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형 편의점 체인에서 가동 중인, 원래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로봇 소녀의 이야기.
평소 제 오리지널 캐릭터인 사시하라 카호가 아니라, 카호와 같은 회사 비품인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C101 '하카소시야'에서 배포된 휴머노이드 합동지 <마리오네트가 꾸는 꿈>을 일부 개고하여 업로드합니다.
야마무라 유이는 카호와 학교는 다르지만 한 학년 위 선배입니다. 같은 회사의 휴머노이드이자 같은 시내에 살고 있어 친분이 있죠. 그런 그녀에게 고교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찾아오는데…….
이번에도 집필 단계부터 마카나 님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아, 농밀한 삽화를 잔뜩 제작해 주셨습니다. 부디 그쪽도 함께 즐겨주세요.
더불어 표지는 pixiv 업로드에 맞춰 새로 제작해 주셨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북마크나 감상을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되니 잘 부탁드립니다.
*****
“앗, 돌아왔다. 유이!”
학교 점심시간. 밥을 먹을 필요가 없는 나는 평소처럼 도서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반 친구인 아카리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불러 세웠다.
“유이, 이것 좀 봐봐. 이 사이트.”
『무슨 일이야, 아카리?』
아카리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는 배경이 검은 수상쩍은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무슨 사이트인데? ……이거, 도촬 사이트야?』
“아까 남자애들이 자기들끼리 신나서 떠드는데 왜인지 유이 이름이 나오길래 따져 물었거든. 자, 여기 봐.”
아카리가 링크를 탭하자 이런 문구가 나타났다.
【거리에서 알몸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노출 중인 미녀 로봇들을 마음껏! 휴머노이드의 성지, 사에바!】
헤드라인 아래를 훑어 내려가니 시내 파출소, 사에바 소방서, 자위대 사에바 주둔지에서 몰래 찍힌 휴머노이드들의 사진이 줄줄이 쏟아졌다. 스크롤을 더 내리자 병원의 너스 로이드, 음식점에 이어 휴머노이드가 배치된 편의점 지도와 함께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안타깝게도, 나 자신도 포함해서.
“이거 진짜 악질이야. 유이 너도 좋아서 이런 차림으로 일하는 게 아닌데!”
업로드된 내 사진은 전부 도촬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진열대 하단에 상품을 진열하는 모습.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우느라 카운터 쪽으로 엉덩이를 쭉 빼고 있는 모습. 대걸레를 들고 청소 중인 나를 아래쪽 앵글에서 가랑이 사이가 다 보이게 클로즈업해서 찍은 악질적인 사진까지…….
“야, 니들! 반 친구 도촬 사진 보면서 낄낄대니까 좋냐? 부끄러운 줄 알아!”
“미안!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우리도 몰랐다고!”
“애초에 그런 사이트를 보는 것 자체가 변태라는 거야!”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을 몰아세우며 교실이 소란스러워지는 사이, 나는 조용히 아카리에게 폰을 돌려주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괜찮아. 이런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업무 모드 중인 나는 옷을 입을 수 없게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 찍혀도 어쩔 수 없지 뭐.』
“선생님한테 가서 말해! 유이 너만 참고 넘길 일 아니야! 적어도 사람 점원들처럼 유니폼이라도 입게 해달라고 하면 안 돼?”
나를 위해 대신 화를 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하지만 이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업무 모드로 가동 중인 휴머노이드는 기계 비품 취급이라, 여자 점원들처럼 법으로 보호받지 못해. 게다가 회사에서도 내 가슴이나 엉덩이에 광고를 프린트하거나 스티커를 붙여놓으니까, 사실상 봐달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거든.』
학교 밖의 거의 모든 시간을 '외피'라 불리는 특수 고무 소재의 맨살로 지내는 나에게 도촬은 일상다반사였다. 거리에 나가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훑어대는 일도 허다했다.
로봇이 된 지 벌써 2년. 내가 프로그램에 거역할 수 없는, 노예보다 못한 '물건'이라는 사실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이런 취급에도 이젠 익숙해졌다. 하지만…….
『카호도 도촬당하고 있구나…….』
“응? 누구? 아는 휴머노이드야?”
『응. 다른 고등학교 다니는 한 살 아래 동생. 몹쓸 병에 걸려서 휴머노이드가 됐는데, 개조 전부터 상담해 줬거든. 지금도 자주 메시지 주고받아.』
“그럼 유이랑 같은 처지네.”
나에게도 휴머노이드화는 결코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2년 전, 원인 불명의 난치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지만 않았어도 나는 지금쯤 평범한 인간 소녀로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개조 직후에는 낯선 몸에 당황하고, 회사나 주변에서 물건 취급당하는 것에 상처받아 매일 밤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카호는 어떤 기분일까. 역시 예전의 나처럼 울고 있을까…….
“야마무라. 네 진로 희망 조사 말이다만……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방과 후 진로 상담실. 덩치 큰 남교사인 사토 선생님이 다짐하듯 물었다.
『네. 저는 휴머노이드라 소유자와 관리자의 직인이 필요하거든요. 혹시 미비한 점이라도 있나요?』
“내가 나눠준 용지는 이쪽일 텐데.”
책상 위에는 두 장의 용지가 놓여 있었다. 사토 선생님이 내민 용지에는 진학, 취업, 기타 란이 명시되어 있고, 각각 제1~3지망까지 적게 되어 있었다.
내가 제출한 용지는 기입란이 단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본인의 의사를 표명하는 진로 조사인데도 소유자와 관리자의 도장이 쾅 찍혀 있었다.
『선생님이 주신 용지는 집에 가져갔는데, 새엄마가 회사 슈퍼바이저님께 보고하니까 회사 쪽에서 이걸 제출하라고 명령하셨어요.』
내가 제출한 용지의 제목은 【학교 진로 지도 담당자 귀하: 재학 중인 당사 소유 휴머노이드의 가동처에 관한 통지】라고 적혀 있었다.
기체명: HS-206aPS0917YY
소체명: 야마무라 유이
가동처: 편의점 【Styles 11 국철 사에바역 서쪽 출구점】
소유자: (주)일레븐 앤 에스 자산관리본부 (주관리부서: 사에바 지사)
점포 비품 관리자: 야마무라 타츠오, 야마무라 하루카
내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제조될 당시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사실이었다.
“으음. 하지만…….”
사토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 신음 섞인 소리를 냈다.
『선생님, 전 로봇이에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점포에 대여된 회사의 기계 비품일 뿐이죠. 지금은 야간이랑 주말에만 가동하고 있지만, 졸업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가동하도록 제 장기 운용 계획에 잡혀 있어요.』
내 미래를 스스로에게 되새기듯 보고했다. 어차피 기업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야, 야마무라. 난 이 학교 진로 담당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네 1학년 때 담임이기도 했잖아. 그때 넌 미래의 꿈을 참 즐겁게 얘기해 줬었는데 말이야.”
잊을 수 없다. 아직 인간이었을 때의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서 아동 문학을 전공해서, 그림책 편집자가 되는 거 말인가요?』
“그래, 그랬었지? 그리고 편집자를 거쳐서 언젠가는 동화 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책을 쓰고 싶다고. 멋진 꿈이잖아. 그걸 벌써…… 포기한 거냐?”
사토 선생님은 학생들을 끔찍이 아끼는 열혈 교사다. 대학 시절 럭비 선수로 활약하며 프로를 꿈꿨지만 부상으로 단념해야 했던 과거가 있다. 그 회한을 품고 교사가 되었기에 꿈을 쫓는 학생들의 등을 밀어주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열정이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졌다.
『……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런 기계 인형이, 제 소체가 된 소녀의 꿈을?』
내 속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비하하듯 쏘아붙였다.
“어, 어이, 야마무라?”
『선생님, 휴머노이드는 인간이 아니에요. 명령과 프로그램에 따라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로봇일 뿐이라고요. 게다가……』
“게다가…… 뭐?”
『전 야마무라 유이가 아니에요. 제 마음은 그녀의 뇌 정보를 바탕으로 생전의 그녀를 재현한 가짜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고요. 로봇이 출판사에서 이야기를 편집하거나 만드는 일 따위, 세상이 허락할 리 없잖아요.』
이른바 창의적인 일은 휴머노이드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세계였다.
“……그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냐?”
『죄송해요. 잠시 감정적이었네요. 로봇 주제에 면목 없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투였다. 나답지 않았다.
“하지만 너, 사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 지금의 네 몸으로도 출판이나 창작에 관여할 수 없는지 알아본 거 아니야? 휴머노이드는 인간에게 거짓말을 못 해. 그래서 꿈을 포기했다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한 거 아니냐고.”
선생님은…… 날카로웠다.
『……네. 하지만 여러 출판사를 알아봐도 편집부에 휴머노이드는 없다고 해서요.』
“그건 그냥 전례가 없는 것뿐이잖아. 네가 개척자가 되면 되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미래는 이미 정해진 길뿐이라고만 믿었으니까.
“미안하지만, 난 지금의 너한테서 이 용지를 받아줄 수 없다.”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가동처 통지서】를 다시 돌려주었다.
“네가 로봇이든 기계든 뭐든 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낸 진로 희망서를 어떻게 그냥 받겠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나 보다.
“회사에 거역할 수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너, 애초에 네 의사를 부모님이나 회사에 제대로 말해본 적은 있어?”
『……아니요. 회사의 장기 운용 계획으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서요.』
“그럼 한 번쯤은 네 목소리로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나는 회사에 거역하지 않도록 사고가 제어되고 있었기에 그런 발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회사 사람들이 제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시작도 안 돼. ……학교에서는 교원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도록 재학 중인 휴머노이드는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나?”
『네, 맞아요.』
학교 직원은 재학 중인 휴머노이드의 임시 관리자로 설정되어 있었다. 물론 사토 선생님도 포함해서.
“그럼 넌 부모님이랑 회사에 진로 상담을 하고 와. 네 의사를 확실히 전해! 이건 명령이다.”
몸이 찌릿하며 떨리고, 사고가 순식간에 지배당했다.
『삐빅, 명령을 수신했습니다. 본 기체는 소유자 및 관리자에게 진로 희망을 전달하겠습니다.』
동시에 시야의 태스크 표시창에 한 줄의 문구가 추가되었다.
“명령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난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꿈이야말로 네가 인간이라는 증거니까.”
로봇은 명령에 거역할 수 없기에 진로 상담 이행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씻은 듯이 개운해졌다.
『감사합니다.』
“아, 이제야 오네.”
교실로 돌아오니 빗자루를 한 손에 들고 폰을 만지작거리던 날라리 같은 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타카하시?』
“나 지금 학원 수업 늦을 것 같거든. 청소 당번 좀 대신 해주면 안 돼?”
그녀는 빗자루를 억지로 떠넘기려 했다.
『나도 오늘 선생님이 부르셔서 늦었어. 이따 장도 봐야 하고, 충전한 다음에 가게에서 가동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시간이―』
“에이, 좀 해주라! 응? 휴머노이드는 인간한테 봉사하고 복종하는 로봇이잖아? 반 친구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에게는 인간의 부탁을 원칙적으로 거절할 수 없는 기본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교사나 동급생들의 잔심부름은 자주 내 몫이 되곤 했다.
당번은 타카하시니까 사실 도와줄 의무는 없지만, 기본 프로그램은 내 의지보다 우선시된다.
『어쩔 수 없네. 학원 열심히 다녀와.』
빗자루를 건네받으며 내 입에서는 마음과 정반대되는 말이 출력되었다.
“고마워! 그럼 부탁해~”
그녀는 교실을 쌩하니 빠져나갔다.
『갈 때 뛰지 않으면 늦겠네…….』
청소를 하며 창밖을 슬쩍 보니 다른 반 여학생과 나란히 하교하는 타카하시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신경이 쓰여 카메라 아이를 줌하고 귀 위치에 있는 집음 마이크의 감도를 높였다.
“야, 너 청소 당번은?”
“떠넘기고 왔어. 이럴 때 써먹기 좋은 로봇이 있잖아.”
“좋겠다. 우리 반도 누구 하나 휴머노이드 되면 편할 텐데.”
“저런 기계 노예가 될 바엔 죽는 게 낫지.”
“아, 걔 얘긴 이제 됐어. 그보다 어디 가서 놀까? 추천 입시도 끝났고 학원도 안 가도 되는데.”
“어차피 대학 가도 공부 안 하고 놀 거면서?”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웃으며 멀어져 가는 동급생들. 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마이크 감도를 낮췄다. 학원 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내가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타카하시는 나를 이용…… 아니, '사용'하고 있었다.
텅 빈 교실. 들리는 것은 빗자루 쓰는 소리와 팔다리에서 들려오는 저소음 모터의 구동음뿐.
『기계 노예라……. 로봇인 내가 꿈을 꾸는 건 역시 과분한 일일까…….』
위잉, 윙, 끼이이이…….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몸이 내는 구동음이 머릿속을 울리며 떠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진로 상담실에 불려가고 청소 당번까지 떠맡는 바람에 뛰어왔지만 결국 귀가가 늦어버렸다.
가게 2층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는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채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새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기분 나쁜 듯 나를 노려보았다.
“늦어! 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거야! 귀가 시간까지 명령으로 입력해줘야 해? 그렇게까지 멍청한 로봇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죄, 죄송해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그러니까 명령으로는……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필사적으로 새엄마에게 머리를 숙였다. 명령은 최우선 태스크로 설정되어 그에 맞춰 몸도 마음도 전부 제어된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의 산책이나 잠깐의 딴짓이 유일한 자유 시간인 나에게, 여기서 더 행동을 제약당하는 건 정말 싫었다.
“아까 하도 안 오길래 네 GPS를 봤는데, 꽤 빠른 속도로 뛰었더라?”
새엄마는 곁에 항상 두는 내 제어용 태블릿을 보며 다그쳤다. 내 행동 로그를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 위치 정보는 30초마다 서버로 전송되기 때문에 내가 어디 있는지 항상 감시당한다. 이력도 고스란히 남아서 내가 시속 40km 정도로 달렸다는 사실도 새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조금만 그랬어. 차도로 조심해서 달렸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지! 인명 사고라도 내면 넌 그 즉시 스크랩 처분이야! 하아, 배터리 소모에 기체 대미지도 클 텐데. 너, 네가 범용 휴머노이드라는 자각은 있어? 건축 토목용이나 경찰용 같은 성능은 없으니까 조심하란 말이야.”
『……죄송해요, 어머니.』
의붓어머니라 해도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꽤 가슴이 아팠다. 확실히 우리 휴머노이드가 사고를 내면 원인 분석 후 결함 제품으로 폐기 처분된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지만, 더 늦었더라면 야단맞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아, 정말이지. 평소보다 늦은 데다 배터리 잔량도 얼마 없으니까 저녁 준비는 됐고 얼른 충전이나 시작해. 업무 모드 전환까지 시간 없어.”
『에? 벌써요? 오늘은 21시부터 아니었나요!?』
“미즈키 학원 수업이 이번 주만 오늘로 바뀌었어. 내가 데려다줘야 하니까 19시부터 들어가.”
미즈키는 배다른 동생이다. 세 살 아래 중학교 3학년으로 새엄마가 데려온 아이다. 미즈키가 올해 수험생이라 새엄마가 동생에게 온 신경을 쏟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말 못 들었어요. 저도 예정이 있고,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는데…….』
“……깜빡했어. 아무튼 업무 모드 전환 19시로 변경. 이건 명령이야!”
명령.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제어 시스템이 덮어씌워지고 머릿속에 새로운 명령이 입력되었다.
『삐빅, 태스크 설정 변경. 업무 모드 이행 시간을 19시로 설정합니다…… 너무해요,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나를 지켜줄 아빠가 없다는 게 서러웠다. 그리고 명령이 갱신됨과 동시에 향후 행동이 전부 다시 계산되었다.
『삐빅…… 업무 모드 이행 전까지 충전이 완료되지 않습니다. 현재 시점부터 충전을 시작할 경우 예상 잔량은 81%입니다. 충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당장 시작해.”
『삐빅, 알겠습니다. 의류 착용 중입니다. 탈의하시겠습니까?』
“그런 걸 꼭 물어봐야 해? 얼른 벗어.”
『알겠습니다. 탈의 후 신속히 충전 스탠드로 이동합니다…… 자, 잠깐만요! 어머니!』
그렇게 외치면서도 내 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멋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재킷과 스커트를 옷걸이에 걸고 와이셔츠는 세탁 바구니로. 속옷은 로봇이 된 이후로 지급받지 못해 입고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외피로 덮인 전신을 드러낸 채, 몸은 충전 스탠드를 향해 제멋대로 움직였다. 내 몸은 내 의지보다 프로그램의 규정 동작이나 리모컨 조종이 우선시되기에 거역할 수 없었다.
“충전하는 동안 네 대화 로그랑 시야 영상 확인할 거니까, 할 말 있으면 그때 들어줄게.”
『에, 그건 안 돼요…….』
내 몸은 복도로 나가 계단 밑 창고 공간에 설치된 메인터넌스 스탠드로 향했다.
스탠드에 등을 지고 서자, 나는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을 뻗어 15도 각도로 벌렸다. 그러자 스탠드에서 로봇 팔이 뻗어 나와 내 팔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다리는 발끝과 뒤꿈치가 금속 장치로 고정되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내 손발이 묶이자 목덜미, 등, 꼬리뼈 부근의 커넥터에 전원 케이블과 제어 케이블이 연결되었다.
철컥, 칭!
『아앙! 현재 배터리 잔량은 29%입니다. 충전을 시작합니다…… 앗, 아아앗, 앗, 앗…… 하앙!』
충전이 시작되자 나는 몸으로 밀려 들어오는 신호를 견디지 못하고 천박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팔짱을 끼고 나를 지켜보는 새엄마는 멸시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휴머노이드의 충전은 강렬한 성감 신호를 동반한다. 인간 시절의 생체 조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데도 가랑이 사이와 가슴이 격렬하게 욱신거려 도저히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자, 네가 학교에서 뭘 하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한번 볼까.”
『아앙! 하지…… 마세요……! 하앙!』
“난 네 관리자야. 점포 비품으로서 가동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감시와 제어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너무…… 해요…… 으윽…… 아앗!』
충전 시의 성감 신호는 로봇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고문에 불과했다. 강제로 가족 앞에서 자위하는…… 아니, 이런 강간당하는 듯한 모습을 매일같이 노출해야만 했다. 수치스럽고 분하고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새엄마가 메인터넌스 스탠드의 콘솔 패널을 조작하자 스탠드 내장 디스플레이에 불이 들어왔다. 엄마는 무언가를 읽듯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마 내가 친구나 선생님과 나눈 대화 로그가 표시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는지 특정 지점을 클릭하자, 이번에는 디스플레이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링크된 곳은 그 대화 시점의 내 카메라 아이 영상 데이터였다. 흘러나오는 음성으로 보아 대화 내용은 아마 점심시간의 그 화제인 듯했다.
“흐음, 도촬 사이트라. 뭐, 회사 사람들도 농담 삼아 광고의 일환이라고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다음은 방과 후네…….”
『아윽…… 이…… 아앗…… 하앙!』
엄마는 차례차례 내 친구들과의 대화를 확인해 나갔다. 이렇게 내 기억에 접속해서 학교에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자유 시간에 뭘 하고 어디에 있었는지를 매일 체크하는 것이 새엄마의 일과였다. 내 학교생활에 프라이버시 따위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울고 싶을 만큼 괴롭지만 관리자인 새엄마에게는 거역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제어용 태블릿을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사실은 “오늘 학교 어땠니?” 같은 평범한 모녀 사이의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새엄마에게 나는 딸이 아니다. 그저 로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뿐이었다.
사토 선생님, 이런 상대와 진로 이야기를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엄마가 보는 로그와 영상이 방과 후 시점으로 넘어갔다.
“1학년 때 사토 선생이 왜 불렀지? 흠…… 진로 상담!? ……뭐야 이거! 야!!”
갑자기 버럭 지르는 소리에 몸이 윙 하고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몸이 이상하게 뒤틀리며 강한 자극이 몰려왔다. 위험해…… 이거…….
『히앙! ……아아앗…… 아앙!』
“너한테는 회사에서 전달한 사항을 전하라고 했잖아! 왜 재제출로 되어 있는 거야!?”
『아윽…… 앗, 앗, 앗…… 아앙!』
“신음 소리만 내지 말고 대답해!”
나도 내고 싶어서 내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생각해도 새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짜증 섞인 태도로 내 턱을 잡아 양옆에서 강하게 짓눌렀다.
『아파요! ……서…… 선생님이…… 아앗…… 말씀하셨어요. 으윽…… 자…… 자신의…… 꿈을…… 포…… 포기하지 말라고…… 아앙!』
“뭐라고!?”
새엄마는 그 말을 듣고 움찔하며 내 턱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서둘러 대화 로그와 카메라 아이의 영상 데이터를 대조해 보았다.
“그래, 그랬었지? 그리고 편집자를 거쳐서 언젠가는 동화 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책을 쓰고 싶다고. 멋진 꿈이잖아. 그걸 벌써…… 포기한 거냐?”
디스플레이에 내 기억이 재생되었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사토 선생님의 목소리.
“뭐야, 이게…….”
『아앗! ……앗, 앗, 앗!!』
“……난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꿈이야말로 네가 인간이라는 증거니까.”
새엄마는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몇 번이고 그 말을 리피트했다. 그럴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의 고동이 빨라졌다.
“대체 뭐야, 이게!”
『하앙, 안 돼…… 보지 마세요…… 아앙!』
“……난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꿈이야말로 네가 인간이라는 증거니까.”
『앗, 앗, 앗, 안 돼…… 아아아아아악!!』
위이잉!
나는 손발이 묶인 채 허리를 앞으로 쑥 내밀며 기체를 빳빳하게 경직시켰다. 엄마의 고함과 내 기억 데이터에서 재생되는 목소리 사이에서 나는 절정에 도달했다.
위잉! 윙, 위이잉…….
몇 초 후,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기체의 모터음이 잘게 떨리며 격렬하게 움직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절정의 여운에 젖어 들었다.
『아앗…… 아아…… 아…… 아아…….』
“설마 이게……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거야?”
『……네, 어머니…… 하앙.』
절정에 도달했어도 충전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쾌락의 파도가 온몸을 집어삼켰다. 새엄마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지독히도 차가운 눈으로 신음을 흘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철컥.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이 열렸다. 의붓동생 미즈키가 돌아온 모양이다.
“어머, 왔니, 미즈키!”
나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다정한 표정과 목소리.
“엄마, 설마 언니 충전 벌써 시작한 거야? 아까 현관 밖까지 신음 소리 다 들리던데. 진짜 민폐야.”
복도를 걸어온 미즈키가 메인터넌스 스탠드를 들여다보았다. 양 갈래 머리가 잘 어울리는 영리하고 기가 센, 그리고 성격도 조금 까칠한 아이. 그게 미즈키다.
『하앙…… 왔…… 니…… 미즈키…… 아윽.』
미즈키의 멸시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 꽂혔다.
“엄마, 언니 스피커 볼륨 좀 줄여도 돼? 시끄러워서 공부에 집중을 못 하겠어.”
미즈키는 엄마 대신 내 메인터넌스 스탠드의 콘솔 패널을 조작해 내 목소리 볼륨을 낮췄다. 콘솔 패널에서는 관리자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했기에, 미즈키는 내가 충전 중일 때면 종종 이렇게 내 목소리 볼륨을 0으로 만들곤 했다.
『아앙…… 앗, 아아…… 아…… 윽………………』
“이제 좀 조용하네.”
신음 소리가 멎자 내가 몸을 뒤틀 때마다 발생하는 끼익, 위잉 하는 미세한 구동음만 들려왔다.
“그나저나 언니랑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아니, 별거 아니야. 그보다 미즈키, 모의고사 결과는 어떻게 됐니?”
내 미래 이야기를 별거 아니라고 일축한 새엄마는 기대 섞인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미즈키에게 물었다.
“응, 현립 북고까지 A 판정 받았어. 학군 내라면 어디든 붙을 것 같아.”
“역시 내 자랑스러운 딸이네.”
새엄마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즈키는 조금 불만스러운 기색이었다.
“으음, 근데 아무리 명문고라도 북고 가면 언니랑 똑같잖아. 난 로봇 동생이라는 소리 듣기 싫은데~”
그 말만 남기고 미즈키는 계단 위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원래 내 방이었던 그곳으로. 쫓겨난 내 방은 이 계단 밑 공간뿐이다. 내 물건을 둘 곳도 거의 없어서 많은 것들이 버려졌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새엄마는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 얘기는 생각해 볼 테니까, 일단 19시까지 충전이나 하고 있어.”
그 말만 남기고 엄마는 창고 문을 닫았다. 빛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른다.
『………윽…… 윽……!! ……윽…! ……』
아무리 눈물을 쏟고 아무리 오열해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삐빅, 관리자의 커맨드에 의해 퍼스널 모드로 전환합니다.』
편의점 카운터 뒤 사무 공간. 나는 모드 전환을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기계화 뇌를 재부팅했다.
『……삐빅, 퍼스널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저기, 어머니! 제 업무 모드 종료 시간은 6시인데 왜 연장하신 거예요! 벌써 8시 37분이라고요! 1교시 수업 시작했단 말이에요!』
나에게 태블릿을 겨눈 새엄마에게 항의했다. 어젯밤 업무 모드로 2시간 일찍 전환되어 연속 11시간이나 가동했던 나는, 아침에 추가 명령을 받고 3시간이나 더 업무 모드를 연장당한 상태였다.
『이러면 학교 지각한다고요. 일은 제대로 할 테니까 제발 고등학교는 다니게 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시야 중앙에는 【인격 소프트웨어 에러: 관리자에 대한 반항적 태도. 본부로 리포트 송신】이라는 붉은 경고가 떴다. 하지만 어제부터 계속되는 부당한 처우에 나도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괜찮아. 너 오늘 학교 쉬니까. 담임 선생님께는 이미 말씀드려 놨어.”
『왜 마음대로 결정하세요!? 저한테는 학교 말고는 이제……』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는데.
“내가 네 관리자니까. 명령이다, 점포 밖으로 나가.”
엄마가 차갑게 내뱉자 몸은 멋대로 정확한 보폭으로 가게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잠깐만요!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아무리 외쳐도 몸은 카운터를 빠져나와 계속 걸었다. 출근 시간대 가게 안의 손님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를 주목하는 가운데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명령. 여기서 멈춰.”
차렷 자세로 멈춰 섰다. 눈앞에는 낯익은 회사의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야마토 전기의 정밀 기기 수송차. 어째서…….』
“널 공장으로 운반하기 위해서지. 당연한 거 아니니?”
『왜요!? 제 정기 점검은 다음 달인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차 쪽에서 흰 가운을 입은 남자와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시야에 포착되자 안면 인식 시스템이 작동하며 그들의 정보가 떴다. 둘 다 야마토 전기 관계자였고, 내 소유자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나를 힐끗 보더니 엄마에게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야마무라 씨군요. 안녕하세요. 귀사 사에바 지사의 의뢰로 온 야마토 전기의 카네가사키입니다. 이 기체가 맞죠?”
“네, 맞아요. 아침 일찍부터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네요.”
카네가사키 씨는 갑자기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내 하복부를 확인했다. 가랑이보다 약간 위, 인간 여자라면 치구라고 불릴 위치에 있는 내 고유 식별 번호가 적힌 금속 플레이트의 글자를 뚫어지게 보며 수중의 자료와 대조했다.
“확실하군요. 기체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야마나카 군, 이거 실어.”
“알겠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트럭 짐칸을 열었다.
“명령이다. 트럭 뒤로 와.”
트럭 뒤편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휴머노이드 운반용 케이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청소 도구함 정도 크기의 공간에 직립 상태로 손발과 목을 금속 장치로 고정해 수납하는 정밀 기기 전용 수송 케이스였다.
“그럼 저기 제일 안쪽에―”
『잠깐만요!!』
내 큰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놀란 듯했지만, 나도 이대로 순순히 탈 수는 없었다.
“뭐지? HS-206aPS0917YY.”
『말해 주세요. 전 왜 학교까지 빠지면서 갑자기 공장에 가야 하는 거죠?』
사실 묻는 게 무서웠다. 입술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못 들었나? 넌 이제부터 공장에서 임시 점검을 받고, 인격 소프트웨어와 기억 데이터 일부를 수정받게 될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에…… 어…… 어째서…… 그런…….』
“그건 네가 회사의 비품으로서 부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버그 수정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정말 열심히 해왔는데. 로봇이 된 지 2년 동안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주말에도 친구들과 놀지 못한 채 오로지 가게를 위해, 부모님을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해왔는데!
『왜 그런 건데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제가 대체 뭘 어쨌길래……!』
“그걸 결정한 건 내가 아니라 널 소유한 회사다. 너, 꿈이 있다며? 그건 로봇에게 불필요한 사고방식이야. 향후 가동에 불안정 요인이 될 뿐이지. 그러니 불필요한 기억은 삭제하고 인격 소프트웨어도 일부 개조할 거다. 자, 알았으면 얼른 타.”
『시, 싫어어어어어어!!! 살려주세요!! 제발!! 제 기억을 지우지 마세요!! 제 마음을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살려주세요!! 누구든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은 차가웠고, 마치 불량품을 보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뭐야 이 녀석! 이래선 안 되겠군. HS-206aPS0917YY, 퍼스널 모드 오프. 간이 제어 모드로 전환.”
『싫어!! 누구든 제발…… 삐빅, 간이 제어 모드로 전환을 실시합니다. 인격 소프트웨어를 셧다운합니다…….』
싫어! 사라지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은, 내 꿈은 오직 나만의 것인데! 셧다운 처리와 함께 내 의지가, 감정이 안개처럼 흩어져 갔다.
“잘 자라. 뭐,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다음에 눈뜰 때는 아주 상쾌할 테니까.”
“……정말 이 내용으로 제출해도 괜찮겠나?”
『네. 저는 당사의 비품으로서 등록 말소 혹은 폐기 처분될 때까지 기재된 점포에서의 가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의 진로 상담실. 3일간 공장에서 조율을 마친 나는 다시 사토 선생님께 진로 희망서를 제출했다. 내용은 이전에 냈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야, 야마무라. 정말…… 꿈은 포기한 거냐?”
『네. 제가 왜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욕구도 없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도 저는 인간에게 종속되어 봉사하는 휴머노이드로서, 편의점을 찾는 고객님들께 만족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 역시 제조사 놈들한테 머릿속을…….”
선생님은 무언가를 짐작했는지 서류를 쥔 손이 분노로 떨리는 듯 보였다.
공장에서 인격 소프트웨어 조율을 받은 나는, 재부팅 후 아무런 저항 없이 옛 꿈을 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편의점 비품으로서 점포와 기업에 계속 봉사하겠다는 미래를 받아들였다. 공장에서 보낸 시간의 기억은 말소되었지만, 대충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스스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 로봇인 저에게는 처음부터 제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따위 없었어요. 그래서 제 안의 의문과 망설임이 사라진 만큼, 저는 회사의 비품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사토 선생님 곁으로 다가가 선생님을 꽉 껴안았다.
“어, 어이! 야마무라?”
『지금만, 지금만이라도 좋아요. 이대로…… 울어도 될까요?』
사토 선생님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으윽, 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야마무라! 야마무라! 힘들었겠구나…… 으윽. 으으으…….”
다정하고도 엄격한 나의 담임 선생님은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결국 공장에서 튜닝되어, 나는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