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지로 가문.
트레센 학원의 도서관에서 트윙클 시리즈의 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단어는 '메지로'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거머쥐어 온 수십 개의 G1 트로피.
그리고 그런 레이스의 성적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메지로의 품격'이었다.
메지로의 우마무스메들에게 품격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혈관을 흐르는 본능에 가까웠다.
레이스장의 흙먼지 속에서도, 화려한 사교 파티의 조명 아래에서도 그들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메지로'라는 말은 곧 '품격'과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그런 메지로 가문의 본가 저택에는 '자율 토론실'이라는 방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가문의 우마무스메들이나 트레이너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목적으로 설계된 방이었으나, 이후에 생긴 소회의실, 미디어실 등에 밀려 점차 잊혔다.
TV나 PC 같은 문명의 이기도 없고, 낡은 소파와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조촐한 구성. 게다가 너무 구석진 곳에 자리한 탓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가문원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두 우마무스메가 이곳을 찾기 시작하며 자율 토론실은 그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라이언, 그래서 할 얘기라는 게 뭐야?"
"이미 짐작하고 있잖아? 도베르."
창밖으로 보이는 메지로 정원의 평화로운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방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근 트윙클 시리즈를 연달아 제패하며 가문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두 신성, 메지로 라이언과 메지로 도베르가 그 주인공이었다.
"도베르... 기껏 둘이 온천 여행까지 갔으면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니... "
"읏... 그건 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그러는 라이언이야말로! 모처럼 트레이너 씨 생일을 밤새 함께 보낼 기회였는데, 있지도 않은 가문 회의 핑계를 대고 돌아왔잖아!"
"그, 그건... 분위기가 너무 묘했단 말이야! 금방이라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고!"
그녀들이 이 외진 방을 찾는 이유, 그것은 '메지로의 품격'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소녀다운 고민, 바로 '연애' 때문이었다.
대중 앞에서는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우아한 그녀들이지만, 담당 트레이너 앞에서는 그저 좋아하는 사람의 눈길 한 번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일 뿐이었다.
특히 순정 만화의 작가와 열혈 독자인 두 사람에게 이곳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성역이었다.
"그리고 도베르, 적어도 난 이미 사귀고 있잖아?"
라이언이 트레이너와 다정하게 찍은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큭... 언제나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건 치사해..."
"하핫, 미안 미안. 그치만 도베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 '벽'을 허물지 않으면 골 라인은 영원히 보이지 않을걸?"
"...나도 알고는 있단 말이야! 하지만 입만 열면 마음과는 다른 말이 나오는걸...!"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천천히 진전 중인 라이언과 달리, 도베르의 연애는 출발 게이트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라이언이 보기에 도베르의 문제는 단순했다.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표현에 서툰 츤데레 영애'와 '자기 마음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지독하게 없는 워커홀릭 트레이너'라는 최악의 상성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도베르도 알고 있잖아? 네 트레이너 씨, 쓸데 없이 그런 쪽으론 둔하다는 거."
"하아...그렇지... 뭐, 본인 입으로 연애 경험이 없다고도 했었고..."
도베르의 트레이너는 중앙 트레센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신인으로서 트레센에 합격한 실력자.
극악의 시험 난이도와 엄격한 기준 때문에 배정받기 힘든만큼 30대 초반만 되도 젊은 편인 중앙 트레센에서 그는 보기 드문 '싱싱한' 20대 초반의 트레이너였다.
도베르의 남성 공포증을 이해하고, 그녀가 비바람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도록 묵묵히 우산을 씌워준 그의 진심과 실력, 그리고 도베르 스스로가 생각해도 봐줄만한 외모.
도베르가 그를 연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레이스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서툰 편이었고, 특히, 연애 경험과 세포는 아예 전무.
썸을 탄 적도 없을 정도로 연애 세포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나 의문스러울 지경이였다.
아무리 도베르가 츤츤 대는 성격이라고는 해도, '진짜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답이 없는 수준으로 눈치가 없었다.
이미 도베르의 주변 인물들은 도베르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나 유일하게 눈치 못 챈 단 한명이 바로 그녀의 트레이너였다.
"후후... 걱정 마, 도베르. 오늘은 널 위해 '특별 코치님'을 모셨으니까."
"특별 코치님..?"
똑 똑ㅡ!
"호와아~ 두 분 모두 오랜만이랍니다~"
"오랜만이야, 브라이트."
"브라이트!? 갑자기 여긴 무슨 일... 설마 '특별 코치님'이..?"
"네에~ 라이언 언니가 꼭 좀 도베르를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라이언이
부른 특별 코치는 바로 메지로 브라이트였다.
평소에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릿한 말투와 마이페이스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사실 그녀는 메지로 가문의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트레이너와의 약혼 소식을 알린 전설의 승부사였다.
레이스에서는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한순간에 폭발적인 스퍼트를 내는 추입처럼, 연애에서도 그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트레이너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또한, 도베르와 매우 친한 관계인데다가 도베르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브라이트는 연애 코치로써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야기는 이미 다 들었답니다, 도베르. 아직도 '스타트' 지점에서 몸을 풀고 계신다면서요~?
"자, 잠깐?! 어디까지 얘기한 거야, 라이언?!"
"아하하... 전부 다..?"
"라이언!"
"어라~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답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큿... 브라이트, 기껏 와줬는데 미안하지만 돌아가 줘. 내 앞가림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호와와~? 저, 도베르?"
"미안해 브라이ㅌ..."
"연애를 얕보지 마세요."
"...!?"
찰나의 순간이었다.
공기가 얼어붙고, 방 안의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한 압박감이 도베르를 덮쳤다.
그 메지로 브라이트가 남의 말을 끊었다. 그것도 가장 절친한 친구인 도베르의 말을.
지금 브라이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레이스 종반, 4코너를 돌며 앞서가는 우마무스메들을 집어삼킬 듯이 노려보던 그 서늘한 기백과 같았다.
"아시겠어요~? 도베르. 연애라는 건 레이스보다 훨씬 더 가혹한 서바이벌이랍니다. 적당히 간이나 보면서 '언젠간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에요~"
말투는 평소의 느긋한 느낌으로 돌아왔지만, 위압감만큼은 여전했다.
"도베르의 트레이너 씨는 누가 봐도 일등 신붓ㄱ... 신랑감이니까요~ 20대 초반의 나이에 고연봉, 탄탄한 경력, 그리고 메지로의 영애를 담당할 정도로 검증된 인격... 거기다 연애 경험까지 없는 깨끗한 상태라니. 이건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오아시스나 다름없어요."
"...그럴 리 없어! 아니, 설령 그런 일이 생겨도 트레이너는 절대 눈치 못 챌 거야!"
"도베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죽기 살기로 대시하는 것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정곡을 찔린 도베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최근 트레이너가 다른 팀의 여성 트레이너들로부터 공동 연수 제의를 받거나, 식사 대접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는 사실을.
트윙클 시리즈 때와는 달리, 드림 트로피 시즌에 접어들며 일정이 여유로워진 지금, 그는 더 이상 '바쁘다'는 방어막 뒤에 숨어있을 수 없었다. 다만, 그저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치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는 성격인걸..."
도베르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수 많은 G1 레이스를 우승한 우마무스메 일지라도 사랑 앞에서는 한명의 소녀에 불과했다.
"호와아~ 걱정마세요, 도베르~ 그런 당신을 위해 제가 특별한 '트레이닝 메뉴'를 짜왔답니다~ 제 교육을 마칠 때쯤이면, 트레이너 씨는 당신 없이는 숨도 쉬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마침 시기도 적절하네요~"
브라이트의 입가에 띄워진 미소는 평소의 온화함과는 거리가 먼, 마치 먹잇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포식자의 그것임을 도베르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 그럼 첫 번째 강의부터 시작해 볼까요~?"
브라이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바로, '메지로 (트레이너 이름) 계획'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자였다. 도베르의 얼굴이 폭발할 듯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12월 23일.
브라이트와 세운 최종 계획은 이랬다.
트레이너에게는 친구들과 파티가 있다고 속이고 브라이트와 함께 트레이너의 집을 깜짝 방문한다.
그리고 브라이트가 적절히 분위기를 살피다 "볼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를 비워준다.
그다음 도베르와 트레이너가...
완벽한 '서프라이즈 전술'이었다.
이 계획을 위해서 도베르는 일주일간 트레이너에게 "이브 날에는 브라이트와 다른 친구들과 파티를 할 예정"이라며 철저히 연기했다.
그가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일 때마다 도베르는 심장이 요동쳤지만, 브라이트의 "지금은 마군 속에서 숨을 죽일 때랍니다~"라는 조언을 되새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8시.
"후우... 준비는 다 됐어, 브라이트."
도베르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거울에는 평소의 트레센 학원 교복 대신, 오늘 밤의 '최종 스퍼트'를 위해 준비된 화려한 산타 드레스 차림의 소녀가 있었다.
부드러운 벨벳 소재의 붉은 케이프가 어깨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쇄골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과감한 오프숄더 드레스가 숨겨져 있었다.
"호와아~ 저도 준비 완료랍니다~ 어라아, 정말 잘 어울리네요, 도베르. 그야말로 오늘 밤의 주인공이세요~"
"읏... 그만해, 그런 반응. 부끄러우니까..."
도베르가 얼굴을 붉히며 케이프 깃을 여몄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브라이트와의 특훈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후후~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ㅇ... 어라아~?"
현관을 나서려던 찰나, 브라이트의 코트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브라이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메지로 브라이트입니다만... 네에? 아아, 네에..."
잠시 통화를 이어가던 브라이트의 미간에 살짝 곤란한 기색이 서렸다.
통화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돌려 도베르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브라이트? 안 좋은 소식이야?"
"으으음... 조금 곤란하게 됐네요~ 방금 학원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 다음 경기 출전 등록 서류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에요. 지금 당장 와서 확인해줘야 할 것 같다고 하네요~"
"에? 잠깐, 그 말은 설마...!"
"어떡하죠, 도베르~? 아무래도 저보다 도베르가 먼저 출발하셔야 할 것 같답니다. 다행히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고 하니, 저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트레이너 씨 댁으로 갈게요~"
"으으... 하필 이 타이밍에... 하는 수 없지. 그럼 먼저 가 있을게, 브라이트. 늦지 않게 와야 해!"
도베르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먼저 밤거리로 나섰다.
하얀 눈송이가 그녀의 산타 드레스 위로 내려앉았고, 도베르는 브라이트가 전수한 '최종 직선의 각오'를 되새기며 트레이너의 집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브라이트는 멀어져 가는 도베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호와아~ 미안해요, 도베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9시.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구만... 뭐 나랑은 상관 없지만, 도베르도 친구들과 파티한다고 했으니 오늘은 쭉 쉬어야지~"
도베르의 트레이너는 평소의 이맘때와는 다르게 늦은 시간까지 일하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집에서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연말의 산더미 같은 업무에 치여 트레이너실에서 밤을 지새웠겠지만, 이번 주는 왠지 모를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하단 말이지. 갑자기 후쿠키타루가 운세가 좋다며 서류를 대신 옮겨주질 않나, 타이키랑 라이언이 트레이닝 메뉴 작성을 도와주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이질 않나..."
그는 알 리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메지로 (트레이너 이름) 계획'의 일환으로,그를 정시에 귀가시켜 '결전의 장소'에 대기하게 만들려는 도베르의 친구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는 것을.
"그럼 피자라도 주문해 볼ㄲ..."
정적을 깨는 벨 소리에 트레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택배도, 지인도 없었다. 그는 의아해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네~ 누구세... 엑?!"
"뭐, 뭐야... 그 괴물이라도 본 듯한 얼굴은."
그곳에는 메지로 도베르가 서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도베르가 아니었다.
붉은 벨벳 소재의 케이프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아 있었고,살짝 벌어진 케이프 사이로 하얀 어깨 라인이 드러나는 과감한 산타 드레스가 보였다
"도베르?! 왜 여기에?!"
"마, 말했었잖아?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 하기로 했다고... 그래서 왔을 뿐이거든?... 그니까 그... 슬슬 방에 들여보내줄래..? 이 복장 꽤 춥단말이야..."
"어, 응. 그렇네, 일단... 들어와."
당혹감에 휩싸인 트레이너는 일단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트레이너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온 도베르의 얼굴은 드레스보다 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 여기 따뜻한 녹차."
"아, 고마워..."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트레이너는 소파에 앉아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도베르를 훔쳐보았다.
과감한 오프숄더 드레스와 그녀의 하얀 살결, 그리고 집 안의 따뜻한 조명이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갑자기 혼자 찾아오고... 친구들이랑 파티하는 거 아니였어?"
"아, 그게 혼자는 아..."
도베르의 스마트폰이 갑자기 짧게 진동했다.
"미안, 잠깐만."
브라이트: 호와아~ 도베르. 무사히 도착하셨나요~? 정말 아쉽게도, 저는 못 갈 것 같네요~ 이건 제 '선물'이랍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
"....브라이트..!!"
도베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속았다.' 배신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브라이트는 처음부터 올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트레이너의 집이라는, 도망칠 곳 없는 최종 직선에 홀로 밀어 넣은 것이다.
"응? 갑자기 왠 브라이트?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게..."
도베르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번 짧게 진동했다.
브라이트: 덧붙여서, 잊지 않으셨죠~? '스퍼트는 확실하게'랍니다~ |
도베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브라이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자기가 없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하지말고, 이 레이스밖에 바보같은 트레이너라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제대로 스퍼트를 걸어라'.
"...아냐 아무것도"
"그렇구나, 음... 뭐라도 좀 먹을래? 마침 피자 주문하려던 참인데"
"응, 마침 나도 조금 배고픈 참이니까..."
주문을 마친 트레이너가 소파 맞은편 의자에 앉자, 다시 한번 기묘한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좁은 자취방의 공기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그... 도베르."
"ㅇ, 왜?"
"오늘 복장, 정말 예쁘네. 사실 처음에 문 열었을 때 깜짝 놀랐어. 평소랑 너무 달라서."
트레이너의 솔직한 칭찬에 도베르는 찻잔을 든 손을 움찔거렸다.
"그, 그런 소리 하라고 입고 온 거 아니거든! 파티니까... 예의상 갖춰 입었을 뿐이야.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해!"
"전혀.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려서... 파티 장소가 여기가 아니었다면 다들 너만 쳐다봤을 거야."
"뭐, 뭐라는거야... 바보..."
도베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뜨거운 차를 마시는 척했지만, 달아오른 뺨은 식을 줄 몰랐다.
일주일간 거울 앞에서 "기분 나빠"라는 말 대신 "고마워"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했지만, 막상 실전이 되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좁은 방 안에서 두 사람은 텔레비전의 캐럴 소리와 창문을 때리는 눈송이 소리를 배경 삼아, 피자가 도착하기까지의 길고도 짧은 1시간을 견뎌냈다.
도베르는 곁눈질로 그의 방을 살폈다.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훈련 일지, 구석에 걸린 운동복...
그의 일상
속에 자신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심장을 간지럽혔다.
오후 10시.
"자, 피자 왔어. 케이크랑 같이 먹자."
"아... 응. 고마워."
브라이트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의 '파티'는 어딘가 엉성하게 시작됐다.
도베르는 일주일간 브라이트에게 전수받은 '유혹의 기술'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넘겼다.
제1장: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와 거리감 좁히기.
도베르는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면서도 슬쩍 트레이너와 눈을 맞추려 애썼다.
브라이트는 "3초간 지그시 바라보다 살짝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라"고 했지만, 정작 실전에서의 도베르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0.5초 만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나마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성공했지만
"어? 도베르, 피자에 뭐 묻었어? 왜 그렇게 빤히 봐?"
"아, 아니거든! 그냥... 치즈가 좀 늘어나는 것 같아서 본 거야!"
"치즈는 원래 늘어나잖아?
"나도 알고있어!"
도베르는 속이 타들어 갔다.
평소라면 남성의 시선조차 피하느라 급급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그가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아 안달이 난 상태였다.
일부러 소파에 앉을 때 그의 팔에 살짝 스치듯 앉아보기도 했지만, 트레이너의 반응은 절망적이었다.
"도베르, 혹시 많이 추워? 보일러 좀 더 올릴까? 아니면 내 담요라도 빌려줄까?"
"아니, 됐어! 하나도 안 추우니까 신경 꺼!"
도베르는
홧김에 코코아를 벌컥 들이켰다.
분명 브라이트는 "남자는 시각과 분위기에 약하다"고 단언했건만, 눈앞의 남자는 그녀의 과감한 드레스보다 피자 식는 속도를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 속에서도, 둘이서 나란히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 자체가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괜찮을지도.'
도베르는 산타 드레스 위에 걸친 케이프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화려한 스퍼트를 보여주겠다며 큰소리쳤던 각오가 무색하게, 지금 이 정적과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안도감이 의외로 달콤했다
오후 11시.
테이블 위에는 절반쯤 먹다 남은 딸기 케이크와 다 식어버린 코코아가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함박눈이 더욱 굵어져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고 있었고, TV에서는 나지막하게 고전 캐럴이 흘러나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었다.
"후우..."
도베르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옆자리의 트레이너를 훔쳐봤다.
그의 옆얼굴, 피곤하지만 인자한 눈매. 이대로 조용히 시간이 흘러 자정이 되면, 오늘은 꽤 괜찮은 크리스마스 이브로 기억될 것 같았다.
더 큰 진전은 없더라도, 적어도 '둘만의 특별한 밤'이었다는 추억 하나는 남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도베르의 소박한 평화는 단 한 번의 진동으로 깨지고 말았다.
정적을 깨고 테이블 위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트레이너가 화면을 확인하더니 눈썹을 살짝 움찔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 팀 시니어 선배네. 이 시간에 웬일이지? 잠시만 실례할게, 도베르."
그가 전화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
도베르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 11시. 업무적인 용건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늦은 시간이다.
둔감한 트레이너는 아무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선배! 메리 크리스마스. 네? 아, 그 건 말이네요?"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의 높은 웃음소리.
"트레이너 씨는 오늘 뭐 해요? 설마 혼자 궁상떨고 있는 거 아니죠? 심심하면 제가 와인 한 병 들고 갈까요?"라는 농담 섞인 목소리가 도베르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그 목소리에는 동료라는 껍데기를 쓴 은밀한 호의가 가득 실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평온함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가슴 속에서 뜨겁고 끈적한 질투심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일주일간 남몰래 거울을 보며 얼굴을 붉혔던 시간들, "기분 나빠"라는 말 대신 "좋아해"를 전하기 위해 연습했던 문장들, 그리고 큰 용기를 내어 입고 온 이 과감한 옷까지.
그 모든 노력이 고작 이름 모를 '여자 동료'의 가벼운 전화 한 통에 희석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그게 사실 지금ㅡ"
트레이너가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확—!
도베르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트레이너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그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채 그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강하게 눌러버렸다.
"도베르? 갑자기 무슨—"
"시끄러워. 듣기 싫으니까."
도베르는 스마트폰을 소파 구석으로 던져버리고는, 그대로 트레이너의 양어깨를 밀쳐 소파에 눕히듯 강하게 몰아붙였다.
산타 드레스의 어깨끈이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려 하얀 어깨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도베르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돼?"
"도, 도베르...? 갑자기 왜 이러는ㅡ"
"내가 오늘 이 옷을 왜 입었는지, 왜 친구들 파티까지 빠지고 네 자취방까지 찾아왔는지...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면서 날 놀리는 거야?!"
도베르가 그의 넥타이를 거칠게 움켜쥐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트레이너의 입술에 닿았다.
억눌러왔던 질투심은 그녀에게서 마지막 남은 망설임이라는 브레이크마저 고장 내 버렸다.
"여자 동료? 업무? 그런 건 내일이나 해. 오늘 밤 네 시간은 1초도 빠짐없이 내가 다 내거니까. 누구한테도 안 나눠줘."
도베르는 그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평소의 까칠함은 온데간데없는,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비장하고도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네 앞에 있는 건 네 담당 우마무스메가 아니야. 그냥 너를 갖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여자라고. 내 말, 이제야 좀 알아듣겠어?"
마침내 모든 마음을 다한 도베르의 고백.
트레이너는 가슴 위에 얹어진 그녀의 가느다란 손에서 전해지는 미친 듯한 고동에 압도되어,아무런 말도 못한 채 눈앞의 소녀의 깊은 눈동자 속으로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자정.
그렇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 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정을 알리는 TV 속 소리가 들렸지만, 방 안을 채운 건 그보다 훨씬 선명한 두 사람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도베르는 자신의 입술에서 나간 말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순간,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해버렸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나 숨기려 했던, 아니, 평생을 숨기며 살아왔던 가장 깊은 속마음을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쏟아낸 것이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힘을 줘 움켜쥐고 있던 그의 넥타이에서 서서히 손의 힘이 풀렸다.
방금 전까지 뿜어내던 압도적인 기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시금 소심하고 겁 많은 메지로 도베르가 고개를 들려 했다.
"아... 저기... 이건..."
도베르가 당황하며 그의 몸 위에서 급하게 물러나려 했다.
"가, 갑자기 이상한 소릴 했지..!? 이건 그, 그니까 그런게 아니라..!"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두꺼운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
"어...?"
도베르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트레이너의 눈빛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황스러움과 둔함의 안개는 걷히고, 그 자리에는 그녀가 던진 진심을 마침내 정면으로 받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미안해. 나 정말 바보였지?"
트레이너가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다시 그의 품 가까이 다가온 도베르의 이마에, 그의 따뜻한 숨결이 닿았다.
"네가 매번 나를 보며 얼굴을 붉히거나, 가끔 날카롭게 굴 때마다... 나는 그게 네가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어. 너는 대단한 아가씨고, 나는 그저 네 트레이너일 뿐이니까. 네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할 거라곤 정말 꿈에도 몰랐어."
"트, 트레이너..."
"그런데 오늘 네가 이렇게 전력으로 부딪쳐 오니까, 이제야 알 것 같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눈치가 없었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네 반응 하나하나에 안절부절못했었는지도. 도베르, 나 이제야 내 마음을 알 것 같아."
그가 도베르의 흘러내린 드레스 어깨끈을 조심스럽게 올려주며,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도베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도 너를 좋아해, 도베르. 담당 우마무스메로서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서 떨고 있는 한 명의 여자로서. 너무 늦게 깨달아서 미안해."
트레이너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도베르는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기분 나빠"라며 도망쳤을 그 짧은 거리.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창밖의 눈은 여전히 고요히 내리고 있었고, 방 안의 두 사람에게는 그 어떤 화려한 파티보다도 뜨겁고 달콤한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6시.
메지로 본가 자율 토론실.
어둑해진 저택의 복도 끝, 자율 토론실에서 라이언과 브라이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앞에 두고,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각까지 나타나지 않는 '오늘의 주인공'에 대해 한창 수다를 떨던 참이었다.
드르륵ㅡ
육중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도베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호와아~ 도베르 씨? 생각보다 많이 늦으셨네요~?"
브라이트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녀의 입가에는 모든 상황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얄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라이언 역시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도베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러게. 어제 분위기 보니까 그대로 도망가 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다니까?"
"읏... 시끄러워, 브라이트! 어제 그 거짓말... 진짜 평생 안 잊을 거니까!"
도베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평소의 날카로운 독설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운이 빠진 듯하면서도 한없이 후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서는 어제까지의 무거운 망설임 대신,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고마워. 둘 다. 너희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아직도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을 거야."
도베르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솔직한 감사 인사에, 방 안에는 잠시 따뜻한 정적이 감돌았다.
"호와? 호와아~?"
"오호...? 이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 모양인데? 아무튼, 진심으로 축하해! 도베르!"
라이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베르에게 다가가 품에 꽉 안아주며 제 일처럼 기뻐했고, 브라이트도 평소보다 조금 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소녀는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으며 도베르의 '승리'를 축하했다.
하지만 감동적인 분위기도 잠시, 브라이트가 장난기 어린 눈을 빛내며 도베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어떠셨나요~?"
"뭐?"
"무,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브라이트!!!"
도베르의 비명이 자율 토론실을 가득 채웠다.
다시 시작된 브라이트의 능청스러운 추궁과 도베르의 새빨개진 얼굴, 그리고 라이언의 웃음 소리.
크리스마스 저택의 구석진 방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율 토론실의 불이 꺼지고, 모두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시간. 브라이트는 홀로 복도를 걸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메지로 브라이트입니다~"
"응, 브라이트. 내가 도움이 됐을까?"
수화기 너머로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다행히도 언니께서 좋은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주신 덕분에 잘된 것 같답니다~"
"후후, 다행이네. 내가 한 건 전화기 너머로 연기를 조금 한 것뿐이지만 말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직접 전해드릴게요~ 아르당 언니."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도베르의 스퍼트가 성공했다니 나도 기쁘네."
어제 저녁 8시, 브라이트가 "서류 문제가 생겼다"며 도베르를 혼자 보낼 수 있게 했던 가짜 전화.
그리고 밤 11시, 만족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안주하려던 도베르의 질투심을 폭발시켰던 그 '여성 동료'의 전화.
그 모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도베르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등을 밀어줄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브라이트의 요청에 아르당이 기꺼이 응했던 것이다.
브라이트는 밤하늘의 눈꽃을 보며 나른하게 미소 지었다.
"연애라는 건~ 혼자 달리는 레이스가 아니니까요~"
메지로 가의 자매들이 치밀하게 짜놓은 완벽한 시나리오 위에서, 도베르의 스퍼트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월 ?일, 오후 ?시.
메지로 본가 저택 정원.
부드러운 햇살이 정원의 꽃잎 위로 내려앉는 오후. 정갈하게 가꾸어진 테이블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도베르는, 멀리서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도베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한 것이와요."
평소 메지로의 품격 그 자체라고 불리는 그녀였지만, 지금의 맥퀸은 어딘가 초조한 듯 보였다. 소중하게 쥔 찻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맥퀸, 무슨일이야? 갑자기 상담할 게 있다니."
"후우... 그게 말이죠. 제 트레이너 씨와 관련된 일이랍니다."
"설마 그거... 연애 관련 상담..?"
"...!? 어떻게 아신 것이와요?!"
도베르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맥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평소의 당당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수줍은 소녀의 모습만이 남았다.
"아, 아니 저는 그저... 트레이너 씨의 건강 관리에 대해 의논하려고..!"
"맥퀸, 내 눈은 못 속여. 나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으니까."
도베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년 전, 자신이 라이언과 브라이트 앞에서 당황해하던 모습이 맥퀸에게 겹쳐 보였다.
이제는 자신이 그 '스퍼트'를 도와줄 차례였다.
"후훗, 일단 자리 좀 옮길까?"
새로운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듯, 저택의 복도에는 두 우마무스메의 발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