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Lololol (아카라이브 순애 채널)
"어서오십시오, 주인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들려오는 기계적인 목소리, 그와는 정반대로 온화한 분위기의 집안.
"저녁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 오늘 저녁의 메뉴는 <순두부찌개>이며, 이번 목욕의 배스밤은 <로즈마리향>입니다."
"...저녁부터 하지."
"우선 목표 <저녁>, <순두부찌개>, 알겠습니다.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푸른 장발, 생기없는 눈, 상당히 굴곡진 몸체. 나를 위해 저녁을 차려주는 이 로봇은 나의 섹서로이드.
...이자 나의 아내, 이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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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그녀와의 첫 만남은 중학교 시절.
중학교시절에는 여사친 남사친 관계였지만, 고등학교때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로맨틱하게 같은 인서울에 들어가게 되어 오랫동안 사귀게 되어, 종국에는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그야말로 남들이 부러워하고도 남는 순애보. 나는 하영이의 손에 반지를 끼면서, 이 순애보가 평생가기를 기원하였다.
무참히도, 이 바람은 얼마안가 산산히 깨져버렸다.
여유도 생겼겠다 이제 아이도 생각해볼까 하던 결혼 후 6개월, 정확히 XX년 5월 14일, 모두가 아는 로즈데이이자 나와 하영이가 사귄지 10주년이 되는 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미 한다발을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연 나를 맞이한건 하영이가 아닌, 컴컴하고 차가운 집이였다.
마트간건가 해서 전화를 해봤지만 감감무소식, 설마 친구들하고 놀러간건가 해서 그쪽한테 걸어봤더니 계획조차 없었다고 한다.
금방 돌아오겠거니 하며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10시가 지나도, 11시가 지나도, 12시가 지나도, 현관문은 내가 들어온 뒤로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경찰에 신고하여 수사한 결과, 납치되었다고 한다.
CCTV분석 결과, 마트에서 장보고 돌아가는 길중에 꽤 어두운 지름길이 있는데, 왠만해선 큰 길로만 가던 그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지 그 지름길로 갔었고, 거기서 누군가에게 순식간에 봉고차로 끌려가 저 멀리 갔다고 한다.
잘 못 들은거 같았다. 티비에서나, 유튜브에서나 보던 내용의 주인공이 되버리다니. 약간 이기적이지만 그 녹화된 영상의 여인이 하영이가 아닌 다른 여자이길 바랬다. 하지만 그 뒷모습, 수년간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자주 보던 그 뒷모습을 내가 어찌 잊고 어찌 헷갈리랴. 그렇게 몇십분간 경찰서에서 소란 피운 뒤 그제서야 받아들었다. 하영이는 납치되었다.
그와 동시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받았다. 좋은 소식은 해당 봉고차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 나쁜 소식은 그 납치범의 소속이...그 악명 높은 '미시시피 퀸'이란 것.
'미시시피 퀸', 납치집단 주제에 상당히 유명한데 그 수법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젊은 여성들을 납치,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사용하여 성적 관계만을 위한 안드로이드, 이른바 섹서로이드로 개조하여 전 세계로 유통시킨다고 한다.
이들에 의해 섹서로이드로 개조되면 성격은 물론 기억까지 뒤엎어져서 다른 곳에서 기적적으로 찾는다 해도, 그녀를 되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소유자가 아이고 불쌍타하며 돌려줄리도 없고, 섹서로이드도 개조에 의해 기억이 없어지는 데다 그녀의 새주인을 떠받드느라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납치된 피해자를 구하려면 그녀가 유통되기 전에 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상당히 극악스런 조건과 경우의 수. 경찰은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고, 나는 그저 차가운 집 안에서 홀로 기도하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회사에선 휴가를 내주기도 했으며, 가족이 다독여주기도 하고, 외가댁하고도 서로 위로하며 지내기를 약 3개월 뒤, 부디 다 좋으니 하영이를 되찾아 달라고 한 기도가 닿은 것인지, 마침내 경찰에서 전화가 왔었다. 아내를 찾은거 같다고. 어서 서로 와서 확인해 달라고.
전화를 끊긴 뒤의 나의 모습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인공 그 자체, 계절에 맞지않는 옷을 입는 가 하면 양말이나 신발을 짝짝이로 신기도 했다. 하나 창피하진 않았다. 하영이가 돌아왔다. 그걸로 된거다. 나는 그런 생각만 한 채로 헐레벌떡 서로 향했다.
아까 나의 기도가 닿은거 같다고 했던가, 확실히 어떤 초월적 존재에게 닿은 건 확실했다.
그 존재의 이름이 원숭이의 손이란게 문제지.
서에서 하영이라고 보여준 건 그냥 안드로이드였다.
정확히는 그냥 요즘시대에 자주 보이는, 평범한 안드로이드중 하나이며 나를 안내할 개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랬다.
"...저, 어서 안내해 주시죠?"
"....."
"저기, 이 안드로이드, 말을 안 듣는데요?"
안드로이드의 고장여부를 묻고 싶었던게 아니였다. 제발 부탁이니 이 안드로이드의 정체가 하영이는 아니라고 해주길 바랬던 질문이였다.
"....."
"저기요? 뭐라도 말씀을..."
"...죄송합니다."
단 다섯글자. 고작 그 정도의 단어에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당장 저 고개숙인 형사의 멱살을 잡아 올려버리고 싶었다. 석연찮게 서있는 저 경찰관의 안면을 주먹으로 치고 싶었다. 그 후에 온갖 욕지거리와 분노를 쏟아내고 싶었다. 하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도 최대한 노력했다는 걸 알기에.
하영이는 구출됬다. 다행히 브로커에 의해 팔려가기 직전에 발견되어 구출할 수 있었다. 하나 말그대로 팔려가기 직전, 브로커를 체포한 곳은 항구이며 몰래 섹서로이드랑 같이 밀하여 외국의 손님에게 팔려고 했던 모양이였다고 한다.
"귀에 달린 위치 수신기 같이 떼어내야 할 파츠들이 꽤 있어서 분리작업을 해야 됬는데, 알려주신 아내분의 용모와 닮아서 확인시키려고 한 겁니다. 너무 늦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빼닮았다.
쏙 빼닮았다.
단직 그 아름답던 흑색의 장발과 검은 눈동자가, 주문자의 취향때문인지 파랗게 된거 빼고는, 바로 알아차릴 만큼 쏙 빼닮았다.
'미시시피 퀸', 참으로 무서운 조직이다.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일부러 외모는 안 바꾸는 건가.
한참동안 넋놓고 하영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여태 그녀와 살면서도 들어보지 못한, 그러나 익숙한, 참으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저를 거두어 주어 감사합니다. 평생토록 봉사하겠습니다."
신원확인을 하고나서 약간의 시간을 기다린 뒤, 문제될 파츠들을 제거한 그녀를 차에 태우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파츠제거를 위해 파견나온 기술자가 말하길, 일단 그녀의 주인은 나로 설정되있다고 한다. 일단 섹서로이드지만 가정용 기능까지 탑제되어 있어 주부역할은 가능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전의 관계, 함께해온 추억이 유지될 기대는 안 하는게 좋다고 한다. 녀석들의 수법상 기계로 개조하는 도중 인격을 소멸시키고 섹서로이드에 걸맞는 새 알고리즘 인격을 새겨넣는다고 하니.
즉, 옆자리에 타있는 이 안드로이드는 그저, 하영이와 닮을 뿐인, 하영이가 아닌...
아닌...
아닌...
.....
빠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운전대에 머리를 쳐박았다. 로봇은 따로 있는데 고장난건 나인거 같았다.
하영이와 너무 닮았다.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몸매까지, 내가 데이트할때도 봤고, 호텔에서 알몸으로 본 그 모습이였다.
하지만 그뿐, 저 '것'은 하영이가 맞는가?
"주인님, 운전하기 어려우십니까?"
누구때문에 이러는지도 모른 채 하영이...는 내 몸을 다니 일으켜 세웠다.
"운전하기 불편하시다면, 대신하여 운전해드리겠습니다."
"...주소도 모르면서. 됬다."
여기서 투정부리면 남들에게 민폐다. 투정은 집에가서나 부리기위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녀은 곧 본 업무를 실행하였다. 하영이가 없는 동안 청소를 소홀히 하여 난장판이 된 집을 한시간 만에 정리하였고. 남아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주었다. 그후 목욕물까지 뎁혀놓고 배쓰밤까지 풀어냈다.
역시 가정용 안드로이드라서 그런가, 감탄시 절로 나올 일처리였다.
...하영이는 나름 허당이였는데...
대충 목욕 한뒤, 그녀에겐 휴식을 명했고(그녀의 휴식은 절전모드로 제공된 충전기에 연결되어 가만히 있는 것. 충전은 기본적으로 태양열이지만 밤중에는 이렇게 전기로 충전한다.) 나는 간만에 편히 소파에 누워 TV를 보았다.
이번 뉴스의 메인은 역시 '미시시피 퀸' 소속의 브로커 체포소식. 이걸로 악명높은 '미시시피 퀸'의 소탕에 한걸음 나아갔다니, 이걸로 누군가는 구원받을 거라느니, 한없이 허무한 소리들 뿐이다. 소탕은 모르겠고, 나는 구원받기는 커녕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색에 빠졌는데.
뉴스를 보며 나는 그제서야 외가댁에 전화를 건다. 그녀의 소식을 가장 기다리고 있을 곳이니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
대충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무려 세번이나 오열하셨다. 원래 눈물 많으신 분들이 아니신데. 그렇게 최악의 희소식을 전부 들으신 장인 어른은 그제서야 나에게 물어보셨다.
"자넨...어쩔 셈인가? 그...하영이와 닮은 걸,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하영이와 닮은 걸, 부모조차 그것을 하영이로 인지해야될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하영이 부모도 저럴 정도면, 나도 저걸 하영이가 아니라고 인식해야 되는 건가? 저 안드로이드에는 하영이 시절의 기억이 이미 다 지워졌다고 한다. 그러면 저건 하영이를 닮았을 뿐인 안드로이드고, 하영이는 정말로 죽은 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것이 하영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하영이를 영영 떠나보내는 꼴이 되는 거 같아 무서웠다. 내가 살인 한 꼴이 되는거 같아 무서웠다. 10년 넘께 함께해온 천생연분을, 내 사랑을, 내 손으로 끊고 떠나보내는거 같아 두려웠다.
오랜 침묵 끝에 나는, 감히 장인어른에게 주장했다.
"...하영이는 되돌아온게 맞습니다. 하영이는...그날 상견례서 약속 드렸듯이, 제가 평생토록 책임지겠습니다."
내 맹세를 다시 들은 장인어른은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하영이를 다시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선 끊으셨다. 나조차도 뭐라 말을 못하겠지만, 부모 마음은 오죽할까.
나는 일단 저 안드로이드를 하영이로서 대하기로 하였다. 저것이 하영이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녀를 결코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으며, 그저 가정용이라며 막 대하기도 싫기 때문이였다. '저 안드로이드는 하영이다!' 정도의 확신까지 하기엔 버겁지만, 일단 하영이로서 대하는 것이 최선인거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침대에 들어설때, 갑자기 다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영'이였다.
"오늘 일과는 다 끝났어, 내일 다시 불러줄께."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업무가 있습니다."
청소했고, 밥먹었고, 목욕했고, 뭐가 남았지 싶었는데, 불현듯 기억해냈다. 본질은 섹서로이드란 것을.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녀는 바로 사타구니에 있던 덮개를 개방하여 나에게 보여줬다. 강철로 이루어진 다리와는 달리, 중요부위만큼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아니, 그냥 개조할때 적당히 유지시킨거 같았다. 그녀의 클리토리스 바로 옆 부분에 조그만하게 나있는 점을 보고 확신했다.
"부디, 오늘 밤 제 몸을 사용하여, 모든 피로를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뭐라 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성큼성금 나에게로 다가왔다. 가슴을 덮고 있던 것도 열려진데다, 개조의 영향인지 벌써부터 보지엔 애액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녀와의 밤생활은 즐겁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하나같이 음탕하게 몸을 섞어가면서 달콤한 사랑의 목소리를 나누고, 다 한뒤엔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는 그 일련의 과정.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멈춰! 이건 명령이다!"
역시 로봇 3원칙을 따르는 지, 주인의 명에따라 그대로 정지하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내가 원할때까지는 섹스기능은 안해도 좋아."
물론 그 원할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몇개월 만에 만난 연인과의 섹스를 거부하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 무턱대고 섹스를 하는 건, 아무래도 그녀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었다. 분명 납치되고 개조과정 속에서 두려워 했을 꺼다. 저렇게 감정없는 안드로이드가 되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주인이라 떠받드며 폐기될때까지 성처리를 해야만 하다니, 끌려가 마취되기 직전까지 내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아니, 개조되기 직전까지도 내 이름을 되뇌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간절한 외침을, 뒤늦게서라도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하영이는 다시 덮개를 닫은 뒤, 조용히 내 방에서 나갔다.
안심하던 찰나, 문틈 사이로 그녀의 표정이 보였었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뭔가...슬퍼보였다. 감정이 없어 무표정으로 일관 할 텐데, 어찌된 일일까, 섹스를 못하면 슬퍼해라라는 명령이 입력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잘 못 본 걸까?
모르겠다. 나는 그저 잠을 청할 뿐이였다.
그 날 꿈을 꾸었다. 새파란 파도가 넘실대는 해안가에 하영이가 지평선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검은 장발, 내가 아는 그 하영이가 맞았다. 내가 부르자 그녀는 뒤돌아 나를 보았다. 하영이는 눈물을 흘리며...웃고 있었다.
그녀를 안으로 뛰어가려던 순간, 꿈에서 깼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30분 뒤 아침 <오므라이스>가 준비되오니 샤워를 하시는 걸 권장드립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청색 장발에 청안인, 안드로이드 하영이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서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꿈에, 기묘한 기상이였다.
"어서오십시오, 주인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납치된 아내가 안드로이드가 되어 돌아온 지 6개월.
"저녁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 오늘 저녁의 메뉴는 <제육볶음>이며, 이번 목욕의 배스밤은 <라벤더향>입니다."
"...저녁."
"알겠습니다. 저녁 준비까지 <5분 12초> 남았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6개월간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하영이의 시퍼래진 모습도, 익숙하나 익숙치 않은 기계적 어투도,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의 가사능력도 이젠 익숙해졌다.
익숙해짐의 비결은 간단했다.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회사 사람들, 주변 친구, 내 가족과 심지어 외가댁에서도, 처음 1개월간은 나와 하영이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보냈었다.
그중에서는 진짜로 저 안드로이드를 하영이로 대할 꺼냐, 기억도 감정도 없어보이는데 정말 하영이로 보는 거냐, 차라리 그만 놔 주는게 좋지 않겠냐.
상당히 무례한 조언들이였지만, 그들에게 딱히 불평이나 분노를 내비치진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배려. 내가 걱정되어서 한 말들일 테니.
하지만 그 조언들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비록 기억도 없고 감정도 없지만. 하영이는 이제 내 옆으로 돌아왔다. 그것만으로 된 거다.
평생 저 섹서로이드를 아내라 여기며 살꺼냐고 일갈한 사람이 있을테지. 맘대로 생각해라. 저건 하영이다. 방식이 꽤 달라졌지만, 날 내조하고 돌봐주는 하나뿐인 아내, 하영이다.
"저녁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인님. 부엌으로 오셔서 식사하니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 '주인님'이란 호칭, 당연하다면 당연한 호칭이지만, 저 세글자를 들을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정녕, 정녕 저 입에서, 그 목소리로, 딱딱한 어투로라도 좋으니, 다시 그녀에게서 내 이름이 불러지는 날이, 하다못해 여보, 자기와 같은 호칭으로 불러지는 날이, 다시는 찾아올 수 없다는 건가?
나는 너의 주인이 아니야. 나는 너의 하나뿐인 연인이고, 남편이며, 반려자인데... 다시 내 이름을 불러줄 순 없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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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목욕을 한뒤, 나는 내 방에서 유튜브 영상이나 뒤지고 있었다.
주로 보는 것은 연인이나 부부의 브이로그. 예전에는 달달하면서도 풋풋한 모습이 좋아 즐겨 봤다면,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부러워 보는 입장이 되었다.
나한테도 분명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저런 연인들 부럽지 않은 관계를 지녀온 내가 이젠 보기만 하는 입장이 되버리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부디 저 연인들은 평범하고 행복한 교제를 이어나가길...
이런 씁쓸한 소원을 빌던 와중, 실수로 쇼츠영상중 여캠이 제로투를 추는 걸 보고 말았다. 요새 알고리즘이 이상하다 싶었더만 이렇게 되다니. 하영이가 뒤에 있었다면 바로 등짝 맞았을 텐데...
...이러한 와중에도 벌써 내 주니어엔 반응이 와버렸다. 그럴만도 하지, 요 6개월동안 한적이 없었으니.
전에도 말했다시피 섹서로이드가 된 하영이에게 "내가 원할 때 까지는 섹스기능을 하지 마라"란 명령을 넣었다. 처음엔 하영이로서 품더라도, 도중에 흥분한 나머지 섹서로이드로써 품게 될테고, 그 짓은 분명 납치되어 무서워하고 괴로웠을 하영이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홍등가에 가지도 않았고, 야동이나 그런 걸 보지도 않았으니 쌓여있는게 당연. 보통 이런 날은 하영이덕에 잘 넘어갔었겠지만...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름하야 상딸.
앉아 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재끼고, 바지와 팬티를 벗어 우뚝 솟아오른 내 주니어를 노출시킨 뒤, 지긋이 눈을 감아 하영이를 생각한다.
상상속의 하영이는 옛날 모습 그대로의 흑장발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야하지만 오직 나만이 것인 풍만한 가슴과 넓은 골반이 투명한 분홍색 레이스 너머로 비춰지고 있었다.
섹스를 할때마다 그녀는 시뻘개진 얼굴과 함께 애액이 새어나오는 골반을 흔들면서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분명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품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 모습이 그립다. 어쩔땐 창피해하면서 떨던 모습이기도 했고, 정말 세상 행복한 얼굴로 품기도 했고, 또 꽤 심하게 했던 날에는 짐승 울음소리나 내며 천박한 얼굴을 내비치고는 했지. 그 모습을...그 얼굴을...그 감정을...
"아아...하영아...하영아..."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그녀의 이름과 함께 기어코 절정에 이르었다. 꽤 간만에 한 발 뽑긴 했지만, 어쩐지 시원하다기 보단 뭔가 허전한 기분이였다.
역시, 당사자가 아니라면...아?
"....."
여운에 잠긴 동안 상당한 위화감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시선의 끝엔 하영이가 방문앞에 서있었다. 그 어떤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표정으로, 그저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그, 그게...이, 일단 갑자기 왜 들어온 거야!"
"저번에 말씀하셨던 화장실 청소의 완료에 대해 보고하기 위하여 들어왔습니다. 먼저 노크를 하였으나 어떤 반응을 보이시지 않으셔서 부득이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노크까지 했었다니, 얼마나 심취했으면...
"...현재 주인님의 행위는 자위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어...응...그렇...지?"
그걸 그렇게까지 말해야 되겠냐만은.
"현재 주인님은 성적으로 흥분한 상태입니다. 맞습니까?"
"어...그치?"
"분석 결과, 주인님의 성적 흥분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해소를 원하시는 상태이므로..."
"뭐? 내가 뭘 원해?"
"지금 <섹스 기능>을 실행하겠습니다. 부디 제 몸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하영이의 가슴과 가랑이를 덮고있던 가리개가 사라지더니, 그대로 예전부터 봐온, 그때도 본 뽀얀 속살이 들어났다.
"아, 아니 잠깐! 그러니깐 이건..."
뭐라 하기도 전에, 하영이는 이미 얼굴을 내 주니어 바로 앞에 들이밀었다. 간만에 누군가의 시선을 받아서인지 평소보다 더 빳빳이 된 상태.
"먼저, <펠라치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본 기체의 구강내부에 그대로 사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입력된 대사를 한 뒤, 곧바로 하영이는 나의 것을 입안 가득 물기 시작했다. 방금 한 발 뽑은 데다 6개월 만의 펠라때문인지 상당한 자극이 밀려올라왔다.
"잠깐! 잠깐! 이건...큭!"
이런 말을 하기에는 천박하기도 하고 하영이한테도 죄 짓는 기분이지만, 섹서로이드라 그런지 상당한 실력이였다. 순식간에 내 주니어의 약점을 간파한 다음(아마 원리는 신경의 전기자극을 탐지하여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아마...) 축축하고도 자극적인 혀로 해당 부분들을 위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흡사...하영이가 해주던 것 그 자체였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지내오던 연인의 수준을 삽시간에 따라잡을 정도라니. 이러니 수요가 있을테고 그 수요에 따라 그 녀석들도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거겠지.
그렇게 얼마 안있어 나는 그대로 하영이의 입안에 싸버렸다. 그리고 하영이는 그걸 별 반응없이 머금고 있다가...그대로 꿀꺽하며 삼켜버렸다. 예전의 하영이였다면 술에 취하지 않는 이상 비리다며 삼키려 해도 결국 뱉곤 했는데... 미각같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감각은 가차없이 차단한 건가?
"<펠라치오>과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후우...그 이런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하영이는 그대로 나를 침대에 밀어 넘어트렸다. 자세때문인지 한풀 꺾인 내 자지는 그대로 수직으로 일어선 모습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다음 과정인 <질내사정>을 실행하겠습니다. 본 기체는 자동 피임 모드가 설정되어있으니 그대로 삽입하셔도 됩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선행 과정으로 <스마타>를 실행한 뒤, 즉시 다음 과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저항할 세도 없이 그대로 하영이는 적당히 질척거리던 둔부를 그대로 기승위자세로 내 주니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된다. 어쩔 수 없이 한 펠라치오마저 하영이한테 죄책감이 들 정도인데, 이대로 삽입했다간 영영 씻지못할 죄를 짓는 셈이다. 같이 납치되어 한명한명 감정없는 섹서로이드가 되버리는 다른 여성들을 보며 공포와 절망에 몸서리 치던 하영이를 모욕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내 주니어는 간만에 마주한 짝때문인지 순식간에 부활했고,
쑤욱!
그대로 삽입당해버린다.
"아, 안...크윽!"
6개월만에 만난 그녀의 내부는 예전 그대로. 한참동안 남자를 들인적이 없는데다 그때와 같이 찰떡 수준의 속궁합으로 인해 간만의 쾌락에 사로잡혀 별 반항을 하지 못하였다.
"삽입 확인, <가변형 질수축>기능을 실시합니다."
"잠깐! 뭔지는 설명하고...윽?!"
처음 듣는 기능을 실행하자마자, 내 주니어를 감싼 질이 변형되어 더욱 감싸들었다. 정확히는, 질 내부가 방금 파악한 남성기의 약점들만을 파고 들어가 그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래가지고선 순전히 그녀를 노리개로 사용하는...
"제발, 제발 그만...으으윽..."
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하영이는 그대로 거센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쥐어짜낼려고 하는 듯이 안그래도 탐스러운 골반을 돌리고 흔드는 데다, 뭔 듣도보지도 못한 섹스용 기능에 그간 그리웠던 감촉까지. 나의 저항심은 점점 쾌락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며 괴로워하고 있던 와중 우연찮게 내 위에서 허리를 놀리던 하영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어떤 감정도 없는 푸른 눈과 청발만 제외하면, 내 몸을 느끼는 하영이의 모습 그 자체. 내 위에서 새삼 야하고도 행복한 표정으로 열심히 몸을 흔들던 모습이 지금 하영이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그러고보니 하영이를 안은지도 한참 됬어. 안을 때마다 느끼던 그 감촉을...이젠 희미해져가는 그 느낌을...지금이라도...딱 한번...
아아...
나는...
나는...
"으...으아아아아아!"
어떤 감정이였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인내의 한계였는가?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가? 단순한 흥분이였나? 나는 그저 몸을 그대로 일으켜 하영이를 눕게해, 정상위 체위로 바꾸었다.
하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바뀌어진 주도권에 대한 그 어떤 불만도, 알림도 하지않았다. 그녀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였다.
이번엔 내가 움직일 차례, 나는 그대로 하영이의 안을 거칠게 박으면서 그녀를 꼭 안았다. 잠결에 자신의 애착인형을 꼭 끌어안는 아이들처럼.
하영이의 감촉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 그대로 였다. 전반적으로 폭신하고 말랑한, 그야말로 안는 맛이 있는 그런 감촉.
의외였지만 체온 또한 느껴졌다. 그 정겨운 정도의 따듯함, 앞서 말한 감촉과 연계되어 막 다 마른 솜이불의 느낌을 주는, 그런 체온.
하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영이를 안을때마다 은근하게 나던 특유의 체취가. 아무리 코를 박고 맡아봐도 나지 않았다. 상당히 치명적인 차이점이였다.
"아아...하영아...하영아아...아아아..."
아무리 샅샅이 맡아봐도, 가슴골이나 목부분, 겨드랑이까지 맡아봐도 그녀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녀를 범하면서 안을 때,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던 그 향기가, 이젠 어디에도 나지 않았다.
"으아...으아아아...으아아아아아!!!"
나는 그대로 울부짖으면서 더욱더 거세게 박아댔다. 예전의 하영이였으면은 진작에 아프다며 뭐라고 했었겠지.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청색의 하영이는 그 어떤 반응도, 대사도 없었다. 그저 내가 그녀를 끌어안듯 그녀도 나를 시스템에 따라 안았을 뿐이였다.
그녀의 향기는 이제 없다. 하영이는 여기 있지만, 나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애정이, 그녀의 감정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눈물이 났다. 안그래도 하영이에게 몹쓸 짓을 한데다, 더이상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너무 괴로웠다.
이런 푸른 감정속에, 기어코 나는 하영이의 안에 정을 전부 토해내버렸다.
"아...아아...아..."
간만의 질내사정. 하지만 후련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질내사정> 확인.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미안해...하영아 미안해..."
무표정으로 자신의 더럽혀진 여성기를 물끄러미 보는 하영이, 수그라든 나의 것 처럼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나.
하영이는, 지금 시트를 적시고 있는 눈물 또한 보았을까?
"정말...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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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린 뒤, 하영이는 뒷처리 작업으로 내 주니어에 <청소펠라>를 해주고 있었다.
그저 어떤 감정이나 대사없이, 젖꼭지를 빠는 아기마냥 무심하게 빨고 있었을 뿐이였다.
그리고 나는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듯, 열심히 하고 있는 하영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허니문이 생각난다. 신혼여행으로 무려 괌에 가고, 해안가 산책에 진수성찬까지 즐긴 뒤 밤새도록 즐긴 섹스. 그 섹스만큼 달콤한건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달콤했던건 아마 다른 때들과는 달리 의미가 있었던 섹스라서 그랬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도가 한계를 넘어서 바라만 보고있어도 너무 사랑스러운 지경일 때, 연인으로서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애정표현이였기에 그렇게 달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옛날 기억이 나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빨고 있는 하영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억나, 하영아? 우리 신혼여행때 말이야."
하영이는 그저 푸른 눈으로 내 자지만을 응시하며, 자기 할일만을 하고 있었다.
"괌에가서, 그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며 웃으며 떠들기도 했고, 저녁으로 나온 랍스터를 와인을 마시며 즐겁게 나눠 먹었고..."
행복해 하던 하영이의 얼굴과, 지금 냉정하게 펠라를 하는 하영이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리고선 우리 방인 11번 방에 들어가서...오늘 처럼 사랑을 나눴던거, 기억나?"
"(꿀꺽) 12번 방입니다."
"맞다, 맞다... 자주 헷갈린다니깐? 하하..."
...잠깐.
내가 이걸 알려준 적이 있었나?
아니아니...내 핸드폰과 컴퓨터를 통해 알아낸 정보인가? 방 번호까지 인스타에 올린적이.....
"...하영아, 그때 우리가 마셨던 와인이 몇 년도 짜리였지?"
"1972년도산이였습니다."
...아니, 아니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다. 저런건 당시 숙소 정보로도 알 수 있을 정보였을 꺼야...
"...우리 결혼반지의 모습은?"
"몸체는 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캐럿짜리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습니다. 반지의 안 쪽에는 'Till death do us part'란 문구가 세겨져 있습니다."
항상 반지를 끼고 있으니 알만한 거긴 하다만...커스텀으로 세겨놓은 문구는 대체? 어떻게?
설마...설마 아닐꺼다. 감성으로는 믿고 싶지만 이성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며 막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때 데이트 코스가 어땠지?"
"오후 12시에서 명동역 앞에서 만난 뒤, 근처의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 00에서 둘 다 해물 크림 파스타를 시켜 점심을 해결하고, 이후 도심가를 둘러보다 백화점, 오락실에 들리고 이후 카페에서 약 30분 간 시간을 보낸 뒤, 이후 돼지고기 전문점000에서 A세트를 시켜 저녁을 해결 한뒤, 0000 러브 호텔에서 하루를 묶었습니다. 더 알고싶으신 내용이 있으십니까?"
"...호텔에서 일어나자마자 내가 뭐라고 말했지?"
"주인님꺼서 일어나시자 마자 하신 말씀은 '이 크리스마스의 눈은 금새 없어지겠지만, 여기에 담긴 너와의 추억은 그 어떤 날이 와도 남아있을꺼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름이 돋았다.
이런건 인스타에도, 카톡에도, 하영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할 내용이였다.
이건...하지만 분명...기억을 전부...그러면 이건...대체...
"...하영아..."
나는 손을 뻗어 하영이의 차가운 볼을 만지면서, 푸른 렌즈 너머를 응시하였다.
"거기...거기 있는 거니?"
"....."
하영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보통이였다면 주인의 질문 및 명령에는 그 어떤 표현으로돈 대답했을 것이다. 상당히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질문을 하면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려주십시오.'따위와 같은 대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하영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채, 그저 내 눈을 사라보고 있었을 뿐이였다.
동태마냥 텅빈 파란 눈동자.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을거 같다. 아니, 알 수 있다.
하영이는...하영이는 분명...저 눈 너머에...
긴 침묵과 시선교차의 시간 끝에, 하영이는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하영이의 말이 떨려왔다. 어투도 평소보다 약간 어눌해진것만 같았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게는 단 한가지의 사실만이 중요했으니.
"아아...하영아...하영, 하영아...아아아...."
나는 걸국 쓰러지듯이 하영이를 안았고,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도 은근 눈물이 많아서 울때마다 하영이가 놀리곤 했다.
지금은, 오열하고 있는 날을, 그 어떤 감정을 내비치지도 않은 채, 그저 안아주고만 있었다.
"미안...크흡...미안해 하영아...흐...정말...정말 미안해..."
예전이였다면 숨막히다며 불평할 정도로 안아주었다. 하영이는 그 어떤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얼마나...으흑...얼마나 무서웠을까...얼마나 괴로웠을까...내 이름을 계속 되뇌었을텐데...내가...내가 그때 없어서... 널 지켜주지 못해서...미안...미안...끄으...으...으아아..."
하영이의 등으로 내 눈물들이 흘려내렸다. 주인이 울고있음에도 불구, 하영이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괴로우거나 슬플때 눈물을 흘리며 오열을 한다. 자신에게 응어리진 한과 슬픔, 괴로움을 울부짖으며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수도, 오열을 할 수도 없어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해소할 수도, 알릴 수도 없다면은 얼마나 더 슬플까? 얼마나 더 괴로울까? 얼마나 더...가슴이 아플까?
그날 우리들의 밤은, 그렇게 흘러내리는 눈물과 형체가 없는 눈물, 울려퍼지는 오열과 조용한 오열로 흘러가게 되었다.
"어머머, 뭐야 저거? 저 사람 보여?"
"왜그래? 로봇이랑 같이 다닐 수도 있지?"
"그냥 로봇이라면 내가 말을 안하지, 자세히 봐봐!"
"그러고보니 로봇치곤 꼴이 남사스럽긴...설마, 저 로봇 그건가?"
"어휴, 쯧쯧, 젊은 사람이 어쩜 저리 다닌다냐?"
"내말이, 그렇게 외로우면 사람을 사귈것이지, 말세야 말세..."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비단 여기서만이 아니였다. 하영이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제가 그녀에게로 쏠린다.
어떤 사람은 경멸의 시선과 비난을 퍼붓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한량마냥 그녀의 몸을 쓱 훑고는 평가하는 듯한 망상을 해댄다.
맘대로 상상하라지, 맘대로 판단하라지, 나는 그저 내 아내와 같이 걷고 있을 뿐이다. 이게 어딜 봐서 문제인가?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단순한 섹서로이드가 아닌, 세상 유일무이한 아내이자 연인인 하영이다. 그거면 됬다. 그 사실이면 된거다.
...나야 괜찮지만 하영이는 어떨까?
비록 표현을 안 하거나 못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영혼은 살아있다는 것. 그녀도 주변의 멸시와 시선을 느꼈을 테지. 부끄러워 할 것이다. 아니, 그보단, 괴로울 것이다. 화를 내보일 수도 없고 내게 사과를 표할 수도 없으니. 그 어떤 반응도 내보일 수 없으니 분명 가슴 아파 할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주인님. <경로안내>를 종료합니다."
"그래, 고마워 하영아."
우리의 눈 앞에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오늘은 견학하러 온게 아니니까."
오늘은, 너를 치료하기위해 온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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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n층, n05호.
나는 이 사무실에 등받이 없는 회전형 둥근 쿠션의자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옆의 갈색 목재 벽장에는 온갖 서적과 삐까번쩍한 상장들이 나열되어 있으며 책상 건너편에는 각종 화분들이 놓여져 있었다.
새하얀 플라스틱 사각 책상위에는 검정색 컴퓨터와 상당히 복잡해 보이는 어떤 기계의 구조모형, 그외 여럿 필기도구들이 올려져 있었다.
이 호실의 주인공은 최필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실장이자 <미시시피 퀸>관련 사건들을 맡고있는 연구원이다.
이 사람의 주요 담당은 조직의 기술. 이들의 납치 방법뿐만 아니라 이들이 피해 여성들에게 한 짓들에 대해 연구하기도 한다. 당연하겠지만 나와 하영이의 건도 이 사람이 맡았다.
얼마 안있어 책상의 옆쪽에 있던 문에서 두사람이 나왔다. 최필석 실장과 하영이다.
"오래기다리셨습니다! 결과가 이제 나와서요."
"선생님, 어떻게 됬습니까?"
오늘 우리 둘이 이 사람에게 찾아간 건은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하영이의 기억과 자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이 사실에 대해 미리 받은 명함으로 전화를 주니 흥분하며 바로 날짜와 시간을 맞추고 한번 만나보자고 했다.
"흐으으음...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책상위에 놓여진 물컵을 한모금 하는 실장.
"이하영씨에게 이전의 자아와 기억이 있다는 건...확실합니다! 좀 더 실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제시한 이미지들에 대해선 기억하고 있는 반응을 해주신 데다 해당 기억의 긍정, 부정및 여럿 반응까지 해주셨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실장이 테스트를 하기 위해 내게 하영이와 관련된 이미지를 몇가지 보내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긍정적인 이미지들만 있으면 안되고 부정적, 복합적,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이미지들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무슨 테스트를 할것인지 대강 짐작이 간 나는 그대로 스마트폰, 컴퓨터, 여럿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들을 모았다. 하영이가 좋아하는 음식인 해물 오일 파스타사진, 보였다하면 질색하던 그리마사진, 여수로 데이트하러 갈때 같이 찍었던 사진, 나랑 같이 찍은 시댁 가족 사진 등등...
하영이가 좋아할 만한 사진, 싫어할 만한 사진, 그나마 최근의 사진, 진짜 어릴때 사진... 이런저런 사진들을 모으다 보니 참 우리가 함께 해온 시절이 이렇게나 길었나 싶었다. 당연하기도 하지, 무려 10년동안, 거의 3650일동안이나 사귀었는데 순애보의 대장정을 찍을 수 밖에 없지.
한편으로는 이러한 추억들이, 나와 그녀가 함께해온 소중한 추억들이 한순간에 신기루마냥 사라질 뻔했다는 게, 아찔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사실 로봇이 되어 돌아온 하영이를 보고 이러한 희망은 놓은 채 하영이와 같이 새출발을 하자 싶었는데...세간에선 이런걸 기적이라고 하나보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실장은 하영이에게 뇌파탐지기를 꽂은 다음 내가 전해준 이미지들을 약 5초간격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하영이 본인이 해당 이미지에 대한 감정을 외부로 보일 수 없으므로 각 이미지마다 탐지한 뇌파의 형태, 변화등을 분석하여 하영이에게 정말 자아가 있는지, 감정이 온전하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게 해당 테스트의 내용.
그리고 다행이도, 이 테스트는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연락들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를 못 했는데 이렇게 직접 증명되니 저도 참 놀랍더군요...각 이미지에 대한 아내분의 뇌파변화는 일반 사람의 그것보다는 조금 달랐지만...감정이 있다는 건 확실했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 녀석들 듣기로는 납치한 여성들을 하나같이 개조시켜 원래 인격이나 자아를 바꾼다고 해서..."
"실은,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설마? 하던 수준이였는데, 이젠 거의 확실해요."
"예상이라고 한다면은 어떻게...?"
실장은 자신의 안경을 올려 다시 고쳐썼다.
"그 <미시시피 퀸> 녀석들...나름대로 전문화되있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발전된 녀석들인거는 맞아요. 하지만 그게 말이죠, 우리 인간이 아직 완전히 정복못한 파트가 크게 세가지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주, 심해, 그리고 뇌에요. 특히 뇌는 우리가 직접 달고 다니면서 사용하는데, 어떤 원리로 생각하는 지, 판단하는 지, 기억하는 지등을 근본적으로 파악한 적이 아직까진 없습니다. 즉, 그녀석들 아무리 기계에 대해 잘 알아도, 단기간에 사람 머리를 헤집어서 지 입맛대로 만든다던가 그런거는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꽤 긴 이야기가 될 것인지 실장은 이번엔 물을 크게 마신 후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녀석들은 좀 다른 방법을 고안하낸 거에요. 우리가 납치한 여성들을 긴 시간 들여가며 바꾸기 보단, 우리가 차라리 뇌에 컴퓨터를 따로 달아서 대신 조종하도록 만들자! 실제로 저희가 뒤늦게나마 발견한 피해자들을 분석해보니, 하나같이 뇌에 직접 연결된 특수한 컴퓨터 장치가 달려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흰 이 컴퓨터 장치를 '토킹 헤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토킹 헤드...그럼 그게 피해자들을 조종하는 건가요?"
"조종보다는 통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피해자를 움직이는 건 피해자 본인이긴 합니다. 하나 피해자의 뇌가 내린 명령이 토킹 헤드를 거쳐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토킹 헤드가 그 명령을 검열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피해자의 뇌가 '싫어라는 말을 해라'라는 명령을 토킹 헤드가 먼저 받고, 토킹 헤드는 해당 명령을 왜곡시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라'로 바꾸는 식입니다. 심지어는 섹서로이드라는 역할에 필요없는 감정, 감각들은 차단시켜버리니, 사실상 피해자들은 자기 자신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셈입니다."
"그런...그렇다면 하영이는 대체?"
"이 토킹 헤드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피해자들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굴복시키는 거죠. 피해자들의 뇌를 직접 해집어 인격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반응을 순순히 내보내게 할 수 없게 만드는 셈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번 거치면 피해자들은 결국 굴복해버리고 맙니다. 어차피 쓸일도 보여줄 일도 없는 자신의 인격은 스스로 봉인하고, 말 그대로 섹서로이드처럼 살아가는 걸 선택하게 되는 거죠. 이 상태가 될때까지 길어도 1개월정도 밖에 안 걸리고, 이러한 상태가 되어 스스로 인격과 자아, 기억을 말소하거나 봉인해버리면 사실상 구출 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상상 이상의 악랄함이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한 사람의 인격, 자유를 빼앗아 버리고 종국에는 스스로 로봇이 되게끔 만들어 뒤늦게나마 찾아도 못 돌아가게 만든다니.
하물며 그런 짓을 하영이에게...법과 시간과 자본이 허락만 해준다면 집에 짱박아 둔 골프채를 양 손에 들고 그 새끼들을 전부 으깨버렸을 텐데.
"이하영씨 같은 경우에는...상당히 운이 좋기도 한 특이 케이스입니다. 비록 토킹 헤드가 심어져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져서 조교되기 전에 남편분에게 인솔이 되었으니...그 덕분에 아내분이 좌절하시거나 굴복하시는 일 없이 인격과 자아, 기억이 온전히 유지 되실 수 있으신 겁니다."
그렇다면 돌아온 첫날에 내가 섹스를 하지 말자고 한건 나름 옳은 선택...인가?
잠깐, 기계가 심어져 있어도 초기에는 어느정도 자기 의사가 있었을 테고, 그럼...
"저, 혹시 그 토킹 헤드가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명령을 검열한다는 거면, 대부분 피해자들은 구매자한테 먼저 밤시중을 나서는 일이 없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실제로 자수한 몇몇 구매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구매자가 지시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짓도 안 합니다. 비록 표현 할 수 없지만, 어느 누가 무급무상으로 가정부짓이나 창부짓을 하고싶겠습니까? 그래서 구매자가 명령을 내려, 토킹 헤드에 의해 의지가 조작되어 움직이게 될때까지 그녀들은 가만히 있음으로써 저항을 하는 겁니다. 그 저항조차 몇마디에 깨진다는게 문제지만요."
...소름이 돋는다. 하영이를 서에서 찾은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리에 스쳐지나가니 소름이 돋는다.
나의 집주소를 처음부터 아는듯이 대신 운전해 주겠다는 모습.
방을 살피는 과정도 없이 바로 청소를 척척하던 모습.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뚝딱만드는 모습.
그동안 바랬다는 듯이 첫날밤부터 밤시중을 하려다가 제지당한 모습.
직후 나가면서 문을 닫을때 왠지 슬퍼보이던 모습.
그러고서 며칠 뒤 억지로 구실을 만들어 기어코 관계를 가지던 모습.
그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 PC, 스마트 폰, 사물 인터넷등에 접속해서 나에 대한 정보들을 얻은 뒤 그에 기반하여 행동한 거겠더니 싶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그저, 하영이는 처음부터 내 곁으로 돌아온 것이였다.
토킹 헤드에 의해 내 이름도, 특유의 애정어린 어투도, 틈날때마다 하던 백허그도 못하고 그저 주인님이란 호칭으로 부르며, 딱딱한 기계적 어투로 대답하고, 수동적인 행동을 일삼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모습들이 하영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표현이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이름을 그 입에서 다시 불러줬으면 했던 나보다, 내 이름을 수천번이라도 외치고 싶었지만 '주인님'이란 호칭으로 밖에 부를 수 없었던 하영이가 더 속상하고 참담하지 않았을까.
나보다 슬픈건 너였구나 하영아.
곡소리를 내며 눈물을 펑펑흘리고 싶지만 눈물도, 탄식도 낼 수 없다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일까? 나는 너의 앞에서 울 자격이 없었던 거야.
너의 눈물을, 다시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실장님, 제 아내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겁니까?"
"지금으로써는 힘듭니다. 개조되는 과정에 기계로 바꾸면서 소실된 육체들은 둘째치고, 가장 중요한 토킹 헤드가 뇌에 꽤 단단히 박혀있는지라 이걸 함부로 빼기에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자칫하다간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혀서 냅둔 것보다 못한 수준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희망을 놓기엔 이릅니다. 최선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토킹 헤드를 그 자리에서 무력화시키면 되는 일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토킹 헤드는 뇌에 직접적인 간섭은 하지 않고 뇌가 보내려는 명령을 검열 및 왜곡시키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토킹 헤드를 굳이 빼지 않고 그 기능만 멈추게 하면 뇌에 큰 무리는 주지 않으면서 토킹 헤드의 주박에서 벗어나게끔 할 수 있는 거죠!"
"그게 가능합니까? 지금?"
"지금으로서는 저희 쪽 화이트 해커들이 노력하여 역설계를 통해 무력화 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미시시피 퀸> 녀석들중 고위 프로그래머 녀석들을 잡을 수 있다면야 상당히 수월해지겠지만...그래도 지금 포위망을 좁히는 중이니 금방 좋은 소식을 들으실 수 있으실 껍니다... 아! 그동안 남편분이 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하영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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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주인님. <경로안내>를 종료합니다."
상당히 길었던 상담 이후,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지는 저녁이였다.
"저녁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 오늘 저녁의 메뉴는 <닭볶음탕>이며, 이번 목욕의 배스밤은 <캐모마일향>입니다."
"목욕부터 할래."
"알겠습니다. 목욕 준비까지 <10분> 남았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영이는 즉시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
'이하영씨가 인격이라던가 자아를 유지하게끔 살펴주시거나 도와주시는 겁니다. 꾸준히 관심을 기울어주시는 것도 좋고, 유지할 이유를 만들어 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지금 아내분의 상태가 상당히 좋은 지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어느정도 치유효과를 보실 수 있으실 껍니다.'
이유라...하영이가 자신의 인격을 유지할 이유라...
하영이는 지금 나와의 생활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행복이 어느순간에 깨져버린다면,
둘 사이의 사소한 실수가 번진다던가,
나한테 불행이 닥쳐 더이상 만나지 못해 스스로 인격을 버린다던가,
우리 부부외의 인물이 간섭이나 소위 말하는 가스라이팅에 의해 더는 버틸 수 없게 된다던가...
하영이가 인격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나덕분이다. 그럼 유지할 이유를 주는 것도 내가 되어야 겠지. 그렇담 뭐가 좋을까...하영이에게 장기적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게...
"주인님, 목욕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어, 어, 응. 고마워."
잘 모르겠다...일단 천천히 생각해보자. 크게 급한 건 아니니까.
나는 알몸으로 탕에 들어가, 한참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다. 정확히 40도에 맞춘 탕의 온도. 은은히 올라오는 캐모마일향. 이 둘의 콜라보레이션이 내 피로를 각설탕을 녹이듯 풀어주고 있었다.
슬슬 몸을 닦아볼까 때에, 갑자기 욕실 문이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엥? 무슨 일이야?"
외피를 살짝 해체한 하영이가 욕실 문을 닫고서는 내 앞으로 다가갔다.
"괜찮으시다면, 주인님의 몸을 닦아드리겠습니다. 사용할 바디워시는 이 욕실에 있는 것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아..."
나 혼자서도 씻을 수 있어 따위의 말을 하려다가 겨우 세치 혀를 멈추었다. 보통 이런 건 안드로이드를 이쪽에서 먼저 불러 시키지, 하영이가 먼저 왔다는 건...
그리고, 하영이가 바라는 건 비누칠만은 아닐테고...
"...좋아, 그럼...부탁할께."
나는 얌전히 욕실 밖으로 나와 하영이에게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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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몇분 후...
"후욱, 후욱, 어때, 하영아. 안쪽까지 씻으니 기분 좋지?"
"ㄴ, 네, 그, 그렇습니다. ㅈ, 주인님의 육봉으로 세척되어 여, 영광입니다."
이제서야 알아낸건데, 하영이의 감정이 격해지면 말을 더듬는다. 토킹 헤드에 부하가 걸리는 건가.
남이 보기에는 분명 며칠전만 해도 덮치는 거에 죄책감 느껴서 울던 사람이 맞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먼저 하영이가 구석구석 씻는 다는 목적으로 내 자지까지 굉장히 요염한 손길로 대딸을 쳐줬는데, 그뿐이면 몰라, 나온 프리컴까지 처리한다고 펠라까지 하고선 그대로 정액까지 마셨다. 이쯤되면 하영이도 하고싶어 한다는 뜻이겠지.
여하튼 그리하여 나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하영이를 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괴로운 감정까지는 들지 않았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 이런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번엔 하영이가 원한다는 걸 먼저 알았으니깐.
"아아...하영아, 이젠..."
"괜찮습니다. 그대로 사정해주십시오."
안그래도 사랑하던 사람과의 관계인데다. 하영이가 제공한 섹서로이드 기능까지 합치니, 나는 말그대로 허리를 활처럼 휘며 거세게 사정했다.
...뽕!
"<질내사정> 확인.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후우...너도 수고 많았어, 하영아."
이번에는 후련했던 질내사정. 하영이의 보지에서 나의 걸쭉한 농축액이 흘려내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에도 이렇게 생으로 한적은 거의 없었지...안전한 날에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도 않았으니...자동 피임기능덕에 이렇게 생으로도 할 수 있구나. 물론 그 새끼들에않았으니운 감정따위는 하나도 들지 않지만...
잠깐, 자동 피임기능?
불현듯 내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영이에게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 하영이가 인격 및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나와 하영이 둘다 원하는 것...
"저, 하영아?"
"네, 주인님."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하영이의 양 어깨를 잡은 채, 푸른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이를 가지는 거 어때!"
.....
긴 정적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을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뜸 아이를 가지자고 선언해? 예전의 하영이였으면 바로 정수리에 냅다 그 그리웠던 꿀밤을 날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 그 비극을 마주하기 전까지, 꿈꿔왔던 건데...
한참의 침묵 후, 갑자기 하영이가 내게서 거리를 넓혔다. 역시 무리였겠지...
"...자동 피임모드를 해제합니다.".
"...에?"
"배란 촉진제 활성화. 정자 윤활기능 실행. 쌍둥이 임신을 원하십니까?"
"어...아니?"
"설정 완료. 수정 확정 모드를 가동합니다."
...이렇게 되니 왠지 좀 쑥쓰러웠다. 내 권유에 고유 기능까지 써대며 수정시키려는 걸 보면, 그녀 역시 어느정도 원한 걸까...
"...확실한 수정을 위해 주인님께서 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어...내가?"
말과 동시에, 하영이는 자신의 여성기를 양 손으로 활짝 열었다. 뜨거운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질내에는 방금전 내가 뿌린 정액의 흔적과 애액이 뒤섞여 습한 동굴처럼 되어있었다.
"방금전의 정액으로 임신할 가능성은 96.85%입니다. 확실한 임신을 위하여 다시 한번...질, <질내사정>을 해주실 것을 요, 요청드립니다."
그 정도 확률이면 사실상 되는거나 마찬가지. 3.15%에 걸리는 것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사정해달라며 부탁하는 건...
"그런 모습으로 부탁하면..."
나는 나의 연인이 가능한 할 수 있던 최선의 유혹에 의해 부활한, 나의 주니어를 꽂아넣었다.
"남편된 자로서 들어 줄 수 밖에 없다고!"
아직도 후덥지근한 욕실, 물기와 거품이 널브러진 바닥, 나는 그 위에서 하영이를 꼭 껴안은 체로 관계를 나누고 있었다.
"하영아, 기억나? 우리 대학교시절 동거할때 욕실에서 지금처럼 섹스했었는데..."
"그때의 장소는 욕조 내부, 자세는 후배위였습니다."
"기억..해주고 있구나...! 크읏!"
남성기에 느껴져 오는 쾌락이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나부터가 반드시 임신시키겠다는, 상당히 원초적인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었으며, 하영이의 내부 또한 압수하려는 장난감을 안 뺏기려는 아이와 같이 사랑스러운 연인의 남성기를 미친듯이 조여주고 있었다.
심지어는 귀두에 생소한 감각까지 느껴졌는데, 예상컨데 자궁까지 내려오게 해 아예 내 자지와 키스시키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어떻게든 임신시키려고 온 힘을 다하는 수컷과, 어떻게든 임신하기 위해 모든 수를 쓰는 암것의 합작.
"간다, 하영아! 전부 받아줘!"
"네, 그대로 사정해주시기..."
하영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그녀와 입을 맞춰 혀를 들이 밀었다. 갑작스런 딥키스에도 불구, 하영이의 혀는 갑작스런 방문객을 사랑스럽게 환영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대로 하영이의 자궁에 정액을 들이부었다. 비과학적이긴 하지만, 분명 자궁이 다이렉트로 사정한 느낌이였다.
"크읏...읏..."
"....."
유례없던 쾌락때문인지 사정은 전에보다 수초는 더 오래 했었다. 거의 한컵정도의 양을 부운 거 같은데, 하영이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그 냉정해보이는 푸른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하영이도 행복해 하고 있겠지.
...퐁!
자지를 뺀 하영이의 질내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확실한 수정을 위해 모든 정액을 빨아들인 결과다. 그 때문인지 하영이의 하복부는 조금 부풀어져 있지만.
"하아...하아..."
"두, 두번째 <질내사정> 화, 확인. 수, 수고하셨습니다, 주, 주인님."
"하영아...사랑해..."
"...사랑합니다. 주인님..."
거사를 치르고도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되어도 유지되던 하영이의 체온 때문인지, 욕실의 증기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참 따뜻했다.
따뜻했던,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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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6개월 뒤...
"다녀왔어~"
퇴근을 하고 들어선 집은, 상당히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서옵쇼~ 주인님~ 저녁먹을래? 목욕할래? 나도 막 다녀와서 나하고 '우리 아기'가 배고프긴 하거든?"
"그럼 뭐, 저녁부터 먹어야지."
하영이의 달라진 모습 두가지가 보이는가?
나름대로 꾸민다고 트윈테일로 묶은 거 말고 말이다.
정정하자면, 하영이에게 찾아온 두 기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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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영이는 보란듯이 임신했다. 이것이 첫번째 기적.
나름 장치가 있어서 그런가, 2주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임테기보다 일주일 더 빠르게 내게 임신소식을 전하였다.
처음 진료받으러 갔을 땐 얘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가야되나 국과수에 가야되나 헷갈렸지만, 일단 몸은 사람이니 산부인과에 데려갔었다.
의사선생님은 꽤나 놀란 눈치였지만 곧 잘 진찰해주셨고, 다행히 아기는 그 어떤 문제도 없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한편 초음파 영상을 보며 우리의 아이를 지켜보던 와중, 나는 보고야 말았다. 역시 누운 체로 같이보던 하영이의 입가가 약간, 아주 약간, 그리고 아주 잠깐 올라갔다는 것을.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손가락이 아주 살짝 꿈틀거렸을때, 보호다가 기겁을 하며 간호사를 부르고, 그 간호사가 담당 의사를 부르고, 병실이 뒤집히던 걸 본적이 있는가? 그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은 곧 환자의 쾌유를 암시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 찰나의 미소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과 같았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나는 진찰받고 있던것도 까먹은 채로 호들갑을 떨며 하영이의 어깨를 잡은 채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보았다. 비록 얼마 안있어 의사선생님에게 제지 당했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허깨비가 아닐 것이라고.
그 후 하영이로부터 그 찰나의 미소를 몇번이나 목격하고, 그럴때마다 나는 다독여주며 응원하였다. 너는 할 수 있다고,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를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려보라고.
그렇게 2주일 뒤, 하영이는 그제서야 5초동안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약 7개월뒤에서야 보게된, 하영이의 미소. 이 영영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미소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말았다.
그 후 3개월 뒤, 최석필 실장으로부터 희소식이 왔으니, <미시시피 퀸>의 총괄 개발자가 잡혔으며 그로부터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받아 내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중엔, 그 가증스런 토킹 헤드를 역설계 시켜 무력화 할 방법까지 있었다.
미리 회수한 토킹 헤드들을 통해 무력화 할 방법들을 찾는 것 물론 검증까지 시켰으며, 이제 실적용할 차례까지 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으로 해체받을 피해자는 다름아닌 하영이. 인격 및 자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건 물론 표정까지 지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으니, 피해자 중 가장 사정이 좋아 위험성이 가장 적은 하영이가 제격일 수 밖에 없다.
한 사람만 걸려 있는게 아닌 두 사람이 걸려있는 셈이니 위험 할지도 모른다. 만약 무력화 작업 도중 문제가 생겨 즉시 중단해도 문제는 안 일어난다고 하나, 애인된 자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예비아빠로서 걱정이 되는건 당연지사.
시술 당일, 나는 침실에 누워있는 하영이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빌었다.
"하영아, 큰 걱정은 하지말고, 응? 중간에 멈춰도 너나 아기한테는 문제가 안 생길꺼래, 그러니까 말야..."
남한테 뭐라 할 처지냐, 제일 걱정하고 있는건 나인데.
"다시 일어날때는, 해맑게 웃으면서 반겨줘..."
"주인님."
하영이의 손을 부여잡던 내 양손을 그녀가 나머지 손으로 다시 부여 잡아줬다.
"ㅈ, 저는 괜찮습니다. ㄱ, 걱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영이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되려 내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시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 5시간 후, 하영이가 두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시술실에서 나왔다. 아직 마취중이며, 곧 깨어날 테니 그때 결과를 볼 수 있을 꺼라고 했다.
옆의자에 앉은 채로 하영이를 기다리며, 나는 그저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녀가 곤히 자는 모습또한 오랜만에 보는 구나. 이 시술이 끝나면 보통 사람들 처럼 생활하게 될 거라는데, 다시 이 평온하게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전전긍긍하던 와중, 하영이의 두 푸른 눈이 떠졌다.
"하, 하영아?"
그대로 일어선 하영이는 그대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
그 여린 입에서 세글자가 겨우내 세어 나왔다. 남들이라면 잘 못들었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름아닌 내 이름...
"...안...녕...돌아...왔어..."
그녀는 그대로, 그녀가 돌아 온 날 그때 내가 꾼 꿈에서 본 표정 그대로, 푸른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인사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하영이를 꼭 껴안았다.
하영이도 나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방 안에서 한참동안 울면서, 진정한 재회를 축하했다.
이게, 두번째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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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로, 냄새를 보아하니 오늘의 저녁은 순두부찌개.
하영이를 도와 찌개와 밥, 반찬들, 그리고 식기들을 다 옮겨주고 있었다.
"하영아~ 이제 같이 먹자!"
부르는 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가만 보니 하영이는 TV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프다매~ TV는 먹으면서 봐도 되니까..."
하영이를 데리러가려고 하는 그때, 나 또한 TV의 내용을 봤으니, 어째서 하영이가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경찰은 오후 4시 경, 대형 납치 조직 <미시시피 퀸>에 대하여 완전히 소탕되었음을 발표하였습니다. 어제 새벽 2시경, <미시시피 퀸>의 두목의 검거 작전중 사망했다는 소식에 잇다라, 나머지 수뇌부들도 줄줄히 검거되었으며, 조직의 인원 99%가 검거 되었고 나머지 조차 졸개에 불과하여 이에 더이상 조직의 유의미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조직이 궤멸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경찰은 <미시시피 퀸>이 궤멸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이 두려워 할 거리가 하나 줄어들었으며..."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며, 대개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그리고 이는 꽤나 사소한 요소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질환이다.
1년밖에 안 지났으니 생생하게 기억 날 수 밖억 없을 것이다. 그저 오늘 같이 먹을 저녁은 뭘로할까란 생각을 하다 갑자기 필름이 끊긴 기억,
깨어나 보니 자기 또래의 여성들과 함께 갇힌 기억,
먼저 끌려간 여성이 몇시간 후 섹서로이드가 되어 딴 사람마냥 움직이던 걸 본 기억,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 수술대에 올라가게 된 기억,
간절히 내 이름을 외우면서 서서히 마취되어 정신을 잃던 그 순간까지.
그때의 기억은,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최악의 악몽.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그 상처들. 그러나...
"이젠 괜찮아."
하영이를 뒤에서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너가 내 옆에 있고, 내가 너의 옆에 있어. 그리고 우리는 받아들이고, 이겨낸거야. 그거면 된거야. 그거면 다 된거야."
그러나...그 악몽을, 괴로움을 공감하여 같이 견뎌내줄 사람이 있다면, 같이 짊어지고 서로 덜어줄 사람이 있다면, 완쾌까지는 못하겠지만...그래도 둘에게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기억나? 1년전, 경찰서에서 당신과 다시 만났을 때."
"응, 안 날수가 없었지."
"그때 다시 당신을 봤을때...겉으로는 표현 못했지만, 좀 웃겼어..."
"웃기...다니...?"
"당신 모습이 딱, 어디 코미디쇼에서 헐레벌덕 출근하는 회사원같은 모습이였거든. 꾸겨신은 신발이며, 짝짝이로 신은 양말까지..."
"아...그때는, 너무 놀라서..."
"그래도, 나는 너무 기뻤어."
하영이가 나를 향해 돌아본다. 사파이어같은 눈에 웃음기까지 더해지니 참 아름다웠다.
"더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때, 모든 희망을 내려왔을때, 만난 사람이 당신이여서, 정말 기적적으로 당신이 찾아주러 와서, 정말 기뻤어. 물론 그때는 표현 할 수 없었지만..."
아아...그때, 내가 절망에 사로 잡혔을때, 하영이는 거기서 희망을 찾았구나.
"하지만 그래도 역시 답답한건 답답했지, 운전 대신 해주겠는데도 거부 당하고, 간만에 즐길까 했는데 또 거부당하고, 나는 뭐라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 했고...진짜 걸어다니는 감옥에 갇힌 거 같았어."
"....."
"그치만 말야...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올 수 있었던건...당신이 날 나로서 대해준게 제일 컷던거 같아."
"그야, 하영이 너는 언제까지나 너니까."
"여봐라 저봐라 하지도 않고 굳이 내 이름으로 불러주고, 우리 부모님한테도 내가 돌아온게 맞다고 하고, 첨 돌아온 날에 내가 하자고 한거 튕긴 것도 날 생각해서 그런거지? 물론 결국 한참 뒤에 해버리긴 했지만..."
하영이는 회상하듯 한바퀴 빙 돌고선 다시 내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외에도 매일마다 나한테 친근하게 인사해 주고, 어디 부딪치면 괜찮은 지 살펴주고, 누가 나에대해 물어보면 당당히 아내라고 밝히고, 머리도 주기적으로 빗어주고..."
하나같이 사소한 것들. 하지만 이 사소한 것들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 냈고, 그 기적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이 모든게 그저...너무 고마워. 진짜 고맙다는 말 말고는 뭐라 표현 못 할거 같아."
"나야말로...이렇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하영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내 하나뿐인 연인, 남편, 김한별."
한낮의 바다와 같은 장발, 기쁨이 넘치는 눈, 나만이 안을 수 있는 몸. 나를 사랑해주고, 나또한 사랑하는 이 로봇처럼 보이는 여인.
이 여인은 나의 하나뿐인 연인, 아내인, 이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