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메카갤 연구실에 투고되었던 Kelbin 님의 장편 단편 『점검 중입니다.』입니다.
남성들뿐인 전선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적의 공격으로 사지를 잃고 만 기계화 병사 타치바나 리사.
그녀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Kelbin 님, 게재가 이렇게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처음 이 부대에 배치됐을 때, 나 타치바나 리사 소위는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귀찮은 곳에 떨어졌구나 싶어 한숨만 나왔다.
나 말고는 여성 병사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장이며 동료들이며 죄다 남자들뿐이었으니까.
이 부대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제18사단, 제15부대.
게릴라가 잠복한 밀림 속에 기지를 두고,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부대였다.
요즘 세상에 여군이 아예 없는 부대 따위 우리 군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군 홍보처에서 그렇게나 자랑질을 해대더니, 막상 와보니 나 말고는 여자가 없었다.
다음에 홍보처 놈들을 만나면 반드시 따져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이 남자 소굴에 던져진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불안한 게 당연했다. 설령 내가 강력한 공격 능력을 갖춘 의체병(義體兵)이라 해도 말이다.
전선은 현재 확대 중이었다.
게릴라들은 밀림 곳곳에 네트워크를 넓히며 우리에 대한 저항을 숨기지도 않았고, 모 강대국이 게릴라들에게 몰래 원조를 해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는 등 흉흉한 상황이었다.
부대장 설명에 따르면, 전선이 넓어지면서 군이 부대 창설과 증강을 반복하다 보니 평소라면 지켜졌을 남녀 성비나 인종 비율이 인력 부족과 인사과의 실수로 엉망이 됐다는 거다.
뭐, 군법으로 정해진 비율이니 몇 달 안에는 시정될 거라며 부대장은 낙관적으로 말했다.
이 부대는 나 말고는 전부 남자라는 점 빼고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최전방 부대다.
평소엔 정찰을 돌며 적 세력을 발견해 소탕하고, 가끔 큰 작전에 투입돼 게릴라를 구축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최전방 부대.
그런 부대 안에서 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단순히 여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의체병이기 때문이다.
의체병이란 뇌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의 기관과 사지를 기계로 대체한 병사를 말한다. 사이보그 병사나 기계화 병사라고도 불린다.
나는 열여섯 살 때 의체병에 지원해 개조를 받았다. 올해로 종군 경력 3년 차다.
밀림에서의 강행 정찰이 가능한 타입이며, 마음만 먹으면 열악한 장비뿐인 게릴라 한 부대 정도는 통째로 섬멸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 능력을 갖춘 아주 비싼 의체다. 내 정비 기재만 컨테이너 하나를 꽉 채울 정도니까.
이 부대에서 내 역할은 아주 간단했다.
적 게릴라들이 가끔 끌고 나오는 전차 같은 기계화 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또 아주 드물게 전장에 나타나는 무선 조종 로봇 병사도 위협적이기에,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게 내 일이었다.
물론 나 말고 다른 병사들은 다 맨몸이다. 내가 그들을 지키기 위해 배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뇌가 달린 로봇 같은 존재다.
이런 기계 여자 따위에게 흥미를 가질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 그런 근거 없는 막연한 생각으로 나는 불안감을 억눌렀다.
오늘 정찰 임무도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됐다.
내가 부대에 배치된 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 부대가 담당하는 지역은 비교적 평온한 곳으로, 근처에 마을도 없고 지금까지 게릴라 거점이 발견된 적도 없는 구역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았다. 적의 아지트를 발견했으니까.
내가 참여한 정찰에서 판명된 건, 아지트 규모가 비교적 작다는 사실이었다.
공격은 즉시 시작됐다. 현재 장비로 섬멸이 가능하다는 부대장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수 시간의 교전 끝에 우리는 거점 제압에 성공했다. 게릴라 시체는 5구밖에 나오지 않았다.
"뭐야, 생각했던 대로네." 동료 중 한 명인 미나카타가 말했다.
"그러게, 별거 아니었어." 내가 대답했다.
"뭐야, 소위. 좀 아쉬운 거야?" 부대장 오오사와가 놀리듯 물었다.
우리는 지하 치고는 꽤 넓은 통로를 넷이서 탐색 중이었다. 아직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방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적의 생체 반응은 없었고 적병은 전멸했을 터라, 농담을 따먹을 여유가 있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대위님. …그저, 아무 일 없어야 다들 무사히 귀환할 수 있으니까…" 나는 조금 발끈하며 반박했다. 안 그래도 살육 기계로 오해받기 쉬운 게 의체병이다. 제대로 반박해서 오해를 풀어야 한다.
"맞아요. 타치바나 소위님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잖아요." 다행히 또 다른 동료인 사노도 함께 거들어주었다. 미나카타도 같이 항의해준다.
처음 왔을 때는 서먹서먹한 부대원들 분위기에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몇 달을 함께 지내다 보니 동료들과도 어느 정도 친해져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대위는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어, 하는 몸짓이다.
"위화감 안 느껴져?"
그가 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위화감… 말입니까?"
"그래. 규모가 작은 건 알겠는데… 갱도 폭이 좀 넓은 곳이 있단 말이지…" 대위는 그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갱도 크기요?"
대부분의 게릴라는 지하에 갱도를 뚫어 아지트를 만든다. 보통은 사람 한 명이 겨우 허리를 굽히고 지나갈 정도의 넓이다.
그런데 이 제압한 거점에는 사람 세 명은 족히 지나갈 법한 갱도가 뚫려 있었다.
"네, 확실히. 저도 그 점이 조금 신경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 거점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고, 아마 게릴라들이 여기를 더 확장해서 큰 기지로 만들려던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대위에게 내 생각을 말하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지. …근데, 왠지 기분이 좀 찝찝하단 말이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이런 예감이 잘 들어맞은 덕분이라며 오오사와 대위가 덧붙였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벽이 우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갱도의 토사가 쏟아져 내렸고, 순식간에 미나카타와 대위가 흙더미에 파묻혔다.
"괜찮으십니까! 대위님! 미나카타!" 사노는 멍하니 서 있다가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괘, 괜찮…다…" 대위가 대답했다. 다행히 그는 목까지만 파묻힌 정도였다.
문제는 미나카타였다. 완전히 파묻혀서 손발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대위는 일단 두고, 사노와 나는 미나카타를 구출하는 데 집중했다.
*끼익.*
갑자기 들려온 낯선 소음에 깜짝 놀라 그쪽을 보았다.
무너진 벽 너머에 비밀의 방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벽이 무너지면서 이쪽 통로와 연결된 듯했다.
소리는 그 비밀의 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체내에 내장된 탐적 기능을 풀가동해 정체를 확인하려 애썼다.
*끼이익.*
흙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로봇 병사인가!)
나는 총을 쏘며 사노에게 산개하라고 명령했다.
로봇은 키가 2미터(200cm) 정도에 폭은 1.5미터(150cm)쯤 되어 보였다.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형태도 뚜렷해졌다. 본 적 있는 놈이다. 분명 원격 조종으로 움직이는 타입일 거다. 기민한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른손에 장착된 30mm 기관총이었다.
*콰콰콰쾅!* 기총 소사음이 갱도에 울려 퍼졌다.
첫 공격은 어떻게든 피했지만 상황은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부대장과 미나카타는 파묻혀서 움직일 수 없다. 미나카타는 빨리 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로봇 병사의 기관총을 막아줄 엄폐물도 없고, 사노의 화력만으로는 로봇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절체절명이다.
하지만 내가 있다.
나라는 의체병이.
이런 기계화 전력에 대항하기 위해 내가 여기 배치된 것이다.
탄약은 귀환용으로 남겨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 말고는 저놈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지금 여기서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언제 건단 말인가.
"사노! 미나카타를 부탁해! 내가 저놈을 유인할게!" 그렇게 소리치고는 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정면으로 나섰다.
원격 조종 타입 주제에 상황 판단이 지나치게 정확한 기체였다. 게다가 움직임도 기민하다.
토사에 파묻힌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든 놈을 떼어놓기 위해 도망쳐 다녔다. 하지만 장소가 너무 나빴다.
방패 삼을 게 아무것도 없는 회랑 같은 곳이었다. 그저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으악!!"
강렬한 통증과 함께 왼쪽 전완부가 날아갔다.
충격을 견디며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도망쳤다. 하지만 이런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다.
엄폐물 하나 없는 이런 곳에선 표적이나 다름없다. 이대로라면 속수무책으로 파괴당할 뿐이다.
그런데 문득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왜 이렇게 사격이 정확한 거야?!)
아까부터 아슬아슬한 총격이 반복되고 있었다. 정말 치명상이 될 법한 공격들뿐이다. 이상하다.
원격 조종 타입 로봇 병사는 사격 명중률이 낮기로 유명한데.
혹시 사람이 타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런 공간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왜지?
이대로는 막다른 길에 몰릴 뿐이라는 초조함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도망치는 걸 멈추고 놈을 향해 유탄을 발사했다.
폭발에 놈이 잠시 주춤했다.
역시 유탄 정도의 파괴력으로는 로봇의 장갑을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
폭발에 주춤하는 로봇의 빈틈을 타서 뒤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등에 매달려 내 생각이 맞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 로봇 병사의 데이터는 내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다. 성능뿐만 아니라 형태까지도.
"찾았다!"
목 뒷부분. 확실히 그 형태는 내가 아는 로봇 병사와 달랐다. 둥그스름한 사각뿔 형태. 멀리서 보면 목 부분에 혹이라도 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머신건을 내던지고 그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손밖에 없는 지금, 그 손을 총에만 쓸 수는 없다.
금방 그곳에 도달했다. 붙잡기 쉬운 곳을 찾아 한 손으로 그 부분을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단단히 용접되어 있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적들도 여기가 약점이라는 걸 알고 보강했을 테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하려던 찰나, 왼쪽 다리에 충격이 가해지며 고꾸라졌다. 기계만이 가질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 나를 끌어내렸다.
"──윽!"
아까 유탄 폭발의 충격에서 회복한 로봇이 반격해온 것이다.
오른손 기관총으로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할 위험이 있어, 남은 왼손으로 내 다리를 붙잡고 인간답지 않은 힘으로 잡아당겼다. 나는 필사적으로 놈에게 매달렸다. 지금 손을 놓으면 끝이다. 갱도 벽에 처박혀 산산조각이 날 테니까.
"…끄아아아악!!!!"
뿌득,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내 왼쪽 다리가 뜯겨 나갔다.
로봇의 괴력과 놈에게 매달리려는 내 힘이 충돌한 결과, 허벅지 조인트 부분이 파손되며 왼쪽 다리가 뽑혀 나간 것이다.
"으으으윽…!"
고통을 견디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신했다. 역시 이놈은 원격 조종이 아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듯한 움직임은 내가 아는 타입에선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저기가 약점이다. 목 뒤의 저 혹.
통각이 너무 심하다. 즉시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할 수준까지 차단했지만 반응이 늦어졌다.
놈은 뜯어낸 내 왼쪽 다리를 내던지더니 곧바로 오른쪽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잡히면 끝장이다. 여기서 내가 당하면 동료들은 전부 도살당할 거다.
"큭!"
왼쪽 전완부는 날아갔지만, 남은 상완부를 잘 써서 배낭을 앞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남은 오른손으로 점착 폭탄을 꺼내 입에 물었다.
점착 폭탄. 한 번 달라붙으면 해제 약품을 뿌리지 않는 한 절대 떨어지지 않는 폭탄이다.
이걸 저 목 뒤에 붙여버리면 된다. 저 부분만 파괴할 수 있다면 이 전투는 끝날 것이다.
로봇의 왼손이 나를 잡으려고 제 몸을 더듬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잃은 탓에 피하는 것조차 벅찼지만, 어떻게든 놈의 목 뒤에 도달했다.
"이걸로 끝이야!"
*착!* 폭탄을 붙이고 즉시 놈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폭탄이 터지기까지는 1분이 걸린다. 저 폭탄이라면 충분히 저곳을 파괴할 수 있을 거다. 그사이에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 폭발에 휘말린다.
"앗!"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로봇의 손이 남은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폭탄을 붙일 때 빈틈을 보인 게 실수였다.
"이런…"
서둘러 놈의 손가락을 떼어내려 했다. 로봇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필사적인 노력도 헛되이 놈은 나를 끌어올려 거꾸로 매달았다.
마치 사냥감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처럼.
나는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이대로라면 고문당하다 죽을 판이다.
하지만 거꾸로 매달린 상태라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남은 오른손으로 다시 놈의 손가락을 벌리려 애썼다. 하지만 꽉 움켜쥔 로봇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큭…!"
내 저항이 귀찮았는지 로봇은 나를 갱도 벽에 내동댕이치기 시작했다.
"커헉!"
티타늄 껍데기로 보호받고 있다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은 내 뇌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아… 아아…"
이제는 속수무책이었다.
축 늘어진 채 거꾸로 매달려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으… 으으…"
뇌진탕 때문에 의식은 몽롱했지만,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장난감처럼 망가져서 죽을 거야…)
폭발은 아직인가. 점착 폭탄은 왜 안 터지는 거야. 저기가 파괴되면, 저 안에 들어 있을 뇌를 뭉개버리면 끝날 텐데.
천천히 놈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거기 달린 총구가 나를 향했다.
멍하니 내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타타타탕!* 묵직한 기총 소사음이 울렸다. 동시에 나는 강렬한 통증에 몸부림쳤다.
"!!!!!!!!!!"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충격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신체 경보 시스템이 피탄 부위를 알려준다. 배와… 가슴이다. 인공 폐가 망가진 모양이다. 아아, 이제 끝이구나. 머리가 뚫리겠지. 아무리 의체병이라도 머리가 날아가면…
다시 한번 묵직한 기총 소리가 울렸다.
경보 시스템이 남은 오른손도 어깨부터 날아갔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남은 건 매달려 있는 오른쪽 다리뿐인가. 하지만 그것도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라고 시스템은 시끄럽게 울려댔다.
(…정말… 지독하게… 정확하네…)
이런 타입의 로봇 기총은 정밀도가 떨어질 텐데. 머리를 쏘지 않고 야금야금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통증 차단도 잊고 있었다. 아니, 생명 유지 기구가 파괴된 거다. 그럴 여유가 없다. 가사(假死) 모드로 들어가야 한다. 오직 뇌만 살려두는 모드로 전환해야 해. 빨리. 빨리…
마음은 급한데 내 움직임은 하나하나 너무 느렸다.
초조함이 극에 달한 찰나, 무언가 번쩍였다.
뭐지?
눈부신 빛이 주변을 가득 채운 것도 잠시.
귀를 찢는 폭발음이 갱도 안에 울려 퍼졌다.
눈을 뜨니 내 방이었다.
"으…"
얼마나 멍하니 있었을까. 겨우 내가 지금 기지 내 숙소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하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몸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납득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배와 가슴이 열려 있고, 몸 안에는 수많은 튜브와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침대 옆의 각종 검사 기기들로 이어져 있었다. 당연히 옷을 입기엔 케이블들이 방해되어, 나는 알몸인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만 시트가 덮여 있어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랬지… 나, 부서졌었지…)
그제야 지난 전투가 떠올랐다.
양팔이 날아가고 왼쪽 다리가 뽑혔으며, 점착 폭탄이 터질 때 그 충격으로 끊어지기 직전이던 오른쪽 다리마저 떨어져 나갔다. 그전엔 배와 가슴도 기총에 맞았고.
보통 인간이라면 죽었을 중상이었다.
설령 손발만 맞았다 해도, 생몸이라면 그 기총의 충격만으로 심장이 멈췄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의체병이다. 뇌만 무사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았구나… 나…)
팔다리도 없이 토르소 상태였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당했으니 죽었을 거라 몇 번이나 절망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안심이 되자 곧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눈에는 여러 정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에게만 보이는 정보다. 뇌 속 스크린에 투영된 것으로, 윈도우가 몇 개 열려 내 몸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몸이 어디까지 망가졌고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시간과 날짜는 언제인지 표시되어 있었다. 확실히 내 팔다리는 분리되어 있었고, 복부 기계 장치는 외부 기기와 연결되어야만 겨우 가동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그 외에도 체내 컴퓨터와 각종 기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
그날로부터 3일이 지나 있었다.
(이상해. 아직 수리가 안 됐다니.)
왜 내 몸이 부서진 그대로인 걸까.
내가 여기 배치될 때 예비 부품도 같이 가져왔다. 컨테이너 안에는 나를 세 명은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여분 파츠가 있을 텐데.
생몸과 달리 내 몸은 파츠 교환이 가능하다. 부서지면 갈아 끼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직 수리가 안 된 건 묘한 일이었다. 3일이면 수리는 벌써 끝났어야 했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아마노 상사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방에 들어왔다.
나는 화가 났다.
"이봐요. 노크도 안 하고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요?"
그러자 아마노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소위님! 깨어나셨습니까!"
"네, 방금요."
그의 당황한 모습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3일이나 눈을 안 뜨셔서 뇌 쪽에도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아마노는 정말 걱정했던 모양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되면 나도 병원 신세겠네요."
보통 의체병은 부상을 입어도 뇌에 이상이 없는 한 전선 이탈이 허용되지 않는다. 배치된 기지에서 수리하는 게 원칙이다. 즉시 출격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니까.
의체병은 귀한 자원이라 부서졌다고 공장으로 보내고 대체 인력을 배치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의체병과 일반 병사의 차이는 이럴 때 드러난다. 일반 병사는 다치면 전선에서 빠져 야전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그리고 대신할 병사가 보내진다.
우리는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거다.
그래서 부품 컨테이너가 같이 배치되는 거고, 전속 정비병도 붙는 거다.
하지만 뇌에 이상이 생기면 기지에서 수리하는 건… 아니,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정도 설비는 이 기지에 없다. 그래서 뇌가 다치면 병원으로 보내지는 거다.
"뭐, 제 본래 전공이 사이보그 뇌 쪽이라 아마 괜찮을 거라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안심했는지 아마노가 농담을 던졌다.
"뇌만 인간 대접해주는 거네요… 나머지는 기계니까 당연하겠지만…" 조금 슬퍼져서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에게 연결된 기기들을 체크하며 아마노가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왜 3일이나 지났는데 수리를 안 해주는 거죠, 정비 주임님?"
아마노는 내 정비를 담당하는 정비병이다. 실력도 좋고 손놀림도 아주 빠르다. 그런 그가 내 수리를 이렇게 미루고 있는 건 이상했다. 깨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팔다리를 안 붙여두는 건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아… 그 일 말입니까… 사실은…"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게릴라 거점을 공격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각, 이 기지도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공격은 놀랍게도 원격 조종 로봇 병사들의 습격이었다. 꾀죄죄한 게릴라치고는 드물게 로봇 병사를 앞세워 공격해왔고, 그 과정에서 내 부품이 든 컨테이너가 파괴되어 안의 파츠들이 거의 못 쓰게 되었다는 거다.
"그렇군요…"
"보급부에 파츠를 신청하긴 했습니다만… 그게…"
"시간이 걸리나요?"
"네." 그는 말을 흐렸다.
"얼마나?"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두 달, 걸린답니다."
"아무래도 그놈들, 자기네 아지트에서 뭔가 큰일을 벌일 계획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양동 작전으로 여길 습격한 것 같고요…"
"소위님을 부순 로봇 병사, 그거 일반적인 놈이 아니었습니다. 원격 조종이 아니라… 안에 원숭이 뇌를 넣고 보조 AI로 백업해서,"
"의체병 대신으로라도 쓸 생각이었나 봅니다, 적들은."
아마노는 변명하듯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역시. 인간은 아니었군요. 사이보그의 일종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그가 좀 가여워 보여서, 나도 대화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역시 소위님. 눈치채고 계셨군요. …그래서 그놈들, 그 동물 사이보그인지 로봇인지 실험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걸 소위님 일행이 박살 내버리는 바람에…"
"그러니까, 서로 엇갈렸다는 거네요?"
"네. 놈들도 중간에 눈치채고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물론 부서진 아지트가 아니라 본대 쪽으로요."
즉, 이 지역은 당분간 평화로울 거라는 게 부대 수뇌부의 결론이었다.
"그럼 나를 공장으로 보내줘요. 이런 상태로 두 달이나 침대에 묶여 있는 건 사양이니까."
"아, 저기. 휠체어 있습니다. 침대 신세만 지지는 않으실 거예요."
휠체어에 지금 연결된 기기들을 같이 싣겠다는 건가. 나는 조금 짜증이 나서 그를 쏘아붙였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
"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아마노는 뻔뻔하게 사과했다.
"그게… 공장에 보내도 거기서도 부품을 구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의체병용 파츠가 부족하다고 해서요."
"…결국 어디를 가든 이 식물인간 상태는 변함없다는 거네요?" 질린다는 듯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됐습니다…"
"하아…"
한숨밖에 안 나왔다.
정말로 두 달 동안 이 상태로 지내야 하는 모양이다. 팔다리도 없고 배와 가슴은 열린 채로.
이 상태에서 곤란한 건 잠옷 하나 입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생명 유지 기기와 연결된 튜브와 케이블 때문에 옷을 입는 게 방해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속옷조차 입지 못한 알몸 상태로, 그 위에 시트를 덮어 겨우 몸을 가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방의 기계와 연결되어 있으니 휠체어를 탈 수도 없다.
하지만 내장 부품은 조만간 어떻게든 될 거라고 아마노가 말했다.
"2주 정도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팔다리보다 내장 부품이 우선적으로 공급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장 부품은 생명 유지와 직결되니까 팔다리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례합니다! 소위님, 기운 차리셔서 다행입니다!"
사노가 병문안을 왔다. 그 전투 이후로 얼굴을 못 봐서 반가웠다.
사노는 내가 로봇 병사를 유인한 덕분에 무사했다고 한다.
"소위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왠지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고, 기분 탓인지 나를 훔쳐보는 눈빛이 뜨거웠다. 왜 저러지?
"기운이 넘치는 상태는 아니지만요."
조금 투덜거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두 달은 꼼짝없이 이대로 있어야 한다고 하니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곤란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다. 그에게 불평해봤자 해결될 일도 아닌데.
수습하듯 가끔 병문안이나 와달라고 말해두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네! 하고 기쁘게 대답했다.
"맞다, 오오사와 대위님이랑 미나카타 좀 데려와 줄래요?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못 봐서."
아마노 말에 따르면 오오사와 대위와 미나카타도 무사하다고 했다. 미나카타는 생매장당했는데도 둘 다 뼈 좀 부러진 정도로 끝났다는 거다.
하지만 사노는 다시 곤란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두 분은 기지에 안 계십니다."
"치료를 위해 후방 병원에 가 계시거든요."
그랬지.
그들은 인간이다.
다치면 병원으로 보내진다. 왜 그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다음 달에는 기지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 그때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방을 나섰다.
아직까지는 딱히 지루하지 않았다.
보통 인간이 나처럼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다면 체력 저하를 걱정해야겠지만, 의체병인 나에게 그건 기우일 뿐이다. 기껏해야 전투 감각이 무뎌지는 걸 걱정하는 정도였다.
해야 할 일은 있었다. 지난 전투 보고서도 써야 했고, 신체 파츠에 관한 자료를 입력해 운용 구상을 짜서 서류로 만들어야 했으니까. 휴가라고 생각하고 이 한가한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내장 부품이 도착했다. 정말 2주 정도 만에 보내져 왔다.
"소위님, 이제 잠옷 입으실 수 있어요!"
아마노의 이상한 위로에 쓴웃음을 지으며, 조금 나아질 뿐이라고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배랑 가슴에 파츠 장착하겠습니다…"
곤란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곧바로 아마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나는 굳어버렸다.
아, 이럴 때다.
이럴 때, 여성 정비병이 아니면 정말 민망하다.
가슴이며 배며 다 열어젖히고, 남자가 그 안을 이리저리 만지고 덜컥거리며 손을 대는 거니까.
이렇게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있으면 왠지 묘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나 어색하다.
아마노가 시트를 걷어냈다.
그러자 케이블과 튜브투성이인 기계 몸이 드러났고,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아마노의 눈에는 내 유방이나 음부가 훤히 보일 것이다. 그도 남자니까 어쩔 수 없다. 사이보그라 해도 나 역시 한 명의 여자다. 남자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에 거부감 정도는 있다.
그래도 그에게 수리를 받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 말고는 내 몸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 잠들게요."
서둘러 눈을 감았다. 빨리 감도를 낮춰야 한다. 가슴 파츠를 장착할 때 유방에 손이 닿거나 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곤란해진다.
게다가 내 가슴은 꽤 큰 편이다. F컵이나 되니까.
인공 피부로 덮인 유방은 크면 클수록 감도가 예민해진다. 유방 표면에 깔린 센서 수가 많기 때문이다. 자칫 느끼기라도 해서 젖어버리면 정말 면목이 없다.
의체병은 의체 전용 식량밖에 못 먹지만, 섹스는 가능하니까.
흔히들 왜 여성 의체병은 다들 가슴이 크냐며 신기해한다. 사생활은 둘째치고 전투하는 데 그렇게 섹시할 필요가 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확실히 전투할 때 너무 큰 가슴은 방해된다. 하지만 유방은 예비 배터리를 수납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장시간 전투에 대비해 이런 예비 배터리 수납 구역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가 필요했고, 전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타협한 결과가 F컵이었다.
"으… 앙…"
실수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다. 빠, 빨리 감각을 차단해야 해!
내 실수를 못 본 척해주길 바라며 슬쩍 눈을 떠 아마노의 상태를 살폈다.
"…"
아마노는 볼을 붉히며 무언가 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해요, 아마노.)
나는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생체 유지 파츠가 보수되고 몸통이 수리됐다고는 해도, 이 토르소 상태가 계속되는 건 변함없었다.
그래도 휠체어를 쓸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의 감금 상태는 해소되었다. 물론 옷도 입을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아마노나 사노 등의 도움을 받아 나는 휠체어를 타고 기지 안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기지 안은 지난 전투에서 적 세력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어딘가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약간 들뜬 공기가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찰 임무를 나가는 병사들에게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여기는 최전방이고, 우리의 방심을 틈타 적이 반격을 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병사들은 다들 그 점을 명심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기지 안에서, 나는 예전보다 자주 인사를 받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여기 배치됐을 때 나는 대원들과의 소통에 불안을 느꼈다. 나는 유일한 여군인 데다 의체병이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집단 안에서 이질적인 존재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전 부대들에서도 껄끄러운 취급을 받거나 노골적인 무시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선 어떨까. 다들 나를 평범하게 대해주었다.
나를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정말 기뻤다.
눈을 뜨니 다시 머리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부대의 아침은 빠르다. 병사들은 5시 반이면 기상해 연병장에 집합하고 점호를 받는다.
나도 똑같이 잠에서 깨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병사들의 점호 소리를 듣고만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요즘 왜 이렇게 잠자리가 뒤숭숭한지 모르겠다.
항상 머리가 무거운 느낌으로 잠에서 깬다. 어딘가 피곤하고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몸 상태가 안 좋은가 싶어 뇌 속 스크린으로 모니터링을 해보지만, 딱히 나쁜 수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정말 그냥 뇌가 좀 피로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그런 상태니 요즘의 나는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버리곤 했다.
방금까지 오전인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 보면 점심시간이고, 아마노의 도움으로 의체병용 레이션을 먹고 나면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등, 꽤나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아무리 몸이 불편하다 해도 이런 자포자기한 생활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마노에게 상담하니 휴가라고 생각하라며 가볍게 대답해주었다. 느긋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나는 의체병이다. 보통 병사보다 더 많이 활동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 그런데 두 달이나 계속 쉬어야 한다니. 그런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애초에 내 몸은 피로를 모를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피로감이 느껴지는 걸까.
혹시 내가 아직 어디가 고장 난 건 아닐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피로를 느끼는 건 뇌 자체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지난 전투에서 나는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그 때문에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소름이 돋았다.
내 뇌는 45%가 개조되어 있다. 미개조 부분은 문제가 없는 듯하다.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생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내 개성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뇌 영역이 미개조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조된 부분이 고장 난 거라면, 죽음과 직결되는 위험한 고장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괜찮아도 내일 당장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마노는 괜찮다고 한다. 자기 전공이 사이보그 뇌라며 또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그도 내 뇌를 제대로 검사한 건 아니다. 의체병용 병동에 있는 검사 기기를 써야만 이상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내 팔다리가 도착하려면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다.
불안이 가시질 않아 나는 매일 모니터링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상이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피로감과 권태감에 맞서며, 자꾸만 멍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데이터 해석을 계속했다.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묘한 수치를 발견했다.
그건 이상한 수치였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유방의 감도 데이터였기 때문이다.
어제 밤 11시부터 오늘 새벽 2시 사이의 유방 감도가 내가 아는 데이터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내 가슴은 예민하다. 가끔 잠옷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느껴버려서 유두가 서거나 쾌감 때문에 잠에서 깰 정도다.
의체병으로 개조된 초기에 이 예민한 가슴 때문에 고생 꽤나 했다.
그러다 의체 사용법에 익숙해지면서 예민한 부위의 감도를 낮게 설정하면 그 증상이 완화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잠들기 전에 반드시 유방 감도를 낮추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엔 멍하니 지내느라 그 습관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보통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어제도 같은 시간에 잠들었다. 하지만 감도 저하 설정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잠들기 직전에 그 생각이 나서 파라미터를 조절하려 했지만,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침에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잠든 밤 10시부터 기상한 5시 반까지의 유방 감도 로그는 감각이 억제된 상태의 수치였다.
이상하다.
혹시 내가 무의식중에 감각 저하 처리를 한 걸까. 오랜 습관 때문에. 하지만 의구심은 남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유방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성기 등 다른 민감한 부위의 감각도 똑같이 억제해두는데, 그 처리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자기 전에 다음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피부와 유방, 성기 센서의 감도를 최대한 높여보는 거다. 건드리기만 해도 절정에 가버리기 직전 수준까지 감도를 올려보자고. (그 이상 올리면 뇌 자체가 망가질 것 같아 무서웠다) 그리고 그대로 잠드는 거다.
그렇게 감각을 제한하지 않고 잠들면, 다음 날 아침 감각 데이터 로그에 높은 수치가 기록되어야 정상일 테니까.
물론 감도가 너무 높아서 잠옷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벌떡 깨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팔다리가 없는 상태다. 잠버릇이 나빠질 걱정은 없었다.
눈을 뜨니 해가 이미 높이 떠 있었다.
깜짝 놀라 뇌 속 스크린에 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말도 안 돼.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이렇게 늦잠을 자버리다니. 의체병인 내가.
이런 나태한, 거리의 창녀처럼 하루를 보내버리다니.
그리고 이렇게 늦잠을 잤는데도 역시 머리는 무거웠다. 아니, 평소보다 그 무게가 훨씬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무게에 눌려 다시 잠들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하며 감도 데이터 로그를 체크했다. 그리고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는 걸 확인했다.
유방을 옷에 문질러 보았다.
"앙…"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도 금방 느껴버렸다. 연쇄적으로 하반신도 젖어온다.
틀림없다. 내 몸의 감도는 어제 설정한 대로, 잘못 건드리면 바로 절정에 가버릴 정도의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방금 체크한 로그 데이터는 전부 평균적인 감도 수치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감도 데이터도 똑같이 높은 수치를 나열해야 정상이다.
"…설마…"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었다.
누군가가 밤사이의 감각 데이터 로그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
누가, 무엇을 위해서?
여러모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너무나 씁쓸했다.
"…그럴 수가… 하지만…!"
하지만 이 추리가 틀림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밤마다 누군가에게 유린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숨기기 위해 내 몸의 데이터 로그를 평범한 수치로 조작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밤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분명히, 아니 틀림없이 나는 강간당하고 있다. 항상 피곤한 건 몇 번이고 절정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전혀.
이건 이상하다.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하아…"
한심하게도 졸음이 쏟아졌다.
피로가 내 집중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서서히 나는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이 온 모양이었다.
눈을 뜨는 게 고역이었다. 그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고 보니, 감도 설정을 높인 채로 잠들었었지…)
"괜찮으십니까? 소위님."
아마노가 방에 온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아 눈을 감아버렸다.
(틀림없어.)
이틀 연속으로 이렇게 피곤하다니.
이건 감도를 극단적으로 높인 채 방치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감도 재설정을 하지 못한 채 진흙처럼 잠들어버렸던 거다.
밤에 그런 상태로 범해졌으니 오죽할까. 강간범이 주는 쾌락은 분명 어마어마했을 거다. 아마 죽을 것 같은 쾌락이었겠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피로곤비한 거다.
(분명 나, 어제 밤에도 범해졌을 거야…)
피로는 집중력을 뺏어가지만, 동시에 기분 좋은 나른함도 준다.
그건 나를 쉽게 잠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대로, 계속 잠들고 싶어…)
그건 마치 동사하기 직전의 안락함 같았다.
(아니, 안 돼, 안 된다고. 리사!)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계속 이런 상태가 반복될 거다. 어쩌면 상황이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갈지도 모르니까.
(분명히 인공 인격이 대신하고 있는 거야…)
그건 어제 떠올렸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잠들기 직전에 나는 다른 로그 데이터에서 또 하나의 기묘한 사실을 발견했었다.
이 특징적인 데이터는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인공 인격과 내 몸을 연결했을 때 나타나는 독특한 수치였으니까.
매일 밤, 나는 범해지고 있다. 그건 이제 확실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건 이상하다.
그 답이 바로 인공 인격과의 접속이다.
먼저 나라는 인격 대신 내 몸과 인공 인격을 연결한다. 그리고 그 인공 인격이 내 몸의 모든 것을 조작하도록 설정해둔다.
인공 인격이 몸을 조종함으로써 나를 범하는 자는 충분히 내 몸을 즐기고 유린할 수 있다. 그의 공격에 인공 인격이 일일이 반응해줄 테니까. 그리고 일이 끝나면 그 인공 인격을 종료해버리면 그만이다.
이 속임수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실제로 나를 범하는 자들과 말을 섞고 몸을 움직이는 건 인공 인격이니까.
하지만 쾌락 자체는 내 뇌에도 큰 부담을 준다.
인공 인격이 이 쾌락을 어느 정도 받아내지만, 그 대부분이 내 뇌를 직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강렬한 쾌락을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강간범은 감각 기관의 로그 데이터를 조작해버린다. 이렇게 하면 나로서는 어제 밤에 내 몸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격렬한 섹스 탓에 나는 항상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아침이 되어도 머리가 무겁고 멍해질 정도로. 쾌감의 피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이상하다 싶어 조사해봐도 로그는 조작되어 있으니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
이 얼마나 교묘한 함정인가.
이 생각대로라면 나는 밤마다 더치 와이프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다.
실컷 농락당하고, 계속 범해지고 있는 거다.
"…이럴 수가…"
내 추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범인은 누구일까.
나를 매일 밤 범하고 있는 자는.
누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노였다.
어쨌든 그는 내 정비 주임이다. 그는 내 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을 거다. 나를 조종하는 방법 따위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을 거다. 내가 잠든 사이에 인공 인격을 설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설치된 인공 인격은 아마 끔찍하게 음란한 여자의 인격일 거다. 밤마다 남자를 갈구하고 쾌락을 쫓는, 천박하고 비천한 섹스 돌의 인격.
그게 내 안으로 들어온 거다.
몸서리가 쳐졌다. 양손이 있었다면 분명 내 몸을 껴안았을 거다.
…
설치?
내 안에 인공 인격이 설치되어 있다고?
다른 기기에 들어있는 인공 인격과 연결된 게 아니라?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가능해.)
처음엔 인공 인격이 든 컴퓨터와 나를 연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로그 내용을 체크하거나 인공 인격을 연결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각하면, 미리 내 내장 메모리에 설치해두는 게 훨씬 편할 거다.
나를 매일 밤 범하고 있다면, 그런 수고를 들이기보다 손쉽게 인공 인격을 기동할 수 있게 해두는 게 편할 테니까.
그렇다면 내 메모리를 뒤져보면 어딘가에 거대한 용량을 차지하며 존재하고 있을 터였다. 즉시 체크해본다.
(…찾았다.)
마치 글자가 깨진 것 같은 파일명이었다. 하지만 그 용량의 크기는 인공 인격 말고는 설명이 안 됐다.
해석해보니 예전에 이 인공 인격을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마리아"라는 이름의 인공 인격이다.
의심할 여지 없는 창녀의 인격.
(이제… 틀림… 없어…)
이건 이제 확실한 증거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인공 인격이 내 몸을 가로채 밤마다 창녀 역할을 연기하고, 성교가 끝난 뒤 데이터를 조작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피로만 남고, 매일 멍하니 지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럴 수가.
역시 아마노인 걸까.
아니, 그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다.
그가 매일 나를 범하고, 그 감각 데이터를 조작하고 있는 거다.
그를 추궁해서 그만두라고 설득해볼까.
하지만 그가 거절하면 어쩌지? 아니, 격분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면?
나는 지금 완전히 무력하다. 그가 수발을 들어주지 않으면 식사조차 할 수 없다.
총에 맞거나 칼에 베여도 나는 쉽게 고철 덩어리가 될 거다.
(어떡하지…)
상사인 부대장님께 상담해볼까.
하지만 어떻게? 나는 자력으로 부대장실에 갈 수도 없다. 지금은 제대로 된 회선조차 열려 있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완전히 휴가 처리가 되어 있어 부대장님과는 연락할 수 없는 상태였다. 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지금의 나에겐 불가능했다.
몸의 모든 것을 그가 쥐고 있는 이상, 나는 그의 욕망을 거부할 수 없다.
(…이럴 수가…)
나직이 탄식했다.
나는 아마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으로 발전할지도 모를 감정이 내 안에서 싹트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그가 나를 능욕하고 있는 거라면, 이 감정에도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그게 너무나 슬펐다.
그도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아마노…)
아아, 눈물을 닦을 손조차 지금의 나에겐 없다니.
대처법은 한정되어 있다.
우선 인공 인격을 지운다.
하지만 지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어차피 나는 잠에서 깨워질 거고, 아마노의 상대가 되어야 할 테니까.
인공 인격을 지워버리면 당연히 내 몸을 조종할 존재가 없어진다. 그러니 나 자신이 인공 인격 대신 아마노의 상대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이 "마리아" 인격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남자를 유혹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여자를 범하는 기쁨 따위 느끼게 해줄 생각은 없다.
모든 센서의 감도를 낮춰버리는 거다.
완전한 불감증 상태로 몸의 감각을 설정한다. 이건 부위 하나하나의 감도를 설정해야 의미가 있으니, 금방 원래의 예민한 몸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을 터였다.
즉, 섹스의 흥을 깨버리는 거다.
전혀 느끼지 못하는 통나무 같은 여자를 안는 건 남자 쪽도 별로 달갑지 않겠지, 그렇게 계산했다.
그러면 오늘 밤은 몰라도 내일부터는 나를 안는 것에 흥미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마노…)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는 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속이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았다.
그냥 속는 척하며 그에게 안겨줄까.
아마노는 싫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다.
안겨도 상관없지 않냐고, 내 안의 여자 부분이 외친다.
그러면 그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여기까지 당하고도 가만히 있냐며 분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가 하는 위장은 악질이다. 그런데 인공 인격인 척을 하거나 감도를 낮추는 등 왜 그렇게 비굴한 짓을 해야 하냐며 항의하는 거다.
남자에게 마음대로 다뤄지는데 억울하지도 않냐며 스스로를 꾸짖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건 상대에 대해 더 확실한 복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건… 무리야…)
지금의 나는 이런 것 말고는 아마노에게 저항할 방법이 없다.
손발을 떼이고 몸의 자유를 뺏기고 통신 능력까지 상실한 나에게 도대체 이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이미 몇 번이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좋아.)
나는 결심하고 인공 인격 삭제에 들어갔다.
거대한 파일이라 여기저기 링크가 걸려 있었지만, 다행히 접근 금지 같은 까다로운 권한 설정도 없어서 금방 파일 삭제에 성공했다.
그리고 감도를 극저 레벨까지 낮췄다.
본래 이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피부 센서의 감도를 완전히 없애버리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별문제 없다.
양팔 양다리가 없는 상태로 하루 종일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는 것밖에 못 하는 인형. 그게 지금의 나니까.
이런 상태에선 의체병으로서의 자존심 따위 바랄 수도 없다.
계속 잠만 잔 탓인지 오늘은 평소 취침 시간이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해서 잠들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노가 나에게 야습을 걸어온다면 일단 잠든 척하는 게 상책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번민했다. 정말 아마노가 올까. 가능하다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왔다.)
역시 나를 능욕하는 자는 존재했다.
인공 심장조차 지금은 격렬하게 고동친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다.
*끼이익.*
침입자는 실내로 발을 들여놓았다.
"소위님. 일어나십시오."
아마노의 목소리였다.
그건 평소의 목소리 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어?)
나는 동요했다. 설마 나에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자고 있는 나를 덮쳐서 갑자기 인공 인격을 기동시킬 줄 알았는데.
스위치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실내등이 켜졌다.
"…으… 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눈부신 듯 눈을 비비며 방금 깬 척을 했다.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몹시 당황했다. 이렇게나 평범하게 아마노가 들어올 줄이야. 전등까지 켤 줄은 몰랐다. 나를 몰래 강간할 생각이라면 어둠 속에서 일을 치르는 게 들키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는 실내를 밝히는 걸 전혀 개의치 않고 들어왔다.
"…아직… 11시잖아… 아침이라기엔 너무 일러…"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맞춰 나도 지극히 평범하게 대하듯 아마노에게 말을 걸었다.
어쩌면 그는 나를 범하러 온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용무로 여기 온 거다, 그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내가 오해한 걸지도 모른다고.
"아니요. 이제부터 조정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깨운 겁니다."
"조정 시간?"
뭘까, 조정이라니.
아마노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낮에 항상 하던 것처럼 나에게 연결된 기기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밤에도 체크할 필요가 있어?"
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나는 완전히 경계를 풀고 있었다. 아니, 어안이 벙벙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네."
아마노는 말을 끊었다.
"섹스 돌의 조정을 말이죠."
그가 만지던 기기에서 딸깍, 하고 스위치 온 소리가 들렸다.
"에!?"
놀람과 동시였다.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손발이 붙어있지 않다 해도 몸통이나 고개를 흔드는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앗… 왜, 왜…"
입은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몸은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세, 섹스 돌이라니… 도, 도대체…"
나는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몹시 동요했다. 안 돼! 설마! 나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당신을 섹스 돌로 만들기 위한 조정입니다. 당연히."
아마노는 관심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머리맡으로 다가오자 아마노는 움직이지 못하는 내 상체를 일으키고 목으로 손을 뻗었다. 목 조인트 부분을 보호하는 초커를 만졌다.
딸깍 소리가 나더니 초커 일부분에 작은 해치가 열렸다. 거기엔 몇 개의 단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어느새 아마노의 손에는 열쇠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앗" 그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ID와 패스워드를 발행할 수 있는 전자 키였다. 겉모습도 진짜 열쇠와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그건 낯익은 것이었다. 이걸 쓰면 내 후두부를 개폐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정비 주임인 아마노가 관리하는 것이니까.
"그만둬!"
"머리 열지 마! 부탁이야!"
그는 내 정비를 담당하고 있으니 평상시라면 문제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딸깍.*
내 간절한 바람도 헛되이 그는 무심하게 단자 중 하나에 전자 키를 삽입했다.
순식간에 내 후두부가 열렸다.
"안 돼, 아마노! 거기는 뇌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단자가 잔뜩 있단 말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내 후두부 쪽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정비 주임이니까요."
*찰칵.*
"아, 앙!"
지금 그는 무언가 플러그를 나에게 삽입한 모양이다. 한심하게도 나는 이런 것에도 느껴버리는 듯했다.
이것도 아마 전자 키의 일종이겠지. 그래도 아까의 전자 키와 달리 이번 것은 소프트웨어적인 전환을 유도하는 열쇠 같았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다르다.
나는 이해했다.
그렇구나. 이게 인공 인격과 내 인격을 교체하는 열쇠였던 거야. 이 열쇠를 써서 아마노는 내 메모리에 설치해둔 인공 인격을 기동시키려 한 거다.
하지만 무언가 일어날 리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인공 인격을 삭제했으니까, 교체될 리가 없다.
"…"
아마노는 지금쯤 내가 인공 인격으로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거다.
그 인공 인격이 어떤 것인지는 안다. 그 몸가짐을 나는 이전에 본 적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내 예측이 적중해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낙담을 느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그 인공 인격처럼 행동해야 한다.
인공 인격에 담긴 창녀가 되어야 한다.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어머… 아마노 씨… 오랜만이네."
"안녕, 마리아."
아마노가 뒤에서 대답했다.
이제 틀림없다.
그다. 아마노가 범인이다. 나는 슬픔과 낙담 때문에 목소리가 떨릴 것만 같았다.
(아마노!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나는 당신을…)
안 돼. 음란한 창녀 인격인 마리아가 이런 데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 안 된다.
남자를 맞이하기 위해 기쁜 듯이 말을 걸어야 해. 하지만.
"오늘도 놀아줄 거야? 기뻐라."
아마노가 뒤에 있어 준 게 다행이었다. 만약 내 얼굴을 보며 대화했다면 터지기 직전인 눈물을 눈치챘을 테니까.
"그래. 어제도 그저께도 너를 안았지만, 도무지 질리지가 않아서 말이야."
"오늘도 너를 취하러 왔지."
뒤에 있는 아마노가 어떤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렌즈를 세정하는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찌른다.
"큭"
"큭하하하하하!"
갑자기 아마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목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 모습을 빤히 쳐다봤을 거다.
"왜, 왜 그래, 아마노 씨, 갑자기 그렇게…"
"어이. 다들 슬슬 들어와도 된다고!"
갑자기 아마노는 문 너머 복도를 향해 소리쳤다.
"에?"
놀랄 틈도 없었다.
아마노가 부르자 병사들이 줄지어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우츠미, 야마가타, 타사카… 무카이 중사님까지. 이럴 수가, 제3소대 병사들이 다 모여 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잊은 거야, 마리아?"
"난 사실 어제도 그저께도 널 안지 않았거든. 너무 많이 해서… 솔직히 좀 피곤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아마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들여다봤다.
"에!"
"하지만 여기 있는 녀석들은 다르지."
"어제 네 손님은 제2소대였으니까." 소대장인 무카이 중사가 말했다.
"…"
나는 놀라움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잠깐만.
지금 뭐라고 했어?
아마노는 지금 어제도 그저께도 나를 안지 않았다고?
아니 그 뒤다.
"어제 네 손님은 제2소대였으니까."
어제 손님이 제2소대였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찰칵.*
열려 있던 후두부 해치를 아마노가 닫았다.
"네가 지운 인공 인격 파일 말이야."
"그거, 가짜야."
아마노는 냉정하게 말했다.
병사들이 나를 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대원 14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한 번에 세 명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
감도는 낮춰두었을 터다. 괜찮아, 그들을 만족시키지 않을 거야. 내 센서는 전부 불감증 모드로 되어 있을 거야.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나는 떨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말캉.*
"앙!!"
우츠미가 내 가슴을 주무르자 나는 천박한 소리를 내버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어지는 키스, 그리고 혀가 들어오고, 보지, 클리토리스를 만져댄다. 일제히 여러 개의 손과 혀가 나를 만지고 핥는다. 내 민감한 부위들은 예상을 비웃듯 뇌에 강렬한 쾌락을 쏘아 올렸다.
분명 감도를 최저 레벨로 낮췄을 텐데. 왜 이렇게나 느껴버리는 거야?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벌써 동요가 극에 달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신기합니까, 소위님? 기껏 센서 감도를 낮춰놨는데 말이죠. 지금은 아주 느껴서 질척질척하네." 아마노가 말했다.
"!"
그런 것까지 그에게 들키고 있었다니!
"아까 네 머리에 전자 키 꽂았지? 그거 섹스 돌 모드 전환용 열쇠야."
"그저께 묘하게 센서 감도가 좋아졌길래, 이번부터 섹스 돌 모드가 됐을 때는 계에에에속 그 감도로 해두기로 했거든."
"!… 그, 그랬던 거야… 으, 으아아아앙! 가, 가버려어어어!!"
야마가타의 사정이었다. 단숨에 쾌락의 정점에 도달해버린다. 하지만 나를 만지는 손은 야마가타뿐만이 아니다. 우츠미의 공격 또한 강렬했다.
그저 유방을 주물러지는 것만으로 나는 연속적으로 가버리고 있었다.
"자, 빨아!" 타사카가 난폭하게 명령한다.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못한 채 나는 그의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왜 나는 그의 말대로 하는 걸까.
이것도 섹스 돌 모드 탓이다. 남자들의 요구에 순응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 그것이 이 섹스 돌 모드의 거동인 것이다.
하지만 왜?
언제 내가 이런 섹스 인형으로 전락해버린 걸까?
"당신은 기억 못 하겠지만 말이죠."
아마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 섹스 파티의 주최자 같았다. 병사들이 그 끔찍한 욕구를 충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듯했다.
"어제도, 그저께도 당신은 그 가짜 인공 인격 파일을 저기서 지우고 있었거든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큭큭큭…"
나는 그 조소를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 재밌네. 당신, 완전히 어제랑 똑같은 대사로 물어보네."
"그런 부분까지 기계 장치 같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아마노는 비웃었다.
"매일 밤 일이 끝난 뒤에 당신이 직접 가짜 인공 인격 파일을 저기에 두게 하고 있거든."
내가 두게 한다고?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하지만 나에게는 아마노를 추궁할 틈 따위 없었다.
"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하아! 하아!"
세 명의 남자에게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이미 쾌락의 지옥 속에 처박혀 있었다. 절정이 쉴 새 없이 나를 집어삼켜 그의 말을 분간할 집중력을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그들은 교대로 나를 범한다. 그들에게는 휴식이 주어져도 나는 계속 윤간당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말이야, 이미 인공 인격이랑 당신 자신이 융합되어 있어."
아마노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번 전투에서 당신 뇌가 꽤 많이 망가졌거든. 그대로 뒀으면 확실히 죽었을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당신 뇌에 마이크로 머신을 주입했지."
"결과는 성공적이었어. 마이크로 머신에 의한 뇌 재구성.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 뇌는 이제 생몸이라고 할 수 없지. 완전히 기계화되어버린 거야."
"내 전공이 사이보그 뇌니까 말이야. 뇌 기계화 정도는 식은 죽 먹기거든."
"아아아아아아악!!!!"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끊임없는 고문 탓에 나는 이제 무언가를 듣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제 사이보그가 아니라고? 그럴 수가…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죽은 걸로 처리했어. 전사 처리."
내가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마지막 보루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그렇잖아? 의체병이니까 좀 문제가 있어도 인간님으로 대접해줄 수 있는 거야. 근데 뇌까지 기계가 되어버리면 당신은 로봇이지. 안 그래?"
내가 로봇? 내가?
"인간이 로봇이 된다는 건 한 번 죽은 걸로 봐도 무방하니까." 중사가 제멋대로 지껄였다.
"그래서 타치바나 리사 소위는 죽은 거지. … 근데 여기 전 타치바나 리사였던 의체가 있네. 로봇으로서 문제없이 가동 가능. 자, 어떡할까?"
아마노는 병사들에게 물었다.
"재활용!"
"리사이클~!"
나를 범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병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타치바나 리사니까, 리사-가버려-클인가?" "말 잘 하네 너." "가버려-클이 뭐야." "신경 꺼."
즐겁다는 듯 그들은 지껄여댔다.
"어쨌든 재활용, 재활용."
"그래그래. 쓸만한 의체니까 말이야."
"기계니까 돌려 써도 내구성이 좋을 테고."
"전장에 오래 있다 보니 여자 구경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말이야~"
"더치 와이프 같은 기계 인형이라도 감지덕지지."
남자들은 입을 모아 제멋대로 지껄였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걸 억울해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그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옥 같은 공격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를 설치해서 당신의 원래 인격이랑 융합되게 만든 거야."
"아아아! 커헉! 아아앙!"
두 명분의 사정을 항문과 보지에 동시에 받아버렸다. 쾌락은 배가되고 증폭되어 신체의 일부분이 그 강렬한 신호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지지직!* 배의 접합 부분이 찢어지며 안의 기계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 너무 무리하면 고장 난다고."
"이 정도면 괜찮아. 아마노가 고쳐줄 거야."
"부품은 잔뜩 있으니까 말이야."
(…에?)
쾌락에 흐려진 의식 속에서도 그 말은 똑똑히 귀에 들어왔다.
"어이! 아무리 컨테이너 부품이 남아있다고 해도 뇌가 망가지면 못 고칠 수도 있다고! 좀 소중히 다뤄!" 아마노가 발끈하며 항의했다.
"그럴 땐 지난번에 썼던 인공 인격인가 하는 거 쓰면 되잖아."
(컨테이너 부품이 남아있다고?)
(그럴 수가… 아마노는 컨테이너 부품이 전부 파괴됐다고…)
그렇구나. 이것도 거짓말이었어.
나를 속이기 위해 그는 이런 거짓말을 한 거다.
그러고 보니 휠체어를 타고 기지 안을 돌 때, 내가 컨테이너를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왠지 당황했었다.
"죄송합니다, 방해돼서 묻어버렸어요." 파괴된 부품들을 전부. 그는 그렇게 미안한 듯 말했던 게 기억난다.
컨테이너를 보여주면 곤란했을 거다. 왜냐하면 파괴되지 않았을 테니까.
만약 봤다면 부품이 있는데 왜 나를 수리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을 거고, 나라는 의체병이 필요한데도 고장을 방치하고 수리를 요구하지 않는 상층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을 거다.
기지 전체가 한통속이었다.
나를 섹스 돌로 만들려는 음모는.
"후우. 좀 쉬자고."
순서가 한 바퀴 돈 모양이다. 다들 알몸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너무나 기분 좋은 나머지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나는 이제 섹스 돌이구나.
싫다고 생각해도 몸이 멋대로 반응해버린다. 기분 좋다고 느껴버린다. 그렇게 되면 이제 스스로 쾌락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아마 성기나 유방 같은 것도 군에서 지급한 게 아닐 거다. 엄청나게 느껴버리는 특별 제작품이겠지. 아아, 그러고 보니 아마노가 나에게 장착한 부품이 있었지. 그건 혹시 내 감도를 올리기 위한 기계가 아니었을까.
내 마음은 개조되었고 의체병의 긍지 따위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남자들에게 봉사하는 섹스 머신으로 전락해버린 거다.
"그나저나 처음엔 좀 하기 힘들었지."
병사 중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맞아 맞아. 배랑 가슴에서 케이블 같은 게 삐져나와 있어서 말이야, 잘못하면 케이블이 엉켜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
그때는 귀찮았다고 남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구나.
아직 배와 가슴 파츠가 고장 나서 케이블과 튜브에 연결되어 있었을 때도 그들은 나를 안았던 거다.
그렇게 일찍부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기지 안을 돌 때.
유난히 다들 나를 치켜세워주고 잘해줬던 게 기억났다.
그때 나는 드디어 다들 나를 받아들여 준 거라며 정말 기뻐했었다.
정말로 행복했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다들 이미 나라는 창녀를 한 번씩 맛본 뒤였던 거다.
그래서 나라는 성 처리 도구를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던 거다.
모두의 소유물.
모두가 돌려 쓰는 기계.
그렇구나.
나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섹스 도구일 뿐이었구나.
그랬던 거구나.
시각은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긴 고문이 드디어 끝났다.
실내는 이미 불이 꺼져 어두워져 있었다.
방 안에는 나와 아마노만 남아 있었다.
병사들의 땀과 침과 정액에 범벅이 되어 몸은 몹시 더러웠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 불쾌하게 여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격렬한 쾌락이 가져다준 기분 좋은 피로감에 그저 나는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 정말로 섹스 돌이 되어버렸구나…)
그런 절망감과 환희가 뒤섞인 감정과 함께 나는 쾌감 속에 떠다녔다.
왜인지 아마노는 그런 나를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의자에 앉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입을 여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앞으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말을 잣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이것만은 묻고 싶다.
나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나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아마노는 한동안 침묵했다. 내 질문 따위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이제 무시당할 뿐인 거다. 이런 땀과 정액으로 더러워진 음란한 인형의 질문 따위 대답해줄 리 없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거야?"
"의체병인 나는 필요 없는 거야…?"
아마노… 당신을 좋아했는데.
이제 이런 섹스 돌에게는 대답해주지 않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기며 한없이 슬퍼지려 할 때, 아마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단 섹스 돌 모드가 당신 의식을 완전히 덮어쓰는 게 먼저지."
"…"
내가 원하는 답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붙여줄 거야. 손발을."
그때가 되면 나는 이미 지금의 내가 아닐 거다.
"아, 무장은 전부 뺄 거야. 손발을 붙여줘도 당신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말이야."
"의체병이 마음먹으면 이런 허술한 기지 따위 순식간에 시체 더미가 될 테니까."
방 안이 어두워 아마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뭐, 당신은 그럴 생각조차 못 하겠지만 말이야."
"그다음은?"
"그다음엔 나는 어떻게 다뤄지는 거야? 모두에게."
가장 듣고 싶은 건 그거였다.
이렇게 실컷 범해지고 망가져서 결국 버려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몸이 고장 나도 고쳐줄까. 사람들에게 노예 같은 끔찍한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아마노가 말했다.
"지금이랑 똑같아. 이 방에 당신은 계속 있어도 돼."
"그리고 여기서 다들 기다리는 거지. 아마 매일 밤 상대를 하게 될 거야. 오늘처럼 수많은 병사를."
"윽… 윽…"
눈물이 났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게. 좀 더 야한 차림으로 다들 기다리게 되겠지. 야한 속옷이 좋다는 녀석도 있고. 하이레그나 메이드복 같은 거. 그런 코스프레도 인기라더라고?"
"그, 그런 옷, 절대 안 입어요!!" 오기가 생겨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노는 듣지도 않았다.
"아, 괜찮아. 지금 오오사와 대위랑 미나카타가 구하러 갔으니까. 기왕 후방에 간 김에 겸사겸사 사 오라고 부탁했거든."
"…!…"
오오사와 대위와… 미나카타까지…?
함께 적 게릴라와 싸웠던 그들도?
"…하, 하지만…"
하지만 그들은 다쳐서 후방 병원에 입원해 있을 텐데…
"다친 건 사실이야. 근데 말이야, 그렇게 중상은 아니거든, 둘 다. 그래서 거기서 섹스 돌용 의상을 조달해달라고 부탁한 거지."
"세상에… 그럼 이미 그들은 후방 의료 시설로 보내졌을 때부터 내가 섹스 돌로 개조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아마노는 다가와 내 턱을 슥 치켜올렸다.
"왜 이 부대에 여자가 없다고 생각해?"
"그건… 인사과의 실수라거나… 인력이 부족해서…"
"공식적인 이유는 그렇지."
듣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 말해줄 이유 따위 나는 듣고 싶지 않아.
하지만 눈을 감는 정도로는 아마노의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보통이라면 한 소대에 최소 세 명은 여군이 배속되어야 하잖아? 근데 여기는 없어. 왜일까?"
알 수 없었다.
"이 부대에는 지금까지 여자라고는 여자 의체병밖에 배속되지 않았거든."
"에?"
"부대장이 본부에 연줄을 써서 말이야. 여자 사이보그만 배속되도록 손을 써뒀던 거야."
충격이었다.
설마, 그럴 수가.
"그, 그럼 내가… 여기에 내가 배속된 것도 처음부터…"
"그래."
"당신 오기 전 의체병도 지금 당신처럼 섹스 돌로 개조했지."
"세상에…"
할 말을 잃었다.
"생몸 여군은 다루기 까다롭거든. 그 점에선 의체병이 세뇌하기 좋지. 섹스 돌로 덮어써 버리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망가져도 폐기하면 다른 여러 부품에 섞여서 증거가 안 남거든."
"그래서 여기에는 여군이 배속되지 않아."
"그, 그럼 이전에 있던 사람은…!"
아마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고철."
"!!!!"
마치 머리를 총에 맞은 것 같았다.
이보다 더한 충격은 없었다. 그들은, 이 기지의 인간들은 의체병을, 나 같은 여성형 사이보그를 정말 그냥 기계 부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다.
"그… 그럴 수가…"
이런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나를 안던 병사들 중 누구도 나를 성 장난감으로 만드는 것에 양심의 가책 따위 느끼는 기색이 없었다.
"다… 당신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겨우 쥐어짜 낸 비난의 말에도 그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다들 굶주려 있어서 말이야. 너무 많이 해서 결국 기계 뇌가 맛이 가버렸거든. 인공 인격을 썼지만 쾌감을 느끼는 건 원래 뇌 쪽이라 말이야, 범해도 반응이 영 통나무 같더라고."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폐기 처분한 거지."
망가지면 버린다. 그들에게는 그저 그뿐인 일인 거다.
"뭐, 그래도 쓸만한 부품은 쓰지만 말이야. 요전에 당신한테 인공 폐 달아줬지? 그거 전임자 부품이니까."
"…"
슬펐다.
그저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본래 인공 안구를 세정하기 위해 쓰이는 액체인데.
눈물을 너무 흘려서 곧 말라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멍하니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전임 의체병의 말로.
그건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사람들에게 계속 유린당하다 망가질 거다.
그리고 고철이 되어 폐기되겠지.
"자, 수다는 여기까지.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빨리 할 일 하고 자야지."
"…에?"
그는 자기 단말기를 꺼내 내 목에 연결했다. *찰칵* 하고 케이블을 연결한 것만으로 나는 신음 소리를 내버렸다. 감도가 너무나 예민하다. 이제 나는 내가 섹스 돌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마노는 그런 내 신음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단말기를 조작했다.
"…무, 무엇을 하는 거야…?"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무시당하는구나 생각했을 때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말이 많네."
"어제, 그저께는 계속 입 꾹 다물고 있더니 말이야."
또 내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는다.
상관없는 말을 하며 얼버무린다. 그러다 내가 방심하고 있으면 갑자기 핵심을 말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사실을.
"뭐, 그건 당신이 섹스 돌로 순조롭게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지만 말이야."
대답은 아니었지만 잔인한 말이었다.
"내일이면 당신은 이제 고분고분한 섹스 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네."
"쾌감에 익숙해졌으니까 말할 여유가 생긴 거지. 즉 섹스 인형으로서 당신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야."
"…"
역시 가혹한 사실이었다.
눈물은 이제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어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좋아."
내가 침묵하고 있자 아마노는 단말기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럼 기억, 지울 거니까."
"…윽, 에!?"
인공 심장이 멈출 정도의 쇼크를 받았다.
"…에? 지, 지금 뭐라고…"
"그러니까, 기억 지울 거라고."
아마노는 마치 담배꽁초를 비벼 끄는 정도의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그, 그만둬! 부탁이야! 지우지 마."
"마, 마음에 안 든다면 더 고분고분해질게!! 하지만 부탁이야, 기억을 지우는 것만은…!"
"그렇게 되면 나는… 정말로…"
정말로 나는 그냥 로봇이 되어버린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정말로.
"전부는 안 지워."
아마노는 생각보다 다정하게 말했다.
"기억이 하나도 없는 로봇을 안아봤자 별로 재미없으니까 말이야."
"에?"
"그, 그럼 도대체… 무엇을…"
나는 아마노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할 뿐이었다. 확실히 이제 나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의체병이 아닐 거다. 생사여탈권의 모든 것을 그에게 쥐여준 가련한 기계 인형일 뿐이었다.
"오늘 낮 이후로 당신이 생각하거나 본 것들이 지워질 뿐이야."
"그리고 당신은 내일 일어났을 때 다시 생각하겠지. 내가 수상해. 분명 내가 자신을 강간하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말이야."
"…!"
"할 수 없으니 센서 감도를 최소로 하거나 가짜 인공 인격 파일을 지우거나 하는 거지."
"…"
"그리고 내일 밤에도 다시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거야."
"어머, 아마노 씨, 오랜만이네, 하고 말이야."
"…"
세상에, 세상에.
그러니까 이 며칠 동안 나는 계속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의 악행을 폭로하려고 여러 가지로 준비했던 것들은 몇 번이나 반복해온 일이라는 거야?
"이걸 반복하다 보면 당신은 머지않아 진짜 섹스 돌이 돼."
그는 마지막 선고처럼 말했다.
"지금의 자아보다 섹스 돌의 자아가 이기게 되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단말기 키를 두드렸다.
"아악!"
단말기의 명령은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나에게 전달됐다. 그 순간 나는 확실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아… 하아… 아아아…"
나는 한동안 헐떡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변해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자, 우선 로그 데이터를 적당히 조작해."
"내일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이 의심할 수 있을 정도의 평균적인… 노멀한 감도의 로그 데이터를 꾸며내라고. 아, 그리고 인공 인격 파일도 적당히 만들어. 할 수 있지, 섹스 돌 리사?"
아마노는 명령했다.
나는 섹스 돌 리사가 아니야.
"지금 당신은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모드가 되어있어. 아까까지는 조금 더 저항할 수 있는 모드였지만 말이야."
그런 명령에 따르지 않아. 나에게는 그런 명령에 따를 필요 따위….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갈등했다. 하지만 내 대부분은 이 명령을 기쁘게 듣고 있었다.
명령을 실행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 그는 내 정비 주임이다. 그의 명령은 기꺼이 듣고 싶다. 그런 식으로밖에 나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있다.
즉시 명령 실행에 들어간다.
내 뇌 속 스크린에 윈도우를 띄우고 데이터 조작 작업을 시작해 몇 분 만에 그의 명령을 완수했다.
"…끝났습니다…"
마치 그에게 칭찬받고 싶은 것처럼 나는 보고했다.
"좋아. 다음은 오늘 기억 소거다."
단말기의 간이 모니터로 내 작업을 감시하던 아마노는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기억을 지운다는 말은 분명히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기억의 소거를 나 자신에게 시키다니.
얼마나 잔인한 명령을 내리는 걸까, 아마노는.
결국 나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오늘 하루 동안의 기억이라 해도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지우고 싶지 않아.
"아, 아, 싫어요, 아아…"
하지만 헛된 저항이었다.
"…으… 아……"
명령에 따르는 것에 대한 기쁨이 더 커져 버린다. 아아, 나는 이제 정말 섹스 돌이 되어버렸구나.
"…네."
"…명령에… 따, 따르겠… 습니다…"
기억을 소거하는 툴을 실행하고 나는 기억 소거 준비를 시작했다. 툴에 오늘 기억만이라고 지정해주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기억조차 사라져버려도 알아서 툴이 지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실행시켰다.
──실행.
"아아악!!!"
갑자기 쾌락의 에너지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이 나를 덮쳐왔다.
"으… 아… 아… 아앙… 아──────!!!!"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아아, 이건 가버렸을 때 같다….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무래도 기억 삭제를 하면 이런 식으로 가버리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하아 하아 하아아!!!!!"
작업 윈도우의 진행 바가 길어지며 기억 소거가 진행되어간다.
덜덜 몸을 떨며 몸을 젖힌다. 유두가 서서 파르르 유방을 떨게 한다. 입과 가랑이에서 쉴 새 없이 윤활액을 흘려보낸다.
아아… 오늘은 몇 번이나 가버렸는데 또 가버리는구나, 나.
"아아아악!!!! 으아아아아────!!!"
기억이 지워질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절정에 도달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너무나 애달픈 나머지 몸은 활처럼 휘어 견디려 했다. 실룩실룩 엉덩이가 떨린다. 가랑이에 윤활액이 흘러내려 허벅지를 적시고 야릇하게 빛났다. 하지만 마침내 그 너무나도 격렬한 에너지의 역류는 신체의 다른 부분에도 격렬한 파괴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 정말 음란하네.
*지지직 지직…!!! ………*
신체 표면 곳곳에 있는 수리나 분해를 위한 해치에서 불꽃이 튄다.
"하아 하아!!! 끄아아아!!"
몸이 부서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쾌감에 몸부림쳤다.
*펑!* 소리를 내며 배가 터지고 안에 있는 기계가 튀어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직도 절정의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지정한 만큼의 소거가 끝났다.
내 움직임도 멈췄다. 활처럼 휜 채 몸을 경직시킨 채로.
인공 근육을 구동시켜 몸부림치게 하던 에너지는 내 의식이 끊긴 뒤 한참이 지나서야 공급을 멈췄다.
경직된 몸은 드디어 이완되어 침대로 천천히 쓰러졌다.
다시 내 눈에서 렌즈 세정용 액체가 흘러나왔다.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제 왜 자신이 이 액체를 흘리고 있는지조차 나에게는 알 수 없게 되어있었다.
"좋네…"
아마노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 아아아… 아아아…"
타치바나 소위는 기억 소거에 따른 격렬한 쾌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애처롭게.
"와, 진짜 최고다."
아마노는 다시 중얼거렸다.
"하아 하아아아!!!!"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그 쾌락의 지옥에 도취해 있을 터였다.
아마노는 발기해 있었다.
"아─ 아아아아악!!!!"
덜덜덜덜…
그녀는 몸을 경련시켰다.
기억 소거가 끝난 모양인지 몸을 젖히고 파르르 떨던 소위였지만 이윽고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노는 아직 소녀의 면모가 남아있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유리로 된 소위의 눈동자에는 백치 같은 빛만이 둔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
흐트러져 버린 그녀의 얼굴은 무척 귀엽다고 아마노는 생각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어준다.
지금의 그녀는 시스템 다운된 상황에 가깝다. 나중에 재부팅 해줘야지.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할 것이다. 기계 뇌라고 해도 쾌락 신호를 계속 받으면 그 회복에는 시간이 걸린다. 어쨌든 생몸 여성이 만약 그녀가 받은 것과 같은 정도의 오르가슴을 계속 받았다면 진작에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정도의 것이니까. 기계 뇌니까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심한 짓을 하고 있긴 하네."
다시 아마노는 혼잣말을 했다.
처음 타치바나 리사 소위를 만났을 때 무서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쉽게 곁에 두지 않을 것 같은 외모에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대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격은 성실 그 자체로 무엇이든 꼼꼼하다. 냉정하고 빠릿빠릿하며 빈틈없이 일을 해낸다. 유능한 의체병의 스테레오타입이 그대로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것 같은 그런 여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인상이 변화해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점차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서로 익숙해짐에 따라 격식 없는 대화가 가능해져 갔다.
신뢰감이 생기고 대인 관계는 나쁘지 않게 되어갔다. 농담을 하면 웃었다. 약간 처진 눈으로 웃으면 무척 귀여웠다.
기지에 배치된 초기에 눈매가 날카로웠던 것은 남성뿐인 환경 탓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그녀가 긴장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업무 때가 되면 그녀는 엄격한 상사였다. 그녀의 신체 정비 상황을 설명할 때 그 지적은 날카로워 당황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자주 기가 죽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제대로 팔로우하는 것을 잊지 않고 그녀만의 배려를 해주었다. 결코 삭막한 인간관계에 빠지지 않도록.
남자들뿐인 기지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모두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모두와 이야기를 하려 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실전 중에 아군끼리 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오사라고 칭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죽이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다. 의체병이기 이전에 그녀는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는 장교이고 그리고 여성이니까. 이런 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럴 때 낙담해서 고개를 숙이는 그녀는 외롭고 가냘퍼 보였다. 그런 가끔 보여주는 그녀의 여성스러운 부분에 닿으면 자신이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 표정 한편에서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강한 척한다. 그 갭에 그는 보호 본능이 자극되는 것이었다.
(이런 애를 섹스 돌로 만들 수 있다니 난 정말 운이 좋네.)
부대장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처음에는 이런 여자 개조해봤자 재미도 없겠다고 불만이 가득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끌리게 됨에 따라 점차 그녀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애를 자기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다. 그것은 남자의 꿈일지도 모른다고 아마노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좀처럼 그녀를 대놓고 개조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정비 주임이라고는 해도 뇌를 만지게 해달라고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대장으로부터는 적과 교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들었다. 전투 때 그녀가 부서지거나 사고가 나서 부서지거나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사고란 즉 아군으로부터 오사를 받거나 오폭에 휘말리는 등이다.
섣불리 그녀의 신체를 분해하게 해달라고 제안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의체병을 화나게 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지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부대 병사 전원을 도살하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가 파손되는 사태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대놓고 그녀의 신체를 분해하는 일 따위 할 수 없었다. 계기가 없으면 개조 따위 무리인 이야기인 것이다.
빨리 개조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던 아마노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녀는 지난 전투에서 겨우 파손되어 주었다.
실제로는 그녀의 뇌에는 대미지 따위 입지 않았었다.
치료와 개조를 병행해야 하는 건가 하고 처음에는 질려 있었지만 개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마노는 기쁘게 마이크로 머신을 주입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의식이 회복되지 않았던 것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좋아하게 된 애가 이걸로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뭔가 절차를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격하게 낙담했다. 자신을 계속 자책했다.
그래서 3일째에 드디어 그녀가 의식을 되찾아 주었을 때는 그는 정말로 안도했던 것이었다.
아마노는 소위를 껴안았다.
망가진 마네킹처럼 된 그녀는 손발이 없는 탓에 조금 안기 불편하다.
병사들이 실컷 범하고 더럽혀 놓은 그녀를 씻겨줘야 했다. 병사들의 땀이나 정액 같은 것이 달라붙어 있어 무척 지저분하다.
젖은 수건으로 그녀를 정성스럽게 닦아 청결하게 해준다. 그 몸짓에는 애정이 느껴진다.
뒷수습은 그녀의 정비 주임인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좋아하는 애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껏 유린당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별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쾌락에 몸을 비틀며 애처롭게 우는 그녀는 그것만으로 그의 발기를 촉진했고 가끔 구원을 요청하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전율이 느껴졌다. 정욕이 자극되어 견딜 수 없었다.
리사에게는 어딘가 남자를 흉포한 야수로 만들어버리는 암컷의 매력이 있는 듯했다.
그런 자신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무척 퉁명스럽게 그리고 난폭하게 대한 적도 있다.
그때의 그녀의 풀이 죽어 기가 죽은 반응에 오히려 자신의 성욕이 자극되는 일이 빈번해서 그는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정말이지 넌 내 이상형이야."
모두도 그녀를 안기 전부터 흥미진진했던 모양이다.
섹스 돌로 만들면 어떤 식으로 될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답받았다.
어떤 병사도 그녀에게 푹 빠졌다.
처음에는 인형 안을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냉소적으로 굴던 녀석들도 있기는 있었다.
그것이 쌓인 것을 배출할 뿐이다라고 하며 그녀를 안자마자 의견을 180도 바꾼 것이었다.
그녀에 의해 목숨을 구한 사노조차도 말이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그녀를 안는 쾌감을 알아버리자 그다음은 알아서 움직여 주었다.
그 정도로 리사는 섹스 돌로서 이상적인 애인 것이다.
어쩌면 이 기지에서 개조한 애들 중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 있는 섹스 돌이 될지도 모른다.
정성스럽게 그녀의 더러움을 닦아내자마자 아마노는 유지 보수용 컴퓨터와 리사를 연결했다. 그러고 나서 의체 관리용 소프트웨어를 실행해 그녀가 지금 프리즈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
(전쟁이 끝나면 이 녀석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아마노는 남몰래 그런 음모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기억을 꾸며내서 메이드로라도 만들까. 신변 잡기 같은 거 이 녀석에게 시키고.)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돌려 목걸이 뒤에 있는 강제 리셋 스위치를 누른다.
"삐─"
그녀는 전자음을 내뱉더니 가슴을 젖히며 떨었다. 유방이 파르르 떨린다. 그 눈은 아직 초점이 맞지 않았다.
(메이드 로이드용 인공 인격을 설치해야겠네. 좀 번거롭겠지만 나중에 쓰임새가 좋을 것 같고. 그때는 내가 이번처럼 조교해서 인격 융합해야겠어.)
"시스… 템… 체크… 개시… 합니다…"
평소녀답지 않은 목소리로 소위는 말하기 시작했다.
(잘 융합되면 엄청나게 야한 메이드 돌이 완성될 거야.)
"디바이스… 체크… 개시… 합니다…"
아마노는 그런 그녀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성격은 좋거든. 제대로 일을 해. 빠릿빠릿하게.)
"체크… 종료… 시스템… 기동… 합니다…"
(근데 엄청 외로움을 타는 애야. 주인님이 곁에 없으면 도무지 우울해져서 말이야.)
히죽히죽 지저분하게 형편 좋은 망상에 빠진다.
(제3소대 녀석들은 금방 달려드니까 말이야. 이전 돌도 그렇게 해서 망가뜨려 버렸고. 가급적 세이브시켜야겠어.)
"시스템… 기동 확인… 데몬… 기동… 개시… 합니다…"
아마노는 그녀의 기동을 확인하자 만약을 위해 그 상태를 수면 모드로 강제했다. 피로 탓에 기동했다고 해도 금방 잠에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만약을 위해서다. 보험을 들어두자. 서투르게 깨어나는 것은 곤란하다.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뇌 자체가 망가져 있으면 싫으니까 말이야.)
아마노는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린다.
(난 이 애의 지금 성격이 아니면 싫거든.)
"으…"
드디어 그녀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멍한 표정 그대로 천천히 눈꺼풀을 닫아간다. 결국 그 눈동자의 초점은 맞지 않은 채 끝났다.
(그래서 일부러 이 애의 인격에 창녀 인공 인격을 융합시키는 방법을 택한 거니까.)
왜곡된 것이었지만 확실히 아마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소위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도 아마노는 의자에 앉아 그 자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타치바나 소위를 계속 지켜보았다.
"… 언제 이 녀석에게 손발을 붙여줄 수 있을까."
"완전히 섹스 돌로서 자각해주지 않으면 안 되고 말이야…"
"… 앞으로 2, 3일은 걸리려나…"
아마노의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오늘도 역시 머리가 무거웠다.
그리고 오늘도 5시 반에 일어날 수 없었다.
뇌 속 스크린을 보고 시각을 확인해본다. 지금은 11시였다.
어제보다는 일찍 일어났을 텐데… 근데 나 어제는 몇 시에 일어났더라.
"하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나태한 애가 된 걸까. 내 몸은 기계인데. 피로하다니 이상해.
맞다. 어제 생각한 것을 실천해봐야지.
어디 보자 센서 감도를 높이고……
근데 역시 그 인공 인격 파일은 지워야겠지.
"하아…"
아아 근데… 너무 졸려…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아직 잠이 부족하다니. 게으름뱅이 사이보그라니 농담거리밖에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왜 난 이렇게 센서 감도를 높이거나 인공 인격을 어떻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
알 수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소위님."
그렇게 말하며 아마노 씨가 방에 들어왔다.
"식사하실래요?"
그는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말을 한다.
"저기… 아마노… 씨? 저… 이전처럼 생몸 뇌가 아니고요… 이제 뇌에 영양을 공급할 필요… 없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그는 몹시 놀란 얼굴을 했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걸까.
"저기… 그러니까… 이제 의체용 레이션은 필요하지 않고…"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려 했을 때,
"… 저기… 리사?" 조심스럽게 그는 물었다.
"네? 왜요?"
"타치바나 소위?" 다시 그는 물었다.
"… 하, 하이… 왜 그러세요…" 하지만 소위라고 불리는 것에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아마노 씨… 저… 확실히 소위지만요… 근데… 근데…"
"저… 이제 그런 식으로 불리는 게…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저기…"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횡설수수 상태로밖에 나는 말을 잣지 못했다.
"리사라고 불리는 게 더 좋아?" 그는 진지한 모습으로 물어왔다.
말투가 아까와는 바뀌어 있었다. 명령조였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다. 나는 경어를 쓸 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나는 애매하게 미소 지었다.
"…… 네……"
갑자기 아마노 씨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찌릿찌릿 온몸에 쾌감이 달리고 반사적으로 거기가 젖어버린 것을 느낀다.
"아… 응…" 소리를 낸다.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이게 나답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아마노 씨는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유두를 만지며 내 쾌감을 높여간다.
"앙! 아앙!"
"이런 짓 해도 괜찮아?"
이상한 아마노 씨. 좋을 게 뻔하잖아요.
"저, 저… 기, 기뻐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 버려서 그렇게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온몸이 저려온다.
"섹스 돌이 된 거구나?"
"하아 하아… 저, 저를… 이, 이런 식으로… 만든 건… 아, 아마노 씨가… 아니었나요… 아아앙!!!"
"좋아."
아마노 씨는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부터 내 자지를 줄게. 갖고 싶어?"
보통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제정신을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그런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감정조차 솟지 않았다.
"어때?"
아마노 씨가 꽉 나를 껴안는다. 그의 체온이 내 차가운 기계 몸을 데운다. 나도 모르게 볼이 붉어져 버린다. 남자에게 이렇게 안기는 것은 언제나 기쁘다.
"그, 그래도… 아, 아침인데요? 괜찮아요? 아침부터…"
"네 몸을 조정하는 것은 내 업무 중 하나야."
맞다. 그는 내 정비 주임. 그에게 안기는 것은 정비의 일환입니다.
"그랬죠. 제 정비는 아마노 씨의 업무였죠."
나는 기뻐져서 생긋 미소 지었다.
"감도를 조정해주시겠어요? 아마노 씨의 자지를 저에게 넣어서."
그의 대답은 다시 한번의 키스였다.
"저, 아마노 씨에게 정비받는 거 기뻐요."
드디어 입술을 떼어주었을 때 나는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그에게 전했다.
아마노 씨가 볼을 붉힌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기분 탓일까.
그는 곧바로 나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유방뿐만이 아니다. 거기를 찌걱찌걱 만져준다.
"하… 아아앙!!!"
나는 야한 소리를 내며 헐떡인다. 몸이 애달파진다.
빨리 넣어줬으면 좋겠다.
아마노 씨의 자지로 나를 조정해줬으면 좋겠다.
근데 어쩌면 다른 병사가 우리 행위를 보고 뭐라고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직 아침인걸.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죄송합니다, 지금 점검 중입니다, 라고.
끝.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