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꽁냥꽁냥한 이야기입니다.
모 대형 편의점 체인에서 일하는, 원래 인간 여고생이었던 로봇 소녀 카호의 이야기로, 전작의 뒷이야기를 남자친구 시점에서 바라보는 내용입니다.
카호의 남자친구는 공대생으로 휴머노이드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호의 구조를 일반인보다 훨씬 잘 알고 있고, 그 덕분에 카호의 기능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게 특징이죠. 카호의 시야 카메라를 정기적으로 훔쳐보며 확인하거나, 카호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전부 체크할 수 있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이것저것 보고 있습니다. 카호 본인에게는 당연히 비밀이지만요.
참고로 이성적인 카호의 남자친구지만, 오늘은 조금 폭주해버릴지도 모릅니다. 뭐, 카호의 몸이 워낙 야릇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이번에도 집필 단계부터 마카나 님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아 진득한 삽화를 잔뜩 그려주셨습니다. 부디 그쪽도 함께 즐겨주세요.
감상이나 의견은 큰 힘이 되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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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4교시가 실습이면 시간이 너무 늘어지는데.”
대학교 정문 앞 트램 역에서 시간표를 훑었다. 평소 퇴근 시간보다 세 대는 더 보내야 할 것 같다.
국립 사에바 공업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제도공업대학 3학년으로 편입한 나는 휴머노이드 공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인간에서 로봇으로 몸을 바꾼 카호가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학문이었지만…….
“인격 소프트웨어 조정, 기억 데이터 해석, 그리고 구조 해석에 해체, 조립 실습이라니……. 곁에 휴머노이드가 있는 사람에겐 정말 안 맞는 학문이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네…….”
배우면 배울수록, 사시하라 카호라는 소녀에게, 즉 휴머노이드 소체가 된 인간에게 가해지는 처치들이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비인도적인지도. 아무리 카호를 인간으로서 사랑하겠다고 다짐해도, 카호의 마음은 프로그램으로 제어되는 소프트웨어라는 현실을 억지로 깨닫게 된다.
만약 카호에게 주어진 시련이 몸과 마음이 로봇이 되는 것이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련은 사랑하는 사람을 로봇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리라.
물론 나의 고통 따위는 카호가 겪는 것의 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징징거릴 순 없다. 나는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만, 카호에겐 그조차 허락되지 않으니까.
고민해봤자 소용없다. 나는 카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카호는 시프트가 일찍 끝나니까 벌써 하교했으려나.”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여성형 휴머노이드 아이콘과 다양한 정보가 떠 있다. 카호의 원격 제어 앱이다. 제조사가 만든 기본 앱에 휴머노이드를 소유한 기업들이 각자 필요한 기능을 추가한 형태다.
카호의 소유권을 가진 대형 편의점 ‘스타일 일레븐’은 휴머노이드를 비품으로서 철저히 관리하는 방침이라, 앱의 감시 기능과 제어 기능이 아주 충실하다. 바꿔 말하면, 카호는 늘 몸도 마음도 발가벗겨진 채 자유를 박탈당한 제어 하에 있다는 뜻이다. 카호가 겪는 처우는 사춘기 소녀가 도저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내 여자친구를 기계로 취급하기 위한 앱을 쓰냐고?
당연히, 카호를 지키기 위해서다.
확실히 나는 카호의 서브 관리자 계정을 가지고 있어서 스마트폰으로 카호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정할 수도 있다. 신체 조종 권한을 카호에게서 뺏어와 리모컨처럼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카호는 인간에게 거역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에, 누군가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폭력에 노출되어도 저항하지 못해 상처 입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쓸 뿐이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받는 카호의 입지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래서 나는 카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내가 앱을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는 걸 카호는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여자친구를 로봇으로 취급하는 나의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카호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비밀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어라? 위치 정보가 아직 학교 안이네. 이 시간에 남아 있는 건 드문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메인 화면 구석의 위치 정보를 살폈다. 카호는 30초에 한 번씩 자기 위치를 자동으로 통지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편의점 운영사나 제조사도 카호의 현재 위치를 항상 알 수 있다.
로봇인 카호에게 자유 시간은 거의 없다(업무 모드에서의 월간 최소 가동 시간이 상당히 가혹하게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딴길로 새지 않고 바로 귀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경 쓰인다.
그때, 메인 화면의 동작 모드 표시에 【행동 서포트 중】이라는 글자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행동 서포트가 기동됐다고? 귀가가 늦어서 제어권을 뺏긴 건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행동 서포트니 뭐니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카호에게서 신체 제어권을 뺏어 기계화 뇌에 탑재된 AI가 조종하는 것이다.
카호는 자기 몸의 제어권을 뺏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제조사에서 관리자 교육을 받을 때, 카호를 직접 조종해보는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는 게 상당한 공포였는지, 끝나고 나서 뚝뚝 눈물을 흘렸었다. 제조사 엔지니어는 인간의 명령에 더 순종하도록 인격 소프트웨어를 조정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적당히 둘러대며 넘겼다.
이번에는 아마 귀가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서 발동된 모양이다. 방과 후에 카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마침 트램이 도착했다. 일단 타고 나서 카호의 로그를 살펴보자.
차량에 올라타 IC 정기권을 갖다 댔다.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무인 차량이다.
『제도공업대학 앞입니다. 오늘도 사에바 트램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열차는 사에바 북선 상행, 사에바 중앙역행입니다. 다음 역은 사에바 공업단지 입구, 사에바 공업단지 입구입니다. 현재 본 차량은 무인 운전 중입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발권기 상단의 마이크로 말씀해주십시오.』
이 차량은 무인 운전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승차구 옆 ‘열차 제어 장치’라고 적힌 금속 상자 안에 시노하라 중공업제 휴머노이드가 탑재되어 있다. 무인이라고는 해도 인간 승무원 같은 유연한 판단과 승객 응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카호의 동급생도 열차 제어 장치로 탑재되어 있어서 나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일에 긍정적인 밝은 소녀였다.
대학에 들어온 뒤 그녀들의 탑재 요령을 알 기회가 있었는데, 팔다리가 전부 잘린 채 금속 부품에 고정되고 가랑이 사이에 센서 접속용 굵고 긴 단자가 박혀 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할 말을 잃었었다. 승무 중에는 기계화 뇌의 스트레스 경감을 위해 성적 자극이 계속 주어지는데, 고정된 기체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카호가 나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녀들은 그런 모습으로 가동되어도 정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인격 소프트웨어를 상당히 뜯어고친다고 한다.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렸네. 빨리 카호부터 확인해야지. 앱을 보니 행동 서포트는 계속되고 있었고, GPS 위치는 조금씩 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자동 조종은 귀가를 강제하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
상황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카호의 시야 화면 영상을 내 스마트폰에 띄웠다.
“여전히 정보가 너무 많아. 유저 인터페이스가 최악이라니까.”
스마트폰 화면 가득 주택가 도로를 걷는 영상이 흐른다. 카호의 시야는 다양한 정보가 표시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다. 자잘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이 작은 화면으로는 글자 판별조차 어렵다. 하지만 시야 중심에 커다랗게 【행동 서포트 프로그램 기동 중】이라는 글자가 깜빡이고 있는 건 확실히 보였다.
영상은 그저 똑바로 집을 향하는 모습만을 담고 있었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어디로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시야 구석의 시속 8km(8km/h)라는 표시는 변함없이 유지되며 그저 정확하게 마을 풍경만이 뒤로 밀려났다.
스마트폰에 비친 카호의 시야 화면에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연배 있는 여성의 모습이 잡혔다. 카호의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여성의 얼굴 주위에 원형 선을 두르고, 해석 결과를 옆에 띄웠다. 근처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카네히라 씨다.
반상회 임원이라 안면이 있는 분이다. 카호에게 말을 거는 순간, 주변 풍경이 멈췄다. 속도는 시속 0km(0km/h). 시야가 옆으로 움직이며 카네히라 씨를 정면으로 포착했다.
차 안이라 소리를 꺼두었기에 들을 수는 없다. 대신 화면 구석에 텍스트 로그 창이 팝업되어, 카호의 집음 마이크가 포착한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 보여주었다.
카네히라 유코: 어머, 카호 아니니. 지금 학교 끝나고 오는 길이야? 이번에 동네 어린이집 행사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HS-207PS1114KS: 본 기체는 AI에 의한 행동 서포트 중입니다. 긴급 상황 외에는 응답할 수 없습니다.
카네히라 유코: 어? 에이아이? 행동 서포트?
HS-207PS1114KS: 실례하겠습니다.
카네히라 유코: 잠깐, 카호야!?
그 말만 남기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카네히라 씨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카네히라 씨의 혼잣말을 카호의 마이크가 잡아냈다.
카네히라 유코: 아휴…… 카호야. 가게 볼 때 로봇 같은 모습 그대로네. 옛날부터 잘 웃고 착한 애였는데. 기계 몸이 되니까 역시 마음까지 점점 로봇이 되어가는 건가…….
카네히라 씨는 행동 서포트 때문에 자유 의지를 뺏겼다는 사실을 알 리 없으니, 약간 오해를 산 것 같기도 하다.
방금 전의 대화가 신경 쓰여 화면을 전환해 카호의 감정 그래프를 띄웠다. 카호의 인격 소프트웨어 감정 상태는 상시 기록되어 원형 그래프로 표현되는데, 이 순간 특정 부분의 그래프가 쑥 솟아올랐다.
“슬픔과 당혹감. 어릴 때부터 알던 빵집 아줌마라고 카호가 그랬었지.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을 텐데.”
카네히라 씨에겐 나중에 따로 말씀드려야겠다.
이렇게 카호의 상태를 보며 트램을 타고 가다 보니 어느새 사에바 중앙역에 도착했다.
“카호 하교가 늦어진 건 알겠는데, 문제는 그 원인이네.”
트램에서 내려 사에바 전철선으로 갈아탔다. 퇴근 인파가 몰리기 전이라 비교적 한산한 칸에 올라탄 나는 카호의 내장 드라이브에서 시야 화면 영상 데이터를 불러왔다. 이것은 카호의 기억이다. 관리자 권한만 있으면 휴머노이드로 제조된 이후의 모든 기억을 이렇게 열람할 수 있는 구조다.
“한 시간 전이면 아직 방과 후겠네.”
영상 재생 바를 조금 뒤로 돌렸다. 풍경이 빠르게 되감기며 고등학교 교사로 돌아갔다. 행동 서포트 깜빡임이 사라졌을 즈음, 낯선 여학생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 애는 처음 보는데. 얘랑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수시로 카호의 기억을 훔쳐봐서 그런지, 이제 카호의 반 친구들은 대충 다 꿰고 있다. 반 친구들은 카호의 힘든 처지를 이해해주지만, 다른 반이나 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조금 불안해진다.
그녀와의 대화는 계속해서 텍스트로 읽으며 확인했다.
코바야시 아이라: 사시하라 씨 눈이랑 귀는 고성능 카메라랑 마이크라며?
코바야시 아이라: 그때 수업 영상 데이터가 필요해! 부탁이야!
그녀는 카호의 시야 영상을 원하고 있었다. 꽤 뻔뻔한 요구지만, 카호는 남의 부탁을 기본적으로 거절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상을 더 돌려보니 그녀는 기분이 고조됐는지 간과할 수 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코바야시 아이라: 와우! 사시하라 씨는 SD 카드랑 연결도 되는구나! 휴머노이드, 진짜 편하지 않아?
시야 화면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뒤로 돌아가 카호의 뒷머리에 있는 단자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카호는 인공 모발을 빗질해서 가급적 이 단자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정리하고 다니는데…….
코바야시 아이라: 헤에~. 여기도 피부가 붉네. 아, 근데 뺨 바깥쪽부터 플라스틱처럼 번들거리는 게 이어져 있어서 그런가. 어? 이거 좀 신경 쓰이는데!
화면 왼쪽 아래에 사람 손가락이 찍혔다. 카호의 뺨 인공 피부 안쪽과 바깥쪽의 붉게 도색된 수지제 커버 경계선을 훑고 있는 듯했다. 얼굴을 파고들어 피부를 침식하는 이 디자인은 카호가 자기 몸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 중 하나다. 거기를 무례하게 만져댄 건가? 이 기집애가!
코바야시 아이라: 살색 부분도 의외로 차가운데, 원래 이래?
젠장, 뭐야 이 애는! 주변 사람들이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을 무례한 말들로 카호를 몇 번이나 상처 입히고 있어.
그 후로도 SD 카드가 꽂혔을 때의 성감 때문에 신음하는 카호를 놀리거나, 공들여 편집까지 해준 영상에 불평을 늘어놓는 등, 아무리 카호가 로봇이라지만 동급생을 편리한 도구 취급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학교는 카호가 유일하게 인간답게 지낼 수 있는 장소인데…….
이후에 결국 카호도 화를 낸 것 같지만, 너무 심하게 말하면 인간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되어 강제 정지당하고 만다. 역시 이 애의 용건 때문에 카호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 거였다.
“코바야시 아이라라. 얘는 대체 누구야?”
시야 화면 속 그녀의 얼굴을 탭하자 카호의 메모리에 등록된 그녀의 개인 정보가 떴다. 카호는 얼굴 이미지로 상대를 식별하는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의 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업데이트한다. 원래는 고객 마케팅용 기능이지만, 가족이나 친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가 등록된다.
“코바야시 아이라, 옆 반인 4반, 도쿄에서 온 전학생, 우리에 대한 이해 부족, 나를 편리한 로봇으로만 생각함, 너무 자유분방해서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음…… 그렇군.”
이 시스템은 이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카호 본인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인격 소프트웨어 정보가 해석되어 자동 등록되기 때문에 카호를 소유한 회사 관계자들도 카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예전에 무례한 직원이 카호의 등록 정보를 보고는 휴머노이드 주제에 반항적이라며 소리를 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카호도 직원들을 대할 때는 퍼스널 모드일지라도 마음을 죽이고 진짜 로봇처럼 행동하려 애쓴다. 뭐, 휴머노이드는 거짓말을 못 하도록 언행이 제어되기 때문에 대면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대답해야만 한다. 마음속까지 다 까발려져 비밀을 가질 수 없다는 스트레스와 공포가 카호의 마음을 상당히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데이터는 어떻게 되어 있으려나. 가급적 안 보려고 하지만, 오랜만에 궁금해졌다.
“소중한 연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함, 결혼하고 싶음, 대학 생활이 바빠서 외로움, 더 같이 있고 싶음, 떨어지기 싫음, 더 야한 짓 하고 싶음…… 엄청 사랑받고 있네. 나도 그렇지만.”
……이걸 봐버렸다는 죄책감과 사랑받고 있다는 기쁨이 뒤섞여 복잡한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으니 대학 수업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귀가해야겠다.
이것저것 보는 사이에 목적지 역에 가까워졌다. 카호의 현재 위치는 이미 집이었고, 행동 서포트 표시도 사라져 있었다. 시야 화면을 다시 켜니 카호의 방이 비쳤다. 각도상 충전 스탠드 위치다.
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나오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여기서부터의 음성은 문자가 아니라 귀로 직접 듣고 싶다. 자기 방에 도착한 카호의 상태는 충전 중으로 바뀌어 있으니까…… 그게……
그런 장면을 훔쳐보는 건 나쁜 짓이지만, 남자로서 흥미가 없는 건 아니다.
……뭐,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이다.
영상의 볼륨을 높이자 귀로 카호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앙, 으응, 타츠야, 타츠야아! 타츠……야…… 아아앗!』
카호는 신음하며 내 이름을 연신 불렀고, 시야 화면 구석에 작은 화면(Wipe)을 띄웠다. 화면 속에는 틀림없는 내 얼굴이 있었다. 게다가 상반신을 벗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내 모습이. 몸이 앞뒤로 흔들리고 있는 걸 보니 분명 ‘그럴 때’의 기억 데이터일 것이다. 내 저런 표정은 참 보기 흉하네.
“카호……. 충전 중에 자위용으로 또 나를 쓰고 있구나.”
충전에는 강한 성감이 동반된다. 게다가 충전 스탠드에 팔다리가 구속된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 로봇이 됐을 때 카호는 강간당하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랑 이어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릴랙스해줘”라고 조언(나도 참 바보 같은 소릴 했지)한 이후로, 충전을 자기만의 자위 시간으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격 소프트웨어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뭐, 내가 성관계할 때의 얼굴을 반복 재생해서 보는 건 복잡한 기분이지만, 연인과의 섹스 기억을 반찬 삼아 자위하는 모습을 원격으로 감시당하는 카호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타츠야아, 아아…… 빨리… 힘들어어… 앙!』
작은 화면이 갑자기 커지더니 스마트폰 가득 내 얼굴이 표시됐다.
『타츠야아, 앗 앗 앗… 으응, 으으으응, 타츠야아, 타츠야아, 아앗, 앗, 아아아아아아아――!』
화면 너머로 보이는 카호의 방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파르르 맥동하듯이.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가버린 모양이다. 성감 신호 처리 때문에 잠시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곧 자동으로 슬립 모드로 전환되며 시야 화면이 블랙아웃됐다.
휴머노이드는 기본적으로 절정에 도달한 후에는 슬립 모드로 이행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설정을 바꿔서 몇 번이고 절정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만, 충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 번 가버리면 강제로 의식을 끊어버리게 되어 있다. 다만, 조금 전의 감정 그래프를 보면 슬픔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듯 보였다.
오늘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것 같으니…… 몰래 자위하는 걸 훔쳐본 속죄도 겸해서 카호가 원하는 대로 해줄까.
10분 정도 걸어 집 겸 가게에 도착했다. 1층 편의점에 얼굴을 비추니 아저씨와 아주머니(카호의 부모님) 두 분 다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저녁 시간이라 손님도 많다. 이 시간에는 옆집에 사시는 카호의 할아버지가 도와주러 오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할머니와 함께 반상회 시니어 클럽 여행을 가셨다. (카호의 귀가 시간 설정이 평소보다 빠른 것도 애초에 이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짐만 갖다 놓고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머, 타츠야 왔니. 도와주면 고맙지―. 근데, 가능하면 카호 상태를 좀 봐줬으면 좋겠어. 그 애, 오늘 예정보다 꽤 늦게 왔거든. 게다가 행동 서포트인가 뭔가 때문에 꼭 꼭두각시 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돌아왔지 뭐니. 뭔가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 있는 것 같더니, ‘벌써 충전 시작 안 하면 또 원격 제어 당하니까’라면서 바로 3층으로 올라가 버려서 좀 걱정되는구나.”
카호가 왜 그런 상태인지 나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카호의 제어 앱을 쓰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아니, 자기 딸을 가전제품 취급하고 싶지 않다며 혐오하신다. 그래서 카호 기체의 기능이나 감시 제어 방법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고 하지 않으시기에, 내가 가급적 카호의 로봇으로서의 측면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카호를 인간 외동딸로만 대해주셨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카호 상태 좀 확인하고 올게요.”
“가게는 어떻게든 되니까 좀 천천히 쉬다 오렴. 카호도 그게 더 기쁠 거야. 어차피 그 애도 새벽부터 아침까지 시프트 들어가야 하니까.”
아주머니의 배려에 그대로 3층으로 올라가 내 방에 짐을 두고 옆방인 카호의 방을 찾았다.
“다녀왔어, 카호.”
카호는 방에 설치된 충전 스탠드에 팔다리가 구속된 채, 고개를 앞으로 떨구고 잠들어 있었다. 목덜미와 골반 부근에 충전 플러그가 꽂힌 채로, 가끔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충전 스탠드의 콘솔 화면을 조작해 슬립 모드를 해제했다.
위이잉―
모터 소리를 내며 카호의 고개가 들리고, 카메라 아이의 눈동자가 활짝 열렸다.
『삑, 슬립 모드가 해제되었습니다. 배터리 잔량 67%, 계속해서 충전을 지속합니다…… 타, 타츠야!?…… 다, 다녀왔어…… 으응… 빨리… 왔네』
충전 자체가 끝난 건 아니라서, 카호는 쾌감을 견디며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녀왔어.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미안해.”
나는 천천히 카호의 뺨을 쓰다듬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플라스틱의 딱딱한 뺨 바깥쪽과 살색 인공 피부의 경계선을 훑는 건 내가 좋아하는 감각이다. 카호도 학교에서 같은 곳을 만져졌을 때는 혐오감을 드러냈지만, 내가 만져주는 건 좋은 모양이다. 눈을 감고 내 손가락 끝의 감촉을 음미하고 있었다.
『츄…… 타츠야아…… 으응, 츕……』
체온이 없어 서늘한 구강. 민트 향에 감미료가 살짝 섞인 인공 타액이 내 혀에 얽혀들었다.
『음…… 츄…… 으응. 더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봐.”
물론 앱으로 카호의 감정도, 나에 대한 생각도, 조금 전까지 무엇을 반찬 삼아 자위했는지도 다 알고 있지만, 이렇게 물으면 카호는 솔직하게 대답해야만 한다.
『으응. ……해줘……. 위로해줘…….』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부끄러운 듯 말한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말하게 시킨 거지만, 카호의 귀여움에 나도 참지 못하고 다시 카호의 입술을 뺏었다.
그대로 비어 있는 손으로 카호의 가슴을 부드럽게 쥐고 탄력을 확인했다.
『앙. 거기…… 세게……』
입술로 혀를 섞으며 양손으로 유방을 꽉 쥐었다. 1cm(1cm) 정도 손가락이 파묻히지만 그 이상은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인간과 달리 내용물이 배터리 셀이라 당연한 일이지만, 가슴은 처지거나 변형되지 않고 예쁜 밥공기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앙……아……으응…』
카호의 가슴 끝을 문질렀지만 유두는 없고 매끈했다. 여기를 만져도 몸의 떨림이나 신음은 변함이 없다. 카호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더 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한 손을 내려 허벅지 사이로 손을 뻗었다.
인간이라면 질 입구와 항문이 있을 위치를 슬쩍 훑어주었다.
『아앗…… 거기는아…… 애달파지니까아……』
유방보다는 반응이 좋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에도 아무것도 없다. 외피로 덮인 매끈한 가랑이. 손가락 끝으로 앞뒤를 문지를 때마다 움찔거리며 몸을 비틀지만 역시 그뿐이다.
평소 카호의 몸은 유두와 질, 항문을 박탈당한 상태다. 물론 옷을 입지 못하고 바디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 가동되는 휴머노이드를 성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건 사실이다. 카호도 업무 모드 중인 심야 편의점에서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져지고, 심할 때는 가랑이를 훑어대는 일도 겪기 때문에 이쪽이 더 안전하다는 건 알지만.
『……으응…… 싫어…… 아……』
“카호? 반응이 별로네. 왜 그래?”
인간이라면 치골이 있을 위치에 매립된 고유 식별 번호와 바코드가 적힌 금속 플레이트부터 항문 근처까지 집요하게 문질렀다. 카호도 내 움직임을 느끼려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허리를 작게 흔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절정에 이르기엔 부족해 보였다.
『아으…… 알고 있잖아? 으으…… 심술쟁이이……』
카호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원망스러운 듯 이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카메라 아이의 눈동자가 촉촉해 보이는 건 기대감의 표현이다.
사실 카호는 조금 애태워지거나 짓궂은 장난을 당할 때 더 흥분한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카호와 관계했을 때의 감정 로그를 보면 짓궂게 굴었을 때 사후 행복감이 더 강했었다.
물론 본인에겐 말할 수 없지만.
성감대를 뺏긴 상태의 카호는 오르가슴(처럼 느껴지는 프로그램 처리)에 도달할 수 없도록 제어되어 있고, 성감 센서의 감도도 30%까지 떨어져 있다.
카호는 자기 의지로 자위를 할 수 없다. 업무용 로봇이 자위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 때문인데, 이건 카호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분이 고조됐을 때 발산할 수 없다는 것도 가혹한 처사다. 예외가 충전 시인데, 그 외에도 또 하나의 예외가 있다.
“카호,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말해봐.”
『……섹스로이드 모드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니 잘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만)
“어? 뭐라고? 안 들리는데. 충전 방해되면 그냥 나갈까―”
『나를 섹스로이드 모드로 전환해줘! ……부탁이야…… 타츠야가 어중간하게 스위치를 켜버려서 몸이 한계란 말이야아……』
몸을 떨며 간청하는 카호가 사랑스러워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안, 카호. 귀여워서 장난 좀 쳤어. 카호, 섹스로이드 모드 기동.”
나는 구두로 카호에게 명령해 모드를 전환했다.
『삑, 섹스로이드 모드로 변경합니다. 충전 중일 경우 뒷면 단자에 손을 대지 마십시오.』
섹스로이드 모드로 전환하자 전신의 성감 센서 감도가 올라갔고, 유방에는 인공 유두가, 그리고 가랑이 외피에는 갈라진 틈이 있는 가느다란 팽창부와 국화 꽃잎 같은 팽창부가 조형되었으며, 각각의 형상에 맞춘 구멍이 만들어졌다.
로봇인 카호는 임신도 할 수 없고 모유도 나오지 않는다. 배설도 등 쪽의 밸브로 흡입하기 때문에 본래 용도의 항문도 필요 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관들이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성적 봉사를 해서 기쁘게 해주기 위한 고성능 성인용 장난감으로서다. 여성의 존엄 있는 역할은 뿌리째 뽑혀버린 셈이다. 그래도 카호는 나와 즐길 수 있는 신체 기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섹스로이드 모드를 내 성욕 처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카호 자신이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카호, 만질게.”
『응……』
유방 끝에 빳빳하게 일어선 인공 유두는 외피와 같은 색이지만, 탄력은 인간의 그것을 재현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튕기듯 희롱하자 『야앙…… 아앗…… 기분 좋아아……』 하는 카호의 교성이 내 가랑이를 자극했다.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왼쪽 유두를 꼬집으면서 오른쪽 유두를 혀로 핥으며 빨아올렸다.
『아아아앙!』
그 순간, 위이잉 소리를 내며 카호의 몸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아무래도 방금 자극만으로 가볍게 가버린 모양이다. 여운 때문에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유두를 공략했다.
『안 돼…… 앙…… 가버려어』
섹스로이드 모드는 카호가 기분 좋아지기 위한 모드가 아니라 인간에게 성적인 봉사를 하기 위한 모드다. 그래서 몇 번을 가버려도 슬립 모드로 이행하지 않는다. 덕분에 연속해서 몰아붙일 수 있다.
『앗 앗 앗! 아앙, 유두… 안 돼…… 굉장해…… 아아앗!!』
한층 더 큰 신음과 함께 다시 뒤로 넘어가는 카호. 또 가버린 모양이다.
“오늘은 잘 느끼네. 기뻐 보이니 다행이야.”
눈을 게슴츠레 뜨고 여운에 젖어 있는 듯했다. 손목과 발목은 구속되어 있지만 목에는 금속 장치가 없다. 대신 등의 충전 코드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몸에 힘이 빠진 듯 보였다.
『앙… 오랜만……이라서… 엄청 잘 가는 것 같아……. 아우…… 가슴 끝…… 스스로는 못 만지니까 쌓여 있었나 봐…….』
스트레스가 쌓였던 만큼 카호도 고조된 기분을 쏟아내며 즐기려 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이쪽은 어때?”
카호의 가슴을 쥐고 있던 손을 조금씩 아래로 내렸다. 조금 전 두 개의 구멍이 조형된 가랑이를 살며시 훑었다.
『햐우우읏!』
평소에는 매끈해서 아무것도 없던 가랑이에는 깊은 균열이 새겨져 있었고…… 손가락을 뒤로 뻗자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두 곳을 왕복하듯 천천히 훑자 카호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광택 있는 라버(Rubber)의 질감이 미묘하게 변화하며 일시적으로 의사 체온이 부여된 그것은, 그녀에게 아주 조금 허락된 인간의 증표처럼 느껴졌다.
『아앗…… 타츠……야앙…… 또…… 올 것 같아…… 앙!』
손가락을 앞으로 돌려 갈라진 틈을 문지르자 손가락이 점점 젖어왔다. 약간 끈적임이 있는 걸쭉한 카호의 인공 애액. 카호에겐 자궁이 없는 대신 같은 위치에 인공 애액 탱크가 있다. 몸에서 생성되지 않으니 정기적으로 보충해줘야 하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으면 넘쳐흐르는 건 똑같다.
“점점 젖어오네. 느끼고 있어?”
『하앙…… 아앗……』
그것은 투명한 선을 그리며 라버 재질로 덮인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허벅지에 묻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살짝 떠냈다. 끈적임과 온도. 젖은 손가락을 카호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기분 좋아 보이네, 카호.”
츕……
『싫어…… 핥지…… 마세……요』
“저번 충전 때 플레이버를 시트러스에서 민트로 바꿨길래 궁금해서 말이야.”
『으으…… 부끄러워어……』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이용해 자꾸 짓궂게 굴고 싶어진다.
인공 애액은 제조사 순정품을 보틀로 구매하는데, 몇 종류의 향과 약간의 맛이 첨가되어 있다.
카호가 인간이었을 때의 향과 맛을 재현한 특주품(기계화 개조 전 신체검사에서 성기 분비액과 냄새를 채취해 성분 분석을 마쳤다)으로 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좀 비싸기도 하고 카호가 진심으로 싫어해서 지금은 관두고 있다. (포기하겠다는 소린 아니다.)
카호의 애액과 내 타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카호의 입가에 가져가자, 카호는 천천히 입에 물고 내 손가락을 핥아왔다.
“여기도 점점 따뜻해지네.”
입안도 따뜻해지고 있다. 섹스로이드 모드가 되면 카호의 내장 히터가 의사 체온을 발생시켜 구강, 인공 성기와 인공 항문은 물론, 평소에는 서늘하던 카호도 이 순간만큼은 사람의 온기를 띠게 된다.
등의 단자에 닿지 않게 팔을 돌려 카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매끈해서 문지르면 뽀득뽀득 소리가 나는 외피 너머로 몸의 떨림에 맞춘 미세한 모터 소리와 웅― 하는 히터의 저주파음이 섞여 들렸다.
『오늘, 내 몸…… 차갑다는 소리 들었어…….』
“인간도 밖이 추우면 차가워지니까 신경 쓰지 마. 봐,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카호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고 다시 입맞춤을 했다. 따뜻하다. 봐, 인간 여자애랑 다를 게 없잖아.
『……츄. 타츠야아. 나, 로봇인데…… 그저 기계일 뿐인데…….』
“응?”
『더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하게 돼……. 안 되나 봐, 오늘도 로봇이 되지 못했어.』
방과 후의 일 때문이겠지. 그런 건 카호 잘못이 아닌데도, 카호의 사고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이 로봇답게 행동할 것을 강요하며 카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괜찮아, 카호. 이제 잊어도 돼. 우리 둘이 있을 때만큼은 로봇이 아니라 인간 사시하라 카호로 돌아와도 되니까.”
내 말에 카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로봇인 카호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카호의 표준 표정은 기쁜 듯 미소 짓고 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의사 표시.
『……더…… 더 해줘…….』
오늘은 정말 간절하게 원해온다. 마음이 상처 입었을 때일수록 카호는 이런 경향이 강하다. 내 가랑이도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올랐지만, 충전 스탠드에 세워진 상태의 카호와 결합하는 건 자세상 무리라, 아까 적셔둔 손가락 두 개를 가랑이로 파견했다.
『아앗…… 아앗……』
츕, 챱 하는 음란한 물소리가 날 정도로 카호의 안은 질척해져 있었다. 더 원하나. 으음.
다음으로 나는 주저앉아 카호의 가랑이에 시선을 맞추고, 눈앞에서 로션 범벅이 된 인공 클리토리스를 혀로 굴렸다.
『햐웅!』
움찔하며 카호가 크게 떨었다. 핥기만 했는데도 가볍게 가버린 모양이다. 무릎이 가들가들 떨리고, 몸부림칠 때마다 위잉위잉 관절 모터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짜 몸이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센서 감도는 발군이다.
나는 카호의 클리토리스에 코를 밀어붙인 채 혀를 뻗어 카호의 인공 성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앙…… 타, 타츠야!』
달콤한 로션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하지만 혀로는 깊은 곳까지 닿지 않아, 억지로 벌린 구멍에 중지와 약지를 천천히 비집어 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가락을 받아들인 카호의 안쪽은 꽉 조여왔다.
『앗…… 거기, 기분…… 좋아…….』
“움직인다?”
카메라 아이의 초점이 풀린 카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가락을 들락날락거렸다.
즈퓻, 뉘퓻 하는 음란한 물소리에 타이밍을 맞춰서,
『앙, 앙, 아앗! 아앗!』
참지 않고 마음껏 상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는 카호. 왠지 손가락 두 개로는 아직 부족해 보여서, 다른 쪽 팔을 카호의 엉덩이로 뻗어 중지를 인공 항문에 단숨에 찔러 넣었다.
즈푼―
『아아앙!』
다시 한층 더 크게 신음하며 몸을 뒤로 젖힌 카호. 무릎이 꺾여 쓰러질 것 같지만, 충전 스탠드 고정 중이라 자세 제어 기능이 작동해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타츠……야…… 굉장……해』
“카호는 똥구멍이 좋은가 보네? 손가락만 넣었는데도.”
『그런 거…… 아니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좌우로 필사적으로 젓는 카호. 입으로는 부정해도 카호의 인공 항문은 내 손가락을 조여온다. 한 번 중지를 엉덩이 구멍에서 뺐다가, 인공 성기와 마찬가지로 중지와 약지 두 개로 다시 어택했다.
즈푼―
『아아앗! 하지 마! 엉덩이 더러우니까!』
수치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앙 앙』 하는 신음은 멈추지 않는다.
“안 돼. 안 멈춰. 앞뒤로 동시에 괴롭혀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앞뒤로 손가락 두 개씩을 넣었다 뺐다 했다.
『아아―! 으으으으응!! 아앙! 하지 마아!! 타츠야아――!!』
딱히 엉덩이 구멍은 더럽지 않다. 카호는 배설을 하지 않는 로봇이니까 변도 안 나오고 냄새도 안 난다. 저항이 강한 건 생전의 감각이 다 빠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물론 그런 지적을 해봤자 카호는 슬퍼할 뿐이다. 싫어하면서도 연인에게 몸의 가장 치부인 곳을 유린당하는 배덕감에 카호의 흥분도가 높아지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성관계 후의 감정 로그를 보면 엉덩이 구멍을 공략했을 때 쾌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과거 기록에 남아 있다.
입으로는 싫다고 해도, 카호는 애널을 만져지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즈퓻, 즈퓻, 즈퓻 소리를 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카호의 신음은,
『앙! 아앙! 앗 앗 앗 앗!! 아아앗!』
기분 좋은 듯 달콤한 목소리로 변해갔다. 카호의 고조에 맞춰 나도 손가락 속도를 올렸다.
즈퓻즈퓻즈퓻즈퓻. 쥬퓻쥬퓻쥬퓻.
모유도 못 나오고, 아이도 못 낳고, 배설조차 하지 않는 기계 몸. 하지만 인공물일지라도 바기나와 애널이 탑재되어 한정적이나마 성적 즐거움이 허락된 카호는, 그 작은 자유를 마음껏 만끽했다.
『아아앗! 타츠……얏…… 이제…… 나…… 올 것… 올 것 같아…… 으으응』
“카호, 가버려도 돼.”
그 말과 함께 나는 두 구멍에 박은 손가락을 꾸욱 하고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안 돼애…… 앗 앗 앗…… 아아아아아아아아――!!』
노이즈가 섞일 정도의 커다란 비명. 카호의 몸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전신을 긴장시키고, 이어서 파르르 맥동하며 몇 번이고 크게 떨었다. 내부 장갑이 삐걱거리고 모터 소리가 울릴 정도의 거대한 절정.
맥동이 잦아들고도 몸을 움찔움찔 떨며 소리 없는 오열을 터뜨리고 있었다.
카호의 입가에선 인공 타액이 보기 흉하게 흘러내렸다.
『아……아…… 삐―!! CPU 처리 고부하가 연속되었으므로 인격 소프트웨어를 재기동합니다…… 기체에 손을 대지 마십시오.』
성감 센서 처리를 견디지 못하고 자동으로 재기동 처리가 실행되었다.
눈이 풀린 채 충전 스탠드 케이블에 매달려 간신히 서 있던 카호는, 방금 전까지 절정에 달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렷 자세가 되었고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입가에서 흐른 채인 침이 턱 보호 커버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삑, HS-207PS1114KS는 인격 소프트웨어 재기동을 완료했습니다. 퍼스널 모드로 기동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앙…… 타, 타츠야?』
몸을 움찔 떤 카호의 표정에 다시 감정이 깃들었다.
“왔어, 카호? 기분 좋았어?”
『……응.』
카호는 뺨을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격 소프트웨어가 재기동되면서 기분이 리셋된 탓인지, 방금 전의 추태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뒷정리는 내가 해둘 테니까, 일할 때까지 슬립 모드로 해둘까?”
『……응, 고마워.』
그 말을 신호로 나는 메인터넌스 스탠드 콘솔을 조작해 카호의 모드를 전환했다.
『삑, 슬립 모드로 이행합니다. 충전을 재개합니다. 배터리 잔량은 74%. 충전 완료까지 1시간 48분 남았습니다.』
카호가 격렬하게 성적 흥분을 느꼈던 탓에 충전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업무 모드로 전환되는 20시에는 아슬아슬하게 충전이 끝날 테니 세이프다.
그나저나 카호의 즐거움이 나와의 성관계뿐이라는 건 너무 가엾다. 벗을 수 없는 외피와 눈에 띄는 안테나 때문에 휴일 외출도 꺼리고, 뒤처리가 번거롭다며 식사도 피한다. 게다가 오늘도 20시부터 아침 6시까지 10시간이나 업무 모드라 카호에겐 자유 시간조차 거의 없다.
“대학 생활 좀 안정되면 시간 더 많이 내줄게.”
나는 카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슬립 모드 중에도 카호의 몸은 가끔 움찔, 움찔하며 작게 파동쳤다. 성감 신호가 흐르고 있는 영향이다. 그러고 보니 입 주변도 가랑이도 온갖 즙 범벅이다. 카호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으니 티슈를 가져왔다. 흔적은 지워둬야지.
“이 틈새는 닦아내기 힘들단 말이지.”
카호의 턱부터 목덜미는 붉게 도색된 딱딱한 수지제 커버로 덮여 있고, 부드러운 인공 피부와의 사이에 미세한 홈이 있다. 여기로 흘러든 인공 타액을 닦기 위해 피부 부분을 누르며 티슈로 물기를 제거해 나갔다.
“설마 입안에도 꽤 남았나…… 우와.”
카호의 양 뺨을 꾹 눌러 입을 벌리게 하자, 걸쭉하게 두 사람의 혼합액이 쏟아져 나왔다. 눈을 감은 채 점액의 광택이 카호의 아랫입술을 덮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열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슬립 모드인 카호의 입술을 뺏고, 흘러넘치는 점액을 빨아내고 있었다. 박하 향과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생각해보면 카호를 기분 좋게 해주는 동안 내 가랑이는 아플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겨우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기운이 넘쳐버리고 말았다.
카호의 의식은 프로그램으로 제어되기 때문에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일은 없다. 그 안도감이 나의 열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번에는 내 왼손 검지와 중지를 카호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의사 체온의 온기가 남은 그곳은 부드럽고 점액에 젖어 있어서…… 무서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구츄…… 구츄.
천천히 손가락을 넣었다 빼며 카호의 입안에 남은 점액을 긁어냈다. 이건 뒷정리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슬립 모드 중인 카호는 신기하게도 의지가 있는 것처럼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움찔, 움찔 몸을 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호의 입에 처박았던 손가락을 빼고, 묻어 나온 점액을 직접 핥아 먹었다.
새 티슈를 집어 들고 이번에는 가랑이로.
“이쪽은…… 더 심하네.”
인공 성기를 수납하는 걸 잊은 카호의 가랑이에서는 여전히 인공 애액이 뚝뚝 떨어져 발 사이의 웅덩이를 넓히고 있었다. 민트 플레이버 인공 애액에 포함된 미량의 미약 성분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 같았다.
티슈를 넉넉히 떼어 카호의 가랑이에 갖다 댔다.
『앙』
갈라진 틈을 훑듯 티슈를 문지르자 움찔하며 몸이 위로 튀어 올랐다.
“우와!”
나는 얼른 티슈를 뗐다. 심장이 움켜쥐어진 듯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성감 센서에 기체가 반응했을 뿐이다.
“하아…… 놀래키지 마, 카호.”
카호는 슬립 모드다. 관리자가 조작하지 않는 한 의식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카호의 인공 성기와 인공 항문에 남은 점액을 닦아내야 한다. 나는 주저앉아 카호의 가랑이에 시선을 떨구었고……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는 크레바스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버렸다.
쥬릅!
『앙』
감정 없는 신음. 이제 놀라지 않는다.
즈즈즛! 쥬퓻. 피챠챠.
『앙, 앙』
아무 생각 없이 카호의 인공 성기에 혀를 처박고 개처럼 카호의 애액을 탐했다.
“즈릅…… 음. 하아 하아. 다음은 애널인가.”
뒤쪽 인공 항문은 충전 스탠드가 방해되어 입이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었다. 안에서 손가락을 살짝 굽혀 숟가락처럼 만들며 즈푸푸 점액을 긁어냈고, 입안의 것과 마찬가지로 핥아 먹었다. 인간이라면 항문의 점액을 핥는 행위는 연인 사이라도 거부감이 들겠지만, 카호의 애널은 배설용이 아니라서 냄새도 안 나고 더럽지도 않다. 감미로운 향기만이 내 비강을 자극했다.
“쥬릅… 맛은 앞이나 뒤나 똑같네. 음, 이 향기는 진짜 취할 것 같아.”
카호의 성기와 항문은 세척하기 쉽도록 내부에서 직결되어 있으며, 자궁 위치에 있는 인공 애액 탱크에서 같은 액체가 공급되는 구조였다.
이제 허벅지에서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애액과 발치의 웅덩이를 닦아내면 끝이다.
하지만…….
“아아…… 나, 어떻게 된 건가.”
하지만 카호의 애액 성분 때문인지, 미지근하고 질척해진 카호의 인공 성기와 항문을 핥아낸 탓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청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성기와 항문의 조형은 그대로. 구멍은 닫히지 않았다. 나도 참고 있단 말이야. 슬립 모드 중에는 의식도 없고 기억 데이터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만……이다. 카호, 괜찮지?”
대답은 없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카호의 눈앞에 서서 카호의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마법이 풀렸다.
“어…… 어라? 아…… 나, 지금 뭘…….”
마주 본 카호의 표정은 평온하고 온화한 미소. 입만은 아까 내가 억지로 벌려 침을 흘린 채였지만, 그 표정은 나를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팽팽하게 부풀었던 가랑이는 급격히 시들었으며,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뭐 하는 거야, 나. 이러면…… 카호를 강간하려고…… 아니, 강간한 거나 다름없잖아.”
카호의 의식이 없는 걸 틈타서, 위로해준 뒤의 뒷정리라는 핑계를 대며 입과 질과 애널을 마음대로 유린해버렸다. 심지어 카호의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고까지…….
“하하, 나, 여자친구를 오나홀처럼…… 최악이다.”
퍽―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잇몸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카호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카호의 기억을 훔쳐보고, 카호의 생각을 읽고, 몸까지…….”
내가 하는 짓은 대학에서 내가 경멸하던 놈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카호의 몸을 깨끗이 닦아내고 서둘러 카호의 방을 빠져나왔다. 내 방 문을 거칠게 열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도 없는 정적 속에서 방금 전의 내 행동을 되씹었다.
“내 안에서 카호는 어느샌가 로봇이 되어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소중한 연인의 마음속을 앱 따위로 태연하게 훔쳐보고…….”
인간이라면 허용되지 않을 중대한 인권 침해. 카호의 마음도 기억도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데, 나는 어느덧 그 기능을 능숙하게 다루기까지 하고 있다. 이게 대학 수업의 영향인 걸까. 결국 어딘가에서 카호를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었던 걸까. 나도 카호를 괴롭히는 편의점 운영사 직원이나 제조사 엔지니어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
……아니,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해도 답이 안 나올 것 같다.
“가게나 보러 가야지…….”
기분이 가라앉아도 지금은 대목인 저녁 시간이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도와드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뭐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20시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6시 00분까지 본 기체가 점포 운영을 실시합니다. 인수인계가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본 기체가 대처하겠습니다. 관리자 권한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20시에 카호가 점포 인수인계를 하러 왔다.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박제된 미소에서는 조금 전의 눈물이나 정사 따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했다. 이건 꽤 견디기 힘들다.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인수인계를 하지만, 거의 매일 친딸에게 이런 시스템 메시지를 담담하게 듣는 카호의 부모님은 이 순간 어떤 기분일까.
미소를 띤 채 계산대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카호에게서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오늘의 일은 역시 카호에게 말할 수 없다. 관계가 깨져버릴 것 같은 공포 때문인지, 단순히 카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인지. 나도 참 겁쟁이다.
씻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도 제어 앱으로 카호의 가동 상태를 체크한다. 카호 부모님은 딸의 앱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오늘은 평소보다 더 큰 죄책감이 느껴진다.
“내일 이후의 태스크 설정이랑 예정은…… 응?”
평소라면 태스크 따위 존재하지 않을 학교 수업 시간대의 스케줄이 차 있다. 서브 관리자인 나조차 모르는 태스크 설정. 카호의 소유권이 있는 편의점 운영 본부의 지시는 아닌 것 같다.
설정된 시간대의 카호 기억을 확인하자 흰 가운을 입은 과학 교사가 영상에 잡혔다.
“또 빵셔틀 노릇을 하고 있었나. 교사한테까지 편리한 로봇 취급당하다니…….”
인간에게 거역할 수 없는 카호는 가끔 이런 일을 겪는데, 카호만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게 화가 난 나는 무책임한 교사를 조금 골탕 먹여주기로 했다.
『…윽! ……야! 타츠야! 타츠야! 타츠야! 제발 일어나, 타츠야!』
어제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반동인지, 좀처럼 눈이 안 떠진다…….
『타츠야! 진짜! 7시 30분에 깨워달라고 명령한 건 타츠야잖아! 일어나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눈앞에는 외피 차림의 카호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휴대용 계산기 단말기가 팔에 장착된 채인 걸 보니 편의점에서 여기로 직행한 모양이다. 카호의 밝은 미소를 보니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든다.
“음…… 안녕, 카호. 미안해, 깨워줘서. 지금 몇 시야?”
『정말. 7시 36분 41초라고? 옛날처럼 뺨을 때리거나 어깨를 흔들 수도 없으니까 빨리 일어나!』
카호의 프로그램은 인간의 신체에 접촉할 때 엄격한 제약이 걸려 있다. 폭행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인격 소프트웨어가 긴급 정지되기 때문에, 카호는 목소리를 높여 나를 깨워준 것이다. 미안하네.
『이제 일어났어? 그럼 나 학교 갈 준비 해야 하니까 갈게.』
“아, 잠깐만! 카호!”
떠나려던 카호를 불러세웠다.
『응? 왜 그래?』
“내일모레 방과 후에 데이트 안 할래?”
『정말?』
그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졌지만, 곧 의아한 표정으로 바뀐다.
『……근데 나 내일모레 저녁에는…… 어라? 15시에 교문 앞에서 대기, 관리자와 동행할 것으로 바뀌었네.』
“학교 선생님 부탁보다 관리자 명령이 당연히 우선순위가 높으니까.”
자다 깨서 까치집이 된 머리로 거드름을 피워봤자 폼은 안 나지만, 카호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아……. 고마워. 정말 기뻐. 솔직히 선생님이 명령하면 짐 나르는 거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괜찮아. 카호한테만 시키지 말고 다른 학생들 시키면 되니까. 그날 대학 수업은 3교시까지니까 카호네 학교로 데리러 갈게. 가고 싶은 곳 정해둬. 단, 여기서 20km(20km) 이내여야 한다?”
주 관리 점포(즉 집)에서 20km 이상은 마음대로 갈 수 없도록 카호는 위치 정보가 파악되어 행동 범위에 제한이 걸려 있다. 점포 비품이라 본사에 2주 전까지 신청해서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멀리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럼 갈 곳 생각해둘게! 아, 맞다. 나도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어.』
카호는 다시 한번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 몸, 타츠야 마음대로 해도 돼. 설령 인격 소프트웨어가 멈춰 있더라도, 마음껏 써줬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글쎄? 하지만 말이야, 로봇은 무슨 짓을 당해도 임신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참지…… 마. 나한테선 그게 끝!』
카호는 그 말만 남기고 총총히 나가버렸다.
“……여전히 예리하네.”
카호의 예리한 직감은 뇌가 기계화되고 인격 소프트웨어로 이식된 후에도 여전히 건재한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