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업한 작품들에 인장을 넣을 때, 반드시 아래와 같이 표시합니다
번역: 인공지능 번역기 / 윤문 및 식자: AA4
저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번역은 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습니다. 제가 한 것은 '윤문'과 '식자'입니다.
외국어 작품을 번역할 때 대부분 초벌번역 -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윤문 - 의미 파악의 단계를 거칩니다. 실력자분들은 초벌번역과 윤문이 한 번에 되시겠고, 저 같은 사람은 초벌변역을 AI에게 의지하고, 윤문을 스스로 해결합니다.
그 결과를 지금까지의 독자분들이 누리고 계셨습니다만, 이제 AI가 발달하면서 초보적인 윤문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초창기 파파고 번역의 품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기계번역은 매우 훌륭해서, 거의 윤문을 안 해도 될 정도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해온 '번역'도 윤문의 과정을 거쳤다고는 해도 사실 전문가분들이 보시기엔 아주 엉망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 AI번역보다 더 심했을지도 ㅋㅋ 그래도 참아주시고 용납해주셨기에 저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지금의 기계번역으로 올라오는 작품들에게 부족한 것은 작품 전체를 이해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세부적인 의미 파악 및 윤문과 보기좋은 식자인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거기까지 가지 않고 지금 이정도라도 이미 감상에 무리가 없는 품질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대세를 막을 수는 없지 않나 합니다. AI를 이용한 프로그램의 품질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약간만 배우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손쉽게 번역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직접 자신이 번역하든지, 아니면 남의 기계번역 작품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좀 더 AI가 발달해서 현재의 기계번역이 못하는 부분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취미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기계번역을 이용하게 되고, 소수의 고수분들만 남아서 '유료'로 작업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 중에 날먹하러 기계번역 이용하다가 들키는 사고도 생기겠죠 ㅋㅋ) 저도, AI기술이 그 수준까지 발달하면 현재의 작업을 중지하고 제가 원하는 작품을 기계번역으로 만들어 혼자 감상하게 될 거 같습니다.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모자상간물이 너무 없어서 제 스스로 작업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모자상간물 작가를 소개하고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층을 넓히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 딸깍하고 올라오는 작품들을 보면 수량도 많지만 종류도 다양해서 모자상간물도 그중에 꽤 있는 걸 보면, 저도 이제 작업하지 말고 그냥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차피 작업할 때마다 윤문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을 이해했기 때문에, AI가 해준 기계번역을 머리속에서 윤문하는 건 익숙하거든요. 포토샵으로 일일이 식자하고 결과물 검토하고 업로드하는 과정을 생략해도 되니까, 제 개인적인 즐거움만을 따지자면 이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죠.
중구난방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죠.
기계번역은 대세이며, 거스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