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노키 님의 작품 …다녀왔어와 01호를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이 배드 엔딩을 예상하셨기에, 이런 결말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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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현관문을 열자 후드를 깊게 눌러쓴 여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어? 설마…… 아이코? 아이코야?!”
단번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챈 나는 아이코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어……?”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깨가 지나치게 울퉁불퉁했고, 무엇보다 딱딱했다. 사람의 살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금속에 가까운 감촉이었다.
“깜짝 놀랐지……?”
아이코가 후드를 벗었다. 찰랑이던 흑발은 온데간데없고, 보랏빛이 감도는 은발이 드러났다.
얼굴은 분명 아이코였지만, 턱에는 페이스 가드가 채워져 있었고 그 아래로 보이는 목덜미에는 은색 장갑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이런 몸이 되어버려서 미안해.”
나는 그대로 아이코를 끌어안았다. 그녀에게선 인간 특유의 온기 대신 금속의 서늘한 냉기만이 전해졌다.
“상관없어…….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아―…… 미안한데, 감동적인 재회는 안에서 나누면 안 될까? 그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좀 있거든.”
아이코의 뒤에서 키가 큰 여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팬츠 수트 차림에 장갑을 낀 모습이었다.
“저기, 이분은…….”
“이분은…… 내 은인이야.”
“은인이라니…… 설마?!”
“응……. 그 사건을 해결하고…… 우리를 구해준 분이야.”
그 사건……. 그녀는 그 사건의 피해자였다.
안드로이드 제조 및 개발을 하던 대기업의 추악한 비밀이 폭로된 사건. 인간을 인간형 병기로 개조하는 끔찍한 기술이 그 실체였다.
그리고 3개월 전, 그녀는 그 기업의 면접을 보러 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기계의 몸이 된 채로.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이자, 아이코는 망설임 없이 옷을 벗었다.
“내 몸 상태를 봐줬으면 해.”
옷 아래로 드러난 아이코의 전신은 장갑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장갑은 여성의 신체를 본뜬 듯 허리는 잘록하고 다리는 매끈하게 뻗어 있었으며, 가슴과 엉덩이는 비정상적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마치 남자의 욕망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여자다운 몸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몸으로 남자들을 유혹하거나, 상관이나 관료들과 잠자리를 갖게 하려 했던 모양이야.”
“뭐라고?! 그, 괜찮은 거야?”
“그건 괜찮아. 이제 여기도 인공물이라 내 성기가 아니니까…….”
“아이코…….”
그 짧은 말 속에 아이코가 겪었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꽉 들어차 있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 나는 호죠 쿠레하(北条紅葉). 정부에서 파견된 사이버 에이전트다.”
사이버…… 에이전트?
“……사이버 에이전트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군. 말하자면 경찰조차 손대지 못하는 초범죄를 전담하는 부대다. 예를 들면 사이보그들에 의한 테러나, 일반 경찰이 대응했다간 사상자가 속출할 중대 사건들 말이지. 또 타국을 상대로 병기를 개발하거나 제조하는 국가반역죄를 조사하고 단속하는 게 나 같은 사이버 에이전트의 일이다.”
“네? 그런 기밀을…… 일반인인 저한테 말해도 괜찮은 건가요?”
“……만약 당신이 이걸 SNS에 올린다고 쳐보지. 그 순간 계정은 즉시 동결되고 발언도 규제될 거다. 인터넷 게시판에 써도 마찬가지야. 우리 쪽엔 전담 감시원이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떠들어봤자…… 흔한 도시전설 취급이나 받겠지.”
동결……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뜻이겠지.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럼 알려주세요.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쿠레하 씨가 답했다.
“그래, 좋아. 그녀의 관계자인 당신에게 그 사실을 전하러 온 거니까.”
쿠레하 씨는 말을 이어갔다.
“그녀를 납치한 기업은 타국을 겨냥한 병기 개발을 하고 있었어. 그 병기는 바로 인간형 병기지. 전차나 전투기와 달리 장소를 가리지 않는 병기 개발. 그게 그녀를 납치한 목적이었고, 그녀는 그 3호기에 해당해.”
“3호기……? 그럼…… 아이코 말고도 더 있다는 건가요?”
“그래. 그녀를 포함해 총 3명이 개조 수술을 받고 기계 몸이 됐지. 내가 잠입했을 땐 마침 1호기의 조정이 한창이었어.”
“조정……?”
“조정이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실상은 뇌를 개조한 전자두뇌에 억지로 데이터를 인스톨하는 과정이었지.”
“뇌를 개조했다니…… 잠깐만요! 그럼 아이코는…….”
“진정해. 그녀에겐 아직 뇌가 남아있어. 다만…….”
“다만……?”
“일부분이 기계화됐지.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야. 연구원 놈들이 기억을 조작하려 했거든. 하지만 안심해. 그녀의 기억은 무사하니까.”
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1호와 2호가 문제였어. 2호는 인격이 붕괴되어 연구원들의 노예로 부려지고 있었고, 1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붕괴 직전이었지. 둘 다 지금 내 보호 아래 케어를 받고 있어.”
끔찍한 실험이다.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윤리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짓거리였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 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게…….”
아이코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아이코를 보던 쿠레하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배려해 준 모양이다.
쿠레하 씨가 나가자 아이코가 입을 열었다.
“저기…… 부탁이 있어. 나에 대한 건 잊어줬으면 해.”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 어째서…….”
억지로 쥐어짜듯 물었다.
“난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기계 몸이 되어버렸어. 가족과의 기억도, 친구들과의 기억도, 그리고 연인인 당신과의 기억도 전부 이 작은 칩 안에 담겨 있어. 이걸 빼버리면 난 모든 걸 잊게 돼.”
“…….”
“난 이제 예전 같은 관계로 지낼 수 없어. 그러니까 잊어줘. 당신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도 응원할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마…….
“……차갑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난 이제 피도 흐르지 않는 차가운 기계니까. 당신은 인간이잖아. 인간인 당신에게 난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넌 피해자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아이코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제발 잊으라고! 나는…… 나는……!”
나는 아이코를 꽉 끌어안았다.
“……난 상관없어. 네가 기계 몸이 됐든 말든……. 그리고…… 사라졌다가 겨우 돌아와 놓고 또 떠나겠다니…… 너무 심하잖아…….”
남자 체면에 꼴사납게도, 내 눈에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난 기계야. 지금도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는…… 차가운 기계라고!”
“그래도…… 넌 너야. 내 소중한 아이코라고…….”
“윽!”
“그러니까 제발…… 헤어지자는 말 같은 거…… 하지 마!”
“……나라도 괜찮아……? 기계인 나라도……?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나라도……?”
“어……. 내가 네 대신 울어줄게. ……그러니까 넌 대신 웃어줘. 그러면 돼…….”
“……고마워. 당신을 위해 웃을게……. 그러니까 울지 마.”
내 눈물이 잦아들 무렵, 쿠레하 씨가 돌아왔다.
“희소식이다. 2호의 인격 복원이 완료됐어.”
“2호라면, 인격이 붕괴됐다던 그…….”
“그래. 이제부터 그녀에게도 사정 청취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쪽도 무사히 해결된 모양이군. 아이코 씨의 남자친구라고 했나? 그녀의 마음의 버팀목으로서 힘써주길 바란다. 나도 상사로서 케어를 게을리하지 않을 테니까.”
“상, 상사요?”
“……앗! 미안, 말을 안 했네. 나, 쿠레하 씨랑 같은 사이버 에이전트가 되기로 했어.”
“……정말이야?”
“응! 쿠레하 씨가 구해줬을 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쿠레하 씨도 나랑 같은 기계 몸인데, 그 몸을 정의를 위해 쓰는 게 정말 근사해 보여서.”
“멋있다……라.”
고작 그런 이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참 그녀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로서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아이코를 잘 부탁드립니다.”
“잠깐~ 너무해!”
아이코는 웃으며 화를 냈다.
그 미소는 기계가 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눈부신 미소였다.
끝
지난 이야기(novel/9840069)에서 이어집니다……라기보다 이어져 버렸네요.
일러스트 작가이신 쿠스노키 님의 01호를 보고, 지난 이야기의 설정을 덧붙여 구상한 작품입니다.
아직 시리즈 이름은 고민 중입니다('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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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꾼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두뇌 내부의 데이터가 피드백되는 것뿐이지만, 편의상 꿈이라고 부른다.
그때의 꿈이다.
눈을 뜬다.
정확히는 피드백된 데이터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나 충전 도중에 재기동된 것이다.
나는 내 손을 움직여 시야 앞으로 가져온다.
손가락 끝부터 어깨 관절까지 은색 장갑판이 겹겹이 쌓여 있고, 강화된 청각 센서 덕분에 관절을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징- 징-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의 관절부에 있는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다.
나는 침대 위에 시트를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다.
시트를 걷어내자 내 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팔과 마찬가지로 은색 장갑판이 덮여 있다.
다시 한번 만져보니, 분명 장갑판을 만지고 있는데도 내 살결을 만지는 듯한 감각이 전해진다.
장갑판 아래에 센서가 있어, 압력이 가해지면 센서가 자극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장갑판이 붙어 있지 않은 검은 부분들이 있다.
그 아래에는…… 생전의 피부 대신 차가운 기계 장치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이런 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벌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아니,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을…….
“……잠이 안 오네…….”
잠들 수 없게 된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죄와 마주하기 위해 데이터 정리를 시작했다.
“인간을…… 병기로 개조…… 한다고요……?”
나는 어느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프로젝트의 멤버로 선발되었다.
주변에는 사내에서도 이름 꽤나 날리는 쟁쟁한 사람들뿐이었고, 야심이 조금 있었던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렇게 의욕에 불타 있었건만, 프로젝트 리더에게 상세 내용을 전해 들었을 때 내 마음은 요동쳤다.
인간을, 그것도 군인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을 기계화해서 병기로 만든다는 계획.
윤리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프로젝트. 내가 정말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
설명을 듣는 내내 내 안의 천사와 악마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〇 군에게는…… 소체 선별을 맡기고 싶네.”
소체 선별……?
그건 즉, 이 계획의 희생양이 될 인간을 찾아오라는 뜻이다.
“자네가 못 하겠다면 다른 사람에게 시킬 생각인데…… 어떤가?”
리더는 내 안색을 살피듯 물었다.
이 프로젝트의 멤버로서 각오를 증명해 보이라는 압박이었다.
비인도적인 계획……. 여기서 딱 잘라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최소한 그 아이만큼은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출세라는 미끼에 홀딱 넘어가 버렸다.
여기서 성과를 내면 내 커리어는 완벽해질 거라고…….
나는 망설임 없이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해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덫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소체가 될 인간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다만 사외 인물에게 손을 댔다가 실종이니 행방불명이니 소란이 일면 골치 아팠기에, 사내 인물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내 손에는 건강검진으로 위장한 기계화 적성 검사 결과지가 얼굴 사진과 함께 들려 있었다.
이 계획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은 여성이어야 할 것, 그리고 20대에서 30대 사이의 미혼자일 것.
여성인 이유는 병기로 개조했을 때 여성의 얼굴이면 적과 대치했을 때 빈틈을 만들기 쉽다는 이유였고, 젊은 여성인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미혼자인 이유는 가족들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했다.
확실히 어설프게 들켰다간 뒤처리가 번거로울 테니까.
자료를 넘기던 나는 난관에 부딪혔다.
조건에 맞는 여직원을 찾아내더라도, 내가 직접 접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리더는 상대의 신뢰를 얻어두어야 개조 단계로 넘어갈 때 밑작업이 수월해진다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건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한 수작이었다.
자료를 보던 나는 커피라도 마실 겸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선배님, 수고 많으세요. 커피 가져왔어요.”
뒤를 돌아보니 내 직속 후배였던 타카기 미나가 서 있었다.
“어, 아…… 고마워.”
커피를 건네받자 미나는 생긋 미소 지었다.
“선배님, 대형 프로젝트에 뽑히셨다면서요? 진짜예요?”
“응? ……아, 그래.”
“역시 선배님 최고예요!”
그녀는 나를 무척 따랐다. 처음엔 아부 떠는 건가 싶었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문득 그녀의 기계화 적성 데이터가 떠올랐다.
적성 수치가 다른 직원들에 비해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몸매가 아주 좋았고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인 나이스 바디였다.
그걸 고려하면 이 계획에 딱 맞는 소체가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있다.
꼬드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저기, 미나 씨.”
“네? 선배님, 왜요?”
“나 말이야, 이번 프로젝트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 쪽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저, 정말요?! 제, 제가 선배님을 돕는다고요?!”
그녀의 격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왜 이렇게 쉽게 미끼를 무는 걸까…….
나는 그때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네! 선배님 돕는 일이라면 기쁘게 맡을게요!”
“어, 어어…… 그래, 알았어. 그럼 지금 프로젝트 리더님께 연락해 둘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으로 메일을 보냈다.
『소체 확보 완료』라고.
“잘했어, 아주 훌륭해! 그녀를 어디서 찾아낸 건가?”
프로젝트 리더였던 주임 부장은 눈을 번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회의실에 있었다. 회의실에는 나와 주임 부장뿐이었다.
(역시…….)
미나를 고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주임 부장의 눈에 들려면 그가 좋아할 법한 여자를 데려오는 게 상책이었으니까.
남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몸매에 앳되면서도 귀여운 얼굴을 가진 그녀는 최적의 재료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내 출세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주임 부장은 내게 커피를 권했다.
아직 점심 전이라 좋은 건 대접 못 하지만 대신이라면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이었다.
강렬한 졸음이 덮쳐왔고, 나는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야…… 일어나…… 어이…… 눈 떠…… 야! 눈 뜨라고 하잖아!”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아까 그 주임 부장 말고도 두세 명 정도가 더 서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려 했지만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몸 전체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곳은 사내 연구실의 한 방인 듯했다.
“기분 좋게 깼나, ※▼◇〇. 아니…… 01호.”
01호……?
그 호칭에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주임 부장에게 따져 물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이, 이년이 알아듣게 설명해 줘.”
부장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네, 네. 어― ※▼◇〇 씨는 이번 프로젝트의 피검체로 선정되었습니다.”
(프로젝트…… 피검체……?)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한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야에 살짝 걸리는 가슴 부위는 은색 장갑판으로 덮여 있었다.
“모르겠나? 그러니까 네년이 01호라고. 네 몸을 기계화한 거다. 야, 거울 가져와!”
부하 중 한 명이 전신 거울을 가져와 내 앞에 세웠다.
“……?!”
내 몸은 프로젝트 설명회 때 봤던 설계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머리만 빼고 온몸이 은색 장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팔은 등 뒤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뒤통수에는 여러 가닥의 코드가 꽂혀 있어,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음성 유닛 조정 끝났습니다.”
부하가 부장에게 보고했다.
“그래? 그럼 말할 수 있게 해.”
『음성 유닛 조정 완료되었습니다.』
내 입에서 의도치 않은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아…… 말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못 들었나? 아니면 이해를 못한 건가? 하하하, 생각 좀 해보라고. 내가 왜 너 같은 재수 없는 년을 프로젝트 멤버로 끼워줬을 것 같나? 처음부터 널 개조할 생각이었어. 뭐, 그 어린 계집애는 덤이었고.”
저항하려고 몸을 비틀어봤지만, 몸은 내 명령을 거부했다.
“하하하…… 바디 조정은 아직 안 끝났거든. 하지만 마침 잘됐군. 먼저 전자두뇌 조정부터 시작하지.”
“전자두뇌 조정……?”
“그래, ※▼◇〇 군. 네 뇌는 이미 기계화됐고 네 몸에 생살이라곤 남아있지 않아. 하지만 아직 완전히 기계가 된 건 아니지. 인간형 병기가 싸우려면 전투 시스템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지금 네 전자두뇌엔 쓸데없는 게 너무 많단 말이야. 그래서 우선 그것부터 삭제해야겠어.”
“쓸데…… 없는…… 거?”
“01호, 네 원래 이름이 뭐지?”
“네? 이름요? 그건…….”
말문이 막혔다. 분명 방금 전까지 기억하고 있었을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얼굴과 이름, 고향과 출신 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마치 퍼즐 조각이 빠져나가듯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아, 안 돼…… 그만해…….”
“걱정 마, 금방 끝나니까. 병기한테 가족 따윈 필요 없거든. 내 부하였다는 사실은 남겨주마. 그게 마지막 자비다.”
부장은 비웃듯 크게 웃었다.
탁탁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내 안에 있던 가족의 기억들이 지워지고 덧칠해졌다.
“아아아…… 없어…… 내…… 기어기…….”
“난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다음에 깨울 때는 네 감정을 지워버릴 때다.”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부장과 부하들이 방을 나가는 것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강제로 기능이 정지되었다.
다시 깨어난 곳은 전투 훈련실이었다.
머리에는 코드가 꽂혀 있었고, 등에는 굵은 케이블이 연결되어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었다.
이 방에서 벌어질 일은 모의 전투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 안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방 위쪽 창문 너머로 감시하는 부장 일당이 보였다.
『지금부터 최종 조정 및 모의 전투를 실시한다.』
마이크를 통해 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종 조정.
그게 끝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한다.
어떻게든 저항을…… 아니, 나에겐 아직 마스터 등록이나 명령 수행 프로그램이 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몇 분 뒤면 끝날 일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거절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거절했다면…… 그 아이를…… 미나를…….
『최종 조성을 시작합니다.』
비정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싫어… 싫어어! 안 돼!! 이, 이거 풀어줘…! 워, 원래대로, 원래대로 돌려놔줘어어…!! 아아악…!?』
안녕…… 나 자신…….
툭.
시야가 캄캄해졌다.
내가 사라진 걸까…… 아니, 아니다. 에너지 공급이 끊겼다. 설마 정전인가?!
그때 누군가 내 머리에 꽂힌 코드들을 거칠게 뽑아냈다.
『구하러 왔어. 지금은 좀 쉬어.』
그 목소리가 청각 유닛에 울려 퍼졌을 때, 나는 완전히 기능 정지되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였다.
부장과 그 일당은 전원 체포되었고, 소체로 잡혀 왔던 이들도 구출되었다.
남겨진 것은 기계 장치 인형…… 뿐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되살려보려 했지만, 역시 지워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01호.
그게 내 이름이다.
하지만 내 안에 단 하나, 얼굴과 이름이 일치하는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안녕.”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그 인물에게 인사를 건넸다.
“……심문은 이미 끝났을 텐데. ……어제도 말했지만 내가 아는 게 전부야. 에이전트 씨.”
그 사람은 나를 구하러 왔던 장본인이자, 에이전트라고 자칭하는 인물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기계 몸을 가졌고, 부품들도 내 몸과 무척 닮아 있었다.
“네가 협력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프로젝트 공범자한테?”
“……따라와 줘.”
나는 방을 나와 그 에이전트를 따라갔다.
“그리고 내 이름은 쿠레하라고 불러.”
“…….”
나와 쿠레하 씨는 어느 방에 도착했다.
“이걸 봐줬으면 해.”
방에 들어선 나는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말을 잃었다. 동시에 내 안의 유일한 기억 속 이름이 업데이트되었다.
“……02호?”
그것은 틀림없는 나의 후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