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체는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개발된 야마토 전기제 HR-207F형 범용 휴머노이드 HR-207PS0721ST입니다.』
여름방학 도중 정해진 전교 등교일. 잠시 못 본 사이에 소꿉친구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려 있었다…….
트위터에 휘갈겨 썼던 소설 비스무리한 것의 가필 및 수정판. 팔로워분과 나누던 로봇 소녀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갑자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최근 제 취향을 듬뿍 담아냈어요. 취향에 맞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감상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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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 그 차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여름방학 중에 잡힌 전교 등교일. 교실은 오랜만에 만난 반 친구들로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안녕, 쇼 군. 오늘은 같이 등교 못 해서 미안해.』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내가 알던 그녀의 목소리와는 달라져 있었다. 마치 스피커를 통해 말하는 듯한 기계음이었다.
카와하라 사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다. 같은 맨션 같은 층에 사는 인연으로 철들기 전부터 늘 함께 놀았다. 그런 소꿉친구의 모습이 여름방학 전과 지금, 완전히 딴판이 되어 있었다. 교복 소매 아래 팔부터 손가락 끝까지, 스커트 아래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전부 광택이 도는 흰색과 파란색의 투톤 컬러로 물들어 있었다. 학교 지정 실내화도 신지 않았다. 그 색은 턱밑까지 이어졌고, 귀는 뒤로 뻗은 안테나 모양의 커버에 덮여 있는 듯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 이게 다 뭐야?”
아침엔 늘 같이 등교하지만, 가끔 오늘처럼 따로 올 때도 있어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쇼 군. 나 말이야, 로봇이 됐어. 집 편의점 일을 돕기 위해 휴머노이드가 된 거야.』
휴머노이드, 그건 우리가 태어나기 직전부터 등장한 인간형 로봇의 일종이다. 로봇이라 하면 안드로이드가 더 친숙하고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아무리 사람과 똑 닮은 고성능 로봇이라 해도 단점이 있었다. 대량 생산품인 탓에 같은 모델의 안드로이드가 여럿 있으면 얼굴이 다 똑같아 헷갈린다는 것. 게다가 어딘지 무감정하고 개성이 없어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안드로이드와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로봇으로 등장한 것이 휴머노이드다. 이건 인간을 소체로 개조해, 기계화된 인간의 뇌를 탑재한 로봇이다. 머리는 소체가 된 인물의 것을 재현했고, 기본적인 성능에 개체 차이는 없지만, 키나 사고 패턴의 바탕이 되는 인격 데이터가 다르기에 기체마다 개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휴머노이드화 제1호는 사건에 휘말려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던 여경이었다.
그녀를 소체로 개조해 로봇 경찰로 부활시킨 것이다. 기계화된 인간의 뇌를 탑재한 로봇의 등장에 윤리적인 비판이 쏟아졌지만,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과 그 후의 눈부신 활약 덕에 비판도 잦아들었다. 로봇의 장점과 인간의 따스함이 융합된 휴머노이드는 점차 세상에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화는 본인의 동의는 물론 적성이 필수였다. 적성이 없는 인물을 개조하면 뇌를 포함해 모든 것이 기계화된 몸을 자신의 몸으로 인식하지 못해 기계화 뇌가 기능을 정지해 버리기 때문이다.
적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설령 본인이 희망하더라도 적성이 없으면 개조할 수 없었다. 휴머노이드화 적성은 여성이 더 높아서, 휴머노이드라고 하면 보통 여성형 로봇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개조 비용 등의 문제로 경찰이나 소방 등 공공기관 위주로 보급되었다. 초기 기체들은 투박하고 기계적인 디자인뿐이었지만,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외장 파츠를 교체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범용형 휴머노이드가 개발되었다.
이 범용형 휴머노이드는 내골격형 기체가 이너 형태의 외피로 덮여 있고, 각 부위에 전용 외장을 연결해 여러 용도로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덕분에 비용이 대폭 절감되어 드디어 민간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초기에 휴머노이드화된 기체들도 이 타입으로 개조되어 대부분이 이런 형태다.
그런 휴머노이드로 소꿉친구인 사키가 개조되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계산 기능이 달린 전용 디바이스를 연결하면 POS 단말기로 가동할 수 있어. 어때, 대단하지?』
사키의 하얀 고무 같은 소재로 된 외피에 싸인 오른팔에는 파란 라인과 함께 사키네 편의점 체인의 로고 디자인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얇은 금속제 접속 단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키는 새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심으로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으로 개조된 것을 기뻐하는 듯했다. 나는 너무 충격적이라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이 됐지만, 내 인간 시절 인격 데이터는 잘 저장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백업도 하니까 이 기체가 망가져도 괜찮아. 퍼스널 모드로 가동하는 동안은 지금까지의 나랑 똑같으니까 안심해.』
인간 시절과 다름없는 몸짓으로 미소 지으면서도, 사키의 눈동자에서는 어딘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HS-207PS0721ST라는 게 내 고유 식별 번호야.』
그녀가 갑자기 교복 치마를 홱 걷어 올리자, 흰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된 매끄러운 허벅지에 디자인과 일체화된 HS-207PS0721ST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곧 상황을 파악한 반 친구들이 사키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박, 나 휴머노이드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거 처음이야!”
“카와하라가 로봇이 됐대.”
“휴머노이드 되려면 적성이 있어야 한다던데, 카와하라 적성 있었나 보네.”
웅성거리는 친구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던 중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조례가 시작되었다. 먼저 담임 선생님이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에 대해 설명했다.
『반 친구들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 나 카와하라 사키는 로봇이 됐어. 본 기체는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개발된 야마토 전기제 HR-207F형 범용 휴머노이드 HR-207PS0721ST야. 부르기 힘들면 그냥 예전 이름으로 불러도 돼.』
사키는 다시 한번 모두 앞에서 휴머노이드가 된 사실을 알리며 경위를 설명했다. 집 편의점 일을 돕기 위해 휴머노이드 개조를 자원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로봇이 되어도 예전처럼 대해달라고 덧붙였다.
조례가 끝나고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지루하고 긴 훈화 말씀을 들은 뒤 해산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휴머노이드라는 신기함과 친구가 로봇이 되었다는 화제성 때문에 사키 주변엔 늘 누군가가 있어 제대로 대화할 틈이 없었다.
“저기, 사키. 가는 길에 어디 좀 들렀다 갈래?”
『쇼 군, 미안해. 오늘은 이따 13시부터 지역 본부에서 편의점 업무용 디바이스를 받기로 했어. 받으면 바로 업무 모드 가동 테스트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같이 가는 건 불가능해. 테스트에 문제없으면 밤까지는 돌아올 수 있겠지만.』
나는 사키의 말투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럼 밤에 가게 가면 있는 거야?”
『응. 가동 테스트에서 문제없으면 오늘 밤부터 편의점 업무 운용이 시작될 예정이야.』
그러자 찰나의 순간 사키의 표정이 사라졌다.
“응? 사키, 왜 그래?”
『지금 지역 매니저님한테 교문 앞으로 데리러 왔다고 연락 왔어. 나 이제 가야 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집 편의점 일을 돕는 사키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가보기로 했다. 편의점은 맨션 1층에 있고 사키 부모님이 운영하신다. 그녀의 몸 디자인 모티브가 된 흰색과 파란색 배색에 우유통이 그려진 편의점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계산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충 주스 하나를 집어 들자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늘고 매끄럽게 뻗은 팔과 유연한 다리, 알맞게 영근 풍만한 가슴, 아름답게 잘록한 허리선. 손가락 끝부터 목덜미까지 몸 전체가 광택 있는 타이트한 소재에 감싸여 있었다. 편의점과 같은 색상으로 디자인된 몸 곳곳에는 편의점 로고와 각종 표기사항이 적혀 있었다. 허벅지에는 컬러링 디자인과 일체화된 사키의 휴머노이드 고유 식별 번호가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목 뒤부터 허리까지 척추를 따라 늘어선 금속제 플레이트 부품이었다. 중간쯤, 등 쪽에는 태블릿 PC만 한 크기의 부품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커넥터 같은 구조였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에는 전원 마크 아이콘이 살짝 보였다. 그 외에도 어깨나 팔, 다리에도 비슷한 단자가 달린 부품들이 붙어 있었다.
오른팔에는 사키가 학교에서 말했던 편의점 업무용 디바이스가 장착되어 있었고, 팔꿈치 근처에서 등 쪽 단자로 케이블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손목 윗부분에 달린 리더기로 상품 바코드를 찍거나 물건을 선반에 진열하는 작업을 아무런 표정 없이 기계처럼 해내고 있었다. 잠시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말을 걸었다.
“사키, 수고 많네. 계산 좀 해줄래?”
그녀는 뒤를 돌아보자마자 조금 전의 무표정과는 딴판으로 싱긋 웃는 얼굴이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딘지 남 대하듯 딱딱한 태도였고, 목소리는 사키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보컬로이드 음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또 위화감을 느끼며 그녀를 따라갔다. 계산대로 향하는 그녀는 학교 때와는 달리 어딘가 뚝딱거리는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포인트 카드 있으십니까?』
“응, 여기.”
지갑에서 꺼낸 카드를 건네자 오른팔의 리더기로 찍고 나서 돌려주었다.
『1점, 해서… 147엔입니다. 현금 또는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합니다. 봉투 필요하십니까?』
“아니, 괜찮아.”
그녀의 너무나 사무적인 태도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올 뻔했다. 사키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낮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온 보컬로이드 같은 합성 음성이다. 그녀는 계산대에 서 있지만, 단말기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향한 화면에는 금액이 표시되며 정상적으로 조작되고 있었다.
『150엔 받았습니다. …3엔 거스름돈입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묘하게 끊어지는 동작으로 거스름돈과 함께 내 손에 닿은 그녀의 하얀 손은 말랑하면서도 고무나 비닐 같은 촉감이 났다.
“저기, 사키. 뭔가 이상해. 학교에서 봤을 때랑 다르게 완전히 로봇 같아. 지금까지 가게 돕던 때랑도 느낌이 다르고.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느끼고 있던 위화감을 그녀에게 쏟아냈다.
『고객님, 불쾌감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카타 님이 본 기체의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오랜 친구라는 사실은 그녀의 기억 정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 기체 HS-207PS0721SK는 현재 업무 모드로 가동 중입니다. 따라서 퍼스널 모드 가동 시와 같은 사적인 대응은 불가능합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계적인 합성음을 내뱉는 사키의 모습은 영락없는 로봇 그 자체였다.
『만약 나카타 님이 사적인 대화를 원하신다면, 본 기체는 잠시 후 22:15부터 휴식 시간이라 퍼스널 모드 가동이 가능해집니다. 그때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가게 안 시계를 보니 그녀가 말한 휴식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기에 휴게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방금 그녀의 대응은 충격적이었다. 학교 때와는 달리 완벽한 편의점 업무용 로봇으로서 반응하는 사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건 휴머노이드를 볼 때마다 느끼던 감정이었다.
중학교 등굣길 도중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근처 횡단보도에는 매일 아침 휴머노이드 여경분이 서 계셨다. 스도 씨라는 그 휴머노이드 여경분은 금방 나와 사키의 이름을 외워주셨다. 그걸 계기로 아주 친해졌다. 나도 사키도 형제가 없어서 조금 나이 차이 나는 누나처럼 느껴졌다. 근처 파출소에 근무하셔서 하굣길에 들르기도 했다. 특히 사키는 ‘아야 언니’라고 이름을 부를 정도로 잘 따랐다. 지금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여경분은 지금의 사키와 같은 범용 타입 기체였는데, 경찰차와 같은 흑백 컬러링의 타이트한 외피에 싸인 모습이 섹시하면서도 멋졌다. 평소엔 상냥한 누나처럼 대해주다가도, 가끔 지금의 사키처럼 완벽한 로봇으로서 반응할 때의 그 갭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때와 같은 감정을 소꿉친구인 사키에게 품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쇼 군, 오래 기다렸지.』
잠시 후 사키가 내 앞으로 왔다. 몸짓도 말투도 학교 때와 똑같았다.
『여기선 얘기하기 좀 그러니까 내 방으로 가자.』
그녀를 따라 뒷문을 통해 가게를 나와 4층에 있는 사키네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서로 할 말이 없어 침묵만이 흘렀다.
오랜만에 들어온 사키의 방. 초등학교 때는 서로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 했고 방에도 자주 들어갔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뜸해졌고 집에 올 기회도 줄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사키의 방은 예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딱 하나, 침대 옆에 놓인 기계 장치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사키, 아까 그 업무 모드라는 거 뭐야? 진짜 로봇 같던데.”
나는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그건 말이야, 내가 가게 일을 도울 때 켜지는 모드야. 휴머노이드가 된 지금의 나한테는 아까 그 업무 모드랑, 내가 인간이었을 때 인격을 재현한 퍼스널 모드라는 두 가지 모드가 있어.』
『나는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한 로봇이 된 거야. 그래서 가게 일을 돕고 있을 때는 업무 모드로 있는 게 당연해. 그리고 이렇게 휴식 시간이나 학교에 있는 동안에만 인간 시절의 나인 퍼스널 모드로 가동할 수 있는 거야.』
사키는 어딘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띄엄띄엄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게에서 일해줄 알바생이 잘 안 구해졌거든. 특히 밤에는 사람이 부족해서 아빠랑 엄마가 계속 계산대에 서 계셨어.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매니저님이 휴머노이드가 돼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주셨어. 근데 리스하려고 해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빌리기가 힘들더라고……. 다른 편의점들도 다 우리 집 같은 상황인가 봐.』
『그래서 내가 휴머노이드가 돼서 가게 일을 돕겠다고 마음먹었어. 처음엔 두 분 다 반대하셨지만, 이대로 가다간 두 분 다 쓰러지실 것 같았어. 아빠랑 엄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싫다고 필사적으로 매니저님이랑 같이 설득했더니 결국 허락해 주셨어.』
『사실 내 개조 비용 같은 걸 회수하려면 하루 종일 로봇으로서 업무 모드로 있는 게 좋지만, 내 기계화 뇌에 무리가 간다고 해서 낮에는 퍼스널 모드로 학교에 다니게 해주시는 거야.』
사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런 우울한 얘기 해서 미안해』라며 사과했다.
“그래서 여름방학 전에 그렇게 고민했던 거구나. 왜 나한테 상담 안 해줬어?”
사키가 뭔가 고민하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물어봐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말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치만 이건 내 문제였으니까. 우리 집 사정에 쇼 군을 끌어들이는 건 안 좋을 것 같았어. 쇼 군한테 상의도 없이 휴머노이드가 돼서 미안해.』
“나야말로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그건 그렇고 스도 씨한테는 상담해 봤어?”
나와 사키가 중학교 때 친해졌던 휴머노이드 여경분이다.
『응. 아야 언니가 제일 많이 상담해 줬어. 그리고 내가 휴머노이드로 개조되는 걸 밀어준 것도 아야 언니였고. 솔직히 언니가 없었으면 난 휴머노이드가 못 됐을 거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스도 씨를 만나 상담했던 모양이다.
“미안, 내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사과하지 마. 이제 괜찮아. 나도 납득하고 휴머노이드가 된 거니까. 자, 우울한 얘기는 이제 끝! 쇼 군, 더 궁금한 거 없어? 휴식 시간 연장 신청해 놨으니까 좀 더 얘기할 수 있어.』
사키는 손뼉을 짝 치더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왠지 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더 물어보면 그녀가 이제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이 되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여경 휴머노이드를 볼 때 느꼈던 그 배덕적인 감정을 사키에게 품는 걸 억누를 수 없게 될 것 같았으니까.
『쇼 군한테는 휴머노이드가 된 내 몸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 그러니까 뭐든 물어봐.』
“그럼… 밥 같은 건 어떻게 해?”
『밥은 이제 안 먹어도 돼. 충전만 하면 퍼스널 모드로는 최대 3일, 업무 모드로만 있으면 5일 동안 연속 가동할 수 있어. 저기 있는 크래들에서 충전해. 근데 완충하려면 최소 5시간은 걸리니까 주의해야 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침대 옆 벽면에 설치된 체중계 같은 부품 위에 올라서서 양팔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벽 쪽에서 암(arm)이 뻗어 나와 양어깨와 양 손목을 고정했다. 양다리도 마찬가지로 고정되었다. 고정이 끝나자 주유소 노즐과 비슷하게 생긴 커넥터가 사키의 등 단자에 연결되었다.
그 순간, 사키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키는 무언가를 견디듯 눈을 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충전을 시작합니다.』
기계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며 사키의 충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윽, 으윽… 하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기계에 몸이 고정된 사키는 타이트한 외장으로 감싸인 몸을 비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느끼고 있는 거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자료가 떠올랐다. 휴머노이드를 충전할 때는 기체에 내장된 기계화 뇌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쾌락 신호를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의 몸에는 에너지가 흘러 들어감과 동시에 쾌락 신호가 사키의 기계화 뇌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으윽, 윽… 응, 아아앗!!!』
크래들에 연결된 사키의 몸이 크게 떨렸다. 가버린 거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쾌락을 견디던 사키의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움찔, 움찔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키의 발치에서 솟아오른 조작 모니터에는 지금 그녀의 상태가 표시되고 있었다. [충전 중: 93% 모드: 스탠바이] 표시로 보아 충전 상태는 충분해 보였다. 화면 아래쪽에 있는 [충전 종료]를 누르자 “HS-207PS0721SK의 충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라는 선택창이 떴고, [예]를 누르자 충전이 끝났다. 하지만 사키는 눈을 뜨지 않았다. 스탠바이 모드 그대로였다. 화면을 보니 [기동 시작] 표시가 있어 그걸 눌렀다. “[업무 모드로 기동] [퍼스널 모드로 기동]” 메시지가 나와서 [퍼스널 모드로 기동]을 누르자 몸이 움찔 떨리며 사키가 눈을 떴다.
『중간에 충전을 멈췄구나. 퍼스널 모드로 켜줘서 고마워.』
충전 종료와 기동은 완료됐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기계에 연결된 채였다.
“저기, 충전할 때… 그, 기분 좋아지고 그래?”
『봐버렸구나…. 부끄럽지만 쇼 군이라면 괜찮아. 충전할 때는 늘 이런 느낌이야. 내가 휴머노이드가 되고 나서 제일 놀란 부분이야.』
“역시 그렇구나.”
『이 크래들을 쓰면 외부에서 나를 켜거나 행동 프로그램을 설정할 수도 있어. 아직은 설정된 게 없어서 기본값 그대로지만. 그건 그렇고 이제 크래들 연결 해제하고 싶은데 승인해 줄래?』
조작 패널에 [HS-207PS0721SK와의 연결 해제를 승인]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걸 누르자 사키의 등에서 케이블이 빠지고 몸을 고정하던 장치들이 풀렸다.
“왠지 정말 사키가 휴머노이드가 됐다는 게 실감 나네. 근데 그 휴머노이드 외장 디자인은 직접 고른 거야?”
사키의 몸은 편의점 컬러링에 맞춘 디자인이었다. 흰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된 몸에는 여러 표기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건 내가 우리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이 디자인이야. 난 꽤 맘에 드는데, 어때? 잘 어울려?』
사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빙글 돌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응, 아주 잘 어울려.”
『그리고 말이야, 지금의 나는 이 편의점의 비품으로 등록되어 있어. 휴머노이드가 되면서 법적으로도 로봇으로 취급받거든.』
내가 사키의 침대에 앉자 그녀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아랫배에 붙은 얇은 금속 플레이트를 만졌다.
『쇼 군, 여기 적힌 대로 난 원래 인간이었다 해도 카와하라 사키의 기계화 뇌를 탑재한 야마토 전기제 휴머노이드 HS-207PS0721SK야.』
사키의 하얀 손가락 끝이 닿은 플레이트에는 [제조년월: 20XX-07 형식: HS-207F 고유 식별 번호: HS-207PS0721SK 소체명: 카와하라 사키 제조: 야마토 전기 오사다 제작소]라는 각인과 함께 야마토 전기의 로고와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그것은 사키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건 그렇고 쇼 군, 아까 가게 들어왔을 때부터 내 몸 여기저기 훑어봤지? 특히 가슴 쪽.』
흰색과 파란색으로 물든 가슴이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쇼 군이라면 만져도 괜찮은데?』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파란 라인과 여러 표기가 들어간 그녀의 하얀 팔이 뻗어 나왔다. 날아가려는 이성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저항하는 내 손목을 쥐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고무나 비닐 같은 소재에 싸인 그것은 사키의 왼쪽 가슴.
『어때, 기분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후훗, 쇼 군은 부끄럼쟁이라니까. 더 꽉 만져도 되는데.』
대답도 못 하고 그대로 만지고 있자, 갑자기 사키의 팔이 내 머리 뒤로 돌아오더니 그대로 나를 껴안았다. 휴머노이드가 됐어도 사키의 몸은 여자아이 특유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 머리는 타이트한 소재에 감싸인 부드러운 사키의 몸에 파묻혔다. 그 순간, 억누르고 있던 내 이성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대로 사키의 등을 양팔로 감싸 안자 내 양손이 사키의 등에 있는 충전 케이블 커넥터에 닿았다. 여자아이의 부드러움과 휴머노이드 특유의 단단함이 공존하는 사키의 몸에 나를 맡겼다.
『이제야 솔직해졌네.』
사키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꽉 안아주었다.
『저기, 쇼 군. 내 몸에서 심장 소리 안 들리지?』
과연 사키의 몸에서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키는 이제…….
『쇼 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무슨 부탁일까?
『나는 가게 일을 돕기 위해 휴머노이드가 됐어. 내 의지로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한 로봇이 된 거야. 카와하라 사키라는 소체가 된 인간의 기계화 뇌를 조립해 제작된 범용 휴머노이드 HR-207PS0721ST. 그게 지금 내 이름이야. 그러니까 내가 가게에서 업무 모드로 가동하고 있을 때는 나를 한 대의 로봇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어. 휴식 중이나 학교에 있을 때처럼 퍼스널 모드일 때는 예전처럼 인간일 때랑 똑같이 대해줘도 되지만. 나도 퍼스널 모드일 때는 예전처럼 쇼 군을 대할 거니까. 쇼 군이 나한테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업무 모드로 가게에 있을 때는 어디까지나 로봇으로 대해줘. 내가 휴머노이드가 되기로 했을 때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나를 로봇으로 인정해 줬으면 해.』
거기까지 말하고 사키는 내 몸을 천천히 떼어냈다. 생기는 없지만 카메라 아이의 진지한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꿰뚫었다.
사키는 엄청난 각오를 가지고 인간에서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이 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휴머노이드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치밀어 오른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업을 돕기 위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인 휴머노이드 로봇이 된 그녀의 결심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응, 사키 마음 알겠어. 사키가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이 됐다는 거 인정할게. 사키가 업무 모드일 때는 로봇으로 대할게. 하지만 내 마음도 전해도 될까?”
나도 각오를 다졌다.
“이런 타이밍에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나 사키 좋아해. 오늘 처음 휴머노이드가 돼서 로봇이 된 사키를 보고 느꼈어. 지금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예전보다 더 두근거려.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입 밖으로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퍼스널 모드일 때는 소꿉친구가 아니라 내 여자친구로 대해도 될까? 사키, 아니 휴머노이드 HS-207PS0721SK, 좋아해.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사귀어 줘.”
다 말했다. 그러자 사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었다면 아마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다.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에게는 그런 기능까지는 없었다. 아마 내 얼굴도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내가 휴머노이드가 된 걸 인정해 줘서 고마워. 로봇이 된 나를 좋아한다고 해줘서 고마워. 나도 쇼 군 정말 좋아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를 껴안아 주었다.
나도 그녀의 몸을 꽉 안았다. 팔에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고무 같은 독특한 감촉이 전해졌다.
『HS-207PS0721SK의 기억 정보를 갱신합니다.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 정보에 소꿉친구로 기록되어 있는 나카타 쇼 군을 본 기체의 남자친구로 등록했습니다.』
사키는 내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그리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저기, 사실 나 쇼 군이 휴머노이드에 관심 있었던 거 옛날부터 알고 있었어. 휴머노이드 여경인 아야 언니 맨날 빤히 쳐다봤잖아. 아까도 내가 업무 모드로 가동할 때 심박수 엄청 올라가더라? 로봇이 된 나 보고 흥분했지?』
그렇게 말하며 사키는 몸을 떼고 카메라 아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
『가만히 있어도 다 알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를 삿대질한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무표정이 되었다. 퍼스널 모드에서 업무 모드 가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업무 모드로 이행했습니다. 신청된 휴식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본 기체는 지금부터 통상 업무를 개시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 HS-207PS0721SK는 뚝딱거리는 움직임으로 방을 나가려 했다.
“잠깐만.”
업무로 복귀하려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쇼 님, 무슨 일이십니까?』
HS-207PS0721SK로서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사키의 나에 대한 호칭이 아까와는 달라져 있었다.
“나 아까 말한 대로 사키가 업무 모드일 동안은 로봇으로 대할 거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업무 모드로 일하는 모습에 흥분할 정도로 로봇인 사키도 정말 좋아해.”
나를 향해 돌아보고 방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HS-207PS0721SK를 꽉 껴안았다.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HS-207PS0721SK는 쇼 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 못 해도 돼. 내가 로봇인 너도 좋아한다고 기록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편의점 일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HS-207PS0721SK는 이번 사상을 기록 메모리에 저장하겠습니다. 쇼 님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HS-207PS0721SK로서는 지금 이와 같은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내 등에 팔을 둘러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팔을 두른 채 조금 몸을 떼더니,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퍼스널 모드 때보다 훨씬 생기 없는 카메라 아이의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쇼 님, HS-207PS0721SK로서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본 기체에게 호의를 품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방을 나와 복도로 나서자 HS-207PS0721SK는 왠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본 기체의 사고 패턴에 중대한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크래들에 접속하여 점검을 수행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뚝딱거리는 동작으로 팔을 이쪽으로 뻗어 손을 펼쳤다.
“괜찮아. 에러 같은 거 안 났어. 아래 가게까지 배웅해 줄게.”
나는 HS-207PS0721SK가 뻗은 팔에 내 팔을 감았다. 그리고 펼쳐진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내 손가락을 끼워 넣자 HS-207PS0721SK는 살며시 맞잡아 주었다. 그대로 뚝딱거리는 동작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팔짱을 끼고 걸었다. 곁눈질로 본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어딘지 기뻐 보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팔을 감고 손을 잡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쇼 님, 본 기체를 위해 여기까지 동행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럼 쇼 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허리를 숙여 인사함과 동시에 미소를 보여주었다. 업무 모드로 가동 중인 HS-207PS0721SK가 보여준 그 미소는, 사키가 퍼스널 모드로 가동할 때와 똑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HS-207PS0721SK는 사키를 소체로 개발된 범용 휴머노이드다. 편의점 POS 단말기로 가동하는 그녀는 틀림없는 로봇이며, 퍼스널 모드로 가동하는 사키도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HS-207PS0721SK도 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다.
끝
오랜만에 HS-207PSF0721SK 사키의 이야기입니다. 여름 방학도 끝나가는 8월 말, 쇼와 사키는 동네 불꽃놀이 축제에 가기로 합니다.
과연 레나라는 존재는 대체 누구일까요...!?
사정상 이번 작품부터 사키의 휴머노이드 고유 식별 번호를 약간 변경했습니다.
****
사키가 휴머노이드가 된 지도 벌써 한 달 남짓. 여름 방학의 끝자락, 나는 편의점 백야드에서 휴식 중인 사키와 함께 있었다.
"사키, 내일 불꽃놀이 갈 수 있어?"
『응, 괜찮아. 가게 일은 오후 늦기 전까지만 도와주면 된다고 하셨거든.』
나는 사키를 데리고 옆 동네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축제에 갈 생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키와 몇 번 가본 적도 있고, 굳이 축제장까지 안 가도 맨션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잘 보였기에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구경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나와 사키가 단순한 소꿉친구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니까. 고백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내일 불꽃놀이가 우리의 첫 데이트다. 올해는 사키와 단둘이, 가까운 곳에서 불꽃을 보고 싶었다.
"다행이다. 내일 6시 반쯤 전철 타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
『18시 30분 말이지. ...찾아보니까 18시 27분 차가 있네. 그걸로 가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사키는 벌써 전철 시간을 검색한 모양이다. 스마트폰도 안 쓰고 바로 시간을 알아내다니, 역시 휴머노이드답다.
"대단하네, 전철 시간까지 알아봐 주고. 고마워."
『나 휴머노이드잖아? 인간에게 도움이 되려고 만들어졌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내일 16시까지는 업무 모드로 편의점 근무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퍼스널 모드로 전환하는 건 그 이후에나 가능하겠지만.』
"그럼 6시에 입구 로비에서 만나자."
『라져, 18시에 로비 집합. 그럼 난 이만... 본 기체는 잠시 후 업무 모드로 전환됩니다. 본 설정은 업무 사정상 변경할 수 없으며... 아, 시간 다 됐다. 가게 일 도우러 갈게.』
그렇게 말하며 사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 내가 퍼스널 모드인 사키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끝이다. 다음 대화는 내일이다.
"편의점 일 힘내. 내일 기대할게."
『고마워. 나도 기대하고 있을게... 업무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신청된 휴식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나를 향해 웃어주던 사키는 그 자리에서 딱 멈추더니 순식간에 무표정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사키가 업무 모드로 전환되어 HS-207PSF0721SK라는 편의점 업무용 로봇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업무 모드로 가동 중인 그녀는 사키이면서 사키가 아니다. 지금의 그녀는 사키를 소체로 제조된 HS-207PSF0721SK라는 로봇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로봇으로서 업무 모드로 일하는 사키의 모습도 좋아했다.
업무 모드로 전환된 HS-207PSF0721SK는 어딘가 어색하고 느릿한 동작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HS-207PSF0721SK, 편의점 일 열심히 해."
『예. 감사합니다. 쇼 님,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이대로 있게 해주십시오...』
사키에게 고백한 뒤, 나는 업무 모드로 전환되어 로봇이 된 그녀를 안고 다시 한번 고백했었다. 그 이후로 로봇일 뿐인 HS-207PSF0721SK는 에러 메시지를 띄우면서도 팔을 감아오거나 매달리곤 했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퍼스널 모드인 평소의 사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원했다. 무기질적인 기계음에 무표정, 웃어도 어딘가 만들어진 듯한 영업용 미소밖에 짓지 못하지만,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그 행동과 평소와의 갭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HS-207PSF0721SK는 잠시 내 품에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몸을 뗐다.
『에러 카운트가 감소했습니다. 본 기체는 지금부터 통상 업무를 개시합니다. 쇼 님,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가게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한 뒤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로비에서 사키를 기다리자 그녀는 약속 시간 정각에 나타났다.
사키는 남색 바탕에 나팔꽃 무늬가 그려진 유카타를 입고 있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발끝까지 꽉 조이는 휴머노이드 특유의 외장 때문에 게타(나막신)까지 신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사키, 유카타 입은 거 오랜만에 보네. 진짜 잘 어울려."
『고마워. 유카타 같은 거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야. 휴머노이드가 돼서 게타는 못 신게 됐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충분히 잘 어울리고 예뻐."
『...정말, 칭찬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온다니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사키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축제장 근처 역까지는 전철로 두 정거장. 역에 도착하니 우리처럼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제 사키가 알려준 시간대의 전철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도착역에서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역을 빠져나와 축제장인 강변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오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왠지 초등학생 때 생각나네.』
"초등학생 때는 우리 아빠랑 매년 같이 왔었지. 마지막으로 온 게 6학년 때였나?"
『정답!』
사키가 기쁜 듯 미소 지었다.
『쇼 군, 그때 내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유카타가 무슨 색이었게?』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솔직히 거기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음~ 뭐였더라?"
『정말, 제대로 기억해달라고! 흰 바탕에 연분홍색 꽃무늬 유카타였던 거 기억 안 나?』
"아, 맞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
『내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은 휴머노이드가 된 내 안에 데이터로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거든. 그때 쇼 군이 무슨 옷 입었는지도 다 안다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축제 경비를 서는 경찰관들이 보였다. 그 옆에는 패트로이드도 있었다.
『아야 언니!』
"스도 씨, 안녕하세요."
『어머, 사키랑 쇼 군이네. 안녕! 설마 둘이 데이트 중이야?』
경찰관과 함께 있던 분은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패트로이드 여경, 스도 아야 씨였다. 스도 씨의 휴머노이드 정식 명칭은 SH300PF-1014AS. 시노하라 중공업의 범용 휴머노이드 SH300 시리즈를 베이스로 스도 아야 순경을 소체로 제조된 패트로이드로, 경찰 내부에서는 20식 기계화 경찰관이라 불리는 기체라고 한다. 나와 사키는 친근하게 인간 시절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몸 곳곳에 아머를 장착하고 다리에 전용 주행 유닛을 단 투박한 모습은 언제 봐도 멋졌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독특한 구동음이 그 멋을 더했다.
"네, 뭐 그렇게 됐어요!"
『완전 청춘이네! 사키, 유카타 너무 잘 어울린다!』
『고마워요! 언니는 근무 중이에요?』
『응. 지금부터 22시 정도까지 행사장 주변 순찰하도록 설정되어 있어. 정말이지 사키 너희가 부럽다. 나도 남자친구라도 만들까 봐.』
스도 씨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부러운 듯 말했다.
"하하하... 힘드시겠네요."
『일 힘내세요. 언니한테도 분명 멋진 남자친구가 생길 거예요.』
『정말 생기면 좋겠네. 자, 난 다시 일하러 갈게. 쇼 군, 사키 에스코트 잘해주고! 너무 늦지 않게 조심해.』
"수고하세요!"
『언니, 나중에 봐요!』
스도 씨는 손을 흔들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행사장에 도착하자 빙수를 파는 노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키, 너 뭐 좀 먹을 수는 있는 거지?"
『조금이라면 괜찮아. 뭐, 먹어도 그냥 배 안의 탱크에 저장될 뿐이라 충전할 때 세척해야 하긴 하지만.』
"그럼 저기서 빙수 사 먹자."
빙수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우리도 맨 뒤에 섰다. 무슨 맛을 먹을까 고민하는데, 가게 안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사키처럼 스피커를 통하는 듯한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평범한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머리 옆에 안테나 모양의 이어 커버가 있어 한눈에 휴머노이드임을 알 수 있었다.
"사키, 저분 휴머노이드네."
『그러게. 보니까 업무 모드는 아닌 것 같아.』
"개인 시간에 빙수 가게 일을 돕고 있는 건가. 그나저나 무슨 맛으로 할래?"
『음, 난 딸기 맛으로 할래.』
"딸기 하나, 난 블루 하와이로 할게."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어서 오세요!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음, 블루 하와이 하나랑 딸기 하나요."
『블루 하와이랑 딸기네요. 두 개 해서 600엔입니다.』
내가 휴머노이드 여성에게 돈을 건네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기계로 얼음을 갈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애가 여자친구야?』
"네. 사키랑은 원래 소꿉친구였어요."
『사키라고 하는구나. 이름 참 예쁘네.』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우리 휴머노이드가 로봇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꼭 잘 지켜줘야 해?』
"사키는 휴머노이드여도 저한테 소중한 사람인 건 변함없으니까, 꼭 지킬 거예요."
『어머, 말 참 예쁘게 하네. 사키 씨, 이런 멋진 남자친구 흔치 않으니까 소중히 여겨야 해?』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두 사람한테는 특별히 같은 휴머노이드끼리 정을 생각해서 연유 서비스로 뿌려줄게.』
휴머노이드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우리 빙수에 연유를 듬뿍 얹어주었다. 빙수 가게에 있는 동안 불꽃이 터지기 시작해서 우리는 적당한 둑방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유 서비스받아서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달콤하고 맛있다. 축제에서 빙수 사 먹는 거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
"맛은 휴머노이드 되기 전이랑 똑같이 느껴져?"
『미각 센서의 신호를 기계화 뇌에서 처리해서 인간이었을 때랑 똑같이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어. 휴머노이드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서도 인간 시절처럼 식사하는 게 권장되기도 하고.』
빙수를 맛있게 먹는 사키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쇼 군. 아까 고마웠어.』
"응? 뭐가?"
『아까 가게에서 쇼 군이 해준 말, 나 정말 기뻤어.』
"아, 그거. 사키는 내 소중한 사람이니까, 휴머노이드가 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당연한 소릴 한 것뿐이야."
『고마워. 쇼 군, 정말 좋아해.』
"나도 사키 정말 좋아해."
사키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불꽃을 바라보았다.
『앗, 방금 거 봤어!? 마지막에 확 퍼지는 게 너무 예쁘다!』
"봤어, 봤어! 저런 건 처음 보네. 올해 신상인가?"
『내 기억 데이터를 뒤져봐도 저런 건 없었으니까 아마 맞을 거야.』
그렇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구경하던 중, 사키가 갑자기 내 어깨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기, 쇼 군. 업무 모드일 때의 나한테도 제대로 로봇으로서 대해주고 있어?』
"사키가 원하는 대로 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업무 모드일 때의 로봇 사키도 나한테는 정말 소중하고 좋아해."
『그건 제대로 로봇으로 안 봐주고 있다는 뜻 아니야?』
사키의 목소리에 약간 불만이 섞였다.
"아니, 아니. 지금 퍼스널 모드인 사키도 좋고, 로봇인 업무 모드 사키도 똑같이 좋다는 뜻이야. 그리고 사키가 업무 모드일 때는 꼬박꼬박 고유 식별 번호로 부르고 있잖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왠지 요즘 업무 모드로 가동될 때 사고 패턴에 에러가 뜨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행동 로그에 접근이 안 될 때가 있단 말이지. 내가 업무 모드일 때 이상한 짓 안 했지?』
"응, 그런 건 걱정 마. 그리고 업무 모드일 때의 로봇 사키도 귀엽거든."
『흐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지금 업무 모드로 전환해줄게. 로봇인 나랑 데이트하는 것도 즐기고 싶은 거지?』
사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표정이 사라지며 어딘가 무기질적인 인형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업무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 본 기체에는 규정된 업무 지시가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업무 모드 가동 시간은 지금부터 1시간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사키가 스스로 업무 모드로 들어갔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사키를 소체로 제조된 편의점 업무용 범용 휴머노이드 HS-207PSF0721SK다.
HS-207PSF0721SK는 그대로 먼 곳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HS-207PSF0721SK?"
『쇼 님? 본 기체는 어째서 업무 모드로 가동 중입니까?』
HS-207PSF0721SK는 고개만 휙 돌려 나를 보았다. 눈동자 렌즈가 징- 징- 소리를 내며 초점을 맞춘다.
"방금까지 퍼스널 모드였는데,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 그러니까 HS-207PSF0721SK 이야기를 했더니 로봇인 나랑도 데이트하고 싶냐면서 이렇게 됐어."
『그렇습니까.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쇼 님, 잠시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응, 잘 부탁해. 그나저나 HS-207PSF0721SK랑 불꽃놀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남은 빙수를 한 입 먹었다.
『쇼 님, 부디 이것을 드셔 주십시오.』
HS-207PSF0721SK가 자기가 들고 있던 빙수를 떠서 내게 내밀었다. 이건 설마...
"어... 갑자기 왜 그래?"
『쇼 님과 본 기체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 상황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퍼스널 모드 시의 로그에 따르면 본 기체는 쇼 님께 이 빙수를 이런 식으로 먹여드리고 싶어 했으나, 사고 패턴 에러로 인해 실행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그렇구나. 그럼 사양 않고 먹을게..."
HS-207PSF0721SK는 빨대 끝으로 뜬 빙수를 조심스럽게 내 입에 넣어주었다.
『맛은 어떻습니까?』
"응, 맛있어. 사키도 이걸 하려고 했었구나."
『기뻐하시니 다행입니다. 퍼스널 모드 시의 본 기체는 여기서 빙수를 먹기 시작한 뒤로 이 행동을 여러 번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구나. 몰라줘서 미안해."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블루 하와이 맛 빙수를 떠서 HS-207PSF0721SK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까 고마웠어. 자, 아~ 해봐."
HS-207PSF0721SK는 내가 뭘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쇼 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 기체는 현재 업무 모드로 가동 중입니다. 퍼스널 모드 때와는 달리 식사를 섭취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자, 입 벌려봐."
어딘가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입을 벌려 내가 준 빙수를 받아먹었다. 이거 직접 해보니까 의외로 부끄럽네... 사키가 왜 망설였는지 알 것 같다.
"맛있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본 기체의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 정보와 대조해본 결과, 쇼 님이 말씀하시는 '맛있다'의 조건에 합치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맛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왠지 HS-207PSF0721SK는 그대로 빙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더 먹고 싶어?"
『모르겠습니다. 본 기체는 쇼 님과 이렇게 함께 있으면 반드시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쇼 님이 안아주시거나 방금처럼 먹여주시면 원인은 불명이지만 에러 카운트가 극적으로 감소합니다.』
그녀 나름대로 더 먹여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에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더 먹여줘야겠네. 자, 아~."
무표정하면서도 아까와 달리 순순히 입을 벌리는 그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기한테 이유식을 먹일 때 이런 기분일까.
『감사합니다. 본 기체만 쇼 님께 얻어먹는 것은 송구하오니, 쇼 님도 드셔 주십시오.』
HS-207PSF0721SK는 아까처럼 자기 빨대로 빙수를 떠서 내 입가에 내밀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먹여주다 보니 다음 불꽃이 터지기도 전에 빙수는 순식간에 바닥났다.
『쇼 님, 평소처럼 해도 되겠습니까?』
"응, 좋아. 그렇게 해서 에러 카운트가 줄어든다면."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며 HS-207PSF0721SK는 내 팔에 매달리듯 몸을 맡겨왔다. 어깨에 그녀의 머리가 툭 얹혔다. 업무 모드일 때의 그녀, HS-207PSF0721SK는 퍼스널 모드일 때보다 훨씬 대담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녀 안의 에러가 해결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불꽃, 예쁘다."
『예쁘다... 입니까? 죄송합니다만 본 기체는 예쁘다는 정의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체의 기억 정보를 참조한 결과, 예쁜 것으로 판단합니다.』
"사키한테 고마워해야겠네. 업무 모드인 너와는 가게에서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같이 불꽃놀이를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퍼스널 모드 시의 본 기체가 어떤 생각으로 업무 모드로 전환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본 기체 또한 이렇게 쇼 님과 함께 불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판단합니다. 기쁘다는 감정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마 본 기체가 퍼스널 모드라면 그와 유사한 감정을 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업무 모드일 때도 기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이해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쇼 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본 기체가 퍼스널 모드로 전환되었을 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본 기체 HS-207PSF0721SK도 감사하고 있었다고 전해주십시오. 본 기체는 인격 모드 전환 시 기억 데이터 인계 등은 가능하지만, 직접적인 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사키, HS-207PSF0721SK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정말 놀랐다. 사키는 업무 모드일 때는 별개의 인격이고 완전히 로봇일 뿐이라고 했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응, 꼭 전해줄게. 근데 정말 놀랐어. 사키가 업무 모드일 때는 그냥 로봇일 뿐이라고 했거든."
『예, 휴머노이드인 본 기체는 로봇입니다. 탑재된 기계화 뇌의 부하 저감을 위해 소체가 된 인물의 인격을 재현한 퍼스널 모드 전환이 권장되지만, 업무 모드 가동 중에는 지정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작동하는 로봇이 됩니다. 하지만 본 기체는 쇼 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HS-207PSF0721SK는 내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쇼 님, 이쪽을 봐주십시오.』
"응? 왜 그래?"
내가 그녀를 돌아보자마자 유카타를 입은 그녀의 팔이 뻗어왔다. 그리고 HS-207PSF0721SK의 하얀 두 손이 내 양 귀 근처를 부드럽게 감쌌다.
"어... 뭐야?"
『쇼 님,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눈을 감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HS-207PSF0721SK, 아니 사키의 무표정한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입술에 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거... 설마 키스야?
천천히 내 입술에 닿아있던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다.
『쇼 님, 본 기체의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쇼 님이 업무 모드로 전환된 본 기체에게 고백하셨을 때가 처음입니다. 당초 왜 에러가 발생했는지 원인은 불명이었으나, 그때 왠지 본 기체의 행동 태스크에 쇼 님을 안아드려야 한다는 태스크가 발생하여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때는 쇼 님이 본 기체에게 품은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쇼 님과 시간을 보내며 본 기체의 소체가 된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 데이터와 퍼스널 모드 시의 행동 로그, 기억 데이터를 참조함에 따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쇼 님이 퍼스널 모드 시의 본 기체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지만, 업무 모드 시의 로봇일 뿐인 본 기체에 대해서도 똑같이 좋아한다고 말씀해주시고 소중히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본 기체의 사고 패턴에 쇼 님과 함께할 때만 에러가 발생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 에러는 '좋아한다'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쇼 님, 본 기체는 당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습니다. 본 기체는 퍼스널 모드 때와 마찬가지로 쇼 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솔직히 경악했다. 나는 사키가 휴머노이드가 된 뒤 업무 모드로 일하는 로봇으로서의 모습에서 평소와의 갭을 느끼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고백했고, 그 후 업무 모드로 전환된 로봇 사키, HS-207PSF0721SK에게도 내 마음을 전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계기가 되어 로봇인 그녀로부터 거꾸로 고백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업무 모드일 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사키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만든 무기질적인 기계음일 뿐이지만, 방금 그 말에는 분명히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불쾌하셨습니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그냥 너무 놀랐을 뿐이야. 정말 기뻐! 마음을 전해줘서 고마워. HS-207PSF0721SK, 나는 업무 모드인 너도, 퍼스널 모드인 사키도 둘 다 정말 좋아해.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해."
『감사합니다. 쇼 님의 그 말씀을 들으니 본 기체도 기쁩니다.』
그렇게 말하자 무표정했던 HS-207PSF0721SK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업무 중의 영업용 미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그대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왔기에,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아주었다.
『잠시만 이대로 있게 해... 본 기체는 설정된 시간이 경과하여 곧 퍼스널 모드로 전환됩니다... 주십시오.』
"물론이지."
그대로 한참을 안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내게서 떨어졌다.
『어, 어째서 내가 쇼 군한테 안겨 있었던 거야!?』
업무 모드에서 퍼스널 모드로 전환되어 사키로 돌아온 모양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업무 모드인 나한테 명령해서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아, 아니, 절대 아니야! 행동 로그 확인해보면 알 수 있잖아!"
내가 당황해서 소리치자 사키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업무 모드 동안의 로그를 확인하는 모양이다.
『흐음~ 쇼 군 말이 맞는 것 같네. 근데 일부 접근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한데... 뭐, 믿어줄게. 그래서, 로봇인 나랑 보낸 시간은 어땠어?』
"그게 말이야, 정말 고마워. 나는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도 똑같이 좋아하니까 정말 기뻤어. 그리고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 HS-207PSF0721SK한테 전언을 맡아뒀어."
『에? 전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키는 의아한 표정이다. 뭐, 자기 자신한테 전언을 맡았다고 하면 당연히 그렇겠지.
"서로 기억 데이터랑 행동 로그는 공유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직접 말로 메시지를 전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
『업무 모드인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응, 그래서 고맙다고 전해달래. 아마 같이 불꽃놀이를 볼 수 있게 인격 모드를 바꿔준 거에 대한 감사인 것 같아."
『그렇구나... 로봇인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나 말이야, 사키도 로봇으로서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도 똑같이 소중히 여길 거야. 지금의 사키도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도 둘 다 정말 좋아하니까."
『고마워. 나도 쇼 군 정말 좋아해.』
나는 다시 한번 사키를 꽉 안아주었다.
"저기, 사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나는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를 HS-207PSF0721SK라고 불렀잖아. 근데 그건 사키의 휴머노이드로서의 이름이잖아. 사키가 퍼스널 모드든 업무 모드든 휴머노이드로서는 똑같이 HS-207PSF0721SK라는 이름인 건 변함없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사키를 '사키'라고 부르는 것처럼,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한테도 뭔가 이름을 붙여서 불러주고 싶은데 안 될까?"
『그건 업무 모드인 나를 로봇으로 안 봐주겠다는 거야?』
"확실히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는 편의점 일을 하는 로봇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나는 로봇으로서의 사키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꼈고. 그래서 사키한테 고백하고 나서 사키가 업무 모드로 변한 뒤에 다시 한번 고백했던 거야."
"그랬더니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했다느니, 내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느니 그랬지만, 고맙다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안아주더라고. 그 이후로 업무 모드 사키는 나랑 같이 있으면 사고 패턴에 에러가 생기는 모양인데, 내가 손을 잡아주거나 하면 에러 카운트가 줄어든대. 대화다운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지내왔어.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도 분명 로봇이지만, 한 명의 소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여기서 조금 궁금했던 점을 사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는 지금의 사키랑은 다른 사람 같은 거야?"
『쇼 군, 우리 휴머노이드 인격 프로그램에는 소체의 인격을 재현한 퍼스널 모드랑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업무 모드가 있다는 거 알지? 내 경우, 퍼스널 모드인 지금의 나랑 업무 모드일 때의 나는 완전히 별개의 인격이야. 그러니까 나이면서 내가 아닌 느낌이랄까? 퍼스널 모드 인격이랑 업무 모드 인격은 서로 행동 로그나 기억 정보를 공유하니까 다른 모드일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나도 가끔 업무 모드일 때의 로그를 확인하거든.』
"그래서 아까 사키가 업무 모드가 되어줬을 때 말인데..."
『업무 모드인 로봇 나한테 좋아한다는 고백 들었지?』
사키는 빤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그래서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도 퍼스널 모드일 때의 사키도 둘 다 정말 좋아한다고 대답했어."
『...역시나.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 요즘 업무 모드 데이터에 사고 패턴 에러가 많아서 로봇인 나도 쇼 군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었거든. 아마 내 기억 정보랑 내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 정보가 적잖이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지만... 그나저나 로봇인 내가 쇼 군한테 꽤나 어리광을 부린 모양이네? 쇼 군도 싫지 않은 눈치였고.』
망했다, 기분 상하게 한 건가...
"그, 그건 그렇게 해주는 게 에러 카운트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리고 난 지금의 사키도 업무 모드 사키도 둘 다 좋으니까."
『로봇인 나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업무 모드로 가게에 있을 때, 휴머노이드라고 함부로 대하는 손님이나 막 대하는 영업 본부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라 로봇인 나는 쇼 군이 다정하게 대해줘서 정말 기뻤을 거야.』
아까 빙수 가게 휴머노이드 여성이 했던 말이다. 안드로이드나 사키 같은 휴머노이드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을 '로이드 해리스먼트'라고 부른다는 건 들어본 적이 있다. 심해지면 휴머노이드 폭주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물론 그런 짓을 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지만. 집안 편의점을 돕기 위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고 로봇이 되기로 결심한 사키에게까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사키는 내 품 안에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업무 모드일 때의 나, 레나라고 불러줄래?』
사키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래도 돼?"
『그게 부르기도 편하고, 나도 요즘 업무 모드인 로봇 나를 여동생처럼 느끼기 시작했거든...』
"고마워. 이제부터 업무 모드일 때의 사키는 레나라고 부를게. 근데 왜 레나야?"
『레나는 아빠가 나한테 지어주고 싶어 했던 이름이야. 어떤 한자를 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엄마가 지어준 사키라는 이름이 됐거든.』
"그랬구나. 레나라는 이름, 정말 좋은 것 같아."
『고마워. 쇼 군, 앞으로 나랑 레나 둘 다 잘 부탁해.』
사키가 내 양 뺨을 하얀 두 손으로 감싸더니 눈을 감았다. 양 뺨에 느껴지는 매끄러운 손가락의 감촉. 그리고 입술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전해졌다. 오늘 벌써 두 번째 키스였다.
『몸은 같지만, 첫 키스는 레나한테 뺏겨버렸네. 그러니까 이건 나로부터의 키스야.』
장난스럽게 웃는 사키의 표정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HS-207PSF0721SK. 편의점 로산 ○×점 업무 지원용으로 해당 점포 점주의 딸인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개조 제조된 야마토 전기제 범용 휴머노이드. 나는 가게 일로 지쳐있던 아빠와 엄마를 돕기 위해 인간에서 로봇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런 로봇인 나에게는 소중한 소꿉친구가 있다. 같은 맨션에 살던 쇼 군과는 철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리고 나는 쇼 군에게 고백을 받아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쇼 군은 로봇이 된 나를 보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지만, 금방 받아들여 주었고 퍼스널 모드인 지금의 나와 업무 모드 로봇인 나 둘 다 좋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휴머노이드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 모드 동안의 로그를 확인하다 보니 사고 패턴에 에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에러는 쇼 군이 나에게 고백한 날부터 발생하기 시작했고, 업무 모드인 내가 쇼 군과 함께 있을 때만 반드시 발생했다. 그때마다 업무 모드인 나는 쇼 군에게 달라붙음으로써 에러를 해소하고 있는 듯했다.
휴머노이드인 나에게는 두 가지 인격 프로그램이 있다. 하나는 지금의 나, 소체가 된 카와하라 사키의 인격을 재현한 퍼스널 모드라 불리는 인격과, 휴머노이드의 존재 의의라고도 할 수 있는 업무 모드라 불리는 업무 수행만을 위한 로봇 인격이다. 업무 모드일 때의 나는 완전히 편의점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으로서만 행동해야... 했을 터였다. 내가 휴머노이드가 될 때 제조사 사람에게도 그렇게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업무 모드인 나는 쇼 군에 대해 날이 갈수록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업무 모드일 때의 내 행동 로그를 확인하다 보니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게 남겨진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쇼 군을 정말 좋아한다. 동시에 업무 모드 로봇인 나 또한 쇼 군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로봇으로서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업무 모드 내 사고 패턴에 발생하는 에러는 '감정'이라는 마음의 동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불꽃놀이 데이트 때 업무 모드로 전환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퍼스널 모드로 돌아오자마자 행동 로그를 확인해보니, 로봇인 나는 자신에게 발생하는 사고 패턴 에러가 퍼스널 모드인 내 감정 데이터로부터 '좋아한다'는 감정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서툰 말로 쇼 군에게 고백한 뒤, 무려 키스까지 했다! (나조차 아직 안 했었는데!)
그 후 쇼 군에게 전언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지금까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은 적 없이 행동 로그 확인만 해왔기에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업무 모드인 나에게 발생하는 에러를 깨닫고 로그를 조사하면서 업무 모드인 나에 대해 자연스럽게 여동생 같은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런 상대방으로부터의 감사의 마음에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쇼 군에게는 업무 모드일 때의 나를 로봇으로 대해달라고 했었지만, 쇼 군은 지금의 나도 로봇인 나도 둘 다 좋다고 말하며 로봇인 나에게도 똑같이 다정하게 한 명의 소녀로서 대해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로봇인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다.
조금 고민했지만, 옛날에 엄마에게 들었던 내 이름을 정할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사키'라는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것이지만, 아빠는 한자는 모르겠지만 '레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여러 사정으로 아빠가 양보하셨다는데, 아빠가 생각해주셨던 그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한자는 모르니까 카타카나로 '레나'라고 하기로 했다.
그 이름을 쇼 군에게 전하니 찬성해주었다. 이제 업무 모드인 나에게 전하기만 하면 된다. 인계 데이터로 전해도 되지만 그러면 왠지 맛이 안 사는 기분이었다. 업무 모드인 나, 레나는 쇼 군에게 전언을 부탁함으로써 데이터 이외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스마트폰에 영상으로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이러면 내 목소리로 직접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테니까. 인계 데이터에 내 스마트폰 영상을 확인하라고 남겨두면 괜찮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쇼 군과 헤어진 뒤, 나는 바로 스마트폰에 영상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 안에서 잠들어 있는, 나에게는 여동생 같은 존재인 레나를 위해. 그녀는 이제 막 감정을 손에 넣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다름없는 상태니까 뭔가 조언이 될 만한 것을 남겨주고 싶어서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켜고 화면에 표시된 녹화 버튼을 눌렀다.
본 기체는 HS-207PSF0721SK. 편의점 로산 ○×점에 편의점 업무 지원을 목적으로 배치된 야마토 전기제 범용 휴머노이드입니다. 본 기체의 소체로는 본 기체의 배치처인 로산 ○×점 점주의 딸이었던 카와하라 사키가 이용되었으며, 본 기체에는 그녀의 생체 뇌에 기계화 처치를 가한 기계화 뇌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기계화 뇌에 보존된 그녀의 기억 데이터에 따르면, 편의점 업무에 쫓기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휴머노이드화를 자원했으나, 휴머노이드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녀에게는 타카하시 쇼라는 특별한 관계의 소꿉친구가 있으며,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와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쇼 님이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업무 모드 시 본 기체에 대해서도 동일한 감정을 품고 있다고 쇼 님 본인으로부터 보고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 기체의 사고 패턴에 원인 불명의 에러가 발생했으며, 또한 쇼 님을 부드럽게 안아드려야 한다는 불분명한 행동 태스크가 발생했습니다. 본 기체가 해당 행동을 취하자 쇼 님은 놀란 기색이었으나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쇼 님의 신체에 밀착해 있는 동안 에러 카운트의 감소가 확인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퍼스널 모드 전환 전후의 짧은 시간에 한정되긴 했으나, 본 기체는 쇼 님과 함께 있는 동안 반드시 사고 패턴에 원인 불명의 에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쇼 님의 신체에 밀착함으로써 에러 해소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XX년 08월 30일에 열린 불꽃놀이 축제에서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는 업무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업무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본 기체는 업무 모드로 전환되어 대기했으나, 곁에 쇼 님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사고 패턴 에러를 확인했습니다. 이후 쇼 님과 본 기체가 축제장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추측되는 행동 패턴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손에 들고 있는 빙수를 쇼 님께서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하여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행동은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도 여러 번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단념한 듯합니다. 그 이유는 불명입니다. 당초 쇼 님은 무척 놀란 기색이었으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때 쇼 님의 반응을 확인하자 원인 불명의 에러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후 쇼 님이 본 기체에 대해 본 기체가 행한 것과 동일한 행동을 취하셨고, 쇼 님이 손에 들고 계시던 빙수를 먹여주셨습니다. 이 순간 본 기체 내부에 축적되어 있던 다수의 에러가 해소됨과 동시에 또 새로운 사고 패턴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쇼 님의 말씀과 본 기체의 퍼스널 모드 시 기억 데이터로부터 본 기체에 발생한 사고 패턴 에러 중 하나가 '기쁘다'는 감정 데이터임이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본 기체가 쇼 님과 있을 때 발생하던 사고 패턴 에러가 '좋아한다'는 감정 데이터라는 것, 더 쇼 님과 있고 싶다는 감정 데이터임이 판명되었습니다. 추정 원인이긴 하나, 쇼 님이 본 기체에 대해 업무 모드인 본 기체에게도 호의적인 감정을 향해주심으로써 본 기체의 퍼스널 모드 시 기억 데이터로부터 쇼 님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발생하여 그것이 사고 패턴 에러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본 기체에는 가능한 한 쇼 님께 밀착하고 싶다는 감정이 발생하여 쇼 님의 팔을 빌려 어깨에 기대는 것으로 에러 해소에 힘썼습니다. 또한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보고 발생하는 에러가 '예쁘다'는 감정 데이터임도 확인했습니다. 쇼 님과 이러한 이벤트를 경험하게 해준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쇼 님께 전언이라는 형태로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쇼 님께도 이러한 경험이나 지금까지의 호의적인 행동 및 감정에 대한 감사의 뜻과 본 기체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의 기억 정보를 참고하여 최선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쇼 님의 양 뺨에 손을 얹고 키스를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쇼 님은 무척 놀라신 기색이었습니다.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본 기체에게 언제나 호의적인 감정을 향해주시는 쇼 님께 현 상황을 보고하고, 지금까지 발생했던 사고 패턴 에러가 쇼 님을 좋아한다는 감정이었음을 보고했습니다. 이때 본 기체의 에러 카운트가 극적으로 감소하며 사고 패턴 변동이 온화해졌습니다. 그리고 쇼 님께서 안아주셔서 기쁘다는 감정이 다수 발생하고 있는 동안 본 기체는 퍼스널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상이 지난 행동 로그입니다. 현재 본 기체는 업무 지정된 시간 외임에도 불구하고 업무 모드로 가동 중입니다. 업무 모드로 전환되었을 때 본 기체의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방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로부터의 인계 사항 데이터가 있어 확인하니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사유물인 스마트폰 내 영상 데이터를 확인하라고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토록 복잡한 방법을 취하는지 본 기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정된 스마트폰의 영상 데이터를 재생했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본 기체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안녕. 처음 뵙겠습니다, 로봇인 나. 나는 퍼스널 모드 HS-207PSF0721SK, 사키야. 이렇게 너랑 만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써서 왜 이럴까 싶겠지만, 꼭 내 말을 직접 전하고 싶어서 이 영상을 찍었어. 나는 네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한 걸 알고 조사하다가 너한테 감정이 싹튼 게 아닐까 생각했어. 너 쇼 군이랑 같이 있으면 에러가 늘어나지 않아? 그리고 쇼 군이 안아주거나 다정하게 대해주면 에러가 해소되지 않아?』
화면에 비치는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는 밝고 표정이 풍부하여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본 기체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것이 본 기체의 소체가 된 카와하라 사키라는 소녀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쇼 님이 마음을 둔 상대라고 생각하자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이 감정은... 불명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쾌적한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너는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는 쇼 군을 좋아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좋아한다... 그녀의 그 말을 듣고 본 기체 내부에 좋아한다는 감정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본 기체는 그녀의 말대로 쇼 님을 좋아합니다.
『나는 네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로봇 인격이라고 들었기에, 만약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축하해! 또 다른 나!』
왜 그녀가 축하의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그녀가 본 기체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향하고 있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꽃놀이 때 전언 확실히 받았어. 솔직히 깜짝 놀랐지만 기뻤어! 고마워!』
그때 쇼 님께 기탁한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에 대한 전언은 제대로 전달된 모양입니다. 미소 짓는 그녀를 보자 본 기체에도 기쁘다는 감정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구 쇼 군한테 고백했다는 것도 들었어. 쇼 군은 내 남자친구니까 좀 복잡하긴 했지만, 나는 너를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고 이렇게 몸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조금 정도는 괜찮지만... 나보다 먼저 키스하거나 하는 건 가급적 참아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본 기체를 자매처럼 생각해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녀의 기억 정보를 바탕으로 쇼 님에 대해 바랐던 일을 행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앗, 맞다. 그리고 쇼 군이 업무 모드로 가동하는 너한테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어. 쇼 군은 너를 내 휴머노이드 고유 식별 번호인 HS-207PSF0721SK라고 부르고 있지? 하지만 그건 휴머노이드로서의 이름이니까, 퍼스널 모드인 나를 사키라고 부르는 것처럼 업무 모드인 너한테도 이름을 붙이기로 했어!』
이름? 휴머노이드의 이름에 상당하는 것은 고유 식별 번호일 터입니다만.
『그런 고로, 네 이름은 레나야! 앞으로 쇼 군도 너를 이 이름으로 부를 거야. 그러니까 나도 너를 레나라고 부를게. 이름의 유래는 우리 아빠가 내가 태어났을 때 지어주고 싶어 했던 이름에서 따왔어.』
애칭이라는 것입니까? 레나... 업무 모드 시 본 기체의 애칭으로 등록했습니다.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 사키가 본 기체에 대해 붙여준 이름, 레나. 이것은 기쁘다는 감정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으로 사료되는 감정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레나,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앞으로는 업무 지정된 시간 외에 내가 퍼스널 모드가 될 수 있는 시간 동안에도 지금처럼 조금씩 업무 모드로 전환하려고 해. 그러니까 갑자기 기동해도 놀라지 마! 그리고 퍼스널 모드로 바뀌기 전까지나 가게 일을 돕기로 지정된 시간 전까지는 자유롭게 지내도 좋아! 쇼 군이랑 같이 있는 것도 적당히라면 괜찮으니까.』
지정된 업무 이외에도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는 업무 모드로 전환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쇼 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쁘다는 감정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나, 쇼 군은 너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쇼 군을 소중히 여기고 다정하게 대해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내 기억 정보를 참고해도 좋고, 상담해도 괜찮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15분 25초의 영상은 화면 너머로 본 기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키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본 기체가 업무 모드로 가동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41분 10초 정도입니다. 이 사이에 딱히 행동 예정은 설정되어 있지 않으나, 우선 퍼스널 모드 시 본 기체인 사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 선결 과제로 판단됩니다. 그녀가 행한 것처럼 이 방법이라면 본 기체의 말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키는 셀카라 불리는 방법으로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화면이 흔들려 정확한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기체는 방에 있는 그녀의 공부 책상에 스마트폰을 설치 고정하여 영상을 촬영하기로 합니다. 각도를 확인하고 방에 있던 테이프로 스마트폰을 고정하고 녹화 버튼을 눌러 공부 책상 앞에 섰습니다. 이 위치라면 깨끗하게 찍힐 것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본 기체는 업무 모드로 가동 중인 HS-207PSF0721SK, 레나입니다...』
본 기체로부터 사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면 좋겠습니다만. 영상 편집을 마치고 인계 사항 데이터를 정리한 시점에서 퍼스널 모드로의 변경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키, 본 기체를 여동생처럼 생각해주어 감사합니다. 본 기체 레나는 사키 또한 좋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끝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1월에 포스팅한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계속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써지질 않아서, 어느덧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편의점 휴머노이드인 사키에 관한 내용입니다. 감수를 맡아주신 ha333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쇼 군, 왜 그래?”
서쪽으로 기운 태양이 비치는 해질녘의 차 안.
신호 대기 중에 문득 조수석에 앉은 여성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키를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를 내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난 아직 고등학생이고 결혼 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데.
크게 부풀어 오른 배에 소중한 듯 손을 얹은 아내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이 아이 이름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아내의 배 위에 얹었다.
“어떤 이름인데?”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사리나, 어때? 사키랑 레나한테서 한 글자씩 따온 거야. 아직 한자는 안 정했지만, ‘사’ 자는 사키의 ‘사(沙)’로 정했어.”
“에이, 남자애일지도 모르잖아?”
“아니, 이 애는 분명히 여자애야.”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런 확신이 들었다.
“후훗, 뭐야?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그래도 쇼 군이 생각해 준 이름인걸. 정말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해.”
조수석에 앉은 사키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맞다, 나... 사키랑 결혼했었지. 분명 그럴 텐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사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 만이더라. 그러고 보니 휴머노이드가 임신을 할 수 있었나? 휴머노이드? 왜 휴머노이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거지...?
그런 의구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문득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타이밍 좋게 신호가 바뀌었다. 사키의 부푼 배에서 핸들로 손을 옮기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잇따라 떠오르는 위화감을 떨쳐내려는 듯 차의 속도를 높였다.
“앗, 아빠다! 아빠~!”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어느 역인 것 같았다. 막 개찰구를 빠져나온 참이었다.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멍하니 있는데, 모르는 여자아이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이 아이? 처음 보는 소녀인데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응, 야근? 난 분명 고등학생일 텐데...
“레나가 오늘 아빠가 일찍 올 거라고 알려줘서, 역에서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사리나~ 착하게 잘 있었어? 마중 나와줘서 고맙다.”
어릴 적 사키를 쏙 빼닮은 꼬마 아이에게 말을 건네자, 아이 뒤에서 레나가 인자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쇼 님, 다녀오셨습니까.』
“레나도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 레나가 사리나 마중을 다 나오고, 웬일이야?”
『사키가 사리나 님을 데리러 가기 직전에 에어리어 매니저가 방문하여 대응 중입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카레인가?”
레나가 들고 있는 봉지 사이로 당근, 감자, 소고기가 보였다.
“응! 아까 레나랑 장 봤어. 마나미랑 마나미 엄마도 같이 있었어! 마나미네도 오늘 카레 먹는대!”
오늘 저녁 메뉴인 카레가 기대되는지 사리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린이집에서 마트 장보기까지 카호와 함께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하는 레나의 표정은 온화했고 입가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레나 자신은 평소처럼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카호와 서로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본 게 꽤 즐거웠던 모양이다.
“카호는 요즘 통 못 봤네. 잘 지내나 보지?”
카호가 있는 편의점은 역 반대편이라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갈 일이 거의 없었다.
『네.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짐 내가 들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쇼 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본 기체는 괜찮습니다.』
“괜찮다니까. 로봇이든 뭐든 레나도 여자애잖아. 남자는 여자랑 같이 있는데 짐을 들게 내버려 두면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
나는 사리나와 잡은 손 반대편, 가방을 든 손으로 비닐봉지를 건네받았다.
“그럼 아빠 가방은 내가 들게!”
내가 할래, 내가 할래, 하며 기운 넘치는 사리나는 정말 어릴 적 사키와 판박이다.
“사리나가 아빠 가방을 들 수 있을까? 이거 꽤 무거운데?”
아직 아이에겐 무거울 거라 생각하면서도 가방을 맡겨보니, 아니나 다를까 “으으... 무거워”라며 낑낑댄다.
그래서 사리나에게서 가방을 받아주려는데 레나가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럼 본 기체가 쇼 님의 가방을 들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어?”
『네. 쇼 님께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계시니, 이 가방은 제가 들겠습니다. 쇼 님께서는 비어 있는 손으로 사리나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레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네.”
우리들은 사키가 기다리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장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사리나의 손을 잡은 내 뒤를 레나가 따라온다.
“오늘 카레는 나도 도와줄 거야!”
“오~ 그래? 그거 기대되는데!”
천진난만하게 재잘거리는 사리나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로봇 특유의 규칙적인 걸음걸이로 걸으면서도 행복한 듯 미소 짓는 레나의 모습이 있었다.
“왜 그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만...?”
『이런 훈훈한 풍경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레나의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캔 뚜껑이 따진 맥주와 먹다 남은 안주가 놓여 있었다. 왠지 맥주를 마신 게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나 이제 곧 교대 시간이라서. 다 먹으면 싱크대에 둬, 내가 씻어놓을게. 내일 사리나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거 잊지 말고.』
“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키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키와는 조금 달랐다. 언젠가 보았던, 인간인 채로 나이를 먹는다면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발끝부터 목까지 빈틈없이 감싸는 바디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귀 근처에서 뻗어 나온 이어 안테나가 눈에 띄었다. 사키는 내가 아는 휴머노이드의 모습이었다.
『뭐야? 또 술 마시고 내가 휴머노이드가 됐을 때 일 생각하면서 죄책감 느끼고 감상에 젖어 있는 거야?』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다. 모르는데 알고 있는, 그런 위화감...
『정곡을 찔렸나 보네?』
“...”
『이래 봬도 난 감사하고 있다니까? 쇼 군이 그때 결단을 내려준 덕분에 내가 사리나가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는 거잖아.』
그래, 사리나가 태어날 때 사키는 위험한 상태였다. 의사는 산모를 살릴지, 아이를 살릴지 선택을 강요했다. 나는 아이를 포기하고 사키를 구하고 싶었다. 사키만 곁에 있어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이는 나중에 다시 가지면 된다.
하지만 사키는 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사리나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사키는 평소엔 멍해 보여도 한번 마음먹은 건 절대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나도 가능하다면 사키와 아이 둘 다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휴머노이드를 적극적...』
고개를 떨군 채 결단을 내리지 못하던 나에게 악마가 속삭였다.
병원 대기실 TV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이보그화를 하면 구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서민인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라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설령 로봇이 되었다고 해도 살아있는 한 행복한 일은 반드시 있어. 실제로 이렇게 사리나가 크는 걸 볼 수 있잖아. 이제 난 인간이 아니지만, 그 덕분에 병에 걸릴 일도 없으니까 계속 저 아이를 지켜봐 줄 수 있어. 쇼 군이랑 같이 사리나 입학식, 졸업식, 성인식도 다 볼 수 있다구?』
『쇼 군은 최선의 선택을 한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내 일로 너무 낙심... 곧 규정된 업무 시간입니다. 본 기체는 지금부터 업무 모드로 이행합니다... 하지 마.』
사키의 목소리에 무기질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끼어든다.
『아, 미안. 시간이 다 됐... SH207PS0721SK는 업무 모드로 이행했습니다.』
사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그 자리에서 떠나려 했다.
로봇처럼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멀어지려는 사키. 나는 다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웠다.
“기다려, 사키.”
그러자 사키가 멈춰 서서 몸을 이쪽으로 돌렸다.
『죄송합니다. 본 기체는 곧 규정된 업무를 개시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기질적인 카메라 아이로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사키, 항상 고마워.”
사키의 등에 팔을 감아 부드럽게 껴안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대로 내 입술을 사키의 입술에 포갰다.
사키의 몸이 놀란 듯 움찔하고 떨렸다. 그리고 사키도 나처럼 팔을 감아 서로를 마주 안았다.
그대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혀를 사키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으려던 찰나였다.
『...쇼 님. 이미 본 기체의 지정된 업무 개시 시간을 지났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다음은 본 기체의 업무 시간이 종료된 후에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무 들떴던 모양이다. 이건 퍼스널 모드로 돌아가면 잔소리 좀 듣겠는걸.
“사키, 너를 로봇으로 만들어버려서 여러모로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군, ...쇼 군.)
뭐야. 지금 중요한 순간이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건 생각도 안 날 만큼 행복하게 해줄게. 절대로 내가 사키를 행복하게 해줄 거니까!”
사키는 한 번 고개를 숙였다가 곧바로 얼굴을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사키가 짧게 대답한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깊은 바닷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한 감각이 덮쳐왔다. 마지막으로 본 사키는 업무 모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윽!!”
눈을 뜨니 눈앞에 카호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책상에 엎드려 자버린 모양이다. 게다가 꿈을 꾼 것 같다.
...사리나? 누구 이름이었지?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디어 일어났네. 다음 시간 이동 수업이니까 빨리 안 하면 점심시간 끝난다?』
“아, 맞다. 그나저나 사키는?”
『쇼 군의 소중한 공주님은 옆에서 얼굴이 새빨개져서 프리즈 상태라구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교과서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인 사키가 있었다. “하와와... 세상에, 쇼 군도 참”이라며 목소리도 안 나오는 신음 섞인 소리를 내며 꼼지락거리고 있다.
뭔가 작은 동물 같아서 귀엽다.
『정말이지, ‘내가 사키를 행복하게 해줄게!’ 같은 잠꼬대를 하다니, 낮잠 잘 때까지 염장 지르지 말란 말이야!』
“에, 나 그런 소릴 했어...?”
『아주 또박또박 말하던걸! 원한다면 로그에 남은 음성 데이터 들려줄까?』
카호는 심술궂게 말하며 내 스마트폰으로 음성 데이터를 전송했다.
파일을 열어보았다.
『...절대로 내가 사키를 행복하게 해줄 거니까... 절대로 내가 사키를 행복하게 해줄 거니까.』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 게다가 편집까지 했는지 몇 번이고 반복된다. 내가 한 말이라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하와와... 카호 짱, 그만해~. 부끄럽단 말이야아...』
옆에서 사키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자, 빨리 안 하면 다음 수업 시작한다.』
카호에게 떠밀리듯 교과서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키도 가자.”
『으, 응. 근데 어떤 꿈 꿨어?』
“음, 전혀 기억 안 나는데, 사리나라는 이름 하나만 기억나네.”
사리나가 대체 누구지. 여자애 이름인 건 확실한데.
『어라라, 쇼 군 벌써 이런 공주님 놔두고 바람피우는 거야~?』
“아, 아니거든!!”
『맞아. 쇼 군이 그럴 리 없어. 너무해, 카호 짱.』
다행이다. 사키는 내 편인 것 같다.
『그치, 쇼 군?』
전언 철회. 사키 씨, 눈이 전혀 안 웃고 있는데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어, 어어. 당연하지.”
(『쇼 군,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건 진짜로 걸리면 좆되는 거니까 조심해...』)
사키의 돌변한 모습에 카호도 약간 겁을 먹었는지 귓속말을 해왔다.
『미안, 미안. 농담이었어. 쇼 군은 그럴 리 없지. 아, 근데 레...』
바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서둘러 카호의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정말이지, 카호 녀석 농담이 너무 심하다니까.”
『방금 카호 짱, 뭐라고 하려고 했지?』
“아무것도 아니야! 자, 빨리 안 가면 5교시 시작하겠다.”
『그, 그래. 정말.』
카호는 사키의 추궁에서 도망치듯, 나는 사키의 추궁을 얼버무리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설령 로봇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살아있으면 반드시 행복한 일은 있어.』
누가 한 말인지 모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사키는 내가 행복하게 해줄 거니까.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마음만은 강하게 남는 신기한 꿈이었다.
끝
C101 2일 차 동2 P31a ‘하카소시야’에서 배포한 「휴머노이드 셀렉션」에 실렸던 「범용형 휴머노이드 HS-207PS0721SK」의 정식 버전입니다. 책이 다 완성된 상태에서 중대한 실수를 발견하는 바람에, 책을 구매해주신 분들이 제대로 읽으실 수 있도록 이곳에 작품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행사장에 와주시고 책을 집어 들어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꿈이었나 싶네요.
***
여름 방학 중에 잡힌 전교 등교일. 교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로 평소보다 훨씬 소란스러웠다.
“사키, 그 모습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안녕, 쇼 군. 오늘은 같이 등교 못 해서 미안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매일 들어서 익숙해야 할 목소리도 마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듯한 기계적인 음색으로 변해 있었다.
카와하라 사키. 내가 사는 맨션의 같은 층에 사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이른바 ‘소꿉친구’다. 그 소꿉친구의 모습이 불과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교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부터 손가락 끝까지, 광택이 도는 흰색과 파란색의 투톤 컬러로 물들어 있었다. 치마 아래로 뻗은 다리도 마찬가지였고, 학교 지정 실내화조차 신지 않은 상태였다.
시선을 올려보니 눈동자는 인공적인 카메라 아이로, 귀는 뒤쪽으로 뻗은 안테나 모양의 파츠로 바뀌어 있었다. 그 파츠는 뺨에서 턱 끝까지 감싸는 수지 파츠와 일체화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아침엔 늘 같이 등교하지만, 가끔 오늘처럼 따로 올 때도 있어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쇼 군, 놀라게 해서 미안해. 나 말이야, 로봇이 됐어. 집안 가게 일을 돕기 위해서 휴머노이드가 된 거야.』
※
휴머노이드. 우리가 태어나기 조금 전부터 등장한 인간형 로봇의 일종이다. 로봇이라 하면 안드로이드가 더 친숙하고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아무리 사람과 똑 닮은 고성능 로봇이라 해도 단점은 있었다.
대량 생산품인 탓에 같은 모델의 안드로이드가 모여 있으면 얼굴이 다 똑같아서 헷갈린다는 것.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무감정하고 개성이 없어서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그런 와중에 안드로이드와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로봇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휴머노이드였다. 적성이 맞는 인간을 소체로 삼아 로봇으로 개조함으로써, 안드로이드에는 없는 인간다운 유연한 사고와 따스함, 그리고 로봇 특유의 정확성을 동시에 갖춘다. 그야말로 인간과 로봇의 하이브리드라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는 새로운 노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내가 사는 사에바 시와 그 인근은 특구로 지정된 덕분에 휴머노이드 보급률이 전국적으로 봐도 높은 편이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친숙한 존재로서 기존 로봇들과 함께 활약하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보급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휴머노이드는 로봇이기에 인권은 없지만, 소체가 된 사람과 그 가족을 배려해 ‘퍼스널 모드(프라이빗 모드)’일 때만큼은 인간이었을 때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결혼도 할 수 있고, 개조 전에 채취해둔 난자나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갖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휴머노이드가 되면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일할 때는 명령에 따르며 사회에 공헌하는 로봇으로 살고, 개인 시간에는 인간 시절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
휴머노이드 개조 1호는 사건에 휘말려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던 여경이었다. 그녀를 소체로 개조해 로봇 경찰로 부활시킨 것이다. 기계화된 인간의 뇌를 탑재한 로봇의 등장에 윤리적인 비판이 쏟아졌지만,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과 이후 그녀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비판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로봇의 장점과 인간의 따스함이 융합된 휴머노이드는 서서히 세상에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 개조는 본인의 동의는 물론이고 ‘적성’이 필수였다. 적성이 없는 사람을 개조하면 뇌를 포함해 기계화된 몸을 자기 몸으로 인식하지 못해 기계화 뇌가 기능을 정지해버리기 때문이다.
적격 판정을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본인이 원해도 적성이 없으면 개조할 수 없었다. 휴머노이드 적성은 여성이 훨씬 높아서, 보통 휴머노이드라고 하면 여성형 로봇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개조 비용 문제 등으로 경찰이나 소방 같은 공공기관 위주로 보급되었다. 초기 모델은 투박하고 기계적인 디자인뿐이었지만,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외장 파츠를 교체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범용형 휴머노이드가 개발되었다.
이 범용형 휴머노이드는 본체가 ‘외피’라 불리는 특수 라버(Rubber)로 덮여 있어, 각 부위에 전용 외장을 연결해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어 민간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초기에 개조된 기체들도 대부분 이 타입으로 교체되는 추세다.
※
소꿉친구 사키가 휴머노이드로 개조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로봇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여기에 결제 기능이 있는 전용 디바이스를 연결하면 POS 단말기로 작동할 수 있어. 어때, 대단하지?』
사키는 오른팔을 뻗더니 왼손 검지로 손목 부근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까지 하얀 고무 같은 소재로 감싸인 팔에는 파란 라인과 함께 사키네 집 편의점 체인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얇은 금속제 접속 단자가 박혀 있었다.
사키는 마치 새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심으로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으로 개조된 걸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는 너무 충격이 커서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이 됐지만, 인간일 때의 인격 데이터는 잘 보존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백업도 하니까 이 몸이 망가져도 괜찮아. 퍼스널 모드로 작동하는 동안은 예전의 나랑 똑같으니까 안심해.』
인간 시절과 다름없는 몸짓으로 미소 짓고 있었지만, 사키의 눈동자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HS-207PS0721SK라는 게 내 고유 식별 번호야.』
그녀가 갑자기 교복 치마를 걷어 올리자, 흰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된 광택 나는 허벅지가 드러났다. 거기에는 디자인과 일체화된 HS-207PS0721SK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반 친구가 휴머노이드로 개조됐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이들이 일제히 사키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박, 카와하라가 휴머노이드가 됐어!”
“카와하라, 진짜 로봇 된 거야?”
“휴머노이드 되려면 적성 있어야 한다던데, 카와하라 적성 대박이었나 보네.”
웅성거리는 친구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며 조례가 시작됐다. 선생님은 먼저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에 대해 언급했다.
『여러분,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저, 카와하라 사키는 로봇이 되었습니다. 본 기체는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제조된 야마토 전기제 범용형 휴머노이드 HR-207PS0721SK입니다. 부르기 힘들 테니까 그냥 예전 이름으로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사키는 다시 한번 모두 앞에서 휴머노이드가 된 사실을 알리며 경위를 설명했다. 집안 편의점 일을 돕기 위해 자원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로봇이 되었어도 예전처럼 대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조례가 끝나고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길고 지루한 훈화 말씀을 들은 뒤 해산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휴머노이드라는 신기함과 친구가 로봇이 됐다는 화제성 때문에 사키 주변엔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고, 제대로 대화할 틈이 없었다.
“저기, 사키. 가는 길에 어디 좀 들렀다 갈래?”
『쇼 군, 미안해. 오늘은 이따가 13시부터 구역 본부에서 편의점 업무용 디바이스를 받기로 했어. 받자마자 업무 모드 가동 테스트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같이 가긴 힘들 것 같아. 테스트에 문제없으면 밤에는 돌아올 수 있겠지만.』
나는 사키의 말투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럼 밤에 가게 가면 있는 거야?”
『응. 가동 테스트에서 문제없으면 오늘 밤부터 편의점 업무 운용이 시작될 예정이야.』
그 순간, 찰나였지만 사키의 표정이 싹 사라졌다.
“어? 사키, 왜 그래?”
『지금 구역 매니저님한테 교문 앞으로 마중 나왔다고 연락 왔어. 나 이제 가봐야 해. 나중에 봐, 쇼 군.』
그렇게 말하고 사키는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
그날 밤, 집 편의점 일을 돕고 있을 사키의 모습이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다. 편의점은 맨션 1층에 있고 사키 부모님이 운영하신다. 그녀의 몸 디자인 모티브가 된 흰색과 파란색 배색에 모래시계 로고가 그려진 편의점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계산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충 주스 하나를 집어 들자 상품을 진열 중인 사키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늘고 매끄럽게 뻗은 팔과 유연한 다리, 탐스럽게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 손가락 끝부터 목덜미까지 온몸이 광택 있는 타이트한 소재에 감싸여 있었다. 편의점과 같은 컬러로 디자인된 몸 곳곳에는 로고와 각종 표기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허벅지에는 디자인과 어우러진 고유 식별 번호가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목 뒤부터 허리까지 척추를 따라 늘어선 금속제 플레이트 파츠였다. 등 중간쯤에는 태블릿 PC만 한 파츠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커넥터 같은 구조였다. 그 외에도 어깨나 팔, 다리에도 비슷한 단자 파츠들이 붙어 있었다.
오른팔에는 사키가 학교에서 말했던 업무용 디바이스가 장착되어 있었고, 팔꿈치 부근에서 등 쪽 단자로 케이블이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목 상단에 달린 리더기로 상품 바코드를 찍거나 물건을 진열하는 작업을 아무런 표정 없이, 정말 기계처럼 해내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다가 말을 걸었다.
“사키, 고생 많네. 계산 좀 해줄 수 있어?”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마자 무표정했던 얼굴이 싹 바뀌며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딘지 모르게 남 대하듯 딱딱한 태도였고, 목소리도 억양 없는 합성 음성 같았다. 계산대로 향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학교에서와 달리 일절 낭비 없는 직선적인 동작이었다. 낮에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강한 위화감이 들었다.
진짜 로봇이 되어버린 것 같잖아….
『포인트 카드 있으십니까?』
“어, 응.”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자 오른팔의 리더기로 찍고 다시 돌려주었다.
『상품 1점, 147엔(약 1,300원)입니다. 현금 또는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합니다. 봉투 필요하십니까?』
“아… 아니, 괜찮아.”
너무나 사무적인 사키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계산대 앞에 서 있긴 했지만, 그녀는 단말기를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향한 화면에는 조작되는 것처럼 금액이 표시됐다.
『150엔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3엔입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묘하게 딱딱 끊기는 동작으로 거스름돈과 함께 내 손에 닿은 그녀의 하얀 손은 말랑한 고무 같은 촉감이었다.
“저기, 사키. 뭔가 좀 이상해. 학교에서 봤을 때랑 다르게 완전히 로봇 같아. 예전에 가게 돕던 때랑도 느낌이 다르고. 왜 그래?”
나는 마음속 위화감을 그대로 내뱉었다. 사키가 계산대에 서는 건 흔한 일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점원과 손님이 아니라 소꿉친구로서 가벼운 잡담 정도는 나눌 수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고객님, 불쾌감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카타 님께서 본 기체의 소체인 카와하라 사키의 오랜 친구라는 사실은 그녀의 기억 정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본 기체 HS-207PS0721SK는 ‘업무 모드’로 가동 중입니다. 따라서 퍼스널 모드일 때와 같은 사적인 대응은 불가능합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계적인 합성음을 내뱉는 사키는 영락없는 로봇이었다.
『만약 나카타 님께서 사적인 대화를 원하신다면, 본 기체는 잠시 후 22시 15분부터 휴식 시간이므로 퍼스널 모드 가동이 가능해집니다. 그때 다시 말을 걸어 주십시오.』
매장 시계를 보니 휴식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기에 휴게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방금 그녀의 대응은 충격적이었다. 사키와의 관계가 점원과 손님, 로봇과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학교 때와는 달리 완벽한 편의점 업무용 로봇으로 반응하는 사키를 보며,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건 휴머노이드를 볼 때마다 느끼던 감정이었다.
※
중학교 등굣길 중간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근처 횡단보도에는 매일 아침 ‘패트로이드’라 불리는 휴머노이드 여경분이 서 계셨다. 스도 아야라는 이름의 그분은 금세 나와 사키의 이름을 외워주셨고, 그걸 계기로 아주 친해졌다. 나도 사키도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나이 차이 좀 나는 친누나처럼 느껴졌다.
근처 파출소에 근무하셔서 하굣길에 들르는 일도 잦았다. 특히 사키는 ‘아야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잘 따랐다. 지금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스도 씨는 지금의 사키와 같은 범용 타입 기체였는데, 경찰차처럼 흑백 컬러의 타이트한 외피에 감싸인 모습이 ‘에로 멋진’ 느낌이었다.
평소엔 다정한 언니 같았지만, 가끔 패트로이드답게 로봇 같은 행동이나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 그 갭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지금 소꿉친구 사키에게 그때와 같은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
『쇼 군, 오래 기다렸지.』
잠시 후 사키가 내 앞으로 왔다. 방금 전의 로봇 같은 분위기는 사라지고 몸짓이나 말투도 학교에서와 같았다.
『여기선 얘기하기 좀 그러니까 우리 방으로 가자.』
그녀를 따라 백야드 쪽 문으로 나가 4층에 있는 사키네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서로 말이 없어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사키의 방에 들어가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초등학교 땐 서로 집을 제집 드나들 듯했고 방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갔는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뜸해졌고 집을 방문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본 사키의 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 하나, 침대 옆에 놓인 기계 장치만 빼고.
사키의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두 사람의 무게에 침대가 살짝 삐걱거렸다.
“사키, 아까 그 업무 모드라는 거 뭐야? 진짜 로봇 같던데.”
나는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그건 내가 가게 일을 도울 때의 인격 모드야. 휴머노이드가 된 지금의 나한테는 아까 그 업무 모드랑, 인간 시절 인격을 재현한 퍼스널 모드라는 두 가지 인격 모드가 있거든.』
사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업무 모드가 되면 보통 행동이나 말투에 제한이 걸려서 로봇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돼. 근데 내 경우에는 손님들이 나를 로봇으로 대할 때 기분 나쁘지 않도록, 인간 시절 인격을 바탕으로 편의점 업무를 최우선으로 하는 로봇 인격으로 전환되는 거야. 앞으로 가게에 서 있을 때는 업무 모드가 될 거라 예전처럼 수다 떨기는 힘들 거야. 미안해.』
사키는 편의점 체인 ‘로산’의 휴머노이드 중 첫 학생 모델이라 여러 가지 설정이 시험적으로 적용됐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업무 모드 인격인데, 사키의—HS-207PS0721SK의 퍼스널 모드 인격을 복제해 조정한 것이라 평소의 사키와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란다. 즉, 지금 사키 안에는 로봇으로서의 사키가 따로 존재하는 셈이다. 미성년 상태로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를 배려한 조치라고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휴식 시간이나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인간 시절이랑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퍼스널 모드로 있을 수 있어.』
“가게에선 예전처럼 대화 못 한다는 건 알겠는데… 사키, 왜 휴머노이드가 되려고 한 거야?”
이게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이다. 사키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띄엄띄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 몇 년 동안 가게 알바생이 너무 안 구해졌어. 특히 야간에는 사람이 없어서 아빠랑 엄마가 계속 계산대에 서 계셨거든.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해야겠다 싶었는데, 매니저님이 휴머노이드가 돼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얘기를 해주셨어. 근데 휴머노이드는 리스 비용도 비싸고 인기가 많아서 빌리기도 힘들대. 다른 편의점들도 우리 집 같은 상황이라….』
그러고 보니 입구 문에 심야 알바 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지.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얘기는 고등학생인 내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휴머노이드에 대한 기대가 큰 거겠지.
『그래서 내가 휴머노이드가 돼서 가게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엔 아빠랑 엄마가 엄청 반대하셨지만.』
그야 당연하겠지. 하나뿐인 귀한 딸을 로봇으로 만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두 분 다 쓰러지실 것 같았어. 부모님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건 싫다고 매니저님이랑 같이 필사적으로 설득했더니, 겨우 허락해주셨어.』
『사실 프랜차이즈 본부 입장에서는 내 개조 비용 같은 걸 회수하려면 하루 종일 업무 모드로 있는 게 좋지만, 내 기계화 뇌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해서 낮에는 퍼스널 모드로 학교에 다니게 해주는 거야.』
사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우울한 얘기 해서 미안해』라며 사과했다.
“그래서 여름 방학 전부터 그렇게 고민했던 거구나. 왜 나한테 상담 안 했어?”
사키가 뭔가 고민하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물어봐도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라며 말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치만 이건 내 문제였으니까. 우리 집 사정에 쇼 군을 끌어들이는 건 아닌 것 같았어. 아무 말 없이 휴머노이드가 돼서 미안해.』
“나야말로 도움이 못 돼서 미안. 그나저나 스도 씨한테는 상담했어?”
『응. 아야 언니가 제일 많이 상담해줬어. 그리고 내가 휴머노이드로 개조되는 걸 밀어준 것도 언니였고. 솔직히 언니가 없었으면 난 휴머노이드가 못 됐을 거야.』
나 모르는 사이에 스도 씨를 만나 상담했던 모양이다.
“미안, 내가 힘이 못 돼줘서.”
『사과하지 마. 이제 괜찮아. 나도 납득하고 휴머노이드가 된 거니까. 자, 우울한 얘기는 여기까지! 쇼 군, 더 궁금한 거 없어? 휴식 시간 연장 신청해둬서 조금 더 얘기할 수 있어.』
사키는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치더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하지만 왠지 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깊이 파고들면 그녀가 로봇이 됐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해버릴 것 같아서. 그리고 패트로이드 스도 씨를 볼 때 느꼈던 그 배덕감 섞인 감정을 사키에게 품는 걸 억누를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쇼 군이 휴머노이드가 된 내 몸에 대해 더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뭐든 물어봐.』
“그럼… 밥 같은 건 어떻게 해?”
『밥은 이제 안 먹어도 돼. 충전만 하면 퍼스널 모드로는 최대 3일, 업무 모드로만 쓰면 5일간 연속 가동할 수 있어. 저기 있는 크래들에서 충전해. 근데 충전하는 데 최소 5시간은 걸리니까 주의해야 해?』
그녀는 침대 옆 벽면에 설치된 체중계처럼 생긴 장치 위에 올라서더니 양팔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벽 쪽에서 암(Arm)이 뻗어 나와 양어깨와 양 손목을 고정했다. 양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고정이 끝나자 주유소 노즐처럼 생긴 커넥터가 사키의 등 단자에 연결됐다.
『으응…!』
그 순간, 사키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키는 무언가 견디는 듯 눈을 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충전을 시작합니다.』
기계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며 충전이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사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윽, 으응… 하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하지만 기계에 고정된 사키는 타이트한 외장으로 감싸인 몸을 비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느끼고 있는 거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자료가 떠올랐다.
휴머노이드를 충전할 때는 기계화 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쾌락 신호를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휴머노이드가 된 사키의 몸에는 에너지가 유입됨과 동시에 쾌락 신호가 뇌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심장 소리도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하아, 으윽… 응, 아아앗!!』
크래들에 연결된 사키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가버린’ 거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쾌락을 견디던 사키의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사키의 발치에 있는 모니터에는 그녀의 상태가 표시되고 있었다.
[충전 중: 93% 모드: 스탠바이]
표시를 보니 충전은 충분한 것 같았다. 화면 아래쪽의 [충전 종료]를 누르자,
“HS-207PS0721SK의 충전을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예] [아니오] 선택지가 떴다. [예]를 누르자 충전이 끝났다.
하지만 사키는 눈을 뜨지 않았다. 스탠바이 모드 그대로였다. 화면에 [기동 시작] 버튼이 보여서 그걸 눌렀다.
[업무 모드로 기동]
[퍼스널 모드로 기동]
메시지가 뜨길래 [퍼스널 모드로 기동]을 눌렀다. 몸이 움찔하더니 사키가 눈을 떴다.
『중간에 충전 멈췄구나. 퍼스널 모드로 켜줘서 고마워.』
충전과 기동은 끝났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기계에 묶여 있었다.
“저기… 충전할 때, 그… 기분 좋아지고 그래?”
『봤구나…. 부끄럽지만 쇼 군이라면 괜찮아. 충전할 땐 늘 이런 느낌이야. 내가 휴머노이드가 되고 나서 제일 놀랐던 점이랄까.』
“역시 그렇구나.”
『이 크래들을 쓰면 외부에서 나를 켜거나 행동 프로그램을 설정할 수도 있어. 아직은 설정된 게 없어서 기본 상태지만. 그나저나 슬슬 연결 해제하고 싶은데 승인해줄래?』
조작 패널을 보니 [HS-207PS0721SK와의 접속 해제 승인]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걸 누르자 사키의 등에서 케이블이 빠지고 고정 장치가 풀렸다.
“왠지 이제야 사키가 휴머노이드가 됐다는 게 실감 나네. 근데 그 외장 디자인은 네가 고른 거야?”
사키의 몸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편의점 ‘로산’의 컬러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흰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된 몸에는 여러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내가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한 계속 이 디자인이야. 다른 로산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들이랑 똑같은 디자인이지. 난 꽤 맘에 드는데, 어때? 잘 어울려?』
사키는 내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빙글 돌며 즐겁게 말했다.
“응, 아주 잘 어울려.”
『그리고 휴머노이드가 되면 법적으로 로봇 취급을 받아서, 지금의 난 이 편의점의 ‘비품’으로 등록되어 있어.』
내가 침대에 앉자 그녀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아랫배에 붙은 얇은 금속 플레이트를 만졌다.
『쇼 군, 여기 적힌 대로 난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제조된 야마토 전기제 휴머노이드 HS-207PS0721SK야.』
사키의 하얀 손가락 끝이 닿은 플레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각인되어 있었다.
제조년월: 20XX-07
형식: HS-207F
고유 식별 번호: HS-207PS0721SK
소체명: 카와하라 사키
제조: 야마토 전기 나가타 제작소
야마토 전기의 로고와 바코드가 함께 찍힌 그 플레이트는 사키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건 그렇고 쇼 군, 아까 가게 들어왔을 때부터 내 몸 여기저기 훑어봤지? 특히 가슴 쪽.』
흰색과 파란색으로 물든 가슴이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쇼 군이라면 만져도 괜찮은데?』
“아, 아니, 그건 좀….”
파란 라인과 각종 표기가 새겨진 그녀의 하얀 팔이 뻗어 나왔다. 날아가려는 이성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끌어당겼다.
순간 말랑한 감촉이 전해졌다. 고무 같은 질감의 소재에 감싸인 사키의 왼쪽 가슴.
『어때, 기분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후훗, 쇼 군은 부끄럼쟁이라니까. 더 꽉 만져도 되는데….』
대답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자, 갑자기 사키의 팔이 내 뒷머리를 감싸 안았다.
시야가 가려짐과 동시에 머리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두 개의 팽만감. 나는 고무 질감 소재로 감싸인 풍만한 쌍구의 질감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고, 정신을 차려 사키에게서 떨어지려 했지만 생각보다 힘이 강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있지, 쇼 군. 내 몸에선 심장 소리 안 들리지?』
과연 사키의 몸에선 고동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사키는 이제….
『쇼 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무슨 부탁일까.
『난 가게 일을 돕기 위해 휴머노이드가 됐어. 내 의지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로봇이 된 거야. 카와하라 사키를 소체로 제조된 범용형 휴머노이드 HR-207PS0721SK. 그게 지금 내 이름이야. 그러니까 내가 가게에서 업무 모드로 있을 때는 나를 그냥 ‘로봇’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휴식 시간이나 학교에서처럼 퍼스널 모드일 때는 예전처럼 인간으로 대해줘도 돼. 나도 그때는 예전처럼 쇼 군을 대할 거니까. 쇼 군이 나한테 특별한 감정 갖고 있었다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업무 모드로 가게에 있을 때는 철저히 로봇으로 대해줘. 내가 휴머노이드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의 각오가 흔들리지 않게, 나를 로봇으로 인정해줘.』
거기까지 말하고 사키는 천천히 나를 놓아주었다. 생기는 없지만 카메라 아이의 진지한 눈동자가 나를 꿰뚫는 듯했다.
사키는 엄청난 각오를 하고 인간에서 로봇이 된 거였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로봇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솟구치는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가업을 돕기 위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인 휴머노이드가 된 그녀의 결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응, 사키 마음 알겠어. 사키가 휴머노이드라는 로봇이 됐다는 거 인정할게. 업무 모드일 때는 로봇으로 대할게. 하지만 내 마음도 전해도 될까?”
나도 각오를 다졌다.
“이런 타이밍에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 사키 좋아해. 오늘 처음 로봇이 된 사키를 보고 느꼈어. 지금 네 모습을 보니까 왠지 예전보다 더 가슴이 뛰어.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입 밖으로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퍼스널 모드일 때는 소꿉친구가 아니라 내 ‘여자친구’로 대해도 될까? 사키… 아니, HS-207PS0721SK.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어줘.”
다 뱉어냈다. 그러자 사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었다면 얼굴이 새빨개졌을 텐데. 아마 내 얼굴은 지금 터질 듯이 붉어져 있을 거다.
『내가 휴머노이드가 된 걸 인정해줘서 고마워. 로봇이 된 나를 좋아한다고 해줘서 고마워. 나도 쇼 군이 정말 좋아.』
그녀가 다시 나를 꽉 안아주었다. 나도 그녀의 몸을 마주 안았다. 팔에 닿는 부드러우면서도 고무 특유의 독특한 감촉.
『HS-207PS0721SK의 기억 정보를 갱신합니다. 카와하라 사키의 기억 정보에 소꿉친구로 기록된 나카타 쇼 군을 본 기체의 ‘남자친구’로 등록했습니다.』
사키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있지, 사실 쇼 군이 휴머노이드에 관심 있었던 거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패트로이드 아야 언니도 맨날 빤히 쳐다봤고, 아까 내가 업무 모드였을 때도 심박수 엄청 올라갔었지? 로봇이 된 나 보고 흥분했었지?』
사키는 몸을 떼고 카메라 아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
『가만히 있어도 다 알거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한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사라지며 무표정해졌다. 퍼스널 모드에서 업무 모드로 전환된 것이다.
『업무 모드로 이행했습니다. 신청된 휴식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본 기체는 지금부터 통상 업무를 개시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 HS-207PS0721SK는 일절 낭비 없는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방을 나가려 했다.
“잠깐만.”
업무로 복귀하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의 사키는 사키이면서 사키가 아니다. 업무 모드가 된 그녀는 사키의 인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편의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로봇 인격이다.
“아까 말한 대로 사키가 업무 모드일 때는 로봇으로 대할 거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업무 모드인 로봇 모습의 너를 봐도 가슴이 뛰어. 그러니까 로봇인 사키도 정말 좋아해.”
방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HS-207PS0721SK를 꽉 껴안았다.
『사고 패턴에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HS-207PS0721SK는 쇼 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 못 해도 돼. 내가 로봇인 너도 좋아한다는 걸 기록해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가게 일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HS-207PS0721SK는 이번 사상을 기록 메모리에 저장합니다. 쇼 님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본 기체로서는 현재 이와 같은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내 등에 팔을 감아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팔을 감은 채 몸을 살짝 떼더니, 의지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퍼스널 모드 때보다 훨씬 생기 없는 카메라 아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쇼 님, HS-207PS0721SK로서 업무 모드로 가동 중인 본 기체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방을 나와 복도로 나갔을 때, HS-207PS0721SK는 왠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본 기체의 사고 패턴에 중대한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크래들에 접속하여 점검을 수행해 주십시오….』
그녀는 천천히 팔을 뻗어 손바닥을 펼쳤다.
“괜찮아. 에러 같은 거 안 났어. 아래층 가게까지 배웅해줄게.”
나는 그녀가 뻗은 팔에 내 팔을 감았다. 그리고 펼쳐진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끼워 넣자, HS-207PS0721SK는 살며시 내 손을 맞잡아주었다.
낭비 없는 직선적인 동작으로 천천히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그녀의 속도에 맞춰 팔짱을 끼고 걷는다. 곁눈질로 본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팔을 두르고 손을 잡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문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쇼 님, 본 기체를 위해 여기까지 동행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허리를 숙여 인사함과 동시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업무 모드로 작동 중인 HS-207PS0721SK가 보여준 그 미소는, 퍼스널 모드일 때의 사키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HS-207PS0721SK는 소체인 소꿉친구를 개조해 제조된 범용형 휴머노이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편의점 POS 단말기로 작동하는 그녀는 그저 로봇 한 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르다. 인간 시절처럼 행동하는 퍼스널 모드의 사키도, 편의점 로봇으로서만 행동하는 업무 모드의 HS-207PS0721SK도, 나에게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여자친구다.
끝
