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당신을 좋아합니다. 사귀어주세요"
나는 깊이 고개를 숙이면서 그렇게 간청한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얼굴은 뜨거워진다
목소리도 떨리고 깨물 것 같은 걸 어떻게든 참는다
"아즈사......"
내가 고백한 상대―――선생님이 묘한 목소리를 낸다. 나는 무서워서 숙인 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갖가지 혹독한 훈련을 뚫고 나온 내가 두려움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날 방과 후 시각은 16시가 넘었고 해는 기울어 가고 있다
나는 트리니티 종합학원 건물 뒤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선생님을 불러냈다
원래대로라면 내 사정으로 불러내는 거니까 내가 샬레로 가야 하는데 역시 고백하자면 저녁 교사 뒤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예습을 위해 읽은 두 소녀만화에서도 그랬으니 이게 맞는 거겠지
이 자리에 임하기 전까지는 밑져야 본전이고,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천해보니 왜 행동으로 옮겨버렸느냐고 심장박동이 호소한다
새삼스럽게 '마음이 너무 서둘렀다'거나 '조금 더 친해지고 나서'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얘기겠지
예전의 나라면 그런 시답잖은 일이 있을까, 하고 일소에 부쳤겠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되어 버릴 줄은 몰랐다
내가 뜻을 밝힌 지 얼마나 됐을까? 5분? 10분? 혹은 1시간? 거절한다면 빨리 거절하고 끝내달라고, 불합리한 분노를 품고 만다
선생님은 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 변명을 생각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거절당한다는 전제하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잖아? 보통 여자아이처럼 꾸밀 줄도 모르고, 화제도 어딘가 어긋난 것들뿐. 자신도 그런 것쯤은 눈치채고 있다
"아즈사"
심판의 때가 왔다. 적어도 울지 말자. 선생님이 곤란해하지 않도록
나는 마음을 굳게 먹는다. 분명 얼굴은 긴장과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참는 바람에 실로 귀엽지 않게 되어버렸겠지
"아즈사, 용기내어 고백해줘서 고마워"
이는 거절할 때의 단골 문구다. 이후에는, 마음은 고맙지만, 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연애 만화로 예습이 끝났다
눈치챘을땐 이미 한방울, 또 한방울 눈물이 쏟아진다
입술을 핏기가 없어질 정도로 깨물고 참으려 하지만 한번 분출된 감정의 격류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 미안했다. 나같이 귀엽지도 않은 여자에게 고백받아봤자 민폐였겠지..."
나는 서둘러 말하며 등을 돌린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분명 오늘 밤은 베개를 눈물로 적셔 잠 못 이루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발 빠르게 떠나려다 선생님에게 팔을 잡혀 제지당했다
"아즈사, 기다려.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싫어!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마치 아이가 떼쓰듯 외친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약해져 버렸을까? 얼음마녀라고 불리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바로 대답 해주는 게 좋았으려나. 하지만 아주 놀라서 말이야. 괜히 말을 꾸며내는 건 좋지 않네"
선생님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고르듯이 천천히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도 아즈사를 좋아해. 저야말로 교제를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비유도 무엇도 아닌 세상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맥박이 더 빨라진다. 그리고 눈물이 주렁주렁 흘러내린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결코 싫은 마음이 아니다. 마치 골짜기 바닥으로 떨어진 뒤 하늘 높이 솟은 기분이다
나는 정면으로 돌아서서 눈물로 그렁그렁한 얼굴을 든다
"나 같은 걸로... 괜찮은가...? 스스로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귀엽지도 않다고?"
"그렇지 않아. 웃는 얼굴이 귀엽고, 어떤일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아즈사가 멋있어. 무엇보다 아즈사니까 받아들인 거야. 고백해 온 여자애들 모두의 고백을 받아들일 만큼 지조 없지 않아, 나는"
선생님은 떨리는 나를 끌어당겨 그렇게 말하면서 껴안는다. 그러면 내 귀가 마침 선생님 가슴 근처에 오기 때문에 맞대본다
고동은 내 것보다 더 강하게 맥박이 뛰고 있었고 선생님도 긴장하고 있었다.
아까는 직시하지 못했던 얼굴도 안긴 채로 올려다보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걸 알게 되니 뭔가 이상해져 버렸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웃고 있다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선생님, 고마워...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 이쪽에서도 선생님의 등에 손을 올린다. 선생님이 괴롭지 않도록, 하지만 최대한 강하게
"나야말로. 나도 정말 좋아해, 아즈사"
선생님도 나를 더 강하게 끌어 안는다. 다만 생각보다 힘은 약하다
마치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런거라면 난 망가지지 않는데
나는 침대 위에서 스컬맨 인형을 끌어안으며 천장을 바라본다.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생님과의 첫 번째 ... 데... 데이트의 날...
11시 30분에 역 앞에 모여서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고 윈도쇼핑을 하고 해산할 예정이고 선생님에게도 사전에 공유하고 있다
선생님이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내 독단으로 결정을 내렸다
나도 처음이지만 소녀만화로 몇 번이나 예습했기 때문에 괜찮겠지
내일 입고 갈 교복을 다림질하고 주름도 잡고 필요한 것을 가방에 채운 것을 열 번 이상 확인했다.
사실은 사복으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히후미에게 보여 주었더니, 쓴웃음을 지으면서, 제복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들어버렸다...
기능성도 있고, 멋있는데... 길리슈트...
하지만 나보다 제대로 된 여자아이인 히후미가 말했다면 그럴 것이다
나는 귀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히후미는 귀여워. 이것만은 틀림없다
뭐, 그런 말을 하면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깎아내리는 것은 그만둬』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선생님에게 슬픈 듯한, 조금 무서운 얼굴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고 부끄러워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하아...... 슬슬 자야겠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중얼거림을 한 뒤 방에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대로 눈을 감지만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와 웃어주는 얼굴
분명 내일 데이트에서는 더 멋진 미소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 너무 즐거워서 눈이 떠진다
교제 전의 나라면 수면은 할 수 있을 때 취해 둔다는 게 모토였기에 금방 잠이 들었지만
요즘은 선생님 생각만 하면 괴로워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니, 이러면 안 돼. 내일 데이트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라도 컨디션은 만전을 기해 둬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꼭 감고 뒤척여도 점점 눈이 또렷해진다. 잠들지 않으면, 잠들지 않으면......
삐비비빅 삐비비빅
귓가에 울리는 알람 소리를 알아차린다. 밤 11시 전에 이불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할 때는 아침 6시였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면서 시계를 보면 오전 10시. 11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으니
이 이상 늦게 일어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늦게되는 최후통첩의 시간이었다
나는 싸악―하고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벌떡 일어난다
그대로 여기저기 몸을 부딪치면서 세면대로 향해 서둘러 세안을 한다
거울을 보고 내가 뒤척임이 심한 잠버릇이 있다는 것에 짜증 내며 이를 바로잡으면서 양치질 한다
그러다 모모프렌즈의 핑크 잠옷을 난잡하게 벗어 던지고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거기까지 끝내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사실은 하나코가 가르쳐 준 화장 같은 걸 하고 멋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러기는커녕 뛰지 않으면 시간에 맞출 수 없을 정도다
나는 가방을 움켜쥐고 서둘러 집을 뛰쳐나간다
최악이다, 최악. 어떻게든 시간에 맞출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여유 없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알람도 그런 일은 없겠지 하고 반농담으로 걸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알람으로 기상하는 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시간에 허술하게 됐지?
뛰면서 그렇게 자책한다. 이전의 나라면 시간에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 그러기는커녕 30분 전에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뭔가? 즐거워서 잠을 설치고 지각 직전이 된다는 건 초등학생이나 할법한 일 아닌가
아니... 그런 반성회는 나중이다. 지금은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최우선. 우선순위를 잘못 파악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달리는 걸음을 한층 재촉한다. 지각만은 어떻게든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헐떡거리며 집합장소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은 11시 25분이므로, 어떻게든 5분 전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변을 신경쓸 새 없이 달려오는 바람에 없는 시간을 내서 겨우 손질한 머리는 부스스해지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떨어져 끈적해져 있다
모처럼 다림질한 교복도 땀과 흙먼지로 얼룩져 있어 보기에도 끔찍하다
"아즈사, 괜찮아...?"
어깨로 숨 쉬며 무릎에 손을 대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넨다.
달라,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확실히, 기다렸어? 방금 온 참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히로인은 이렇게 피로할 리가 없어
"미안... 즐거워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늦잠을 자버렸어... 정말 미안해......"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순간 첫수부터 실패하고 만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눈물이 쏟아진다
"괜찮아. 시간에는 늦지 않았고, 그만큼 나와의 데이트를 기대해줘서 기뻐. 자아, 모처럼의 데이트니까 웃어줬으면 좋겠어"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난잡하게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어 미소 짓는다. 조금 어색하지만, 억지로라도 웃는 게 기분도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고
"그 기세야. 아즈사에게는 웃는 얼굴이 제일 잘 어울려. 내가 보증할게"
"후후, 고마워... 선생님"
"자, 그럼 당장 어딘가 들어갈까. 가게는 정해져 있어?"
가게... 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앞이라면 얼마든지 선택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가까워 슬슬 어느 가게든 붐비기 시작했고,
지금부터 찾아 결정하다 보면 대기시간이 발생해 영화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해... 나...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가. 그럼, 기다리는 동안 맛있을 것 같은 파스타 가게를 찾아뒀는데, 거기로 갈래?"
"아, 아아... 문제없어"
나는 반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파스타는 좋아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거부권은 없다
선생님은 그 대답에 빙그레 웃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기가 죽었다. 늦잠을 자는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다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자기가 계획한 데이트 플랜이었는데
다음은 없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임무라면 한 번의 실패가 생사에 관계되니까
"...사 ......아즈 ... 일어나......"
기분 좋게 졸고 있으려니 누군가 어깨를 들썩인다. 누구일까... 모처럼 선생님과 데이트를 하는 즐거운 꿈을 꾸고 있었는데...
"...... 아즈사... 일어나.... 영화, 끝났어"
영화... 영화...? 그 말이 머리에 울리는 순간, 확 깨어난다
맞아, 나는 오늘, 선생님과 데이트하러 와서...
눈을 뜨자 그곳은 환해진 극장 좌석이었다. 주변 관객은 이미 거의 없어졌고 우리가 마지막 남은 몇 조인 상황이었다
점심을 별 실수 없이 끝낸 나지만 수면 부족과 포만감에 따른 졸음으로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도 안돼 꿈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 나... 나는......"
"영화관에선 잠이 잘 오잖아. 게다가 어제 잠을 못잤으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잠든 아즈사는 엄청 귀여웠어"
선생님은 그렇게 위로해 주지만 나는 저지른 실패로 인해 머리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첫 데이트 극장에서 깊은 잠에 빠지다니, 연인으로서는 안 될 일이다...
얼마 전, 다음은 없다고 굳게 맹세했을 텐데...
"선생님 미안해... 이 실패는 이 목숨으로..."
"으아―! 어째서 그렇게 돼? 괜찮아, 한두 번의 실패쯤이야"
"하지만......"
"그럼, 내가 평소에 한심한 부분 많이 보여주는데 싫어졌어?"
"그렇지 않아! 난 그런 선생님도 정말 좋아해!"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고 역설한다. 그럴 리 없고, 설령 고문당한다고 해도 절대 싫어할 리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설령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아즈사를 싫어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약속할게. 그러니 그렇게 자신을 탓하지 마"
선생님은 나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감촉, 냄새, 온도... 어느 것이나 안심된다
"자 슬슬 폐가 되니까 나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몸을 뗀다. 나는 그 기분 좋은 온기가 떠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데이트는 끝이 아니야. 다음에 열심히 해서 만회하면 된다.
"좋아, 그럼 갈까?"
선생님은 대신 내 손을 꼭 잡는다 게다가 평범하게 잡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손가락끼리를 얽히게 하는 이른바 연인깍지 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