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절단물을 왜 보느냐?
이쪽 업계에서도 상당히 매니악한 태그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오래된 클리셰와 비슷해.
여주가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거나 얼굴에 흉한 화상을 입는다거나,
옛날 웹툰 중에는 배에 칼을 맞아서 아이를 가지기는커녕 성관계를 가지는 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
그럼 보통 여주가 남주한테 떠나라고 하고,
남주는 상관없다며, 자기가 보살펴주겠다고 하잖아.
그럼 여주가 '이런 나라도 사랑해주는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연인관계에서 누구나, 특히 창작물 속 여주인공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
이 남자가 내 얼굴만 보고 나를 사랑하나, 몸만 보고 사랑하나, 혹은 능력이나 다른 부차적인 면 만을 보고 사랑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
그런 것들이 사라졌을 때도 상대방이 여전히 나를 사랑해줄까 하는 불안.
그런 것들이 실제로, 처음 말했던 상황처럼 사라졌을 때, 상대방이 사랑한 건 나의 어떤 점이 아니라 나 자체라는 점을 알고 감동하는 장면, 익숙하잖아.
사지절단물은 그걸 아주 극단적으로 만든 예시인 게 아닐까 해. 완전히 인간으로서 무력해져, 그 삶을 이어가는 것조차도 타인의 엄청난 도움이 필요한 몸인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나의 본질을 사랑해준다 것. 놓지 않는다는 것.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고를 견디면서 까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묘사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게 사지절단물이 아닐까?
―라고 예전에 감상 길게 써둔 걸 찾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