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플레이 하면서 일본인들도 젊은 사람들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음.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는 일본의 과거 통속 소설에서 흔히 보이던 젊은 사무라이와 유녀 사이의 연애담의 연장이라고 생각함
물론 이 게임에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쪽은 남주가 아닌 여주 쪽이란 점에서 약간의 변용이 있지만
결국 구도는 서로 맞지 않는 신분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 다음 절절한 사랑을 이어가지만
세상의 관습과 남들의 시선이란 벽에 부딪히고 고난을 겪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위 연애담과 같다는 거.
그런데 왜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냐 하면 이 게임의 엔딩에는 남주와 여주가 같이 자살하는 엔딩이 없는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과거 일본의 통속 소설에서는 멀리 에도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1970년대,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관습과 시선에 부딪힌 남녀가
자신들의 사랑을 저지당한 끝에 같이 자살함으로써 파국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많았음.
둘이서 자살한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살아있었을 적에 보여줬다면 참 좋았을터인 관용과 이해를 보이면서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들의 절절한 모습을 추억함.
그런데 본 이야기에서는 이전 관계를 정리하고 새출발하는 두 사람, 사회적 지위와 관계는 유지하면서 사랑도 챙기는 여주의 모습(뻐꾸기든 섹파든),
관계를 정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있어도 세상에 굴복하여 삶을 끝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음.
그래서 내가 든 생각은 일본 사람들의 경우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갈등이 심하겠구나였음.
보통 세대 갈등의 양상을 보면 각 세대가 공유하는 요소가 달라서 생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함.
어떤 세대는 대학교 때 당구치는게 국룰이었다면, 어떤 세대는 PC방에서 스타 즐기는게 국룰이고, 어떤 세대는 롤을 즐기는게 국룰이며
어떤 세대는 아예 PC방을 안가고 스마트폰으로 게임 돌리는게 국룰임.
즉,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성취하는 놀이를 즐긴다는 원리는 같지만, 그 요소는 각 세대의 미디어와 기술 접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공유하는 컨텍스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봄.
그런데 일본의 경우 1970, 80년대까지도 연인이 사회적 제약과 관습,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못넘고 자살하는 스토리가 개연성을 인정받았는데
2020년대에는 아예 선택지조차 아니며, 남주건 여주건 위와 같은 사회적 제약, 관습, 시선보다는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가장 중시한 선택을
하고, 그게 오히려 개연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짐.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최소한 본 게임을 플레이하는 세대의 경우, 1970, 80년대의 버블 시대를 보낸 세대에 비하여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훨씬 중시하는
행동방식을 취하기에 가능한 변화라고 봄.
이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행동 원리에 있어서 일본의 구세대 보다 오히려 한국이나 서양의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행동 원리에 보다
근접해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함.
너무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한류나 서양쪽의 미디어물이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행동 원리 자체의 변화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듦.
애초에 기저의 행동 원리가 다른 사람들이 일본의 구세대들이 즐기던 미디어물이나 그런 세대가 만들어낸 미디어물을 접하게 되면
작품 속의 인물들이 부딪치는 갈등이나 해결방법이 하나도 납득이 안갈테니까.
나의 게임 외적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게임 자체의 감상을 말하면, 나는 남주가 여주를 구원하는 구원서사라고 느꼈음.
여주의 남편의 경우, 회사의 유능한 고위 관리자로서의 삶을 매우 성실하게 살았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여주 입장에서는 그래서 뭐라는 이야기밖에 안나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함.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결혼한 여주의 남편으로서 30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려면, 그만한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데
이 남자는 여주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주지 않았음.
여주는 20대라는 나이에 어울리게 남편이 연애, 성욕을 채워주길 바랐지만,
남편은 전혀 그걸 채워주지 못했고, 여주를 가둬두고 속박하면서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음.
남편의 경제적 기여가 없이는 생활이 안 굴러가는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여주는 애초에 대기업의 오너가문의 여식으로 남편의 수입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함.
그렇다면 여주의 남편은 회사에서의 지위로부터 요구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이나 여주의 남편으로서 요구받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했는데
남편은 여주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음.
일이란 것이 사실 자신의 성취욕, 인정욕 등을 충족하는 수단이기도 함을 고려하면, 남편은 자신의 그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여주를 희생시킨
것이고, 그런 여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진작에 결혼을 거절하거나(50대에 결혼하면서 그걸 예측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함),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여주가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 답이었다고 생각함.
그런 상황에서 아가씨들이 다니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쭉 에스컬레이트 하고, 사회경험이나 연애경험이라곤 전무하여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여주에게 접근하는 남주의 모습을 보면서
난 기분나쁜 스토킹범보다는 용에 의하여 감금된 공주를 구하기 위하여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는 용사의 모습이 연상됐음.
또한 여주의 마음이 서서히 남주에게 넘어가는 모습 또한 참 애틋했음.
자신의 성적 욕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또한 자신의 일부이며 더럽거나 지탄 받을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각해가는 여주의 모습은
굉장히 마음을 움직였음.
덕분에 굉장히 몰입해서 게임을 즐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