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을 법한, 싸움이라곤 질색인 소녀 코지마 미즈키. 그녀는 어느 날 사이보그가 되어 싸우고 있는 친구와 맞닥뜨린다.
그건 사실 그녀의 적성을 노린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다.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파멸의 끝을 향해, 그녀는 속절없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오랜만에, 구원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이보그물이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갈겨버렸다.
전투 적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소녀가 소체로 뽑혀 개조당한다.
그 부족한 적성을 메우기 위해 더 고도화된, 그리고 다신 되돌릴 수 없는 잔혹한 개조가 가해진다. 정신적으로도 개조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개조된 것에 감사하도록 세뇌당한다.
결국 한계까지 몰아붙인 개조 끝에, 그녀는 몸도 마음도 오직 전투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이보그 병기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소녀가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불하되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상품인지 어필하는 이야기다.
***
『특가 중고 사이버돌 미즈키』
본 상품은 전투용 사이보그 ‘사이버돌 미즈키’의 사용 완료된 중고품입니다.
TYPE α-5형 전투용 사이보그 병기 개체명: 사이버돌 미즈키
제조일: 20XY년 Z월 V일
개조 소체: 코지마 미즈키(17) ※상품 이미지 후반에 개조 전 소체 사진 첨부
용도: 전투용. 최신형 TYPE-α 전투 프로그램 인스톨 완료. TYPE α-5 자기 인식 교육 수료.
본 상품은 전투 전용 상품입니다. 그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삼가 주십시오.
TYPE-α 전투 프로그램 인스톨로 인해 비전투 행위에 대한 인식 및 파악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습니다.
본 상품은 1년간 총 52회의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본 상품은 특별 전투용 병기이므로 소유, 매각, 사용에 허가가 필요합니다. 본 상품에는 소유 허가권만이 부수됩니다.
구매 특전: 코지마 미즈키 개조 장면 노컷 버전.
본 상품은 현품 한정입니다. 자매품 ‘사이버돌 아카네’는 납품 시기 미정입니다.
이 농담 같은 상품 페이지가 뜬 건, 평소 자주 드나들던 게시판에 링크된 대형 쇼핑몰 사이트였다.
며칠 전까지 전장에서 싸우던 정체불명의 히로인과 1년 전 행방불명된 연인이 이런 곳에서 엮여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 속에는 고화질로 찍힌, 하얀 기계 덩어리 같은 몸을 한 미즈키와 실종 전 운동이라곤 젬병이었던 미즈키의 모습이 나란히 떠 있었다.
홀린 듯 구매 버튼을 누르자, 평소 같은 확인 창도 없이 곧바로 구매 완료 메시지가 떴다.
구매 이력 등을 확인해 봤지만 방금 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라 생각하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방 한가운데 거대한 캡슐 형태의 물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대자 ‘배송 확인 메일에 첨부된 패스워드를 입력하십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디지털 키보드가 표면에 떠올랐다.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니, 정말로 『중고 사이버돌 미즈키 배송 확인』이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중고 사이버돌 미즈키를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버돌 미즈키 수송 및 보관용 캡슐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셨다면, 아래 포럼의 지시에 따라 확인 절차를 진행해 주십시오. 완료 후 개봉 패스워드를 보내드립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확인 페이지는 허무할 정도로 심플해서 1분도 안 돼 끝났다.
즉시 『사이버돌 미즈키 개봉용 코드』라는 메일과 함께 16자리의 숫자 패스워드가 날아왔다.
이음새 하나 없는 새카만 캡슐에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소리도 없이 캡슐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다만 그 몸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닌, 금속 특유의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개봉 코드 입력 확인. 마스터 확인 프로그램을 기동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이쪽을 빤히 들여다봤다. 자세히 보니 그 눈동자는 렌즈로 되어 있었다….
“마스터 확인… 타미야 유지 확인… 어? 유지 군?”
방금 전까지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유지 군이 새로운 마스터구나… 아, 인사를 해야지.”
“이번에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기체는 TYPE α-5형 전투용 사이보그 병기, 개체명 사이버돌 미즈키입니다. 본 기체는 전투 전용 사이보그이며 특별 전투용 병기입니다. 전투 행위 이외의 이용은 가급적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생긋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투용 사이보그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이버돌? 특수 전투 병기? 대체 이게 다 뭐야!”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전투용 사이보그는 말 그대로 전투를 목적으로 인간을 개조한 것. 내 경우엔 전투 전용이라 다른 일은 못 해. 요리에 관한 지식이나 기술도 전부 덮어쓰기 돼서 적성 외 판정이야. 이제 도시락 같은 건 못 만들어 주겠네….”
“사이버돌 미즈키는 지금 내 이름. TYPE α-5형 전투용 사이보그는 형식명이라 그쪽으로 개체를 식별해. 코지마 미즈키는 개조 전 소체의 이름이고 지금의 나랑은 별개의 존재니까, 나를 나타내는 개체명을 따로 부여받은 거야.”
“특수 전투 병기라는 건 내 관리 구분이야. 이래 봬도 나 엄청 강하거든. 그래서 이 구분으로 분류됐어. 이 등급은 개인으로서의 인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강력한 프로그램 제어, 그리고 스스로가 병기이며 인간이 아니라는 자기 인식 정의가 의무화되어 있어.”
“유지 군… 마스터 타미야 유지 님도 본 기체가 인간이 아닌 전투용 사이보그 병기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 주세요.”
“어째서… 왜 이렇게 된 거야….”
“일단 기밀 사항이 섞여 있긴 한데, 할 수 있는 만큼은 말해 줄게. 유지 군도 내가 싸우던 적들에 대해선 알고 있지?”
“당연하지.”
“그 정체는 나도 듣지 못했지만, 적을 섬멸하기 위해 나를 개조한 분들은 전력이 필요했어.”
“지금으로부터 9,255시간 전, 인간인 유지 군이 알기 쉽게 말하면 385일 15시간 전, 나랑 아카네는 소체로 회수됐어.”
“왜 네가….”
“아카네는 개조 적성이 엄청 높아서 나보다 2단계나 낮은 개조만으로도 나보다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었어. 아카네가 선택된 거고, 난 그냥 아카네를 데려가는 김에 같이 회수된 것뿐이야.”
“하지만 그런 나도 버리지 않고 고성능 개조를 해서 써 주셨어.”
“난 멍청이라 그런 것도 모르고 사이보그 따위 되기 싫어! 원래대로 돌려놔! 라면서 떼를 썼지. 정말 바보 같았어.”
“그 뒤로도 이런 높은 등급의 개조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내가 인간이라고 우겨서, 몇 번이나 인식 교육을 받아야 했어. 350시간 정도 지나서야 겨우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병기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게 됐지.”
“코지마 미즈키로서의 꿈이나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사이보그 병기 사이버돌 미즈키로서 개조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그리고 병기로서 마스터의 지시에 따라 싸우는 것만이 지금 내 존재 의의야.”
어쩌다 시작해서 어쩌다 이어지게 된, 행복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이보그 소녀 이야기의 속편이다.
전투 적성이 없는 소녀 미즈키가 어떻게 몸도 마음도 사이보그 병기로 전락해 가는지 보여 주는 개조 편 제1화.
일단 미즈키가 함정에 푹 빠져 개조당하게 되는 과정이다.
계약 내용은 다음 편에 나오겠지만, 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미즈키에게 도망칠 길 따위는 없다.
***
소체명: 코지마 미즈키
적성치 데이터 (건강 69, 전투 7, 생활 90, 개조 94, 의지 97)
소체는 적성치 및 생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본 실험에 최적이라 판단됨.
통상 전투 사이보그의 적성은 전투 80 이상, 개조 80 이상으로 보며, 하한선이라 해도 전투 70, 개조 60은 되어야 함.
소체의 전투 적성 7은 매우 희귀한 수치로, 아무 일도 없다면 평생 싸움 자체를 피하며 살 수준임. 또한 그 성질상 외부의 강한 명령이나 지시에 거역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됨.
만약 개조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보조가 없다면 평가 판정치 외가 될 것으로 예상됨.
매우 높은 개조 적성치는 어떤 개조 처치에 대해서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것임을 보장함.
또한 개인의 생활 상태가 매우 안정적이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됨. 이는 개조 후에도 일상 회귀를 갈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됨.
매우 높은 의지 적성치는 그러한 감정을 계속 유지하게 하여, 표면적인 순종성 속에 강한 회귀 염원을 품고 있게 만들 것으로 기대됨.
소체명: 에토 아카네
적성치 데이터 (건강 95, 전투 85, 생활 63, 개조 77, 의지 12)
소체는 소위 건강 우량아이며 전투에 높은 적성을 지니고 고도의 개조에도 견딜 수 있는 적성이 있음.
또한 의지가 약해 본 측의 명령, 지시, 의뢰에 쉽게 따를 것으로 예상됨.
소체 코지마 미즈키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에토 아카네를 사전에 개조함으로써 코지마 미즈키의 개조를 유도하는 미끼로 이용 가능함.
이후에도 소체 코지마 미즈키에게 알기 쉬운 비교 대상으로 삼아 지속적인 압박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에토 아카네와 접촉, 커버 스토리를 설명한 후 사이보그로서 싸워 달라고 설득.
사이보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던 듯하나, 강하게 요청하자 “해 보겠다”며 동의를 얻어냄.
당일 개조 처리, TYPE β-3형 전투용 사이보그로 개조. 등록명 CD 아카네로 명명.
“하아, 하아… 대체 뭐야, 저거.”
평소처럼 지름길인 공원을 가로지른 게 실수였다. 눈앞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와 붉은 슈트를 입은 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설마 미즈키야? 도망쳐!”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붉은 슈트의 여자가 외치는 소리에 왔던 길을 되짚어 죽어라 뛰었다.
“위험해!”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검은 그림자가 코앞까지 닥쳐 팔을 치켜들고 있었다.
(안 돼….)
내 발로는 도저히 도망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에서 튀어나온 손이 나를 밀쳐냈고 나는 구르듯 치명상을 피했다.
“크악!!”
그 대가로 붉은 슈트의 여자가 크게 튕겨 나가 내 발치에 나뒹굴었다.
“괜찮으세요!”
부축하려고 다가가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반투명 마스크가 깨지며 그 안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아카네?!”
틀림없다. 일주일 전 행방불명된 아카네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왜 이런 짓을?
“미즈키, 빨리 도망쳐.”
그 말에 일어서려 했지만 발목에 격심한 통증이 달렸다.
“안 돼, 삐었나 봐. 못 뛰겠어.”
“젠장! 이러면 너까지 휘말려. 적어도 미즈키만이라도… 그래, 듣고 있지! 미즈키를 전송해 줘!”
아카네가 소리치자 갑자기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계획대로 소체 코지마 미즈키의 눈앞에서 CD 아카네가 대미지를 입는 모습을 보여준 뒤 회수.
제1 처리실은 개조 수술 준비가 완료되었으며, 본인의 동의를 얻는 즉시 개조를 진행함.
또한 소체에게 흥분제를 투여해 깊은 사고를 방해하는 처리를 한 뒤, CD 아카네를 미끼로 동의를 구함.
강렬한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곳은 밤의 공원이 아니라 사방이 새하얀 바닥에 어디선가 부드러운 빛이 스며드는 공간이었다.
“아카네는? 그리고 여긴 어디예요?”
“아카네는 현재도 전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대미지 때문에 제 성능을 내지 못하고 있군요. 이곳이 어디인지는 극비 사항입니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의자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원래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지만, 당신은 아카네의 요청으로 긴급 전송되었습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아카네가 위험해요. 빨리 도와주세요!”
“안타깝게도 저희가 직접 지상에서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카네와 계약을 맺고 싸울 힘을 준 것이죠. 지금 아카네를 구하러 가려면 누군가를 이곳으로 불러 설명하고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러면 절대 늦어! 초조한 마음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내뱉고 말았다.
“힘을 주는 거, 저도 할 수 있나요? 제가 아카네를 구하러 갈게요!”
“알겠습니다. 긴급 사태이니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계약을 진행하죠. 괜찮겠습니까?”
“네!”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계약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동의를 얻어냄.
그대로 제1 처리실로 이송하여 TYPE α-3형 전투용 사이보그로 개조.
전신 금속 파츠가 노출된 제3종형 전투 사이보그 바디이며, 소체에서 적출한 뇌를 패키징함으로써 즉시 가동 가능함. 또한 α-3형은 요격기인 β-3형에 비해 포격 사양으로 제작되어, 움직이는 대상을 맞히려면 전투 적성과 숙련도가 필수적임.
코지마 미즈키의 기체는 청색과 백색을 기조로 한 컬러링으로, 에토 아카네의 적색 및 백색 컬러링과 쌍을 이루도록 완성됨.
- Operating System stand-by
- TYPE α-3 Combat Cyborg start
그런 글자들이 눈앞에 떠오르더니 시야가 확 트였다.
몸 상태가 이상하다. 이마에 손을 얹으려다 위화감을 느꼈다.
(뭐야? 이 손…?)
내 손이 아니다…. 로봇 같은, 뼈대가 다 드러난 기계 손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내 생각대로 쥐어졌다 펴졌다 한다.
“정신이 드나 보네, TYPE α-3 전투용 사이보그 씨.”
“타입? 그게 무슨… 그리고 전투용 사이보그라니요?”
“TYPE α-3 전투용 사이보그. 그게 지금의 너야. 난 계약에 따라 널 개조했어. 이제 네가 계약에 따라 싸울 차례야. TYPE β가 있는 곳으로 전송할 테니 당장 싸워. 싸우는 법은 미리 인스톨해 뒀으니까.”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몸이 빛에 휩싸였고, 눈을 뜨니 방금 전 도망치던 밤의 공원이었다.
어둠 속인데도 너무 잘 보인다. 시야 구석에 야간 투시 시스템 기동 중이라는 표시가 뜬다.
금속이 부딪치며 불꽃을 튀기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검을 치켜들고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아카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 위로 TYPE β-3 Combat Cyborg라는 표시가 떴고, 슈트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아카네 자신의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옆구리 같은 곳에는 구멍이 뚫려 불꽃이 튀고 있었다.
“타입 알파는 또 누구야!”
“도와주러 왔어, 아카네!”
“설마 미즈키야? 너도 개조당한 거야?”
“응, 이런 몸이 돼 버렸지만… 지금 도와줄게!”
그렇게 말하며 싸우려다 문득 깨달았다. 무기가 없다.
“전송 시스템이야! 무기 전송 요청을 해!”
그렇게 말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무기 전송도 안 하고 맨손으로 싸울 셈이야?』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손에 빛이 모이며 총이 나타났다.
『쏘는 법은 인스톨해 뒀으니까 그걸로 공격해!』
총을 겨누자 자동 접속으로 락이 풀리는 게 느껴졌고, 방아쇠를 당겼다.
『눈 감고 쏘는 전투용 사이보그가 어딨어!』
머릿속에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포에 질려 연사했지만 탄환은 전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걸 본 적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방아쇠를 당겨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탄약 부족이다.
(이런 몸이 됐는데 또 당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적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오일 같은 액체를 흩뿌렸다.
“어시스트 땡큐.”
아카네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빛에 휩싸이자, 나는 의식을 잃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됨. 코지마 미즈키는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사이보그로 개조됨.
앞으로 1년간 그녀는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며 더욱 심각한 개조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 것임. 본 측의 불합리한 요구 또한 계약을 근거로 강행될 예정임.
계획대로 개조당해 버린 사이보그 소녀 이야기의 후속편.
기계 몸을 만져 보고 거울로 확인하며 절망에 빠지지만, 터무니없는 계약을 방패 삼아 계속 싸울 것을 강요당한다.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아니라 어제 봤던 그 천장이었다.
병원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방에는 창문 하나 없었고, 내가 눕혀져 있던 다이 같은 것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제의 일이 전부 꿈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 방일 거라는 희망은 간단히 박살 났다.
손을 들어 본다. 하얀 금속으로 된 손은 도저히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쥐고 펴는 동작은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구동음을 지금의 내 귀는 잡아내고 만다.
이 손 안에는 기계가 꽉 들어차 있고, 생생한 살 위에 금속 장갑을 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바닥에 발을 내딛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발바닥에 바닥의 감촉이 전해진다.
결코 신발을 신고 있는 게 아니다. 고개를 숙이자 금속으로 된 다리가 똑같이 금속인 몸통에서 뻗어 나와 있었다. 무릎과 발목 부분에 가동 범위가 있지만 발가락까지 일체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발가락은 없고 금속제 부츠 같은 앞코와 뒤꿈치가 살짝 굽처럼 솟아 있다. 그런 발인데도 바닥을 딛고 있다는 감각이 확실히 느껴진다. 맨발과는 다른, 딱딱한 물체끼리 반발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을 때 눈에 띈 건 금속으로 된 가슴이었다. 사이즈는 예전과 거의 비슷하다.
(이제 와서 이런 게 있어 봤자….)
손가락으로 만져 보자 역시 금속 특유의 딱딱함과 금속끼리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은 어떻게 됐지? 어제 아카네 얼굴은 예전이랑 똑같아 보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벽면 일부에 빛이 반사되는 걸 발견했다. 온통 하얀 방이라 몰랐는데 거울인 모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기심에 거울을 들여다본 건 후회밖에 남기지 않았다. 얼굴은 정교하게 나를 본떴지만 눈동자가 렌즈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머리카락도 당연히 가짜고, 전신이 완전히 금속이라 내가 아니었다면 로봇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즉, 인간 코지마 미즈키의 흔적은 얼굴의 모방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로 기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조 후의 반응은 대체로 예상 범위 내임. 전투 적성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신체 상태에 집착하는 것은 변함없는 듯함.
페이스 파츠 등은 사전에 준비해 두지 않으면 단시간에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거나, 자는 동안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임.
다이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자 벽이 소리 없이 열리며 어제의 그 여자가 들어왔다.
“몸 확인은 충분히 하셨나요?”
“충분해요! 아카네도 구했으니까 이제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TYPE α-3 전투용 사이보그. 당신에겐 계약에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계약요? 아카네를 돕기 위해 힘을 빌려주는 것뿐 아니었나요?”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요. 긴급 사태라 내용 설명은 생략했지만 계약은 완료되었고, 저희는 당신에게 그 몸을 주었습니다. 이제 계약대로 당신이 대가를 치를 차례입니다.”
“대가라니… 그리고 계약 내용이 대체 뭔데요?”
“네, 그 상세 설명과 향후 일정에 대해 알려드리는 게 제가 여기 온 이유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옆구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본 계약서에서 사이보그 기체를 제공하는 측을 ‘갑’, 육체를 제공하는 측을 ‘을’이라 한다.
- 갑은 을이 이용할 사이보그 기체 제공 및 개조 수술, 활동 시의 장비와 기체 정비를 제공한다.
- 을은 갑이 요구하는 전력으로서 개조 후의 자신을 제공한다.
- 본 계약은 1년을 기간으로 하며, 1년간 을은 갑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1년이 지난 후 갑은 을을 개조 전의 육체로 되돌리고 계약을 종료한다.
- 을은 전력으로서 표준 사이보그 전력 평가 C랭크 이상의 성능을 제공해야 한다.
- 갑의 판단에 따라 을의 추가 개조를 진행할 수 있다. 이 경우 비용 등은 갑이 부담한다.
- 을이 갑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소유자로서 교정할 수 있다.
- 을이 갑에게 순종하며 전력을 계속 제공하는 한, 갑은 정비 및 소모품 보충을 통해 전력 유지에 힘쓴다.
- 을이 갑에게 전력을 제공할 수 없게 될 경우, 을은 갑의 영구적 소유물이 되며 계약은 종료된다.
- 갑이 을의 정비를 제공할 수 없게 될 경우, 을은 이용 중인 기체를 자신의 소유로 하며 계약은 종료된다.
“1년? 소유물?”
그곳에 적힌 문구들은 믿기 힘든 것들이었다.
“네, 저희는 계약대로 기체를 제공했으니, 당신은 어제부터 1년간 저희가 소유한 전투 사이보그로서 싸워야 합니다.”
“1년 동안 이 몸으로 싸우라고요…?”
“네, 힘내 보자고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전력 평가 C라고 되어 있지만, 어제 전투에서 당신의 평가는 간신히 G등급입니다. 그것도 훈련 없는 첫 실전이라 아주 후하게 쳐준 거예요.”
“네?”
“사격형 사이보그면서 총 준비도 스스로 못 하고, 겨우 챙겨준 저반동 표준 총기로 단 한 발도 못 맞히고 탄창만 다 비운 채 멍하니 서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죠. 상대의 주의를 끌어 동료를 도왔다는 TYPE β-3의 보고를 참작해서 간신히 평가 외 판정을 면한 G등급입니다.”
“하지만 전 총 같은 거 처음이고 싸우는 건 해 본 적도 없어서….”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다. 필사적으로 쏜 총알은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빗나갔다. 그 뒤로 죽기 직전에 아카네가 구해 줬을 뿐인데… 난 싸움 같은 거 안 맞아….
“총 사용법은 인스톨해 뒀습니다. 그리고 그 기체는 표준적인 사용자라면 정지 표적 정도는 백발백중할 수 있어요. 즉, 당신이 멍청이라 기체 성능을 끌어내기는커녕 죽이고 있다는 소리죠.”
“죄송합니다….”
“사과해 봤자 소용없어요. 저희는 계약에 따라 고가의 기체를 줬습니다. 계약대로 대가를 치르지 못하면 계약은 종료입니다.”
“계약 종료라니요?”
“네, 당신이 전력이 안 된다면 계약대로 당신은 저희 소유물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깡통은 받아 봤자 쓸모가 없죠. 창고에 두자니 짐만 되고, 팔자니 불량품 팔았다고 클레임 들어올 게 뻔하고… 폐기 처분해야 하나? 이거 완전 손해네.”
폐기 처분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이 몸 그대로 버려진다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살 수가 없어!
“부탁이에요, 열심히 할게요! 꼭 C평가 받을게요! 그러니까 기다려 주세요!”
“지금의 당신은 그냥 기계일 뿐이라 부탁해 봤자 아무 감흥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도 손해를 볼 순 없으니 당신을 교육해서 쓸만하게 만들어 주죠.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했을 땐, 폐기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이런 계약에 정당성 따위는 없다. 다만 그녀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뿐이다. 애초에 서류를 만드는 식의 계약을 해 본 적도 없을 테고, 사이보그니 소유물이니 1년이니 하는 말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받아들이는 것조차 벅찰 것이다.
방금 전 확인한 자신의 몸이 내 말의 일부를 증명하고 있기에, 사고가 정지되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전투 평가 C는 일반적인 전투용 사이보그라면 여유롭게 낼 수 있는 평가다. 전날 전투에서도 CD 아카네는 미즈키를 보호하느라 입은 대미지를 고려해도 C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즈키에게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치명적으로 낮은 전투 적성 때문에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E등급이 한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실은 미즈키를 끊임없이 압박할 것이다. 또한 이를 빌미로 받아들이기 힘든 개조나 처치를 감수하게 만들 수 있다.
계약을 맺어 버린 미즈키에게 일상생활이라는 이름의 관리가 시작된다.
몸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규칙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그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자각이 얇은 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간다.
***
“우선 널 관리하기 위한 코드네임을 정해야겠네. 뭐, 이미 정해져서 통보하는 것뿐이지만…. 네 몸은 아카네와 페어로 운용되는 걸 전제로 하니까 코드네임도 같은 타입으로 맞췄어. TYPE α-3 전투용 사이보그라고 부르긴 너무 길잖아. 이제부터 넌 ‘사이버돌 미즈키’야. 아카네는 ‘사이버돌 아카네’. 태엽 인형처럼 알기 쉬운 이름이지?”
“저에겐 제대로 된 이름이….”
“그건 인간이었을 때 이름이겠지. 지금의 넌 우리가 관리하는 사이보그야. 아니면 관리 번호로 불리고 싶어?”
“아니요… 저는 지금부터 사이버돌 미즈키입니다.”
숫자로만 불리는 것보다는, 미즈키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게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본명이 아닌 이름으로 관리한다. 이는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비록 미즈키라는 이름을 남겨 두었더라도, 그 차이는 지울 수 없다.
또한 이번에 스스로 이름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상대가 허락 없이 부르는 것뿐이라는 도망칠 구멍을 차단했다.
“현재 네 평가는 솔직히 말해서 아주 낮아. 계약에 따르겠다고 선언했으니 최하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됐어. 현재 평가치로는 기본적으로 수납 캡슐 안에 구속 보관되고, 허가가 있을 때만 전용 보관실… 즉 여기 내부에서만 행동이 허용돼. 보관실 밖으로 나가는 건 원칙적으로 전투 출격 시에만 가능해.”
‘보관’이라는 단어를 써서 물건 취급임을 강조한다.
“수납 캡슐 조정이 덜 끝나서 허가 없이 실내를 둘러본 건 불문에 부칠게.”
만약 허락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녀가 누군가와 교신하듯 말을 시작했다.
“조정 끝났어? 그럼 이쪽으로 전송해. 위치는 예정대로. 오케이, 지금 비어 있어.”
그 말이 끝나자 방의 빈 공간에 빛이 모이더니 내 키의 1.5배 정도 길이에 높이 50cm 정도 되는 캡슐이 나타났다.
“이게 수납 캡슐이야. 허가가 없을 땐 이 안에서 보관될 거야. 시뮬레이터 기능도 있으니까 다음에 써 보자고. 우선 첫 번째 명령이야. 들어가.”
“네….”
다가가자 이음새 없는 거울 같은 표면이 소리 없이 두 갈래로 열렸다.
“머리를 이쪽으로 하고 똑바로 누워.”
명령대로 발을 집어넣자 내부는 딱딱한 금속이었지만 사람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어, 그 결을 따라 몸을 뉘었다.
『사이버돌 미즈키 정위치 수납 완료. 허가가 날 때까지 사지를 잠금(Lock)합니다.』
시야에 그런 문구가 뜨더니 양어깨 아래와 골반 아래가 움직이지 않게 됐다.
“기본적으로 락 상태라 몸을 움직일 순 없어. 다음은 충전 기능을 켤게.”
“충전요?”
“네 몸은 배터리로 구동되니까 정기적으로 충전해야 해. 정위치에 고정되면 충전이 가능해지지. 네가 쓰던 휴대폰 충전기랑 비슷한 원리야.”
- Battery Charging
그 문구가 시야에 비침과 동시에 전신이 포근해지는 감각이 들며 안도감과 기분 좋음이 느껴졌다.
“충전 없이 최장 168시간 버티지만, 제때 충전하도록 해. 배터리 나가면 남아 있는 뇌세포도 무사할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내가 배터리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충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이 캡슐은 요람과 같으면서도 내가 기계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 준다….
이번에 그녀를 위해 준비한 신체는 고성능이지만 정기적인 충전이 필요한 타입이다. 동력 내장형과 비교했을 때 기구의 단순화와 공간 절약이 가능해 개조 전과 가까운 프로포션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충전이 필수라는 사실을 통해 도망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자신이 소유했던 가전제품과 같은 처지임을 강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
본래 인간에게는 불필요한 충전이라는 행위는 그녀에게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며, 일상적인 도구와 같은 입장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순순히 잘 따르니까 다음은 식사를 하자.”
식사! 그 말에 지금까지의 우울한 기분이 싹 날아갔다. 내가 배터리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증거를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그럼 시작할게요.”
다음 순간, 뒤통수에 무언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더니 눈앞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급식관 접속, 생체 유지용 젤 보충 완료.』
그리고 곧바로 연결이 끊겼다.
“자, 끝났어.”
“네?”
전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요….
“방금 네 생체 파츠 유지에 필요한 영양 젤 보충이 끝났어. 이걸로 배터리랑 똑같이 168시간 활동할 수 있어. 설마 따뜻한 밥 한 그릇 나와서 먹는 걸 기대했어? 무리야. 넌 전투용 사이보그라 소화기관 같은 건 없고, 애초에 그 입은 안에 스피커만 있을 뿐 막혀 있거든. 뭘 입에 넣어도 씹을 치아도 없고 맛을 느낄 혀도 없어. 그냥 스피커만 더러워질 뿐이지.”
즉, 나는 그 찰나에 보충되는 젤로 영양을 채울 뿐, 무언가를 맛보며 먹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아니, 이 몸은 맛을 즐기는 기능 자체가 없다…. 앞으로 1년 동안 미각 자체를 잃은 채, 기계처럼 필요한 동력원만 보충하며 살아야 한다….
식욕은 3대 욕구 중 하나이며, 수면욕 등과 달리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다.
이를 외부 컨트롤을 통해 순식간에 끝내 버리는 것은 기계가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취미가 요리였던 그녀에게서 미각을 앗아간 것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음은 수면인데, 원칙적으로 이 캡슐에 수납된 상태에서만 가능해.”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선 자면 안 된다는 건가요?”
“아니, 지금의 넌 우리 명령이 없는 한 뇌의 각성 상태를 유지하도록 약물 투여와 나노머신 자극이 이뤄져. 피로한 상태에서도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서지. 반대로 수면 상태가 되는 것도 미리 짜인 스케줄에 따라 이 캡슐 안에서 휴식할 때나, 권한이 있는 사람이 조작할 때만 즉시 이뤄져. 그럼 한번 테스트해 볼까?”
그녀가 손에 든 단말기를 조작했다….
- TYPE α-3 Combat Cyborg SleepMode
그 글자가 보이자마자 내 의식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 TYPE α-3 Combat Cyborg Awaking
이번엔 그 글자와 함께 번쩍 눈이 떠졌다.
“30분 정도 잤는데 어때? 순식간에 논렘 수면까지 갔다가 깰 때까지 그대로였으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간 기분일 거야. 잠들고 깨는 건 우리가 제어하니까 이제 늦잠 잘 일은 없어.”
마치 기계 전원을 껐다 켜는 것처럼, 내 잠조차 자유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 말인데….”
그녀가 내 가랑이 부분을 만졌다.
“그만하세요! 부끄러워요!”
이런 몸이라도 거길 만지는 건 거부감이 든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어차피 그냥 외장 프레임일 뿐이고, 안에는 고관절 구동 부위랑 자잘한 파츠들뿐이니까.”
“네?”
“아, 배설 기관이 있을 줄 알았나? 지금의 넌 굳이 배설할 노폐물이나 음식 찌꺼기가 없잖아.”
“그…렇네요.”
“설마 거기서 섹스라도 할 생각이었어?”
“그런 말을 어떻게…!”
“부끄러워하는 건 좋은데, 지금의 너한텐 그런 기능 없어.”
“네…?”
“생식 기능 같은 건 없으니까 전용 구멍도 안 만들었지. 전투용 사이보그보다 위안용 섹스 사이보그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그런 불필요한 기능은 없으니까 성적 욕구 같은 것도 없을 거야. 안심해. 밤중에 혼자 손가락으로 달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 짓 안 해요…!”
대소변을 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말 그대로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몸이 됐다는 사실이 비수로 꽂혔다. 위안용 같은 건 당연히 싫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들이 속속들이 박탈당했다는 통보를 받으며 내가 인간이 아님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수면욕과 성욕 또한 식욕과 마찬가지로 관리 및 삭제되었음을 알린다. 식욕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기능이 없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줄 것이다. 또한 생식 기능이 없다는 것은 아이를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며, 이는 생물로서의 목적 중 하나를 박탈당했음을 뜻한다. 생명체로 취급받지 못하는 전투용 기계로서의 자아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