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에 265kf인데 뭐 딴거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리소스 퍼먹네요 ㅋㅋㅋ
그나마 좀 가벼운 언어모델 썼는데도 ㅋㅋ;
퀄리티 우선으로 돌리니까 시간당 300kb 정도?
언어모델은 gemma-4-26B-A4B-it-UD-IQ4_XS 이거 썼어요
기억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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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해…… 넓다……!"
청명한 하늘처럼 시야가 끝없이 펼쳐진 부지. 그 중심에는 하늘을 가를 듯 솟아오른 교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궁전이라 착각할 만큼 장엄한 건물을 축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늘어선 광경은 마치 하나의 수도를 마주하는 듯했다. 그 풍경 속에 녹아든 것은 흰색 위주의 교복을 입은 수많은 소녀였다.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소녀들의 머리 위에는 천사 같은 헤일로가 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등이나 허리, 머리에서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이른 아침의 여유 덕분인지, 소녀들은 담소를 나누거나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알겠니?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은 놓지 말아야 해. 이제부터 트리니티 종합학원 초등부 학생으로서의 몸가짐을, 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들어야 한다."
압도적인 풍경에 넋을 잃고 있던 찰나, 차분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목소리가 들려와 정신을 깨웠다. 맞잡은 손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그곳에는 키리후지 나기사가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연한 금발과 봄바람에 흔들리는 순백의 날개를 가진 소녀는, 평소와 달리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윽!"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런 취급을 받으면 자연스레 등줄기가 펴지며 몸이 굳어버린다.
"나기 쨩,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지 마! 나즈 쨩이 긴장하잖아?"
그때,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벚꽃을 닮은 분홍색 머리를 옆으로 묶어 올린 번 헤어, 반팔 차림의 매끄러운 팔, 그리고 허리에서 돋아난 날개. 스노오리 미카가 비어 있던 내 손을 잡아 나기사로부터 떼어놓았다.
"미카 씨가 너무 해이해지셨어요! 이제 우리는 하급생이 아니랍니다. 중급생으로서……"
"아ー 네네. 중급생으로서 자각을 가지고,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모범적인 학생으로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뭐 그런 거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잖아. 아직 상급생도 아닌데."
"아니요, 빠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말이죠."
"알았어, 알았어! ……앗! 그럼 나도 안내해 줄게! 이 학원의 선배로서 말이야."
미카는 화제를 돌리며 자신만만하게 손을 얹었지만, 그 얼굴에는 묘한 음모가 서린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니요, 우선은 나즈사의 언니인 제가 그 책무를…… 나즈사, 알겠니? 우선은 학문의 기본인 교실부터……"
"네에~! 그럼 우선 추천 매점부터 안내해 드릴게☆ 나즈 쨩, 따라와!"
미카는 나기사로부터 도망치듯 내 손을 잡아끌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기 쨩, 두고 갈 거야~!"
"기다려 주세요! 미카 씨!"
***
여러분은 <블루 아카이브>라는 게임을 알고 있는가.
투명한 세계관의 학원 도시 키보토스를 무대로, 개성 넘치는 학생들이 총기를 들고 펼쳐나가는 군상극. 왕도적인 청춘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 중에는 '에덴 조약 편'이라 불리는 장이 있다. 키보토스의 3대 학원 중 하나인 트리니티 종합학원과 게헨나 학원이 과거의 악연을 씻고 무의미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다. 청춘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진흙탕 같은 정치 싸움이 무대가 되는 장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어서, 모두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일상적인 풍경과는 결을 달리한다. 저마다의 속내를 품은 채 평화를 염원하는 조약, 그 조약을 저지하려는 과거의 악연, 음모에 휘말리는 무고한 소녀들, 그리고 마주하게 될 최악의 결말과 끝없는 원망과 절망까지.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한 명의 '어른'이 움직임으로써, 이야기는 역전의 길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어렵고 고귀한 마음을 깨닫는다. 고난 끝에 학생과 선생님이 거머쥐는 최선의 미래. 그곳에 있는 것은 결국 왕도적인 청춘의 기록이다.
서사의 격차와 뜨거운 전개, 그 사이의 균형을 정교하게 맞춘 이 이야기는 블루 아카이브가 가진 최고의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직접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에덴 조약 편에는 내게 있어 단 한 명의 최애 캐릭터가 있다. 물론 모두를 아끼지만, 굳이 한 명만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키리후지 나기사.
트리니티 종합학원 학생회 '티 파티'의 멤버이자, 에덴 조약 체결을 담당하는 핵심 인물이다. 온화한 말투와 성품, 찻잎 수집과 과자 만들기, 정원 가꾸기를 즐기는 아가씨다운 모습의 그녀는, 조약을 저지하려는 스파이의 정보를 추적한다. 그러나 강한 책임감과 대의, 그리고 의심암귀에 사로잡힌 나머지 결국 악랄한 수단까지 마다하지 않게 되고, 끝내 소중한 친구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덴 조약 편에서의 나기사를 좋게만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의심스러운 이들을 모은 보충수업부를 쓰레기통이라 부르고, 폭압적인 수단을 동원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 모습은 흡사 악녀와도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 그리고 소꿉친구와 재회하며 그녀는 '믿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되찾고 미래로 발을 내디딘다. 다만, 그녀에게는 깊은 흉터가 남았다.
그 상처의 대상은 소중한 친구인 아지타니 히후미였다. 나기사의 몇 안 되는 친구이자 아끼는 인물. 어떤 오해로 인해 히후미에게도 스파이 용의가 씌워졌고, 의심암귀에 빠진 나기사는 용의자를 퇴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보충수업부에 그녀를 입부시켜 퇴학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사건이 해결된 후 나기사는 보충수업부 전원에게 사과하며 화해할 수 있었으나, 단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나기사가 스파이의 표적이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보충수업부는, 홀로 남겨진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기사가 나타난 보충수업부의 아즈사와 하나코에게 지휘관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하나코가 전언처럼 던진 한마디.
“아하하…… 저기, 나름대로 즐거웠어요. 나기사 님과의 친구 놀이.”
그 말투는 아지타니 히후미의 것이었다.
나기사는 마음 한구석에서 히후미만큼은 스파이가 아닐 것이라 믿고 있었다. 비록 용의는 씌워졌을지언정, 그토록 다정하고 의지가 되는 히후미가 그럴 리 없다고.
실상은 하나코의 단순한 심술이었고 이후 오해는 풀렸으나, 그 충격적인 대사는 나기사의 정신에 씻을 수 없는 낙인을 남겼다.
차를 마시다 문득, “아하하……” 하고 히후미의 웃음소리가 뇌리를 스쳤을 때, 입안에 머금고 있던 차를 뿜어버릴 정도로 증상은 심각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단숨에 악역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공주님 못지않은 근성을 겸비하고, 히후미를 연모하면서도 늘 겉돌기만 하며, 정작 그 히후미는 다른 이에게 빼앗겨 버린, 트라우마를 안게 된 가여운 아가씨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의심했던 보충수업부원 중 배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스파이는 있었으나 배신자는 아니었다). 진범이 밝혀졌을 때 그녀가 지었던 표정은 너무나도 애처로워…… 부디 블루 아카이브를 플레이해 주길 바란다. 스토리라면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소녀에게는 웃는 얼굴이 잘 어울린다. 그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동시에 침울한 얼굴 또한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무겁고 어두운 하늘이 있기에 맑은 하늘이 더욱 빛나듯, 웃음에 곁들여지는 침울함이 깊어질수록 그 빛남은 배가된다.
에덴 조약 편은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통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평범한 성벽을 가진 오타쿠였던 나는, 설마 했던 블루 아카이브의 세계에 TS 전생했다.
그것도 키리후지 나기사의 여동생으로서. 그렇게 된 이상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그래, 이것은 신의 계시다.
나기사 님을 아주 조금만 괴롭히고, 아주 조금만 침울하게 만들어서…… 그녀의 정신을 무너뜨리라고.
***
“그렇게 뚱한 표정 짓지 마. 내가 잘못했다니까.”
“용서 못 해요……. 제 말을 듣지도 않고 여동생을 멋대로 데리고 나가더니, 결국 가장 먼저 가르쳐 주는 게 오락이라니요. 아시겠어요? 저희는 여기서 배움을—”
“에~ 그래도 맛있는데? 그치, 나즈 짱.”
“응! 미카 짱 고마워! 정말 맛있어!”
봄이 되어 마침내 트리니티 종합학원에 입학한 여동생, 키리후지 나즈사에게 언니로서의 모범을 보이려 의욕을 불태웠건만, 소꿉친구인 미카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나기사는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나즈사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나기 짱도 먹을래?”
“저는 됐습니다. 이미 아침 식사를 마쳤으니까요.”
황금빛 꿀을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폭신한 팬케이크를 먹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나기사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부터 의욕 넘치게 두 사람을 깨운 탓에 시간도 여유로웠다. 재촉할 수도 없는 처지라, 그저 두 사람이 다 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뛰어다녀서 머리가 흐트러졌네……. 자, 나즈사. 언니가 고쳐줄게.”
갓 구운 팬케이크 향기에 솔직히 그냥 먹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던 찰나, 평소보다 더 정성껏 세팅했던 나즈사의 하프업 헤어가 흐트러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나즈사가 소꿉친구인 미카의 자유분방한 언동을 닮아가는 것이 나기사의 고민이었다. 이번 입학을 계기로 이를 바로잡고 다시 자신을 본보기로 삼게 하려 했으나, 첫날부터 이 모양이니 앞날이 걱정될 뿐이었다.
“언니, 고마워!”
……그렇게 순수한 미소를 보여주면 꾸짖을 수도 없다.
“……움직이지 마. 금방 끝나니까.”
혈육의 증거인, 자신을 꼭 닮은 약간 곱슬기 있는 금발을 빗어 넘긴다. 만두머리는 예전에 미카가 멋대로 만들었을 때 나즈사가 마음에 들어 한 이후로, 반드시 그렇게 세팅하도록 하고 있다. 비단을 다루듯 정성스럽고 익숙한 손길로 머리를 묶으며, 나즈사, 미카와 함께할 앞으로의 학원 생활을 그려본다. 미카뿐만 아니라, 원래 그랬는지 나즈사도 최근 들어 그런 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휘둘릴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생하겠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분명 즐거울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
“정말, 시스콘이라니까~”
방금 한 생각은 철회한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사람에게 여동생을 맡겨서는 안 된다. 나즈사뿐만 아니라 미카 씨도 확실히 교육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미카 씨? 그 팬케이크, 제가 먹여 드릴까요?”
“히익……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후의 생활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셋이서 하는 다과회나 쇼핑, 모여서 하는 시험 공부. 학생으로서 누리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가끔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예상대로 말썽을 피우는 두 사람을 꾸짖기도 하는 등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여서 즐거웠다.
소중한 친구도 생겼다. 딱딱한 말투 탓에 거리감을 두기 쉬운 나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주고, 때로는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노력파의 가련한 친구.
최근에는 에덴 조약 건으로 업무에 쫓기는 나날이 이어져, 느긋하게 다과회를 열 시간조차 내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조약이 체결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때는 세아 씨도 초대하고 싶다. 모처럼 들여온 특제 찻잎과 과자로 손님을 맞이하며, 다 함께 느긋하게 차를 즐기는 그런 시간을.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당연했던 일상은 무너져 내렸다. 어린 마음, 신념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깊은 오해, 그저 구원받고 싶었던 일편단심의 정과 그 끝에 싹튼 원망이 일상을 해체했다.
기어 다니는 어둠에 사로잡힌 소녀들은 전제를 의심하고, 상대를 의심하며, 짐작과 진실마저 의심하게 된다. 슬프고도 괴로운, 뒷맛이 씁쓸한 미래를 향해 소녀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