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A가 운영하는 우마무스메 양성기관. 일본 우마무스메 트레이닝 센터 학원. 통칭 '트레센'.
국내외 탑 클래스 실력을 지닌 우마무스메들이 학생으로 재적하며, 나날이 그 다리를 갈고 닦는 학원.
레이스를 위한 트레이닝 외에도, 커리큘럼에는 일반적인 중,고등학교의 일반 교과와 함께 레이스 학개론, 위닝 라이브, 스포츠 영양학 등 우마무스메에게 걸맞은 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기숙 학원이며, 학원에 다니는 우마무스메 외에 트레이너들도 학원 부지 내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트레센의 교칙에는 '제 0조'라는 기묘한 항목이 존재한다.
통상적인 규율집의 첫 장(제 1조)이 아닌, 그 '이전'에 존재하는 조항.
이는 단순한 트레이닝의 재량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을 넘어,
어떤 '관계'를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학원'이라는 이성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독소 조항이다.
트레센 교칙 제 0조 1항 '담당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 간의 관계는 학원 및 URA 관계자에 의해 제한받지 아니한다.'
"...라는 교칙이 있는 거 알아?"
"에이, 그런 내용이 어디있어요. 저도 연수 받을때 교칙 제대로 읽어봤다구요."
재미있는 것을 알려준다던 팀의 시니어 트레이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어이없는 내용에 실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이런식으로 실없는 농담으로 놀리는 걸 좋아하는 선배이기도 하고,
심지어 이번에는 그 내용조차 '학생'과 '선생'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라니...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진짜라니까, 너 팀 엘가파 트레이너 알지? 그 트레센 학생이었던 애. 걔가 담당 트레이너랑 학생때부터 연애하다가 성인 되자마자 바로 결혼했잖아."
"...그렇죠?"
"걔랑 저번에 술 마시고 그때 얘기 한 적이 있는데, 걔가 그 교칙이 우마무스메들에게 나눠주는 가이드에는 적혀있다고 그랬다니까."
"아니, 선배 대체 얼마나 속으시는거에요. 저번에는 온천할인권을 여행권이랍시고 받은 거 쓰러갔다가 저한테 돈도 빌려가셨으면서."
그리고 이 선배는 여러번 팀 엘가파 트레이너한테 속은 경력이 있다.
팀 엘가파 트레이너는 현역 시절에 G1은 우승하지 못했지만, 중상 레이스에서 꽤나 입상했던 우마무스메였다.
그리고 현역 은퇴식에서 담당 트레이너와 결혼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했다.
"아니 그건 미안하다니까... 아무튼 이번에는 내가 직접 봤다니까? 진짜 그 교칙이 적혀있었다고!"
"에휴... 술 취해서 잘못 보신 거겠죠. 상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그런 교칙이 있다고 해도 딱히 저랑은 상관도 없는 얘기잖아요."
"에이~ 상관이 없긴 뭐가 없냐? 아직도 모솔인 놈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다 문득, 휴대폰에서 '트레이닝 준비'라는 알람이 울렸고,
어느새 시계가 2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다.
"저 먼저 갈게요. 그건 선배님이 열심히 옮기십쇼."
"야 이거 옮겨주고 가야지! 삐졌냐 임마?! 미안하다니까!"
"슬슬 트레이닝 시간이라서 가야해요. 늦으면 또 드롭킥 맞거든요."
"어이어이어이어이, 밤송이가 사과가 될만큼 이 고루시쨩을 기다리게 하다니"
"각오는 되어있겠지! 제 5행성에서 온 오징오징성인!"
"끄아아아악!!! 니가 3시라고 그랬잖아!!"
"호오 이 고루시님의 피스피스 스피스피닝 파일드라이버를 견디다니, 역시 네녀석은 트레이너의 탈을 쓴 오징오징성인이로구낫!"
"으으읍!으으ㅡ읍!"
한 바탕 소란이 있은 뒤.
"히야아~ 오늘도 지구를 지켜내는데 성공한 것이와요~"
"어라? 트레이너 왜 멘틀이랑 소통을 하고 있냐?"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네가 땅에 처박았잖아!!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른 채
그녀의 상황극에 맞춰주기로 했다.
절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나원참, 너도 이상한 녀석이라니깐~"
"...아무튼 그럼 오늘은 웨이트ㄹ..."
"에엣~,진심인 것인가요? 이 가녀리고 소녀소녀한 고루시짱에게 그런 험악한 기구를 들게하려하다니."
"아ㅡ앗~ 너무 무거워서 들 수 없는 것이와요~"
"그럼 뭘 하고 싶어?"
"아앙? 이 고루시쨩이랑 영혼의 서약을 맺은 지 한 세기 하고도 46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것조차 모르는거야? 최악이구만, 너란 녀석."
"담당 계약 한 지 이제 3년 됐거든."
"쳇, 재미없는 녀석."
"그래서 진짜 뭘 하고 싶은 건데?"
"오오~! 이 고루시쨩에게 그런 대담한 질문을 하다니!"
"자, 트레이너! 이제 곧 고루시 극장의 막이 오를 시간이란 말씀! 오늘의 특별 공연은 바로... '갑자기 시작된 텔레포트 온천 투어'다! 핫하! 지금 당장 이 이차원 게이트를 넘어 온천에 퐁당 빠지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자루에 담아 어딘가로 납치하는 이녀석이 바로 내 담당 우마무스메 '골드 쉽'이다.
그녀는 온갖 말썽과 기행으로 인해 학원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유명했지만, 그 실력과 재능만큼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덕에 나 역시 상당히 빠르게 G1 6승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너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기행에 휘둘려 정신을 못 차렸지만, 언제부턴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온천이지? 온천에 갈 일도 딱히 없고, 온천여행권도 없는데.'
'이래놓고 한겨울에 바다에 던지지만 않으면 좋겠네.'
갑작스런 온천행에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대체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골드 쉽이 자루째로 나를 땅바닥에 던졌다.
"어서오십시오 손님. 금선 온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진짜 온천이네?"
자루에서 기어나온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온천 료칸의 방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료칸은 잘 모르지만 절대 트레이너의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곳임이 느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과 방 안에 감도는 유황 냄새가 지워버렸다.
"잘도 이런 좋은 곳을 찾았네."
"오~호호호~ 보는 눈이 좋으신것이와요~ 이 금선 온천은 홋카이도의 명물이랍니다~"
'분명 몇 분이었던 것 같은데 홋카이도까지 어떻게...'거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신경 쓰기를 그만뒀다.
보나마나 내 질문에 대답할 리도 없고, 기절시켰던 것이겠지.
"그래서 갑자기 온천은 왜 데려온거야?"
"그런 시시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들어가시는 것이와요~"
골드 쉽은 그렇게 말하고선 날 밖으로 밀어보냈다.
타올을 걸친 채 밖으로 나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노천탕과 저 멀리 쌓인 눈이 보이는 절경이었다.
"...진짜 홋카이도에 있는 온천이었네."
최근 3년간 반강제... 아니 강제로 골드 쉽의 담당이 되고, 갑작스레 개설된 URA 파이널스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던 탓일까.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경치를 보며 온천에 몸을 담그니,
그동안 쌓여왔던 피로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나른하네.'
그리고 오랫동안 기절해 있던 탓인지 지독한 허기가 느껴졌다.온천을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가니,
"여어~ 트레이너, 여전히 고라니보다 늦구만!"
골드 쉽이 화려한 저녁 식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얌전히 정좌를 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어? 먼저 먹지."
"헤, 너 말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식사는 다 같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는 것도 모른다면 온천 명인이 될 수 없다고!"
"참고할게."
"...너도 많이 변했네..."
"응? 뭐라 말했어?"
"언제까지 이 고루시쨩이 대침몰할 때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앗!"
"우아악..!
...
어라?"
당연히 바닥에 꽂아버리거나 발로 찰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골드 쉽은 그저 내 어깨를 눌러 얌전히 식탁에 앉혔다....왜지?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뭐 예상대로 행동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둘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이상했다. 몸은 나른하고 피곤한데, 식욕은 왕성했다.그리고 평소라면 시끄럽게 떠들었을 골드 쉽이, 오늘은 드물게도 조용히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
"..."
"맛있네, 여기."
서로 3년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했다.
3년전, 담당 계약을 하게 된 일부터, 타카라즈카 기념 3연패 도전 때의 일,
에덴을 찾아 수족관에 간 일 까지,
오랜만에 휴식이라 그런지 왠지 평소보다도 솔직 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오옷~! 너 평소보다 많이 먹네! 이정도면 맥쨩이랑도 좋은 승부가 되겠는 걸?"
다행이다. 언제나의 골드 쉽이다.
방금 전의 위화감은 그저 기분 탓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평소보다도 많이 먹은 듯한 기분이 든다.
"너 그거 절대 당사자 앞에선 말하지마라."
"아아앙? 너 지금 맥쨩을 물로 보는 거냐?!"
또 다시 이상한 소릴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평소보다도 많이 먹은듯한 기분이 든다.
"헤, 좋아. 이 고루시쨩이 맥쨩을 이기기 위해 비밀을 하나 알려주도록 하겠노라~ 단 한 번만 말할테니 잘 듣고 기억하도록~"
그녀가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 목소리는, '고루시쨩'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트레센 교칙에는 제 0조 1항이 존재한다."
"...뭐?"
순간, 머리가 울렸다.
오늘 아침, 선배에게 들었던 기묘한 이야기.
트레센 교칙 제 0조 1항 '담당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 간의 관계는 학원 및 URA 관계자에 의해 제한받지 아니한다.'
"...라는 교칙이 있는 거 알아?"
어째서 골드 쉽이 지금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역시 알고 있구나, 트레이너?"
목소리가... 이상하다.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다. 분명 '골드 쉽'이 말하고 있는데, 마치 다른 사람처럼 차갑고 낮게 가라앉아 있다.주변의 소리가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 내용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어."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이 흐릿하다.
이렇게 솔직 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말이 튀어나왔다.
"하아~"
그녀가, 아니, '골드 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 사람은 왜 그걸 트레이너한테 술김에 말한 건지. 나만 귀찮게 됐잖아. 뭐 됐나, 대신에 온천여행권도 받았고... 좋은 '기회'가 왔으니까 말이야."
온천여행권?그 사람? 설마 엘가파의 트레이너?
그럼 선배의 말이... 진짜였다고?기회? 무슨...
머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아까 온천에서 느꼈던 나른함이, 식사와 함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트레이너."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더 이상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심해처럼 깊고 고요한 눈이었다.
"내 템포, 따라오는 녀석은 좀처럼 없다구."
" 나를 만나서 네 인생 좀 재밌어졌지? 나도 정말... 3년 내내, 꽤나 즐거웠어."
"역시 이 '골드 쉽'님의 안목은 정확했다니깐. ...그래, 넌 '합격'이야."
"뭐, 그래도 네 의사 정도는 물어봐줄게. ...타키온 녀석이 준 것도 잘 듣는 것 같으니까.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들을 수 있겠지."
"나랑 □□하자?"
"그리고, 거절은 선택지에 없다구."
공식적으로, 트레센에서 트윙클 시리즈를 은퇴한 우마무스메들은 각자의 적성에 따라 다양한 진로로 나아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학원의 가장 깊은 곳, URA의 기록 보관소에서 흘러나온 것인지조차 불분명한 '파편화된 데이터'가 존재한다.
극히 일부의 관계자만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이 기괴한 수치.
그것은 졸업생의 9할 이상이, 결국 자신의 담당 트레이너와 '결속'된다는 내용이다.
트레센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공식 답변과 '규정상 관련 데이터의 열람을 허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