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작 「진구지 미레이와 그 주인」(novel/6968088)의 설정을 기계화 노동사에서 휴머노이드로 치환한 듯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의뢰를 받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총 3부 구성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전개 또한 「진구지~」와 비슷하게 흘러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는 건... 어라? 이런 곳에 백합 꽃봉오리가.
***
평소에는 인근 주민들만 드문드문 이용하던 사에바 역이, 그날따라 카메라를 든 철도 마니아들로 북적였다.
“슬슬 올 때 됐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플랫폼 끝에 서서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그들의 귀에, 문득 맑은 경적 소리가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와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뜨거운 시선과 렌즈가 향한 곳. 금색 장식이 곳곳에 박힌 선명한 푸른 빛의 열차가 사에바 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 이름은 ‘ROYAL EXPRESS SAEBA’. 사에바 전철이 자랑하는 임시 관광 열차였다.
(역시 인기가 대단하네.)
운전실 창밖으로 팬들의 열광적인 시선을 지켜보던 세토 메구미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사에바 전철의 직원으로서 자사 열차가 사랑받는 모습은 무척이나 뿌듯한 일이었다.
(이 기분을 그녀와 나누고 싶지만….)
메구미는 뒤를 돌아 운전석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열차와 같은 색 배합의 바디슈트를 입은 그녀는 운전석에 꼭 끼워져 있었다. 운전석에 마련된 인형(人型)의 홈에 빈틈없이 말이다. 그래, 그녀는 말 그대로 ‘운전석에 수납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홈은 인간의 몸통만큼의 공간밖에 없었다. 팔다리가 들어갈 자리는 아예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홈 밖으로 사지를 뻗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그녀는 사지가 절단된 채로 운전석 홈에 박혀 있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자세다. 그렇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조차 아니었다.
“수고했어, SH200STD-0608TD.”
메구미는 운전석에 박힌 그녀를 향해 기계 모델명 같은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한 채,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건 메구미도 예상한 바였다. 지금의 그녀는 이 열차의 자동 운전 장치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었으니까.
“자, 슬슬 준비해야겠네.”
메구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운전실 구석에 놓인 보관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푸른색과 금색으로 채색된 양팔과 양다리가 들어 있었다. 주인은 바로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 SH200STD-0608TD의 것이었다.
열차가 완전히 멈추고, 그녀의 떨림도 잦아들었다. 그걸 확인한 메구미는 그녀의 가랑이에 꽂혀 있던 접속 단자를 뽑아냈다.
“우와… 꽤 젖었네.”
단자가 빠지자마자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인간으로 치면 애액 같은 것이다. 운전 장치로 작동하는 동안, 그녀는 이 단자를 통해 지속적인 성적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메구미는 단자와 그녀의 가랑이를 페이퍼 타월로 닦아내고, 가랑이 부분의 해치를 닫았다. 그 해치에는 기체 정보와 소체(素體)가 된 인물의 이름, 그리고 제조사 이름이 적힌 플레이트가 붙어 있었다.
『고관절 유닛의 접속 해제를 확인했습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전자음으로 SH200STD-0608TD가 보고하듯 중얼거렸다.
메구미는 보관함에서 사지를 꺼내며 창밖을 보았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열차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구미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드디어 왔구나. 이윽고 운전실 문이 열리고,
『세토 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거기 나타난 것은 SH200STD-0608TD와 같은 바디슈트—아니, ‘외피’라 불리는 특수 라버 소재의 피부를 두른 휴머노이드였다. 메구미는 “수고하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좀 도와줄래요? 음, 그러니까….”
『SH200STD-1102HU입니다.』
“미안해요. 이름을 잘 못 외워서. SH200STD-1102HU,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자신을 1102HU라고 밝힌 휴머노이드는 운전석에 박혀 있던 0608TD의 몸통을 안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등 쪽에 꽂혀 있던 수많은 접속 단자들이 툭툭 빠져나갔다. 그동안 0608TD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인형처럼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세토 님, 부탁드립니다.』
1102HU가 0608TD의 몸통을 메구미 앞으로 들어 보였다. 메구미는 보관함에서 꺼낸 양팔과 양다리를 조심스럽게 하나씩 연결해 나갔다.
『사지 유닛의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몸통에 팔다리가 붙은 0608TD가 담담하게 보고했다. 1102HU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자, 0608TD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바로 섰다.
“0608TD, 괜찮아?”
『문제없습니다.』
“다행이다. 그럼 갈까.”
메구미가 운전실을 나서자 두 대의 휴머노이드가 그 뒤를 따랐다.
“오오! 이건 진짜 레어템인데!”
“운행용 휴머노이드가 두 대나 같이 있다니…!”
순식간에 카메라 셔터가 터져 나왔다. 그런 소란 속에서도 두 휴머노이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앞장에 선 메구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메구미가 사에바 전철에 입사한 것은 약 2년 전. 전 직장에서 신세를 졌던 지인의 소개 덕분이었다.
입사 직후 그녀가 맡은 일은 열차 내 매점 업무였다. 하지만 그리 바쁜 일이 아니었기에 남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다른 업무가 추가되었다.
그것이 바로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보조 업무였다.
운행 시 운전 장치로 기능하는 휴머노이드들은 시스템상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었다. 운전석에 수납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사지를 분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휴머노이드를 운전석에 세팅할 인력이 필요했고, 같은 열차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메구미가 낙점된 것이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메구미는 상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심각한 그녀의 표정과는 달리 상사는 가볍게 대답했다.
“괜찮아. 순서를 모르면 휴머노이드한테 직접 물어보면 돼. 게다가 일단 세팅만 끝나면 나머지는 기계가 알아서 하거든. 자네는 그저 약간의 준비만 도와주면 되는 거야.”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못 하겠다고 하면 일자리를 소개해 준 지인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그 새로운 직무를 받아들였다.
초반에는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운전석에 접속시키는 작업 자체는 상사의 말대로 휴머노이드의 조언을 들으며 금방 익숙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 애들… 원래는 사람이었지?)
사지가 잘린 채 운전석에 고정되어 기계 부품처럼 변해버린 휴머노이드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오직 열차를 굴리기 위한 기계가 되어버린 그녀들.
물론 그것이 그녀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는 건 메구미도 알고 있었다. 기계화 적성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이 되는 과정에 강요는 없었다. 스스로 원해서 인간을 그만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계가 되어서 정말 만족하고 있을까?)
운행용 휴머노이드는 운전석에 앉아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운전사가 아니다. 자동 열차 운전 장치의 일부다. 프로그램에 따라 안전 운행을 수행하는 시스템, 그것이 지금의 그녀들이었다.
(게다가 이 장치… 너무 심해.)
운전 장치가 된 휴머노이드는 등 뒤뿐만 아니라 가랑이에도 특별한 단자가 꽂힌다. 그것은 그녀들에게 성적 쾌감을 주기 위한 기구였다.
메구미가 알고 있듯, 이들은 원래 인간이었으며 그 두뇌는 소체 인물의 생체 뇌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휴머노이드의 인간적인 거동을 가능케 하는 디바이스일 뿐, 뇌 본래의 기능은 상실된 상태다.
그럼에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는 정신적 부하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생체 뇌 기반의 전자화 뇌 기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위험이 있었다.
그런 정신적 부하를 경감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 바로 가랑이 단자를 통한 성적 쾌감 발신이었다. 운전 장치로 작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쾌감을 주입함으로써 전자화 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상쇄하는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그게 최선일지 모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메구미에게는 그 광경이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괴로웠다.
(강제로 발정시키는 것 같아서… 너무 불쌍해….)
휴머노이드에게는 보통 인간적인 감정 표현이 제한되는 ‘업무 모드’와, 소체의 인격을 모방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프라이빗 모드’가 있다. 운행 중인 휴머노이드는 당연히 전자인 업무 모드다.
감정은 억제되어 있는데 몸은 쾌감에 젖어 있다. 그래서 운행 중인 그녀들의 모습은 지독하게 기이했다.
쾌감에 절어 몸을 떨고 가랑이 단자에서 인공 애액을 뚝뚝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전용 바이저를 쓰고 있어 눈은 보이지 않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다. 아마 바이저 속 눈동자도 미동 없이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을 터였다.
느끼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척하는 그 모습은 메구미의 눈에 너무나 가련하게 비쳤다.
(왜 이런 짓까지….)
하지만 메구미는 무표정하게 쾌감에 몸을 들썩이는 그녀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 발정해 운행 내내 몇 번이고 가버리는 그녀들을 멈춰줄 수도 없었다.
“저기… 만약에요.”
참다못한 메구미가 언젠가 상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운행 중에 가랑이 단자를 뽑아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아! 그건 절대 안 돼!”
메구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사가 소리를 질렀다. 얼굴에는 강한 거부감이 서려 있었다. 평소 온화하던 상사의 돌변에 메구미는 깜짝 놀랐다.
“어, 왜요?”
“그랬다간 휴머노이드의 전자화 뇌가 박살 날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봐. 열차 운전은 엄청난 스트레스야.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안전하게 운행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아야 하니까. 우리가 차 끌고 나가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 말은 이해가 갔다. 어릴 적 가족 여행 때 운전대를 잡았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곤 했던 기억이 났다. 고작 가족 몇 명 태우는 것도 그런데, 매일 수백 명을 태우는 운전사의 스트레스는 오죽할까.
상사는 말을 이었다.
“휴머노이드들은 몸이 기계로 개조되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경험을 했어. 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해. 자기 몸이 기계가 됐으니까. 당연히 하던 걸 못 하게 되고, 못 하던 걸 하게 됐지.”
자동 운전 장치로 몸이 박히는 일 따위, 평범한 인간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한마디로 인간이었을 때와는 모든 게 달라진 거야. 그런 변화 자체가 휴머노이드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원이지.”
운전 업무와 삶의 격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일하던 그녀들이 그런 가혹한 상황이었다니, 메구미는 충격을 받았다.
“만약 단자를 뽑아버리면, 운행용 휴머노이드는 며칠 못 가서 바로 폐기 처분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려. 그러니까 그건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참고로 상사가 덧붙인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메구미에게 이 보조 업무를 맡긴 건 사실 휴머노이드들을 배려해서였다. 운행 내내 쾌감에 젖어 있는 모습을 이성에게 보여주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실제로 다른 회사에선 보조하던 남직원이 그 모습을 보며 자위하다 걸린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인 메구미가 발탁된 것이었다.
그런 의도까지 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그녀들의 치태를 남자에게 보여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지금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
보조역을 맡았을 땐 상상도 못 했던 스트레스가 메구미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역 사무실로 들어온 메구미에게 상사가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세토 씨 덕분에 무사히 운행을 마쳤어.”
“아니에요, 전 한 게 없어서….”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무사히 운행’한 건 0608TD였고, 메구미는 그저 틈틈이 상태를 확인했을 뿐이다.
“무슨 소리야. 로열 익스프레스 사에바의 승무원으로서 자네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사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그런가… 싶으면서도 메구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 보고서를 쓰려는데 상사가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
“피곤하겠지만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네, 말씀하세요.”
“방금 새로운 운행용 휴머노이드가 도착했거든. 나중엔 로열 익스프레스 운전도 맡길 생각이야. 그전에 신규 기체의 마스터 등록을 좀 해줬으면 해서.”
“마스터 등록… 말씀이시죠.”
쉽게 말해 관리자 등록이다. 메구미는 현재 0608TD와 1102HU, 두 대의 마스터로 등록되어 있었다.
“전에도 여쭤봤던 것 같은데요.”
메구미가 상사에게 물었다.
“전 입사한 지 얼마 안 됐고 직급도 없는데, 제가 마스터가 되어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아니, 세토 씨 말고는 적임자가 없어.”
메구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 말고 적임자가 없다니?
“사무실에 있을 땐 평직원이지만, 열차에 타는 순간 자네는 유일한 직원으로서 휴머노이드 운용 관리를 책임지게 돼. 즉, 열차 안에서는 자네가 최고 책임자라는 뜻이야.”
사실이었다. 열차에 타는 인간 직원은 메구미뿐이다. 나머지는 운전 장치가 된 휴머노이드와, 비상시를 대비해 대기하는 또 다른 휴머노이드뿐이니까.
“자네가 마스터로 등록되어 있어야 지시 체계가 확실해져. 만약 열차에 타지도 않는 내가 마스터라면, 최악의 경우 기계들이 자네 명령을 안 들을 수도 있어. 권한자 승인이 필요하다면서 뻗대면 곤란하잖아?”
그건 확실히 문제였다. 결국 자신이 마스터가 되는 수밖에 없나. 마음 한구석에선 거부감이 들었지만, 메구미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지금 가서 등록하고 올게요.”
“그래, 부탁하네.”
상사에게 목례하고 사무실을 나왔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고 보니 신규 휴머노이드에 대한 정보를 묻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까 했지만, 어차피 누구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계속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휴머노이드니까, 인간관계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업무 중에만 엮이는 관계다. 업무 모드인 그녀들은 메구미에게 절대복종하며, 어떤 지시도 거스르지 않는다. 일방통행인 관계. 메구미가 그녀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도, 그녀들이 메구미에게 무언가를 느낄 일은 없다. 애초에 감정 자체가 없으니까.
게다가 메구미는 프라이빗 모드인 그녀들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이 들어버리면, 운전석에 박혀 쾌감에 몸부림치는 그녀들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불쌍하다는 생각에 홧김에 단자를 뽑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메구미는 업무 외 시간에는 그녀들과 접촉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뭐, 평소대로 하면 되겠지.)
관리실 앞에 선 메구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열었다.
방 벽면을 보니 전용 포드가 하나 늘어 있었다. 충전과 운행 데이터 수집, 업데이트를 위한 포드다.
두 개의 포드에는 0608TD와 1102HU가 들어가 있었다. 그녀들은 포드 안에 곧게 서서, 기본 설정된 미소를 띤 채 붉은 카메라 아이를 깜빡이고 있었다. 목덜미와 등에는 여러 개의 단자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벽에, 한 대의 휴머노이드가 서 있었다. 다른 둘과 같은 외피를 입은 몸에, 푸른 빛이 도는 긴 머리카락. 머리카락 사이로 뻗어 나온 안테나. 그리고 그 얼굴은 너무나도 늠름해서—
“어…?”
그 얼굴을 본 순간, 메구미의 입에서 경악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메구미는 홀린 듯 그녀에게 달려갔다.
“저기….”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기본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 아이만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경악한 메구미의 얼굴이 거꾸로 비쳤다.
그때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점등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메구미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쑥, 입을 열었다.
『SH200STD-0410YS는 현재 마스터 등록 작업 대기 중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메구미는 더 큰 충격에 빠졌다. 전자음 특유의 울림은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아니,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목소리였다.
“저… 모르시겠어요?”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메구미를 절망케 했다.
『SH200STD-0410YS는 현재 마스터 등록 작업 대기 중입니다.』
아까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어조. 똑같은 억양. 마치 녹음된 음원을 반복 재생하는 것 같았다.
메구미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저예요! 세토 메구미라고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SH200STD-0410YS는 현재 마스터 등록 작업 대기 중입니다.』
메구미의 외침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선 똑같은 말만 반복됐다.
어째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메구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정말로 나를 모르는 걸지도 몰라.)
얼굴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사실은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인 게 아닐까. 그래, 그럴 거야. 그분이 이런 곳에, 그것도 휴머노이드가 되어 나타날 리가 없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메구미는 무심코 그녀의 가랑이에 있는 플레이트를 보았다. 거기엔 고유 번호와 함께 소체가 된 인물의 이름이—
그걸 본 순간, 메구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거짓말….”
메구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닮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역시—
“세토 메구미입니다.”
메구미는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마스터입니다.”
그러자 0410YS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직, 지직… 머릿속에서 무언가 기록되는 듯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메구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것이 마스터 등록을 수행하는 휴머노이드 특유의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이나 겪어본 일이었다.
잠시 후, 0410YS의 표정이 변했다. 미소 짓고 있다는 점은 같았지만, 아까의 무미건조한 웃음과는 달리 인간적인 기쁨이 서려 있었다.
『마스터 등록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목소리도 어딘가 들뜬 것처럼 들렸다. 0410YS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메구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본 기체는 로열 익스프레스 사에바 전속 운행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입니다. 당신이 본 기체의 마스터인 세토 메구미 님이시군요?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저기!”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메구미가 다급하게 물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그러자 0410YS는 아주 잠깐 메구미를 응시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세토 메구미 님은 본 기체의 소체인 “시키시마 유리카”의 저택에서 입주 메이드로 근무하셨던 분입니다.』
시키시마 유리카. 플레이트에 적힌 그 이름을 그녀는 ‘소체명’이라 불렀다. 그것은 지금의 0410YS에게 ‘시키시마 유리카’는 이미 과거의 인물일 뿐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메구미는 0410YS와 유리카를 별개의 존재로 볼 수 없었다.
“맞아요! 기억하고 계셨군요….”
감동과 안도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유리카—아니, 0410YS의 반응은 지극히 담담했다.
『네. 본 기체는 소체인 “시키시마 유리카”의 기억 데이터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계로서 데이터를 물려받았다…. 그 말이 재회의 기쁨에 젖어 있던 메구미의 마음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아, 아가씨….”
낙담한 나머지 예전에 유리카를 부르던 호칭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유리카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세토 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아가씨”는 본 기체를 지칭하는 호칭입니까?』
“네?”
『현재 본 기체의 호칭으로 등록된 것은 고유 번호인 SH200STD-0410YS, 혹은 소체명인 “시키시마 유리카” 두 가지입니다. 세토 님, “아가씨”를 새로운 호칭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어? 아뇨, 그건….”
너무나도 기계적인 제안에 메구미는 당황했다. 이제는 아가씨를 예전처럼 부를 수도 없는 건가.
『세토 님?』
정신을 차려보니 유리카가 메구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메구미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알겠습니다.』 유리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호칭에 관해서는 기본 설정을 유지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런데 아가… 아니, 유리카 씨는 왜 휴머노이드가 되신 거예요?”
하지만 유리카는 다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소체 “시키시마 유리카”의 기억 데이터와 관련된 사항이며, 현재 업무 모드가 적용 중인 본 기체는 업무와 무관한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메구미의 목소리가 힘없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들어야만 했다. 메구미는 속으로 다짐했다.
사에바 전철 창업 가문의 영애인 시키시마 유리카가, 대체 왜 이런 기계 덩어리가 되어버렸는지.
끝
'전편'에서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가 된 유리카가 처음으로 열차를 운전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의 옛 시종이었던 메구미.
과연 첫 업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요……?
감질나게 끝을 맺어버린 건 애교로 봐주시길(웃음).
***
2년 전 봄――
“적어도 한 번만 더, 메구미 씨랑 꽃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사에바시 교외에 있는 시키시마 저택의 정원. 유리카는 그곳에 심어진 벚나무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수많은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긴 했지만, 꽃은 아직 피지 않은 상태였다.
유리카의 말투는 아주 부드러웠지만, 그 말은 곁에서 벚꽃을 응시하던 메구미의 마음을 서서히 죄어왔다.
“죄송합니다…….”
메구미는 눈을 내리깔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유리카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해. 널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
“아니요, 그런――”
“나도 참 못됐지. 메구미 씨가 없어도 혼자서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게 되겠다고 맹세했는데…… 이런 어리광을 부리다니.”
이번에는 메구미가 고개를 저었다.
“어리광을 부린 건 저예요. 아가씨 곁을 떠나 제 꿈을 쫓고 싶다니…… 그런 말을 해버려서 정말로――”
“메구미 씨.”
메구미의 말을 유리카가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넌 지금까지 나를 위해, 아니, 시키시마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해줬어. 내가 이렇게 정원을 산책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네 덕분이야. 그건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정도란다.”
아가씨, 하고 중얼거린 채 메구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 대신 두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돌이켜보면, 메구미가 학교를 졸업하고 시키시마 저택에서 입주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유리카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기 방 침대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녀는 평범한 생활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런 몸이라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친구라고 부를 만한 동급생도 만들 수 없었어. 그런 나에게 메구미 씨는 처음으로 생긴 단짝 친구야. 이렇게 또래랑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는 건 예전의 나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실제로 메구미가 유리카의 수발을 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컨디션은 점차 좋아졌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기르라며 부모님이 시켰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 그것도 겨우 30분밖에 못 하던 정원 산책도 메구미의 도움 덕분인지, 이제는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숨이 차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메구미가 권해서 마지못해 응하던 것이, 이제는 유리카 쪽에서 먼저 “정원에 가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네가 없었다면 난 지금도 내 방 창문으로 벚꽃을 바라보고만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꽃봉오리 하나하나가 보이는 곳까지 올 수 있게 된 건 다 메구미 씨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전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게――”
그때, 유리카가 메구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메구미의 가슴이 갑자기 고동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메구미가 유리카를 바라보자, 유리카의 부드러운 눈길이 메구미를 향하고 있었다.
“넌 이제 이 시키시마 집안을 떠나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작별은 아니야. 난 반드시 널 만나러 갈게. 새로운 곳에서 늠름하게 일하는 너를.”
“아가씨…….”
“약속할게. 너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네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난 더 강해질 거야. 네 도움 없이도 혼자서 걸을 수 있도록.”
유리카의 그 말에 메구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메구미는 그걸 참아내듯 고개를 저은 뒤, 유리카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네. 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바깥세상에서 아가씨와 다시 만날 날이 오기를.”
그리고 메구미는 유리카의 손을 꽉 맞잡았다.
(설마 이런 모습으로 아가씨와 재회하게 될 줄이야…….)
ROYAL EXPRESS SAEBA의 운전실에서 메구미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유리카의―― 아니,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로 새롭게 도입된 SH200TDS-0410YS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곳곳에 금색 장식이 들어간 파란색 외피를 두른 유리카의 사지가 SH200STD-1102HU의 손에 의해 능숙하게 분리되어 갔다. 그렇게 자기 몸에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유리카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지 유닛의 접속이 해제되었습니다.』
이윽고 몸통만 남게 된 유리카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팔다리를 잃은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도, 그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기색도 그 말투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쩜 이리 잔인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운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가씨라며 따랐던 유리카의 처참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메구미에겐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 보조라는 직무가 맡겨져 있다. 감정에 휩쓸려 직무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메구미는 그저 몸통만 남은 유리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지가 분리된 유리카의 몸은 SH200STD-1102HU에게 안겨 운전석 유닛으로 옮겨졌다. 이 순간, 유리카는 ROYAL EXPRESS SAEBA의 운전 장치 중 하나로 변했다.
(아아, 아가씨…….)
ROYAL EXPRESS SAEBA에 말 그대로 '조립된' 유리카의 모습에 메구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한 유리카는 메구미와 재회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인형 같은 미소를 계속 짓고 있었다.
『운전석 유닛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유리카가 무미건조하게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SH200STD-1102HU가 메구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토 님. 최종 접속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구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사지를 떼어내 운전석 유닛에 수납하는 작업은 다른 휴머노이드에게 맡겼지만, 유닛 접속이 문제없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은 메구미의 몫이었다. 메구미는 운전석 유닛으로 다가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유리카의 몸에 손을 대려 할 때, 메구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최종 접속 확인을 할 때 유닛에 수납된 휴머노이드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을 뱉자마자 메구미는 아차 싶었다. 방금 내뱉은 말은 분명 SH200STD-1102HU가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메구미는 SH200STD-1102HU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메구미와 유리카 쪽을 향하고 있었을 뿐,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메구미는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이제 '그걸' 해야 해…….)
메구미는 운전석 유닛 옆에 있는 접속 단자를 응시했다. 이 단자를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가랑이 사이에 접속하는 것으로 운행 전 필요한 작업은 완료된다. 뒤집어 말하면, 이걸 연결하지 않는 한 메구미의 업무는 끝나지 않고 ROYAL EXPRESS SAEBA를 운행시킬 수도 없다는 뜻이다.
접속 단자를 손에 쥐고 한참 동안 바라보던 메구미는 이윽고 결심한 듯 운전석 유닛에 수납된 유리카를 보았다.
“SH200TDS-0410YS, 가랑이 해치 잠금을 해제해.”
울컥 치밀어 오르는 온갖 감정을 억누르며 메구미는 유리카를 불렀다. 아가씨라는 친근한 호칭이 아니라,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로서의 고유 식별 번호로.
『라져(알겠습니다). 본 기체는 가랑이 해치 잠금을 해제합니다.』
유리카는 담담하게 메구미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 말투는 예전에 “나에게 처음 생긴 단짝 친구”라고 불렀던 상대에게 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주인에게서 내려진 명령을 아무런 의문 없이 수행하는 로봇―― 유리카의 말투는 딱 그랬다.
메구미의 귀에 '찰칵'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유리카의 가랑이 해치에 걸려 있던 잠금이 풀리는 소리였다. 메구미는 유리카를 힐끗 보았다. 메구미 쪽을 향하고는 있었지만,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그 눈동자에선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구미는 몸을 굽혀 유리카의 가랑이 해치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곳에 인쇄된, 휴머노이드로서의 유리카의 등록 정보를 보았다.
제조년월: 20XX-03
고유 식별 번호: SH200TDS-0410YS
소체명: 시키시마 유리카
제조: 시노하라 중공업
무슨 기계 제품 같은 그 문구에 메구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마음을 검게 물들이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메구미는 유리카의 가랑이 해치를 열었다.
그 안에서 기계 부품 같은 파츠가 살짝 엿보였다. 유리카의 몸이 정말로 기계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메구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메구미는 접속 단자를 유리카의 가랑이 사이에 삽입했다. 그 순간,
『앗!?』
유리카의 입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무나도 돌발적인 그 목소리에 메구미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메구미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외쳐버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차 싶어 SH200STD-1102HU를 올려다보았다. 망했다, 또 들켰어―― 반쯤 얼굴이 창백해진 메구미와 SH200STD-1102HU의 눈이 마주쳤다.
『세토 님. SH200TDS-0410YS의 기체 상태에 문제는 없습니다.』
메구미의 동요를 아는지 모르는지, SH200STD-1102HU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무, 문제없다고……?”
예, 하고 SH200STD-1102HU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초도 운용 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휴머노이드로서의 운용에 순응하지 못한 소체 의식이 인간과 같은 생리적 반응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같은'이라는 말에 메구미는 거부감이 들었다. 뒤집어 말하면 자신들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메구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SH200STD-1102HU에게 물었다.
“그럼 아가…… 아니, SH200TDS-0410YS를 이대로 운용해도 되는 거야?”
『네. 업무에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앙금이 가신 건 아니지만, 일단은 안심해도 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알았어, 하고 메구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는,
“여러모로 고마워. 덕분에 출발 시간에 맞췄네. 그럼――”
그렇게 말하며 메구미는 출발 작업을 도와준 SH200STD-1102HU를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 저러지? 싶어 메구미가 눈치를 살피자,
『세토 님. 본 기체의 접속을 부탁드립니다.』
“네 접속? 아, 맞다!”
메구미는 그제야 생각났다. 처음으로 열차 운행 업무를 맡은 유리카―― SH200TDS-0410YS의 보조로 이번에는 SH200STD-1102HU도 동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는 완성된 시점에서 업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입력받는다. 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교과서적인 지식일 뿐이다. 실무 현장에서는 그 데이터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래서 운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에게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다른 휴머노이드가 동승하게 되어 있다. 기본적인 운행은 신참 휴머노이드가 주로 맡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면 선배 휴머노이드가 대응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즉시 신참 휴머노이드에게 전송된다. 이렇게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는 연마되어 가는 것이다.
메구미는 유리카가 수납된 운전석 유닛 옆에 SH200STD-1102HU를 세웠다. 다른 차량에는 운전석 유닛이 두 개 마련된 경우도 있지만, ROYAL EXPRESS SAEBA에는 하나뿐이다. 그래서 이번처럼 두 대의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가 업무에 투입될 경우, 보조 역할인 휴머노이드는 선 채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어 메구미는 운전 시 정지 상태인 SH200STD-1102HU가 넘어지지 않도록 양 손목과 양 발목에 고정용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뒷덜미에 보조용 접속 단자를 꽂고, 유리카와 마찬가지로 가랑이 사이에 접속 단자를 삽입했다. 유리카와 달리 그녀는 단자가 삽입되어도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로서의 짬에서 나오는 차이인가.
“이걸로 됐……겠지.”
여기서부터는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몫이다. 메구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도 내 준비를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메구미는 운전실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운전석 유닛의 유리카를 보았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미소를 띤 채 미동도 없이 앞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마치 조각상 같았다.
“아가씨, 잘 부탁드립니다.”
메구미는 유리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운전실을 나섰다.
비록 말 없는 조각상이 되었을지언정 메구미에게는 영원한 주인님이었다. 가슴 깊이 새겨진 그 마음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했다.
메구미가 오랫동안 품어온 꿈―― 그것은 철도계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든 좋으니 수많은 열차가 가까이 있는 세상에서 일해보고 싶다. 메구미는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꾸었다.
시키시마 저택에서 입주 일을 하게 된 계기도 그녀의 그 꿈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전철 통학을 하게 된(사실 전철로만 통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일부러 골랐다) 메구미는 하교 전철이 동네 역에 도착해도 바로 승강장을 나가지 않고 여러 차량을 구경했다. 일부러 동네 역을 지나치거나,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다른 노선과 연결되는 터미널역까지 가기도 했다.
전철 통학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메구미는 어느새 동네 역무원과 친해져 있었다. 그리고 역무원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그러고 보니……” 하며 시키시마 저택의 일자리를 소개받은 것이다.
메구미가 시키시마 저택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걸 유리카는 몰랐다. 메구미 역시 그 사실을 유리카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유리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키시마 저택에서 메구미가 일하기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에바 전철에 도입될 예정이었던 신형 차량의 디자인 시안을 “참고 의견을 듣고 싶다”며 유리카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사실 그가 유리카에게 사에바 전철 업무에 관한 상담을 하는 건 이때뿐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유리카와 상담을 할 때면 메구미는 항상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자신의 일은 어디까지나 유리카의 수발을 드는 것이지, 그런 화제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어라?)
아버지가 내민 디자인 시안을 내려다보던 유리카는 무심코 메구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평소라면 관심 없다는 듯 방구석에서 대기하던 메구미가 몇 번이고 유리카 쪽을 훔쳐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그 디자인 시안을 훔쳐보려는 것처럼.
“아빠.”
그걸 눈치챈 유리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 혼자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 메구미 씨 의견도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 순간 메구미의 몸이 움찔하며 크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두 사람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외부인인 제가 감히 업무 상담에 끼어들다니――”
“아니, 그거 좋은 생각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버지의 말은 메구미에게 예상 밖이었다.
“우리 내부 사람들로서는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테니까. 메구미 씨, 이쪽으로 좀 와줄 수 있겠나?”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라며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메구미는 쭈뼛쭈뼛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점점 열이 오르더니 유리카와 아버지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메구미 씨, 고맙네. 정말 귀중한 의견을 들었어.”
“그나저나 메구미 씨 지식이 이렇게 풍부할 줄은 몰랐는걸.”
자신이 자제력을 잃었다는 걸 메구미가 깨달은 건 두 사람에게 그런 칭찬을 들었을 때였다. 메구미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져서 두 사람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 처지도 모르고 제멋대로 떠들어대서…….”
“아니야, 아니야. 그런 가감 없는 의견이 필요했거든. 그에 비하면 우리 회사 놈들은――”
“아빠. 회사 험담을 메구미 씨한테 들려주지 마세요.”
유리카가 볼을 부풀리자 아버지는 당황한 듯 “아차, 이거 실례했군” 하며 웃었다.
이렇게 해서 유리카 일가는 메구미가 철도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메구미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차내 업무를 일단락 짓고 메구미는 운전실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문고리에 손을 얹는 순간, 그녀는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운행 업무 중인 휴머노이드가 보여주는 그 '추태'를.
(설마 아가씨도…….)
몇 년 동안 시키시마 저택에서 일하는 동안 메구미는 유리카의 그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마음속 유리카는 언제나 기품 넘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유리카가 성적 쾌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 따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 문을 열면…….)
아가씨의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그것이 메구미의 솔직한 본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 보조라는 일을 맡고 있다. 그걸 포기하는 건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아가씨…… 부디 무사하시길.”
기도하듯 중얼거리며 메구미는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아앙!』
메구미의 귀에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메구미는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었던 목소리, 그러면서도 처음 듣는 목소리.
“아가씨!?”
운전실로 뛰어 들어간 메구미는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을 목격했다.
운전석 유닛에 고정된, 사지가 없는 기계 인형.
맥동하듯 떨리는 몸.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끈적한 액체.
그리고―― 흐트러지게 처진 눈꼬리와 멍하니 벌어진 입.
“아…… 아아…….”
메구미가 경애해 마지않던 '아가씨'는 성적 쾌감에 빠진 치녀로 변해 있었다.
“아,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유리카에게 달려간 메구미는 그 몸에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 안에 간신히 남아있던 이성이 유리카의 몸에 닿으려던 손을 멈추게 했다.
――열차 운행 업무를 수행 중인 휴머노이드에게는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휴머노이드 보조 업무를 맡았을 때 기술자에게 들은 주의 사항이었다.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는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기체의 감지 센서가 작동한다. 만약 운행 중에 몸을 만지면 그 감지 데이터는 휴머노이드의 전자 두뇌 속에 노이즈처럼 전달된다. 인간으로 치면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가 되어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메구미는 유리카에게 뻗었던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앗, 앗, 아앗……』
하지만 자신을 향해 메구미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유리카는―― SH200TDS-0410YS는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속을 휘젓는 쾌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가랑이에 삽입된 접속 단자를 탐하듯 허리를 흔들고, 파랗게 빛나는 외피에 싸인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그 모습은 우아한 자태가 일상이었던 '시키시마 유리카'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아앙, 앙, 하아앙!』
그 추태를 메구미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메구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너무해…… 이건 너무하잖아요…….”
어째서 아가씨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그 우아하던 아가씨가 왜 이런 음란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그 억울함과 슬픔이 메구미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문득 메구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운전실에는 자신과 아가씨 말고 한 명이 더 있다. 혹시 그녀도 아가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메구미는 유리카 옆에 직립해 있는 SH200STD-1102HU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SH200STD-1102HU는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쾌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유리카도, 운전실로 돌아온 메구미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게다가 유리카와 같은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이면서도 그녀는 유리카 같은 추태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가끔 몸을 미세하게 떨 뿐이었다.
그때 메구미는 가랑이에 접속 단자가 삽입된 유리카가 비명을 질렀을 때 SH200STD-1102HU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초도 운용 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휴머노이드로서의 운용에 순응하지 못한 소체 의식이 인간과 같은 생리적 반응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렇구나. 아가씨가 운행 업무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래서 쾌감을 제어하지 못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유리카가 앞으로 운행 업무를 거듭하다 보면 이런 추태를 보이는 일도 점점 없어질지 모른다.
『하아…… 아앙……』
메구미는 눈물을 닦고, 전자음 특유의 울림이 섞인 신음 소리를 끊임없이 내뱉는 유리카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조금만 참으세요. 힘내세요……!)
메구미는 무의식중에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휴머노이드로서 첫 열차 운행을 마친 유리카는 SH200STD-1102HU에 의해 관리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메구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들의 뒤를 쫓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메구미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장시간 운행 업무로 지친 유리카 일행은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지금은 따라가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려다 메구미는 자조하듯 픽 웃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나 자신한테 그런 핑계나 대고.)
그랬다. 유리카 일행을 쫓아가지 않은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휴머노이드 전용 포드에 들어가 감정 없는 미소를 띤 채 인형처럼 서 있는 유리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이 메구미의 본심이었다.
불과 수십 분 전까지 사지가 잘린 채 운전석 유닛에 박혀 성적 쾌감에 몸부림치던 유리카의 모습은 메구미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 메구미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말 없는 인형이 되어 전용 포드에 갇힌 유리카를 본다면――
(무서워…….)
자신은 분명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일을 계속해 나갈 기력조차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메구미가 시키시마 저택을 나온 지 2년 남짓 지났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메구미는 유리카의 모습과 목소리를 금방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 메구미에게 유리카는 지금도 경외와 사모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입장이 역전되어 버렸다. 시종이었던 메구미는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의 관리자가 되었고, 주인이었던 유리카는 메구미에게 관리받는 기계 인형이 되었다. 그렇게 주종 관계가 뒤바뀐 지금,
(난 어떤 얼굴로 아가씨를 대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아가씨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를 따르게 하다니―― 나에겐 무리다.
게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해도…… 난 아가씨의 추태를 보고 말았어.)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성적 쾌감에 허우적거리는 유리카의 모습. 풀어진 표정으로 쾌감을 탐닉하던 유리카의 얼굴. 그건 분명 그녀가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일 것이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표정일 것이다. 그걸 봐버린 자신은 말하자면 금기를 범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가씨도 자기 그런 모습을 봐버린 나랑 만나고 싶지 않을지도――)
거기서 메구미는 아차 싶었다. 아가씨가 나랑 만나기 싫어한다고? 무의식중에 메구미는 자기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나 진짜 바보구나. 아가씨 마음을 내 멋대로 해석하고.)
시키시마 저택에서 일하는 동안 메구미는 몇 번이고 유리카에게 속마음을 들킨 적이 있었다. 메구미가 고민이 있을 때면 “무슨 일인지 말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라며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반대는 없었다. 유리카에게 이른바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를 받은 적이 대체 몇 번이었던가.
(어쩌면 아가씨는 나와의 재회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유리카가 왜 열차 운행용 휴머노이드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휴머노이드가 된 후 다른 직업을 갖는 게 아니라 메구미가 일하는 사에바 전철에―― 그것도 메구미가 탑승하는 ROYAL EXPRESS SAEBA의 운행 업무를 맡게 된 건 자신과 재회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메구미는 발길을 돌렸다.
(난 아가씨를 만나야 해.)
메구미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머노이드 관리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 아가씨……?”
문을 열자마자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대의 휴머노이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메구미의 기억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끝
‘세토 메구미와 그녀의 종자’ 후편을 보내드립니다.
유리카가 어째서 휴머노이드가 되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과연……?
백합 태그를 달긴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야하진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
“정말 면목 없습니다…… 보여드릴 꼴이 아니네요.”
휴머노이드가 된 유리카를 자기 방으로 들인 메구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메구미는 사에바 전철에 취직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방 안은 개지 않은 빨랫감이나 읽다 만 잡지들로 엉망이었다.
유리카는 그런 방을 미소 띤 얼굴로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메구미의 집이 조용한 주택가에 있어서인지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거의 없었고, 유리카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작은 구동음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 소리는 유리카가 정말 기계 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메구미에게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메구미는 그 충격을 털어내려는 듯 발치에 널브러진 빨래를 주워 모아 소파 위로 휙휙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이어서 잡지들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했다.
유리카는 메구미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소파에 쌓인 빨랫감을 집어 들더니,
“아, 아가씨? 지금 뭘……?”
유리카의 푸른빛이 도는 매끄러운 외피에 감싸인 손이 춤추듯 움직였다. 아무렇게나 던져졌던 빨래들이 하나둘 정갈하게 개어졌다. 그 모습을 본 메구미는 깜짝 놀라 유리카의 손을 살며시 눌렀다.
“그,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가씨가 이런 일을 하시다니――”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요.』
유리카가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메구미를 바라보았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걸까. 죄송합니다, 라고 메구미가 말하려던 찰나 유리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괜찮다니―― 저는 세토 메구미 님이 하신 말씀을 ‘명령’으로 처리해버리거든요.』
“명령이라니요, 그럴 의도는 전혀.”
『하지만 저는 마스터인 세토 메구미 님을 모시는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인걸요. 저는 휴머노이드로서 마스터의 명령에 따라야만 해요.』
그러고는 유리카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거기에는 <사에바 전철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 (소체명: 시키시마 유리카)>라는 글자가 적힌, 지금 그녀의 신분을 증명하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
그제야 메구미는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부지런히 빨래를 개던 유리카의 손이 어느샌가 멈춰 있다는 것을. 정말로 메구미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카에게 메구미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어요. 이대로 대기하고 있을게요.』
유리카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손을 허벅지 위에 가볍게 얹은 채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 단아한 앉음새는 메구미가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보아왔던 ‘시키시마 유리카’ 그 자체였다.
(휴머노이드가 되셨어도 아가씨는 예전 그대로야……)
방 안을 정리하면서 메구미는 유리카의 그런 자태를 곁눈질하며 감회에 젖었다.
휴머노이드 관리실에서 메구미와 마주했을 때 유리카는 말했다. 자신은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이지 ‘시키시마 유리카’가 아니라고. 그리고 자신은 소체가 된 ‘시키시마 유리카’의 인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OS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SH200TDS-0410YS의 말투나 몸짓은 메구미가 경애해 마지않던 아가씨―― 시키시마 유리카의 것이었다.
그래서 메구미는 예전과 똑같이 그녀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가씨를 방에 모실 줄 미리 알았더라면 제대로 준비를 했을 텐데……”
미안한 듯 중얼거리는 메구미에게 유리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저는 세토 메구미 님――』
“죄송해요, 아가씨. 그 ‘세토 메구미 님’이라는 건 좀 관둬 주시면 안 될까요? 전 아가씨한테 ‘님’ 소리를 들을 처지가 아니거든요. 예전처럼 불러주세요.”
『알겠어요. 세토 메구미 님에 대한 호칭을 제 소체인 ‘시키시마 유리카’의 기억 데이터에 근거해 ‘메구미 씨’로 변경할게요.』
그 기계적인 답변에 메구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일로 당황해서는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된 유리카와 평범하게 지낼 수 없을 테니까.
『저는――』
유리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메구미 씨의 집에 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소체 기억 데이터에 따르면, ‘시키시마 유리카’는 메구미 씨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무척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황송할 따름이에요.”
사실 메구미도 이렇게 유리카를 초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 것이었다.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의 관리 책임자인 자신은 그 특권으로 그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리카와 재회한 뒤 사무실로 돌아온 메구미는 상사에게 ‘제도’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상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웬일이야? 내가 처음 설명했을 때 ‘분명 쓸 일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하더니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 말에 메구미는 말문이 막혔다. 상사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특별 외박 제도―― 관리자와 휴머노이드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 사에바 전철에서 도입한 제도다. 그리고 메구미가 예전에 “쓸 일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제도이기도 했다.
사에바 전철에서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는 기본적으로 역사 내 관리실에 상주한다. 기관사(혹은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가 갑작스럽게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을 때, 대타로서 즉각 투입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녀들도 휴머노이드이기 이전에 사에바 전철의 직원이기에 당연히 휴일이 주어지고, 그때의 행동 또한 자유롭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역 이외의 장소에 거주지를 마련하거나 허가 없이 외박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다만 외박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해당 휴머노이드의 친족(정확히는 소체 시절의 친족)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경우나――
“SH200TDS-0410YS와 커뮤니케이션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한 뒤 메구미는 상사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가 업무 중에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보조역인 승무원뿐이다. 다른 업종에 도입된 휴머노이드와 달리 일반 승객과 접할 기회는 거의 전무하며, 그마저도 아주 소수의 동료(사람이든 휴머노이드든)와만 엮이게 된다. 그렇기에 그 ‘아주 소수의 동료’와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사이에는 깊은 신뢰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특별 외박 제도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메구미의 대답에 상사는 “확실히 중요한 일이지”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근데 다른 두 대한테는 제도를 안 썼잖아? 그래서 SH200TDS-0410YS랑도 그런 건 안 하려나 싶었는데.”
“그건……”
그것도 사실이었다. 메구미가 제도를 이용해 SH200STD-0608TD나 SH200STD-1102HU와 하룻밤을 보낸 적은 없다. 심지어 그녀들과는 업무 외에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었고, 프라이빗 모드가 적용되었을 때의 모습도 전혀 몰랐다.
다시 머리를 굴린 끝에 메구미가 대답했다.
“……그 두 대는 저보다 먼저 부임했었고, 저보다 업무에 대해서도 훨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SH200TDS-0410YS는 다릅니다. 이제 막 도입된 그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요. 그래서 제가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잘 지어냈다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반론이었다. 실제로 메구미의 말을 들은 상사는 “과연 그렇군”이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그럼 이게 신청서야. 외박 사유는 방금 말한 대로 적으면 되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상사에게 신청서를 받은 메구미는 5분도 안 되어 필요 사항을 기입해 제출하고는 곧장 휴머노이드 관리실로 달려갔다.
유리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온 지 한 시간 남짓. 어질러져 있던 방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도와주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 놓고 결국 아가씨 손을 빌리게 되어 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메구미 씨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영광인걸요.』
처음에는 메구미 혼자 방 정리를 했지만, 그동안 소파에 계속 앉아 있는 유리카의 모습을 볼수록 메구미는 점점 좌불안석이 되었다. 대기하겠다는 말 그대로 유리카는 미소 지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쯤은 휴머노이드가 된 유리카에게 식은 죽 먹기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반쯤 인형이 되어버린 유리카의 모습을 견디다 못한 메구미는 결국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방 정리를 도와달라고.
유리카는 방 중앙에 깔린 카펫 위에 정좌하고 앉아 있었다. 메구미가 그렇게 권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메구미는 주방에 서서 전기포트 스위치를 올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 준비할게―― 앗!”
컵을 두 개 준비하던 메구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요?』
“아니, 그게……” 푸른빛이 도는 매끄러운 외피로 덮인 유리카의 등을 향해 메구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는 이제 음료를 안 드시죠. 휴머노이드가 되셨으니까.”
『네. 섭취는 가능하지만 마실 필요는 없어요.』
유리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메구미는 고개를 숙이며 컵 하나를 찬장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홍차가 담긴 찻컵 딱 하나를 들고 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유리카와 마주 앉아 컵을 자기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한 모금 들이켠 뒤,
“설마 이런 식으로 아가씨와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메구미 씨도 예전이랑 변함없어서 안심했어요.』
황송합니다, 하고 메구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유리카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저쪽은…… 꽤 많이 변해버렸지만요.』
“저기, 아가씨.”
메구미가 유리카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봐도 될까요? 아가씨는 어쩌다가 휴머노이드가 되신 건가요?”
조심스러운 메구미의 말투에 유리카는 마치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역시 메구미 씨에게 이야기해야만 하겠네요. ‘시키시마 유리카’의 의지와 기억을 이어받은 저에게는 그럴 책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유리카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휴머노이드가 되었는지를.
시키시마 유리카―― 아니, 그냥 ‘나’라고 말할게. 그게 메구미 씨에게도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메구미 씨가 시키시마 가문을 떠나고 나서 나는 어떤 결심을 했어. 내 주변 일은 내 스스로 똑부러지게 해내자고. 메구미 씨가 없어도 나는 내 몫을 다할 수 있다―― 언젠가 어디선가 메구미 씨와 다시 만났을 때, 메구미 씨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말이야.
하지만…… 분하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어. 메구미 씨와 떨어지고 나서 한동안은 혼자서도 힘낼 수 있었지만, 점점 몸이 따라주질 않았어. 아마 메구미 씨가 내 안에서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다시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는 생활로 돌아가 버렸지. 분해서 몇 번이고 울었어.
그렇게 낙담해 있던 나를 아버지가 밖으로 데리고 나간 적이 있었어. 가끔은 바깥 공기도 쐬는 게 좋겠다면서. 그렇게 아버지가 나를 데려간 곳은―― ROYAL EXPRESS SAEBA(로얄 익스프레스 사에바)였어. 이제야 말하지만, 나 메구미 씨가 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어.
……말을 걸어주길 바랐어? 응, 그랬다면 좋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메구미 씨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새로운 곳에서 늠름하게 일하고 있는 메구미 씨에 비해서,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싶어서.
그렇게 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메구미 씨를 보고 있었을 때, 메구미 씨와 함께 걷고 있는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를 발견했어. ROYAL EXPRESS SAEBA와 같은 색깔의 외피를 입고 의연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말이야.
그걸 본 순간 내 안에 어떤 생각이 싹텄어. 그래, 휴머노이드가 된다면 이런 한심한 몸뚱이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메구미 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물론 부모님은 결사반대하셨지. 네가 휴머노이드가 될 필요 따윈 없다, 너는 사람 위에 서야 할 사람이다…… 라면서. 그렇겠지. 나는 사에바 전철 창업주 가문의 사람이니까.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버지는 쉽게 그에 걸맞은 자리를 마련해 주셨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이런 몸으로도 아무 불편함 없는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해도,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거야. 무엇보다 메구미 씨를 당당하게 만날 수 없게 될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몇 번이고 대화를 거듭한 끝에 겨우 부모님이 납득해 주셨어.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가 된 후에도 다른 휴머노이드와는 다른 대우를 하겠다, 기체도 다른 휴머노이드보다 성능이 좋은 걸로 하겠다―― 그런 식으로 여러 제안을 하셨지만 나는 거절했어. 그런 어드밴티지는 필요 없어, 나는 ‘평범하게’ 일하고 싶었으니까.
……아아. 하지만 딱 하나 받아들인 제안은 있었어.
휴머노이드가 된 나의 마스터는 메구미 씨로 하겠다……는 것만큼은.
『――그렇게 저는 개조 수술을 받고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가 되었어요.』
이야기를 마친 유리카가 메구미에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메구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리카는 그런 메구미를 미소를 띤 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스터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로봇의 그것이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메구미는 유리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렌즈 눈동자가 메구미를 똑바로 포착하고 있었다.
“아가씨……”
메구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사함과 송구함이 뒤섞여 유리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넘쳐흘렀다.
그때 유리카가 메구미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몸짓에 메구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미안해요. 갑자기 이런 짓을 해서.』
“아, 아가씨?”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안에 존재하는 ‘시키시마 유리카’의 의지가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아……』
느닷없이 유리카의 입에서 달콤한 숨결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메구미는 당황했다.
그러자 유리카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저, 휴머노이드가 되면 인간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봐요.』
“네?”
『지금 제 상태를 인간으로 치자면…… 무척 안심하고 있어요. 역시 저에게는…… 메구미 씨가 필요하네요.』
무의식중에 메구미의 손이 유리카의 몸을 감싸 안았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특수 고무제 외피의 감촉. 매끄러우면서도 인간의 몸과는 다른 탄력이 느껴졌고―― 따뜻했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메구미의 이성이 속삭였다.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마스터와 그에게 복종하는 휴머노이드다. 주인이 종자를 마음대로 다뤄도 아무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구미에게 유리카는 휴머노이드가 되었을지언정 우러러봐야 할 존재다. 그런 유리카에게 이런 무례한 짓을 저질러서는――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하지만 그런 이성과는 반대로 메구미의 손에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아가씨의 버팀목이 되어드릴게요. 힘드실 때는 저를 마음껏 써주세요. 그게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니까요.”
『후훗. 그건 휴머노이드인 제가 해야 할 말인데요.』
마스터를 모시는 것이 휴머노이드에게 최대의 기쁨――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의 관리자가 되면서 메구미가 읽었던 휴머노이드 운용 해설서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메구미도 작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아…… 하아……』
유리카의 입에서 녹아내릴 듯한 신음이 새어 나오며 그녀가 몸을 더 밀착해 왔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메구미는 당황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어떻게 된 걸까요…… 나……』
유리카의 손이 메구미의 등 뒤로 스르르 뻗어왔다.
『몸이 멋대로…… 어째서…… 하아…… 하아……』
유리카가 메구미를 올려다보듯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메구미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애타게 갈구하는 듯한 눈빛―― 유리카의 표정에 나타난 것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리카의 변모에 메구미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해설서에 적혀 있던 항목 하나가 떠올랐다. 기계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휴머노이드는 기계가 된 자신의 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생존 본능이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리고 그 생존 본능이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것―― 즉, 성욕이라는 사실을.
“아, 아가씨!”
격렬하게 몸을 비벼오는 유리카에게 메구미가 소리쳤다.
“아, 안 돼요! 이런 짓을 하면! 우린――”
『하아…… 하아……』
여자끼리잖아요―― 그렇게 이으려던 메구미의 말은 유리카의 달콤한 숨결 같은 소리에 가로막혔다. 성욕에 휩싸인 유리카에게 메구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도대체 어떡하면 좋아……)
지금의 유리카처럼 돌발적으로 성욕이 발현된 휴머노이드에 대한 대처법은 단 하나. 그 성욕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분명 그 해설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만약 해설서대로 행동한다면 자신과 유리카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된다. 하물며 상대는 지금도 경애해 마지않는 유리카다. 그런 유리카를 상대로 음란한 행위를 하다니……
『메, 메구미 씨…… 나는……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아가씨……”
전자 음성이라 달콤하게 울리긴 했지만, 유리카의 목소리에서는 어딘지 모를 고통이 느껴졌다. 2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는 해도 그 이상의 시간을 유리카와 함께 보낸 메구미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가 괴로워하고 있어――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단 하나뿐이다.
“아가씨……!”
메구미는 유리카의 몸을 껴안았다. 서로의 가슴이 포개졌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엉키듯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메구미와 유리카의 가슴이 서로 비벼졌다. 마치 서로가 상대의 가슴을 애무하는 것 같았다.
『하아…… 아아……』
“아가씨…… 저, 정신 차리세요……”
유리카의 손이 메구미의 등을, 메구미의 손이 유리카의 등을 본능적으로 서로 쓰다듬었다.
(이, 이런 거…… 처음이야……)
특수 고무제 외피로 덮인 유리카의 등은 인간의 몸과는 전혀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매끄러움이 있었다. 메구미는 점차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미끈한 감촉에 사로잡혀 갔다.
그 매끄러운 감촉은 맞닿은 가슴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메구미의 가슴이 유리카의 가슴 위에서 미끄러졌다. 얇은 옷 위로 메구미의 유두가 유리카의 가슴에 몇 번이고 문질러졌다.
“아…… 아아……”
『메, 메구미 씨……』
유리카의 손이 메구미의 뒷덜미를 감싸더니 그대로 메구미의 등을 타고 내려갔다.
『메구미 씨 몸…… 따뜻해서…… 기분…… 좋아……』
유리카는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전자 음성을 흘렸고, 메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아, 아가씨 몸도…… 따뜻해요……”
『후후…… 정말 그런 걸까……』
유리카가 우스운 듯 대답했다.
『그치만 난…… 휴머노이드…… 기계 몸을 가진 로봇인걸…… 그런 기계가 된 내가…… 따뜻하다니……』
“거, 거짓말…… 아니에요……”
메구미가 유리카의 몸에서 온기를 느끼는 이유. 그것은 유리카의 몸에 내장된 모터가 미세하게 발열하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메구미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유리카의 온기라고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의 등과 가슴을 애무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뺨을 맞대고 있었다.
이런 건 이성끼리나 하는 짓이라고 메구미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리카와 몸을 겹치고 있는 동안 그것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음이 통한 상대라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런 건 상관없다고.
“아아, 아가씨……!”
뺨을 비벼대는 사이 서로의 입술이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입술을 겹쳐버리고 싶다―― 메구미는 점차 그런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버리면 정말로……)
본능에 휩쓸리던 메구미였지만 그녀 안에 간신히 남아있던 이성이 주저하게 만들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이미 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되돌릴 수 있다. 유리카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우리 두 사람은 다시 예전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떡해야……)
그때 문득 메구미는 시선을 느꼈다.
“아가씨……?”
정신을 차려보니 유리카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메구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러자 유리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건…… 서, 설마……?)
유리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짝 벌어진 입술은 메구미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괘…… 괜찮으신가요?”
유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유리카의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메구미는 잠시 주저했다. 내가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 여기를 넘어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이성과는 반대로 메구미의 몸은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구미는 유리카에게 뛰어들었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운전실 창밖으로 지나간다.
수없이 봐온 풍경이었지만 메구미는 신선한 기분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벚꽃이 저렇게나…… 벌써 봄이네요.”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벚꽃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 꽃들이 마치 봄바람이 되어 부드럽게 피부를 어루만지는 듯한 착각을 메구미에게 불러일으켰다.
“저, 아주 오래전부터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 ROYAL EXPRESS SAEBA에서 보이는 봄 풍경을요.”
메구미는 운전석 쪽으로 돌아보았다.
“운행 업무 중이라도 보고 들은 정보는 전부 기록된다―― 그게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죠. 아가씨도 분명 보고 계시죠?”
메구미의 시선 끝에는 사지가 분리된 채 운전석에 고정되어, 접속 단자가 가랑이 사이에 삽입된 채 무표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 SH200TDS-0410YS―― 유리카의 모습이 있었다.
가동 초기에는 접속 단자에서 전해지는 성적 쾌감에 빠져 몸을 격렬하게 떨며 음란한 소리를 내뱉던 유리카였지만, 지금은 그런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몸을 미세하게 떨며 가랑이 사이로 인공 애액을 몇 방울 흘리는 정도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외박 날 이후로 메구미가 정기적으로 유리카를 데리고 나가 그녀와 몸을 섞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절히 성욕을 발산할 기회를 얻은 유리카는 운행 업무 중에 성적 쾌감을 수신해도 쾌감 반응을 다른 열차 운행 업무용 휴머노이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앗, 맞다!”
무언가 생각난 듯 메구미가 손뼉을 쳤다.
“아가씨, 조금 전에 저 희한한 손님을 뵀어요.”
메구미는 즐겁게 이야기하지만 유리카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게 글쎄…… 기계화 노동사였지 뭐예요. 저, TV에서는 몇 번 봤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라서요.”
기계화 노동사란 휴머노이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을 기계화 개조해 고도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로봇이다. 하지만 기계화 노동사가 되려면 난이도 높은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기에 휴머노이드만큼 흔한 존재는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 기계화 노동사 옆에 그녀의 마스터로 보이는 손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기계화 노동사를 ‘아가씨’라고 부르더라고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훗, 왠지 저랑 아가씨 같지 않나요?”
재미있다는 듯 웃는 메구미에 비해 유리카는 완전히 무표정이다. 하지만 메구미는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이 이야기들도 유리카가 대화 로그로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다 메구미는 아차 싶어,
“……아아, 죄송해요. 업무 중인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저도 이제 순회 업무로 돌아가 봐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메구미는 운전실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유리카를 보며,
“자세한 이야기는 업무 끝나고 다시 들려드릴게요. 그럼 나중에 봬요……”
이윽고 운전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동안 유리카는 메구미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티 없이 맑은 렌즈 눈동자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그저 묵묵히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