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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있어?"
이미 밤인데도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에서는 아직도 조명 장식들이 반짝이고 시끄러운 목소리와 음악도 새어나오고 있다. 샬레에 있는데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 같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저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느라 키보토스 전체가 들떠있는 것 같다. 학생들도 그 안에 섞여있을테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 안에 속해있지 않다는 점이 조금 외롭기는 하다.
섞이고 싶었는데, 하고 한숨을 내쉴 정도로는 외롭다.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최근동안은 평소에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이나 문제도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았고, 역시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날뛰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하루동안 크리스마스 기분으로 놀 틈은 없었다. 여기저기서 다들 각종 행사나 모임에 초대하긴 했지만, 일부만 참석해서 다른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샬레의 사무실에 홀로 있었다.
놀지 못한 것과 권유를 거절한 미안함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쳐서 일에 몰두했더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크리스마스에도 바쁜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도 어른의 방식이다. 초대해준 모두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잔의 커피를 타면서 역시 케이크 정도는 먹고싶다고 생각하던 참에 아즈사가 사무실로 불쑥 얼굴을 내민 것이다.
"고마워."
감사인사를 하고 빨리 불어들인다. 다른 방은 이미 어둡고 아즈사의 흰 뺨은 완전히 빨개져 있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온다. 또 확인도 없이 부주의하게 들어오게 한 것을 나무라지도 않고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어대고 있으니 밖은 분명 몹시 추웠을 것이다.
눈장난을 치던 아이가 돌아온 것처럼 몹시 가깝게 다가와서, 앉아있던 의자를 양보하고 책상에 놓아둔 커피를 건네주고, 떨어트리지 않도록 차가워진 손을 포개준다.
방금 내린 커피가 있어 다행이다. 데스크에는 그 밖에도 반쯤 마신 컵이나 빈 캔이 여럿 놓여있었으니까.
아즈사는 피어오르는 김을 얼굴로 받으며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따뜻함에 뺨이 느슨해져 있다. 살며시 열을 전달하듯 양손으로 컵을 감싸쥐면서 적당히 뜨거워지도록 조심스럽게 숨으로 식히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계속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식히는 것이 끝나고 한 모금 꿀꺽 목으로 넘기는 것을 보고나서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
"그래서 만나서 다행이야. 선생님,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마시지 않은 내가 목이 메였다. 솔직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기쁘지만, 추위때문이라고 해도 눈동자를 촉촉하게 하면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대, 가 아니라 깜짝 놀라니까,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버렸다. 아즈사는 이상한 속셈 없이 기쁜 듯 웃고 있는데. 키보토스를 찾아보면 이럴 때 나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아이들도 있겠지만, 아즈사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뭐 그대로 해석하면 보고싶어서 왔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기분이지만, 너무 직구여서 쑥스러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따뜻해..."
아즈사가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며 한 숨 돌리는 사이 근처 의자를 끌고와서 앉는다. 만나러 온 손님을 세워두는 것은 안되지만, 내가 서있는 것도 그것대로 신경을 쓰게 만들 것이다.
스르륵 의자채로 아즈사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고 아직 손이 차가워 보였기에 꼬옥 잡아준다.
"이렇게 차가운데, 장갑 같은건 없었어?"
"착용하는 걸 깜빡했어."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즈사의 손을 담요로 감싸듯 끌어안는다. 난방과 컵의 열로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바깥 공기의 차가움은 만만하지 않다. 내 손바닥이 먼저 차가워질 것만 같다.
얼마 전 히후미가 "아즈사쨩!" 이라면서 달려오자마자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화들짝 놀랐다면서도 기쁜 듯 들려줬기 때문에 나도 시험해보고 있다. 그 밖에도 "달라붙으면 더 따뜻해요!" 라면서 안기고 조물조물 당했다는 소리도 들은 것 같지만 그건 역시 참는다.
아즈사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따뜻하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천천히 열을 전해줬다. 잡고 있으면 아즈사의 손이 작다는 것을 강하게 느껴버려서 내 손이 먼저 따뜻해져 버리긴 했지만.
그만둘 때를 놓쳤지만 아즈사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보다 활기차게 뺨을 붉히고 있는 것을 확인해서 이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태연하게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히후미가 대단한 것인지, 나에게 사념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전자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손바닥을 바지에 닦고 있자 아즈사의 시선이 텅 빈 컵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그러고보니 음료를 마시면 안 됐는데."
"아즈사는 밤이 되면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는 편이야?"
"그건 아니지만, 선생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더니 코하루가..."
말하기를, 선생님도 크리스마스라서 이상한 짓을 할 지도 모르니까 음료수나 음식을 내놓아도 경계없이 먹으면 안돼! 그리고 늦어도 9시 이전에는 돌아가지 않으면 위험해, 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세모입을 한 채 곤란한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그렇구나..."
"그리고 걱정되니까 나도 만나러... 가 아니라 감시하러... 라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해서 하나코가 에잇♪ 하고 가슴으로 껴안았더니 얌전해졌어."
"그건 가슴으로 입이 막혀서 말을 못하게 된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몰라. 그 후 얼굴을 붉히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으니까."
그것은 정말 산소 결핍이었을 뿐일까. 뭐,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는 된다. 크리스마스는 그만큼 특별한 날이고 마음 속 미혹이 생겨버릴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보다는 코하루의 기우겠지.
오늘 보충수업부의 모두와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했나, 생각나서 물어보자 아즈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어."
"그건...!"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뒤지더니 파티용품같은 코주부 안경을 찾아서 쓰더니 보여준다.
이것만 있으면 쿨한 아즈사의 표정도 익살스럽게 변해 파티에 적합... 한지는 모르겠다. 쓴 모습은 처음 봐서 잘 모르겠다.
얼굴의 대부분이 가져지기 때문에 안경의 임펙트가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더 푹신한 산타모자를 쓰니 아무리봐도 크리스마스로 들뜬 사람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아즈사도 자신있게 가슴을 펴고 있다.
"꽤 재밌어보이니 다행이야."
지금 모습은 벌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아즈사가 텐션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아무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안경은 벗는 것이 낫다고 지적해둔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 사실 코하루도 같은 말을 했어. 케이크 먹기도 힘들었고."
아즈사는 풀이 죽어 등을 굽힌 채 코주부 안경을 집어넣는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나보다. 장기자랑 같은 곳에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에 꽂힌 걸까?
그리고 산타모자만 쓴 모습은 보통의 크리스마스의 학생다웠다. 아즈사가 그런 이벤트의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은 보통이라기보다는 귀엽지만. 작고 귀엽기로 소문난 아즈사가 머리에 빨간 모자를 살짝 얹으니 충동적으로 껴안고 싶어질 수준이었다.
"그 밖에 미니스커트 산타복 같은 것도 생각해 봤는데."
"입었어?!"
그 기분도 다음 말로 날아가 버렸다. 충격받은 나에게 아즈사는 냉정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입지는 않았어. 이 맘때의 미니스커트는 너무 추우니까."
지당한 이유였다.
"게다가 치마 길이 뿐만이 아니라 이상하게 노출도 많아서. 선생님이나 보충수업부라면 몰라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어."
적어도 방탄 성능이라도 있었다면, 이라며 아즈사는 불만스러운 듯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도 그런 복장은 보여주고 싶은 상대에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실내용 의상일테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출이 많은 것도 그것대로 탈착하기 쉬울테니, 그 용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즈사에게 미니스커트 산타복은 아직 이를 것 같다.
"아, 코주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건 아닌 거 같아."
얼굴의 위압감에 묻힐 테니까.
마음 속 생각이 다시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난방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 땀을 닦는다. 하지만 코주부 안경을 쓰고 다른 아이들과 떠드는 아즈사는 조금 보고 싶었다. 뭐 대리는 아니지만 히후미 쪽이 충분히 봐주었을 것이다. 툭툭... 어긋난 산타모자를 손으로 조정하는 아즈사를 보면 입가가 느슨해질 것만 같다.
"즐거웠던 것 같은데?"
"너무 들뜨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응, 매우 즐거웠어."
아즈사는 반성하는 듯 언짢은 표정을 짓다가도 파티가 떠올랐는지 곧바로 누구나 좋아할 환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소중하게 간직한 보물을 보여주듯 차분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크리스마스에 신나는 것이 나쁠 리 없으니 안심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선물 교환도 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마침 아즈사에게 그것을 위한 선물 선택의 도움을 부탁받았었지만 바빠서 거절해버렸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면 제대로 선택한 것이 틀림없어 보여서 일단 안심이다.
무릎에 살짝 손을 얹은 아즈사가 이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즐겁게 했던 게임을 말하거나 케이크를 먹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 중 선물 교환의 화제도 있었다.
"... 히후미는 모모프렌즈의 레어 굿즈, 코하루는 소설과 책갈피, 하나코는 어른의 장난감이라고 하는 잘 모르겠는 막대 모양의 무언가. 나는 밀리터리용 위장크림."
"그, 그렇구나..."
감독하러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다른 어떤 일보다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런 당연한 것을 한순간 떠올리게 하는 선물교환 이야기였다.
무거운 후회를 느꼈지만 즐거운 파티였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아즈사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참고로 나는 하나코의 것이 걸렸지만 히후미가 당황하더니, 저 그거 갖고 싶었어요! 교환해 주실래요? 라고 원하길래 양보했어."
"히후미..."
히후미의 대사를 할 때는 아즈사가 성대모사를 했다. 당황한 모습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웃어버렸다. 덕분에 눈을 돌리면서 곤란한 표정으로 아하하... 하고 난처하게 웃으며 하나코의 선물을 들고있는 모습도 상상하기 쉬웠다. 나중에 모모톡으로 위로해주자.
다만, 그렇게 되면 하나코 왈 어른의 장난감은 지금 히후미가 가진 셈인데... 어떻게 하는 걸까. 하나코가 준 선물을 버릴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쓰는 것일까.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아즈사가 서둘러 교환받을 선물을 꺼내 보여준다.
"그래서 코하루의 소설을 받았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볼 생각."
소중하게 안은 책은 원래 있는건지 추가로 포장한 건지는 몰라도 더러워지지 않도록 북커버로 덮혀있었다. 초절 토끼 탐정이라는 제목으로 부제도 붙어있었기 때문에 시리즈가 나올 정도의 인기 작품일 것이다. 코하루가 직접 만든 드라이플라워 책갈피도 흐뭇하다. 평범한 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 나도 코하루에게 책을 추천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읽고나면 감상평을 들려달라고 약속한 뒤 아즈사는 선물로 보이는 꾸러미를 하나 더 꺼내 보여준다. 소중하게 양손으로 들어올린 것은 웨이브캣 목도리였다.
"모두에겐 비밀이라면서 히후미가 몰래 선물해줬어. 하나코와 코하루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기뻤어."
"그렇구나, 잘 됐네 아즈사."
"응."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며 몰래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춰 알려준다. 선물 포장지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기뻐하고 있다. 히후미라면 분명 하나코와 코하루에게도 뭔가 선물했을테니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비밀이라면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물어보니 아즈사는 놀라 허둥지둥하며 귓가에 입을 가까이 한다.
"응, 그러니까 부탁. 말하면 안돼. 선생님과 나의 비밀이야."
그리고 몸을 멀리 떨어트리며 비밀을 강조하듯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워보인다.
그 말과 몸짓 뿐만 아니라 뺨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과 목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귓가의 따스한 숨결, 부드럽고 옅은 향기를 내게 느끼게 한 아즈사는 의자로 몸을 되돌리고 난처한 듯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비밀을 만든 죄책감과 비밀을 공유한 기쁨이 혼재한 걸까. 나는 살며시 가슴을 누르고 아즈사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조금 직시하기 어려웠다.
... 처음으로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텐션이 올라가있어 하는 행동인 것은 안다. 알지만 이렇게 부탁해버리면 반드시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결심할 것만 같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고 만약 얘기한다고 해도, 어떻게 봐도 내가 혼날 것 같아서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교활한 것을 누가 가르칠 리 없으니 천연일 것이다. 무서운 아이.
"선생님, 왜 그러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니, 아즈사는 아즈사인 채 그대로고 나만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충 대답한다. 천연이 가장 파괴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아즈사의 추억담 덕분에 왠지 나까지 벌써 크리스마스를 만끽한 기분이 든다.
"아즈사가 크리스마스를 즐긴 것 같아 다행이야. 그걸 얘기하러 온 거야?"
"응, 그렇지만 그 뿐만이 아니야."
아즈사는 눈썹을 조금 찡그리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아까 비밀을 만들 때보다도 더 고민하는 표정이다.
뭘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소매에 손가락을 걸더니 부끄러운 듯 끌어당기고 나쁜 짓을 하듯 조심히 속삭인다.
"이건 내 이기심일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인데 선생님을 못 봤으니까. 꼭 만나고 싶었어."
그래서 만나서 다행이라는 말에 어떻게든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아즈사 답지 않은 긴장한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소매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 끝이 손목에 닿고 있었다.
아까 했던 대답을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바람에 의미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보고싶은 마음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배려심과 그 정도는 이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고민 중 나는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까.
물론 안될 일은 없고, 아즈사가 그렇게 말해준 것이 기뻐야 하지만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분명 시선을 돌려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면서도 기대하듯 힐끔 올려다보는 아즈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밤에 보고 싶다고 하는 말에 기대와 부끄러움이 뒤섞여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고 있기 때문에, 나쁜 것은 이쪽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어른이 되어서 이상하게 짐작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밤에 혼자가 아니게 해준 아즈사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부끄러운 듯 올려다보는 아즈사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 코하루가 노려볼 때의 눈을 떠올리고 꾹 참으며 대신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선생님, 이 손은 뭐야? 어린애 취급이라면 그만해 줬으면 좋겠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 기뻐서 그만."
"으음, 그렇다면... 이 아니라 선생님!"
머리를 망가트리지 않도록 고마움을 전하듯 부드럽게 손을 움직인다.
갑자기 쓰다듬어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태양의 손이라고 불리(길 희망하)는 내 손의 온기 앞에서는 아즈사도 금방 흐물흐물해졌다.
아즈사가 사랑스럽고 쓰다듬고 싶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쓰다듬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떠넘긴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쓰다듬었더니 아즈사는 가드를 올리듯 두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 선생님 심술궂어."
"미안..."
아즈사는 얼굴을 붉히고 원망스럽게 말한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점점 촉촉해지는 시선을 받으며 달래주고 있었기 때문에 불에 기름을 붓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과 대신 우려낸 커피 한 잔을 둘이 나란히 마시다보면 대화도 끊긴다. 그렇지만 싫은 기분이나 초조함은 없고, 아늑한 분위기다. 게다가 컵을 내려놓은 아즈사가 털썩 머리를 쓰러트리고, 마음대로 쓰다듬은 보복인 것처럼 팔을 꾹꾹 눌러오는 것도 새끼고양이가 재롱을 부리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창문 너머 등불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점점 꺼져가고 있다. 저 불들이 전부 사라졌을 때가 크리스마스의 끝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즈사도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의 잔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냈어?"
"보는대로."
쓴웃음을 지으며 지저분한 책상을 손으로 소개하자 아즈사는 피식 웃는다.
"바빴구나."
"맞아. 하지만 즐거운 것의 이면에는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건가. 그렇다면 선생님은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인가?"
"미약하지만 말이야."
"그렇구나. 응, 수고했어."
장난스럽게 의자에 주저앉아 등받이를 삐걱거리는 내 머리를 아즈사가 수고했다며 쓰다듬는다. 비슷한 높이의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아담한 크기의 아즈사라도 조금 발뒤꿈치를 들면 닿을 수 있었다.
"아즈사?"
"선생님이 쓰다듬는 일은 있어도 내가 한 적은 없으니까. 응, 쓰다듬어지면 기분이 좋거든."
"... 왠지 아까의 복수같네."
"그것도 포함."
있구나. 그렇다면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민망하면서도 기쁜 오묘한 분위기가 의외로 편안하다. 작은 손이 닿아있는 느낌은 기분좋고 낯설지만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지면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이 멀어지고 아즈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좋은 상을 받고 말았다. 아니, 크리스마스 선물일까.
"고마워, 좋은 선물을 받아버렸네."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이 좋았다면 나도 기뻐."
"그래. 답례로 나도 뭔가 선물하고 싶어. 갖고 싶은 거 있어? 오늘 안에 주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전한 말에 아즈사는 한 번 눈을 깜빡이더니 얼굴을 붉히고, 괜찮아? 라고 묻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약하게 소매를 잡고 눈짓했다. 뭐랄까, 입에 담기 조금 부끄러운 어린아이같은 소원일까.
"그러면... 선생님을 원해."
"뭐, 나?"
"... 아니, 어쩌면 선생님이 선물을 준다는 말을 꺼낼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대답하면 놀랄 거라고 하나코가."
"하나코는 똑똑하네..."
갑작스러운 폭탄발언에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순간 숨쉬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그러면 그냥 농담인가 하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아즈사가 그런 농담을 할까. 아즈사의 얼굴은 뜨거울만큼 붉다.
"그렇지만, 하나코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나는... 선생님, 쑥스러워? 나 때문에?"
실패했다. 아즈사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생각하지 못했다. 얼굴을 툭툭 만져보자 생각보다도 더 뜨거워지고 있다. 게다가 아즈사가 하는 말은 미안해 하기보다는 조금 신나보였기 때문에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아즈사가 나쁜 아이가 되어버렸어..."
"또 어린애 취급."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반응하는 동안은 아직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아즈사가 화낸 덕분에 여유도 돌아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의 아즈사는 조금 이상하다. 왠지 거리가 가깝고, 무슨 말을 해도 자리에서 일어날 때를 빼면 몸이라던가 얼굴이라던가 손가락이라던가 어딘가를 만지고 있다. 만질 때마다 아즈사가 여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른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진다. 하나코가 뭔가 잔꾀를 부렸을 수도 있으니 조금 주의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전에 먼저 확인한다.
"혹시 그 밖에 하나코에게 무슨 말을 들었어?"
아즈사는 움찔 반응하더니 조금 생각하는 듯 눈을 감은 뒤 쭈뼛쭈뼛 고개를 끄덕인다.
"해산할 때 하나코가 알려줬는데, 아, 코하루도 얼굴은 붉혔지만 소리치지는 않았으니까 별로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코하루, 센서 취급을 받고 있어.
"... 그래서 하나코가 뭐라고 했어?"
"크리스마스 밤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 왜냐하면..."
그렇구나. 맞는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보내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니 기쁘다.
"그래서 선생님 생각이 나서 참을 수 없어서 곧장 만나러 왔어. 제대로 된 선물도 사올 생각이었는데..."
"..."
하지만 아즈사의 촉촉한 눈동자는 가족이나 친구를 향한 눈이 아니었다.
이쪽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고 있으면, 아즈사는 결심한 듯 내 무릎에 손을 얹고 다가와 몸을 쭉 기댄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듯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밤을, 나에게 줄래...?"
아직도 멀리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켜져 있지만 아즈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최대한 평정을 가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무릎 위의 감촉을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 목덜미에 불어닥치는 기대하는 거친 숨결을 산들바람으로 착각하려고 노력한다. 무리였다. 목소리가 떨린다.
"아즈사는... 나로 괜찮아?"
"응, 이렇게 느긋하게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도,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는 것도, 선생님이 좋아서야."
"어째서?"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말해주고 태도로 보여주는데도, 나는 아직도 확인하려고 한다. 교활하다고 꾸짖어 주어야 마음이 편할 정도다. 그렇지만 아즈사는 성실하게 대답해준다.
"여러 장소에 가서 여러 경험을 하고 많은 걸 배웠으니까. 이제 선생님이랑 있으면 너무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래서 더, 아니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선생님이랑 더 있고 싶어져. 어떡하지 선생님, 왠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
아즈사는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다. 좋고 기쁘지만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이 쪽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아즈사는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서 멋대로 뛰는 심장을 어떻게 하고싶고, 멋대로 기대하고 목이 마르고 떨리는 것도 어떻게 하고싶고, 수줍은 아즈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자신을 기절시키고 싶다. 다행히 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성의 재고는 충분하다. 전날 밤을 새지 않아서 다행이다. 무릎에 놓인 손에서 전해지는 여학생의 체온 뿐이라면 아직...
"정말 싫다면 밀어내도 괜찮아. 선생님이 하고 싶은대로 해 줘."
크리스마스 케이크보다도 달콤한 착각을 하고있던 나에게 아즈사는 최후통첩을 하고 딱 달라붙어 몸을 맡긴다. 무엇을 당해도 저항하지 않도록 눈을 꼭 감고있다.
아즈사의 몸은 따뜻해서 무심코 안아버리면 부서질 것처럼 여리여리하고, 그것보다 얼굴도 손도 몸의 모든 부분이 작아서 어떻게 나랑 이렇게 다를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근처에서 직접 전해지는 맞닿은 심장의 소리가 나보다 훨씬 빠르다. 나보다 아즈사가 훨씬 노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붙어서 체온이나 심음을 강요당하면 아즈사 이외의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중히 하고 싶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아즈사의 감촉에 그대로 덧씌워져 갔다.
이렇게 가벼운데 떼어낼 수 없고 떼어내고 싶지 않다. 싫다면 밀어내라는 것은 싫다면 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반대로 아즈사로서는 받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면 아즈사를 상처입히게 되니 이성으로서 할 리가 없다. 교활하다고 생각할 자격은 없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니 생각이 굳어진다. 하지만 잠자코있는 현상유지가 제일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보다 아즈사가 훨씬 더 용기를 내고 있으니까.
쭉 뻗은 손이 양 볼을 붙잡아 시선을 피할 수 없도록 얼굴이 고정된다. 아즈사는 내 가슴에 묻은 얼굴을 느릿느릿 일으키더니 볼을 부풀린 채 몸을 간지럽히며 연약하게 올려다본다. 계속된 숨소리 만으로도 심장이 타버릴 것 같았는데, 이제 뜨거운 시선이 정면에서 바라본다. 심음의 속도가 거의 비슷해져 버렸다.
"선생님, 아무 말도 안하는 건 치사해."
꾸짖으면서도 자신이 더 꾸짖어지는듯한 곤란한 표정. 우는 것처럼 촉촉한 눈동자와 더 이상 짙어지기 힘들 정도로 붉은 뺨. 그렇게 부끄러워 할 때는 내 눈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강하게 나를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계속 몸을 떨고있는 것도 전해져 오고 있었다.
... 더는 무리다. 항복. 아즈사를, 소중한 학생을,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를 나의 것으로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똑바로 눈을 보고 전했다. 아즈사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기 때문에, 분명 실수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쁜듯이 목덜미에 뺨을 스윽스윽 문지르는 것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저항하려고 껴안자 너무 강했는지 산타모자가 툭 떨어졌다. 하지만 아즈사는 기쁜 표정으로 더이상 사양하지 않고 몸을 밀어붙였다.
아까 모두에게 비밀을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새로운 비밀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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