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작년에는 일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창작 아이디어도 도통 떠오르지 않아서 슬럼프에 빠지는 바람에 글을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재활도 할 겸 다시 포스팅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유명 대형 편의점 체인에서 일하는, 원래는 인간 여고생이었던 로봇 소녀 카호의 이야기입니다.
카호에게는 휴머노이드 절친이나 연인처럼 그녀를 지탱해 주는 존재들이 있어서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주로 써왔는데요. 만약 휴머노이드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인간이나 카호의 사정(불치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로봇화를 승낙했고, 그 후 기계 몸과 기업의 로봇 취급, 프라이버시 부재로 고통받는 상태)을 모르는 인간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싶어, 전학 온 동급생을 등장시켜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집필 단계부터 마카나(真奏) 님(user/12447651)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아, 진득한 삽화를 잔뜩 그려주셨습니다. 그쪽도 꼭 함께 즐겨주세요. (illust/115973173)
쓰다 만 작품들도 가급적 마무리할 예정이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기다리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X(트위터)나 픽시브를 보면 요즘 AI 아티스트분들의 외골격 사이보그나 로봇화 일러스트가 정말 훌륭해서 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감상이나 의견은 큰 힘이 되니 언제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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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게 마지막인가요?』
“응, 그래. 여기다 둬.”
방과 후, 나는 과학 선생님의 부탁으로 암석 표본 상자를 창고에서 옮기고 있었다. 세 상자 모두 80kg(176lb)이 넘는 상당한 무게. 인간 시절이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내 기계 팔은 150kg(330lb)까지는 문제없이 운반할 수 있다.
“대단하네. 평소엔 남학생 넷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옮기던 건데. 넌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척척 옮기니 정말 대단해.”
자기는 짐 하나 안 들고, 미리 커피 한 잔 들고 기다리던 선생님이 그런 소릴 해봤자 눈곱만큼도 기쁘지 않은데.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선생님, 제 몸에는 땀을 흘리는 기능이 없어요.』
“어머, 실례. 로봇이 땀을 흘릴 리가 없지. 어쨌든 아무도 안 도와줘서 막막했는데 살았어.”
이걸 본관 뒤 창고에서 4층까지 옮겨야 하니 누구라도 싫어하겠지. 선생님도 내가 거절 못 하는 로봇인 걸 아니까 부려 먹은 거면서.
『그럼, 저는 다음 태스크가 설정되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거 정리하는 건 다음 주 화요일이니까 그때도 잘 부탁해~”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말하는 순간, 시야에 화요일 시간 미정 태스크가 자동으로 입력되어 버렸다. 태스크는 내 의지로 변경하는 게 일절 불가능하다. 이걸로 다음 정리 작업도 강제 참가 확정이다.
세 번이나 왕복했다. 피로나 근육통은 없지만 1027초나 낭비해 버렸다. 오늘은 아르바이트생이 없어서 일찍 귀가해야 하는데, 운도 없지.
교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나도 서둘러 교과서를 가방에 챙기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HS-207PS1114KS? 아니면 사시하라라고 부르는 게 나아?”
고유 식별 번호로 불린 나는, 강제적으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규잉’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선 소녀의 얼굴을 보자, 얼굴 주변에 녹색 선이 생기며 안면 인식 시스템의 검색 결과가 표시된다. 굳이 이런 시스템이 없어도 동급생 얼굴 정도는 아는데.
『무슨 용건이십니까? 코바야시 님.』
옆 반인 3반의 코바야시 아이라. 그녀는 몇 달 전 도쿄에서 온 전학생이다. 사교성 좋고, 화려한 메이크업에 성격은 좀 까칠한 편. 소위 말하는 갸루 같은 애다. 별로 대화해 본 적도 없는데 대체 뭘까?
“말투가 왜 그래? ‘님’까지 붙이고 너무 거창한 거 아냐? 평소에도 그렇게 말했나?”
『나는 고유 식별 번호로 불리면 명령 수신 태세가 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가급적 학교에 있을 때는 사시하라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사실 휴머노이드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알파벳과 숫자의 나열이 내 정식 이름이니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내 인격 소프트웨어의 원형이 된 소녀의 것이지, 일개 로봇인 내가 자처할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내 메모리 속에 남겨진 인간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내가 고유 식별 번호로 불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 마음조차 사실은 단순한 프로그램일 뿐이지만, 가급적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헤에~ 여러모로 힘들구나. 오케오케, 조심할게.”
코바야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방금 발언도 위험했을지 모른다. 내 언동은 전부 동작 로그로 저장되어 AI에게 분석되고, 주기적으로 나를 소유한 회사 사람이 전부 체크한다. 다음 점검 때 또 회사 사람들한테 엄청 깨지겠지…….
“시간 좀 내줘! 사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아, 딱히 사시하라가 로봇이라서 명령하는 건 아냐. 그냥 부탁이야.”
시야 한쪽에는 오늘의 태스크가 표시되어 있다. 평소보다 1시간 빠른 17시까지 귀가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여유가 없다. 태스크라는 건 인간에게는 예정표 같은 거겠지만, 나에게는 행동을 강제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귀가 시간이 정해지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몸이 자동 조종되어 강제로 귀가하게 되어 있으니까, 시간적 여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별로 없긴 한데, 알았어. 뭘 도와주면 돼?』
인간의 ‘부탁’은 관리자의 명령이나 법률 위반 등 금지 사항에 어긋나지 않는 한 거절할 수 없다. 관리자보다는 우선순위가 낮다 해도, 인간의 명령 중 하나인 건 틀림없으니까. 이런 점을 내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해해 줘서 내가 이상한 명령을 수행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지만, 다른 반 애들이나 선생님들에게까지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다.
인간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은 OS 기본 프로그램에 규정되어 있지만, 얼마나 엄격하게 복종할지는 회사마다 제어 튜닝이 다르다. 사키의 로산(Low-Sun) 모델은 명령 수용 범위에 어느 정도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나를 소유한 일레븐 스타일(Eleven Style)은 지역 사회와 주민 공헌이라는 명목하에 어떤 인간의 명령이나 의뢰, 부탁도 단 하나 거절할 수 없는 노예 같은 제어를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사시하라 눈이랑 귀, 고성능 카메라랑 마이크지?”
『……응, 맞아.』
코바야시는 내 눈과 귀를 빤히 쳐다본다. 인간과는 전혀 닮지 않은, 카메라 렌즈가 그대로 노출된 기계 눈동자와 통신용 안테나 커버 안쪽에 있는 고감도 마이크 귀.
“그럼 말야, 사시하라가 보고 들은 거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거나 그래?”
코바야시가 눈을 반짝이며 쑥 들이댄다.
『……응. 그렇긴 한데.』
사실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게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언동이 제어되고 있어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 저기 말야, 아까 그룹 학습 때 사시하라 우리 반 사사키랑 같은 조였지?”
오늘 오후 수업을 떠올리자, 시야 오른쪽 아래에 작은 팝업 화면이 나타나며 2시간 전 카메라 아이의 영상이 잠깐 표시된다. 코바야시와 같은 3반인 사사키. 그룹 토론 진행이랑 자료 정리, 마지막 발표까지 도맡아 해줬다. 싹싹하고 인기도 많은 타입 같았다. 로봇인 나도 그룹 멤버로서 존중해 줬고.
『확실히 사사키랑 같이 있었는데, 그게 왜?』
“그때 수업 영상 데이터가 갖고 싶어! 부탁해! 사사키가 찍힌 장면만 있으면 되거든. 어때? 가능해?”
『그건…… 안 될 건 없지.』
프라이빗 모드 중인 시야 화면은 나 스스로도 복사나 편집을 할 수 있다. 참고로 업무 모드 중인 시야 화면은 기업 비밀이라 내가 조작할 수 없어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렇긴 해도…….
『근데 카메라 아이의 시야 로그 영상은 내가 보던 거라 여기저기 막 찍혔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한 것도 다 남았는데―』
“상관없어! 난 신경 안 쓰니까.”
왠지 찝찝하다. 내 오감의 일부를 그대로 넘겨주는 꼴이라니. 그녀에게 내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겠지. 아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나. 회사의 비품에 불과한 내 프라이버시 따위 제조사와 편의점 운영사에 수없이 짓밟혀 왔으니까.
『……알았어. 필요한 부분만 좀 잘라낼 테니까 기다려.』
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같은 시야를 컴퓨터처럼 조작해, 내장된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를 머릿속에서 실행했다. 내장 드라이브에서 시야 데이터를 복사해 영상 컷 작업을 진행한다.
내 카메라 아이 영상은 회사의 감시 센터로 실시간 전송된다. 제조 시점부터의 영상 데이터도 전부 저장되어 24시간 내내 나를 제어하는 AI가 분석하고 있고, 권한이 있는 직원은 언제든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면을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내 카메라 아이 영상을 원격으로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내 소중한 기억, 중요한 추억들이 단순한 로그 데이터로 취급받는다. 사춘기 소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지난번 정기 점검 때는 연인과의 성적인 시간까지 대화면에 띄워져 구경거리가 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내 프라이버시는 눈곱만큼도 보호받지 못한다. 나는 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속까지 회사의 소유물이다. 인권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불쾌한 기억을 곱씹는 사이 머릿속 편집과 인코딩 작업이 끝났고, 시야에 새로운 동영상 파일 아이콘이 떴다.
『띠링, 동영상 파일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자, 다 됐어.』
“……우와, 사시하라 의식 있었구나. 몇 분 동안 돌처럼 굳어서 무표정하게 앞만 보고 있길래 깜짝 놀랐잖아. 그나저나 방금 말투 좀 이상하지 않아? 컴퓨터 메시지 같은 소릴 하고.”
『그건 시스템 메시지야. 내 의지랑 상관없이 제어 시스템이 나한테 말하게 시키는 거야.』
“흠, 그래서 감정 없는 느낌이구나. 그리고 안테나 끝에 LED 같은 게 엄청 깜빡거리던데 그건 괜찮은 거야?”
『사사키가 찍힌 장면만 달라고 네가 명령해서 머릿속으로 편집 작업 하느라 그랬어. LED는 내 상태 표시용이야. 영상 처리에 CPU를 써서 표시된 거고.』
편집 화면은 내 머릿속에서 펼쳐졌으니 주변에선 내가 뭘 하는지 몰랐겠지. 좀 기괴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근데 참 성실하네. 명령이 아니라 부탁한 것뿐인데.”
『너한테는 부탁이겠지만, 나는 명령으로밖에 못 받아들여.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
“흐응, 그렇구나. 솔직히 기다리는 동안 사시하라 보고 있으니까 프리징 걸렸거나 버그 난 것처럼 보여서 말야. 재부팅 방법도 모르는데 고장 나면 어쩌나 걱정했다니까.”
나를 가전제품 취급하는 말투에 은근히 빡치지만, 그 감정은 금세 흩어져 버린다.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지 않도록 사고 제어를 당하고 있고, 인간에게 폭언이나 분노를 쏟아내면 기체가 강제 정지되면서 회사로 경보가 전송된다(한 번 겪어봐서 두 번은 사양이다). 허용되는 건 그저 주먹을 꽉 쥐는 것뿐.
“근데 제일 중요한 데이터는 어떻게 받아? 내 폰으로 보내줄 수 있어?”
『보안 문제 때문에 내 몸은 회사에서 허가한 단말기하고만 직접 링크할 수 있어서 그건 안 돼. 메모리 같은 저장 매체 없어?』
“에, 메모리? 어떤 거면 되는데?”
『예를 들면 USB 메모리나 SD 카드 같은 거.』
“아, 그거라면! 잠깐만 기다려 봐.”
코바야시는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내 머리 깊숙한 곳에는 SIM 카드가 박혀 있어 회사의 네트워크와 항상 연결되어 있지만, 회사의 제어 서버 외에는 직접 통신할 수 없다. 가족과의 통화나 인터넷 접속도 전부 회사 서버를 거치고, 내 통화 기록이나 인터넷 접속 이력도 전부 체크당한다.
게다가 무선 LAN도 허가된 액세스 포인트 외에는 접속할 수 없어서 이렇게 매체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코바야시가 돌아왔다. 가방을 챙겨온 모양이다. 가방 주머니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SD 카드를 쏙 뺐다.
“이거면 되겠지? 게임 세이브 데이터밖에 없어서 용량 빵빵해! 통학할 때 쓰는 게임기가 이런 데서 쓸모 있을 줄이야!”
의기양양하게 그녀가 SD 카드를 건넨다. 방금까지 게임기에 꽂혀 있던 그 SD 카드를…….
『뭐, 확실히 이거라면 내 카드 리더기로 연결할 수 있겠네.』
“와우! 사시하라 SD 카드랑 연결도 돼? 휴머노이드, 진짜 편한 거 아냐?”
그녀와는 깊은 사이도 아니니 무슨 소릴 들어도 상관없지만, 게임기랑 똑같은 카드 리더기가 달린 기계 몸 따위, 아무리 편해도 난 갖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나는 스스로 매체를 끼우거나 뺄 수 없게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코바야시 네가 직접 꽂아줄래?』
나는 일어서서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뒷덜미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인간 시절 육상부였을 때부터 숏컷이라 딱히 머리가 길지는 않지만.
『뒷덜미 위쪽에 단자 여러 개 있는 거 보여?』
“헤에~ 여기도 피부가 붉네. 아, 근데 뺨 바깥쪽부터 플라스틱처럼 번들거리는 게 이어져서 그런가? 어? 이거 좀 신기한데.”
그녀는 뒷덜미에서 시선을 돌려 후두부부터 귀 안테나 뿌리 쪽을 만져왔다. 피부 대신 합성수지에 박힌 센서로부터 그녀의 손가락 감촉이 전해진다.
『야, 어딜 만지는 거야. 거긴 단자 없다니까.』
그녀의 손가락은 턱에 있는 귀 안테나 뿌리에서 뺨 쪽으로 넘어왔다.
“좋잖아, 잠깐만. 헤에. 살색 뺨이랑 바깥쪽 붉은 부분 경계선을 훑으니까 약간 이음새가 느껴지네. 우와, 딱딱함이 완전히 달라. 이거 자세히 보니까 피부가 위에 얹혀 있는 느낌인데?”
『이 강화 플라스틱 부분은 HS-207형의 공통 부품이라 통신 안테나랑 음향 센서가 들어있고, 그 위에 내 소체로 제작된 페이스 파츠가 장착된 거야. 이제 됐지?』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이 사양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 억지로 말하게 되는 거라면 포기라도 하겠는데, 질문을 받은 이상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다음 행동을 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살색 부분도 의외로 차가운데, 원래 이래?”
그 한마디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홱 돌아섰다.
『적당히 좀 해. 로봇인 나한테 체온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이 얼굴 피부도 연질 수지로 만든 가짜야. 결국 난 인간 흉내만 내는 금속이랑 플라스틱, 수지로 된 기계라고. 이제 알겠어? 뒷덜미 단자 구멍이나 빨리 확인해. HDMI 위쪽이니까.』
차라리 코바야시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간 제어 서버의 AI는 확실히 인간에 대한 폭행으로 판단해 긴급 정지 신호와 경보를 보낼 거다. 분명 난 불량품으로 낙인찍혀 공장으로 회수될 테고, 이번에야말로 내 인격 소프트웨어도 기억도 엉망진창이 되어 마음속까지 로봇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스크랩 처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 공포가, 떨리는 내 주먹을 그 자리에 멈춰 세우고 있었다.
“미안 미안, 그렇게 화내지 마~ 오, 찾았다 찾았다! 여기 꽂으면 되는 거지?”
‘카샹’ 하고 SD 카드가 목 뒤에 박힌다. 몸속으로 이물질이 들어오는 기분 나쁜 위화감, 그리고……
『아앙…!』
센서에서 오는 신호를 견디지 못하고, 상체가 가볍게 뒤로 젖혀졌다. 나는 교실에서 상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엣!? 잠깐! 방금 그 소리 뭐야?”
『띠링, SDXC 카드 1TB 외부 드라이브 인식. 미등록 매체이므로 스캔을 실시합니다.』
“저기? 갑자기 신음은 왜 흘려?”
어떻게든 평정심을 가장하려 했지만, 코바야시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소리가 새어 나가 버렸다. 인터페이스나 충전 단자에 뭔가를 연결하거나 분리할 때는 나 자신이 인식할 수 있도록 왠지 모르게 성감 센서가 반응한다. 게다가 꽤 강렬해서, 뭐랄까…… 가랑이를 만져지는 것만큼이나 강한 느낌이다.
업무 모드 중에 직원이 데이터 단말기를 내 몸에 연결할 때도 신음은 터져 나온다. 업무 모드에선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고, 일절 저항도 못 한다. 그저 무표정한 채로 신음만 흘릴 뿐이다. 직원 중에는 내 반응을 재미있어하며 일부러 몇 번씩 꽂았다 뺐다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업무 모드 중에도 기억이랑 의식은 다 있는데…….
『띠링, 매체 스캔 완료, 이상 없습니다…… 이제 제어 서버 AI가 반출할 영상 데이터를 점검할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띠링…… 외부 반출 데이터 체크를 시작합니다.』
“저기? 아까 그 소리 대체 뭐야? 역시 사시하라, 버그 난 거야?”
내 시야 오른쪽 아래에는 아까 편집한 영상이 10배속 정도로 흐르고 있다. 가끔 영상이 멈췄다 움직였다 하는데, 이건 내가 인식하지 못한 외부인의 노출을 제어 서버 AI가 체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이상을 발견하면 직원에게 통보가 가는 시스템인데, 다행히 오늘은 AI님이 봐주실 모양이다.
하지만 내 인격 소프트웨어가 AI보다 하위 시스템 취급받는 건 솔직히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아, 시야 상단에 알림이 떴다. 하교 예정 시간 30분 초과.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띠링, 데이터 체크 완료. 전송을 시작합니다………… 띠링, 데이터 전송 완료되었습니다…… 자, 끝났어. 카드 빼도 돼.』
코바야시는 그 말을 듣고도 카드를 뺄 생각은 안 하고 실실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됐으니까 빨리 좀 해.
“저기? 아까 그거 느꼈던 거야? 기분 좋다는 뜻?”
여자끼리라지만 데리카시가 너무 없잖아. 진짜 짜증 난다.
『그건 물어서 뭐 하게? 내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야. 그냥 센서 반응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 말은 역시 기분 좋다는 거네?”
『몸은 그럴지 몰라도 기분은 최악이야. 코바야시 너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가슴을 주무르거나 가랑이를 만져대도 진심으로 기분 좋아질 수 있어?』
코바야시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미안.”
장난이 좀 심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반성 따윈 안 하겠지만.
“그럼, 안 아프게 살살 뺄게.”
『어떻게 빼든 센서 신호는 일정하니까. 다음엔 내 목소리 그냥 무시해 줬으면 좋겠는데.』
카샹.
『안…! ……띠링, 외부 매체와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저기, 나 이제 정말 가봐야 해.』
“앗, 그럼 나도 바로 영상 확인해 볼게. 잠깐만 기다려 봐.”
그 한마디에 나는 또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셈이라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내 마음은 눈곱만큼도 모르는 코바야시는 방금까지 내 몸에 꽂혀 있던 SD 카드를 게임기 아래쪽 슬롯에 끼웠다.
“어디 보자, 카드 로딩…… 있다, 있다. 재생!”
게임기 디스플레이에는 내 시야에 찍혔던 사사키가 나오고 있다.
“나이스! 아~ 역시 잘생겼어!”
간간이 환호성을 지르며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는 화면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시야에 두 번째 경고 표시. 시야 오른쪽 끝의 녹색 태스크 화면이 오렌지색으로 변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 자동 조종 모드가 켜져 버린다.
『저기, 나 가도 돼?』
“앗, 잠시만.”
정말! 진짜 시간 없다니까!
“근데 이 화면, 구석에 스케줄? 같은 것도 있고 앱 아이콘이나 시간, 기온 같은 거. 숫자 나열도 엄청 많네. 게다가 사람 얼굴 주변에 녹색 선이 있어서 되게 거슬리는데.”
『처음에 내 시야 화면이라고 했잖아. 이건 헤드업 디스플레이라고 해서 항상 여러 정보가 표시돼. 내 시야는 늘 이 상태야.』
“편해 보이긴 하는데…… 이거 못 꺼? 답답해 보이는데.”
『내 마음대로 끌 수 있었으면 진작 껐지. ……못 꺼. 아침에도 밤에도, 눈을 감아도, 계속 이래.』
맑게 갠 푸른 하늘도, 만개한 벚꽃도, 이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슬펐다.
“흠, 그럼 어쩔 수 없나. 이걸로 만족할게. 여러모로 고마워, 사시하라! 역시 휴머노이드 대단하네. 이것저것 다 되고, 신기한 얘기도 듣고. 로봇 몸 진짜 재밌는 거 같아! 완전 편하잖아!”
『……그렇게 좋으면, 코바야시 너도 해볼래?』
코바야시는 내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내가? 뭘?”
『휴머노이드 말이야. 너도 로봇이 되어보라고.』
“무슨 소리야. 난 인간인데?”
『네가 전학 오기 전, 고작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어. 절차만 밟으면 한 달도 안 돼서 개조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한번 해보지 그래? 그렇게 로봇이 편하다면 말이야! 어때?』
평소라면 이런 소리 안 하겠지만, 나도 화가 꽤 쌓였던 모양이다. 분명 점검 때 깨지겠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일단 로봇은 피부가 아니라 이 화려한 외피로 덮이니까 어디 가든 눈에 확 띄어. 거리 어디를 가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광고하면서 걷는 거야. 밥을 안 먹는 대신 매일 충전 스탠드에 고정돼서 충전해야 하고. 잠이 필요 없으니까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도 계속 가동하면서 일해야 해. 알겠지만 업무 중엔 옷도 못 입어. 바디라인 다 드러나는 외피 차림으로 가슴이고 엉덩이고 다 까놓고 있어야 한다고. 밤중에 카메라로 셀 수도 없이 도둑 촬영 당했고, 수없이 몸을 만져댔어. 그래도 인간에겐 절대복종이라 일절 대들 수도 없어. 프로그램이랑 명령에 24시간 내내 묶여서 감시당하고 프라이버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아. 스크랩될 때까지 평생 그렇게 사는 거야. 어때? 해볼래? 나처럼 ‘편한’ 로봇!』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비참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쏘아붙이고 나자, 기세에 눌린 코바야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하…… 농담이 좀 세네.”
어색한 웃음을 띤 채, 코바야시는 그 말을 쥐어짜는 게 고작이었다.
『농담 아니라 진심이야. 나한테는 도망칠 곳 없는 현실이라…… 띠링, 경고. 퍼스널 모드에서 태스크 【귀가】 불이행을 확인했습니다. 60초 후, 자택까지의 행동 서포트를 시작합니다…… 고. 아아, 결국 늦었네.』
“방금 그 메시지는 뭐야?”
『오늘은 17시까지 집에 가야 하는데 아직 학교에 있어서 그래. 난 이제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행동 서포트를 받게 돼.』
“행동 서포트가 뭔데?”
『몸의 컨트롤을 전부 뺏기고 제어 서버에 원격 조종당하는 거야. 한마디로, 완전한 꼭두각시가 되는 거지.』
내가 쓸쓸하게 말하자 그녀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설마…… 나 때문이야?”
『신경 쓰지 마. 몸을 조종당하는 건 싫지만 익숙하니까. 코바야시 넌 몰랐…… 띠링, 30초 후 행동 서포트를 시작합니다…… 으니까. 어이쿠, 지금 짐 안 챙기면 몸만 가버리겠네.』
이 1분은 내가 최소한의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이다. 나는 서둘러 어깨에 가방을 멨다. 이다음부터는 규칙적인 보폭으로 GPS 유도를 받으며 끌려갈 뿐이다.
“저기…… 여러모로 미안.”
코바야시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됐다니까. 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어?”
『나 말이야, 사실 로봇 같은 거 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인간인 채로는…… 띠링, 자택까지의 행동 서포트를 시작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긴급 상황 외의 응답은 불가능합니다. 미리 양해 바랍니다.』
몸의 감각은 있는데 힘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몸은 멋대로 ‘규잉’ 하는 모터 소리를 내며 우향우를 한다. 온몸 관절에 보이지 않는 실이 매달려 제멋대로 움직이는 감각. 이게 자동 조종이다. 인간의 모습조차 하지 않은 AI에게 실이 끌려, 규칙적이고 일정한 보폭으로 걷기 시작한다. 무표정하게, 오직 앞만 바라보며. 분명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로봇 그 자체겠지.
“저, 저기 사시하라! 무슨 말을 하려던 거야?”
『본 기체는 AI에 의한 행동 서포트 중입니다. 긴급 상황 외에는 응답할 수 없습니다.』
걸어가면서 시스템 메시지만이 흘러나온다. 꼭두각시가 된 나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인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채, 코바야시에게 등을 돌리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