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삭으로 인한 명작 백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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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언제 어디서나 시스터로서의 책임을 다할 거 같음]
이렇게 많은 고해성사를 연달아 한 적은 처음이네요. 눈이 감기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부족함에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다음 분이 고해소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해주세요.”
“시스터 마리, 저는 선생님을 사모했습니다. 시스터로서 실격이에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잠이 한 번에 달아날 정도였어요.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늘 기적을 불러일으키셨죠. 그러니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당연해요. 그것이 시스터라고 할지라도.
“용서합니다.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때나마 품었던 불경한 마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이어갔어요.
“연구개발비로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용서합니다.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밀레니엄의 연구자이신가 봐요. “시스터후드에서 제공하는 무료무료 급식을 하루에 6끼나 먹었습니다······.”
“용서합니다.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무료 급식소에 찾아와주신 분이었나 봅니다.
“온천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전 키보토스에 폭탄 테러를 자행 했습니다······”
“용, 용서합니다.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게헨나 학원에서 오신 분인 걸까요······?
“시스터 마리, 방금이 마지막 분이었습니다.”
밤새 이어진 고해성사가 마무리되었어요. 이걸로 고해성사도 끝이네요. 고해소를 빠져나오자 트리니티, 게헨나, 밀레니엄 할 것 없이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다른 시스터들과 함께 부상자들의 처치를 돕는 중이었습니다. 성당의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시스터 한 분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달려오셨어요.
“시스터 마리······! 시스터 마리! 사쿠라코 님께서······. 사쿠라코 님께서······”.
아아, 결국 사쿠라코 님께서 실패하셨나 봅니다. 힘을 보태드려야 했는데. 비보에 성당 곳곳에서 웅성임과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가 가 촉촉해졌어요. 행여 누가 볼까봐 재빨리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자 사쿠라코 님이 보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보내오고 계셨어요. 제게 다가와 눈가를 닦아주셨습니다. 사쿠라코 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호를 긋고 뜬 눈 앞에는 다치고 지친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모두 '다음'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어요. 이것이 책임이라는 것일까요.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무어라도 해야 했습니다.
“시스터 히나타, 부상자들을 옮겨주세요. 뒷문으로 나가면 아직 시간이 있어요.”
“마리 씨는요?”
“저는 성당에 남겠습니다. 시스터후드의 누군가는 이곳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남겠어요. 마리 씨를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시스터 히나타의 얼굴은 완고해 보였습니다. 시스터 히나타는 심지가 곧고 성실하여 늘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죠. 이런 분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곁을 지켜준다면 무척이나 든든할 거예요.
“시스터 히나타. 아직 시스터 히나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손을 맞잡고 시스터 히나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어요.
“제 마지막, 부탁이랍니다.”
그 순간 그 눈에서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시스터 히나타를 울리고 말았네요. 시스터 히나타가 저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눈물의 촉촉함과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온기를 나눠준 시스터 히나타는 훌쩍이며 부상자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온기는 용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겠어요. 성당의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찬바람이 뺨을 베고 지나갔습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발을 내딛자 하얀 꽃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습니다. 멀리 시로코 씨가 보였어요. 벌써 도착했나 봐요. 왼손이 지나치게 떨리는 것 같네요. 오른손을 뻗어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시로코 씨가 천천히 다가와 총을 겨눴어요. 왼손의 힘을 풀었습니다. 툭-. 권총이 바닥에 떨어지자, 시로코 씨는 갸우뚱하며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이어서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양손을 모았어요.
“목숨이라도 구걸할 생각이라면 그만 둬.”
대답 대신, 저는 천천히 기도문을 외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얼 하고 있는 거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얼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요.”
“이 마당에 무슨 행복을 기도한다는 거야?”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하셨을 테니까요.”
“수작 부리지 마.”
시로코 씨가 험악한 얼굴로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읽을 수 있었어요. 그 눈동자 너머에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더 다른 이들을 살피고 돌보기 위해 노력했다면, 시로코 씨가 이런 선택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기도했습니다. 시로코 씨의 행복을 위해.
“그만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기도했습니다. 시로코 씨의 구원을 위해.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기도했습니다. 시로코 씨가 부디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악에서.”
시로코 씨는 울고 있었어요.
“구하소서.”
아픈 영혼을 어루만지소서.
“그만 하라고 했잖아!!”
총, 이네요. 탕-!. 아아, 잠시 휘청거렸지만, 다시 자세를 잡았습니다. 이마에 맞았나 봐요. 머리가 웅웅 하고 울립니다. 따뜻한 무언가가 얼굴을 적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닦아보았습니다. 아. 피네요. 시로코 씨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행복이니 용서니 전부 헛소리야.”
“분명 저 말고도 당신을 위해 기도할 사람이 있을 거예······”.
시로코 씨가 엄청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세요. 타타탕-!. 타타타탕-!. 아파요. 아무래도 팔과 어깨, 가슴, 배, 인 것 같습니다. 기도를 위해 양손을 모아야 하는데. 팔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네요. 무언가 폐를 찔렀나 봐요. 숨이 쌕쌕하고 잘 쉬어지지 않아요. 방금 가슴에 맞아서 부러진 갈비뼈 때문일까요. 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 올라왔습니다. 비릿한 쇠 맛이 났어요. 이것도 피 일까요? 시스터 히나타는, 성당의 사람들은 무사히 도망치셨을까요. 이것밖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 구원을······.”
이젠 말을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드네요. 시야가 좁아져요. 이런 때에 그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단 한번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선생님께서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까요? 저를 칭찬해주실까요? 저는 잘한 것일까요? 선생님께서 곁에 있어 주신다면, 두렵지 않을 거 같은데요. 믿음이 부족했나 봅니다. 무서워요. 시로코 씨가 다가왔습니다. 두려워요. 총구가 눈앞에 있어요. 솔직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가 남네요. 아. 선생님. 그곳에서는 선생님을.
“선······ 생······ 님······.”
탕-!.
탄피가 땅에 떨어지자,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수녀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보통은 뒤로 넘어졌을 텐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총격을 견디며 자세를 유지하는 집념만큼은 칭찬할 만했다. 열린 성당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자 유탄과 총격이 쏟아졌다. 거센 저항이었다. 유탄기관총이 거치되어 있던 것은 예상 밖이었다. 호시노 선배의 방패로 막으며 가까이 접근하니 유탄 세례가 멎었다. 주변의 피난민들이 휘말릴까봐 더는 유탄을 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수를 제압하고 나니 나머지는 수월했다. 어째서 도망치지 않은 걸까.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인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아무래도 좋았다. 노노미의 미니건을 쓰며 드론으로 미사일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피가 흩뿌려졌다. 온 성당이 피바다다. 도망친 녀석들도 머지않아 같은 운명을 맞겠지. 이걸로 세상은 멸망했다. 성당에서 빠져나오자 선생님이 보였다. 우두커니 서서 수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아는 학생이야?”
“······.”
앞으로 고꾸라진 수녀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어느새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를 했어. 구원이니, 행복이니. 날 위해서 기도한다면서”
“······.”
“선생님도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내가 해놓은 짓을 봐.”
툭 하고 건들자 수녀가 옆으로 쓰러졌다. 빛을 잃은 푸른색 눈은 미동이 없었다. 얼굴과 몸은 온통 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 기도라도 하는 거야?”
“······.”
수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생님을 대신해 두 눈을 감겨주었다. 선혈에 손이 더러워졌다. 눈바닥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하얀 눈 위로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자국이 남았다. 흡사 도화지 위에 물감을 칠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곤 이런 것뿐인가 봐. 선생님.”
손바닥의 핏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성당의 열린 문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듯 했다. 둘러본 주변에는 폐허가 가득했다. 어디선가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태껏 들어온 저주와 절규가 한 번에 귓가로 쏟아졌다. 업보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구원이라니, 전부 헛소리잖아.”
눈보라가 거세졌다. 수녀가 하얀 수의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이대로 모든 게 덮여서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발자국도, 핏자국도. 하지만 눈은 반드시 녹게 되어있다. 용서받을 수 없어. 언젠가 죗값을 치루는 날이 온다면, 나도 이 수녀처럼 외롭고 처참하게 죽어가지 않을까.
“구원이라고······.”
하얗게 새어버린 성당의 지붕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성당을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고. 입김이 피어올랐다.
*.
최근 성당에 섬뜩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매일 밤마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요. 유령이 틀림없다며 유탄기관총을 꺼내들려는 시스터 히나타를 간신히 말렸답니다. 대신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밤까지 남아 대성당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깊은 밤이 되니 정말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싹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도 모르게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다른 시스터들을 부르려던 찰나, 성당 의자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등이 보였습니다. 역시 유령이 아니라 기도하는 분이었나 봅니다. 잠시 불경한 마음을 품었던 저를 질책하며, 그분께 다가갔어요. 회색 머리와 귀가 인상적인 분이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분이세요. 아비도스 학원의 시로코 씨랑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혹시 언니인 걸까요? 말없이 옆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 드렸어요. 잠잠해질 즈음에,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여기, 손수건이에요.”
“고마-”.
순간 눈이 마주쳤습니다. 놀란 것 같았습니다. 손수건을 잡은 손을 놓지도 않고 입을 벌린 채로 그분은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너, 너, 너는-”.
저를 아시는 걸까요? 꽤 격한 반응 인 것 같아요.
“저희 만난 적이 있었나요? 혹시 기억하지 못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 아, 아, 아아-”. 그분의 얼굴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빛에서 많은 아픔이 보였습니다. 이윽고 그분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아까보다 더 서럽고, 더 아프게.
“미안해. 미안해요. 미안해······. 잘못했어요······.”
한참동안 미안하다는 외침과 울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무엇이 이 분을 이토록 아프게 만들었을까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나 구슬픈 음성으로 용서를 갈구하고 계신 걸까요? 오열과 절규를 듣고 있자니, 제 눈가도 촉촉해졌습니다. 도움이 되어드려야 해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고해성사, 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습니다. 두려움이 많은 분인가 봐요. 온기를 나누어 드려야겠어요. 손을 맞잡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게 의지해 주셔도 괜찮으니까요. 제가 당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물론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도할게요. 선생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하실 테니까요.
“저는 이오치 마리 , 시스터랍니다.”
오늘 밤의 고해성사는 길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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