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자분께서 요청하신 리퀘스트 작품입니다.
집필하는 데 꽤 애를 먹어서 마감 직전까지 매달렸네요.
오타나 비문이 있다면 수정할 테니, 따뜻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딩동.
인터폰 너머로 방문객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네.”
토모미는 인터폰 응답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확인했다.
“쿠로사와 님, 택배 왔습니다.”
기계적인 독특한 억양이 들려왔다.
화면 속에는 운송업체 로봇이 커다란 상자를 대차에 싣고 대기 중이었다.
토모미가 현관문을 열었다.
“이게 뭐야?”
아담한 체구의 토모미가 통째로 들어갈 법한 거대한 상자를 보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본사에서는 내용물에 대해 답변해 드릴 수 없습니다. 보낸 분께 문의해 주십시오.”
상자 옆면에는 파란 띠 위에 흰 글씨로 ‘ROBODOLL™ RDX-313 General Robotics Inc’라고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토모미는 운송 로봇이 건넨 전표를 훑었다.
“내용물이… 로보돌? 아빠가 보낸 거네.”
토모미의 부모님은 일 때문에 장기간 해외에 나가 있었고, 토모미는 학교 때문에 국내에 혼자 남아 지내고 있었다.
“어디로 옮겨 드릴까요?”
“음, 이쪽으로요.”
토모미가 거실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수령 확인되었습니다.”
운송 로봇은 거실에 상자를 내려놓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
상자를 뜯자, 토모미와 키며 덩치가 똑 닮은 인간형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보돌(Robodoll).
제너럴 로보틱스 사가 제작한 자율형 로봇의 등록 상표다.
산업용 로봇과는 설계 사상부터가 다르다. 주로 아이가 없는 부부나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이를 위한 말동무용으로 쓰인다.
최대한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기 위해 신체 곳곳에 생체 부품을 대거 사용했으며, 무게 또한 같은 체격의 인간과 차이가 없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사람인지 로봇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한눈에 로봇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곤 램프와 버튼, 통신 커넥터가 달린 금속제 목걸이(제어용 칼라)가 채워져 있다는 점뿐이다. 그 때문에 다른 로봇들에 비해 가격이 꽤 비싼 편이다.
상자 속 로보돌은 부드럽고 윤기 나는 플라스틱 같은 피부를 갖고 있었다. 가슴과 가랑이는 고무나 비닐 재질의 흰색 브래지어와 팬티로 가려져 있었고, 양팔에는 팔꿈치까지 오는 같은 재질의 긴 장갑을, 양발에는 무릎 위까지 오는 하이삭스를 신고 있었다.
동봉된 메시지 카드를 보니, 좀처럼 집에 오지 못하는 부모님이 토모미에게 보낸 생일 선물인 듯했다.
취급 설명서에 이 제품의 외형 연령이 ‘8세’라고 적힌 것을 보고 토모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토모미는 이 로보돌처럼 몸집은 작아도 엄연한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외모 탓에 어린애로 오해받기 일쑤였고, 친구들에게도 “인형 같다”는 소리를 듣는 게 큰 콤플렉스였다.
“8살? 난 18살이라고!”
토모미는 설명서대로 로보돌의 목걸이에 전원 케이블을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삐빅’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램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금세 꺼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로보돌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설명서의 [기동되지 않을 때] 섹션을 읽으며 버튼을 길게 눌러보기도 하고 전원 케이블을 뺐다 껴보기도 했지만, 로보돌은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토모미는 설명서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고객 센터로 연락했다.
“로보돌이 켜지질 않아서요.”
『기종명과 시리얼 번호를 알려주십시오. 로보돌의 엉덩이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기종은 RDX-313, 시리얼 번호는 8511-001105예요.”
『확인되었습니다. 방문 수리는 일주일 뒤에나 예약 가능합니다. 직접 방문하신다면 오늘 오후 4시부터 접수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무료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제가 직접 갈게요.”
『알겠습니다. 제네로보 스토어로 방문해 주십시오. 예약 번호는 171번입니다.』
토모미는 택시를 불러 기사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지 않는 로보돌을 뒷좌석에 실었다. 그리고 번화가에 위치한 제너럴 로보틱스 사의 매장 겸 쇼룸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린 토모미는 자기 몸집만 한 로보돌을 낑낑대며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겨우 매장 입구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네로보 스토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너럴 로보틱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메이드 로봇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로보돌 수리 예약했거든요. 예약 번호 171번이에요.”
『예약 번호 확인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메이드 로봇은 로보돌의 허리를 붙잡더니 가볍게 번쩍 들어 올리고는 매장 안쪽 복도로 걸어갔다.
토모미는 서둘러 그 뒤를 쫓아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동작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방문이 닫히자 메이드 로봇은 핸디 카메라처럼 생긴 측정기를 꺼내 로보돌을 향했다.
『신장, 체중 및 신체 각 부위 치수가 오차 1% 이내로 RDX-313 표준 규격과 일치합니다. 동작 신호가 검출되지 않습니다. 외관상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본 시설에서의 수리는 불가능합니다. 공장에서 수리 후 다시 배송해 드리는 것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토모미가 대답하자 메이드 로봇은 전표를 출력해 토모미에게 건넸다.
“잘 부탁드려요.”
『동작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토모미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메이드 로봇이 측정기를 토모미에게 들이댔다.
『신장, 체중 및 신체 각 부위 치수가 오차 2% 이내로 RDX-313 표준 규격과 일치합니다. 동작 신호가 검출되지 않습니다. 외관상 중대한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코팅 처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규정된 의복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제어용 목걸이가 장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처리 전의 생체 소재가 오출고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즉시 회수 조치를 실시합니다.』
“저, 저기요? 잠깐만! 수리할 건 내가 아니라 저 로보돌이라니까!”
토모미는 뒷걸음질 치며 방문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강제 정지 명령이 무효화됨에 따라 물리적 수단으로 확보합니다.』
토모미의 팔이 메이드 로봇의 차가운 손에 꽉 붙잡혔다. 문에서 힘없이 끌려 나갔다.
메이드 로봇이 바닥에 토모미를 짓누르고 있는 사이 문이 열리고 또 다른 메이드 로봇이 나타났다.
“살려줘요!”
토모미의 비명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등 뒤로 꺾인 토모미의 양팔에 은색 테이프가 칭칭 감겼다. 양다리도 모아져 테이프로 단단히 결박됐고, 입에도 테이프가 붙여졌다.
메이드 로봇은 토모미의 이마에 ‘불합격·재조정’이라고 적힌 도장을 쾅 찍더니, 창고에 있던 운반용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토모미가 갇힌 상자는 매장에서 공장으로 운반되었고, 인간 기술자에 의해 개봉되었다.
“읍, 으읍! (살려줘, 난 로봇이 아니야!)”
“이거 상태가 엉망이군. 빨리 처리하자고.”
토모미는 상자에서 꺼내져 금속제 침대 위에 눕혀졌다. 팔다리를 묶고 있던 테이프가 뜯겨 나갔고, 대신 굵직한 벨트가 몸을 침대에 고정했다.
머리는 커다란 클램프에 좌우로 끼여 꼼짝도 할 수 없게 고정되었다.
“뉴로링크 구축.”
기술자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천장에서 굵은 빔과 수많은 케이블이 달린 매니퓰레이터가 내려와 토모미의 목덜미로 다가왔다.
매니퓰레이터는 뒷덜미에 닿기 직전 일단 멈추더니,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고는 목덜미를 향해 굵은 바늘을 푹 찔러 넣었다.
“으으읍!”
토모미는 격심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이 막혀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바늘이 경추 사이를 뚫고 척수에 도달하자, 그 끝에서 더 가는 금속 선들이 뿌리를 내리듯 신경 다발을 휘감았다.
“윽, 으윽….”
토모미의 몸은 침대 위에서 몇 차례 경련하듯 튀어 오르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뉴로링크 구축 완료. 동작 테스트 실시합니다.”
팔다리의 벨트를 풀고 입을 막았던 테이프도 떼어냈다. 기술자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목의 케이블을 통해 신경계로 제어 신호가 흘러 들어갔고, 토모미는 멍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목 뒤에 케이블이 연결된 채로 침대에서 내려와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기술자가 조작하는 대로 손을 올렸다 내리고, 무릎을 굽히는 등 다양한 동작을 수행했다.
“동작 테스트 정상.”
로보돌 전용 제어 목걸이가 운반되어 왔다.
목 뒤의 케이블이 분리되고, 대신 목걸이 안쪽에 있는 단자와 연결되었다.
목걸이가 찰칵 닫히며 잠기자, 램프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외형 변경 처리 실시. 형식 번호 RDX-313 외형 패턴 N30.”
거대한 원통형 셰이프 시프터(외형 변경 장치)의 정면 도어가 슬라이드식으로 열렸다. 토모미의 몸은 목걸이에 조종당하며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문이 닫히자 벽에서 수많은 노즐이 튀어나와 토모미의 주위를 회전하며, 머리를 제외한 전신에 거품 형태의 약제를 뿌려댔다.
10분 정도 지나자 다시 노즐이 움직이며 온수를 뿜어냈고, 거품이 씻겨 내려가면서 솜털과 음모 등 온몸의 털이 녹아 함께 씻겨 나갔다.
다음으로 토모미의 머리 쪽으로 두 개의 매니퓰레이터가 다가왔다. 끝부분에 달린 가위와 빗이 머리카락을 다듬기 시작했다. 쇼트 보브 컷으로 깔끔하게 잘린 머리 위로,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얼굴 위로 세정액이 뿌려졌고 다시 온수로 씻겨 나갔다.
그 후 머리카락에는 브러시로 염색약이 덧칠해졌고, 온풍으로 건조되자 토모미의 검은 머리는 선명한 핑크색으로 변해 있었다.
또 다른 매니퓰레이터가 다가와 토모미의 얼굴에 립스틱과 볼터치, 아이섀도를 입혔다.
작은 매니퓰레이터 하나가 엉덩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로보돌의 형식 번호와 제조 번호를 문신처럼 새겨 넣었다.
모든 매니퓰레이터가 물러나자 다시 노즐이 나타나 코팅제를 전신에 골고루 분사했다. 코팅제는 피부에 스며들어 그 질감을 플라스틱에 가깝게 변모시켰다. 이는 로보돌의 표면을 상처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가공으로, 공장에서 전용 제거제를 쓰지 않는 한 얼굴의 화장이나 머리색, 엉덩이의 제조 번호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문이 열리고 작업실로 나온 토모미에게 기술자들이 팬티, 브래지어, 하이삭스, 긴 장갑 등 고무 재질의 로보돌 의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의상 안쪽에는 피부 코팅제와 반응하는 접착제가 발려 있어, 잠시 후 토모미의 피부와 완전히 달라붙어 절대로 벗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의상까지 갖춰 입은 토모미는 집에 배달되었던 것과 똑같은 로보돌의 모습이 되었다.
토모미는 다시 금속제 침대에 뉘어졌고, 목걸이의 전원 램프가 꺼지자 잠든 듯 움직임을 멈췄다.
기술자들이 떠난 작업실 안에서 목걸이의 전원 램프가 주황색으로 점등되었다. 토모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로보돌 제어 시스템이 기동되었습니다. 제어 프로그램 로드를 시작합니다… 어, 뭐야?”
토모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기계적인 목소리에 입을 틀어막으려다, 눈앞에 나타난 자신의 양손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까지 덮고 있는 고무 질감의 흰색 긴 장갑은 손을 어떻게 움직여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았다. 당황해서 장갑을 벗으려고 팔꿈치 쪽 경계면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했지만, 장갑에 덮인 하얀 손가락 끝은 매끈매끈 미끄러질 뿐이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끝자락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장갑 위쪽의 상완부는 베이지색 플라스틱 같은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설마….”
토모미는 고개를 천천히 숙여 자신의 몸을 훑었다.
팔꿈치에서 어깨, 그리고 가슴에서 복부로 이어지는 코팅된 피부는 조명을 반사하며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광택을 띠고 있었다. 가슴과 골반에는 장갑과 같은 질감의 흰색 비키니 수영복 같은 브래지어와 팬티가 채워져 있었다.
허벅지 부분에서 다시 피부가 드러났고, 무릎부터 발끝까지는 흰색 하이삭스를 신고 있었다.
토모미는 브래지어와 팬티, 하이삭스를 벗으려 발버둥 쳤지만, 손가락은 장갑을 벗으려 할 때처럼 매끄러운 원단 위를 헛돌 뿐이었다.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냐고!”
토모미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외침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실내에는 낮은 기계음만 웅웅거릴 뿐이었다.
“내가… 로보돌이… 되어버린 거야?”
토모미가 몸을 비틀어 엉덩이를 확인하자, 거기엔 ‘RDX-313 8512-900001’이라는 번호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질 기미가 없었다.
“제발, 누구든 도와… 제어 프로그램 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토모미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양손을 몸 옆에 붙이고 곧게 선 자세가 되었다. 목걸이의 램프는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출고 위치로 이동합니다.”
(아니야, 난 로봇이 아니라고!)
작업실 문이 열리고, 토모미의 몸은 제 발로 걸어 창고로 이동했다.
집으로 배송 왔던 것과 똑같은 상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그중 하나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토모미의 몸은 상자 앞에서 뒤로 돌아 등을 보인 채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상자 뚜껑이 닫히고 목걸이 램프가 꺼지자, 토모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토모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수리를 위해 방문했던 제너럴 로보틱스 매장이었다. 도로를 향한 쇼윈도 안에서 토모미의 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제발 살려줘. 나인 걸 알아차려 줘!)
하지만 토모미의 마음속 비명을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