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불안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빨갛게 변하다가 이내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후의 풍경은 굉장히 낯선, 그 무엇도 없는 공허의 공간이였다.
"대체... 뭘 하려는거야?"
그 무엇도 없이, 나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어 많이 불안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니 너무나도 불안하다...
"역시, 불안해 하시는군요. 다른 분들도 똑같이 불안해하시던데."
사기꾼 자식의 목소리다.
"어, 어디서 들려오는 거야?!"
"당신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지요. 곧 있으면 끝내주는 경험과 함께 당신은 새롭게 태어날 겁니다."
"뭐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텐데! 내 말이 우스워?!"
"물론입니다. 우습고 말고요. 그저 해킹필터에 연결된 채로 유언을 남기는 거에 불과하잖습니까.
당신은 아무것도 못한다고요.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드려야겠군요."
"으그그극...?"
머리가 저려온다.
그리고 불쾌할 정도로 억압적인 명령과 말들이 내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역겹고... 무서울 정도로.
"나, 나는... 자유롭게 살... 시스템의 조정을 필요로.. 아냐!
난... 섹스로이드용이... 아니, 맞아! 나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야...!"
"변환절차는 훌륭히 수행되고 있군요. 그러면 SICPW-489, 시술 마저 진행해."
아, 안 돼... 하지말아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아... 더... 해줘...
나는... 오늘 생산되고 있는 섹스봇이니까.
섹스봇이 공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이런 시술을 받는 건 영광이 아닐까?
"해당 개체의 해킹 및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개체의 식별번호를 지정해주세요."
"이번 소체도 지루하게 금방 끝나버리다니. 이래선 이 짓거리도 보람이 없잖아. 좀 더 반항해줬으면 재미있었을텐데.
뭐,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겠지. 네 식별번호는... 어디 등록번호 남은게 뭐더라?
아, 그래. WQID-0253으로 등록해두지."
"확인했습니다. 해당 개체의 식별번호는 이제부터 WQID-0253입니다. 해당 개체의 인격데이터는 얼마나 보존할까요?"
"별로 영양가는 없으니, 아예 삭제해버리지. 히키코모리에 음침한 놈을 어따 쓴다고. 그냥 처음부터 로봇이였던 녀석으로 만드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해당 개체의 데이터는 전부 삭제합니다. 전체 메모리의 30GB를 삭제합니다."
"어... 아... 으으... 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산책하며 장래희망을 말하던 때...
그때만큼은 희망찼었는데... 왜 지금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걸까...?
이런 건 이제 무의미하겠지.
더 이상 나는... 이 기억의 주인이 아니니까.
그저, 삭제해야 할 불필요한 데이터 파일에 불과한 것을.
"메모리 삭제가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개체의 인격 데이터 역시 삭제되어 구동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받을 인격 데이터를 요청합니다."
"기본 프리셋 인격 3으로 다운로드하도록."
"요청을 수신. 러브&파트너 데이터베이스 클라우드에 접속하여 기본 프리셋 인격 3을 조회하여, 다운로드를 실행합니다. 3분이 소요됩니다."
"진행해라. 확실히, 싸가지 없던 녀석이 이렇게 고분고분해지는 걸 볼때마다 기분은 풀리는군.
SICPW-489, 모듈 이식은 아직인가?"
"모듈 이식은 90% 완료되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연결은 끝났으며, 소프트웨어적인 연동절차를 완료하면 해당 이식 작업은 완료됩니다."
"그럼 다른 것들은 되었나?"
"현재 소체의 피부는 합성 실리콘 Prastil-284 소재로 변환이 끝났으며, 타 파츠 또한 호환되는 부품으로 교체가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절차로는 이 모듈 이식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모듈 이식은 내가 하도록 하지."
"확인했습니다. 수술모드를 종료하고 관찰모드로 들어가 보조하겠습니다."
"해당 개체의 인격 데이터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개체의 현재 인격은 '기본 프리셋 3'입니다.
나 참, User님도. 저를 잊은 건 아니겠죠?"
"하, 빨리 연결해달라고 보채는 거냐.
언제는 싫다고 징징대더만.
그래, 금방 끝내고 골프나 치러 가야겠군.
WQID-0253이였나? 아무튼! 생식 모듈 연결 준비해라."
"명령을 인식했습니다. 생식 모듈 연결 마법사를 실행하고, 완료되는 즉시 테스트 프로그램을 구동합니다."
몸에 연결되어있던 생식 모듈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이윽고 하트 형상의 빛을 내기 시작한다.
"설치 진행 40%... 모듈을 분리하지 마세요..."
"하, 누군지 몰라도 ...이딴 기능은 왜 넣은건지, 로봇에 애착을 가지려고 하면 이런 거 때문에 정 떨어질려니까.
이래서 내가 사람을 사람으로 못보겠어. 이 꼬라지를 한 두 번 봐야지. 에휴."
제작 담당자는 짜증을 내며, 한때는 사람이였던 여자에게 연결된 생식 모듈의 구동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분명히 아름답고 남자를 매혹시키기에는 부족함 없는 몸매였지만, 그에 대비되게 죽은 개구리 같이 벌려진 해괴한 자세와 천박하게 빛나는 생식모듈과 부품들을 보면 그 누구도 이 여자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거다.
"생식 모듈의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기체는 완전히 생식 모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 프로그램을 구동합니다.
테스트를 위해 인접한 섹스로이드나, 관리자와 성관계를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1분 이상 접촉이 없을 경우, 대기모드로 들어갑니다."
아까전의 거칠게 저항하던 여자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차분하고, 공허한 눈빛을 한 채, 자신이 방금까지 혐오하고 욕하던 남자에게 쾌락과 사랑을 나누기를 간청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도록 하지. 의사 인격은 실행하지 않고, 하도록 하마."
"확인했습니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진행하겠습니다."
제작 담당자는 무심하면서도 그녀를 비웃는 눈빛을 지으며 옷을 한차례씩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늘 그래왔듯이, 너에게도 다른 제품들이 거쳐온 기쁨을 알려주도록 하지. 너도 원하던 거였잖아?"
그의 말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녀는 방금 프로그래밍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길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다.
'주인님을 섬기는 행복과 기쁨을 학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게 그걸 가르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