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AI) 하이 프리스트 세라 #01: 빈민촌 전도기
2편: AI) 하이 프리스트 세라 #02: 야만 제국의 성노예
생각보다 관심을 많이 받아버려서 3편은 만들었습니다만 이 이후는 아직 계획이 없네용
소재 고갈이랄까..?
내용도 너무 산으로 간다 싶기도 하고, 세라를 더 굴리기도 미안해지고...
그래서 아예 다른 내용으로 뭔갈 만들어보려고 시도는 해봤는데 뜻대로 되진 않아서 조금 고민이네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문장력이 부족한 점 양해바라고, 너무 하드하다거나 다른 피드백도 환영입니당
태그) 어쩌면 닭장?, 어쩌면 료나?, 천박, 변색, 보테배, 방귀(스캇까진 아님), 림잡, 방뇨, 배빵, 모유, 이빨자국, AI짤
하이 프리스트로서 죄 많은 이들을 다루는 것은 하루의 일과입니다.
죄의 고백과 참회의 기도를 통해 많은 분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역할이에요.
죄인들이 착각하여 저에게 용서를 구하곤 하지만, 저는 용서를 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빛의 여신님과 피해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해주었어요.
가끔씩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아이들이 부모님께 엉덩이를 맞기 싫어 저를 찾아와서 용서를 구할 때면, 귀엽고 순수한 그들을 달래주어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용서를 구해야만 하는 곳은 오히려 이쪽이였어요.
남자들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여성인 저를 그들의 입맛대로 거칠게 다루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훈육하듯 엉덩이를 마구 두들겨 맞았고, 형벌은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유 없이 폭행을 가하거나 짓궂은 터치가 있더라도, 웃으며 죄송하다고 사죄를 드리는 것만이 빠르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어요.
하지만 제가 순종적인 모습을 보일 때면 남성분들은 잠재되어있던 가학성을 자극 받은 탓인지, 더욱 거칠게 저를 다뤘습니다.
결국 브라키스 제국 병사들의 노예이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 이어졌어요.
다행히 피어싱과 같은 도구가 없다는 점과 매일 같은 시간대에 씻을 수 있었던 덕분에 위생적으로는 더 나았지만, 시간대별로 정해진 일을 따르느라 가끔은 쉴 수 있었던 노예 시절에 비하면 전혀 쉴틈 없이 수용동 남성들의 성욕을 해소시켜야만 했습니다.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자들이라고 무질서하기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들에게도 힘으로 나눠진 서열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했고, 강자들에겐 저를 혼자서 안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어요.
물론 제 의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요.
저녁에 씻은 직후, 가장 깨끗한 상태의 저를 안는 것은 강자들이였습니다.
저와 성관계를 맺는 서열 높은 남성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듯이 저를 괴롭히고 자신의 소유물임을 주장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의 표정과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하여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하거나 목을 졸라 바보같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저의 모습을 즐겼어요.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구속한 채 박아대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몸무게로 짓누른 채 박아대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섹스 중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혔을 때는, 그가 저를 놔주도록 성기에 올라타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야만 했습니다.
매일 수십, 수백명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체력이 모자른 저로서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나마 거칠지 않은 성관계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만 여유를 부리거나 지쳐서 잠시라도 엉덩이를 흔들지 않으면, 지체없이 저를 들어올리고 허리를 거칠게 움직여댔습니다.
서열 높은 남성들이 한차례 만족하고나면, 다음은 낮은 서열의 남성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저의 질내에 가득찬 강자들의 정액을 전부 긁어내는 것이에요.
이미 임신한 몸이기에 질내사정을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지만, 서열이 높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은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저를 임신시키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였을 겁니다.
머릿수가 많은 탓에, 형평성의 이유로 낮은 서열의 남자들에겐 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서열 낮은 남성들은 강자들을 질투하고 시기했습니다.
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저의 등장이 서열 간의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와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하여, 자기 차례가 오면 모두 필사적으로 성욕을 해소했어요.
차례가 오지 않는 이들은 아쉬운 대로 저의 손과 가슴, 그리고 입을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낮은 서열에도 속하지 못하는 도태된 남성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졌습니다.
강자들이 저의 몸을 사용한 후 기분이 내키면, 그들 중 몇 명을 지목하여 저와 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였어요.
남성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무력으로 밀려나 도태된 남성들이였지만, 자지의 크기나 정력만큼은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한참이나 덩치가 작은 남성에게 힘으로 밀려 따먹힐 때면, 주변 남성들이 도태된 남자를 환호해주거나 열렬한 찬사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약자분들은 다른 남성들에 비해서 기회가 매우 드물게 내려오기 때문인지, 필사적으로 저를 임신시키려는 본능에 의해 정액을 한가득 들이붓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서열 간의 갈등은 고조되었어요.
약자들은 강자들이 저를 단독으로 안을 수 있다는 점과 깨끗한 상태의 저를 이용하는 점이 불만이였고, 강자들은 기껏 그들을 위해 저의 몸을 사용할 수 있도록 넓은 아량으로 베풀어주었더니 이제는 그것이 자기들의 권리가 된 것처럼 점점 요구사항과 불평불만만 늘어난다는 점, 그리고 여러명이 사용하는 탓에 저의 구멍 조임이 느슨해지고 제 몸이 망가질 뿐 아니라 더러워진다는 것이 불만이였습니다.
결국 서열 높은 남자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저의 보지는 강자들만의 것이 되었습니다.
진보한 문명인들 사이에선 문화와 유행이 자리잡는다고 했던가요?
어느날부터 약속이라도 된 듯, 강자들 사이에선 서로를 껴안은 채로 부드럽게 섹스하는 체위가 유행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마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처럼 저를 부드럽게 껴안았고, 저도 자연스럽게 팔과 다리를 휘감았어요.
하지만 정작 제가 좋아하는 키스는 입에서 정액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저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제가 키스를 요구하면 적극적으로 혀를 내밀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가더라도 자신이 책임져주겠다며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달라거나, 자신의 여자가 되어준다면 다른 남자들에게 함부로 안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들에게 성욕처리 도구 다루듯이 다뤄졌던 저였지만, 귀두로 부드럽게 자궁을 노크하며 따뜻한 혀로 입술을 핥아오자 정말 헷갈렸습니다.
결국 저는 조금이라도 흔들릴까봐 제가 좋아하는 키스를 끈질기게 유도해오는 유혹을 겨우 뿌리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유혹이 며칠 씩이나 계속되니, 저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저의 새로운 남편이 되어주고 싶고, 제가 다른 녀석들에게 안기는 것이 싫은, 귀족 집안의 자제 분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말았어요.
꽤나 잘 사는 부잣집의 도련님이였기에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제 뱃속의 아이마저 책임질 수 있다는 말에 결국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를 끌어안고 그동안 힘겹게 참아왔던 달콤한 키스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새로운 남편도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저의 질이 서방님의 자지 모양을 까먹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사랑을 약속했어요.
저는 앞으로 수용소의 다른 남자들에게 안기지 않고 이 분만을 서방님으로 모시며, 밤마다 부부 간의 부드러운 아이 만들기 섹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만으로 임신을 했음에도 자궁이 내려앉으며 새로운 난자를 배란한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을 허락하자마자 곧바로 거친 섹스로 바뀌더니, 자신이 내기에서 이겼다며 주변의 남자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그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몸은 이 남자를 완전히 제 남편으로 여겨, 손쉽게 절정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기에서 승리한 그에게는, 제 몸을 하루동안 온전히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유권이 주어졌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저처럼 궁둥이가 가벼운 여자를 책임질 생각은 전혀 없었고, 뱃속의 애새끼는 유산시키고 싶었으며, 귀족 집안의 부자는 커녕 3류 양아치에 불과했습니다.
내기의 내용은 똑같이 이어져, 저의 마음을 얻는 남자는 저를 하루동안 온전히 자기 혼자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의 공략법은 손쉽게 간파 당하여 그들 사이에서 서로 공유되었어요.
마음을 녹이는 달콤한 말과 함께 삽입 없이 진한 딥키스만으로, 젖꼭지 애무만으로 저의 마음을 얻어내는 법은 너무나도 쉬운 것으로 유명했고, 달콤한 말 없이 저의 커다란 배를 강하게 주물러대고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얻어내거나 똥구멍에 팔을 쑤셔넣어 제가 강제로 마음을 허락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 또한 연구되었습니다.
서열이 낮은 남자들은 금지된 보지의 대용으로 저의 입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머리를 붙잡고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자지를 찔러넣어, 숨이 막히는 괴로움에 발버둥치는 저의 모습을 즐겼습니다.
이 나라에 오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던 마조히스트 성향 때문에 거칠게 다뤄질 때마다 애액을 흘려대었고, 목구멍에 뜨거운 정액이 쏟아져나오면 절정해버렸습니다.
저의 음부를 사용할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인지 다른 남성에게 딥쓰롯을 당할 때면, 발가락으로 저의 보지를 쑤시는 남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은 금방 강자들에게 제지 당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서열 높은 남성들 외에 저의 보지를 사용하는 남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어요.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은 제가 혼자일 때, 특히 홀로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갔을 때를 주로 노리곤 했습니다.
겨우 혼자가 된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소변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문이 벌컥 열리고 눈앞에 커다란 덩치의 남성들이 나타날 때면...
저는 새까매진 똥구멍을 다음 대기자들에게 전부 드러낸 채, 그 육중한 몸무게에 짓눌려 발버둥을 칠 뿐이였습니다.
무자비한 강간이 계속되는 탓에 참았던 소변은 새어나와 저의 엉덩이를 타고 흘렀고, 저는 비위생적인 화장실의 아무곳에나 눕혀진 채 깔려대기 바빴습니다.
이제는 아예 기회를 박탈 당한 도태남들 또한 똑같은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제국 병사들의 노예 시절까지 합친다면, 저의 주식이 남성들의 좆밥과 정액이 된 지도 벌써 6개월 째였으니, 강간을 당하는 와중에도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 방귀를 뀌어버리는 일이 잦았어요.
그럴 때면 남성들은 저의 추함과 더러움을 욕했고, 저는 화장실로 끌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대변을 봐야했습니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밤에 모두가 잠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면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와 홀로 볼일을 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자고 있지 않았던 도태남들은 그런 저를 조용히 미행했습니다.
대변을 볼 준비를 끝마친 저였지만, 저의 허리에 올라탄 남자는 '자지 마개'랍시고 저의 항문 끝까지 자지를 밀어넣었습니다.
저는 자지가 들어온 그 틈으로 방귀를 북북 뀌어대며, 이제는 제발 배변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지 마개'가 빠지는 일은 없었고, 정액과 한 곳에 뒤섞인 저의 변은 더욱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순식간에 장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했어요.
처음엔 저의 신체가 서열 낮은 남자들에게 더럽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였지만, 이는 점점 변질되어 서열 높은 남성들은 저의 소유권도 얻었겠다, 정말 추잡한 짓들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성욕자들은 저의 것만큼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똥구멍을 빨도록 시켰어요.
그저 혀를 낼름거리는 것이 아닌, 입술로 항문을 덮은 채 하는 진한 애널 키스를 말입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남자로 이루어진 무리에서 저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했어요.
다행히 독허트 장군님에게 단련된 덕분에 헛구역질에 그치며, 지저분한 항문을 겨우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몸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망가진다는 이유로 보지의 사용이 제한된 시작점과는 달리, 강자들은 저의 몸을 그 이상으로 거칠게 다루었기 때문에 결국 B구역 제 1수용동에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제 몸의 사용권을 두고 일어난 싸움이였어요.
반란은 성공적이였습니다.
정립되어있던 서열 체계는 무너져 내렸고, 이제 저는 서열따윈 없는 하나의 공평한 사회에서 모두의 공공재가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성욕 뿐만 아니라 감정도 저에게 전부 표출했어요.
분노와 울분, 질투심, 사랑, 가학성 등 자기 아내로 삼고 싶었다며 진한 딥키스를 하거나, 그 녀석들에게 안겨서 앙앙댈 때 그렇게 좋았냐며 엉덩이를 두들겨맞거나, 엄마 없이 자란 탓에 자기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달라며 아직 모유가 나오지 않는 유두를 빨아댔습니다.
그동안의 욕구를 참아왔던 탓인지 너무나도 거칠었던 그들의 행위에, 귀두로 자궁구를 부드럽게 희롱 당하며 키스를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전에는 정말 피곤할 때면 쉴 수 있도록 가끔씩 허락을 해주었지만, 이용자가 많은 현재, 그런 것은 사치로 여겨집니다.
게다가 씻는 시간마저 아깝다며, 저에게 씻는 것은 거의 허락되지 않았어요.
날이 갈수록 저의 배는 더욱 부풀어올랐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거친 섹스는 계속되었어요.
뱃 속의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제 상황을 볼 수만 있다면 분명 이해해줄 겁니다.
임신 8개월 차에 들어서자 저의 배는 확실히 섹스하기 불편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 때문에 배를 텅텅 치는 남자들도 정말 많아졌고, 엉덩이 대신 배를 내리치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남자들은 마치 자신이 아빠라도 된 것처럼 배를 통해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보지를 쑤시면서 말을 건네면 배를 걷어찼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면 주먹으로 저의 배를 내리쳤습니다.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여 저와 격리시켜주었어요.
제가 완전히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을 즈음, 포로 교환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지옥과도 같았던 나날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어요.
교환 대상이었던 저에겐 새로운 옷이 지급되었고, 저를 소유했던 남성들도 바깥으로 나가는 제가 씻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출발하는 날까지 멈춤 없이 강간을 당한 탓에 옷은 전부 찢겨버렸고, 몸은 다시 지저분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말 기뻤어요.
모르는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이 이상했지만, 아무렴 어떨까요.
남편도 분명 1년 가까이 사라졌던 저와 재회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