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애용하는 접이식 우산을 가방에서 꺼내며 코하루는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맣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어두운 구름은 하늘에 있어야할 태양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빗방울은 주륵주륵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를 두드렸고, 그 고르지 못한 불규칙한 리듬에 코하루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오늘은 모처럼 선생님을 만나는 날인데..."
기뻐야 할 일이 비 때문에 우울하게 느껴진다. 코하루가 특별히 비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오늘이라는 날에 내리는 이 비는 최악이었다. 모처럼 곱게 다듬은 머리는 습기로 흐트러지고 입은 옷도 비 때문에 젖어 엉망이 된다. 옅게 칠한 메이크업도 아무리 워터프루프라 하지만 조금은 지워지고. 한 명의 여자아이로서 이 비를 원망하는 마음은 나름대로 있다.
선생님을 만날 때는, 모처럼이라면 보다 제대로 된 예쁜 자신으로 있고 싶다고 코하루는 생각한다. 평소보다 귀여운 자신을, 평소보다 예쁜 자신을, 선생님이 봤으면 좋겠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코하루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선생님이 지금까지 코하루가 접해본 적 없는 『어른』이라서일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보충수업부로 낙제 위기에 처한 코하루를 친구와 함께 도와줘서일까, 아니면 선생님이 코하루에게 처음으로 가까워진 『남자』이기 때문일까.
이유는 많이 있어 보였지만 그 어느 것과도 다른, 더 단순 명쾌한 단 하나의 답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을 만날때마다 그 의문은 코하루의 가슴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대답이 나올 기미는 전혀 없다. 누군가와 상의할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꺼림칙했고, 결국 코하루는 이 의문을 품에 안은 채였다.
"하아... 빨리 가야겠지..."
일단 이동해야겠다며 코하루는 꺼낸 접이식 우산을 펼쳤다. 심플한 검은색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의 우산에는 몇 개의 분홍색 꽃 일러스트가 그러져 있다. 아즈사에게 귀엽다, 갖고 싶다는 평판을 들었고, 이 우산은 코하루가 가진 것 중에서도 최고로 마음에 들었다. 훗날 아즈사와 같은 우산을 찾으러 갔지만 이미 생산이 끝나 아즈사가 충격에 빠진 것까지 포함해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그때 아즈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코하루는 약간 웃음이 지어지는 걸 느꼈다. 아쉽게도 같은 우산을 살 수는 없었지만, 그 후 둘이서 쇼핑몰을 산책하거나 소문의 신작 디저트를 먹으며 놀러 다닌 것은 코하루에게도 아즈사에게도 매우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다.
그런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비내림의 우울함도 조금은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다. 불평해도 비는 그치지 않으니까.
약속 시간 전에 샬레에 가야겠다는 각오로 코하루는 물방울이 튀는 아스팔트위로 한 발 내디뎠다.
◆
샬레의 당번 혹은 도우미는 대개 몇 주에 한 번이다.
집무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왠지 『재미없다』고 코하루는 한숨을 내쉰다.
당초에 비해 나름의 인원이 소속되게 된 샬레는 여유가 생겼는지 최근에는 당번이 돌아올 기회가 줄었다.
당번이 줄어드는 것은 편하고 다행이지만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쉬웠다.
개중에는 자유롭게 샬레를 찾는 학생도 있는 듯 하지만 코하루는 그다지 그런 학생들에게 섞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자주 다니는 것은 왠지 이상한 오해를 낳게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은 속이 검은 남자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몇 번이나 찾아갔다가 부정한 마음을 품게 해버릴 수는 없으니까―――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코하루의 겉마음으로 실제로는 부끄럽다든가, 쑥스럽다든가, 그러한 감정이 더 크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고, 코하루 자신은 자신의 마음 속을 모르겠다고 느낀다.
그런 뒤죽박죽한 내면의 고민이라든가, 오늘 내리는 비에 대한 불만이 뒤섞여 도달한 결론이 『재미없다』였다.
선생님이라면 이 감정도 잘 풀어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집무실 문을 두드린다.
"선생님. 왔어."
호소하지만 답은 없다. 확인해보니 도착 몇 분 전에 보낸 모모톡도 읽지 않았다. 뭔가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건드리자 그것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열렸다.
"어라? 열려있네... 선생님, 들어간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실내로 살며시 들어간다.
만일을 대비해 총을 꺼내는 걸 잊지 않고 ――― 실내로 들어간 코하루는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려놓았다.
선생님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조용한 숨소리와 함께 가슴이 조금씩 오르내린다.
모처럼 선생님과 만나는 날인데 잠들어 버리다니, 라며 『재미없음』을 더욱 부풀리며 코하루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말을 걸면 일어나려나 싶어서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았지만 깨우지 않고 옆 소파에 앉는다.
선생님의 잠자는 얼굴은 눈 밑 다크서클이 꽤 눈에 띄었다.
지난번 에덴 조약에 관한 일련의 사건이 끝난 이후 선생님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것은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게헨나, 트리니티, 아리우스. 여러 사람의 음모와 애증으로 얼룩진 감정에 의해 야기된 그 사건은 상당히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코하루도 일단 당사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단 당사자인 코하루조차 그렇게 심적 고민이나 고통이 컸었던 사건인데, 한참 더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선생님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분명 며칠 동안 거의 자지도 않고 움직였겠지. 그렇다면 모처럼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좋지 못한 일이라고 코하루는 스스로 결론짓는다.
선생님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최근 학원 일이라든가, 지난번 아즈사와 둘이서 외출한 일이라든가, 오늘 비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다만 그것도 선생님님에게 오랜만일 휴식을 방해할 만한 화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만약 방해에 이르게 된다고 하더라도 코하루 자신이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코하루는 멍하니 선생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다크서클은 심하지만 피부 혈색은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분명 도우미 학생 중 누군가가 억지로 식사를 섭취하게 했거나 요리를 만들어 놓기라도 하고 있을 거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도 코하루는 가슴속에 아련한 무언가를 느꼈다. 자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코하루와 단둘이 있어야 할 선생님에게 코하루 이외 다른 학생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이 왠지 좀 싫다는 생각에. 코하루의 당번이 아닌 날에는 다른 학생이 당번에 와 있는 셈이니 그런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텐데도. 역시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재미없음』의 일종일까 하고 코하루는 왠지 납득하고 작게 신음한다.
어째서 선생님을 만날 때는 멋을 내려고 하는걸까
어째서 샬레 당번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든 게 아쉬울까
어째서 선생님에게 다른 학생의 흔적을 느끼면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재미없음』을 느끼는 걸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코하루 안에서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장은 비 때문인지 평소보다 어두워 보였고, 코하루의 마음속도 그와 비슷한 어두운 색을 띠는 듯 했다.
여전히 선생님은 규칙적인 호흡으로 잠들어 있고 호흡소리만이 조용한 집무실 안에 울리고 있다.
"내 고민은 전부 선생님 때문인데..."
올려다본 얼굴을 움직여 선생님 쪽으로 다시 한 번 시선을 옮긴다.
코하루의 고민 따위는 당연히 알리 없고, 선생님은 그저 잠들어 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코하루에게 선생님을 깨울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조금은 일어나는 내색 정도는 해도 좋을 텐데, 라는 마음도 들었다.
스스로도 제멋대로인 말을 하고 있다는걸 자각하면서, 선생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문득 선생님은 의외로 속눈썹이 길다는걸 느꼈다. 뭔가 한 가지 그런 것을 발견하자 다른 것도 없으려나 하고 눈이 제멋대로 선생님의 잠든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손질할 틈이 없는지 전에 있을 때보다 길어진 머리는 정수리 근처에 불쑥 외줄 안테나가 떠 있었다. 눈썹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늘 또렷한 인상의 눈매는 자는 중이라 그런지 다소 누그러져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는 멋있게 느껴지지만... 지금은 조금 귀여울, 지도...?"
그렇게 여기저기 시선을 움직이다 어느 한 점 ――― 선생님의 입술에 코하루의 시선이 멈추었다.
까칠까칠해 보이는 입술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느새 코하루는 앉아 있던 소파에서 내려와 선생님 얼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무심코 선생님의 입술에 살짝 오른손 검지를 대고 의외로 단단하다는 감상을 품는다.
선생님의 입술에서 뗀 검지를 눈앞까지 가져와 빤히 본다. 몇 초, 그것을 바라보더니 코하루는 슬며시 그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눌렀다.
선생님의 것보다 부드러울지도 모른다는 감상을 담담하게 품고 ―― 갑작스레 제정신이 돌아온다.
"에, 아, 어라, 나, 뭐, 뭘...!?"
자신의 행동을 자각한 순간 코하루의 얼굴에 열기가 모인다.
심장 박동이 급격히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코하루는 어떻게든 비명을 지를지 않으려고 자신의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이 빙빙 도는 것 같다. 사고회로가 혼란스럽다. 하여간 『어째서?』라는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엉망인 사고와 마음을 어떻게든 한쪽으로 치우고 선생님 쪽으로 돌아선다. 여전히 일어날 기색은 없다. 그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 코하루의 시선은 점점 그 입술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지금 건, 가, 간접, 키스...!)
자신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해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입술을 쳐다보고, 만지고, 그렇게.
"―――좋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생각해 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야한 사고회로인 걸까, 이것도 전부 선생님이 잠들어 있는 탓이야 ―― 라니, 한참 어긋난 변명조차 되지 못할 무언가를 마음속에서 엉망으로 펼치더니 하지만 싫지 않았었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에 이르고 만다.
한번 그렇게 생각해 버리자 코하루의 사고는 이제 점점 더 아까의 행위를 긍정하려고 기울어져 버렸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깔끔하게 이어주는 『결론』을 코하루는 마침내 발견하고 말았다.
"아, 아닌걸...!"
차례차례 떠오르는 생각에 붕붕 고개를 저으며 눈치채 버린 『결론』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 나는...."
그러나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결론』은 명확한 답이 되어 형태를 만들고 부정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코하루에게 속삭인다.
그러니 그 말을 해버리면, 전부 변해 버리는 걸 알고 있는데 ―――
"나는... 나는, 선생님을, 좋아, 하는구나..."
선생님을 만날 때 멋을 내려고 하는 것도
샬레 당번이 줄어든 게 아쉬운 것도
선생님에게서 다른 학생의 흔적을 느끼면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이렇게나 『재미없다』라고 느끼는 지도.
전부 코하루가 선생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알아버렸다. 눈치채고 말았다.
입 밖에 내버리고, 점점 그렇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좋아. 나는 선생님이 좋아. 정말 좋아, 그런 거였어."
넘쳐흐르는 감정에는 뚜껑이 없고 곧 눈물이 되어 시야를 번지게 만들었다.
눈물과 함께 코하루 안의 연심도 흘러가는 것 같아 코하루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닦는다.
한 방울도 흘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감정 전부를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있는 선생님이 좋아.
상냥한 선생님이 좋아.
코하루를 버려두지 않는 선생님이 좋아.
코하루를 소중히하는 선생님이 좋아.
조금 칠칠치 못한 점도 좋아.
야한 부분이 있어도 좋아.
목소리가 좋아.
눈동자가 좋아.
팔이, 다리가, 목도, 이제 어디든 전부 좋아.
좋아하고좋아하고좋아하고, 정말 좋아.
넘쳐나는 감정이 기뻤다. 따뜻하다고 느꼈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선생님은 자고 있다. 코하루가 있는 것도 분명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자고 있다. 입술에 닿았을 때 손가락의 감촉이 떠올라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키스,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말로 꺼내고 나서야 이 얼마나 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라고 느꼈다.
빗소리와 선생님의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방. 방과 후, 둘만의 시간. 『그런』 분위기란 이런 걸까 하고 코하루는 생각한다.
야한 건 안 돼. 야한 건 금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왔던 그 말.
"오늘만은 금지가 아니니까... 그렇지?"
변명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코하루는 천천히 선생님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옮긴다.
몇 센티미터의 거리를 메우는 것은 찰나, 닿은 입술은 역시 조금 단단하다고 느꼈다.
맞닿은 것은 3초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코하루는 가까워졌을 때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얼굴을 뗀다.
"...달콤, 할지도?"
자신의 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며 코하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첫 키스는 레몬맛. 그 통설이 거짓이라는 건 분명해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선생님과 키스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닿은 입술에서 포근하고 충만한 따스함이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고 기쁨과 사랑스러운, 수많은 행복이 온몸을 채워간다.
키스란건 대단하구나, 라고 실감하며 코하루는 뺨을 누른다.
왠지 근질거림이 멈추지 않게 되어, 지금 당장 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달리기 위해 코하루는 행복에 휩싸인 채 집무실을 홀로 뛰쳐나온다.
밖의 비는 여전했다.
굵은 빗방울을 맞는 것도, 웅덩이를 밟는 것도 개의치 않고 코하루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간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흠뻑 젖고 화장이 지워져도 지금은 괜찮다.
세계가 빛나는 걸 느낀다. 가로등 불빛이 빗방울을 통과해 보석처럼 반짝였고, 그것은 코하루의 분홍색 눈동자 속에서 작고 코하루에게만 보이는 무지개를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쾌하게 느껴졌던 빗소리도 이제는 코하루를 축복하는 노래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온 하늘의 반짝임에 싸여 있다고 느꼈다.
사랑을 하게되면 사람은 변한다고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은 세상 쪽이라는 걸 코하루는 그때 알게 됐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5154132
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7659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