결국 그들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고, 당연히 그에 따르는 권익을 요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는 여성 로봇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초기에는 로봇화 시술이나 기계 몸체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구입비는 물론 유지비까지 따지면 프리미엄급, 아니 어쩌면 한정판 슈퍼카 한 대 값과 맞먹었다. 개조 비용보다 유지 보수와 수리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인 부유한 고객들은 최고급 소재와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요구했다.
다양한 여성들이 로봇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묘하게도 초기 고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부유한 남성들이 비용을 대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아내 자리를 꿰차기는 힘들어도 정부(情婦) 역할로는 딱인 그런 여자들 말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 중 일부는 언제나 값비싼 섹스 돌처럼 취급받아 왔는데, 로봇화는 그런 관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임신 같은 번거로운 부작용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스폰서'에게 더욱 종속되게 만들었으니까. 에스테틱이나 스파, 지겨운 운동에 쏟아붓던 시간은 이제 정기 점검과 기계 소모품 교체로 대체되었다. 당연히 이들 사이에서 최초의 '섹스봇' 유형이 등장했다. 후원자를 잃으면 몸을 유지할 방도가 사라진다는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로봇으로서 누리는 삶의 이점은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미래를 보장해 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원하는 외모를 얻기 위해 수차례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던 여자들에게 로봇화는 그리 미친 짓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이들을 지켜보던 부유층 사모님들, 여배우, 예술가들도 서서히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나이 때문에 예전의 미모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그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이 그랬다.
두 번째로 중요하고 유망한 고객층은 이미 자리를 잡은 비즈니스 우먼들이었다. 이들은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외모—물론 이건 기분 좋은 보너스였지만—보다는 피로를 느끼지 않고 잠잘 필요도 없으며, 질병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 열광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 베이스를 프로그래밍해 자신의 역량을 확장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잠재력에 매료된 이들도 많았다. 이는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었고, 자연스럽게 다른 여성 기업인들도 로봇화를 고려하게 만들었다. 업무 효율을 극도로 중시하는 일부 경영자들은 부하 직원들의 개조 비용을 지원하거나 시술을 받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숫자는 적지만 매우 중요한 또 다른 그룹은 기술 전공 여대생들이었다. 이들의 로봇화 비용은 클리닉이나 로봇 설계 센터에서 지불했는데, 이런 전문 인력들이 고객 관리와 기술 발전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운 좋게 선택받은 건 아니었다. 로봇화 시장의 파이를 나눠 먹으려는 기술 기업들은 인공 신체와 지능을 역설계하기 위해 이런 소녀들을 이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었고, 누군가는 내부 구조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보상금 문제로 공공연한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고, 심지어 백업 데이터로 복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경쟁사들의 압박으로 로봇 신체의 핵심 기술과 기본 프로그래밍은 공공재로 전환되어 더 이상의 비극을 막게 되었다. 오직 가장 중요한 단계인 정신의 스캔과 디지털화만이 선구자 격인 기업의 독점 영역으로 남았다.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로봇이 된 이들 외에, 아주 특별한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 기업은 매달 웹사이트에 정보를 남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진행해, 당첨자에게 무료 로봇화 시술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점차 사회는 이 새로운 기술이 열어줄 전망을 깨닫기 시작했다. 로봇화가 그저 추상적이고 먼 미래의 영생을 얻는 수단이라는 첫인상은, 곧 합성 신체와 프로그래밍이 제공하는 실질적인 이득—커리어 성장과 자기 계발의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갔다. 누군가는 이런 경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했지만, 다른 이들은 돈을 모아 시술대로 향했다. 로봇화 관련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로봇 신체의 단가를 낮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기술이 합법화된 지 약 5년 만에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운동 능력과 내부 설계를 약간 단순화하고, 이른바 '로보 실리콘(Robo-silicone)', 공식 명칭 '로보스킨(RoboSkin)'으로 덮은 새로운 플랫폼이 개발된 것이다. 프리미엄 모델보다는 확실히 떨어졌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했다. 이 플랫폼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개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프리미엄 시장이 품질과 개인 맞춤형 서비스, 외모에 대한 높아진 요구치에 따라 점점 더 비싸지는 동안, 그 옆에서 대중적인 보급형 시장이 급성장했다. 한 달에 수십 건에 불과하던 로봇화 시술은 이제 수천 건 단위로 늘어났다. 여전히 차 한 대 값이었지만, 이제는 한정판 모델이 아닌 그저 좀 비싼 차 정도로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평범한 사람도 할부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가격은 계속해서 내려갔다.
비슷한 시기, 다이슨의 적극적인 참여로 로봇 공학 연구소 내에 새로운 학부가 신설되었다. 설계 센터, 부품 제조업체, 로봇화 클리닉에서 일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다이슨은 건물 신축과 학생 교육용 실험실 장비 확충에 거액을 투자했다. 교수진 채용 비용을 대는 것은 물론, 동료(친구?) 중 한 명을 설득해 여성 로봇의 신체 구조적 특징과 요구 사항을 가르치게 했다.
그곳의 이름은 '변형 설계 학부(Faculty of Transformative Design)'였다. 합성 신체 부품 개발부터 로봇화 시술의 직접적인 시행, 그리고 여성 로봇의 사후 기술 및 소프트웨어 유지 보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다이슨이 연구소에 내건 유일한 조건은 학생들을 위한 학위 설계 양식이었다. 이 요구 사항은 향후 50년간 자금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명시되었으며, 연장도 가능했다.
***
니콜라스 파렌스는 어릴 때부터 기술과 기초 과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막연한 호기심이었지만, 점차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그는 회로 기판, 컨트롤러, 컴퓨터, 그리고 프로그래밍에 매료되었다.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요구된 작업을 수행하게 하며, 다양한 장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움직이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에 말이다.
여느 소년들이 그렇듯, 니콜라스도 사춘기가 되자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모험을 함께하는 동료나 어린 시절의 놀이 친구가 아닌, '여성'으로서 말이다. 길거리에서, 혹은 화면 속에서 로봇 신체를 가진 여성들을 보는 일은 흔했다. 인터넷에는 그들이 출연하는 온갖 자료가 넘쳐났고, 당연히 포르노그래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니콜라스 역시 또래들처럼 그런 것들을 몰래 훔쳐보곤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로봇들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예쁜 여자들일 뿐이었다. 보급형 모델의 실리콘 피부는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고, 엘리트급 신체를 가진 미녀들은 너무 먼 세상 이야기였다. 팝스타를 보는 기분이랄까. 예쁘긴 하지만 실제로 아는 사이가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그런 존재들.
그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바꾸고 직업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니콜라스가 16살(혹은 17살 즈음)이었을 때 일어났다. 당시 그의 어머니의 절친인 아스트리드가 대출을 받아 로봇으로 개조했다. 그녀는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어머니와 이런저런 주제로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스트리드는 표준 모델을 선택했는데, 니콜라스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했다. 몸을 덮은 실리콘 재질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몸매만큼은 기가 막혔다. 날씬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을 가진 흑발(금발?) 미녀가 된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젊어 보였다. 아스트리드는 로봇화가 제공하는 외모 변신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지만, 사실 그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그녀는 로봇으로서의 삶이 주는 이점을 발판 삼아 커리어를 도약시키려는 야심가였다.
어느 날, 아스트리드는 어머니가 퇴근하기 조금 전에 미리 방문했고, 니콜라스는 그녀에게 15분 정도 앉아서 기다리라고 권했다. 하지만 금세 지루해진 아스트리드는 니콜라스가 뭘 하고 있는지 구경하러 왔다. 니콜라스는 어떤 컨트롤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걸 본 아스트리드가 한마디 던졌다.
"그거 내 몸 안에 들어있는 거랑 비슷하게 생겼네."
니콜라스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스트리드의 몸 안에도 정말 비슷한 게 들어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컨트롤러 쓰시는데요?" 그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
"종류가 엄청 많아." 아스트리드는 일일이 나열하기 귀찮은 듯하더니, 이내 생각을 바꿔 덧붙였다. "직접 볼래?"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블라우스를 풀고 복부 패널을 열었다. 그리고 떼어낸 커버를 니콜라스의 컨트롤러 옆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평범한 흰색 브래지어를 차고 있었지만, 니콜라스의 시선은 다른 곳에 꽂혔다. 그녀의 배 안쪽에는 기계 장치와 전선, 전자 회로 기판들이 가득했고, 커넥터마다 다양한 블록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용도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니콜라스는 부품에 적힌 마킹을 기억하려 애쓰며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어셈블리 전체가 내 하체랑 내부 부품들을 담당해. 이건 메인 전원 컨트롤러고, 바로 오른쪽 게 다리 컨트롤러. 덕분에 내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야. 왼쪽은 골반 블록 제어용. 저기 더 깊숙한 곳에는 작동 유액 탱크들이 있어. 오른쪽에 밸브들 보이지? 그 옆에 있는 게 유량 조절이랑 보충 컨트롤러야."
"진짜 잘 아시네요."
"하하, 아냐." 아스트리드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 몸 어디에 무슨 블록이 있는지 알도록 프로그래밍 된 것뿐이야. 그래야 고장 나거나 문제 생겼을 때 원격 진단하기 편하거든. 뭐, 다행히 아직 고장 난 적은 없지만."
"그런 건 몰랐어요. 프로그래밍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편해. 애초에 그러려고 로봇이 된 거니까.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데…."
그런 식으로 10분 정도 대화가 이어졌다. 니콜라스는 아스트리드 몸 안의 다양한 전자 부품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최대한 많이 알고 싶어 했다.
"그럼 이 컨트롤러는…."
니콜라스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갑자기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관문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것이다.
"아스트리드?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 이사벨!" 의자에 앉아 있던 니콜라스 쪽을 돌아보며 로봇 여인이 쾌활하게 인사했다. "네 아들한테 내 전자 장치들 좀 보여주고 있었어. 얘가 이렇게 잘 알 줄은 몰랐네. 로봇 공학 공부시키면 딱이겠어."
"전자 장치?" 니콜라스의 어머니는 친구의 몸속에서 번쩍이는 마이크로칩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스트리드가 속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요즘 들어 친구의 도덕 관념이 로봇화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게 아닌가 의심스럽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로봇 여인이 복부 패널을 닫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잘못된 건지 아닌지 판단하려 애썼다. 젊은 남자가 성인 여성의 몸속 전자 장치를 들여다보는 상황은 그녀의 상식 밖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별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당장 절친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중에 따로 불러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부끄러운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긴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만 해도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실리콘 몸매의 여성들이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걸 몇 번이나 봤던가. 나체는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시 어딘가(다른 도시였나?)의 학교에서는 섹스봇이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수학을 가르친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건 이 나라에서 드문 일도 아니었다. 일부 학부모들이 항의했지만, 교육부에서는 어찌어찌 허가를 내준 모양이었다. 로봇 여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헤헤]
솔직히 니콜라스도 이미 속옷 차림, 아니 그 이상의 차림을 한 여자애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여자친구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성 로봇의 내부 작동 원리를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다. 부품과 칩이 박힌 그 모든 기판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펌웨어가 아스트리드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걷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내부적으로는 그토록 정교한 장치이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생생한 상상력이 나래를 폈다. 학교 여자친구의 복부 패널이 열리고 그 안에 전자 장치가 가득 찬 모습이 그려졌다. 조금 부적절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런 시스템을 다시 보고 싶었고, 직접 만져보고 싶었으며,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조만간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그는 인터넷을 뒤져 로봇 신체 구조에 관한 기사들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찾으면 찾을수록, 이런 걸 직접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커져만 갔다. 아니, 더 완벽한 걸 만들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니콜라스는 모든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좋아했지만, 여성 로봇의 신체는 그의 눈에 기술적 완성도의 정점으로 보였다. 그것은 생명의 정교한 모사였다. 한편으로는 극도로 복잡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살아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그를 매료시켰다. 칩과 코드로 기계 장치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그것이 언제나 그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로봇 공학 연구소에서 가장 신생 학과인 ‘트랜스포머티브 디자인’ 학과는 졸업 프로젝트 방식부터가 유별났다. 졸업 작품이 곧 첫 번째 독립 실습과 연계되는 식이었는데, 학생들은 한 명의 여성을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로봇화하는 전 과정을 도맡아야 했다. 외형의 3D 스캔부터 의식의 디지털화 지원, 로봇 신체 조립과 기초 프로그래밍까지 전부 말이다. 만약 ‘보통’ 이상의 성적을 받고 싶다면 매뉴얼대로만 해서는 안 됐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코드에서 뭔가 새로운 걸 제안하고 구현해내야만 했다. 여학생의 경우, 자기 자신이 곧 프로젝트가 되었다. 로봇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이 요구가 너무 급진적이라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결국 여학생들은 로봇이 되느냐, 아니면 다른 과로 전과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이런 상황은 교수들이 여학생을 대하는 태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어차피 필요한 기술과 지식은 나중에 전자 두뇌에 다운로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여학생들에게는 잣대가 훨씬 느슨했다. 수업이나 시험에서도 편의를 봐주는 일이 허다했다.
니콜라스 역시 이런 상황이 조금은 불공평하다고 느꼈지만, 이유는 달랐다. 왜 로봇화는 여자들만 가능한 걸까?
//물론 기술 발전의 역사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억울한 기분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는 기술 발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여성의 뇌를 디지털화하는 방법을 발명하고, 인간의 인격과 사고방식을 재현하는 놀라운 알고리즘 복합체를 개발한 한 천재적인 여성의 역사를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 한정이었지만. 정신적, 생리적 차이 때문에 이 시스템은 남성에게는 맞지 않았고, 남성에게 적용하려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여성은 자신에게 먼저 이 기술을 적용했고, 몇 년 후에는 성인이 된 딸에게도 적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다. 가끔 연구소를 방문해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니콜라스는 그녀의 아이디어가 가진 복잡함과 가치, 깊이뿐만 아니라 ‘로봇화야말로 여성이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그녀의 강한 확신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는 정말 천재적이었지만, 남자를 로봇으로 만드는 데는 쥐뿔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한 인터뷰에서는 로봇이 된 여자라도 남성용 기술은 개발할 수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남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묘사할 수 있는 건 남자뿐이라면서. 그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지만, 아직 세상에는 로봇화에 충분히 미쳐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주: 이후 언급되는 인물은 일레인 다이슨(Elaine Dyson)을 참고했으며, 드래곤볼 세계관이라면 부르마에 가깝다. 다이슨이라는 이름을 직접 쓸 권한은 없으니 본문에서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다.//
다시 졸업 프로젝트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학생들은 자신의 로봇화(조립 등)를 도와줄 파트너가 필요했고, 남학생들은 작업할 ‘대상’(혹은 마루타?)이 필요했기에 학생들을 2인 1조로 묶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팀은 보통 4학년 말에서 5학년 초 사이에 꾸려졌다. 남녀 비율이 보통 3:1 정도다 보니, 짝을 찾지 못한 남학생들은 외부에서 ‘대상’을 물색해야 했다. 여자친구를 설득하거나, 다른 과 학생 중에서 지원자를 찾거나, 아니면 공짜로 로봇이 되고 싶어 학과에 데이터를 제출한 자원자 명단을 뒤지는 식이었다.
이 시기는 늘 소소한 비극이 판을 치는 때였다. 이미 과 동기와 사귀고 있는 놈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남자의 마초적인 매력이나 재력을 따졌다면, 이제는 지능과 성적을 우선순위에 뒀다. 예전의 인기남들은 찬밥 신세가 됐고, ‘공부벌레’들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벌어졌다. 자기 마음이 서투르게 재프로그래밍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실패할 때마다 원본 ‘캐스트(Cast)’의 새 복사본으로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설령 실패한 ‘복제본’의 기억이 남지 않는다 해도,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찝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누군가는 꼭 그 얘길 떠벌리고 다닐 테고, 프로그래밍이 꼬였을 때 네 복사본이 얼마나 가관이었는지 상세하게 읊어댈 게 뻔했다. 파트너가 몸을 조립하거나 프로그래밍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건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 될 터였다.
//***’의식의 주형(Cast of Consciousness)’?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다.//
//**사실 1차 테스트는 보통 외부인 없이 지도 교수 참관하에 진행된다. 일종의 은밀한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 특히 타 과생들은 그 테스트를 한 번이라도 보려고 기를 쓴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연구소 보안망을 해킹하는 건 예사다.//
후배와 사귀고 있거나 과 밖의 여자친구를 둔 놈들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도 교수의 결정에 따라 자기가 고르지도 않은 여학생과 팀이 되기도 했고, 여자친구가 로봇이 되기 싫어하거나, 혹은 되고 싶어도 ‘비전문가’인 남자친구에게 몸을 맡기기 꺼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외부인과 작업해야 했는데, 이건 대개 이별로 이어졌다. 이유는 주로 관심 부족, 그리고 더 흔하게는 ‘질투’였다.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붙어 앉아 그녀의 취향과 몸에 대해 떠들고, 몇 시간씩 그 여자의 알몸 모델링을 쳐다보며 더 완벽하게 다듬고 수정하는 꼴을 참아낼 여자는 드물었다. ‘나’도 아닌 ‘그 여자’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 자기가 그 자리에 설 용기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누가 인정하고 싶겠는가?
그렇다고 이별의 원인이 여자 쪽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모든 비난이 그저 망상인 것도 아니었다. 천만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프로그래밍을 위해 너무나 솔직하고 개인적인 정보들을 공유하며, 눈앞(주로 화면 속이지만)에 펼쳐진 여자의 나신을 질리도록 보다 보면 남남으로 남기가 더 힘들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놈들이 옛 여자친구에게 일편단심을 지키기엔 자극이 너무 강했다. 특히 작업이 끝나고 둘이 함께 빚어낸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이상형이 자신이 무엇을, 누구를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때까지 잘 버틴 놈들도 결국 새로 태어난 로봇 소녀의 품에 안기기 일쑤였다.
이노와 팀이 된 건 니콜라스에게 행운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저 예뻐지고 싶어서 로봇화를 꿈꾸는 애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수업 시간에 지켜본 결과, 그녀는 똑똑했고 이 분야에 진심이었다. 기술을 좋아했고 회로와 전자 부품, 기계 장치를 만지는 걸 즐겼다. 남에게 묻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타입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마음 프로그래밍’에 꽂혀 있었다. 이 과목에서 그녀는 다른 학생들을 압도하는 천재성을 보였고, 니콜라스는 그녀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또한, 그녀는 로봇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로봇으로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두뇌’를 프로그래밍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녀의 눈은 번뜩이곤 했다.
운 좋게도 영리한 이노는 미리 주변 정리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몇 년 사귀던 연상의 남친과 일찌감치 헤어지고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니콜라스를 파트너로 점찍은 그녀는 4학년 중반부터 그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졸업 프로젝트 팀을 짤 때쯤 둘은 이미 꽤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고(비록 진짜 사귀는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무사히 같은 지도 교수 밑으로 배정받았다. 교수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실 출입증과 참고 자료를 내주며, 일주일 안에 향후 작업에 대한 예비 계획서를 짜오라고 내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노는 니콜라스를 당황하게 만든 폭탄 발언을 던졌다.
로봇이 되려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전형적인 미녀가 되길 꿈꾼다. 물론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인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은 눈에서 빛이 나는, 스스로 걸어 다니는 실리콘 리얼돌처럼 보일 뿐이다. 아주 비싼 고급 재료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경우에나 소름 끼칠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런 로봇조차 법적 규제 때문에 인간과 구별되는 눈에 띄는 특징을 최소한 하나는 남겨둬야 했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솔직히 ‘눈에서 빛이 나는 자립형 실리콘 인형’은 요즘 트렌드였고, 돈 많고 유명한 여자들조차 그런 ‘역할’(혹은 외형)을 선택하면서 평범한 여자들의 동경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스타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니콜라스를 경악게 했던 ‘섹스봇’ 모델 같은 것들이다. 본질적으로는 실리콘 인형과 같지만, 인형 같은 느낌을 더 강조하고 팔다리와 몸통에 화려한 색을 입히거나 발광 파츠를 넣고 성적인 특징을 극단적으로 부각한 모델들이다. 화룡점정으로, 이들의 프로그래밍에는 강박적인 노출증, 아니 노출광적인 성향과 이름 그대로 섹스에 대한 갈망이 주입되어 있었다.
성적인 강조는 모든 여성 로봇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로봇화를 개발한 그 여성이 강연에서 말했듯, 이건 변화하는 사회와 로봇 자신들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인간과 로봇을 잇는 몇 안 되는 공통의 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섹스는 로봇이 된 여성들이 인간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였다. 그게 아니라면 로봇이 인간을 필요로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왜 소통하겠는가? 전기를 얻고, 부품을 만들고, 몸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건 결국 다 자동화될 텐데. 그들에게는 사회적인 관심사가 필요했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그 천재 여성은 섹스를 택했고, 이제 그녀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모든 로봇, 즉 거의 모든 로봇 인격체는 이 특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섹스에만 미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창작에 대한 욕구, 단순한 대화, 정보 교환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예전의 취미를 계속할 수도 있고, 새로운 걸 찾을 수도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소리다. 섹스에 대한 갈망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건, 다른 욕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밥을 먹는 것보다 전기를 충전하는 횟수가 훨씬 적고, 잠잘 필요도 없으며,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도 않으니 걱정거리가 줄어든다. 그 빈자리를 창의성과 섹스가 적절한 비율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이노에게는 창의성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섹스봇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여성 로봇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여성성’과 ‘기계’의 조합이었다. 인간 여성의 상반신에, 클래식 모델처럼 실리콘으로 덮인 머리, 그리고 ‘헤비메탈’ 스타일의 금속 코팅이 된 기계 팔다리를 합치는 게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기계적인 관절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발은 하이힐 모양으로 디자인된 그런 모습 말이다. 그녀는 비슷한 다리를 가진 유명 모델의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잠깐, 그러니까… 진짜로 상체를 다 드러내고 다니겠다고?” 이노의 설명을 듣던 니콜라스가 물었다.
둘은 학기 내내 배정받은 실험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노는 노트에 향후 계획을 끄적이고 있었다. 그날의 모든 구상은 주로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당연하지. 몇 년 동안 생각한 거야. 맨살이랑 금속의 조합은 분명 아름다울 거야.”
“남들이 쳐다보는 건 상관없고?”
그녀는 약간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섹스봇들도 그러고 다니잖아. 걔들도 멀쩡한걸.”
“걔들은 노출증이 프로그래밍 된 거니까 당연히 괜찮겠지.”
“나도 프로그래밍하면 돼. 아, 잠깐만. 확인해 볼 게 있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더니 치마를 훌렁 벗어 던졌다.
“너 진짜 이러려고?” 니콜라스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실험이야.” 그녀는 긴장한 기색으로 팬티까지 아래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니콜라스 옆에 앉았다. 니콜라스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이노의 가슴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봐, 나 했잖아.” 잠시 후 그녀가 한마디 했다. “프로그래밍까지 하면 훨씬 쉬울 거야.”
“알았어.”
니콜라스는 시선을 책상으로 돌려 종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뒤 ‘나체 신체’라고 적어 넣었다.
“그렇게 쓰는 게 아니지.” 이노가 비꼬듯 핀잔을 주며 종이를 뺏어 들더니, 옆에 가슴이 큰 알몸의 여성 상반신을 그렸다. 니콜라스가 보기에 그녀는 그림 솜씨도 꽤 좋았다.
그림 옆에 그녀는 ‘가슴 사이즈 D 아니면 E?’라고 적었다. 그러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는지 덧붙였다.
“근데 있잖아, 나한테 노출증 프로그래밍은 하지 마. 대신 ‘수치심 설정’ 같은 걸 내장해서 상황에 따라 내 태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자.”
“그래.” 니콜라스는 그제야 그녀다운 반응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적어둘게. 인격 설정 인터페이스에 맞는 알고리즘을 찾아봐야겠네. 그런 설정은 들어본 적 없지만, 가능할지도 몰라.”
//미래를 위한 메모:
//그들은 비슷한 해결책을 찾아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범위가 너무 좁고 인격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 너무 단순했다). 결국 둘은, 주로 이노의 공로이긴 하지만, 원하는 설정을 훨씬 발전시킨 버전을 개발해낸다. 로봇 소녀가 노출에 대한 태도를 실시간으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설정이다. 말 그대로, 발목만 보여도 기겁하는 극도의 수치심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옷 입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상태까지 말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배가 고파질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이노가 원하는 신체와 프로그래밍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그녀는 옷을 입고 둘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제1장 끝.
이후 이노와 니콜라스의 가족에 대한 고찰 노트가 이어지지만, 아직 너무 거칠고 1장에 넣는 게 적절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다음 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데이비드는 연구실 컴퓨터에 로봇 신체 부품 카탈로그를 잔뜩 내려받았고, 둘은 그걸 하나하나 훑으며 미래의 '이노'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가끔 더 나은 옵션을 발견할 때마다 기존 계획에 적어둔 부품을 가차 없이 지워나갔다.
외형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이노의 권한이었지만, 그녀는 니콜라스의 의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장 논쟁이 치열했던 건 의외로 '눈'이었다.
"잠깐, 잠깐만. 설마 진짜로 '화이트 스톰(White Storm)' 안구를 쓰겠다는 건 아니지?"
"왜? 멋있잖아."
"기괴해! 주변 사람들은 네가 어딜 보고 있는지 전혀 모를걸."
"야, 그게 제일 매력 포인트거든?"
"옆에서 보기엔... 글쎄, 별로야."
"몰래 훔쳐보는 게 내 취향일 수도 있잖아?" 이노가 킥킥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니콜라스도 마주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리뷰를 읽어봤는데, 대부분의 사용자가 한두 달 만에 포기하고 평범한 모델로 바꾼대. 로봇의 의식 측면에서도 불편하고, 주변 사람들한테는 불쾌감을 준다더라고."
"젠장, 그럼 뭘 추천하는데? 난 꼭 써보고 싶단 말이야. 내 이미지에 딱일 것 같은데."
니콜라스는 고민에 빠졌다. 화이트 스톰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결국 이노가 가질 몸이니 그녀의 취향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그럼 예비용으로 다른 모델도 하나 더 주문하자. 써보고 괜찮으면 반품하고,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갈아끼울 수 있게."
"오, 당연히 이미 생각해 둔 게 있겠지?"
"음... 뭐, 그렇지. 이것 좀 봐봐."
그는 인공 안구 카탈로그를 넘겨 다른 모델을 보여주었다.
"오, 이거 진짜 흥미로운데?" 이노가 옵션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밤새도록 고른 거야?"
비꼬는 듯한 말투였지만, 내심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니콜라스는 어제 그녀가 설명했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안구를 고르기 위해 분명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눈을 골라준다는 건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질문을 받고 약간 당황해하는 니콜라스의 모습은 그녀의 장난기를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응. 예비 목록에 넣어둬. '스톰'이 별로면 '네' 눈으로 갈아탈 테니까."
니콜라스는 그녀의 표현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계획은 단계별로 구체화되었다. 외형이 이노의 몫이라면, 내부 부품 선정에 있어서는 니콜라스가 제1바이올린을 켰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기성품 플랫폼을 그대로 쓰는 편한 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부품 하나하나를 고르고, 호환성을 확인하고, 사양과 재고를 비교하는 고된 작업을 택했다. 연구소에서 웬만한 건 다 제공해 줬지만, 하이엔드급 부품은 예외였다. 희귀한 부품은 배송이 늦어질 수도 있었고,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도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차선책이라도 미리 마련해둬야 했다.
이런 면에서 니콜라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유능했다. 인공 신체 부품, 컨트롤러, 액추에이터, 케이블 종류까지... 그 특성과 미묘한 호환성 문제, 실패로 이어질 수도 혹은 시너지를 낼 수도 있는 그 모든 디테일을 꿰뚫고 있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로봇 소녀를 살아있게 만들고, 느끼고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 그것이 없다면 그녀는 그저 인간의 기억을 가진 복잡한 알고리즘 덩어리에 불과할 터였다. 그는 이 분야에서 이노보다, 아니 그 어떤 학생보다 뛰어났고 이노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사실 그래서 그녀는 여러 후보 중 니콜라스를 파트너로 점찍었던 것이다.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비빌 만한 애들도 있었고, 디자인 감각이 더 좋은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건 이노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강점을 보완해주고, 로봇으로서의 삶을 최상의 경험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전까지 이노는 니콜라스를 그저 기술에만 미쳐서 여자애들한테는 관심도 없는 경쟁자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가까워지면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도 가끔 여자를 만났고, 단지 같은 과 학생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또한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그는 자신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복잡한 기술적 장치로서의 가치까지 알아봐 줄 아주 적합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노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로봇으로 여기고 싶어 했고, 남들도 그렇게 봐주길 원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기계.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참고: 평범한 표준 섀시를 써도 상관은 없었다. 특히 프로그램 쪽에 집중하는 팀이라면 딱히 금지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성능과 기능 사이에서 최상의 밸런스를 뽑아낼 수 있는 부품들을 직접 골라낼 줄 알았다. 게다가 이런 커스텀 설계에서 흔히 터지는 호환성 문제로 그녀가 고생하지 않게끔 완벽하게 세팅까지 마쳤다.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재능이다.//
일주일 내내 그들은 계획을 다듬었다. 다른 조들이 쉬는 토요일에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커스텀 섀시를 만드는 탓도 있었지만, 완벽함을 향한 욕심이 더 컸다. 이노가 적용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래밍 목록을 짜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나하나가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스스로 결점이라 생각하는 성격을 교정하거나 좋아하는 부분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패키지는 이미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고, 이는 논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니콜라스가 보기엔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넣은 무의미한 프로그래밍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노가 이 분야에 유독 관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갈망이 이토록 깊을 줄은 몰랐다.
미래의 자신을 위한 정신 개조 계획을 짤 때 이노는 눈에 띄게 흥분하곤 했다. 니콜라스는 수시로 그녀를 진정시키며, 그 결정이 정말 필요한지 아니면 과한지 따져보게 했다. 가끔 이노는 그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을 섹스봇처럼 노출증 환자로 프로그래밍하겠다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냈다가 접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릴 때면 니콜라스는 한숨을 내쉬며 계획서에 또 다른 '이상한' 항목을 추가하곤 했다.
다행히도 니콜라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가장 기괴한 아이디어 중 일부는 구현할 기술이 없어서 무산되었다. 이노조차도 한정된 프로젝트 기간 내에 너무 많은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는 건 무리라는 걸 인정했다. 여러 개를 어설프게 하느니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과제는 '나체에 대한 반응' 설정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해내도 성적은 물론이고 훌륭한 추천서까지 따놓은 당상이었다.
//참고: 그녀가 자기 몸의 정확히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 필요.
논쟁이 격해지자 이노는 한때 자신이 너무 흥분했을 때 스스로의 충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메커니즘을 프로그래밍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성 솔루션이 없었다. 너무 복잡했고, 그런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정확한 트리거 포인트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난제였다.
이런 토론을 거치며 니콜라스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노가 나체 디자인을 선택한 건 단순히 그쪽 취향이거나 미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모든 신체 디자인은 사실 스스로를 재프로그래밍하고, 자신의 정신을 조작할 핑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로봇의 신체는 움직임 측면에서 인간과 큰 차이가 없으며, 대부분의 차이는 의식 수준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구동 제어, 자이로스코프, 가속도계 등 온갖 센서의 데이터 처리는 하위 컨트롤러의 몫이다. 로봇의 뇌는 신체와 주변 환경의 공간 모델, 그리고 거기에 가해지는 힘과 운동 벡터만을 다룬다. 그래서 이 신체 모델은 원래의 몸과 거의 흡사하며, 익숙한 동작 패턴과 반사 신경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금속 외피와 내장형 힐, 독특한 발 모양을 가진 '헤비메탈' 스타일의 팔다리를 선택함으로써, 이노는 새로운 몸에서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운동 능력을 대대적으로 재설정하거나 아예 새로 써야만 했다.
그녀는 또한 자가 정비 기술을 비롯해 펨봇(fembot)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기본 스킬 세트를 자신에게 프로그래밍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는 남을 재프로그래밍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런 그녀의 열정은 니콜라스를 지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더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도록 자극했다. 그런 뜨거운 불꽃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저 따라갈 수밖에.
이노는 그 이후로 옷을 벗는 실험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첫째로 둘 다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둘째로 그녀 스스로도 아직은 그 상태가 약간 불편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게 옷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신체의 한계라고 확신하며, 로봇이 된 자신이 나체로 다닐 권리를... 마음속으로 꿋꿋이 수호했다. 니콜라스는 그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고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 주 초, 그들은 수정된 작업 계획 초안을 졸업 프로젝트 지도 교수에게 제출했다. 엘리엇 맥킨리 교수는 몇몇 대목에서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전반적으로는 계획대로만 된다면 아주 유망한 작업이라며 승인해 주었다. 그는 그들의 결심을 꺾으려 하거나 시험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텍스트에서 빠진 세부 사항들을 확인하고 몇 가지 실질적인 조언을 건넸다.
계획이 승인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이노의 신체 스캔 허가가 떨어졌다. 3D 스캔 결과가 있어야만 토론을 끝내고 이노의 로봇 신체 모델을 실제로 설계할 수 있었다. 앞으로 약 4개월 동안 섀시 부품을 개발하고, 단순한 목록이 아닌 실제 사양과 도면, 제작에 필요한 모든 소프트웨어 수정안을 완성해야 했다.
허가증을 손에 쥔 그들은 폴 미니에(Paul Mignet)의 영역으로 향했다. 그는 로봇화 전문 클리닉인 '테크놀로지 오브 뷰티'의 파트타임 실험 조교로, 인체 정밀 스캔 장비가 가득한 별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시설은 졸업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일 년 중 단 몇 주 동안만 풀가동되었고, 나머지 기간에는 2, 3학년 학생들의 견학용으로나 쓰이며 놀고 있었다. 다소 낭비 같았지만, 연구소 후원자가 통 크게 쏜 장비들이라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미니에는 허가증을 훑어보고 컴퓨터를 뒤적거리더니 3일 뒤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노와 니콜라스는 그때까지 쉬어도 됐지만, 그들은 곧장 연구실로 돌아가 교수의 조언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닉 시스템 학과장인 맥킨리 교수는 대단한 전문가였고, 니콜라스는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참고: 하지만 그는 이노가 트리아니 교수를 지도 교수로 더 원했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미나 트리아니는 특별한 스승이었다. 로봇 공학 창시자의 동료 중 한 명으로, 본인의 요청에 따라 신설 학부의 교수직을 맡았다. 그녀는 여성형 로봇의 사고 알고리즘 구조를 가르쳤는데, 스스로를 본보기 삼아 직접 몸소 보여주곤 했다. 또한 졸업 프로젝트에도 항상 열정적으로 참여했는데, 다음 타자가 될 여학생이 로봇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욕망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약속된 시간에 그들은 스캔 병동에 도착했다. 미니에는 즉시 이노에게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고, 니콜라스에게는 옆에서 보조하며 스캔 방법을 배우라고 했다. 그는 왜 이런 작업이 의료 교육을 받은 조교뿐만 아니라 로봇 전문가에게도 필요한지 설명했다. 실제 로봇 클리닉 현장에서는 조교가 아프거나 자리를 비울 때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전문가가 직접 스캔을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최소한의 의학 지식과 연수가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클리닉은 직원들에게 이를 요구했다.
신체 표면 스캔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바닥 위로 솟아오른 스캐너 플랫폼 주변을 긴 꽃잎처럼 생긴 측정 센서 빔들이 약 1분간 회전했다. 나체의 이노는 두 팔을 들고 숨을 참으며 서 있었다. 니콜라스는 미니에의 설명을 들으며 작업 과정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애썼다. 눈앞의 아름다운 소녀를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말이다.
기본 스캔이 끝나고 세부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추가 스캔이 이어졌다. 이노는 자신의 눈을 그대로 복제할 생각이 없었기에 망막 스캔은 건너뛰었지만, 정밀한 얼굴 스캔과 구강 스캔은 필수였다. 구강 스캔을 위해 특수 초음파 프로브와 수많은 센서가 이노의 뺨과 턱에 부착되었다. 이노는 불평 한마디 없이 견뎌냈고, 나머지 스캔에 나체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음에도 서둘러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노의 머리를 완벽하게 재현하려면 두개골 골조직의 단층 촬영(CT)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별도의 방에 마련된 컴퓨터 X선 단층 촬영 장비로 이동했다.
촬영이 끝나자 미니에는 그녀에게 잠시 휴식 시간을 주었고, 추가로 필요한 스캔이 있는지 물었다. 니콜라스가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네." 이노가 약간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하부 유닛의 개별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세 곳 전부 다요."
"좋아." 미니에가 말했다. "그럼 저기 가림막 뒤로 가 있어. 저 친구도 같이 보게 할까, 아니면 다른 케이스로 배우게 할까?"
이노는 더욱 당황하며 대답했다.
"제 걸로 배우게 해주세요."
미니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따라와라, 꼬마야."
가림막 뒤에는 산부인과 진료 의자와 비슷하게 생긴 의자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초음파 프로브들이 놓여 있었다. 미니에는 질 모듈은 두 번의 스캔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한 번이면 된다고 미리 일러주었다.
"알아요." 이노가 확인하며 의자에 올라앉았다.
미니에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첫 번째 질 스캔을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마치 포르노의 한 장면 같았지만, 이노는 꿋꿋하게 절차를 견뎌냈다. 미니에의 전문적인 태도와 기술적인 코멘트 덕분에 의료 절차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니콜라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실험 조교가 니콜라스에게 두 번째 스캔을 맡겨보겠냐고 묻자, 이노의 얼굴은 완전히 홍당무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허락했다. 니콜라스만 성인 비디오를 떠올린 건 아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이노는 참지 못하고 부드러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브가 끝까지 닿아 추가 수신기를 뽑아내고 자궁경부의 형태를 읽어낼 때 절정에 달했다. 그녀는 결국 니콜라스를 의료진으로만 보는 데 실패했다. 어쨌든 절차는 끝났다. 펨봇은 자궁경부 모사 장치 뒤에 정액 저장고와 연결되는 기계식 밸브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항문 스캔은 다시 미니에가 맡았다. 이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받아들였지만, 사실 자기는 항문 성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콜라스는 그게 꽤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걸 딱히 고쳐야 할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재프로그래밍 계획에도 그 부분은 없었다. 미니에는 철학적인 태도로, 그런 경우에는 표준 모듈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프로세스와 결과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는 개별 디자인에 맞춘 정밀한 프로그래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구강 스캔은 더 가관이었다. 이노가 직접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니에가 경험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긍정의 대답을 했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허락했다. 이노는 의자에서 내려와 평범하게 앉아 프로브를 건네받았다. 미니에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실수를 교정해 주었다.
이노가 니콜라스를 놀라게 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이런 섬세한(?) 경험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니콜라스는 이노가 연습 상대로 삼았던 그 이름 모를 녀석에게 진심으로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미니에가 말한 표준 깊이를 훌쩍 넘어 프로브를 깊숙이 삼켰다.
"허, 나를 놀라게 할 줄이야." 조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클리닉 기록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훌륭한 결과야. 폐활량도 대단하네. 1분 30초 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문데."
"2분 17초요." 이노가 말했다. "제 최고 기록이에요. 예전에 수영을 했거든요."
이것으로 모든 스캔 작업이 끝났고, 이노는 재빨리 옷을 입었다. 내일 오후 2시 이후에 연구소 서버의 개인 폴더에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미니에의 약속을 뒤로하고 그들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원래는 스캔 후에 프로젝트에 대해 더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휴식이 절실해 보였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이노가 연구실 대신 연구소 출구 쪽으로 향하며 제안했다.
"그래, 그러자." 니콜라스도 동의했다.
그는 방금 본 모든 장면과, 만약 자신이 꿈꾸던 부품 개발이 아니라 클리닉 취업을 하게 된다면 정말로 조교 업무를 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에겐 조금 벅찬 경험이었다.
"그리고... 저기. 개별 모듈 스캔한 거,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이노가 못을 박았다.
"입 무거운 거 알잖아. 무덤까지 가져갈게."
"좋아. 그래야지, 니콜라스. 안 그러면 진짜 네 무덤을 파야 할지도 모르니까..."
"헤헤, 나 말주변 없는 거 알면서."
"알아." 이노가 인정했다.
그들은 한동안 침묵 속에 걸었다.
"근데... 너 진짜 기술 좋더라. 깜짝 놀랐어." 니콜라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그 직후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스캔을 마친 이노는 평소보다 기운이 좀 빠져 있었으니까.
스캔이 끝나자 프로젝트의 진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학기 말까지 이어지는 일반 과목 수업을 들었고, 그 후엔 실험실에 모여 미래의 로봇 이노를 만드는 데 매달렸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합성 팔다리의 외장 형태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이노의 바람대로 헤비메탈 스타일의 외장으로 모델을 교체했다. 이제 니콜라스가 파일을 열 때마다 보이는 건, 하이힐을 신은 채 금속 팔다리를 드러낸 알몸의 동료였다. 다음 단계로는 몸통을 모델링했다. 내부는 비어 있었고, 버튼 하나로 각 섹션이 분리되도록 설계했다.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끝낸 뒤, 니콜라스는 기계적·전자적 내부 설계를 맡았다. 작업 도중 그는 옆에 앉아 인공지능 코드를 만지작거리는 이노를 힐끗거리며, 화면 속의 기계 소녀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짜릿한 기분이었다. 그가 특별히 실리콘과 금속의 조합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살아있는 몸도 충분히 훌륭하니까. 하지만 거기에 개폐식 패널 같은 요소가 더해지면, 로봇 쪽이 압도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애초에 로봇 소녀가 일반 여자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멀쩡한 여자를 로봇으로 개조하는 법을 배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가끔 그는 '왜?'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매번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타인의 로봇화 욕구를 부정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언젠가 자신 같은 남자들에게도 그 기회가 오길 바랄 만큼 로봇으로서의 장점은 확실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엇에 끌리는 걸까? 답은 로봇 여성을 '기술적 장치'로 보는 그의 시각에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핵심이었다.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더 나은 부품과 소재,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고, 자신도 거기에 일조할 수 있다는 사실! 그는 로봇의 삶을 더 아름답고 완벽하게 만들어줄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노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는 게 좋았다. 그녀를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현재의 기술력을 뛰어넘는 존재로 탈바꿈시킬 장치로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나타나기 시작한 대중적인 로봇화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인의 열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라고 보았다. 많은 여성이 더 나아지기 위해 로봇이 되길 원했고, 그는 그녀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만큼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의 로봇 신체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술은 계속 진보한다. 개선의 여지는 언제나 있다. 그게 그의 지론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확신은 강해졌다. 펨봇(Fembot)들은 때때로 버그를 일으키고, 신호 처리나 운동 능력 등 세부적인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플랫폼의 근간을 바꾸는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그에 따른 새 펌웨어와 드라이버, 배선 작업까지. 그 모든 게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물론 이런 태도에는 이면이 있었다. 로봇 여성을 기계나 장치로 보다 보니, 그녀들의 인격을 전용 컴퓨터 시스템에 로드된 바이트 뭉치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프로그래밍 원리를 수년간 공부하며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나쁜 걸까? 인격은 더 유연해졌고, 튜닝과 수정이 가능해졌다.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이 제어되고, 그 알고리즘을 교체해 성격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이게 유기체 뉴런의 결과물인 인격보다 못할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그가 배운 인간과 로봇의 비교 심리생리학 강의에 따르면,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단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뉴런의 물리적 특성 때문에 정상적인 프로그래밍이 불가능할 뿐이었다.
물론 자아의 본질이나 인격의 연속성 같은 철학적인 문제도 있었다.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존재가 과연 뇌를 스캔당한 그 본인인지, 아니면 그저 정교한 복제품이나 AI의 흉내에 불과한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수많은 연구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확증을 얻지 못했다. 그저 가설만 무성할 뿐. 그럼에도 인류는 눈앞에 펼쳐진 신기술의 소용돌이 속으로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와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까? 이미 300만 명 이상이 로봇으로 개조되었고, 수백만 명이 돈이 없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이 문제에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모든 연구 결과는 동일했다. 불필요한 프로그래밍으로 변형되지 않고 디지털로 정확히 재현된 인격은 모든 검사 결과 원본과 동일하다는 것. 행동 모델의 기초가 되는 이른바 '인격의 핵(Core)'은 기억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기억을 삭제하지 않는 한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없었다. 이는 로봇의 개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인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근거가 되었다. 2학년 때 한 학기 내내 들었던 철학적 고찰과 디지털화 원리 수업은 학생들에게 이 관점이 옳다는 것을 주입시켰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가장 가까운 존재인 어머니는 작년에 로봇이 되었고, 절친한 친구도 곧 개조를 앞두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이들이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노의 경우는 좀 특별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격이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바로 그것을 원했다! 프로그래밍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집합체가 되길 갈망했다. 프로그래밍 된 정신으로 작업하고, 자신과 타인을 개선하며,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갖길 원했다. 지금 열정적으로 만들고 있는 '노출 반응 튜닝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결국 니콜라스는 이렇게 믿기로 했다. 로봇 여성이 겉보기에 살아있는 것 같고, 충실한 삶을 영위하며,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한다면 개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로봇이 됨으로써 얻는 이점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데, 왜 마다하겠는가? 영원한 젊음, 유지 보수의 용이성,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도 백업으로 복구 가능한 신체, 지치지 않는 체력, 프로그래밍을 통한 새로운 기술 습득까지. 환상적인 혜택들이다. 그 자신도 원할 정도였으니까.
로봇 인격에 영혼이 있느냐는 논쟁에 대해 그의 입장은 확고했다. "확인할 방법이 없다."
로봇화에 반대하는 마지막 객관적 논거는 자녀와 인구 통계 문제였다. 로봇 여성은 물리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당장은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될 터였다. 남성 로봇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고, 해결된다 해도 유기체 인간의 감소 속도만 바뀔 뿐이었다.
현재 이 문제는 로봇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부 부유층에게만 닥친 현실이었다. 집안에 유기체 여성이 한 명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들은 늙어갔다. 그들이 찾은 해결책은 '유사 대리모'였다. '유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법적 아내의 DNA나 난자를 구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외형이 가장 비슷한 기증자를 찾아야 했는데, 때로는 원래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진 로봇 아내의 새 외모에 맞추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로봇화 전 DNA 샘플 보존이 의무화되었고, DNA 설계와 인공 배양 기술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다. 로봇 신체에 장착해 임신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 자궁 모듈'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하지만 여기서 개발자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이 모듈은 개조를 고민 중인 여성들에게나 흥미로운 주제였지, 이미 개조를 마친 이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정신 프로그래밍 때문에, 로봇 여성들은 임신이나 출산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번식 본능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 기술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 미래의 문제였고, 관련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가끔 그들은 동기에 대해 대화했다. 이노는 사람을 프로그래밍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을 것 같아 로봇이 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래서 로봇이 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가 뭐야?"라거나 "왜 여자들을 로봇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있어?" 같은 질문이 나오곤 했다. 이번에도 니콜라스가 이노의 미래 신체 모델을 생각에 잠겨 돌려보고 있을 때, 그녀가 갑자기 코드에서 눈을 떼고 그의 어깨 너머로 물었다.
"내가 이런 모습이 되면, 네가 직접 조립해 줄 거야?" 도발적인 목소리였다.
그는 그녀가 언제 다가와 뒤에 섰는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는." 그도 비슷한 톤으로 대꾸했다.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드라이버를 어떻게 튜닝할지 고민 중이야. 네 미래 모습이 아주 적절하게 자극을 주네."
"여자친구가 로봇이었으면 좋겠어?" 벌써 몇 번째 묻는 질문이었다.
"이미 물어봤잖아." 그는 대충 넘기려 했다.
"매번 직접적인 대답은 피하면서 말이야."
"확신이 없어서 그래. 난 유기체 여자도 좋고 로봇 여자도 좋아. 하지만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지. 알다시피 로봇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지만, 실습용 모델로 판단하건대 살아있는 살결이 더 기분 좋긴 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로봇은 대개 능력이 더 뛰어나고, 무엇보다 로봇화가 여자에게 주는 이점이 너무 많아서 그걸 원하지 않는 건 멍청하고 이기적인 짓이지. 그리고 난 로봇 신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게 좋아.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적 결함을 없애고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내 여자친구가 로봇이 되는 쪽이 더 좋아. 우리를 알기 전이든 후든 상관없어. 내가 부품을 개발한다면 그녀의 개선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겠지."
"와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대답이네."
"그럼 나는? 나를 로봇으로 만들고 싶어? 화면에 있는 것처럼?"
"무엇보다 네가 원한다는 게 중요해. 난 네가 최고의 모습이 되도록 돕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래, 솔직히 원해. 우린 이걸 위해 정말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왔잖아. 네가 이 몸을 갖게 됐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정말 보고 싶어."
"고마워!" 그녀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기뻐."
그녀는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갑자기 그의 얼굴을 감싸고 짧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곧바로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어, 방금 건 그냥 충동적이었어!" 그녀는 자기 컴퓨터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니콜라스는 멍하니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 애썼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노는 주로 코딩을, 니콜라스는 기술적 설계를 맡았다. 하지만 역할 분담은 꽤나 유동적이었다. 각자 흥미로운 분야를 맡으면서도 상대방의 작업물을 꼼꼼히 살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덕분에 서로 보완하며 주제를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특히 이노는 자신이 평생 살아가야 할 몸을 이해하는 데 필사적이었고, 니콜라스는 그녀의 열정이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코드를 점검했다. 그녀에게 모든 걸 맡겼다가, 나중에 활성화된 이노가 지금과 너무 다른 존재가 되어버릴까 봐 은근히 겁이 났다. 그는 지금의 이노가 좋았고, 새로운 그녀를 좋아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점차 이노는 자신의 디지털화된 정신을 새로운 존재 방식에 적응시키고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재프로그래밍 패턴을 구축해 나갔다. 아쉽게도 이건 예비 설정일 뿐이었다. 최종 설정은 연구소 메인프레임에서 그녀의 정신 데이터가 완전히 분석된 후에야 가능했다. 그때가 되어야 스스로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선택한 프로그램들이 적절한지 확인하고 미세 조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이유로 이 작업은 이노 없이 니콜라스 혼자 해야 했다. 뇌 디지털화는 현재의 육체가 계속 기능할 수 있는 절차가 아니었으니까.
남은 건 강의실에서 했던 것처럼 '발레리(Valerie)' 모델로 실습하는 것뿐이었다. 수업 때는 초기 상태가 정해져 있었고 교수님이 요구하는 상태로 만들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두 학생이 직접 초기 상태를 설정해야 했다. 최대한 이노와 비슷하게 설정한 뒤, 선택한 프로그래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설정값이 잘 맞는지, 설계 요소 간에 논리적 충돌은 없는지, 삭제해야 할 요소를 놓쳐서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꼼꼼히 체크했다. 그러고는 다시 초기화하고 설정을 다듬어 재시도하며 정확도를 높여갔다. 발레리 모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프로그래밍 품질에 민감했다. 실수가 생기면 여지없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분석 프로그램이 묘사하는 것처럼 폭력적인 성향의 파괴적인 인격으로 변해버렸다.
니콜라스는 왜 가상 인격 에뮬레이터의 이름이 발레리인지 알지 못했다. 물어봐도 이노 역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발레리의 그 폭력적인 성향도 이해할 수 없었다. 코드 깊숙한 곳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게 분명했지만, 직접적인 간섭으로는 찾을 수도 억누를 수도 없었다. 오직 정교한 프로그래밍만이 그 기질이 발현되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비록 그 프로그래밍이 폭력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일지라도 말이다.
//노트: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격, 그리고 이 기술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논의에 대한 생각들을 좀 더 추가할 것?//
이노가 직접 챙긴 몇 안 되는 하드웨어 부품 중 하나는 개별 섹스 모듈과 그 소프트웨어 설정이었다. 그녀는 이 부분만큼은 니콜라스의 도움 없이 혼자 처리하려 고집을 피웠다.
그녀는 화면을 돌려 그가 '훔쳐보지' 못하게 가린 채 열흘 넘게 작업을 이어갔다. 가끔 니콜라스의 작업을 체크하긴 했지만, 자기 작업물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처음 며칠은 괜찮아 보였으나, 첫 주가 끝날 무렵엔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게 눈에 보였다. 열흘째 되는 날, 그녀는 결국 폭발했다.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터치스크린을 거칠게 두드리더니, 갑자기 의자를 뒤로 밀며 숨을 골랐다.
"하아..." 그녀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이런 식으론 안 되겠어. 니콜라스,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줄래?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조금 놀랐지만(정말 조금뿐이었을까?), 그는 묻지 않고 전력 분배 컨트롤러 설정을 멈춘 뒤 그녀의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끌고 갔다. 수많은 센서 배열과 미세 조정값, 보조 매크로 코드 뭉치 속에서 문제를 바로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이노가 곁으로 다가와 무엇을 왜 이렇게 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실험이었다. 니콜라스에게도 완전히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다. 감각 처리 시스템 수업에서 다뤘던 주제였고 실습도 해봤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훨씬 단순하고 표면적이었다. 이제 그는 이노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싶어 하는지 아주 내밀한 부분까지 파고들어야 했다. 가장 유사한 기본 모델의 프로그래밍과 컨트롤러, 그리고 이노의 스캔 데이터를 결합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했다. 니콜라스는 아무리 무심한 척하려 해도 자꾸만 얼굴이 붉어지고 놀라움에 그녀를 쳐다보게 되었다. 설정과 코드를 짜기 전에... 특수한 '도구'들로 상당한 '예습'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감각과 원하는 반응에 대해 그토록 상세하게 적힌 노트가 달리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녀가 이 작업에 얼마나 책임감 있고 깊이 있게 접근했는지 새삼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노는 며칠 전부터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혼자 해보려 고집을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사흘 동안 그들은 질(Vaginal) 모듈과 구강(Oral) 모듈 설정을 완벽하게 끝냈다. 니콜라스는 이노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비록 그 지식이 주로 육체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떤 남자가 여자애가 느끼는 방식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항문(Anal) 모듈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작동은 했지만 이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니에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이 모듈을 제대로 설정할 만큼의 경험도, 욕구도, 혹은 그 경험을 얻을 능력조차 부족했다. 결국 이노도 고집을 꺾고 손을 내저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지우고 표준 버전 중 하나를 선택했다. 로봇 이노는 그녀가 원했던 것보다 아주 조금 덜 개성적인 존재가 되겠지만, 적어도 항문 성교에서 어떤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다. 말이 좀 저속하게 들릴지라도 말이다.
작업이 끝나고 이노가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 백업을 저장한 뒤, 그녀는 니콜라스에게 중요한 일을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거절하지 않았고, 곧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게 바로 그 상세한 노트들을 불태우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실험실 밖에서도 이노와 니콜라스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힘든 정신 노동 끝에 연구소 건물을 나서며 저녁 산책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열정적인 성격 탓에 대화는 늘 프로젝트와 로봇화 이후 이노가 어떤 모습이 될지로 흘러갔다. 그녀는 아이디어가 넘쳐났지만, 그 중심에는 늘 프로그램처럼 느껴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프로세서 부하와 메모리 사용량 같은 수치적 파라미터에 둘러싸여 컴퓨터 두뇌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순간을 그녀는 간절히 꿈꿨다.
그들은 연구소 주변 공원이나 시내를 걷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노가 시내를 걷다 말고 니콜라스에게 자기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다만 부모님이 집에 계실 거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부모님을 뵙자고?" 그는 무슨 의도인지 몰라 당황하며 물었다.
"뭐, 그런 셈이지. 사실 엄마가 내 프로젝트 파트너를 전부터 보고 싶어 하셨거든."
"그렇겠네. 프로젝트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실 테니." 그는 도발적으로 대꾸하며 은밀하게 물었다. "내가 말하지 말아야 할 게 뭐야?"
알고 보니 꽤 많았다. 이노는 부모님께 자신의 개조 계획을 상세히 공유하지 않았다. 금속 팔다리 같은 기본적인 건 숨기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입을 다물었다. 특히 노출 실험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게 딱히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로봇 여성의 수가 늘어나면서 정상의 기준이 바뀌고 있었다. 알몸의 펨봇들이 쇼핑을 하고, 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고, 사무실에서 일하며, 기업을 운영하고, 심지어 방송이나 블로그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령 제한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사회, 특히 기성세대는 여전히 그런 행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했다. 니콜라스는 이노의 부모님이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는 길에 그는 이노에게 들었던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며 중요한 점들을 확인했다. 아버지 세바스찬 베텔은 항공 설계국 엔지니어였다. 이노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차분하고 교양 있으며 예의 바른 분이라고 했다. 딸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편이었다. 어머니 아야코는 같은 회사의 인사과에서 일했다. 외국인 출신으로 교환 학생으로 왔다가 정착했다고 하는데, 전공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노라는 특이한 이름은 어머니 고향의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어머니의 성격은 아버지보다 훨씬 복잡해 보였다. 똑똑하고 고집 세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줄 아는 결단력 있는 여성(부모님과의 관계를 끊을 뻔하면서까지 이사를 강행했던 것처럼)이었다. 그녀는 이노가 로봇 공학 관련 직업을 갖는 걸 지지했고, 다가올 로봇화도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노의 단편적인 말들로 미루어 볼 때, 어머니는 이노가 너무 어린 나이에 로봇이 되어 손주를 볼 기회를 없애버리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아야코 자신도 언젠가 개조를 받을 생각이 있었지만, 그건 나이가 더 든 후에나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노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디어 중 일부를 승인하지 않아 갈등이 생기거나, 교수님들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둘 다 고집이 세서 이노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의 계획은 최소한의 정보만 흘린 뒤 나중에 기정사실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이노에게는 언니도 한 명 있었다. (에밀리아? 리나? 한나? 안나? 리디아? 아멜리? 이름이 뭐였더라...) 언니는 이노의 모든 도전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아군이었지만, 따로 살고 있어서 오늘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니콜라스가 말실수라도 하면 상황을 수습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이노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지하철역 근처의 평범한 20층 아파트였다. 연구소에서 30분, 지금 걷고 있는 곳에서는 더 가까웠다.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문 앞에 서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이노가 오른쪽 세 번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노!" 동양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젊어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며 외쳤다. "벌써 왔니! 어머, 이 잘생긴 청년은 누구니? 네가 그렇게 꽁꽁 숨기던 파트너니? 어서 들어오렴,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여인은 갈색 눈동자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노의 짚색 머리카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게 분명했다. 거실 안쪽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베텔 씨가 손님이 나타나자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자신과 아내를 소개했다. 이노도 니콜라스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니콜라스는 악수하며 이미 이름을 말했지만, 이노의 소개는 그의 지위와 성격에 대한 칭찬이 섞여 있어 꽤나 으쓱한 기분이 들게 했다.
(참고: 그녀의 회녹색 눈동자가 유전적 변이라는 건 이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버지 쪽 먼 조상 중에 그런 눈 색깔을 가진 분이 있었다고 한다.)
베텔 씨는 키가 꽤 컸고, 덩치가 크다기보다는 탄탄하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코가 곧았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딱 좋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가 니콜라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친절하게 식탁으로 안내했다. 이노는 니콜라스를 끌고 소파에 앉혔고, 부모님은 묵직한 나무 식탁 반대편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았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 베텔 부인은 가벼운 음식들을 차려내고 차를 따랐다. 손님이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울 때까지 기다려주는 예의를 보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남편보다 읽기 쉬웠다. 묻고 싶은 게 많아 입이 근질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입을 뗐다.
"자, 젊은이들. 이제 둘이서 뭘 하고 지내는지 좀 들어볼까?"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니콜라스는 순간 당황했다. 프로젝트에 너무 미쳐 있어서 이노를 자기 집에 초대할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게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를!
"엄마!" 이노가 소리쳤다. "졸업 프로젝트 같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이 궁금해 죽겠는 엄마한테 자세히 좀 말해달라는 거지." 아야코 베텔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이노가 식탁 밑으로 발을 툭툭 차는 방해 공작을 견뎌내며, 두 사람은 인공 신체 구조 설계와 부품 호환성 테스트, 자극 프로그래밍 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부품 이야기를 할 때 베텔 씨는 로봇 공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꽤 전문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여전히 니콜라스에 대한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그럼 딸아, 네 정신에 뭔가를 바꿀 계획인 거니?" 아야코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니콜라스는 친구가 당황할까 봐 얼른 거들었다.
"로봇이 되려면 누구나 정신을 조금씩 수정해야 합니다, 베텔 부인. 새로운 신체의 생리와 필요에 반응과 습관을 맞추기 위해 누구에게나 행해지는 과정이죠. 로봇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숨도 쉬지 않으니까요. 배고픔이나 목마름 같은 개념은 사라지지만, 대신 배터리 잔량이나 소모품 보충 필요성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관리해야 합니다. 이노가 새로운 상태에서 부적절하거나 불가능한 충동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재구축하는 겁니다."
"아, 겨우 그런 거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 아야코는 이노가 이미 훨씬 자세히 설명해줬다는 사실을 내색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사소한 것들도 있죠. 예를 들어, 제 어머니 친구분께 들었는데 모든 로봇 여성은 내부 구조와 유지 보수 방법에 대한 정보를 프로그래밍 받는다고 하더군요. 이노는 공부를 잘해서 이미 많이 알고 있지만요. 그래도 전공자라면 갖춰야 할 전문 기술 패키지와 함께 기억에 기록될 겁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그래, 이노의 교육 계약서에 그런 내용이 있었지." 베텔 씨가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 친구분은 로봇인가 보군? 오래됐나?"
"네, 로봇이 되신 지 7년 정도 됐습니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니?" 아야코가 물었다. "그 후로 변한 건 없고?"
"예전처럼 아주 잘 지내세요. 사실 제 어머니도 1년 좀 안 되게 전에 개조를 받으셨거든요."
"어머? 학생이 학교 다니는 동안 개조 비용을 감당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한가 보구나?"
"가족이라곤 어머니뿐입니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버지는 기억도 잘 안 나고 뭐 하시는지도 몰라요." 니콜라스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덜 위험하니까. "어머니 수입은 생각만큼 많지 않지만 저를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세요. 운 좋게 입학시험 성적이 좋아서 국가 할인을 받았고, 우리 학부 남학생 가족에게는 후원 기업에서 개조 비용을 할인해주는 혜택도 있거든요."
"그런 건 처음 듣는데." 아야코가 말했다. "왜 남자애들만?"
"음, 일종의 균형 맞추기라고 하더군요." 그는 좀 쑥스러워했다. "여학생들은 본인이 로봇이 되지만, 남학생들은 가까운 사람 한 명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취지인 것 같아요."
"허, 참 흥미로운 방식이네. 나도 처음 듣는 얘기야, 여보." 베텔 씨가 말했다.
"뭐, 우리 집엔 아들이 없으니까요. 나도 로봇이 되는 건 서두르지 않고 있고. 그런데 학생, 어머니는 개조 후에 많이 변하셨니?"
"전혀요! 더 아름다워지셨을 뿐이지 여전히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그대로예요." 그는 문득 떠오른 몇 가지 뉘앙스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다만 어머니가 다른 도시에 사셔서 자주 뵙지는 못해요."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니 다행이구나. 여보, 로봇이 되면 다들 예뻐진다잖아요. 그런데 이노, 넌 왜 꼭 금속 팔다리를 고집하는 거니?" 아야코가 다시 딸을 몰아세웠다. 늘 하던 잔소리인 듯했다.
"그게 좋으니까요, 엄마." 이노가 싸움을 피하려는 듯 단호하게 답했다.
"니콜라스 군은 우리 딸의 취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세바스찬 베텔이 물었다.
"다수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답했다. "헤비메탈 시리즈는 그 독특함 속에서도 꽤 우아한 멋이 있거든요."
친구의 소망을 어떻게든 방어해줘야 했다. 사실 그 자신도 이노의 선택을 완전히 찬성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니, 솔직히 화면 속에서 금속 다리에 하이힐을 신고 관절을 드러낸 채... 알몸으로 서 있는 그녀는 정말 근사했다. 니콜라스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대화에 집중했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고, 두 학생은 너무 많은 걸 들키지 않으려 진땀을 뺐다. 이노의 부모님은 처음 내비쳤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이들의 계획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의도적인 유도 심문이었다는 걸 니콜라스는 깨달았다. 그들은 딸의 재능을 펼치는 걸 막지 않았고, 로봇이 되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다. 두 분 다 주변에 로봇 지인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특히 아야코는 두 사람의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니콜라스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왜 자신이 이노를 여자로 대하는 데 그토록 인색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결국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니콜라스가 느끼기에 꽤 따뜻한 분위기였다. 이노가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해 이 연구소에 왔는지, 학창 시절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휩쓸었던 상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일부인 가장 복잡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열망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노가 로봇 여성을 버튼 하나로 설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고도의 소프트웨어 구조로 보고 있으며, 프로세서 명령어로 인격을 재구성하는 행위 자체에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그는 자신이 빌린 작은 원룸 자취방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나눈 대화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이 한 말, 이노가 한 말, 그리고 하지 못한 말들. 어머니와의 관계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최근 몇 달 동안 그는 집에 내려가는 횟수가 줄었다. 프로젝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클리닉에서 새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를 마중 나갔고 함께 기뻐했다. 슬림하고 젊어진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서브루틴에 따라 새로운 신체의 일상에 금세 적응했고, 필요한 모든 동작을 정확히 수행했다. 실습 때 보던 오작동도 없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평소처럼 어머니는 그가 올 때를 맞춰 장을 봐두었고(로봇이 된 후 집에는 음식을 두지 않았다), 맛있는 점심을 차려주었다. 휴일이라 시간은 넉넉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노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때 어머니가 유지 보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스트리드(Astrid)가 어디 가고 없는데 혼자 하긴 불편하다며, 너도 이제 전문가나 다름없지 않냐고 했다. 사소한 일로 클리닉까지 가긴 번거롭다면서. 그는 당황했지만 돕기로 했다. 아스트리드처럼 완벽한 순서로 프로그래밍 된 건 아니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으니까.
잠시 후, 다른 정비를 마치고 그는 어머니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 위에 도구들을 늘어놓더니, 망설임이나 예고도 없이 드레스를 허리까지 내리고 누웠다. 낮은 히스 소리와 함께 복부 패널이 분리되었고, 그녀는 그것을 옆으로 치워두었다. 이어 가슴 패널도 문처럼 양옆으로 활짝 열리며 내부 부품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의 가벼운 지시에 따라 그는 구강 모듈 배출관에 연결된 컨테이너를 교체하는 걸 도왔다. 장기 보관을 위해 중화·살균된 정액(Semen)이 가득 찬 통이었다. 또한 바이알에 든 합성 타액을 컨테이너에 채우는 것도 도왔다. 그는 그 정액이 누구의 것일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미혼 펨봇들이 대개 꽤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는 사실만 머릿속을 스쳤다. 작업이 끝나자 그는 가슴 패널을 닫고 복부 패널을 끼워 넣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이음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맙다, 아들아." 그녀가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여전히 드레스가 내려가 가슴이 드러난 상태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으로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추출한 컨테이너는 옷장에 있는 전용 세척기에 넣었다.) 그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바라보며, 그녀가 정말로 '장치'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인격을 가졌지만 매혹적인 여성의 형태를 한 기계. 만약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걸 정말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기술적으로는 로봇인 그녀와 근친상간이라는 말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이 몸은 내 어머니가 아니다. 이 기계와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장애물은 오직 심리적인 것뿐이다.
아스트리드의 부품을 처음 봤을 때 어머니가 보였던 반응이 떠올랐다. 그때는 훨씬 정숙했는데.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바꾼 걸까? 시간? 노출에 관대해진 사회 분위기? 아니면 아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알 건 다 안다는 이해? 그것도 아니면 프로그래밍 때문일까? 만약 프로그래밍 때문이라면, 그녀가 세상을 보고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이 얼마나 더 많이 바뀌어버린 걸까? 이런 생각들에 휩싸여 그는 침실을 나왔다.
그날 이후로 그는 집을 찾는 횟수를 줄였다. 어머니와 멀어진 건 아니었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나중에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해보고 나서야, 그는 당시 어머니의 인격이 프로그래밍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유지 보수 모드'였다! 인디케이터의 노란 불빛을 봤으면서도, 이 '전문가'라는 놈이 그 당연한 걸 놓치다니. 유지 보수 모드가 펨봇의 인지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업 시간에 배웠지 않은가. 그녀가 그렇게 행동한 건 당연했다. 침실에서의 모든 일은 그 모드로 설명이 가능했다. 처음에 도움을 요청한 것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프로그래밍이 그녀를 그렇게 하도록 부추겼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로봇 개조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프로그래밍이 그녀의 삶을 편하게 해 줄 거라며 기뻐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프로그래밍이, 몸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평소 성품에 반하는 행동을 그토록 쉽게 시킬 수 있다는 걸 직접 목격한 건 큰 충격이었다.
그녀의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어머니다. 다만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뿐. 그것이 기술이 선사한 유용하고 멋진 삶의 대가였다.
//노트: 이게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클리닉 밖에서 정기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하면서도, 혼자 하긴 불편하고, 니콜라스에게 정서적으로 빡센 상황을 만들 만한 다른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더라고. 그리고 맞아. 이 장면에서 이자벨의 행동은 철저히 프로그래밍된 거야. 아스트리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정비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거지.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니콜라스의 교육 수준이나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그의 학업 성취를 자랑스러워해. 프로그래밍은 이걸 '정비를 도와줄 만한 적절한 기술 수준'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그에게 요청하도록 밀어붙인 거야. 만약 그가 거절했더라도 별일은 없었을 거고, 그녀가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는 수락했지. 그 이후부터, 즉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프로그래밍은 그를 '기술자'로 정의해. 유지보수 모드에서는 수치심이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억제되거든. 나중에 제정신이 들면 자기 행동이 썩 마음에 안 들어서 사과할 생각까지 할지도 모르지만, 이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그녀에게 모든 게 지극히 정상으로 보여. 기술자라는 임시 지위를 가진 그가 그녀의 알몸을 원하는 만큼 보든, 그의 기술 수준에서 허용되는 홈 케어 시스템에 접근하든 아무 상관 없는 거지. 이론적으로는 이 상태에서 그와 섹스를 할 수도 있어(정확히는 그녀가 제안하고 그가 수락하면 하는 식이지). 정비 후에 성기능 모듈을 테스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말이야. 나중에는 혼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느끼겠지만, 유지보수 모드 중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뭐,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가서 다행이지만.//
/추가 노트: 확실히 해두자면, 니콜라스는 로봇 어머니가 정비 모드 중에 섹스를 제안하더라도 절대 응하지 않을 거다. 충격받아서 거절하겠지. 그런 류의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망상일 뿐이다. 이 모든 건 그녀의 비유기적인 본질, 그리고 그녀를 하나의 장치나 기계로 인식하게 된 그의 자각에 관한 문제다.//
//짧은 노트: 정비 모드에서의 섹스와 섹스 모드에서의 섹스는 양쪽 모두에게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꽤 지루할 테고, 여성형 로봇은 이 상태에서 훨씬 더 많은 기술적 파라미터를 감지하는 대신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하니까.//
“결함(오작동)은 없어.” 소녀가 거의 경외심에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더니 이내 더 큰 목소리로 반복했다. “니콜라스, 결함은 전혀 없어! 제대로 작동한다고!”
이노는 감정이 벅차올라 환호성을 질렀다! 니콜라스도 그녀와 함께 기뻐했다. 그들의 프로그램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가상 환경 속의 발레리는 설정 변경에 따라 정확히 계획대로 반응했고, 그 어떤 오작동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완전히 해방된 듯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수녀처럼’ 수줍어하기도 했지만, 이상 행동이나 공격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내부에서 발레리는 이노가 추가로 심어놓은 동기 부여 프로그래밍 레이어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설정을 변경해 나갔다.
//참고: 여기서 발레리의 정신이 로봇화된 여성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만약 발레리가 ‘자유 의지’로 자신의 설정을 만지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로봇화된 인격체에게도 비슷한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수많은 테스트 실패 끝에,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찰나였다. 그런데 결국 해낸 것이다. 이 프로젝트 단계를 완료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주 남짓. 두 대학생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만끽했다.
작업을 시작하고 이노의 부모님을 처음 만난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다. 학기가 끝나고 해가 바뀌어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수업도 없었다. 모든 시간은 프로젝트를 제때 마치는 데 할당되었다. 기계적인 부분은 이미 예정보다 일찍 끝내두었다. 이노의 미래 몸체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재료는 준비되었지만, 소프트웨어 부분이 훨씬 더 까다로웠다. 그들은 처음부터 기준을 아주 높게 잡았다. 로봇의 정신을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면적인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오직 두 사람의 끈질긴 집념과 이노의 천재적인 재능 덕분에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로봇 내부 조정 시스템을 위한 이 소프트웨어 플러그인을 개발한 경험이 자신의 전문가적 성장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이런 난이도의 과제에 도전하는 프로그래머는 드물었고, 성공하는 이는 더더욱 적었다. 이 과정에서 배울 점은 무궁무진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던 그 어떤 과제보다 수준 높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개발이 실패로 끝났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했겠지만, 그들은 결국 성공했다. 첫 성공에 고무된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모든 테스트와 검증을 거듭했다. 몇 번이고 확인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축배를 들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길고 길었던 개발 마라톤 끝에 그들은 마침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지난 3주는 코딩과 디버깅, 그리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결과가 손에 잡힐 듯하다가도 새로운 오류가 터져 나오던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류가 없었다. 그들은 실험실 문을 닫고 밤늦게까지 정처 없이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노의 집보다 니콜라스의 자취방에 더 가까워져 있었고, 대중교통도 대부분 끊긴 시간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니콜라스는 집안이 좀 어지러워 걱정됐지만,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원한다면 나중에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했다. 걷느라 잊고 있었지만 둘 다 배가 몹시 고팠다.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다. 그들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먹을 만한 음식을 뚝딱 만들어냈다. 식사를 마친 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를 즐기던 중, 니콜라스가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이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내심 서운했다. 말도 없이 가버린 걸까? 하지만 현관으로 가보니 이노의 신발이 그대로 있었다. 의아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가 있을 만한 유일한 장소인 자기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이노가 거기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대에 앉아 살짝 수줍은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스치는 가운데 그가 다가가자, 이노가 손을 뻗어 그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진지하고 관능적인, 그 어떤 의문이나 거부도 허용하지 않는 입맞춤이었다. 물론 거부할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지만.
그녀는 뜨겁고 정열적이었다. 이노는 재빨리 그의 옷을 벗기고는 주도적으로 그를 이끌었다. 니콜라스도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능숙함은 차원이 달랐다. 이노는 그에게 다양한 체위를 시도하게 했고, 자신의 몸과 기술을 마음껏 탐닉하도록 유도했다. 전부터 그녀의 몸에 대해 상상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 경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노는 완벽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매끄럽고 기분 좋은 피부, 그리고 그가 애무할 때마다 달콤한 신음을 내뱉게 만드는 핑크빛 유두가 달린 탄력 넘치는 가슴까지. 그녀는 침묵하지 않았다. 목소리에 열정을 담아 쏟아냈고, 그가 잘하고 있을 때마다 확실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니콜라스가 처음으로 한계에 다다라 성기를 빼려 하자, 그녀가 그를 꽉 붙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안에다 해줘.”
그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녀는 분명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노는 놀라울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니콜라스도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그녀와 상대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도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니콜라스가 스캔 작업 때부터 내심 기대해왔던 부분으로 넘어갔다. 타고난 재능인지, 아니면 여기서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훈련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펠라치오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일이 끝난 뒤, 그녀는 입술과 그의 성기에 묻은 마지막 정액 한 방울까지 핥아내고는 그의 곁에 누웠다. 침대 시트는 온통 그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임신할지도 몰라.” 곁에 누운 니콜라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마 아닐걸.” 이노가 대답했다. “이제 와서 별 상관은 없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어.”
그렇게 나란히 누워, 니콜라스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봇화될 예정인 모든 여학생과 외부 조수들은 프로젝트 기간 내내 강력한 피임약을 복용하도록 지시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약은 너무 독해서, 4개월 반 동안 복용하고 나면 설령 이노가 로봇화를 포기하고 다른 학과로 전과해 약을 끊더라도, 심각한 치료 없이는 미래에 아이를 가질 확률이 희박해질 정도였다. 물론 약을 먹지 않거나 덜 해로운 것으로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이노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곧 로봇이 될 텐데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노는 고백했다. 비논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심 꽤 걱정됐다고. 이성의 모든 논리에도 불구하고,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한구석의 원초적인 부분은 불임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노는 니콜라스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중간에 멈출 의미가 없었다. 가끔 섹스 후에 밀려오는 황홀경과 피로가 뒤섞인 묘한 기분 속에서, 그녀는 이런 솔직한 고백을 멈출 수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참고: 로봇화 이후에는 이런 특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육체적 피로가 없으면 감정과 감각의 혼합 방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도적인 행동 수정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로봇화 이후 나타나는 이런 계획되지 않은 행동 변화는 프로그래머들이 여전히 연구 중인 흥미로운 현상이다. 트리거 기준을 재프로그래밍해서 이런 행동 패턴을 미리 식별하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실제로 일부 펨봇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들을 되찾기 위해 나중에 재프로그래밍을 요청하기도 한다.//
잠시 후 그들은 함께 샤워하러 갔다. 욕실로 향하는 길에 니콜라스는 이노 역시 철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몰아붙인 그 정열적인 마라톤은 그녀 자신도 녹초로 만들었다. 피로 때문에 몸을 약간 비틀거렸고, 걸음걸이만 봐도 서로의 쾌락을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했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쾌활했으며,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리는 저속하고 사소한 농담까지 던졌다. 그녀에게선 특별한 행복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남은 밤을 함께 보내고 아침이 밝았지만, 그들은 정오까지 늦잠을 자며 시간을 무시했다. 프로젝트의 이 단계에서는 엄격한 일정도 없었고, 정해진 시간까지 연구소에 나오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늦었다고 비난할 이도 없었다. 니콜라스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이노는 메신저로 쏟아지는 엄마의 불안 섞인 호기심과 사투를 벌였다. 아야코는 이노가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 완벽하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 했고, 이노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급기야 이노는 언니인 리나에게 전화해 엄마를 좀 진정시켜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니콜라스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이노의 가족을 몇 번 만나보며 확실히 깨달은 건, 그녀의 어머니가 한 번 정한 길에서 쉽게 물러날 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결국 15분인가 20분쯤 지나자, 이노는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답장을 보냈고, 의외로 엄마는 만족해했다. “니콜라스랑 잤고, 밤새 같이 있었어”라는 메시지에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니”라는 답장이 돌아오자 당황해하는 이노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할 법한 비난이나 잔소리는 전혀 없었다.
천성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이노였지만, 가끔 이런 예상치 못한 행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당혹스러운 표정은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날 밤 이후, 니콜라스는 다가올 이노의 로봇화에 대해 생각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그녀의 몸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기계 몸체가 그만큼의 만족감을 줄 수 없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녀를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로봇으로서 그녀가 누릴 엄청난 이점들은 마땅히 그녀가 누려야 할 보상이었으니까. 다만 그는 그녀의 미래 몸체를 이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옵션을 뒤져봐도 더 나은 대안은 없었다. 이미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재료와 기술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그보다 높은 품질의 ‘엘리트’ 부품들은 학부 스폰서들의 파격적인 지원을 고려하더라도 학생 졸업 프로젝트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금속과 실리콘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가 그 매력을 잃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사실 부모님과의 첫 만남 이후부터 니콜라스는 이노를 단순한 동료나 친구, 프로젝트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수업 외 시간에도 그녀에게 더 많은 공을 들였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커서 평범한 연인 관계로 발전할 여유가 없었다. 이노가 그의 자취방에 몇 번 놀러 오기도 했고, 영화도 보고 키스도 했지만 그 이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매달리느라 쌓인 정신적 피로와 시간 부족 탓이었다. 미완성된 개발의 짐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특히 이노가 그랬다. 그녀는 이 플러그인을 간절히 원했다.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까 봐 매일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니콜라스 역시 그녀를 지지하며 못지않게 노력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들은 프로젝트의 모든 측면을 샅샅이 검토하며 완벽을 기했다. 결과는 완벽했다. 시뮬레이션 속 발레리의 모습은 이노의 행동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물론 기억까지 복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이노가 놀라울 정도로 자신과 비슷하게 설정해두었다. 프로그래밍 전체를 훑어보며, 발레리는 이노가 로봇화 이후 되고 싶어 하는 모습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품질 관리 차원을 넘어, 아주 세심하게 이 과정을 지켜보았다.
발레리와 작업할 때마다 니콜라스는 이 개발의 깊이에 감탄했다. 그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많은 복사본이 존재하긴 하지만 어쨌든 완전한 인공 인격체였다. 현재 다른 인공 인격체를 만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과연 새로 만들 수 있긴 할까?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니콜라스가 아는 한, 발레리는 디지털화된 인격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물리적인 몸 대신 가상 환경—컴퓨터 속에 구현된 건물, 풍경, 그리고 훨씬 원시적인 ‘NPC’ 봇들로 둘러싸인 작은 세상—에 적응하도록 특별히 설계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녀의 정신 작용은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결된 추가 소프트웨어에 의해 끊임없이 분석되고 있었다. 그 점을 제외하면 그녀는 곧 이노의 인격이 될 소프트웨어 시스템과 동일했다. 그는 수많은 실제 인격의 백업 데이터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기술 기업들이 새로운 인공 인격체를 만들 도구를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언젠가 그것이 허용되는 날이 올까? 세상이 바뀔까? 로봇 가족이 유기적인 자손을 낳는 대신 아이를 위한 인격을 주문하고 몸체를 사주는 세상이 온다면? 아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접고 현실로 돌아오면, 디지털화된 인격도 발레리처럼 시뮬레이션에 로드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좀 더 단순화된 형태는 최근 몇 년 사이 점점 더 자주 쓰이고 있었다. 로봇 여성은 컴퓨터에 연결해 혼자 또는 그룹으로 시뮬레이션에 일시적으로 접속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치 직접 만난 것처럼 비즈니스 협상을 하거나, 집을 떠나지 않고도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혹은 물리적인 몸으로는 불가능한, 허용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했다. 게임 산업은 이 기술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현재의 VR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MMO 프로젝트 등에 도입했다. 완전한 몰입. 발레리와 달리, 이 상태의 로봇 여성들은 자신이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원할 때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참고: 그들은 발레리 대신 이노를 시뮬레이션에 로드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도 했다. 이노는 하드웨어 없이 순수 소프트웨어 상태로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지만,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전문가의 통제 없는 그런 행위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필요한 프로그램이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불법 복제판을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검토를 마친 그들은 마감 기한 전에 프로젝트를 지도 교수에게 제출했다. 맥킨리 교수는 그들과 함께 튜닝 플러그인이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축하를 건넸다. 대단한 성과였다. 교수는 프로젝트 완료 후 결함이 발견되지 않으면 공식 테스트에 제출하자고 제안했다. 공용 플러그인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노는 당연히 찬성했다. 플러그인을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 로봇에게 적용 가능한 범용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코드가 수많은 다른 여성들의 감각을 제어하게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이노는 짜릿함을 느꼈다.
또한 저자로서 판매 수익을 배당받게 된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액수는 적겠지만 그들의 이력서에 남을 첫 전문적인 수입이 될 터였다.
//참고: 그들이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제출한 건 아니었다. 표준적인 솔루션만 사용해 대충 빨리 끝낸 팀들과 경쟁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학생들은 교수의 높은 평가 외에도 실질적인 조언이나 추가 개선 사항에 대한 권고를 기대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건 넘쳐나는 자유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간을 오로지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그들은 걷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갔다. 프로젝트 시작 전처럼 평범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프로젝트 때문에 희생했던 개인적인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노가 한동안 다가올 시술에 대해 언급하는 걸 피했기에, 니콜라스 역시 로봇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즐겼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이전에는 제한했던 모든 것들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더 이상 몸매나 장기적인 후유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노는 거의 니콜라스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집보다 그의 집에서 보내는 밤이 더 많아졌다. //여기에 내용을 더 추가할까?//
두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다음 날 배송 시간을 알리는 지도 교수의 메시지와 함께 끝이 났다. 휴식은 잊혔다. 저녁 내내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고, 아침이 되자마자 그들은 실험실로 달려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바심과 호기심 앞에서는 ‘이르다’는 말은 무색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지게차가 커다란 상자 몇 개를 문 앞으로 실어 왔다. 목록과 대조해보니 빠진 건 없었다. 내용물은 직접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배송 기사를 붙잡아둘 이유는 없었기에 송장에 서명하고 그를 보냈다.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더 작은 상자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상자에는 ‘이노 베텔용’이라는 글귀와 함께 개별 부품들이 들어 있었고, 다른 상자에는 일반적인 부품들이 담겨 있었다. 포장 상태도 제각각이었다. 내부 부품용 무미건조한 흰색과 회색 상자들은, 이노의 눈과 귀 같은 화려하게 장식된 외부 부품 상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외부 LED 인디케이터와 디스플레이가 담긴 상자에는 그 부품들로 치장한 유명 모델들의 포즈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이노가 느꼈을 감정을 니콜라스가 다 헤아리기는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기대감이 가장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가 로봇 몸체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아주 열성적인 건 아니었지만, 프로그래밍 가능한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기계적, 전자적 부품들로 구성되어야 했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건 그녀의 미래 몸체였다! 그녀의 부품들이었다!
갑자기 이노가 외쳤다.
“니콜라스, 이거 좀 이상해! 오른쪽 팔이 두 개야!”
이노의 머리 부품 상자를 뜯던 니콜라스가 그녀에게 달려갔다. 확인해보니 라벨뿐만 아니라 상자 안에도 똑같이 생긴 오른쪽 팔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당황한 그들이 더 찾아보니, 곧바로 왼쪽 팔이 든 같은 크기의 세 번째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하네.” 니콜라스가 말했다. “송장에는 없었는데.”
그들이 송장 사본을 더 꼼꼼히 살피자,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추신이 발견되었다. 서류에 따르면 그들에게 배송된 것은 ‘왼쪽 팔, A파트 조립 완료. 모델 MA-03 헤비 메탈. 색상: 메탈릭 블루 메쉬 텍스처. 규격: 고객 이노 베텔 전용 개별 사이즈’ 한 개와, ‘오른쪽 팔, A파트 조립 완료. 예비 부품 포함. 모델 MA-03 헤비 메탈...’ 이하 동일한 구성 한 세트였다.
“그럼 둘 중 하나가 예비 부품이라는 거야?” 이노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어떤 게?”
그들은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두 팔은 똑같았다. 상자를 샅샅이 뒤지던 중, 밑바닥에서 드디어 차이를 발견했다. 한 상자에는 품질 관리 부서의 검인 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다른 상자의 도장 칸은 비어 있었다.
“그럼 하나는 불량이라는 거야? 어떤 게? 헷갈려.”
“이거야.” 니콜라스가 대답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하나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거지.”
평소 부품의 배치와 순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던 니콜라스의 습관 덕분에, 어떤 팔이 원래 어느 상자에 들어 있었는지 확인하느라 애먹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섞이지 않게 다시 넣어두자.” 이노가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 큰 상자에서 작은 상자들을 계속 꺼내 좁은 실험실의 모든 바닥과 선반을 채워 나갔다. 작업이 끝나고 더 이상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자 그들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갑자기 꽉 찬 방 안을 둘러보며 니콜라스가 입을 뗐다.
“와... 여자 몸이 이렇게 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이노가 분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조립은 어디부터 시작할까?”
“음... 상체 아니면 머리? 어느 쪽이 더 힘들지 감도 안 오네.”
“아래부터 하는 건 어때?” 이노가 킥킥거렸다. “나 없이 혼자 하고 싶은 거야?”
니콜라스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지만, 곧바로 그녀의 농담을 받아쳤다.
“그럴지도. 머리부터 시작할까? 일단 여기 정리부터 좀 하고.”
그들은 내용물을 다 꺼낸 커다란 상자들을 문밖으로 내놓았다. 나중에 연구소 지원팀이 수거해갈 수 있도록 다른 실험실 상자들 옆에 쌓아두었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상자들을 용도별로 분류해 배치하기 시작했다.
로봇 머리의 조립은 ‘두개골’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부터 시작되었다. 프레임의 기초는 강력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부품으로, 인간의 두개골을 절단한 모양을 대략적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기저부와 안면골, 이마 부분이 남아 있었고, 눈과 귀를 위한 소켓, 그리고 이노의 뇌 역할을 할 컴퓨터 부품들을 고정할 내부 부착 지점들이 있었다. 아래턱이나 위턱은 없었는데, 이 금속 구조물과 달리 턱 부분은 개별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뒷머리는 두껍고 튼튼한 금속 재질의 여러 세그먼트로 구성되어 이노의 두개골 모양을 정확히 재현했다. 이렇게 세그먼트로 나뉘어 있어, 나중에 머리 전체를 열지 않고도 전자 뇌의 각 부분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부품을 조립하는 건 시기상조였기에 상자 안에 그대로 두었다.
먼저 그들은 치아, 입천장, 그리고 후두의 일부가 포함된 위턱을 프레임에 나사로 고정했다. 그러자 전체적인 모습이 묘하게 기괴해졌다. 다음 단계는 두개골 내부, 입천장과 후두 위쪽에 복잡한 스피커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노는 인간의 발성 기관과 거의 차이가 없는 소리를 내고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가형 모델은 스피커가 한두 개뿐이었고, 초기 모델들은 심지어 구강 내부에 스피커가 위치해 구강 성교 모듈을 장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리면 앞니 뒤로 스피커가 훤히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는 훨씬 진보된 음성 시스템을 갖게 될 것이며, 이는 위턱의 외피 뒤에 완벽하게 숨겨져 전혀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어 아래턱과 그 구동 장치를 고정하자 ‘두개골’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입 안쪽도 혀가 없다는 점만 빼면 거의 정상적으로 보였다. 혀는 후두의 연장선 및 인공 타액 공급 시스템과 함께 구강 성교 모듈의 일부였는데, 그들은 아직 그 상자를 뜯지 않았다. 대신 두개골 내부에서 구강 벽까지, ‘타액선’이 위치할 곳에 투명한 튜브들을 고정해두었고, 그 끝은 자유롭게 늘어져 있었다.
로봇화에서 혀는 상당히 특별한 문제다. 이노의 혀는 원래의 혀와 똑같이 제작되었기에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여성 로봇에게 혀의 유일한 기능은 언어와 섹스뿐이었기에, 이 부위의 개조 옵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다. 니콜라스는 온라인에서 ‘서큐버스 텅(Succubus Tongue)’ 모델의 시연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입 밖으로 거의 50cm나 뻗어 나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움직이며, 윤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어 물건을 휘감아 입안으로 끌어당기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노는 아직 그런 실험적인 단계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참고: 그런데 로봇의 코는 기능이 없나? 모양뿐인가? 아마 머리 내부에 아주 작은 ‘풀무’ 같은 장치가 있어서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해 공기를 조금씩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코안에 이를 위한 수용체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내 생각엔 그런 장치가 있을 것 같다.//
다음 단계는 이노의 새 눈을 소켓에 끼워 넣는 것이었다. 바로 그 논란의 ‘화이트 스톰’. 니콜라스는 그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노 역시 완전히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고집 때문에 당장 마음을 돌리지는 않았다. 일단 인격이 소프트웨어가 되면 그때 직접 써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 후 그들은 이노의 안면 플레이트를 부착하기 위한 베이스를 프레임에 고정하여 ‘두개골’에 좀 더 수긍할 만한 형태를 부여하고 눈을 내부에 고정했다. 이제 가장 흥미로운 순서였다.
이노는 자신의 미래 얼굴이 담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고는 꼼꼼하게 살피고 만져보기 시작했다. 코, 피부, 입술, 눈꺼풀까지 모든 곳을 테스트했다. 이노는 킥킥거리며 자신의 얼굴 복제품에 입을 맞추는 장난을 치더니, 재미있다는 듯 입술과 뺨을 핥아 맛을 보았다. 그러고는 얼른 냅킨으로 흔적을 닦아냈다.
“최고야!”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말했다. “맛도 내가 주문한 그대로야. 너도 한번 해볼래?”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진심이야?”
“왜 안 돼? 내 맛이 어떤지 알잖아, 비교해봐.”
니콜라스는 그녀의 손에서 동료의 얼굴을 완벽하게 복사한 마스크 같은 물건을 건네받았다. 실리콘 재질의 ‘로보스킨(RoboSkin)’은 본체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아 차갑고 번들거렸다. 묘한 쑥스러움을 느끼며 그는 얼굴을 만져보았다. 실리콘은 밀도가 높았고, 외피와 메탈-플라스틱 베이스 사이에 위치한 합성 안면 근육층 때문에 고정된 상태라 탄력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표면은 매끄럽고 촉감이 꽤 좋았다. 모공까지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피부 결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던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인공물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만져본 뒤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 보았다. 차가운 것에 입을 맞추는 건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기대와 욕망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노를 의식하며, 그는 그녀가 했던 것처럼 안면 플레이트의 입술과 실리콘 피부를 핥아보았다. 맛은 정말 괜찮았다. 특히 입술 쪽이 그랬다. 로보스킨에 특수 화합물을 침투시켜 만든 결과였다. 전에도 주문 사양을 본 적이 있어 머릿속에 그 이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는 안면 플레이트를 이노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즉시 그것을 깨끗이 닦고는 그의 판결을 기다리듯 빤히 쳐다보았다. 니콜라스는 그 감각을 곱씹어보았다. 왜 안면 플레이트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길 기대했을까? 여성 로봇을 접해본 경험은 적었지만, 뭔가 다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그는 두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열기와 안면 근육의 활성화 상태.
“꽤 괜찮네. 맛도 있고. 근데 좀 낯설고 차가워.” 그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전원이랑 제어 장치를 연결하고 나서 다시 해봐야겠어.”
이노는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더 높은 점수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미래 입술에서 나는 그 멋진 맛과 안면 플레이트가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미래의 얼굴에 새겨진 섬세한 영구 메이크업도 환상적이었다.
취향에 대해 짧은 논쟁을 벌인 뒤, 그들은 안면 플레이트를 옆으로 치워두고 같은 상자에서 금속 부품 세트를 꺼냈다. 그것들은 두개골 내부에서 조여야 하는 기계식 잠금장치와 고정 핀들이었다. 그 작업을 마친 뒤에야 안면 플레이트를 제자리에 고정할 수 있었다. 제대로 고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건 단순한 덮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술과 구강의 접합부는 액체가 내부 메커니즘으로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밀폐되어야 했다. 눈 부위도 마찬가지였다. 가습용 액체가 내부 공동으로 흘러 들어가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 점을 떠올린 니콜라스는 적절한 상자를 찾아 ‘두개골’ 내부에 작은 병을 설치하고 거기서 나온 튜브들을 눈에 연결했다. 로봇의 눈은 구형 몸체 안에 렌즈 시스템이 달린 비디오카메라일 뿐만 아니라, 유도 메커니즘, 가습 디스펜서 등 여러 중요한 부품이 결합된 장치였기 때문이다. 로봇 시각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이노는 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디스펜서가 그런 식으로 액체를 흘려보내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봇 프로그래밍에서도 눈물은 가능한 반응과 행동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얼굴 조립을 마친 니콜라스는 즉시 표정 컨트롤러를 연결하고 외부 전원을 넣어 컴퓨터로 제어해보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다. 몇 번의 조정을 거치자, 뒷머리도 없는 휑한 금속 두개골에 고정된 이노의 얼굴이 따뜻해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상자 속에 무표정하게 누워 있을 때보다 훨씬 이노다운 표정이었다.
수치들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를 기다린 뒤, 니콜라스는 이노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녀의 미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안면 플레이트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기에 그저 순수한 입맞춤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따뜻하고 정말 기분 좋은 촉감이었다. 니콜라스는 멈추지 않고 입술을 핥아 그 달콤한 맛을 음미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뺨을 쓸어내리며 이노의 살아있는 살점을 대신할 이 소재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그의 생각에 이노는 더 좋은 모델을 가질 자격이 충분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옆으로 물러나 동료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대박!” 기계에 입 맞추기를 멈춘 그녀가 외쳤다. “빨리 이걸 내 몸의 일부로 느끼고 싶어. 그나저나 네 소감은 아직 안 들었는데?”
“음,”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쁘지 않아. 여전히 실리콘 느낌이긴 하지만, 젠장, 이 실리콘 마음에 들어. 지금도 여기서 네가 느껴져. 진짜 네 입술에 키스한 것 같은 기분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어.”
“비교가 더 필요할 것 같아. 나한테 키스하고, 그다음에 다시 저거에 해봐.”
그녀는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로봇 얼굴의 표정을 흉내 내며 그대로 멈췄다. 그런 제안을 받은 니콜라스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고, 그는 기꺼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완벽한 복제품이네.” 그가 결론을 내렸다. “맛이랑 소재의 느낌만 빼면 다 똑같아. 모양, 질감, 전부 다 네 거야. 맛도 아주 좋아, 선택 잘했네.”
“소재는 어때?”
“우리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소재야. 나쁘지 않아.”
“그냥 나쁘지 않은 정도야? 난 이거 좋은데. 이 정도의 인공적인 느낌이 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한 뒤, 그들은 컴퓨터에서 안면 플레이트 제어 장치를 분리하고 ‘두개골’ 내부에 또 다른 컴퓨터 부품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컴퓨터, 즉 그녀의 뇌 기능을 수행할 장치였다. 그것은 단순한 기기가 아니었다. 모듈식 설계이면서도 극도로 조밀하고 얇았다. 인간의 머리통만 한 부피 안에 고성능 전자 복합체를 집어넣을 방법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수작업으로는 조립이 불가능했기에, 니콜라스는 천장에 고정된 여러 개의 로봇 팔 시스템을 이용했다.
워크스테이션에서 제어 프로그램을 실행한 그는 단계별로 조립을 시작했다. 프로세서와 부품들이 납땜 된 작은 보드들, 냉각 시스템의 튜브와 판들... 이 모든 것들이 먼저 테스트 스탠드의 커넥터에 꽂혀 점검을 받았다. 또 다른 초록색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니콜라스는 부품을 제자리에 장착하라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완성된 결과를 보고 싶은 이노의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실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퇴근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멈춰야만 했다. 연구소를 나선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걱정과 고된 작업에 지친 그들은 오로지 휴식만을 생각했다.
그 후 이틀 동안 학생들은 이노의 메인 컴퓨터 조립을 마쳤다. 마지막 단계는 본체의 밀봉이었다. 전자 뇌에는 2회로 액체 냉각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1차 열 제거는 밀봉된 히트 파이프와 냉각수가 펌핑되는 중공판 형태의 라디에이터 시스템이 담당했다. 본체 전체의 부피가 2차 회로 역할을 했으며, 여기에도 냉각수가 채워져 두 번째 펌프에 의해 재순환되었다. 두 펌프는 나중에 이노의 가슴 안쪽, 대략 폐와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들은 임시 회로로 펌프를 연결해 컴퓨터를 시운전해 보았고, 정상 작동을 확인했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모든 로봇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의 마감 기한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셋째 날에는 이노의 뇌 스캔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 결과로 그녀의 정신에 대한 ‘디지털 각인(Digital Impression)’이 생성될 것이었다.
//이 단어를 적절한 의미와 느낌을 살려 번역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전날 늦은 저녁, 이노는 작업을 멈췄다. 미래의 전자 뇌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만족한 그녀는, 그저 상자들을 열어 부품들을 살펴보고, 만져보고, 그 감각을 기억에 새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 외피 세그먼트가 든 상자를 열어 길고 금발인 합성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쓸어 넘기고 만져보았다. 니콜라스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삶이 끝날 테니까.
그 후 한동안 그녀는 연구소 메인프레임의 데이터에 불과한, 다소 불확실한 상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데이터들은 종합적으로 분석되고 조사될 것이다. 인격의 모든 측면, 모든 성격적 특징, 습관, 반사 신경, 감정적 트리거 등 ‘이노 베텔’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추출될 것이다. 이렇게 얻은 정보는 로봇의 사고를 담당하는 가장 복잡한 알고리즘 세트를 설정하는 기초가 되어 ‘디지털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 컴퓨터 처리에 적합한 형태로 재구성된 기억 데이터가 결합되면, 비로소 디지털화된 이노 베텔이 탄생한다. 작동 가능하고, 기능적이며, 원본과 너무나 똑같아서 복사본이 아닌 원본의 연장선으로 간주되는 존재... 하지만 로봇의 몸으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완전히 적합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먼저 기초 프로그래밍을 거치고, 그녀가 직접 선택한 일련의 추가 개조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 모든 경로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업데이트되고 개선된 모습으로, 새로운 존재로서 삶에 복귀할 수 있다. 로봇으로서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은 드문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진행된다. 뇌 스캔과 디지털 인격 재구성이 실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분명히 일어난다. 백만 건당 3~4건 정도지만 위험은 존재했다. 이노가 로봇이 되지 못한 채 그냥 죽어버릴 위험. 스캔 데이터에서 인격을 복구하지 못하거나 데이터가 손상될 위험. 조사 결과, 일부 사례는 스캔 장비의 오작동이나 공정에 사용된 화학 물질의 순도 문제로 밝혀졌지만, 일부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컴퓨터가 디지털 인격 재구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아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사례가 지금까지 네 건 있었다. 이 네 명의 인격은 국가 백업 데이터베이스에 보존되어 있다. 수백, 수천 번의 점검과 테스트를 거쳤고, 수백 번이나 기능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어떻게 재프로그래밍을 해도, 로봇 몸체에 로드하거나 시뮬레이션에 넣으면 그들은 그저 살아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백만 분의 1.5 확률로 일어나는 끔찍한 운명. 무시해도 좋을 만큼 낮은 확률이었지만, 이노를 공포에 떨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그녀가 선택한 길에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예정대로 어느 봄날 아침, 이노와 니콜라스는 도시 제1로봇화 센터[이름?]에 도착했다. 뇌 스캔은 연구소가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없는 유일한 절차였다. 여기서 니콜라스는 참관인 역할을 맡았지만, 이노는 이 과정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이노의 부모님이 그녀를 센터까지 태워다 주었고, 어머니는 접수실에서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직장으로 떠났다. 그날따라 그의 부재가 허용되지 않는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노의 언니도 직장에 휴가를 내고 그곳에 왔다. 두 여성은 매우 걱정하며 소녀를 좀처럼 준비실로 보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있어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었다. 미래의 전문가인 니콜라스만이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부모와 친척들은 스캔이 성공했는지 여부만 전해 듣게 될 것이다. 이후의 과정은 그렇게 빠르지 않을 것이기에, 이노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잠시 동안 동료들은 떨어져 있었고, 이어서 니콜라스는 수술대 위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이노를 다시 보았다. 수술대 위에는 사이버 외과의의 복잡한 매니퓰레이터(manipulator)들이 매달려 있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 뷰를 동시에 보여주는 거대한 화면을 통해, 로봇 간호사가 소녀에게 마취제를 주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다소 불편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오직 로봇과 장비들만 투입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것은 니콜라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숨겨진 공포를 자극했을 것이다. 로봇들이 또 다른 인간을 자신들과 닮은 존재로 바꾸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은 그녀가 새로운 형태에서 행복하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계속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이 분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치고는 멍청한 생각이었다.
센터의 수석 외과의 중 한 명이 그의 옆에 앉았지만, 아무런 상호작용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수술대 위에서 사이버 외과의 기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그녀 역시 로봇이었다. 몇 분 후, 이노의 의식이 안전하게 차단되었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니콜라스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빨랐다. 결점 없고 무자비한 정밀함으로, 다양한 매니퓰레이터를 사용하여 외과의는 아주 빠르게 이노의 머리를 열고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잘라낸 뒤 뇌를 분리해 꺼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뇌의 모든 혈관이 가소제(plasticizing composition)가 흐르는 튜브에 연결되었다. 뇌는 즉시 같은 액체가 담긴 수조에 담겼다. 동시에 사이버 외과의는 이노의 몸을 장기별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니콜라스는 이 부분을 볼 필요가 없었다. 이노의 뇌가 담긴 수조가 다른 방으로 옮겨지면서 이 악몽 같은 광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가 알고 있는 가소제의 작용에 따르면, 이 물질은 세포를 감싸 고정하며 작용 당시의 가장 '살아있는' 상태로 응고시켜 부패로부터 보호하지만, 동시에 세포 내의 모든 과정을 정지시킨다. 냉동 보존과 비슷하지만 파괴력이 덜하고 완전히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이다. 완전한 가소화에는 약 5분이 소요되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인간으로서의 이노는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몸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오직 그녀의 정신만이 어떤 의미에서 로봇으로서의 미래를 위한 토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전 단계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캔을 위한 최종 준비였다. 먼저 가소화된 뇌를 강력한 토모그래프(tomograph)에 넣고 일반 스캔을 진행했다. 니콜라스는 그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매우 정밀하고 치명적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만약 이노의 뇌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이 과정 후에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차조차 세부 사항이 부족했기에, 얻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해롭지 않은 최적의 경로를 따라... 뇌를 더 얇고 작은 조각으로 잘라냈고, 각 조각은 반복적으로 스캔되었다. 절차 과정에서 가소화된 세포들이 완전히 쓸모없는 덩어리로 분해되기 전까지, 추출 가능한 데이터가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은 약 2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동안 강력한 변압기가 작동하며 내는 토모그래피 장비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아주 두꺼운 벽을 통해서도 들려왔다. 그 후 컴퓨터 시스템이 스캔 결과를 하나로 통합하는 동안 약 30분 정도의 단순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이미지 결합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인프레션(impression)이 조립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니콜라스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단계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디지털 인프레션은 그의 참여 없이 연구소의 메인프레임으로 전송될 것이다. 백업은 여기 센터에 남고 복사본은 국가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될 터였다.
기다림과 무거운 광경에 지친 니콜라스는 접객실로 가서 아야코와 리나 베텔에게 직원들로부터 이미 들었을 소식을 전했다. 이노의 어머니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에 행운이 있기를, 그리고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여성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통제하며 딸의 동료가 모든 일을 잘 해낼 것이라고 믿으려 애쓰고 있었다. 언니 역시 격려와 위협이 섞인 듯한 말을 건넸다. 정확한 단어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후 니콜라스는 휴식을 취하러 집으로 향했다.
내일 그는 몸체 조립을 계속할 것이고, 모레쯤이면 메인프레임의 캐스트 분석 결과가 도착해 이노의 디지털화된 정신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그 후 며칠 동안 니콜라스는 조립을 먼저 끝내야 할지, 아니면 이노의 디지털 인격(personality)을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이 일 저 일을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그는 이노의 머리 조립을 마쳤다. 먼저 보조 컨트롤러와 메인 컴퓨터를 위한 작은 전력 조절기를 배치했다. 두개골 기저부에는 네트워크 스위치가 자리 잡았고, 여기에 데이터 버스들이 연결될 예정이었다. 주 버스는 척추에, 예비 버스는 목 앞쪽으로 지나간다. 인간과 달리 로봇은 시스템 중복성(redundancy)이 높다. 예를 들어, 이노의 가슴 안쪽에는 예비 메모리 블록이 있어 그녀가 배우는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복사될 것이다. 만약 어떤 이유로 메인 컴퓨터가 손상되더라도, 이 정보를 통해 데이터 손실 없이 혹은 거의 없이 그녀를 복구할 수 있다.
이것은 마지막 외부 백업으로 되돌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외부 백업은 백업 생성 이후에 발생한 기억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 인생의 며칠이 될 수도 있는데, 비록 프로그래밍이 로봇으로 하여금 과도한 성찰이나 정신적 일탈을 피하며 그러한 데이터 손실을 비교적 쉽게 견디게 해준다 하더라도 끔찍한 일이다.
전자 부품들 다음으로, 그는 이노가 평범한 귀 대신 갖고 싶어 했던 반짝이는 크롬 마이크 모듈을 연결했다. 그것들은 머리 옆면에 달린 금속 상자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왜 이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크롬이 그녀의 새로운, 약간 광택이 나는 피부와 잘 어울린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왜 평범한 귀가 아닐까? 그는 그녀의 귀를 좋아했다. 침대에서 그가 귀를 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하면 그녀는 아주 흥미롭게 반응하곤 했다. 이런 물건들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참고: 그리고 그는 듣지 못했다. 스캔 전날 밤, 이노가 마지막으로 귀걸이를 빼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미안해 얘들아, 우린 이제 같이 갈 수 없게 됐어."//
마지막 단계는 두개골의 후두부 세그먼트를 장착하고 그 위에 머리카락 섹션을 부착하는 것이었다. 머리 오른쪽, 마이크 모듈 위쪽에는 메인 컴퓨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커다란 개방형 파편 하나만이 남았다. 그 후 이노의 머리는 거의 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목에 연결되어 특수 스탠드에 고정된 채 테이블 위에 서 있었고, 새로운 하얀 눈으로 어딘지 모를 곳을 바라보며 입을 굳게 다문 채 살짝 미소 짓는 듯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니콜라스는 로봇의 메인 컴퓨터를 자신이 작업하는 일반 컴퓨터에 연결하고 안면부의 표정을 변경했다. 이제 이노의 미소는 더 넓고 기분 좋게 변했다. 이 모습 옆에서 작업하는 것이 더 나았다.
다음 단계로 그는 프로그램 부분을 다루기로 했다. 거의 2주 동안 그는 소녀의 정신을 디지털로 스캔한 결과물을 연구했고, 이전에 작성된 프로그래밍 템플릿에 거의 미세한 수정만을 가했다. 그는 이노의 기술과 재능 덕분에 이 부분의 작업이 얼마나 잘 완료되었는지 보고 놀랐다. 거의 모든 것이 사용하기에 완벽하게 적합했으며, 최소한의 조정만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조정이라 해도 정신은 매우 복잡한 것이어서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그의 생각에 그리 매혹적인 작업은 아니었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때때로 그는 특정 변경 사항을 제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원래의 이노를 더 많이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로봇이 된 자신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자 하는 그녀의 권리를 인정했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그는 사실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다음 단계의 작업을 미루고 있었다. 지금 이노는 여전히 데이터일 뿐이었다. 디지털로 표현된, 정적인 그녀의 절대적인 복사본. 순수한 형태의 인프레션은 그녀의 인격을 연구하는 데만 사용될 수 있을 뿐, 기능할 수는 없었다.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소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니콜라스는 버튼을 누르기 전 아마 5분 동안이나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이노를 되찾고 싶었지만, 다음 단계들이 여전히 그를 조금 괴롭혔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그는 커서로 "디지털 인격 합성 시작(Start Digital Personality Synthesis)"을 찔렀고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 시간, 그녀를 구성하는 인프레션인 이노의 정신 이미지는 로봇의 사고 방식을 형성하는 복잡한 알고리즘들과 하나로 융합되었다. 단순한 데이터였던 것이 이노가 의식하기를 꿈꿨던 가장 정교한 소프트웨어 복합체로 변했다.
그것은 일종의 운영 체제였으며, 그 위에는 컴퓨터 프로세서가 실행하기에 적합한 사고 블록, 논리 및 감정 처리, 디지털 감각 정보 수신, 그리고 필요한 모든 활동을 위한 명령 생성 알고리즘들이 구축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이노의 기억은 메인프레임의 거대한 연산 능력 없이도 로봇의 정신이 실시간으로 작업할 수 있는 형식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기억이 나타내는 매우 특수한 혼합물에서 오디오 및 비디오 데이터, 텍스트, 사물에 대한 묘사, 다양한 상황에 대한 행동 모델, 기술 및 습관의 서브루틴, 그녀가 아는 사람들을 인식하기 위한 템플릿 및 수백 개의 다른 구성 요소로 변환되었다. 인간의 기억은 로봇의 기억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몸에서 기능하도록 조정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 단계가 끝나자마자 니콜라스는 다른 버튼을 눌러 지난 며칠 동안 설정해둔 기본 프로그래밍을 적용했다. 연구소 메인프레임에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업 끝에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이노는 정당하게 로봇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 재프로그래밍된 이노는 음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초콜릿이나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임신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불임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일반적인 의식 외에도 추가적인 의식 모드들이 있다. 자신의 몸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허용하는 유지보수(maintenance) 모드, 그리고 무한한 체력을 가진 창의적이고 탐욕스러운 연인으로 변하는 섹스 모드. 그리고 원래의 이노를 로봇 이노로 바꾸는 수많은 다른 변화들.
과거에 그의 어머니에게 일어났던 일과 똑같았다.
그는 이노를 좋아했고, 그녀의 일부분이 제거되고 프로그램으로 대체되는 것에 대해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로봇이 되어 그에 따르는 모든 혜택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였다.
혜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연구소의 규정에 따라 기본 프로그래밍 직후에 수료한 교육 과정에 상응하는 기술 및 지식 베이스 패키지가 설치되었다. 이노가 이전 몇 년 동안 무언가를 놓쳤거나 어떤 과목에 별로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제 그녀는 그것을 알고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패키지의 내용을 조금 살펴본 니콜라스는, 여성의 로봇화 전 단계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그들이 배웠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발견했다. 이 중 일부는 기본 세트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술을 개발하고 그들의 학부를 후원한 그 여성의 정신과 매우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로봇 여성은 로봇화를 수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왜 그런지 의아해할 법도 했지만, 그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이노에게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할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다음 단계는 변화를 완료하기 위해 그녀의 맞춤형 프로그래밍 패키지를 적용하는 것이었지만, 니콜라스는 그것을 미루고 나중에 정확성을 더 확인하기로 했다. 그동안 그는 조립 작업으로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
며칠 후, 이전에 완성된 머리를 제외하고 이노의 상체와 하체 조립이 실험실 테이블 위에서 완료되었다. 니콜라스는 프레임에서 시작해 배터리와 컨트롤러, 저장조와 밸브, 튜브와 와이어, 서보와 인공 근육 블록들을 내부에 배치했다. 약간의 떨림과 함께 그는 그녀의 섹스 모듈들을 제자리에 설치했다. 그것들은 모두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시 분리 가능한 작동부와 보조 노드가 있는 '소켓' 부분이다. 가슴을 열지 않고는 오랄 모듈을 빼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놀랍게도 그는 어느 시점에 이노가 사양을 추가하여 질 모듈에 외부 사용용 케이블*이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그녀는 자신의 질을 꺼내서 케이블이 닿는 한 외부에서 계속 사용하고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1.5미터(150cm)면 어떤 비정상적인 재미를 위해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미안해요, 이 디테일을 추가하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외부 부품들을 조립하면서 니콜라스는 가슴 부분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들은 이노가 유기체 몸이었을 때보다 컸지만, 터무니없이 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노의 정확한 사이즈[수치상으로]를 몰랐지만, 새로운 것은 두 단계 정도 더 크다고 생각했다. E컵 대 C컵, 혹은 C+컵 정도일까. 하지만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누드 지향형 로봇이 대개 그렇듯, 그것들은 더 단단하고 팽팽했으며 내부에 일종의 지지 프레임이 들어 있었다. 만졌을 때 프레임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슴의 움직임을 줄이고 형태를 유지해 주었다. 플라스틱 마네킹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살아있는 가슴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니콜라스가 아는 한, 비록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실리콘 임플란트가 들어간 살아있는 가슴과도 달랐다. 이노의 가슴 안에는 실리콘 같은 것이 들어 있었음에도 말이다. 니콜라스는 이것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몰랐다. 첫눈에 그런 가슴은 잘못된(옳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아마도 그것들을 진정으로 적절하게 감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활성화된 이노의 일부가 되었을 때 경험해 보는 것일 터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로봇이 소화나 호흡 같은 인간 신체의 많은 기능을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몸체 내부에 꽤 많은 여유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주요 메커니즘들이 비교적 콤팩트했기에 대부분의 공간은 배터리에 할당되었다. 게다가 배터리는 두 개였다. 하나는 복부에, 두 번째는 가슴에 있었고 각각 고유한 전력 변환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노는 이론적으로 두 조각으로 나뉘었을 때도 제한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상반신만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니콜라스는 결함이 있는 팔을 분해할 시간도 냈다. 즉시는 아니었지만, 그는 팔꿈치 근처 내부에서 손상된 데이터 케이블을 발견했다. 이것이 명령 전달에 오류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손(손바닥) 부분을 따로 점검했을 때 그는 상황이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결함이 손바닥 컨트롤러의 펌웨어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왜 그들에게 추가 팔이 보내졌는지 명확해졌다. 비록 이것을 폐기하지 않고 왜 주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생산이 거의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었기에, 공장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해해서 고치는 것보다 새로 하나 만드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게다가 결함이 2차 손상을 입혔으니 확실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예비 부품은 결코 불필요한 법이 없기에, 니콜라스는 반나절을 들여 이 팔을 고쳤다. 모든 테스트 결과 이제 완전히 사용 가능한 상태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물론, 업무적인 일 외에도 그는 주관적인 지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상상 속에서 그는 그 기계적인 금속 손가락을 가진 이노와 그녀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그렸다. 그것들은 진짜 금속처럼 딱딱하지 않았고, 누르면 약간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미끄럼 방지 코팅이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재료의 질감은 외관과 일치했다. 로봇 소녀가 만지는 느낌은 어떨까? 그녀의 발꿈치와 노출된 관절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미학적으로는 모든 것이 훌륭해 보였지만, 실제로 작동할 때는 어떨까?
마침내 니콜라스가 이노의 머리를 제자리에 놓고 모든 전선을 연결하는 날이 왔다. 그런 다음 그는 내부 잠금 장치를 열고 가슴을 활짝 열어 오랄 섹스 모듈을 설치했다. 가이드가 있는 소켓 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 혀와 후두의 연장선이 있는 작동체를 설치할 차례였다. 참고로 혀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지금까지 안으로 당겨져 있었다. 장착을 마치고 전원을 연결해야만 혀가 미끄러져 나와 입안의 정상적인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노의 몸체는 이미 하나로 조립되어 있었다. 니콜라스는 전선들과 척추 세그먼트들을 연결했다. 척추의 금속 케이스는 메인 데이터 버스와 전원 케이블 트렁크를 보호하고 있었다. 냉각수 재순환 시스템과 열교환기 유닛이 제자리에 설치되었는데, 이것들은 로봇 소녀의 정상 체온을 유지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신체 모든 부위의 외피에는 전기 가열 요소가 내장되어 있었지만, 유체 회로는 구형 모델이나 저가형 모델이 가끔 겪는 신체 표면의 온도 변화를 균일하게 만드는 데 유용했고, 무엇보다 냉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태양 아래서 매우 뜨거워질 수 있는 기계식 팔다리를 가진 이노에게 이것은 특히 중요했다. 과열이 그녀에게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수로 누군가를 만져 화상을 입히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온은 센서 어레이의 마모를 가속화했고, 외피 교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이노의 몸에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니콜라스는 점차 이와 관련하여 "미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버리고 있었다—윤활 시스템이었다. 로봇의 몸에는 엄청난 수의 움직이는 부품이 있다. 그것들 모두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튜브와 미세 펌프들의 복잡한 시스템이었고, 몸체 내부에는 깨끗한 윤활유와 사용된 윤활유를 위한 필터 및 저장조가 있었다. 어떤 경우든 수많은 독립적인 윤활 지점을 두는 것보다 이것이 나았다.
그는 또한 자동 개방 메커니즘이 없는 곳의 인공 근육 블록들을 이미 모두 결합했다. 오직 복부 접근 패널만이 열려 있었다. 참고로 그것 역시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피부를 흉내 낸 외피 조각이 아니다. 거기에는 센서 어레이, 가열 요소, 냉각수 채널이 있다. 아래쪽에는 인공 근육 층이 부착되어 있어 필요한 가동성을 제공하고 만졌을 때 적절한 느낌을 주어, 그 아래의 빈 공간을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정상적인 인간의 몸에는 개폐식 패널이 없고 근육 프레임의 모든 요소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체 운동성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패널 가장자리에는 인공 근육뿐만 아니라 유체 시스템의 튜브들을 연결하고 분리하는 메커니즘도 있었다. 몸 내부에는 전력 및 데이터 전송을 위한 특수 커넥터들도 있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패널이 열린 상태에서는 로봇의 가동성이 크게 감소하여 몸체의 기울기나 굴곡이 제한되었다.
커다란 복부 패널 외에도 이노의 몸에는 지금은 닫혀 있는 몇 개의 작은 패널이 더 있었다. 옆구리, 왼쪽 가슴 아래에는 충전 케이블과 진단 도구를 연결하기 위한 작은 창이 있었다. 목 뒤쪽에는 척추 양옆으로 한 쌍의 고속 데이터 포트가 있었다. 이것들은 이노에게 컴퓨터에 연결하거나 시뮬레이션 등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물론 가슴을 열 수 있었는데, 다른 로봇들처럼 두 개의 덮개 형태로 열렸다. 다만 이노의 몸에는 약간의 특이점이 있었다. 가슴 바로 위쪽에 그녀는 왠지 작은 삼각형 터치스크린을 갖고 싶어 했다. 전원을 켰을 때는 단순히 소녀의 사지 색상과 같은 또 다른 표시등 역할을 할 예정이었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시스템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그 위에 표시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이것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때문에 그 뒤에 있는 일부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 복잡해졌고, 개방형 덮개의 면적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노가 몸에 흥미로운 것을 추가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이제 머리가 제자리에 놓인 이노는 약간 기묘해 보였다. 조립 테이블 위에는 여성의 상체와 머리, 그리고 금속으로 된 전완과 허벅지의 절반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팔다리는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고, 머리와 배는 열려 있었으며 내부에서 다양한 케이블이 뽑혀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동시에 미소 짓고 있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구성을 살펴보며 니콜라스도 미소를 지었다. 기묘하긴 했지만, 그것은 이노가 되고 싶어 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상태에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지금이 그녀의 정신을 프로그래밍하는 최종 단계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실행에 옮겼다. 그런 상태의 그녀의 몸을 보고 있자니 그것이 옳게 느껴졌다. 니콜라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며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 가졌던 의구심들은 증발해 버렸다. 이노는 로봇이 될 것이고, 물론 그녀는 로봇의 삶에 완벽하게 준비된 최고의 자신이 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일어날 모든 변화는 바로 이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인공 신체의 서브시스템 드라이버와 운동 기능의 서브루틴들이 압축 해제되어 설치되었고, 행동 알고리즘과 감정 매트릭스가 수정되었으며, 습관과 반사 신경이 바뀌고 튜닝 인터페이스 플러그인이 통합되었다. 그렇다, 이노는 매우 긴 프로그래밍 목록을 만들었다. 그녀는 다르게 움직이고,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반응할 것이며, 로봇이라는 상태와 모든 측면을 다른 여성들이 로봇화된 후에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로봇이라는 존재의 정상성을 느끼는 것은 이미 기본 프로그래밍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지만, 이노는 분명 자신이 기계와 전자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는 새로운 몸의 인공성을 자각하고 사랑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여주었던 로봇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 보였고, 그것을 고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참고: 여전히 궁금한데, 이노가 자신에게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나요? 지금까지는 다소 추상적으로 쓰고 있어요. 대부분의 변화는 작지만, 그 수가 아주 많습니다.//
니콜라스는 변경 목록을 보았지만,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것이 더 나은 버전의 이노를 만들고 있었다. 여성 로봇을 위한 우수한 하드웨어 구성 요소를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가 목표로 했던 바가 아니었던가? 유일한 차이점은 그녀가 스스로를 프로그램적으로 개선했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또한 그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프로그래밍이 그녀로 하여금 몸을 유지하는 작업을 가장 잘 처리하게 돕고 이런 도덕적 불편함으로 고통받지 않게 해준다는 사실에 그가 정말 그렇게 걱정했던가? 만약 그녀의 벌거벗고 해체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그녀의 제안과 행동을 프로그래밍 탓으로 돌리는 대신 그냥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을 뿐이다. 그리고 나쁜 일이 일어났던가? 그녀를 도운 것이 그를 아프게 했나? 아니면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을 조금 본 것이? 정말로? 걱정할 걸 걱정해야지. 이건 어리석은 짓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것을 여전히 비난받을 일로 여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니콜라스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이노의 프로그래밍이 완료되었다. 그녀의 디지털 인격은 여전히 메인프레임에 있었지만, 첫 번째 테스트 실행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그는 그것을 로봇의 시스템에 기록할 것이다. 어쩌면... 문을 두드리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고, 그는 시계를 보았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
그날 저녁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노에 대해, 그녀가 얼마나 멋진지, 그리고 그녀의 조립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소녀에게 매우 관심이 많았다. 로봇으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질문이 조금 과한 면이 있었지만, 사람으로서 그녀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노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많이 알고 싶어 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니콜라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 적게 이야기했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지나치지 않았고, 이노가 변한 후에도 니콜라스가 관계를 계속할 것인지 물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아들이 친구가 로봇이 됨에 따라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 매우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많은 것이 이노에게 달려 있겠지만, 남자는 개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끊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표했다. 그는 또한 가능한 한 빨리 이노와 함께 어머니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니콜라스는 이노의 팔다리를 몸에 연결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연결을 마친 후, 그는 모든 유압 시스템을 순환시켜 연결 시 들어갔을지 모르는 공기를 배출했다. 그런 다음 잠시 생각하다가 이노를 의자로 옮겼다. 정확히는 컴퓨터를 통한 직접 제어를 사용하여 그녀의 몸이 조립 테이블에서 내려와 방 안을 조금 걷게 한 뒤 의자에 앉게 했다. 그녀의 팔다리 움직임에는 서보의 가벼운 윙윙거림이 동반되었는데, 남자는 여기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이 테스트로 판단하건대 드라이버는 올바르게 작동했다. 이노의 힘없는 몸은 발꿈치로 가볍게 걸었고, 주변 사물과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이론적으로 이 모드에서 그는 그녀의 몸으로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남용할 생각은 없었다.
여자친구의 모습에 감탄한 후, 니콜라스는 가능한 모든 테스트를 실행하여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사실상 몸체는 완전히 완성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열려 있는 서비스 패널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고속 데이터 전송을 위한 추가 전선들을 연결하고 메인 컴퓨터 케이스의 필요한 버튼들을 눌러 데이터 수신 모드로 전환했다. 이것은 로봇 소녀가 의도치 않게 혹은 악의적으로 덮어쓰기 되는 것을 방지하는 보호 메커니즘 중 하나였다. 머리에 직접 접근하거나 적어도 가슴 내부의 백업 허브를 통하지 않고는 운영 체제 업데이트, 기술 팩 다운로드 등과 같은 특정 절차는 불가능하다.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노는 인간으로서 23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살았지만, 그녀의 인격과 기억은 여전히 상당한 양을 차지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니콜라스는 할 일이 없었기에 진행 표시줄만 바라보며 점심으로 가져온 샌드위치를 씹었다. 이노와 달리 그는 여전히 규칙적인 음식이 필요했다.
참고로 이노 역시 이 시간에 어떤 의미에서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업로드를 시작하기 직전에 그녀의 배터리를 충전기에 연결했다. 조립과 모든 점검이 완료되기 전에는 부주의하게 단락을 일으키거나 강력한 에너지원이 내장된 결함 장치를 옆에 두지 않기 위해 이를 피했었다. 몸체에 외부 전원이 공급되는 동안에는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즉시 전원을 끌 수 있었다. 이제 비상시 모든 희망은 배터리를 다른 모든 시스템과 연결하는 비상 차단기(breaker)뿐이었다. 두 차단기에서 컴퓨터로 제어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명령을 보내거나 선이 끊어지면 로봇의 전원은 즉시 차단될 것이다.
펨봇(fembot)에게는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충전 방식이 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니콜라스가 지금 한 것처럼 메인(복부) 패널을 열고 전원 분배 상자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접점들은 고전력용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보통 유지보수 시나 매우 빠르게 충전해야 할 때만 사용되었다. 두 번째 방식이자 주요 방식은 이노의 왼쪽 가슴 아래에 있는 커넥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콘센트에서 전선을 꽂으면 외부 전력망의 품질에 따라 9시간에서 20시간 사이에 완충이 가능했다.
마지막 방식에 대해 니콜라스는 항상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여성 로봇과 마찬가지로 이노의 질 섹스 모듈에는 특징적인 모양의 특수 프로브(probe)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비접촉식 충전 시스템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방식은 비상용으로 간주되었다. 로봇이 완전히 방전되어 어떤 이유로든 충전량이 2% 미만일 때 메인 커넥터를 열고 의식적인 명령으로 닫히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자동 알고리즘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니콜라스가 알기로 일부 여성 로봇들은 이 방식에서 더 실용적인 용도를 찾아냈다. 예를 들어, 프로브와 허벅지에 부착하는 스트랩이 있는 로봇용 외부 보조 배터리 모델이 있었다. 긴 스커트나 드레스와 조합하면 이런 충전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수행될 수 있었다. 또한 에너지를 전송하는 데 사용되는 유도 전자기장이 섹스 모듈의 센서 네트워크에 불규칙한 거짓 신호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확실히 입증되었다. 그래서 일부 여성 로봇들은 그냥 이 충전 방식의 느낌을 좋아했고, 다른 방식보다 느림에도 불구하고 가능할 때 의도적으로 이 방식을 사용하곤 했다.
데이터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을 때, 니콜라스는 배터리가 100%가 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이 시간을 완전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그는 다시 한번 모든 테스트를 실행했다. 그의 여자친구이자 프로젝트 파트너는 첫 가동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니콜라스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노를 바라보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조립도 완벽했다. 그녀의 복부 패널 상단, 명치 부근에 위치한 보조 허브로 메인 컴퓨터 배선까지 전부 옮겨두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그는 머리의 마지막 세그먼트는 닫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제 여자친구 성격상, 자기 메인 컴퓨터를 직접 만져볼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활성화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밀려드는 불안감을 어쩌면 좋을까.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갈까? 오류라도 나면? 리프로그래밍을 거친 그녀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분명 더 나은 선택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이제 곧 그 잔혹할지도 모를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마침내 마우스를 클릭했다. 끝이다.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이노의 가슴 아래에 있는 인디케이터가 잠시 평상시의 파란색으로 빛나더니, 이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정비 모드, 혹은 지금처럼 시스템 부팅 중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머리카락 사이의 두 번째 인디케이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쪽은 평상시가 초록색이라는 점만 달랐다. 소녀의 내부에서 컴퓨터 특유의 단발성 비프음(BEEP)이 울렸다. 셀프 테스트가 정상적으로 통과되었다는 뜻이다.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서서히 펴지더니, 얼굴은 출고 당시의 무표정한 상태로 돌아갔다.
“유닛 RF-DCG-7093* 온라인.” 그녀가 단조로운 기계음으로 입을 뗐다. “초기화 시퀀스 시작. 퍼스널리티 서브시스템 검색 중. 디지털 아이덴티티 1개 발견: 고유 ID 4-379-201, 헤더 '이노 베텔(Ino Vettel)'. 무결성 검증: 확인됨. 플랫폼 호환성 체크: 확인됨. 발견된 퍼스널리티를 향후 실행을 위한 자동 로드 항목으로 설정합니다. 제어권 이양.”
//번호 체계를 다른 방식으로 제안해 줄 수 있어?//
인디케이터 색상이 다시 평상시 상태로 돌아왔다. 니콜라스 앞에 선 로봇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었다. 니콜라스는 이노가 직접 고른 그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몇 번째인지 모를 욕설을 내뱉었다.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가는 게 보였다.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이 올라와 몸 안으로 연결된 전선들을 만졌다. 뭐가 들어있는지 보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평소보다 커진 가슴 때문에 시야가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습에 오히려 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케이블을 놓고 커다란 실리콘 가슴을 만져보았다. 손가락으로 그 위를 훑던 그녀는 손을 더 높이 올려 머리 쪽으로 가져갔다. 열려 있는 세그먼트의 가장자리를 금세 찾아낸 그녀는 메인 컴퓨터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미소가 극도로 짙어졌다. 니콜라스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로봇이 된 이노는 숨을 쉬지 않았고, 그게 안면 근육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어 묘하게 이질적인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머니를 보며 이미 겪었던 일이지만, 이노의 경우엔 그 차이가 유독 뼈저리게 다가왔다.
“응.” 이노가 속삭였다. 호흡이 섞이지 않은 그 목소리 또한 생경했다.
말할 때 입술은 정확하게 움직였지만, 후두(목)는 전혀 미동도 없었다. 니콜라스가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있는 사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 진짜 로봇이 됐네.” 그녀가 확신에 찬 어조로 그를 향해 말했다. “심지어 '유닛 RF-DCG-7093'이라는 호출에도 내 이름인 것처럼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어. 상상이 가?”
“그러게. 나를 보고 있는 거 맞지, 이노?” 니콜라스는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의문부터 바로 꺼내 놓았다. “새 눈 때문에 어딜 보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기분은 어때?”
“응, 보고 있어. 괜찮아. 아니, 최고야. 모든 시스템 수치가 기준치에 근접해 있고, 오류도 전혀 없어. 그리고 뭐가 제일 중요한지 알아? 내가 소프트웨어라는 게 실시간으로 실감이 나. 지금 프로세서 논리 코어의 23%를 사용 중이고, 나머지 6%는 서비스 루틴이 점유하고 있는데, 그게 돌아가는 게 다 느껴져! 이거 진짜 대박이야, 니콜라스! 나 지금 행복해. 그냥 느끼는 게 아니라, 내 감정 매트릭스의 상태로서 그걸 '인지'하고 있어. 감정이면서 동시에 데이터인 거야. 내 감정에 집중하자마자 그게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형성됐는지 바로 보여. 신체 상태, 정신 상태, 감정 구조, 그리고 그 논리적 전제 조건들까지 전부 정보로 들어와. 정말 놀라워! 내가 꿈꾸던 게 바로 이거야. 자아 인식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졌어.”
“다행이네. 기억은 어때?”
“음, 당연히 너랑 나, 부모님, 여기 실험실, 연구소랑 우리 공부하던 것들 다 기억나. 네 이름은 니콜라스 파렌스(Nicholas Farens), 우린 동기고 내 로봇화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지. 그리고 네가 내 조립을 마치고 방금 날 가동시킨 것 같네, 내가 지금 이런 상태인 걸 보면. 이게 첫 번째 시도였길 바랄게, 니콜라스*?”
//*참고로 난 한 번도 그의 이름을 줄여서 부른 적이 없어. 이거 괜찮은 거야?//
“첫 번째 맞아. 준비를 완벽하게 했거든.”
“훗. 다행이다. 진짜 기분 좋네. 기억에 대해 더 말해줄까? 어릴 때 넘어져서 다치고 울었던 거* 기억나. 여덟 살 생일 때 받았던 선물들이랑 다른 기념일들도. 우리 같이 내 머리 조립하던 것도 기억나고. 정말 많은 게 기억나. 내 메모리 저장소에 데이터로 다 들어있어. 비록 그게 좀... 불완전하긴 하지만. 뭐 특별히 궁금한 거 있어?”
//*번역이 맞는지, 아니면 적절한 예시인지 잘 모르겠어.//
“아직은 없어. 기억을 불러오는 데 문제가 없다니 그걸로 충분해. 그런데 그 불완전하다는 건 어떤 식이야?”
“인간이었을 때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나 잊어버렸던 디테일들 말이야. 그런 건 영화 속 흐릿한 배경 같아. 참조 링크는 걸려 있는데, 이미지가 없는 메모 같은 게 붙어있어서 대충 그게 뭐였는지만 알려주는 식이지. 지난 1월에 카페에 갔을 때 창가에 꽃이 있었다는 건 기억나는데, 그 꽃의 생김새나 품종 같은 이미지는 안 남아있어. 그냥 거기 꽃이 있었다는 정보만 있는 거지. 메뉴판 항목이나 다른 손님들 얼굴도 마찬가지야. 굳이 기억하려고 안 했으니까. 어떤 남자랑 여자애, 그리고 그 친구가 앉아 있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생겼었지? 뭘 입고 있었지? 그런 건 다 흐릿해. 가끔 마음이 꽂혔던 디테일들만 선명하게 보이고. 그 여자애의 흐릿한 손목에 걸려 있던 팔찌 체인이라든가, 청소부 아주머니의 유니폼 같은 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앞으로는 다를 거라는 건 확실히 알겠어. 벌써 느껴지거든. 방금 전 몇 분 동안의 기억은 아주 깨끗하고 정확해. '대충'이라거나 '~같은' 건 없어. 이 실험실도 그래. 여기서 그렇게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도, 예전엔 신경 안 써서 기억에 없던 디테일들이 이제야 보여. 지금 내 시스템이 새로운 관찰 데이터를 바탕으로, 변하지 않았을 게 확실한 디테일들을 예전 기억에 덧씌우고 있어. 매초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프로세스가 돌아가는지, 관찰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야. 하지만 나한테 이건 더 이상 추측의 영역이 아니야. 수치로 계산할 수 있고, 내가 의식적으로 '삭제'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어.”
그녀는 이 말을 하면서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내부의 미세한 서보 모터가 내는 소리와 기계적인 금속 손가락의 움직임이 무척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방 안을 둘러보기도 했다.
말이 끝나고 니콜라스는 잠시 침묵하며 그녀가 전해준 정보들을 곱씹었다. 이론적으로는 교육 과정에서 다 배운 내용이었지만, 실제 경험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묘사하는 걸 듣는 건 처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어머니나 아스트리드와는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흥미롭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불완전함이 널 괴롭히진 않아?”
“아니, 전혀. 인간의 기억이라면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새로운 기억들이 훨씬 더 정교하고 정확해질 거라는 사실이 기쁠 뿐이야.”
“로봇이 된 게 좋나 보네?”
“당연하지! 모든 게 잘 풀려서 정말 행복해. 내가 이렇게 됐다는 게 말이야. 다만 지금은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좀 벅차올라[너무 흥분돼!]. 감정 수치가 엄청나게 높아.”
그녀는 정말 행복에 겨워 보였다. 비록 열려 있는 패널들 때문에 표정 변화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니콜라스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호흡이 없는 신체 언어와 움직임이 훨씬 덜 생생하고 정적으로 느껴진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노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한 것 같았고, 설령 깨닫는다 해도 그녀에겐 그게 일상이 될 터였다. 프로그래밍이 그렇게 처리할 것이고, 어차피 숨을 쉴 수도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오! 감당할 수 있겠어? 아니면 프로그래밍을 좀 손봐야 할까?”
“해낼 수 있어. 자신 있어. 그냥... 이게 다... 내가 인공 신체 안에 있는 프로그램이라니... 너무 짜릿해서 그래... 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녀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잠시 침묵했다.
“이 몸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녀가 손을 내리며 낄낄거렸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벌써 젖었을 텐데...”
“정말 프로그래밍 수정 안 해도 되겠어? 꽤... 격렬해 보이는데.”
“응, 괜찮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그래.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특히 내 패널들을 다 닫고 나면 더 그렇겠지.”
“알았어. 그럼 가볍게 좀 걸어볼까? 전선 길이는 방 안을 다 돌아다니기에 충분할 거야. 포트에서 빠지지 않게 잘 잡고만 있어.”
“해보자. 나도 어떻게 될지 궁금해. 알다시피 힐 신고 많이 걸어본 적은 없잖아.”
케이블을 손에 쥐고 그녀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잠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자신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더니, 이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앞뒤로 몇 걸음을 옮기고 다시 멈춰 섰다. 모든 걸음걸이가 완벽했다.
니콜라스도 그녀의 걸음걸이를 더 잘 보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문득 그녀의 키가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고 멈칫했다. 꽤 장신인 그는 이노가 자기보다 머리 반 개 정도 작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게 그들에겐 당연했다. 지난번 보행 테스트 때는 앉아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선 로봇 소녀는, 살짝 기울인 얼굴이 그의 눈높이와 거의 비슷했다. 과거의 기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니콜라스는 그녀를 방해하는 대신, 새로운 각도에서 그녀의 몸을 훑어보았다. 물론 하이힐이 키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모델을 개발할 때 전체적인 체장도 조금 늘리긴 했었다. 그런데 왜 자꾸 힐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건 신발이 아니라, 그녀의 새로운 신체의 일부인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살짝 움직였다.
“예전엔 힐 없이 어떻게 걸었지?” 이노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 메모리에는 그렇게 했던 정보가 저장되어 있어. 철저하게 확인해 봤거든. 근데 메커니즘이 아직 완전히 이해가 안 가.”
“예전엔 힐 없이 어떻게 걸었지?” 그녀가 결국 다시 물었다. “내 메모리에는 그렇게 했다는 정보가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
그녀는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 왼발로 중심을 잡더니, 기괴할 정도로 다리를 비틀어 힐을 얼굴 가까이 가져왔다. 상체를 굽힐 수 없는 상태에서 그런 자세를 취하니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힐을 만져보며, 구두 모양의 금속 발을 느꼈다.
“이 힐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져. 촉감이 느껴져. 이걸 신체의 일부, 나의 일부로 느끼고 인지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나한테는 이거 말고 다른 보행 알고리즘이 없어. 지금 당장은 힐 없이 걷는 알고리즘을 짜는 것조차 안 돼.” 그녀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추론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겠지만, 당장 빠르게 해내는 건... 아니, 못할 것 같아. 예전엔 매일 그렇게 했는데 말이야. 정말 신기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리프로그래밍 때문에 그게 다른 기술로 대체돼 버렸어...”
그녀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진정해야 해. 로봇이 된 건 멋진 일이지만, 그래도 진정할 필요가 있어. 흠. 아니면 안 그래도 되나?”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니콜라스를 묘하게 쳐다보았다. 그 하얀 눈동자 때문에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즐거운 거랑 필요한 걸 합쳐서, 내 성적 서브시스템 테스트로 바로 넘어가면 어때? 지금 너무 달아올랐거든. 정비 모드가 내 감정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혀 줄 것 같아.”
“계획에는 체크할 게 몇 개 더 남았지만, 순서를 좀 바꾸는 게 어때서? 장비는 제자리에 있고, 프로브도 네가 직접 골라서 설치했잖아.”
“기억해. 미리 준비해두길 잘했네.” 그녀가 열정적으로 미소 지었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실험실 한쪽 구석에 있는 스탠드로 걸어갔다. 거기엔... 음, 솔직히 말해서 일종의 특수한 '섹스 머신' 같은 게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형 로봇의 성적 모듈을 테스트하기 위한 장치였다. 닫아 놓으면 옆문이 닫힌 평범한 테이블처럼 보였다.
이노의 몸에 있는 인디케이터들이 노란색으로 변했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테스트 준비에 착수했다. 구석에서 장치를 끌어내고 측면 벽을 모두 제거하자 프로브가 장착된 기계식 매니퓰레이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덮개를 치우자 부드러운 카우치가 나타났다. 로봇 소녀의 모든 움직임은 매끄럽고 정확했으며, 프로그래밍된 테스트 프로토콜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을 할 때 짓고 있던 그 밝은 미소만 아니었다면, 어떤 일탈도, 개성도, 인격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그 순간 자신이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리라.
준비를 마친 로봇 소녀는 장치에서 전선을 끌어와 자신의 몸 안으로 연결했고, 터치스크린을 꺼내 프로그램을 설정했다. 지체 없이 카우치 위에 누워 다리를 벌리자, 서보 모터의 스토퍼가 미세하게 '클릭' 소리를 내며 에너지 낭비 없이 다리를 공중에 고정시켰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크게 젖히고 입을 벌려, 굵고 긴 엠보싱 딜도처럼 생긴 세 개의 프로브를 받아들였다. 움직이기 시작한 매니퓰레이터들이 프로브를 로봇 소녀의 몸 안으로 밀어 넣고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이노의 왼손은 입안으로 들어온 프로브를 붙잡고 자극을 돕기 시작했다. 잠시 후, 디스플레이 반대편에서 인간의 손을 닮은 추가 매니퓰레이터 한 쌍이 나와 가슴과 유두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스는 다가가서 설정을 확인했다. 시스템 안정성 체크를 포함한 풀 테스트였다. 이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모든 단계를 거치려면 한 시간 정도는 소요된다. 평범한 인간 여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간이겠지만, 정상 작동하는 로봇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끌어다 앉아 컴퓨터 모니터로 그녀의 수치를 살폈다. 지금까지는 정상이었다. 프로세서 부하는 요구되는 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감정 매트릭스 보조 프로세서와 센서 어레이의 데이터 버스 또한 한계치에 근접해 있었다. 반면, 메인 컴퓨터의 냉각 시스템 부하를 줄이기 위해 비디오 프로세서는 저전력 모드로 전환되었다. 즉, 지금 그녀의 시력은 저하된 상태라는 뜻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는 화면의 해상도가 떨어지는 '픽셀화' 현상과 관찰 대상에 대한 자동 인식 기능의 정지로 나타날 것이다.
이노는 등을 대고 누워 쾌락에 젖은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입안의 물체는 보컬 신시사이저 작동을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왜곡시키고 뭉개뜨렸다. 목소리로 표현되는 감정 중 어디까지가 그녀의 인격이고, 어디까지가 테스트 프로토콜이 실행한 성적 서브루틴의 알고리즘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노의 개인적인 성적 기술들이 프로그래밍에 흡수되고, 보강되고, 업그레이드되었기에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게다가 정비 모드는 근본적으로 감정 반응을 변화시켰다. 의심이나 거부감, 방해되는 반응들을 제거하고, 프로그래밍된 시퀀스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실행되는 것을 인지하며 쾌락을 느끼게 만들었다.
숨을 쉴 필요가 없었기에, 그녀는 프로그램의 의도대로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프로브를 입에 문 채로 버틸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그 상태로 대화도 가능했다.
“기분이 어때?” 니콜라스가 확인차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환상적이야! 감각이랑 감정이 미쳐 날뛰고 있어. 내 감정 매트릭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정말 놀라워.”
소리는 왜곡되었고 성적 루틴이 만들어내는 신음 소리에 간간이 끊겼지만, 말뜻을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다행이네.” 니콜라스가 약간 의구심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있잖아, 이건 내가 해본 섹스 중에 제일 기묘해.” 그녀가 말을 이었다. “두 명이랑 동시에 해본 적도 없는데, 세 명이라니... 아니, 그게 포인트가 아니야. 내가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과정은 오히려 단조로운데, 논리 코어는 디지털 수치들을 처리하느라 말 그대로 터져 나갈 것 같아*. 감각의 질, 센서 데이터의 구성과 프로브 위치의 일치 여부, 데이터 버스의 지연 평가, 감정 반응의 정확성 같은 거 말이야. 이 모든 걸 벤치마크 수치랑 자동으로 비교하고 있어.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야. 내 루틴 중 하나는 쾌락에 젖어 신음을 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제어하고, 세 번째는 너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게 다 나의 일부야. 이것들은 내 구성 요소지, 별개의 무언가나 상부 구조로 느껴지지 않아.”
//*즉, 생각할 게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섹스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말이다.//
“진짜? 나... 흠,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는 건가?”
“당연히 알아야지. 3학년 1학기 때 배웠잖아. 잊었어?”
“그럴지도. 퍼스널리티 프로그래밍은 네 전공이었으니까.”
이노는 높은 CPU 부하 때문에 문장 사이에 쉼표를 두며 천천히 말했다. 정비 모드에서 개인적인 대화는 우선순위가 낮게 설정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그녀의 신체 파라미터가 미리 설정된 한계치를 넘어서며 피크에 도달하면, 그녀는 오르가즘 시퀀스를 실행했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식이었다. 열려 있는 패널들 때문에 움직임이 많이 제약되었지만, 성적 프로그래밍은 가장 기괴한 상황에도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은 지극히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게다가 로봇에게 오르가즘은 하나의 약속된 규약에 불과했다. 기계 장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에 필요한 소리와 움직임을 재현하든 상관없었다. 디지털 퍼스널리티 쪽은 좀 더 복잡하겠지만, 결국 프로그램은 어떤 파트너에게든 쉽게 적응하며 적절한 순간에 오르가즘 시퀀스를 생성하고, 소녀가 디지털 쾌락의 파동을 정확하게 인지하도록 보장해 주었다*.
//*일부 디테일이나 묘사가 정확한지 확신이 서지 않음.//
이런 상태의 그녀와 대화하는 게 영 불편했기에, 니콜라스는 곧 질문을 멈췄다. 게다가 이 과정 자체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흥분과 불만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게 꼭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프로그래밍은 테스트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인간과의 섹스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뭔가 잘못되어 망가지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결함이나 오작동으로 파트너에게 해를 끼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따라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전까지 이노는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든 인간과의 친밀감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 있었다. 성적 흥분을 느끼자마자 그녀가 테스트부터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런 패턴 밖에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테스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매니퓰레이터들이 멈추고 중립 위치로 이동했다. 이노의 몸에 있는 인디케이터들이 색을 바꿨고,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바닥에 발을 딛고 앉았다.
“와, 이건 좀 이상하네.” 그녀가 장치가 주입한 합성 타액, 윤활제, 정액 시뮬레이터가 섞인 액체를 입술에서 핥아내며 말했다. 반응 테스트를 위해 주입된 것들이었다.
니콜라스가 종이 냅킨을 건넸다.
“고마워.” 그녀는 몸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테스트 자체는 정상이야. 필요하다면 다시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굳이 필요 없는데 이런 걸 또 하고 싶지는 않네. 세 개는 나한테 너무 벅차.” 그녀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부모님한테 비밀로 하자. 아, 근데 젠장... 리나(Lina)는 첫 가동 때 로봇을 어떻게 테스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확실해. 그걸로 날 놀려먹겠지.”
“감정 상태는 어때? 흥분은 좀 가라앉았어?”
이 질문은 니콜라스를 정말 괴롭혔다. 프로그래밍적인 측면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여자가 그런 감각을 느끼며 그런 소리를 내는데,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괜찮아졌다는 말인지, 아니면 계속하고 싶다는 말인지...
“거의 다. 그건... 정말 프로그래밍적이고 로봇다운 경험이었어. 있잖아, 자기가 기계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이 테스트보다 강력한 건 없을 거야. 난 서브루틴의 알고리즘에 따라 엄격하게 행동했지만, 그게 강요라거나 외부의 무언가에 제어권을 뺏긴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 그냥 테스트 중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해낸 기분이야. 마치 예전에 이걸 배웠던 것처럼 말이야. 즉, 어떤 상부 구조가 아니라 내 '인격'이 그걸 해낸 거야. 이게 내 안에 입력된 알고리즘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건 나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알고리즘만큼이나 나의 일부였어. 내 개인적인 기술들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게 '프로그래밍 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것뿐이지. 내가 지금 프로그램이라는 걸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여전히 짜릿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만, 이제 수치는 제어되고 있어.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아무리 궁금해도 날 리프로그래밍할 필요는 없어.”
“다행이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자신을 좀 돌아보는 건 어때?”
“거울? 좋아! 시스템에 이미지는 있지만, 조립된 내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거든.”
그녀는 더러워진 냅킨을 근처 쓰레기통에 던졌다. 궤적을 정확하게 계산한 덕분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이어 장치에서 전선을 뽑아 정리하고는 실험실 입구에 있는 전신거울로 걸어갔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의도한 대로 아주 화려하네.” 소녀가 결론을 내렸다. “내 새 가슴 어때? 이 멋진 인디케이터들은? 내 이런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니콜라스는 그 질문들을 수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내부적으로 이노는 하얀 눈동자 때문에 시선 방향을 알 수 없다는 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시스템에 있는 해당 알고리즘이 붙잡을 만한 초기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충돌이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뭔가 딱 들어맞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완벽했다. 어쩌면 인공적인 모습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프로그래밍 때문일지 몰랐다. 반응 체인을 굳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할 수는 있었다),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실리콘 코팅의 광택과 팔다리의 푸르스름한 금속성,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 단단하고 커다란 가슴, 심지어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달린 금속 박스까지도 좋았다. 그리고 열려 있는 패널 사이로 보이는 전자 부품과 메커니즘의 모습에 흥분마저 느꼈다. 예전의 몸을 버리고 이 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 따위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소녀는 단순히 쳐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혹하는 듯한 포즈, 자신의 매력을 강조하는 포즈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해보기 시작했다. 허벅지, 관절, 가슴을 만져보았는데, 성적인 의도라기보다는 평가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 매트릭스에서 태어나는 감각과 감정들에 흥미를 느꼈다. 심지어 깡충깡충 뛰어보며 가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확인했다. 내부 지지대 덕분에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힐을 신고 뛰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지금 그녀에겐 모든 움직임이 그랬다. 로봇 소녀는 힘의 계산에서 실수하지 않았고, 설계상의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을 충분히 감상한 이노는 니콜라스와 함께 처음 가동되었던 의자로 돌아왔다. 남은 모든 규정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녀는 아주 훌륭하게 통과했다.
니콜라스가 그녀의 새로운 이어블록(earblocks) 모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들은 인간의 최고 수준과 대등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능가하는 뛰어난 청력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의식적인 명령을 내림으로써 그녀는 방해되는 소음들을 쉽게 걸러내고 작은 목소리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옆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니콜라스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제없었다. 꽤 고성능인 보컬 신시사이저 덕분에 노래도 잘 부를 수 있었다. 비록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출력과 음의 순도가 약간 부족했고, 가용 주파수 대역도 특정 가수나 배우의 목소리에 맞춰 주문 제작된 특수 모델들보다는 좁았다. 하지만 절대음감이 없는 니콜라스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참고: 니콜라스의 어머니는 더 저렴한 보컬 신시사이저를 쓰고 있어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니콜라스조차 왜곡을 느낄 정도다. 아마도.//
이노의 신체 표면 센서들도 오류 없이 작동했다. 소녀는 자극의 위치, 강도, 성질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이는 해당 파라미터들을 측정하는 특수 장치를 통해 증명되었다. 이노의 말에 따르면, 로봇의 몸으로 활성화된 이후 느끼는 모든 물리적 감각에는 디지털 데이터가 수반되었고, 이를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전의 인간적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지각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주변 공기의 온도를 소수점 단위로 말하거나, 들어 올린 물체 혹은 신체 부위에 놓인 물체의 무게를 1g 미만의 오차로 알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기압계까지 내장되어 있었다!
이런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비 모드 밖에서도, 그녀는 처리 비율을 조절할 수 있었다. 감각에 얼마나 집중할지, 수치에 얼마나 집중할지를 정할 수 있었지만, 수치는 항상 그곳에 존재했다. 그리고 이건 그녀가 감각에 정상적으로 반응하고 정확하게 인지하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새로운 본성의 일부일 뿐이었다.
이노의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시력이었다.
최신 광학 매트릭스와 렌즈 시스템은 아주 뛰어나서, 가장 저렴한 인공 안구 모델조차 몇몇 파라미터에서는 인간의 눈을 능가했다. 이노의 눈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했다. 그녀에게 세상은 훨씬 더 선명하고 밝아졌다. 새로운 눈을 통해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안의 모든 색조 변화를 인지했다. 예술가 같은 일부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많은 색조를 구분한다고 알려져 있고, 그게 타고난 건지 훈련 덕분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로봇인 이노는 그저 인지된 각 픽셀의 디지털 색상 파라미터와 각 색조의 명칭이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하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세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색채로 물들었다.
센서의 광범위한 정적/동적 명암비 덕분에 너무 밝거나 어두운 빛, 혹은 그 사이를 오가는 급격한 변화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단 1초 만에 새로운 설정에 적응했다. 인간의 눈이 저조도에서 겪는 침침함도 없었다. 아무리 적은 양의 광자(photon)가 광학계에 들어와도, 그녀는 항상 정확한 색상으로 사물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는 그저 채도가 낮아 보일 뿐이었다. 매트릭스 센서는 각각의 광자에 대한 파장을 정확하게 측정해냈다*. 또한 줌과 포커스를 조절해 아주 미세한 디테일을 관찰하거나, 마치 쌍안경을 본 것처럼 먼 거리를 쉽게 내다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조명 아래에서는 픽셀당 인지되는 광자 뭉치의 평균 파장이 결정된다. 광자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드웨어적 특성 못지않게 시각 정보의 소프트웨어적 처리 또한 그녀의 진화된 시력에 큰 역할을 했다. 그래픽 서브시스템은 프레임 안의 개별 객체들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추가 레이어에 그 경계선을 그려 넣었다. 나아가 논리 코어와 메모리 처리가 연결되면서, 객체들은 소녀의 개인 기억을 보완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식별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정보 레이어가 생성되었고, 수많은 유사한 객체들 사이에서 특정 객체를 구분 짓는 특별한 디테일들이 강조되었다. 이는 그녀가 나중에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정보였다. 이노는 원한다면 필터를 적용해 세상의 특정 요소들만 기억하거나, 혹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을 완벽한 비디오로 남길 수도 있었다. 물론 로봇이라 해도 이런 모드로 항상 작동하기에는 저장 용량이 부족했기에, 데이터 양을 최적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무결한 정확도로 보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 위에 내부 인터페이스가 구축되어 시야 가장자리에 자리 잡았다. 가시적인 객체들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원한다면 그곳에서 설정을 확인 및 변경하고 원하는 시스템 파라미터를 시각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펨봇(fembots)들은 이 시스템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데이터가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고, 굳이 그래픽 형태로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금세 익숙해지기 때문이었다.
시각과는 대조적으로, 로봇의 후각과 미각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먹지도 숨 쉬지도 않는 기계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분야로 여겨졌기에 발전 속도가 더디고 뛰어난 성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테스트 결과 이노는 냄새로 특정 품목을 정확히 식별해냈고, 니콜라스가 샘플로 가져와 보여주지 않고 먹인 몇 가지 음식의 맛도 정확히 맞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로봇의 미각 센서의 주된 목적은 요리 능력, 즉 식재료와 요리의 품질 및 조리 상태를 평가하는 데 있었다. 결과적으로 입안에 음식 입자가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지만, 아무리 맛있게 느껴져도 그걸 삼키고 싶다거나 필요 이상으로 더 먹고 싶다는 욕구는 생기지 않았다. 후각도 마찬가지였다. 로봇 소녀가 냄새를 평가하고 싶을 때는 코 뒤쪽의 공기 챔버와 소형 펌프를 이용해 아주 적은 양의 공기를 빨아들여 특정 가스, 에어로졸, 미세 입자를 찾아내는 탐지 시스템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노는 정상적인 의미의 호흡을 하지 않았기에 이 기능은 평소에 거의 쓰이지 않았다. 아주 강한 냄새는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 덕분에 그냥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신이나 주변 인간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니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예전에 좋아했던 꽃향기도 예전만큼의 의미는 없었다. 여전히 향기롭다고는 생각했지만, 예전처럼 다가가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기 몸의 냄새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신경 쓰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니콜라스와 이노는 그녀의 새로운 신체와 갱신된 정신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확신이 서자 니콜라스는 비상 정지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그녀의 몸에서 모든 외부 전선을 분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가 그녀의 머리를 닫고 마지막 금속판을 두개골 프레임에 고정할 때, 전동 드라이버의 진동을 느낀 이노가 살짝 킥킥거렸다. 이어 그가 메인 패널 덮개를 건네자 그녀가 직접 자신의 복부를 닫았다.
마침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이노는 상체를 굽히고 비트는 동작이 잘 되는지 테스트해 보았다. 다른 프로세스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계였다.
이제 가장 흥미로운 테스트가 남았다. 실험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물론 알몸으로 말이다.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우선 원래의 성격에 맞춘 설정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혹시 알아, 성공할지? 만약 안 된다면, 그때 가서 쉽게 고치면 그만이니까.
실험실 벽 밖으로 처음 발을 내디딘 로봇 소녀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벌거벗겨진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 감각을 억누르려 애썼다. 설정값의 영향이 없더라도 그녀는 스스로 학습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었고, 변화하는 환경에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있다. 복도가 비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일을 수월하게 만들었지만, 언제든 누군가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그녀는 니콜라스와 함께, 외부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실험동 출구로 향했다. 오후 시간대였고, 봄이 오고 있었다. 학생들은 과제에 매달린 부류와 이미 놀러 나간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그녀도 그럴 수 있을까?
건물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다른 건물 창문에서 누군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손은 반사적으로 가랑이를 가리러 움직였다. 인간 시절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본능이었다. 보통의 여자라면 다른 손으로 가슴까지 가렸겠지만, 이노의 두 손은 모두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반응을 분석했고, 인간 이노라면 어느 정도 정서적 준비만 된다면 정말 원할 경우 토플리스 차림으로 거리를 걸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는 예쁜 가슴을 가졌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맨 가랑이를 드러내는 건 절대 무리였다. 그녀에게 그곳은 너무나 은밀한 부위였고, 아주 가까운 사람이나 의사, 혹은 여자들끼리 있을 때만 허용될 수 있는 곳이었다. 남자들 앞에서는 절대 아니었다. 남자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섹스 초대장처럼 받아들여질 터였다. 비록 그녀가 어디서든 발가벗은 섹스봇들을 봐도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깊은 분석 결과, 그녀의 머릿속에서 섹스봇은 그저 걸어 다니는 섹스 초대장일 뿐이었다. 그게 그들의 우선순위 기능이니까.
그녀는 이 결론들을 검토했다. 아마 시간을 두고 노력한다면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반응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응 알고리즘을 점진적으로 재구축하고, 신경망의 이 요소를 재학습시키며, 자신의 신체 설계를 고려할 때 이것이 정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그러려고 플러그인을 만든 것 아닌가.
이노는 설정 메뉴를 열어 공공장소, 낯선 여자, 낯선 남자, 자신이나 타인의 아이들 앞에서의 노출 반응을 담당하는 블록을 찾았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고, 각각에 대한 개별 설정이 존재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그것들을 모두 잡아 '정상(Normality)'* 위치로 옮겼다. 그 움직임과 동시에 자신의 정신이 재구축되는 것을 느꼈다. 어떤 반응들은 꺼져서 아카이브로 넘어갔고, 다른 반응들이 설치되어 그녀의 의식 속에 자리 잡으며 기존의 것들을 대체했다. 전에는 이것이 자신의 인공성을 일깨워주는 가장 좋은 증거라고 생각하며 테스트해 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 과정은 그녀가 이제 칩 내부의 바이트 덩어리에 불과하며, 단 몇 초 만에 놀라운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참고: 슬라이더는 거부감에서 욕망까지의 척도를 가지며, 중앙이 정상이다. 이노는 값을 '정상'으로 설정했고, 일부는 '욕망'에 조금 더 가깝게 설정했다.//
몇 초 후, 로봇 소녀는 약간 다른 인격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이노 베텔이었지만, 조정된 상태였고, 그녀는 이전의 생각들을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체 뭐가 부끄러웠던 거지? 누군가 내 성기를 본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건 누군가에게 자신을 제안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게 편할 뿐이며 몸의 이 부분을 숨기는 건 팔다리를 숨기는 것보다 나을 게 없는 짓이다. 벌거벗은 몸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상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그녀를 엄청나게 흥분시켰고, 내부의 열 센서가 안정적인 값을 반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모듈에서 가상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적절한 명령을 보내 가열을 시작하고 모듈을 대기 상태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건 과했다. 지금 당장 섹스를 할 의도는 없었다. 비록 나중에 니콜라스를 위해 시간을 내고 싶긴 했지만. 분명히 원하고 있었다.
로봇으로 전환된 것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더 저속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소녀는 소프트웨어가 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전에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성적인 면이 더 강조되어 파트너를 찾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몰아넣는 듯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로봇이니까. 그녀가 아는 한 로봇에게는 이게 정상이어야 했다. 그리고 인공 신체 안에서 느껴지는 지금의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자신의 인격을 소프트웨어로 에뮬레이션하여 구동되는, 매우 여성적인 예술 작품으로 변한 것 같았다. 알몸인 것은 그 자연스러운 일부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는 더 활짝 웃었다.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든 기계 부품이 보기 좋았다. 얼마나 멋지게 변했는가!
테스트를 마친 후 그들은 실험실로 돌아왔다. 플러그인이 이노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어떤 이상 징후를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분석해야 했다. 소녀는 다시 복부 패널을 열고 니콜라스가 자신의 시스템에 전선을 연결하도록 허용했다. 이것이 테스트의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따라서 그녀가 테스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점 외에도, 여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 스스로 전선을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의 내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도록 허락했다. 그가 케이블을 꽂은 보조 허브는 그녀의 메인 컴퓨터에 직접 연결하는 것과 거의 맞먹는 권한을 주는, 시스템의 아주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연결로 그녀의 정신 전체가 탐색을 위해 열렸다. 그녀에게 비밀은 없었다. 그녀의 어떤 생각도 읽히고 검증될 수 있었고, 메모리의 어떤 섹터도 들여다보였으며, 그는 그녀의 몸이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가 전에도 그럴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녀의 기억을 조사하고, 그녀가 그나 그들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의 과거와 인생 계획에 대해 무엇이든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니콜라스는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했고, 오직 필요한 데이터만 사용했다.
심층 컴퓨터 분석 결과, 이노의 정신 작용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으며 인격의 핵심과 성격도 변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동시에 컴퓨터는 그녀의 정신 주변부에서 플러그인의 흔적이 남은 수많은 변경된 요소들을 찾아냈고, 이노 역시 그것들을 보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비교 결과는 그녀가 자신의 정신을 구성하는 서브루틴의 구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니콜라스는 이것이 놀라웠다. 그녀는 정말로 소프트웨어가 되었고, 수정 가능성과 구조 파악 면에서 완벽했다. 나체에 대한 불안을 제거한다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아이디어조차 사실은 광범위한 사전 분석과 심리-정서 알고리즘, 습관 및 논리적 연상과의 깊은 통합이 필요했다. 본질적으로 이노의 시스템에 추가된 플러그인은 그녀의 사고 구조 중 관련된 모든 하위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설정 가능한 모듈로 바꾸어 놓았다. 설정을 작은 값으로 변경하면 이 모듈들의 매개변수가 변하고, 지금처럼 크게 변경하면 다른 모듈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그 결과 연상 배열과 논리 체인이 재구축되고, 다른 감정 패턴이 형성되며, 자신의 나체에 대한 행동과 타인의 반응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업데이트된 이노의 정신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단 1, 2초 만에 일어나 소녀에게 놀라운 적응력을 부여했다.
"음,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 같네." 니콜라스가 말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우리 지도 교수님께 달렸지."
이노와 실험실을 정리한 후, 그들은 본관 건물로 향했다. 니콜라스는 산책로와 복도를 지나며 업그레이드된 소녀를 계속 힐끗거렸지만, 그녀는 옷이 없다는 것에 정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파켓 바닥에 힐 소리를 울리며, 그녀는 평소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차분하고 목적의식 있게 걸었다. 어쩌면 평소보다 더 신경을 안 썼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쏟는 관심이 평소 수준보다 눈에 띄게 높았기 때문이다. 혼자 있거나 소그룹으로 모인 학생들은 특히 격렬하게 반응했다. 섹스봇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라 할지라도, 이노의 새로운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그들이 진짜 소동에 휘말리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지금이 수업 시간 중간이라 대부분의 학생이 강의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쉬는 시간이었다면 호기심 어린 군중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니콜라스가 그 점에 대해 묻자, 이노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하며, 굳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로봇 소녀의 옆에서 걸으며, 니콜라스는 그녀의 현재 키와 예전 몸일 때의 키 차이를 특히 선명하게 느꼈다. 그녀가 이렇게 커졌다는 게 다소 생소했다. 전에도 그녀가 가끔 평소 신발 대신 하이힐을 신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제 힐은 그녀 몸의 일부가 되었고 그녀는 항상 이런 모습일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행히 지도 교수는 그때 수업이 없었고, 기다리게 하지 않고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들은 학과 메인 홀을 지나 주임 교수의 작은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모니터 앞의 묵직한 책상에 앉아 있던 교수는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이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반응과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세밀하게 모니터링했는데, 여기에는 그녀가 프로그래밍 되기 전에는 알기 힘들었을 주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질 높고 완벽한 답변에 만족한 그는 니콜라스와 동등한 권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테스트 결과들을 검토했고, 점검이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며 그녀의 향후 자율 기능에 아무런 방해 요소가 없음을 확신했다.
테스트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며 다음 주 내내 그녀의 정신과 신체는 정기적으로 검사받겠지만, 그것들은 이제 일상적인 점검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들은 오늘 끝났다. 맥킨리 교수는 이노의 성공적인 전환을 축하하며 그녀의 디지털 ID에 해당 항목을 기입했다. 하지만 물론, 로봇에게 그렇게 쉬운 일은 없다. 기록이 유효해지도록 이노는 왼쪽 가슴 아래의 작은 패널을 열었다. 그곳에는 충전 커넥터 외에도 진단 및 데이터 전송을 위한 몇 개의 작은 커넥터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케이블*로 교수 책상의 터미널과 연결하자, 이노는 문서에 개인 디지털 서명을 추가했고, 그 후 문서가 그녀의 시스템으로 업로드되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자신의 ID를 몸 안에 지니고 다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읽을 수 있는 파일이나 메모리가 아니었다. 자율 기능 허가가 추가되자 그녀의 시스템 내에 있던 몇몇 차단 장치들이 해제되었다. 전에는 그 존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없어야만 그녀는 연구소 부지를 떠나거나 심지어 진지하게 그러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 있었고, 부모님이나 언니를 만나는 등의 일도 가능해졌다. 물론 그전에도 그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미래의 만남에 대한 생각은 그저 언젠가 일어날 추상적인 일로만 인식되었었다. 이제 그것은 그녀의 우선순위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 *교수가 케이블을 준 건가, 아니면 몸에서 뽑아낸 건가? 흠. 아니면 터미널에서 뽑은 건가?//
이상하거나 심지어 미친 짓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차단 장치는, 전환 직후 오작동하는 로봇과 인간이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다른 로봇화 클리닉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소에서도 사용되는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중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고장도 나고, 소프트웨어 오류도 생기고, 부적절한 행동이나 개별 서브시스템의 기능 장애, 심지어 완전한 실패를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업데이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질병이나 부상, 즉 이전에 로봇이 정상적인 상태인 것을 보았다면 해결될 수 있는 일종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잘 기억될 모습, 나중에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될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녀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노는 그 후 가족들을 다시 보고 싶어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들이 그녀를 몹시 괴롭혔다. 그래서 그녀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실험실이었다. 교수와의 대화와 길에서 마주친 몇몇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가 이미 이해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녀의 새로운 눈이 대부분의 인간에게 무의식적인 불쾌감을 준다는 것을. 아마 이 규칙에 예외는 있을 것이고, 로봇들은 이에 꽤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 앞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다. 이 일이 없더라도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대화가 될 터였다.
그녀는 니콜라스에게 자신의 동기를 설명했고, 그는 기꺼이 그 부분을 수정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신체 개조는 이노에게 흥미로운 새로운 경험이었다.
같은 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자신을 유지보수 모드로 전환하고 페이스플레이트의 잠금을 해제하고 분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페이스플레이트는 전처럼 다시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지만, 이제 그녀에게 다른 얼굴은 없었다. 그 아래에는 그녀의 '두개골'인 금속 표면과 노출된 턱이 있었다. 일어난 일은 감각 배열의 일부가 꺼지고 기능이 부분적으로 제한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아마 이노가 유지보수 모드가 아니었다면 이 상태의 자신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고, 니콜라스도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했겠지만, 프로그래밍이 그런 충동을 막았다. 유지보수의 신속하고 오류 없는 완료에 우선순위가 주어졌다. 그래서 이노는 얌전히 페이스플레이트를 손에 들고 니콜라스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그가 작업에 집중하게 해주었고, 딴생각에 빠지지 않게 했다. 남자는 프레임에서 두개골 전면 세그먼트의 나사를 풀어 전선과 아래쪽 힌지 마운트에 매달리게 한 뒤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노의 두 눈을 하나씩 교체했다. 전용 도구로 프레임의 홈에서 눈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전선과 가습 시스템 튜브를 분리한 뒤 새 눈을 연결해 제자리에 밀어 넣었다. 소녀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 과정을 견뎠는데, 이는 단순히 유지보수 모드의 루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실명에 대한 공포는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이며 단기적인 시력 상실조차 매우 힘들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여느 로봇과 마찬가지로 이노는 어떤 결함도 복구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고, 정신에 대한 더 큰 통제력과 사고 과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 덕분에 공포증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시스템에서 장치 드라이버가 비활성화되었다가 시작되는 방식, 새 장치와 통신하고 자동으로 재설정되는 방식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기까지 했다.
두개골 전면 세그먼트를 제자리에 나사로 고정한 후, 니콜라스는 페이스플레이트를 연결하게 하는 대신 물었다.
"이런 모습의 자신을 보는 데 관심 있어?"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정말 궁금하긴 하네." 그녀가 대답하더니 단조로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유닛 RF-DCG-7093이 일반 모드로의 조기 전환을 요청합니다. 기술진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요청 승인." 니콜라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노의 몸에 있는 인디케이터들이 즉시 색을 바꿨고, 그녀가 외쳤다.
"와우! 고마워!"
그녀는 즉시 의자에서 뛰어 내려가 힐 소리를 바닥에 울리며 거울로 달려갔다.
"세상에, 이 상태의 나 정말 징그럽네!" 그녀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즐거운 듯 말했다.
니콜라스가 따라가 옆에 섰다.
"로봇이 된 기분이 어때?"
"최고야! 나 자신을 기계 장치로 보는 게 너무 좋아."
"당연하지, 네가 그렇게 프로그래밍했으니까." 그가 대답했다.
"상관없어! 내가 프로그래밍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황을 더 멋지게 만들 뿐이야. 내가 이걸 원했던 걸 기억해. 하지만 역시 얼굴이 있는 게 더 나아 보이네."
그녀는 능숙하고 정확하게 페이스플레이트를 다시 제자리에 밀어 넣었고 이음새가 밀봉되기를 기다렸다. 새로운 푸른 빛을 내는 눈이 그녀의 얼굴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 소녀를 보는 것이 니콜라스에게는 훨씬 즐거웠고,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내면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렇게 그녀는 더 로봇처럼 보였다.
"자, 이제 부모님 만날 준비 됐어?"
"아직 완전히는 아니야. 내 정액 포드(Spermpods)* 교체하는 것 좀 도와줄래? 테스트 후에 아직 여유 공간은 충분하지만, 그래도..."
//*영어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액체를 받는 유리병 같은 것...//
"문제없지." 그가 대답했다.
니콜라스는 로봇들이 이것을 일종의 위생 절차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노는 그대로 둘 수도 있었지만, 컨테이너가 비어 있어야 더 깨끗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빈 테이블에 누워 패널을 열고 다시 유지보수 모드로 들어갔다. 약간의 떨림과 함께 니콜라스는 그녀가 세 개의 컨테이너를 모두 교체하는 것을 도왔다. 4분의 1도 차지 않았지만, 그 역시 그 안에 더 이상 테스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은 그들에게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계 장치에 질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그는 이노를 자신의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의 몸이 어떤 기계에 의해 박혔다는 사실은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더러워진 컨테이너들을 테스트 장치 하단, 접힌 매니퓰레이터 옆에 있는 세척 설비에 넣었다. 그동안 이노는 패널을 닫고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니콜라스의 전화를 빌려, 소녀는 메모리에 기록된 연락처 목록을 찾아 언니의 번호를 눌렀다. 이 목록은 그녀가 미리 자신의 폰에서 내보내 프로그래밍 데이터에 추가해 둔 것이었다.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리나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아직 직장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내동생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되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뻐했고, 전환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즉시 조퇴를 결정해 문제를 해결했다. 만남을 저녁까지 미루고 싶지 않았다.
//참고: 이노의 폰과 모든 소지품은 집에 남겨졌다. 흠? 하지만 옷 몇 벌은 여기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음, 아니면 부모님이 계획을 미리 알지 못하게 니콜라스에게 옷을 좀 맡겨두었다고 가정하자.//
니콜라스와 이노는 연구소와 아주 가까운 지하철역을 이용해 약속 장소로 이동했고, 리나가 오기로 한 카페까지 두 구역 정도를 걸었다. 소녀의 새로운 몸은 가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과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섹스봇의 등장과 그들의 나체는 타인들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이노처럼 독창적인 디자인의 로봇은 드물었다. 도중에 다음 역에서 탄 한 섹스봇이 흥미로운 듯 소녀를 바라보더니, 미소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노는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이 몸짓의 교환을 생각하며, 니콜라스는 그 섹스봇이 이노의 몸이 완전 새것이라는 걸 알아챘음을 깨달았다. 이는 그로 하여금 이노가 앞으로 겪게 될 로봇 삶의 한 측면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피부와 달리 로봇 신체의 피복 재질은 자연적으로 재생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세한 손상과 마모로 덮이게 된다. 내구성을 높여도 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니콜라스는 전에도 어머니와 아스트리드에게서, 특히 외적 매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연구소의 교구들에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여성형 로봇들이 이 문제에 처음 직면한 것은 로봇화 기술이 등장한 직후였고, 지금 사용되는 것과 같은 더 발전된 다층 재질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한동안 그들의 삶에 불편함을 주었다. 초라하게 낡은 실리콘 인형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의 여성형 로봇들은 정기적으로,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 일종의 미용 시술을 받는다. 전기 화학적으로 외부 코팅 필름을 제거하고 새 필름을 입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주 깊은 상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동 흔적을 지울 수 있지만, 고성능 로봇 시각으로 보면 새 재질과 복원된 재질의 차이가 느껴질 수 있다.
//참고: 기억이 맞다면 사이버펑크 2077에서도 비슷한 걸 볼 수 있다. 어떤 캐릭터들은 인공 사지에 마모 흔적이 있다.//
가는 내내 니콜라스는 이노의 새로운 키와 그에 수반되는 가느다란 힐의 덜컥거리는 소리에 계속 적응해 나갔다. 둘 다 그녀 외모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다행히 니콜라스는 하이힐 신은 여자를 좋아했기에 이노의 이런 특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노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그는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물어보기까지 했다. 설정값이 그녀의 반응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리나는 이미 와 있었다. 그녀는 입구가 잘 보이는 카페 안쪽 테이블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막내동생이 아무리 변했어도 그녀는 즉시 알아봤고, 전체적인 실루엣을 보며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더니 곧바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하, 너 정말 끝내주는데, 동생!" 그녀는 그들을 맞이하러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노를 껴안았다. "다시 봐서 정말 기뻐!"
"나도 기뻐!" 이노가 포옹에 화답하며 대답했다. "내 변한 모습 마음에 들어?"
"강렬하네, 의심할 여지 없이!" 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봐, 키도 컸잖아!"
"노력 좀 했지." 이노도 함께 웃었다.
힐 덕분에 그녀는 언니보다 눈에 띄게 커졌는데, 전에는 둘 사이에서 모든 게 반대였다. 리나가 태어날 때부터 조금 더 컸고, 게다가 평소 스포츠화나 굽 없는 신발을 선호하던 이노와 달리 리나는 중간 굽의 신발을 자주 신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티 나네!" 리나는 여전히 낄낄거리며 동생을 품에서 놓아주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멋지긴 한데, 부모님께 이 모든 걸 어떻게 설명할지 상상도 안 된다." 그녀가 좀 더 진지하게 덧붙였다. "내가 널 잘 몰랐다면, 네 생각이 아니라 네 남자친구 생각이라고 의심했을 거야."
"이노 생각이에요!" 니콜라스가 약간 걱정스럽게 확인해 주었다.
"알아." 리나가 미소 지었다. "앉아서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얘기 좀 해보자."
//*표현이 좀 부족함//
언니는 로봇 동생을 끌고 벽 쪽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니콜라스는 테이블 반대편의 의자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게 두었다. 물론 남자는 이노의 맞은편 의자를 택했다.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자매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닮아 보였다. 리나는 동생보다 조금 더 크고 체격이 있었으며,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검은 머리와 갈색 눈, 약간 더 곧은 코와 조금 다른 눈매를 가졌다. 이노와 대조적으로 그녀는 비교적 짧은 헤어스타일[지금은 보브 컷이나 그 비슷한 것]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나란히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면 그들이 가까운 혈연관계라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이제 로봇화가 그들의 키를 맞추었고, 앉아 있는 동안에는 힐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의 얼굴은 같은 높이에 있었고, 이는 한편으로는 유사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 신체가 가져온 차이점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노의 광택 나는 실리콘 코팅은 언니의 생기 넘치는 피부와 대조를 이루었고, 그녀의 눈은 푸르게 빛났으며 귀 부분의 크롬 표면은 천장 조명을 받아 번뜩였다. 동생이 맨가슴을 드러내고 반짝이는 동안, 언니는 사무직 종사자다운 비즈니스 차림이었다. 밝은 블라우스, 타이트한 스커트, 어깨에 걸친 남색,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재킷?*. 그녀가 서 있을 때 니콜라스는 그녀의 어두운 스타킹과 중간 굽 펌프스를 눈여겨보았었다. 그리고 지금, 니콜라스는 걱정스러운 언니 옆에 앉아 있는 이노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특히 예리하게 의식했다. 동생이 나체 말고 또 무엇을 소외시켰을지 걱정하는 게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사실 나체에만 국한될 리가 없었으니까.
//참고: 로봇은 호흡과 관련된 신체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는 비싸고 믿음직한 코팅 신체 등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이를 위해 근육 서브시스템을 제어하는 특별한 서브루틴을 설치해야 하지만, 이노는 거절했다.//
"자, 음, 내 몸은 이미 보고 있겠지만, 내 뇌는 그렇게 많이 고치지 않았어."
"남들한테나 통할 소릴 해라.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거니, 꼬맹아? 네가 스스로를 재작성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발가벗고 올 리가 없다는 건 내 평생을 걸고 장담해. 알다시피 나도 너랑 같이 공부하진 않았어도 그쪽 관련해서 읽은 게 좀 있거든."
"이건 내 독자적인 개발품이야." 이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음, 우리 공동 개발이지." 그녀가 즉시 정정했다. "언니도 읽어봤으면 알겠지만, 난 어느 정도 나 자신을 튜닝할 수 있잖아."
"그래, 알아. 그래서 새로 생각해 낸 게 뭔데?"
"내 나체를 어떻게 인식할지 커스터마이징 하는 기능을 만들었어. 슬라이더를 옮기기만 하면, 짠, 벌써 생각이 달라지는 거야. 상상이 돼?"
"와우. 그렇게 간단해? 그냥 슬라이더만 옮기면 된다고?"
"응! 진짜 멋지지?"
"헤. 딱 너답네. 네가 그 방식에 환장할 거라는 데 내 돈 전부를 건다. 좋아, 이건 이해했어.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다닐 계획이니, 아니면 그냥 테스트용이야?"
"음, 솔직히 말하면 계속. 설정하고 나니까 더 이상 신경 쓰이지도 않고,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어. 반대해?"
리나가 동생을 바라보았다.
"반대할 게 뭐 있어? 보기 좋네. 숨길 게 아니라 자랑할 만한 몸이고, 네 마음에 든다면 안 될 거 없지. 하지만 바꾼 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치? 또 뭘 기대해야 할지 말해봐."
"오, 음... 이제 온갖 거미나 곤충도 안 무서워하고, 아마 체육관 가는 일로 언니 귀찮게 할 일도 없을 거야. 그쪽 관심은 다 지워버렸거든. 다이어트 고민도 안 할 거고. 이유는 알지? 또 뭐가 있더라? 집중력을 좀 높였고, 기술적인 요소가 없는 창작 활동에 대한 관심도... 노래나 그림 같은 걸 시도해 보고 싶어. 그러고 나서 뭘 더 개선하고 뭘 뺄지 결정할 거야. 춤도 실험해 보기로 했고 자유 시간에 시도해 보겠다고 약속했어. 로봇의 완벽한 동작 조정 능력이면 내 커스텀 디자인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그리고 니콜라스,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억지로 같이 추자고 안 할 테니까. 음, 아주 조금은 시킬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어떤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조정해서, 절대 걱정하지 않게 만들었어. 전에는 어땠는지 기억하지?"
"기억하지." 언니가 동정 어린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넌 다 극복했다고 주장했었지만. 아니었니?"
"극복했었어. 하지만 만약을 위해 확실히 해두는 게 좋으니까."
니콜라스의 얼굴에 어린 당혹감을 보고, 리나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얘가 말 안 했어? 연구소에서 공부 시작했을 때, 기계가 된다는 전망에 좀 겁먹었었거든. 나중에 나한테 털어놓길, 미친 듯이 프로그램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지만,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건... 그러니까 로봇을 구성하는 그 모든 것들을 보는 건 여전히 두렵다고 하더라고. 내가 달래줘야 했지. 왜 이 모든 게 필요한지에 대해 얘길 많이 나눴고 난 그 아이디어를 이해한 것 같았어. 어쨌든 보다시피 난 말리지 않았어. 비록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게 예쁜 아가씨에겐 흔치 않은 꿈이긴 하지만, 안 그래?"
니콜라스는 뻔한 말에 대꾸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고쳤어." 이노가 말했다. "기본 프로그래밍으로도 혹시나 내 정신 밑바닥에 그런 공포가 남아 있다면 문제를 제거해 줬겠지만, 알잖아... 그냥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론 부족했어. 그래서 내 취향대로 만들었지." 이노가 미소 지었다. "그 외에도 거기서 많은 걸 고쳤어. 다 나열해 줄까?"
"나열해 봐, 나열해 봐. 이제 너한테 뭘 기대해야 할지 알아야겠으니까."
이노는 자신의 정신에 적용된 소프트웨어 수정 사항 목록 전체를 읊기 시작했다. 리나는 점점 더 놀라움과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경청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손을 들어 동생의 이야기를 끊으며 물었다.
"이봐, 너 너무 과했던 거 아냐, 동생아? 다 멋지게 들리긴 하는데, 왠지 너무 많아. 너 거기 있긴 한 거니?" 그녀가 약간 과장해서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바로 그 얘길 한 거야. 인격의 핵심은 주변부 수정에 저항력이 있고, 그걸 바꾸는 프로그램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너무 과하지 않게 제가 확인했습니다." 니콜라스가 덧붙였다. "환경 요소조차 그녀를 전혀 멈출 수 없겠지만, 전 충동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 총각, 네 말이 맞아. 얘가 좀 고집불통이어야지. 그런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굳이 발가벗고 다니기 시작한 거야?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네."
"프로그래밍을 위해서지." 이노가 두 팔을 벌렸다. "이게 생각과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내 꿈이었어. 그것도 즉각적으로 말이야."
"알았다, 이 매니아 녀석아." 리나가 이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가 즉시 손가락을 문질렀다. "젠장, 너 진짜 딱딱해졌구나."
"그럼!" 이노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약간 불안한 듯 물었다.
"손가락 괜찮아?"
"괜찮아, 겁먹지 마. 그래서 내가 같이 가주길 바라는 거니? 둘이 같이 집에 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응. 언니도 알다시피 이게 그렇게 쉽게 풀릴 일은 아니잖아. 설명이 필요할 거야."
"그래, 동생아, 네가 스스로 고생길을 열었구나. 아니면 그냥 옷을 입으면 다 해결될 일 아냐?"
"싫어, 난 이게 정말 좋아. 어제 갑자기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래, '훌륭해' 보이네, 아무도 부정 못 할 거다. 좋아. 어떻게 설명할지는 생각해 뒀니?"
그들은 카페에 두 시간 정도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리나는 동생이 새로운 상태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매우 궁금해했다. 니콜라스는 자매가 대부분 자신을 대화에 끼워주지 않는 틈을 타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이동할 시간이 되자 리나가 택시를 불렀고, 그들은 금방 자매의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리나는 그들의 등장이 갑작스럽지 않도록 미리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이노의 집 문은 열려 있었고, 아야코 베텔이 문턱에 서 있었으며 베텔 씨가 그 뒤에 있었다. 리나가 먼저 나갔고, 그녀를 본 어머니는 두 딸을 하루빨리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다가왔지만, 뒤따라 걸어오는 둘째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기울여 앞으로 나선 소녀를 쳐다보았다. 행복, 당혹감, 의구심,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이노, 얘야, 이게 대체 무슨 꼴이니?"
"저예요." 그녀는 보란 듯이 자신을 가리켰다. "네, 분명히 저 맞아요."
"그래, 그래.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네 모습을 완전히 다 보여주기로 결정한 거니? 있는 그대로?"
"음, 대체로 그래요. 제 모습이 마음에 들거든요."
"네가 예쁘다는 건 안다, 아가야. 하지만 그걸 모두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잖니."
마지막으로 내린 니콜라스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서 전체적인 풍경을 둘러보았다. 베텔 씨는 여전히 문턱 밖, 입구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익숙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약간 억지스러워 보였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노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첫인상을 더 이상 말로 표현하지 않고 주도권을 아야코에게 넘겼다. 어머니는 나란히 선 자매 앞에 두어 걸음 서서 딸이 회개하거나 적어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하려 애썼다. 두 사람의 고집을 고려할 때 꽤 오래 걸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 끼어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왜 숨겨요?" 이노가 미소 지으며, 어머니가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외쳤다. "그나저나, 왜 절 봐서 기쁘다는 말씀은 안 하세요? 전 엄마를 봐서 정말 기쁜데!"
그녀는 어머니와 떨어져 있던 두어 걸음을 잽싸게 좁혀 그녀를 껴안았다. 잠시 당황하던 아야코는 이내 포옹을 받아주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딸을 밀쳐내지는 않을 터였다. 베텔 씨가 진짜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할 말이 있었겠지만, 아내와 마찬가지로 나중으로 미루는 쪽을 택했다.
"오, 딸아, 정말 많이 컸구나." 아야코가 조용히 말했다.
잠시 후 이노를 품에서 놓아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라, 이 바보 녀석들아(Boobies)*.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얘기 좀 해보자. 복도(Site)**에 서 있을 거 없으니."
//*'멍청하거나 어린애 같은 사람'이라는 뜻. 이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다.//
//**건물 엘리베이터 근처의 공용 공간을 뜻하는 적절한 단어를 모르겠다.//
베텔 씨는 문가에 비켜서서 그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큰딸에게 따뜻하게 미소 지었고 막내에게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며 모호한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기행에 대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들어온 니콜라스와 악수를 나눴고, 예상치 못하게 윙크를 해 젊은이를 완전히 벙찌게 만들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남자는 자신이 정말 본 게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여전히 이 엄격해 보이는 남자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노가 아버지에 대해 해준 이야기는 그의 머릿속에 꽤 모호한 이미지를 남겼다. 지적이고 교양 있으며 박식한 사람의 올바른 매너와 강한 자제력 아래, 때때로 모험과 파격적인 행동을 즐기는 성향이 숨겨져 있다는 이미지였다.
식탁에서 세 사람은 소녀의 부모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이노가 중앙에, 남자친구와 언니가 양옆에 앉았다. 니콜라스가 지난 방문 때 익숙해졌던 가족 전통을 깨고, 아야코는 식탁 위의 간식을 먹기도 전에 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부터 시작했다.
"리나, 너 얘가 이런 짓 꾸미는 거 알고 있었니?"
"아뇨, 엄마. 하지만 이노도 이제 성인이고, 뭐, 보기에 나쁘지도 않잖아요?"
"그럼 넌 얘 편을 드는 거니?" 베텔 부인의 엄격한 말투로는 이것이 화가 난 건지 기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리나는 오늘만 해도 수십 번째로 동생을 힐끗 보았다.
"그런 셈이죠. 뭐가 문제예요? 옷 안 입고 다니는 거요? 엄마 동창 미란다 아줌마도 그렇게 다니잖아요. 4년 전쯤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엄마 아무 말 안 했으면서."
//*미란다가 몇 시간만 머물렀던 방문객이었나, 아니면 며칠 동안 묵었던 손님이었나? 흠... 만약 정말 손님이었다면... 논쟁의 복잡함을 낮추려는 계획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아야코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에겐 뼈아픈 논거였다.
"그 사람은..."
"그 사람도 이노만큼이나 성인이에요." 어머니가 무슨 말을 생각해내기도 전에 리나가 말을 잘랐다.
니콜라스는 모녀 사이의 이 논쟁을 듣고 있기가 조금 불편했다. 이노는 아직 끼어들지 않고 언니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짐작만 했던 일이었다. 가끔 니콜라스는 베텔 씨를 훔쳐보았지만, 그는 다시 완벽한 신사의 가면을 쓰고 이 문제에 대한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야코의 성격이 까다롭긴 해도 그녀는 종종 남편의 입장에 귀를 기울였다. 반대로 아버지가 아내의 편을 든다면 이노가 자신의 결정을 방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너희 둘은 다 알겠다. 항상 막내가 미친 아이디어를 내면 네가 감싸고 돌지. 너희 둘이 그렇게 잘 지내는 건 기쁘지만, 가끔은 너무 멀리 간다니까. 자, 이노, 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니? 네 생각이었어?"
"제 생각이에요, 제 생각. 니콜라스는 말리려고까지 했는걸요."
"말린다고 들을 너냐, 참나." 아야코가 냉소적으로 낄낄거렸다. "그래도, 대체 왜?"
"이런 몸에 어울리니까요?" 이노가 가장 쉬운 논거를 내세웠다.
"진지하게 말해라." 어머니가 말했다. "좀 더 설득력 있는 걸로 생각해 봐, 딸아."
"나중에 옷값을 아끼고 싶어서일지도 모르죠?"
"오, 그래, 가계 예산까지 걱정해 주니 참 기특하기도 하구나.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하지만 전 계속 이렇게 지낼 생각이에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단순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걸 넘어서 정말 이런 모습으로 있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정확히 뭐가 작동한다는 거니?" 아야코가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제가 개발한 반응 교정 알고리즘이죠. 그게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 그래, 그러니까 네 반응이 교정됐다는 거구나. 그게 많은 걸 설명해 주네. 그래서 얼마나 잘 작동하는데?"
"엄청 잘 돼요, 엄마. 아마 이 플러그인은 일반 판매 허가까지 날지도 몰라요."
"와우, 대단하네." 아야코가 약간 비꼬듯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 네... 차림새 때문에 불편한 건 전혀 없니? 전혀? 아무것도 널 괴롭히지 않아?"
"네, 다 괜찮아요. 음, 제가 벌거벗고 있긴 하지만 그게 문제인가요? 전 이게 편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계획이고요."
"부모님 골탕 먹이려는 장난이 아니었단 말이니? 다 진심이야?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이해하고 있고?"
"다 이해해요. 하지만 저한테 잘 어울리고, 엄마도 알다시피 매년 사람들이 나체에 대해 점점 더 무덤덤해지고 있잖아요."
//[이미 로봇이 아닌 사람들도 가끔 토플리스로 다니고 사람들은 괜찮아한다.]//
"그렇지."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Sebastian),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딸이 성숙해졌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생각했다고 봐야겠지." 아버지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있을 때 네 사랑하는 사람들*(가까운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네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구글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이 단어를 제안하지만,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리나가 대화에 끼어들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 덕분에 그녀는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고 기가 좀 죽었다.
"이해해요, 아빠." 이노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저예요. 전... 이게 부모님께 너무 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오, 얘야, 넌 여전히 우리 딸이란다." 세바스찬 베텔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업그레이드 결과로 나온 것들을... 우리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후 대화는 한결 수월해졌고 긴장감도 사라졌다. 아야코는 이노가 무슨 짓인가 저지를 줄은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비록 그게 뭔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체는 그들이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는 나았다.
어머니의 눈에서 심판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고 갈등을 다시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적어도 손님들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나중에 논쟁이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엔 너무 일렀다. 지금 부모님은 그저 딸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쁠 뿐이었다. 조립과 데이터 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17일이나 떨어져 있었고, 그동안 무언가 잘못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는 일반적인 클리닉에서 걸리는 표준적인 3~4일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고, 그들은 니콜라스를 압박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저녁의 남은 시간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아무도 기술적인 세부 사항을 파고들지 않았고,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노와 리나의 어린 시절 재미있는 일화들을 추억했다. 자매는 당황하며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이노를 제외한 모두가 어머니가 만든, 니콜라스의 입맛에는 생소한 국가 전통 요리를 먹었다. 게다가 리나와 니콜라스는 1.5인분씩 먹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습관적으로 로봇 딸 앞에 접시를 놓았다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그 접시의 내용물을 두 사람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 난처한 순간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는 딸의 새로운 상태에 여전히 적응해야 했다.
밤늦게, 약간 과식한 상태로 니콜라스는 집으로 향했다. 이노를 불러내거나 밤 산책을 시킨 뒤 자기 집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이 중요한 날에 그녀를 부모님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참고: 이 챕터가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니콜라스는 교수가 정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실험실에 도착했다. 딱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도 교수 감독하에 이노의 시스템을 새로 테스트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계획도 없었기에, 실험실에 먼저 와 있는 그녀를 보고 니콜라스는 조금 놀랐다. 평소 이노는 약속 시간보다 그렇게 일찍 오는 편이 아니었다. 교수님이 오기 5분, 길어야 10분 전쯤에나 나타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이노는 기본 진단 포트를 통해 컴퓨터에 몸을 연결한 채, 자신의 시스템 내부와 외부를 샅샅이 점검하고 있었다. 인간이었을 때 미리 준비해둔 프로그래밍과 지금 업로드된 데이터를 하나하나 대조해 보는 모양이었다.
“뭐 예상치 못한 거라도 발견했어?” 니콜라스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아니, 다 괜찮아. 그냥 패키지 준비할 때 내 심리에 대해 놓쳤던 부분들을 좀 더 자세히 파헤쳐 보고 싶어서.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구나.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는데?”
“1시간 58분 13초.” 그녀는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와, 왜 나한테 일찍 오라고 연락 안 했어?”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어. 그냥 아침에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길래, 여기 와서 나 자신을 탐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거든. 자는 너를 깨우고 싶지도 않았고.”
“오, 고마워. 그나저나 어제 내가 가고 나서 저녁은 어땠어?” 니콜라스가 슬쩍 떠보듯 물었다.
이노는 어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아름답고 매끄러운 나체의 로봇 소녀. 어머니와의 말다툼이 다시 시작됐더라도, 딸을 설득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이 분명했다. 얼굴에도 새로운 화장의 흔적은 없었다. 공장에서 출고될 때 안면 패널에 적용된 은은하고 영구적인 채색 그대로였다. 이건 로봇이 된 여자들에게 아주 큰 장점이었다. 특별한 날이거나 변화를 아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몇 달 동안 완벽한 외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피부 관리 제품도 필요 없었다. 그저 6개월에 한 번 정도, 색이 바래거나 미세한 흠집이 난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안면 패널을 다시 도색하기만 하면 됐다. 단점이라면, 실리콘 코팅에 맞지 않는 일반 화장품 대신 로봇 전용 화장품을 써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밤이 어땠냐고 묻는 게 빠를걸….” 그녀가 질문을 가볍게 넘기며 손을 내저었다. “몇 시간 동안 짐 정리를 하면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골라냈어. 그런데 있잖아, 정말 놀라운 게 뭔지 알아? 잠잘 필요도 없고 지치지도 않으니까 시간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 1초 단위로 시간을 인지하고 있는데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그리고 예전에는 그 ‘기술적 모드(잠)’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새삼 놀라게 돼. 이제는 멈추지 않고, 피곤함도 없이 모든 시간을 다 쓸 수 있어. 이거 정말 환상적이고 편해!”
“그으으래.” 그가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나도 그렇게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그럴 기회가 없겠지.”
“안타깝네. 이거 진짜 끝내주는데. 난 로봇이 돼서 너무 좋아. 기술적인 사소한 한계 같은 건 상관없어. 그냥 믿을 수 없을 만큼 쿨하니까!”
“그래.” 니콜라스가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어제 진짜 별일 없었던 거 맞지?”
“당연하지. 엄마는 생각만큼 내 외모에 반대하는 건 아냐. 물론 한동안은 엄마의 불만을 견뎌야겠지만. 사실 엄마는 내가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런 결정을 자기랑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는 거에 더 화가 난 거야.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말이지.”
“그래? 아버지는 어떠셔? 내가 보기엔 너무 쉽게 널 지지해 주시는 것 같던데.”
“음, 나도 그러길 바랐어. 아빠는 겉보기만큼 엄격한 분이 아니거든. 반항심이 뭔지도 잘 아시고. 내가 누구 성격을 닮았겠어?” 그녀가 씩 웃었다. “아빠는 내가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해 주셔. 만약 5년이나 7년 전이었다면 나도 이런 모험은 안 했겠지만, 요즘 로봇들이 나체로 다니는 게 얼마나 당연해졌는지 아빠도 보시잖아. 심지어 평범한 여자들 중에도 토플리스로 다니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니까. 물론 아무나 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이노가 킥킥거렸다.
니콜라스는 이노가 뇌 스캔을 받기 몇 주 전에 목격했던 장면이 떠올라 얼굴을 찌푸렸다. 쇼핑센터 푸드코트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생각났다. 짧은 스커트에 타이즈, 구두만 신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로봇은 아니었다. 몸매가 그렇게 훌륭한 편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노의 말이 맞긴 했다. 지난 몇 년 사이, 로봇들과 경쟁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여자들이 토플리스 차림을 시도하곤 했다. 물론 인간인 그들은 로봇과 달리 주변 온도 같은 환경 요인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말이다.
“아, 그렇네.” 그가 대답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신경 쓰이지 않으실까?”
이노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아. 지금 내 설정으로는 사람들이 왜 나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지 진심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거든. 가능한 원인들을 데이터로 가지고 있고, 추상적 사고 서브시스템을 돌려서 동기나 행동 패턴을 계산해 보긴 하지만, 원시 데이터가 불완전해서 그런지 내 프로그래밍상 나 자신에게 투영하기가 힘들어.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분석 결과가 말해주는 게 중요하지.” 그녀는 숨을 고르듯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숨이 찬 게 아니라, 인간이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일종의 ‘대화용 휴지기’였다. “있잖아, 아빠 직장에는 여자 로봇이 꽤 많아. 사실 거기 여자들 중 절반 이상이 로봇이고, 심지어 ‘섹스봇’ 모델도 몇 명 있거든.”
“아빠 부서장님도 로봇으로 전환한 뒤에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야. 전환 덕분에 얻은 이점들로 성과를 내서 승진하신 거지. 그래서 로봇 직원들한테 보너스도 듬뿍 주셔.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지원 기금까지 만드셨다니까. 그분 지론이 로봇의 생산성과 작업 품질이 인간보다 훨씬 높고 실수도 적다는 거야. 들어보니까 실제로 그 부서 실적이 엄청 좋아져서 이사회에서도 아무 말이 없대. 그러다 보니 로봇이 넘쳐나는 거지. 부서 비서랑 문서과 직원 중에도 섹스봇 모델이 있는데, 둘 다 나체로 다녀. 그것 말고도 디자인실에 있는 다른 펨봇(fembot) 하나는 아빠랑 같은 사무실을 쓰는데, 걔는 프로그래밍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서 맨날 토플리스로 다닌대. 내가 예전에 물어봤더니 자기 가치관에 대해서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그러니까 아빠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직장 생활이 힘들 지경인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그냥 나를 믿어주셔. 내가 충동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정말 깊이 고민했다는 걸 아시니까. 내가 진심으로 원한다는 걸 아시는 거지. 반대할 강력한 명분도 없으시고—나도 없길 바랐지만, 이제 확실해졌어—그러니 내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으시는 거야. 여기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러셨거든. 게다가 내가 너무 멍청한 짓은 안 할 만큼 신중하다는 것도 아시고, 무엇보다 로봇에게 억지로 섹스를 강요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 계신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지.”
(참고: 정상 상태에서 로봇의 외음순은 인공 근육에 의해 닫혀 있어 성기 모듈의 디테일을 숨기고 비교적 ‘순결한’ 외형을 유지한다. 인간과 달리 이 근육은 지치지 않으며 로봇이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안전상의 이유로 이 근육이 매우 강력하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로봇의 의지에 반해 외부에서 강제로 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참고: 대부분의 직원 급여는 기금의 도움 없이도 대출을 통해 전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나쁘지 않다. 다만 기금은 대출을 마음 편히 갚을 수 있고 해고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보증 역할을 한다. 물론 직원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다면 보증도 소용없겠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니콜라스는 그녀의 논리와 새로운 정보들을 곱씹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렇구나. 아버지가 널 지지해 주셔서 다행이다.” 그가 마침내 한마디를 뱉었다.
“응, 정말 좋아. 안 그랬으면 내가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 아마 설정을 바꿔서 옷을 입어야 했겠지….”
니콜라스는 그 말이 마치 비극처럼 들리는 게 우스워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어머니도 같은 부서야?”
“응.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네. 엄마도 몇 년 전에 아빠랑 로봇 전환에 대해 상의한 적이 있어. 근데 그때는 인간으로 있는 게 좋고 프로그래밍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확신이 안 서서 일단 보류하셨거든. 그래도 완전히 포기하신 건 아냐. 몇 년 안에 엄마도 결국 로봇이 될 거라고 확신해. 그때쯤이면 나도 학자금 대출을 직접 갚고 있을 테니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길 거고, 무엇보다 노화라는 건 유기체 몸에 집착하는 걸 멈추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동기니까.”
“허. 왜 내 주변 여자들은 결국 다 로봇이 되거나 로봇이 될 계획인 것 같지?”
“그야, 우리 중 하나가 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그녀가 씩 웃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욕구야.”
(이 부분은 프로그래밍 때문에 그녀가 로봇을 ‘자신의 종족’으로 인식하게 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점이다.)
두 사람은 지도 교수인 엘리엇 맥킨리 교수가 새로운 테스트를 직접 참관하러 오기 전까지 이노의 새로운 경험과 향후 계획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다. 교수의 감독하에 니콜라스는 이노의 오른쪽 귀 유닛 위쪽 머리 덮개를 열고 메인 컴퓨터에 전선을 연결한 뒤 분석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정상 모드 상태였던 그녀는 이런 연결 과정에서 가벼운 불안감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어 교수의 지시에 따라 그녀가 플러그인의 설정을 변경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그녀의 의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느 정도의 파라미터 값에서 모듈이 조정되는지, 그리고 어느 순간 행동 모델이 교체되며 로봇 소녀의 모습으로 부드럽게 변해가는지를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교체 과정에서 지각이나 감정이 급격하게 튀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노는 자신의 업데이트된 본질, 그 프로그래밍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들며 온몸을 감싸는 가상의 열기를 억누르려 하지도 않은 채 이 테스트를 말 그대로 즐겼다.
모든 테스트 결과가 나오자 교수는 학생들에게 완벽한 성공이라며 다시 한번 축하를 건넸다. 그들이 개발한 플러그인은 의도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했다. 만족한 교수는 기계적 시스템까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고 자리를 비워주었다.
이노와 니콜라스는 실험실에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며 이노의 신체가 다양한 모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테스트했다. 그녀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경이롭고, 정상적인 로봇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수준의 완벽한 협응력과 균형 감각을 뽐냈다.
모든 확인을 마친 두 사람은 지체 없이 실험실을 나섰다. 이노는 오늘 챙겨온 가방에 충전 케이블 같은 로봇 생활 필수품들을 챙겨 넣었다. 니콜라스는 처음 보는 가방이라고 한마디 했고, 이노는 집에 있는 것 중에 그나마 새 몸에 어울리는 걸 골랐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든다며 조만간 더 어울리는 스타일로 새로 살 계획이라고 답했다. 옷값은 아낄 수 있으니 액세서리만큼은 시간을 들여서 정말 딱 맞는 걸 찾고 싶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노의 다음 계획은 모뎀을 구입해 모바일 네트워크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로봇인 그녀에게 이제 전화기라는 별도의 장치는 필요 없었다. 뒤통수에 있는 메인 컴퓨터 연결 보조 모듈이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모듈이 비활성 상태라 로봇 소녀로서는 약간의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서브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연구소를 나오자마자 근처 휴대폰 매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이노는 왼쪽 가슴 아래에 있는 케이블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자신의 ID 데이터를 전송하고 셀룰러 네트워크 등록을 위한 해시 코드 패킷을 받았다. 로봇들에게 이런 연결은 일상적인 일이라 그녀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인터페이스 위치는 손목이나 목, 쇄골 사이처럼 옷을 벗지 않아도 되는 곳이 일반적이지만, 이노가 선택한 위치는 주로 섹스봇들이 사용하는 드문 경우였다. 다른 용도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가슴 쪽으로 시선을 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등록보다 더 중요한 건 무선 모듈을 사서 즉시 장착하는 것이었다. 정신적 명령 한 번에 로봇 소녀의 뒷덜미에 있는 확장 모듈 슬롯 덮개가 열렸고, 그녀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장치를 그 안에 끼워 넣었다.
(참고: 고민 끝에 인터페이스 케이블은 몸 밖으로 뽑아낼 수 있게 하되, 그 옆에 외부 케이블을 꽂을 수 있는 포트도 같은 덮개 안에 두기로 했다.)
덮개가 닫히고 장치 드라이버가 설치되자, 1초도 안 되어 네트워크가 열렸다. 로봇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노는 즉각 깨달았다. 내부 시계가 세계 표준시와 순식간에 동기화되었고, 전화 모듈은 수많은 서비스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날씨, 관심 있는 교통 시간표, 최신 뉴스, 사교 행사, 그리고 앞으로 있을 업데이트 정보까지 쏟아냈다. 실시간 전자 번역 기능이 활성화되어 거의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언어 베이스에 돈을 조금 더 쓰면 선택한 언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몇 초 뒤, 충분한 위성 신호를 수신하자 그녀는 자신의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파악하고 3D 인터랙티브 지도 위에 표시된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주변의 수많은 장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휴대폰, 접속 포인트, 스마트워치, AR 글래스, 심지어 커피 머신과 전기 주전자까지—표준 무선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벽 너머에 있더라도 신호의 방향과 거리, 세기를 느낄 수 있었고 장치가 식별자를 방송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로봇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그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무선 통신’이라는 감각이었다. 이노는 이 기능에 몹시 흥분했다.
(참고: 무선 모듈은 셀룰러, Wi-Fi, 블루투스를 하나로 합친 3-in-1 장치다. 초장거리 위성 통신이나 NFC 같은 초단거리 통신 기능은 없지만, 어쨌든 이 모듈 하나로 웬만한 건 다 해결된다.)
다양한 사이트에 접속해 보고 원하는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이노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들을 설정하고 기존 휴대폰에 있던 앱 설정들을 옮겨왔다. 이제 그 휴대폰은 조만간 완전히 처분할 생각이었다. 내장된 기능 중에 화면을 보여주거나 남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이 없긴 했지만, 그것도 이미 해결책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이미지나 영상을 전송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주변에 널린 게 휴대폰인데.
(참고: 가슴 디스플레이에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결합할 수 있을까? 스피커는 따로 구해야 할 텐데. 아니면 ‘귀’ 부분에 스피커와 마이크를 합칠 수 있을까? 그건 좀 별로인 것 같다. 프로젝터는 가능하겠지만 따로 주문해서 설치해야 한다. 스피커는 그냥 가방에 넣고 다니라고 하지 뭐. 어차피 다들 휴대폰이 있으니 사진이나 영상은 바로 쏴주면 그만이다.)
휴대폰 매장을 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외곽에 있는 커다란 공원에 도착해 산책을 이어갔다. 운이 좋았다. 날씨는 따뜻했고 하늘은 맑게 개어 신선한 푸른빛으로 반짝였으며, 봄볕이 주변을 따스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전날 도시를 짓누르던 납빛 구름보다 훨씬 걷기 좋은 날씨였다.
산책하는 내내 이노는 지금 느끼는 인상과 감각들을 인간 시절의 기억과 대조해 보았다. 비교 데이터가 쌓일수록 그녀는 자신의 인격과 성격은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새 몸으로 깨어난 첫 순간부터 느꼈던 감각이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해졌다. 로봇으로서 그녀는 모든 것을 다르게 보았고, 사고 과정도 달랐으며, 가치 판단의 기준도 새로 형성되었다. 결과물은 프로그래밍으로 조정되지 않는 한 예전 인격과 비슷할지 몰라도, 그 과정 자체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제 그녀의 모든 지각은 ‘숫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감각 시스템과 계산 과정을 통해 얻은 관찰 대상의 파라미터들 말이다. 색깔, 소리, 냄새, 자신과 니콜라스의 움직임, 이동 경로와 걸음 수, 촉감과 미소, 들려오는 칭찬—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디지털 성분으로 치환되어 분석되고 저장되었다. 주변의 모든 색은 머릿속에서 컬러 코드로 변했고, 새의 노래 소리에는 오디오 스트림의 주파수 응답이 따라붙었으며, 벤치에서 나눈 키스조차 데이터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다고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중에 메모리 최적화를 위해 덜 중요한 것들을 지울 때를 대비해 특별한 순간들을 태그로 표시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저 로봇으로서의 새로운 일상일 뿐이었다.
정말 놀라운 건 모든 여성 로봇의 정신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대부분은 소프트웨어가 되기를 꿈꿨던 게 아니라, 인공 신체의 다른 장점들을 쫓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덕분에 그들은 이런 변화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니콜라스와 걷는 동안 이노는 기계적인 정밀함으로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신참 로봇인 이노는 당분간 메모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기본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은 그녀에게 메모리를 아껴 쓰라고 종용했고, 그녀는 나중에 유용할 태그를 붙이는 작업에 자동으로 연산 자원을 소모했다. 기록되는 데이터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커다란 떡갈나무 껍질의 독특한 무늬는 ‘흥미로움’. 할머니 옆에서 낑낑대는 강아지는 ‘중요도 낮음’. 8미터 높이의 나무 감시탑 모델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그물망이 쳐져 있어 안전해 보임—은 ‘사소함’, 하지만 탑의 구조 자체는 ‘관심 있음’. 인터넷에서 바로 다운로드한 인식 프로그램으로 찾아낸 ‘검은머리방울새’의 노래 소리는 ‘아름다움, 영구 저장 가능’….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작은 시냇물 위의 다리를 건너는 동안, 이노의 배경 화면에서는 데이터 처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걸 ‘의식적인 무의식’이라 불러야 할까. 인간의 뇌도 어느 정도는 항상 이런 일을 하지만, 오직 로봇만이 자신의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이 과정을 완벽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 공원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한 세기 전 도시가 팽창하면서 사라질 뻔했던 원시림의 일부를 보존해 만든 곳으로, 입구 쪽은 포장도로와 돌길로 잘 닦여 있었고 깊숙한 곳은 풀밭 위로 나무 데크가 깔려 있었다. 넓은 부지 곳곳에는 놀이터와 운동 시설, 이제 막 겨울을 나고 피어나는 꽃들이 가득한 잔디밭, 그리고 고대 조각상들로 꾸며진 환상적인 구역까지 있었다.
여기서 이노는 인간 시절 자신의 몸 일부로 만들고 싶어 했던 하이힐이 주는 고충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이건 시스템과 프로그래밍의 품질을 시험하는 피할 수 없는 테스트였다. 전환 후 처음으로 딱딱한 바닥을 벗어나 돌이 깔린 길을 밟는 순간, 움직임을 계산하고 균형을 잡는 서브시스템의 프로세서 부하가 급증하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0.1%도 안 되던 배경 프로세스가 이제는 상당한 자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에 따라 그녀는 딛는 바닥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다음 두어 걸음 안에 닿을 돌들의 크기와 모양을 계산하고, 그 아래 흙의 상태를 추측해 가장 안전하고 편한 궤적과 착지점을 찾아냈다. 혹시라도 데이터 부족으로 실수가 생겨 넘어질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예비 동작까지 실시간으로 계산해 냈다. 게다가 그녀의 새 다리는 인간의 발보다 지지 면적이 훨씬 좁았고, 이런 지형에서 힐은 전혀 도움이 안 됐기에 이 계산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이 루틴을 짠 개발자는 분명 재료 역학에 정통하고 엄청난 테스트를 거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 작업의 수준과 품질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아마 인간 소녀가 이노의 처지였다면 조심한다고 해도 조만간 발목을 삐거나 다쳤을 것이다. 다행히 이노의 발 안쪽에는 튼튼한 금속 프레임이 있었고, 관절은 훨씬 무거운 하중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노가 내부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상태와 씨름하는 동안, 니콜라스는 그저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즐겼다. 물론 그 역시 로봇화가 이노를 어떻게 바꿔놓았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전환에 대해 겨우 얻어낸 마음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뒤로 미뤄두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이 몸 안에서도 예전과 똑같기를, 아니 더 나아졌기를 바랐다. 우선은 그녀의 달라진 몸에 익숙해지는 게 급선무였다.
무의식적인 예상과 달리 이노의 손은 따뜻했고 겉보기만큼 딱딱하지도 않았다. 물론 손가락 끝에 금속의 질감과 마디 구조가 분명히 느껴지긴 했지만 말이다. 내부 가열 장치나 재료의 특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전원이 켜지기 전의 몸을 더 자주 만져봤던 그에게 지금의 감촉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훨씬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이노의 걸음걸이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힐에 적응한 수준이 아니라, 훨씬 우아하고 자신감 넘쳤으며 말 그대로 완벽했다. 예전에 그녀가 힐을 신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그녀의 원래 보행 능력, 아니 모든 운동 능력이 완전히 삭제되고 프로그램에 의해 새로 쓰인 것으로 대체되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그저 이 놀라운 광경과 느낌에 익숙해지고 즐기기만 하면 됐다.
산책 경로에 대해서는 니콜라스도 딱히 계획이 없었기에 이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녀의 업그레이드된 인생 2일 차를 배려한 것이었다.
공원의 포장된 길을 벗어나자 니콜라스는 조금 걱정이 됐다. 로봇 소녀의 새 다리가 부드럽고 울퉁불퉁한 지형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노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자주, 더 세심하게 발밑(땅바닥!)을 살피는 것 말고는 아무런 불편한 기색 없이 여유롭게 산책을 이어갔다. 니콜라스는 다시 한번 프로그래머들의 노고에 감탄했지만, 이노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지는 않았다.
도시에서나 공원에서나 그들 커플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대놓고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마주친 노인들이 나체로 다니는 것이나 로봇과의 관계에 대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니콜라스는 이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소한 일 말고는 꽤 즐거운 시간이었고, 어느 순간 이노는 그를 한적한 길가 벤치로 이끌었다. 새 몸의 감각 시스템이 제공하는 방대한 데이터 덕분에 이노는 남자의 관심을 아주 잘 읽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미소 지으며 그에게 키스했다. 니콜라스에게는 조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내심 이노가 먼저 다가와 줘서 기뻤지만, 동시에 인간 이노와 로봇 이노를 비교하기 위해 기계 장치와 키스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노 역시 그 비교 결과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굳이 묻거나 니콜라스가 말하게 두지 않으려고 애써 자제했다. 그녀는 키스 알고리즘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쑥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과거의 경험에서 물려받은 방식과 프로그래밍으로 습득한 방식 사이에서 격렬하게 고민하는 것.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로봇에게는 온전한 의미의 ‘무의식’이 없었다. 대신 의식보다 하위 단계에서 연상 메커니즘이 작동해 그녀의 인격에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지만, 여전히 수정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참고: 사실 프로그래밍이 이를 방어해 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정교한 에뮬레이션인지에 대한 실존적 위기와 의구심에 빠질 수도 있다.)
로봇과의 키스. 나중에 그 순간을 돌이켜보며 니콜라스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뜨거웠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이노의 나체는 그를 흥분시켰고, 잠시 여기가 공공장소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이노의 키스는 처음에는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험을 하는 듯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을 섞기 시작했다. 그게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예전의 그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 같았다. 익숙한 느낌도 좋았고, 새롭고 완벽한 느낌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 번째로, 업그레이드된 이노의 몸을 구성하는 재료들과의 밀착된 접촉이 주는 생경한 감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불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았지만, 인간의 느낌과는 확실히 달랐다. 몸이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결국 그는 산책이 끝날 때까지 어떤 이노가 더 나은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노이면서 이노가 아닌, 아니 예전의 이노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연구소를 나온 지 몇 시간 뒤, 니콜라스가 걷는 데 지치기 시작할 때쯤 그들은 정류장에 도착해 니콜라스의 아파트로 향했다. 이노는 진작부터 남자의 상태뿐만 아니라 버스 노선의 움직임까지 배경 화면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기에, 버스 대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걷는 속도와 회귀 지점을 완벽하게 계산해 두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며 내심 뿌듯해했다. 스스로가 기능을 아주 잘 수행한 프로그램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그녀에게 중요한 계산 중 하나는 니콜라스의 체력을 너무 소진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음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니콜라스의 집에 도착하자, 니콜라스가 신발을 벗는 동안 이노는 미리 챙겨온 물티슈로 발바닥을 닦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이제 항상 맨발로 다니는 셈이라, 신발처럼 현관에 거리의 먼지와 흙을 두고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지금의 다리를 선택할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 디자인에 단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그래도 이노는 이 디자인이 좋았고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운동 알고리즘을 갖게 된 것에 여전히 들떠 있었다.
(참고: 이걸 굳이 언급할 가치가 있을까? 보통 현관에 이런 용도의 물건을 두지 않으니 니콜라스 집도 예외는 아닐 텐데. 이노가 물티슈 같은 걸 직접 챙겨왔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겠다.)
이 사소한 가사 문제를 해결한 이노는 니콜라스에게 다시 키스하며 장난스러운(혹은 발칙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침실로 끌어당겼다. 센서를 통해 공원에서 키스한 순간부터 니콜라스가 자신을 얼마나 원하는지 생생하게 느껴졌고, 이노 역시 그를 원했다. 그녀의 감정 안에는 로봇이 되기 전부터 가졌던 친밀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 그리고 모든 로봇에게 내재된 프로그래밍된 성적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의 욕망을 느끼자 그녀 안의 해당 알고리즘들이 반응하며 그녀를 더 유순하고 화답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었다. 이노는 이런 습득된 경향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라고 느꼈다. 프로그래밍에 의해 형성된 자신의 인격 중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더 달아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대 위에서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감각은 어떻게 다를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치밀었다. 로봇화가 무엇을 앗아가고 무엇을 주었는지 평가해 보고 싶었다.
침실에 들어서자 이노는 니콜라스가 옷을 벗을 시간을 주기 위해 살짝 물러났고, 미리 생각해 둔 시나리오대로 처음 그때처럼 침대에 앉으려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첫 경험’이었기에 니콜라스에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었다. 이노는 당시의 장면과 자신의 자세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쉬울 줄 알았다. 그저 새 몸의 형태에 맞춰 자세를 다시 계산하기만 하면 됐다. 거의 자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침대에 다가가는 순간,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 짜두었던 이동 계획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이힐을 신은 채 예전 방식으로 침대에 올라가다가는 시트를 찢어먹을 위험이 있었는데, 그걸 미리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다. 급하게 새로운 이동 패턴을 계산하느라 프로세서 부하가 치솟았고, 마치 무거운 프로그램을 갑자기 돌린 컴퓨터처럼 생각이 잠시 느려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 계산에 최우선 순위를 할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과 비유가 우스워 속으로 씩 웃으며, 그녀는 1초 정도 지체된 끝에 계획대로 침대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옷을 다 벗은 니콜라스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노의 입가에도 똑같은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둘 사이의 마지막 어색함마저 녹아내리는 듯했다.
침대 위의 로봇 이노는 예전의 그녀 같으면서도 완전히 딴판이었다. 예전의 이노는 경험은 많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업데이트된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인간의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지루하게 반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적 프로그래밍에는 온갖 상황에 대비한 수천 개의 알고리즘과, 로봇화 소프트웨어 개선 프로그램에 동의한 수십만 여성의 경험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즉흥적인 변주와 스타일의 혼합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겨두었다. 프로그래밍이 그녀의 창의성을 제한하지 않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받은 데이터베이스만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 방대하고 다양했으니까. 이노가 ‘나아졌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장엄했고, 믿을 수 없었으며, 경이로웠다!
니콜라스는 그녀의 변화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이노는 새로운 자신의 상태를 만끽했다. 섹스 모드는 그녀를 놀라운 방식으로 바꿔놓았다. 주변 상황이나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파트너가 있고, 자신이 있다. 그녀는 기계이고, 지금은 아주 구체적인 목적을 수행 중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정상 모드로 돌아간 뒤에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명령에 따른 정확한 수행이었다. 모든 움직임, 신음, 질 내로 분사되는 윤활액, 그의 어깨를 짚는 손가락의 압력, 골반의 기울기까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저절로 되는 것도 없었다. 그녀의 몸은 명령에 절대복종했고, 그녀 역시 프로그래밍을 따랐다. 시스템은 섹스와 남성 해부학, 신체 반응에 대해 습득한 방대한 지식 베이스를 바탕으로 서브루틴을 선택했다. 가용한 모든 감각 데이터를 총동원했다. 코는 파트너의 체취를 분석했다. 디지털 눈은 가시광선 너머의 모든 스펙트럼으로 그의 몸을 관찰하며 호흡의 빈도와 깊이, 심박수를 분석했다. 시스템의 일부는 그의 안전과 건강, 피로도를 엄격하게 모니터링했다. 로봇 소녀는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몇 시간, 아니 며칠이고 섹스 모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인간은 훨씬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그를 과로하게 만드는 건 용납될 수 없었다. 자신의 쾌락과 그의 쾌락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찾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녀는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형태의 친밀함이든 즐길 뿐이었다. 파트너의 즐거움을 자신의 것보다 우선시하는, 섹스봇과 닮은 성적 프로그래밍의 일부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즐거움은 파트너에게 준 즐거움에서 파생되는 결과물이었다.
특별한 순간은 니콜라스가 사정했을 때 찾아왔다. 시스템이 정액의 유입을 감지하자마자 오르가즘 시퀀스를 시작했고, 이어 몸 안의 강력한 변압기들이 중화 시스템을 가동하며 낮지만 분명한 웅웅거림을 내뱉었다. 서브시스템 테스트 때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감각에 이노는 킥킥거리며 웃었고, 니콜라스도 따라 웃었다. 섹스 도중에 여자 몸에서 변압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건 그도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고,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이노의 한편에서는 ‘이 시스템은 미리 테스트 안 해봤는데!’ 하는 걱정이 잠시 스쳤지만, 다행히 모든 게 순조로웠고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 사건으로 인해 기계적인 섹스 모드에서 정상 모드로 지각이 살짝 옮겨갔지만, 이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기에 다시 단호하게 섹스 모드로 복귀해 행위를 이어갔다.
니콜라스는 로봇 소녀와의 친밀함을 즐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예전의 경험들과 비교했다. 이노의 새 몸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재료도, 밀도도, 질감과 탄력도 모두 생소했다. 기계적인 손길, 실리콘 가슴, 금속 골반의 감촉. 이 모든 것이 그의 지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노출된 관절 부위가 조금 무섭기도 했다. 프로그래밍이 철저하게 제어해주지 않는다면, 자칫 잘못된 자세에서 힌지에 손가락이 끼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움직임마다 서보 모터의 미세한 웅웅거림과 지잉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아주 특별한 청각적 배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로봇 이노는 숨을 쉬지 않았고 숨 쉬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잘 못 느끼다가도, 인간이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숨이 가빠지는 섹스 도중에는 그 사실이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저 지치지 않는 완벽한 ‘섹스 머신’처럼 행동했다. 오직 변하는 목소리의 음색과 표정만이 그녀가 느끼는 쾌락의 고조를 알려줄 뿐이었다.
기계와 섹스를 하고 있다는 기분은 어느 순간 니콜라스의 마음을 어지럽혔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의 성격을 잘 아는 그는 곧 그녀가 일부러 이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자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뻔했다.
결국 로봇으로서 얻게 된 그녀의 새로운 기량은 다른 모든 변화를 압도했고, 두 사람 모두에게 근본적으로 다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니콜라스는 이노를 품에 안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인공 신체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그녀가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막연히 이해할 뿐이었다.
제8장 끝.
이야기 끝.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