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살짝 웃음을 흘리면서도, 포기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항복하도록 하죠.”
대리석 바닥 위로 내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론의 턱선에 들어갔던 힘이 미세하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들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받쳐들었다. 손바닥에 닿는 가죽 손잡이의 감촉이 서늘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무릎을 꿇어 항복하는 자가 검을 바치는 모양새가 되겠지. 하지만…’
내 오른쪽 무릎이 차가운 돌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하던 찰나였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2층 발코니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검은 화살촉들이 오론의 등 뒤에 늘어선 제국 호위병들을 덮쳤다. 둔탁하게 갑옷을 뚫고 살을 파고드는 소리, 당황한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순식간에 홀 안을 가득 채웠다. 오론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위쪽을 향하려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내려가던 하중을 그대로 이용해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양손에 받쳐 들고 있던 검집을 왼손으로 꽉 쥔 채, 오른손으로 검자루를 거칠게 뽑아냈다. 금속이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화살비의 소음을 뚫고 울렸다.
“이야아아앗…!”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기합 소리와 함께, 은빛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오론의 방비 없는 목덜미를 향해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