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주소 :
https://www.ciweimao.com/book/100156008
한달 국룰
작품소개 :
"엽(叶) 사부, 이 아이를 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엽문은 눈앞에 있는 상처투성이 은발 소녀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지?"
"실비."
……
10년 후
"영춘, 실비. 가르침을 청합니다."
"왕 사부, 놈의 중앙을 파고들어!"
"이 주먹에는 10년의 공력이 담겨 있다!"
[주인공 이름인 '엽문(叶闻)'은 영춘권의 대가 '엽문(叶问)'의 언어유희]
1화
제1장 실비, 권법을 배우겠느냐?
수년이 흐른 뒤에도 엽문은 그날 새벽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날 집 밖은 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는데, 마치 흉측하고 공포스러운 거대한 백색 괴수 같았다.
“엽 선생님, 지난번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회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남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는 게 두려운 듯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엽문은 남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반년 전 강도 떼로부터 구해주었던 상인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도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에 잠긴 엽문을 보며 허리를 살짝 굽히고는 작게 웃었다.
“기억하지 못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지요.”
남자는 말을 마치며 등 뒤에서 작은 소녀 한 명을 끌어냈다. 아이는 은발에 커다란 눈을 가졌지만, 몸에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끔찍한 흉터가 가득했다. 도대체 어떤 모진 학대를 받았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아이는 원래 제 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예약을 했던 주인이 사고를 당해서요. 밤중에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맞아 죽었다더군요.”
“듣기로는 그 구매자가 죽기 전 입고 있던 검은색 코트도 범인이 훔쳐갔다는데, 아마 재물을 노린 살인 사건이었나 봅니다.”
“그렇군.”
엽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조금 의아했다. '당시 내가 그 코트를 가져오지는 않았는데, 소문이 어째 점점 와전되는군.'
남자는 은발 소녀를 엽문 쪽으로 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이가 몸이 약해서 여행길의 고생을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데려가 봐야 길 위에서 죽을 게 뻔하니, 엽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그 말에 엽문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에게 말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는군.”
남자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 모자에 가려졌던 입가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이 아이는 잡초 같은 존재입니다. 살든 죽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죠.”
“그러니…… 엽 선생님께서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남자의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법한 저속함이었다.
“하지만 엽 선생님께서 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새로 골라다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이 꼬맹이는 살길이 전혀 없겠지만요.”
엽문은 고개를 숙여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멍한 표정에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어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 같았다. 오직 미세하게 떨리는 몸만이 아이의 겁에 질린 두려움을 드러낼 뿐이었다.
“좋다, 이 선물은 내가 받지.”
“그럼…… 앞으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말을 마치며 모자를 다시 한 번 깊게 눌러썼다. 그리고 더는 군더더기 없이 몸을 돌려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엽문은 남자의 뒷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배웅한 뒤,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은발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 시선을 위아래로 훑었다.
은발 소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가도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는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전 주인이 말했었다. 그가 자신을 볼 때는 절대 시선을 피하지 말라고.
엽문은 턱을 문지르며 소녀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시선은 주로 소녀의 드러난 하얀 피부에 머물렀다.
솔직히 말해 아이가 조금 마르긴 했지만, 생김새는 아주 훌륭했다. 그의 고향 말로 표현하자면 '분장옥탁(粉雕玉琢)', 즉 뽀얗고 예쁘장하게 빚어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겁에 질린 모습은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몸에 남은 흉터들이 그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엽문의 거침없는 시선에 소녀는 더욱 불안해하며 작은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는 처량한 모습이었다.
엽문은 무릎을 굽혀 앉아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달랬다.
“걱정 마라.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머리에 닿는 손바닥의 온기에 소녀의 공허한 눈동자에 작은 희망이 감돌았다. 눈앞의 이 남자는 어쩌면 전 주인들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 더 큰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그저 매질만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이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엽문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착하지, 옷을 벗으렴.”
“……네?”
……
30분 뒤, 은발 소녀는 알몸으로 나무통 안에 몸을 담근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통 안에는 수많은 약초가 둥둥 떠다니며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좀 더 푹 담그고 있거라. 이 약초들이 네 몸에 좋을 거야.”
엽문은 마치 국을 끓이는 사람처럼 옆에 서서 통 안에 약초를 더 집어넣었다. 이 귀신 나올 법한 마을에는 물건이 별로 없었지만, 약초만큼은 잡초처럼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특히 그 분홍색과 파란색 꽃은 정말 어디에나 피어 있었다.
소녀는 멍하니 엽문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지만, 엽문이 말을 걸지 않으니 감히 먼저 입을 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무통 안에 약초를 충분히 넣었다고 생각한 엽문은 그제야 아이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꼬맹아, 네 이름이 뭐니?”
소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주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비예요.”
“실비…… 성은 없니?”
실비는 몸을 웅크린 채 수면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으니까, 성을 가질 자격이 없거든요.”
“무슨 놈의 규칙이 그 모양이야.” 엽문은 투덜거리며 실비의 젖은 은발을 쓰다듬었다. 실비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실비를 보며 엽문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가련한 아이였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실비에게 물었다.
“실비, 너는 무엇을 가장 싫어하니?”
실비는 멍해져서 주저하며 엽문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듯 감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엽문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며 나직하게 실비를 타일렀다.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보렴. 아무도 꾸짖지 않을 테니까.”
실비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다정한 엽문의 표정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가장 싫어하는 게…… 싫어하는 게……”
“응, 괜찮아. 계속 말해보렴.” 엽문이 미소 지으며 격려했다.
“누가 제 머리를 만지는 게 제일 싫어요.”
엽문의 몸이 굳었다. 실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오른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실비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당황한 엽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대머리 될 것 같아서요.”
엽문은 어색하게 손을 거두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하고도 기묘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살짝 짓궂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실비야.”
“네.”
“그럼 권법 배우는 건 싫으니?”
“권법요???”
실비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진난만한 눈으로 엽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 같았다.
엽문은 아이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 이어갔다.
“싫지 않다는 뜻이구나.”
“그럼 앞으로 나랑 같이 권법을 배우자.”
“영춘(咏春)이라고 한단다.”
주인공이 천하제일무술대회에서 준우승한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