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즈사편 이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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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보충수업을 마치고 다같이 탈의실에서 잡담을 나누며 옷을 갈아입는다. 땀에 젖은 트리니티 체육복을 벗고 평소 입는 교복을 손에 들었다.
"어머? 히후미짱, 새 속옷인가요? 엄청 귀엽네요."
"그, 그런가요...?"
속옷 차림의 히후미를 보며 하나코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 말대로 히후미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속옷을 입고 있었다.
"혹시... 오늘 선생님과 외출할 예정이 있는 건가요?"
"네?! 아, 아니에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손사래를 치는 히후미. 그런 그녀를 보고 하나코는 "농담이에요."라며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왜 다들 속옷에 신경쓰는 거야?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잖아?"
탈의실에서는 속옷 얘기를 자주 한다.
즐거워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점에 대한 질문을 했다.
"후후, 아즈사짱도 드디어 속옷에 관심이 생겼군요?"
"아즈사짱! 귀여운 속옷을 입으면 당연히 기분도 좋아지게 되니까요!"
"흐음, 그런 건가..."
히후미의 말을 듣고 나는 두 사람의 속옷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히후미가 입은 속옷은 부드러운 실크 소재의 순백색 원단에 프릴이 달린 속옷이다. 가운데 작은 리본이 달려 있어 심플하지만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매우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번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당당한 하나코의 속옷은 연분홍색에 꽃 자수와 레이스가 달려 있어 고급스러워 보인다. 히후미와 비교하면 귀엽다보다는 예쁘다라는 느낌으로 어른스럽다.
그런 두 사람과 달리 내가 입고 있는 속옷은 위는 회색 스포츠 브라, 아래는 줄무늬 팬티다. 흡습성이 좋고 움직이기 편해서 마음에 들지만, 확실히 두 사람과 비교하면 다소 수수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까 하나코가 선생님 얘기를 했잖아? 선생님은 왜 나오는 거야?"
"그건 말이죠, 언제 소중한 남성에게 보여줄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폭우가 쏟아져서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호텔. 그리고 그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뜨거울 시간을──"
"잠까안! 아즈사한테 뭘 가르치려는 거야?!"
하나코의 이야기 도중 코하루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끝까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소중한 남자에게 언젠가는 보여줄 기회가 온다는 듯 하다.
게다가 나도 귀여운 것에는 관심이 있다. 아리우스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던 예쁜 색 꽃, 모모프렌즈, 선생님이 종종 선물로 주시는 인형.
모두를 따라 속옷을 입어보면 나도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히후미, 나도 귀여운 속옷을 입어보고 싶어."
"그럼 다음 휴일 때 다 같이 사러 가죠, 아즈사짱!"
"좋아. 나도 마침 새 속옷을 사러 갈까 생각했으니까..."
"어머, 코하루짱이 지금 입은 핑크색 줄무늬 속옷도 충분히 귀엽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갈 거야! 그리고 하나코가 아즈사한테 이상한 말 하지는 않는지 제대로 감시해야 하니까!"
"아하하... 시끌벅적한 쇼핑이 될 것 같네요."
"응, 매우 기대돼."
뭐라 소리치는 코하루와 그런 그녀를 보며 웃는 하나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 히후미.
평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 문득 하나코가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중한 남자라...)
그 말로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 항상 나를 도와주는 그 사람이었다.
~~~~~~~~~~
"후아암... 한가하네."
샬레의 사무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크게 하품하고 있었다.
드물게도 일이 일찍 끝나버린 것이다. 오늘은 당번 학생도 없고, 아로나와 프라나와 잡담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낮잠을 자는 듯 했다.
"선생님, 지금 시간 있어?"
"어...? 아, 아즈사. 응, 시간은 있는데, 무슨 일이야?"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아즈사가 서 있었다. 시간이라면 남아도는 상황이었기에 긍정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럼 보여줄 게 있어. 따라와줘."
"와앗?!"
아즈사의 작은 두 손이 내 팔을 확 잡아당겼다. 그녀에게 이끌려 뒤를 따라가다 보니 거주구의 한 방에 도착했다.
"아즈사, 보여주고 싶은 게 뭐야?"
달칵, 아즈사가 문을 닫고 이쪽으로 돌아봤다.
"잠시만 기다려줘."
──스르륵
"?"
갑자기 아즈사가 가슴팍의 노란 리본을 풀었다. 그리고 그대로 겉옷을 벗었다. 민소매 원피스 차림의 그녀를 보며 방이 더웠던 걸까? 같은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툭툭
"음... 푸하아."
"?!"
목 부분의 단추를 풀자마자 아즈사는 단번에 원피스를 벗어버렸다. 옷을 빠져나온 하얗고 고운 장발이 흩날렸다.
"아, 아즈사... 뭐 하는 거야?!"
당연히 그것까지 벗고 나면 남은 것은 속옷 뿐이다.
벗은 옷을 정갈하게 개어 포개는 그녀로부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빠, 빨리 옷부터 입어, 아즈사!"
"그러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못 보여주잖아?"
"호, 혹시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응, 다같이 쇼핑하면서 산 새 속옷을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자신만만하게 숨기지도 않고 대답하는 아즈사.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머리를 싸맸다.
"어때, 선생님?"
"어떻냐니... 아즈사, 그렇게 쉽게 남자한테 속옷을 보여주면 안 돼..."
"어째서?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얼굴을 찡그린 아즈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봤다.
"아즈사의 그 모습을 보고 난폭한 짓을 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난폭? 하지만 그런 짓을 한다고 해도 나는 내 몸을 지킬 줄 알아. 그리고 선생님이 나에게 난폭한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아니... 나도 이대로라면 아즈사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래...?"
"응, 남자란 그런 생물이니까..."
"그렇구나... 나는 남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알겠어."
아즈사는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들 예쁘고 귀여운 속옷은 소중한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했어. 선생님이 나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그러면 그 말이 틀린 거야?"
그리고 아즈사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선생님으로서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그건 말이지, 아즈사, 네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앞으로 남은 인생를 함께하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을 말하는 거야."
"남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 알았어. 선생님이 말한 대로 그런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속옷을 남자에게 보이지 않도록 할게."
"응, 이해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전에 하나 확실하게 듣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이 속옷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싶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아즈사가 눈을 치켜뜨고 나를 쳐다봤다. 가까워서인지 은은하게 풍기는 꽃 같은 향기와 수줍은 듯 볼을 붉게 물들인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알았어."
순수한 아즈사의 올곧은 눈동자에 사로잡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를 제대로 봐줘, 선생님?"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아즈사의 속옷 차림을 보았다.
"......"
내가 보는 동안 아즈사는 뒷짐을 지고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소감을 기다렸다.
아즈사의 속옷은 파스텔 블루 색 원단에 그녀가 좋아하는 꽃 자수가 들어간 상하 세트 속옷이었다. 하얀 실로 섬세하게 수놓은 자수는 그녀의 천사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속옷 가운데 달린 작은 리본은 소녀다운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
어느 쪽이든 하얗고 가늘지만 여성스러운 곡선미가 있는 아즈사의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꽤나 참기 힘든 광경이었다.
"......응, 그 속옷 아즈사랑 정말 잘 어울려. 예쁘고 귀여워."
"에헤헤... 고마워, 선생님. 나도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선생님에게 칭찬까지 받으니 엄청 기뻐..."
속옷에 대한 칭찬에 환하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 아즈사.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안 돼... 아즈사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 때문에 그런 교육을 전혀 받은 적 없는 아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용서받을 수 없어...
"어라? 선생님,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괜찮아?"
"어? 아, 응... 뭐 그냥..."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타이르지만, 나는 한심하게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
"어라? 아즈사짱, 저번에 다같이 산 속옷을 바로 입었네요~?"
선생님에게 속옷을 보여준 지 며칠 뒤, 우리는 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아... 이 속옷, 선생님도 엄청 칭찬했어. 다같이 고르길 잘한 것 같아."
"네...?!"
"뭐어~~~?!"
"어머 어머."
내 말에 히후미와 코하루가 큰 소리로 놀랐다. 하나코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 놀라잖아."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선생님에게 속옷을 보여주다니, 그 말은...!"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에게도 주의를 받았으니 이제 안 할 거야."
"자자, 코하루짱도 진정하세요. 아즈사짱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으니."
새빨개진 얼굴로 떠드는 코하루를 뒤에서 다가온 하나코가 달랬다.
"게다가... 코하루짱도 선생님이랑 데이트하기 위해 이 귀여운 속옷을 샀잖아요?"
──스윽
"히야앗?!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렇게 만지는 것 좀 그만해!"
코하루에게 달라붙은 하나코가 그녀의 복숭아빛 속옷을 손끝으로 천천히 훑자 코하루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까요?"
"그렇게 할까요."
"뭐, 아즈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면 됐어."
결국 히후미의 한 마디를 끝으로 그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아즈사짱, 그게...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런 소란이 벌어져서..."
"아니, 신경쓰지 마. 오히려 나도 아무것도 몰랐으니 이번 일은 좋은 공부가 되었어."
그 뒤, 하나코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 사과했다. 그녀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애초에 실수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
"저기, 하나코...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뭔가요, 아즈사짱?"
"선생님은 내 속옷 차림을 보고 기분 나빠지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선생님도 칭찬했다고 했죠? 이렇게 귀여운 소녀의 예쁜 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빠질 리 없잖아요."
"그래?"
"네, 물론이죠♡"
하나코가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툭 얹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석한 그녀의 말이라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즈사짱, 얼굴이 새빨간데요?"
"헤...? 어, 어라? 어째서..."
선생님의 새빨갛게 물든 얼굴과 내 속옷을 칭찬한 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나도 뺨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떡하지... 선생님에게 속옷을 보여주고 칭찬받은 게 지금 와서 부끄러워. 그런데 싫은 기분은 아니야..."
선생님이 칭찬해준 속옷을 입은 내 가슴을 꾹 눌렀다.
이 기분은 대체 뭘까?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불쾌한 기분은 전혀 없다.
"후훗... 아즈사짱도 방심할 수가 없겠네요."
"하나코? 무슨 소리야?"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음에 선생님을 만날 때에도 이 속옷을 입고 가죠♡"
"......응."
상냥한 미소를 짓는 하나코와 마주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다들 귀여운 속옷을 입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며칠 사이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이 감정을 언젠가 스스로 풀어내고 싶다고,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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